흐루쇼프가 거짓말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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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버 퍼(Grover Furr)

번역: 편집부

 

 

부록

― 1차 자료들과 다른 자료들로부터의 인용들

 

 

34. 전쟁 초기의 쓰딸린의 전의 상실

 

흐루쇼프:

전쟁 초기 전선에서 심각한 재앙과 패배를 겪으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쓰딸린이 절망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그 시기의 한 연설에서 그는 말했다:

레닌이 창조했었던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영원히 잃어버렸다.

 

1941년 6월 21-28일의 업무일지가 출판되었다(Istoricheskii Arkiv No. 2, 1996, pp. 51-54.) 그것은 다음의 주소에 있다: http://www.hrono.ru/libris/stalin/16-13.html

 

주꼬프 원수는 말한다:

전쟁 초기에 쓰딸린이 아마도 매우 당황하여, 심지어 라디오 연설도 할 수 없었고, 몰로또프에게 대신 전황에 대한 발표를 하게 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러한 판단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물론 최초 몇 시간 동안, 쓰딸린은 몹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정상 상태로 돌아왔고, 대단히 정력적으로 일을 했다. 그가 비록, 지나치게 초초해 했고, 이것이 일을 종종 방해했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 G. K. 주꼬프, Vospominaniia i razmyshleniia(≪회상과 사색≫), 제1권, 9장, 모쓰끄바, 2002. 다음에 있는 러시아 문서로부터 인용하다: http://militera.lib.ru/memo/russian/zhukov1/10.html

이고르 쁘이할로프(Igor’V Pykhalov)는 자신의 책(Velikaia Obolgannaia Voina) 10장 전체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http://militera.lib.ru/research/pyhalov_i/10.html

 

로이 메드베제프:

일요일에 쓰딸린은 자신의 끄레믈린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명의 전기 작가 라드진쓰끼(Radzinsky)와 볼꼬고노프(Volkogonov)의 주장―그날 쓰딸린이 별장으로 도망가서 몸을 숨겼다―은 실제로 일어났었던 일에 부합하지 않는다. 두 작가는 모두, 6월 29-30일의 끄레믈린 사무실 방명록에 기록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서, 자신들의 다소 신뢰할 수 없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주꼬프에 따르면, 29일 쓰딸린은 국방인민위원회 최고사령부(Stavka)에 두 차례 왔다. 두 번 모두, 서부전선에서 전개되는 전략적 정세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30일, 쓰딸린은 별장에서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곳에서 국가방위위원회(State Defense Commitee, GKO)를 결성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 로이 그리고 조레쓰 메드베제프, The Unknown Stalin(Woodstock & New York: Overlook Press, 2004), pp. 242-3.

쓰딸린 사무실의 방문자 기록부에 내방자가 보이지 않았던, 1941년 6월 29-30일, 이틀 동안 일어났던 일과 관련하여, 다음의 책을 참조할 수 있다: KPSS v rezoliutsiiakh s”ezdov, konferentsii I Ple-numov TsK.(≪쏘련 공산당의 당 대회, 회의, 중앙위원회 총회에서의 결의안들과 결정들≫), 제6권, (모쓰끄바: Politizdat, 1971), p. 19.

침략을 당한 후 일주일이 지난 1941년 6월 29일, 쏘련 인민위원회와 쏘련 공산당(볼)의 지령이, 전선과 전선 부근에 있는 주(州)의 당과 쏘비에트 조직들에게 발표되었다.

적에게 점령당한 지역들에서, 빨치산 부대와 파괴활동가를 조직하여 침략군과 싸워라. 여기저기서 빨치산 투쟁이 활활 타오르게 하라. 교량과 도로를 폭파시켜라. 전화와 전보 통신을 파괴하라. 상점을 방화하라 등등. 점령당한 지역에서, 적들과 부역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태를 조성하라. 모든 단계에서 그들을 추적하고 파괴하라. 그들의 모든 사업을 분쇄하라.

— 끄바치꼬프(V. V. Kvachkov)가 다음에서 인용하였다: Spetsnaz Rossii. Moscow: voennaia literature, 2004. (http://militera.lib.ru/science/kvachkov_vv/02.html). 문서 전체는 다음에 인용되어 있다: http://www.battlefield.ru/en/documents/87-orders-and-reports/314-order-to-soviet-organizations-frontline-1941.html

 

1941년 6월 20일, 쓰딸린이 지휘하는 국가방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1941년 6월 30일, 쏘련 최고 쏘비에트 회의, 쏘련 인민위원회,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의 법령:

발생한 비상한 정세에 비추어, 쏘련 인민들의 모든 힘을 신속하게 동원하여, 우리 조국을 침략한 적과 싸우기 위하여, 쏘련 최고 쏘비에트 회의, 쏘련 인민위원회,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의 법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결정하였다:

1. 국가방위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쓰딸린 동지(의장)

몰로또프 동지(부의장)

보로쉴로프 동지

말렌꼬프 동지

베리야 동지

2. 국가의 모든 권력을 국가방위위원회에 집중시킨다.

3. 모든 시민, 당, 쏘비에트, 공산주의 청년동맹, 군사조직은 국가방위위원회가 채택한 결정과 방책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는 의무를 진다.

쏘련 최고 쏘비에트 회의 의장 깔리닌

쏘련 인민위원회 의장과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 비서 쓰딸린

모쓰끄바. 끄레믈린. 1941년 6월 30일.

― http://www.hrono.ru/libris/stalin/15-21.html

 

볼꼬고노프:

아니다, 전쟁 초기에 쓰딸린은 결코 커다란 충격을 받지 않았다.

Stalin, 제2권, 제8장: http://militera.lib.ru/bio/volkogonov_dv/08.html

 

빠벨 쑤도쁠라또프의 회고록:

여러 책들에, 특히 흐루쇼프의 회고록에, 전쟁 초기에 쓰딸린이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적혀 있다. 나는 그러한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끄레믈린[쓰딸린 사무실의: 그로버 퍼] 방문자에 관해 발표된 기록을 보면, 그는 정기적으로 직접 사람들을 만났고, 하루하루 악화되던 정세를 직접 추적했다.

Razvedka i Kreml’. Zapiski nezhelatel’nogo svidetelia. 모쓰끄바, 1996, pp. 159-60.

 

 

35. 무능한 지휘관 쓰딸린

 

흐루쇼프:

쓰딸린은 전선에서 전개되는 실제 정세를 이해하는 것과 지극히 거리가 멀었다. 이것은 당연한데, 왜냐하면 애국전쟁 전 시기 동안, 어떠한 전선도 방문한 적이 없고, 전선의 정세가 안정된 시기에 모자이쓰크(Mozhaisk) 고속도로에 잠깐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해방된 도시도 방문한 적이 없다. 온갖 종류의 환상으로 가득 찬 많은 문학작품들과 수많은 그림들이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역자] 사태를 칭송하기 위해 바쳐졌다. 동시에, 쓰딸린은 작전을 간섭하고 있었고, 주어진 전선의 실제 정세를 고려하지 않아 도움이 되지 않고, 거대한 인적 손실을 초래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주꼬프 원수:

전쟁을 전반적으로 지휘하면서, 쓰딸린은 천부적 지능, 정치적 지도 경험, 풍부한 직관력, 폭넓은 지식을 발휘했다. 그는, 전략적인 주요 고리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았고, 그것을 움켜쥐면서, 적을 공격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이런저런 공격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는 훌륭한 최고 사령관이었다. …

그 이외에도, 작전이 적절하게 수행되도록 보장하고, 전략적 예비를 창출하고, 군사 장비의 생산을 조직하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모든 것을 창출하는 데 있어서, 최고 사령관은 최고의 조직가였다. 만일 우리가 그를 이렇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당할 것이다.

― 주꼬프, Memoirs and Reflections, 제11장: http://militera.lib.ru/memo/russian/zhukov1/11.html

 

바씰레프쓰끼 원수:

전쟁 직후에, 나 역시 흐루쇼프와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쓰딸린이 작전과 전략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최고 사령관으로서 군대를 지휘할 자질이 없었다는 그의 말을 지지하는 것을, 내가 거부하자, 관계가 날카롭게 변화했다. 오늘날 나는, 어떻게 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당의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서, 전선의 군사 쏘비에트 위원으로서 흐루쇼프는, 최고사령부(Stavka)와 쓰딸린의 권위가 군사 활동을 지도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전선과 군대의 사령관들이 최고사령부와 쓰딸린에게 커다란 존경을 표하고, 전쟁을 지휘하는 데 있어서 최고사령부와 쓰딸린의 특별한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그는 역시 모를 수가 없었다.

― 바씰레프쓰끼 원수, Delo vsei zhizni(≪나의 일생의 사업≫), 제3판, 모쓰끄바, Politizdat 1978, 제11장: http://victory.mil.ru/lib/books/memo/vasilevsky/16.html

 

해군대장 꾸즈네쵸프:

전쟁 동안, 군사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 최고 사령관을 가장 자주 만났던 사람은 주꼬프 원수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주꼬프가 그를 가장 잘 평가할 수 있었다. 주꼬프는 그를 훌륭한 최고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내가 아는 한, 쓰딸린을 보고 만났던, 모든 군사 지휘관들은 같은 의견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 꾸즈네쵸프의 회고록에서 인용되었다. Voenno-Istoricheskii Zhurnal, 4(1993), p. 51.: http://victory.mil.ru/lib/books/memo/kuznetsov_ng3/01.html

 

골로바노프(Golovanov) 원수:

전쟁 과정 중에 보여 주었던 쓰딸린의 특별한 중량감은, 붉은 군대의 지휘관들 중에서 그리고 모든 군인들과 관료들 중에서 매우 컸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나는 위대한 사람과 일을 하는 행운이 있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며, 그에게 있어 우리 국가와 인민의 이익 이외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평생을 그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았고, 우리 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진보하고 강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그리고 나 역시 1937년을 겪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둔다!

펠릭스 츄예프, Nespisochnyi marshal(탁월한 원수): http://www.pseudology.org/Chuev/Golovanov_01.html

 

쓰딸린이 장군들을 제쳐 두고 모든 결정들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과 관련하여, 흐루쇼프는 [비밀연설 장소에: 역자] 출석해 있었던 바그라(Bagramian) 원수를 거론하였다. 흐루쇼프는 자신이 한 말을 바그라 원수가 확인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그라 원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쓰딸린의 거대한 힘과 정말 강철 같은 의지를 깨닫고, 나는 그의 지도 방식에 감탄했다. 그는 간결하게 명령할 줄 알았다: 그 부대를 전장으로 보내라 ― 일시 중단(period)1). 그러나 쓰딸린은, 이 전술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대단히 날카로운 감각과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하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나는 전선 사령관으로서 최고 사령관과 대화하는 기회를 꽤 자주 가졌다. 나는, 그가 부하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만일 책임자가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고, 입장을 견결하게 고수하고, 유력한 논거를 제출하면, 쓰딸린은 거의 항상 양보했다.

― I. Kh. 바그라. Tak nachinalas’ voina. Kiev: Politizdat Ukrainy, 1977: http://militera.lib.ru/memo/russian/bagramyan1/index.html

위 인용문의 정확한 위치: Part 4, Krushenie mifa. chapter 2. Otkhod otkhodu rozn, p. 404. (http://militera.lib.ru/memo/russian/bagramyan1/04.html)

 

 

36. 1942년 하르꼬프(Khar’kov)

 

흐루쇼프: 

이 문제와 관련하여, 쓰딸린이 전선에서의 작전을 어떻게 지휘했는가를 보여 주는 특징적인 하나의 사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대회장에 바그라 원수가 출석해 있다. 그는 일전에 서부전선 사령부의 작전참모였고, 내가 말하려는 것을 확증해 줄 수 있다. 하르꼬프 지역에서 예외적으로 심각한 정세가 우리 군대에 전개되었을 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예상했었던 최악의 것이었다. 독일군은 우리 군대의 집결지들을 포위했고, 그 결과 우리는 수십만의 군대를 잃었다. 이것이 쓰딸린의 군사적 천재이다: 군사적 천재가 우리에게 치르게 했었던 것은 이런 것이다.

 

쎄르게이 꼰스딴띠노프:

흐루쇼프의 쓰딸린 격하에 흥분하고 대경실색한 사람들은 많은 보통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제20차 당 대회 당시에 고위급 군사 지휘관들이 강당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쓰딸린의 모든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쓰딸린이 지구본을 가지고 군사작전을 구상했다는 흐루쇼프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어떠한 마음이었겠는가?

흐루쇼프는, 1942년 하르꼬프에서 붉은 군대의 대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오직 쓰딸린에게 지우면서,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바씰레프쓰끼, 주꼬프, 쉬쩨멘꼬(Shtemenko)는 자신들의 회고록에서, 이러한 대재난의 주요한 책임을 남서부 지휘관인 흐루쇼프, 쎄묜 찌모쉔꼬, 그리고 그 전선의 군사위원회 위원 이반 바그라에게 얼마나 지워야 하는지에 관해, 사실들을 언급한다. 이것은 최근에 문서들이 출판되면서 완전히 확인되었다. 쓰딸린과 함께 전쟁을 겪었던 고위급 군사 지도자들의 대다수는, 흐루쇼프의 쓰딸린 격하에 의심할 바 없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흐루쇼프는 역사적 사실들을 조잡하게 위조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군사 지도자들 중 몇몇은 인간적으로, 쓰딸린에게 가장 따듯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공군대장 골로바노프는 작가 펠릭스 츄예프에게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했다. 한번은 흐루쇼프가 로꼬쏘프쓰끼(Rokossovsky) 원수에게 제20차 당 대회의 정신에 의거하여, 쓰딸린에 관해 기사를 하나 써 달라고 요청했다. 흐루쇼프는 답변을 들었다: 니끼따 쎄르게예비치2), 나에게 쓰딸린 동지는 성인이다. 다른 자리에서, 로꼬쏘프쓰끼는 골로바노프와 함께, 이런저런 연회장에서 흐루쇼프와 건배하는 것을 거부했다.

― 쎄르게이 꼰스딴띠노프. Shokovaia terapia Nikity Khrushchev-a. Nezavisimaia Gazeta February 14, 2001. http://www.ng.ru/style/2001-02-14/16_therapy.html

 

쌈쏘노프(Samsonov)에 따르면, 주꼬프는 흐루쇼프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쏘련 원수 주꼬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쓰딸린은, 공세가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는 남서부 전선 군사 쏘비에트의 보고에 의거하여, 총참모부의 계획을 거부했다.

남부와 남서부 전선의 군사 쏘비에트가 총참모부(Stavka)에 보냈다는 경보신호에 관해 존재하는 이야기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최고 사령관과의 대화들에 직접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 쌈쏘노프, Stalingradskaia Bitva. 4 izd. isp. i dop.(≪쓰딸린그라드 전투≫, 제4 교정 증보판). 모쓰끄바, 1983. 제2장, 주석 50: http://militera.lib.ru/h/russian/samsonov1/02.html

회고록에서, 주꼬프는 쓰딸린을 부분적으로 비난한다: http://militera.lib.ru/memo/russian/zhukov1/15.html(그러나 주꼬프는 쓰딸린에게 매우 화가 나 있었다 — 쓰딸린은, 주꼬프가 독일 전리품들을 훔쳤다는 이유로 강등시켰다. Voennie Arkhivy Rossii, 1993, p. 175 ff. 주꼬프의 고백, 241-44.) 흐루쇼프는 이것을 알았고, 그 강등조치를 완전히 취소했다. 의심할 바 없이, 주꼬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랬다.

 

≪위대한 애국전쟁에 대한 약사≫는 이 부분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쓰딸린이나 국가방위위원회가 아니라 전선 사령관을 비난한다:

하르꼬프 작전에서 실패의 주요 이유는 남서부 방향 사령관이 정세를 잘못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서부 전선의 부대가 복잡한 상태에 빠졌을 때, 그들은 공세를 적시에 중지하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을 계속하는 것을 총참모부에게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5월 19일 내려진 공격중지 명령은 너무 늦었다. 남서부 전선 사령관은 타격부대3)에 대비해 측면을 방어할 필수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적을 연구하지 못했고, 그리고 부분적으로 전투과정 중에 적의 작전행동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전선 참모는 적의 힘을 30% 정도 과소평가했다.

Velikaia Otechestvennaia Voina. Kratkaia istoriia(≪위대한 애국전쟁에 대한 약사. 축약판≫), 모쓰끄바: Voenizdat, 1970, 164-5.

이것은, 쓰딸린의 1942년 6월 26일 편지와 일치한다. 이 편지는, 뽀르뚜갈쓰끼(Portugal’skii) 등이 지은 찌모쉔꼬의 전기를 포함하여, 많은 자료들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곳에서 바그라뿐만 아니라 찌모쉔꼬와 흐루쇼프 역시 비난을 받는다!

첫 절차는 바그라이었다. 그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총참모부에 성실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서, 총참모부에 의해 자신의 자리에서 제거되었다. 쓰딸린은 언급했다: 게다가, 바그라 동지는 남서부 전선에서 전개되었던 대재난에서 교훈을 얻는 데 무능했다. 3주 동안, 그의 부주의 때문에, 그때까지 성공적이었던 하르꼬프 작전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적들에게 18-20사단을 잃게 만들었다. 바그라을 제28군의 참모장으로 임명하여, 명예를 실제로 회복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최고 사령관은 분명하게 강조했다: 이것이 단지 바그라 동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동시에 이 문제는 군사 쏘비에트 위원들 전체의 오류이고, 누구보다도 찌모쉔꼬 동지와 흐루쇼프의 오류이다. 이러한 대재난의 ―18-20사단을 잃었고, 그로 인해 전선이 고통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고통을 겪을 것이다― 전모를 우리가 국가에 발표했었다면, 그것은 당신들에게 매우 가혹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당신들은 자신들이 범했던 오류들을 생각해야만 하고, 앞으로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 뽀르뚜갈쓰끼 등, Marshal S. K. Timoshenko, M. 1994, 제5장: http://militera.lib.ru/bio/domank/05.html

베샤노프(Beshanov)는 쓰딸린의 같은 편지를 인용한다: 1942 god-uchebnyi(≪교훈의 해 1942≫), Minsk: Kharvest, 2003. 제14장. 바그라은 어떻게 혼자서 두 전선을 파멸시켰나: http://militera.lib.ru/research/beshanov_vv/14.html

 

볼꼬고노프:

흐루쇼프는 제20차 당 대회의 자신의 보고서 한 부분 전체에서 하르꼬프 사건을 다루었다. 당시 그는 남서부 전선의 군사위원회 위원이었다. 그에 따르면, 그는 전선에서, 별장에 있는 쓰딸린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말렌꼬프가 전화를 받았다. 흐루쇼프는 쓰딸린과 직접 전화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최고 사령관은 전화에서 불과 몇 발짝 떨어져 있었으면서[이것은 흐루쇼프의 비밀연설에서 인용됨: 그로버 퍼], 전화를 받지 않았고, 말렌꼬프를 통해, 흐루쇼프가 말렌꼬프와 통화하도록 지시했다. 말렌꼬프를 통해, 공격을 중단하는 것에 대한 전선의 요구를 전달한 후 ― 그가 제20차 당 대회 대의원들에게 말한 것처럼, 쓰딸린은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두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흐루쇼프는, 하르꼬프 대재난의 책임은 바로 쓰딸린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선언했다.

주꼬프는, 남부와 남서부 전선의 군사위원회 사령관들 역시 재난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다른 의견을 제출했다. 자신의 책 ≪회고와 회상(Memoris and Reflection)≫에서, 주꼬프는, 위험이 전선에서 발생하기 전에 총참모부에서 감지되었다고 적었다. 5월 18일 참모부는, 하르꼬프에서 우리의 공격을 중지하라고, 다시 발표했다. … 5월 18일 저녁 무렵, 전선의 군사위원회 위원인 흐루쇼프와 이 주제에 대해 회의가 있었다. 흐루쇼프는 남서부 전선의 사령관과 동일한 의견을 제출했다: 끄라마또르쓰크의 독일 부대가 초래하는 위험이 심각하게 과장되고 있다. 그래서 그 작전을 중단시킬 아무런 근거가 없다.

공격을 지속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남서부 전선 군사위원회의 보고에 의거하여, 최고 사령관은 총참모부의 의견을 거부했다. 남부와 남서부 전선의 군사 쏘비에트가 총참모부에 보냈다는 경보신호에 관해 존재하는 이야기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최고 사령관과의 대화들에 직접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주꼬프 원수가 진실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흐루쇼프는, 많은 세월이 지나간 후에, 보고서에서 자기 개인의 기억들을 전하면서, 대재난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분명해졌었던 시기에 자신이 겪었던 재난에 대해 뒤늦은 반응을 보였다. 주꼬프 원수는, 최고 사령관의 결정은 찌모쉔꼬와 흐루쇼프의 보고서들에 기초했었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것이 단지 흐루쇼프의 건망증 때문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변명하려는 것이라면 ― 그것은 다른 문제이다.

— 볼꼬고노프, ≪쓰딸린≫, 2, 제8장: http://militera.lib.ru/bio/volkogonov_dv/08.html  [노/사/과/연]

 

 


1) [역자 주] 회고록 인터뷰 등에서 발언을 잠시 중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2) [역자 주] 흐루쇼프의 이름.

 

3) [역자 주] 원문은 “Shock groups”로 되어 있으나, “Shock troops”의 오기로 보고 번역한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Jan 19th, 2017 | By | Category: 2017년 01월호 제129호, 번역 | 조회수: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