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21)

 

문영찬 | 연구위원장

 

 

[목차]

 

머리말

제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쓰딸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6장 철학과 종교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4) 라캉

라캉은 20세기 중, 후반의 프랑스 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이다.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의학계에서 하나의 과학으로 승인되지 못하고 20세기 중반에 쇠퇴할 때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정신분석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과학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에게 존재하는 무의식을 실제적인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하여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전화시켰기 때문이다.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된 무의식, 심리학의 무의식과 별개의 개념으로서 정신분석학적인 무의식의 개념은 실제로는 성본능이라는 인간의 욕구, 욕망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성본능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화시키는 것이었다. 라캉 또한 프로이트의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 다만 그가 프로이트와 차이가 나는 것은 언어학적 개념을 무의식 개념과 결합하여 그것을 하나의 과학으로 포장하려는 데 있었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이 과학인가 아닌가, 정신분석학을 하는 자신들이 사기꾼인가 아닌가를 자문하는데, 정신분석학과 과학의 관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분석이 무의식의 과학으로 성립하려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1) 여기서 라캉은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의 과학을 지향한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고 또 그것이 과학이 되려면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승인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과학은 그것이 고유한 대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무의식의 과학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은 일반적인 심리학적인 무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된 형이상학적인, 신비화된 무의식이라는 점이다.

라캉은 다음과 같이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이 심리학적인 무의식과 구별됨을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의식의 특징적 자질들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합법적으로 무의식이라 지칭되는 많은 심리적 효과들은 프로이트적 의미의 무의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2) 라캉의 이러한 언급은 라캉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의식 개념을 심리학적 무의식 개념과 별개로 제기한다. 즉,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개념은 과학적인 심리학의 무의식 개념과 단절된, 특히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된 무의식 개념으로서 형이상학적인 무의식이다. 인간의 삶과 의식에서 무의식적 현상은 많이 존재하고 관찰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일상적 표현들은 인간이 스스로 무의식의 현상을 승인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와 라캉의 무의식은 이러한 관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개념은 심리적 요소로서 무의식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의 무의식은 리비도라 불리는 신비화된 성본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며 그러한 무의식(리비도)은 역으로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개념은 과학적 심리학과 단절된 것이며 성본능(리비도)을 이데올로기로 전화시킨 것이다.

사실 과학으로서 무의식 개념은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개념과는 내용을 달리한다. 무의식은 철학에서 의식과 대립되는 개념인데 의식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그러나 과학으로서, 철학으로서 무의식에 대한 탐구는 정신분석학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다음의 인용은 과학으로서 무의식에 대한 탐구의 전형을 보여 준다. 사실 무의식적인 활동의 영역을 보다 상세히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인간이 자신을 특수한 탐구대상으로 전환시켜 자기 자신 내에서 발생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관해 특유의 반성을 시작하기 이전에, 그러한 반성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수행하는 생명활동의 양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말한다. 그러나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성이라는 조건에 종속된 인간의 모든 생명활동(칸트의 관점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자연과학의 영역 내에서 일어난다. 바꾸어 말하면 무의식적인 활동의 형식과 양식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심리학 등의 개념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분명히 서술된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인 활동은 생명, 유기적 자연 혹은 유기체의 존재양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3) 여기서 과학적 의미에서 무의식 개념은 유기체의, 생명활동의 존재양식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파악 가능한 것이 된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과 소위 리비도로 불리는 성본능으로서 무의식을 설명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고 후자는 무의식에 대한 형이상학적, 신비화된 접근이다. 리비도라 불리는 성본능은 유기체의 존재양식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성본능은 유기체의 존재양식의 주요한 측면이기는 하지만 단지 일부분일 따름이다. 성본능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의식적 현상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배고픔, 갈증, 자기방어 등과 관련된 무수한 무의식적 현상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들은 성본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리비도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생리학과 심리학 등의 과학에 의해 설명되어야 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과학적 접근을 배제한 정신분석학은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된 무의식을 설정함에 의해 비과학의 길로 빠졌다. 라캉은 이렇게 출발 자체가 비과학인 정신분석학에 대해 언어학적인 언술을 도입함으로써 그것에 과학적인 포장을 씌우려 했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에 관한 과학이 되려면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명제가 라캉의 핵심적 명제라는 점에서 언어학과 무의식의 결합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무의식에 관한 과학은 성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인간의 유기체로서의 존재양식이기 때문에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 라캉과 같이 성본능으로서의 무의식이 인간 정신의 본성이며 그것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비과학적 접근이며 허구적 접근이다. 이에 대해 언어학적 개념을 갖다 붙인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라캉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를 표방한다. 여기에는 구조 개념이 주요하게 쓰이고 있는데 라캉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1950년대, 60년대 프랑스에서 구조주의 열풍이 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구조 개념을 갖다 붙이면, 구조주의를 표방하면, 마치 과학적 개념인 듯이 승인되던 풍조에 라캉이 편승한 것이다. 그러나 라캉의 구조 개념, 구조주의의 구조 개념은 앙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구조 개념이 지배적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제 측면들이 잘라져서 사라져야만 한다. 즉, 도식적이 되어야만 한다. 라캉의 언어학적 개념 또한 그러한 도식성을 보여 준다.

라캉은 무의식이 꿈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꿈의 구조가 언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꿈의 기제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표가 담론 속에서 분석되는 방식과 꼭 같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은 기표들로 이루어진 문자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기표들은 꿈의 수수께끼 구조가 제시하는 비유들을 설명하도록 해 준다. 우리로 하여금 꿈의 판독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적 구조가 바로 꿈의 의미(또는 꿈의 해석)를 이루는 원칙이기 때문이다.4) 소쉬르 언어학에서 기의는 대상의 의미를 가리키고 기표는 대상을 가리키는 표상 혹은 개념인데 라캉은 꿈이 기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꿈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는가? 먼저 꿈의 구조를 보면 프로이트 스스로 꿈에는 개념적 사고가 등장하지 않고 단지 표상, 형상으로만 나타난다고 주장한 바 있다(≪꿈의 해석≫). 이러한 프로이트의 주장은 일반적 꿈의 현상과 일치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라캉은 이를 무시하고 꿈에 나타나는 형상 자체를 기표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라캉의 주장은 기표가 언어학에서 일반적으로 개념을 가리키는 것과는 맥락을 달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꿈이 기표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라캉의 주장은 일방적인 것으로서 언어학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꿈에, 정신분석학에 도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라캉은 언어의 구조에 대해 은유와 환유를 말한다. 은유는 내 마음은 호수다와 같은 비유이고 환유는 청와대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와 같이 대상(대통령)과 가까운 것(청와대)으로서 비유적으로 일컫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라캉은 언어의 구조의 핵심을 은유와 환유로 파악하고 나서는 꿈 또한 은유와 환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아 꿈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입증되었으며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과학성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은유와 환유가 언어의 구조의 본질이라는 것은 비약이며 이는 언어학을 도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또한 무의식(꿈)이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유추,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조라는 개념 자체가 과학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비과학성을 언어학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과학으로 포장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당시에 각광을 받은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 소위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다. 라캉은 데카르트를 비판하면서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 이성적 주체의 자리에 욕망의 주체를 올려놓는다. 라캉이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주체(Cogito)를 부정하는 근거는 인간이 유아기에 보이는 정신 상태에 대한 분석이다. 라캉은 말을 배우기 전의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반응하는 것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이 단계의 유아는 대상을 보기만 하지 자신이 보이는 대상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 단계를 거울 단계라 규정하면서 신경증 환자들의 상태가 거울 단계의 정신 상태와 같으며 이러한 상태에 대한 분석의 결과 데카르트적 확실성을 주는 주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거울 단계의 경험은 우리가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사고주체(Cogito)에 근거한 어떤 철학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 이것은 인간의 유아기의 특정 상태를 기초로 인간이 이성적 주체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신경증 환자의 경우 어린 아이와 같은 정신 상태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면적인 관찰과 상태를 기초로 인간이 이성적 사고의 주체임을 부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일반적으로 갖는 경우 그것은 이성적 사고활동을 요구하며 자신이 단지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기도 하는 대상적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과 활동 속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라캉은 심지어 인간의 지식을 편집증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존재론적 구조는 지식이란 모두 편집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6) 이것은 인간이 이성적 주체임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인데 지식에 대한 신뢰 없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인간의 진보는 믿음이 아닌 에 기초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만큼, 지식에 기초하여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라캉처럼 지식 자체를 불신하면 맹목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라캉, 프로이트의 리비도라 불리는 성본능 이론은 그에 기초한 맹목적 삶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하지만 그것은 과학의 길에서 벗어난 작은 샛길에 지나지 않는다.

라캉의 이론 전체는 언어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학을 학문의 제왕으로 여기면서, 다른 모든 학문을 규정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에서 라캉은 잘못 출발했다. 라캉은 다음과 같이 언어학이 다른 학문을 규정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이유로 언어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언어학을 중심으로 과학을 재분류하고 재배치하려는 작업은 늘 그렇듯이 지식체계에 있어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된다.7) 언어학을 중심으로 과학을 재배치한다는 것은 언어학을 학문의 제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의 증명이 곧 무의식에 관한 과학의 성립을 의미한다고 라캉은 주장한 것이다. 사실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사고, 의식, 인식은 언어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언어의 도움을 빌려 개념적 사고를 하고 풍부하고 정확한 사고를 할 수 있다. 소쉬르 언어학이 이러한 언어학의 발전에서 획을 그었다는 것은 맞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학은 자연과 사회, 인간에 관한 많은 요소 중에서 단지 언어에 관한 학문일 뿐이다. 또한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서 언어가 사고를 전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개념이 없더라도 인간은 직관을 통해 사고한다. 또한 사고, 의식은 언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지만 사고가 언어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를 넘어서서 인간의 활동 자체를 통해 표현된다. 나아가 인간의 삶 자체가 사고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정신을 육체적 존재와 분리되어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정신의 표현은 언어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신은 육체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정신의 표현은 육체적 삶 자체이고 활동 자체이다. 하나의 학문에서 획기적 진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진보적 현상이지만 그것을 절대화하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라캉이 범한 오류는 바로 이것이다.

라캉의 비과학성의 면모는 그가 원인 개념을 취급하는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원인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경우] 거기에는 어떤 구멍이 있고 그 틈새로 무언가가 흔들릴 뿐이지요. 요컨대 뭔가 잘못된[절뚝거리는] 것에만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저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위치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원인과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사이에서 항상 무언가 잘못된[절뚝거리는] 것이 존재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대략적으로나마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8) 원인 개념이 쓰일 경우 거기에는 구멍과 틈새가 있고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원인 개념과 그 영향 사이의 무언가 잘못된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인 개념은 과학을 가리키는 일반적 개념이다. 그리고 구멍과 틈새는 과학적 영역의 틈새를 가리킨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은 바로 그러한 과학적 영역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다는 것을 라캉은 말하고 있다. 이는 라캉 스스로 과학의 영역의 추구가 아니라 그 틈새, 즉, 비과학이 가능한 영역을 비집고 들어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 무의식의 이론의 비과학성을 언어학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과학으로 포장하려 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개념 자체가 과학적 심리학과 단절된, 생리학적 기초와 단절된 무의식 개념이라는 점에서 언어학적 개념이 정신분석학에 도입된다고 해서 과학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라캉의 이론이 유행했던 것은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과 연관이 있는데 라캉은 이성적 주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욕망의 주체를 올려놓으려 했다. 그러나 욕망의 주체로 표상되는 인간의 무의식은 실제로는 생명활동의 존재양식으로서 생리학과 심리학 등의 (자연)과학의 대상일 뿐이다.  [노/사/과/연]

 

 


1) 라캉, ≪자크 라캉 세미나―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새물결, p. 307.

 

2) 라캉, ≪욕망이론≫, 문예출판사, p. 76.

 

3) E. V. 일렌코프, ≪변증법적 논리학의 역사와 이론≫, 연구사, pp. 118-119.

 

4) 라캉, ≪욕망이론≫, p. 71.

 

5) 같은 책, p. 38.

 

6) 같은 책, p. 40.

 

7) 같은 책, p. 54.

 

8) 라캉, ≪자크 라캉 세미나―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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