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왜 여기 왔는지 기억은 나십니까?

이영훈 | 회원, 건설 노동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국에 매일 그리고 주말마다 사람들은 중앙 시청가로 쏟아져 나온다. 정말 많다. 너도나도 국가 최고 지도자라는 자의 퇴진을 외친다. 그곳에 나도 있다. 그러나 뭔가 빠진 것 같다. 언론과 대중들은 너도나도 대통령 퇴진 열망이 뜨겁다고 민중의 분노가 대단하다며 집회를 축제의 장이요 평화의 장이요 연신 떠들어 대고 촛불혁명이 어쩌고 하며 “혁명”이라는 말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분명 사람들은 많지만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일단 그 규모가 혁명적 수준이니 “혁명”이라고 떠들어 댄다. 민중을 농락하고 앞으로도 괴롭힐 자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직접적으로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나왔지만 연단에 올라온 광대들과 우리를 지도하겠다며 홀리는 “자칭 질서지도자”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고 의미 없는 구호가 되어 계속 쏟아질 뿐. 마치 축구가 하고 싶다며 분명 집을 나선 사람들이 축구 경기장 방향 쪽으로 가는데 진짜 축구가 아닌 근처 PC방에 들어가 컴퓨터에 앉아서 “축구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랄까…

다들 씩씩거리면서 나왔는데 방법은 물론이고 무엇을 하고자 했나 정말 이러려고 나왔나 목적은 잊어버린 사람들 같다.

권력자의 퇴진을 외치는 집회에서 정작 투쟁가가 사라지고 대신 온갖 대중 매체 음악이 흐르는 것을 보니 그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 보고 싶어진다. (2016년 11월 19일 토요일, 광화문 노동당 차량 앞에 모여 있던 대중들은 차량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고 하자 그거 말고 “붉은 노을 불러요!”라고 했다. 그러고 “진짜로” 흘러나오는 <빅뱅> 의 붉은 노을…)

그래서 그동안 접했던 책,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의 온갖 매체에서 접했던 글귀나 대사를 써먹어 보고자 한다.

신과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들의 경전에 마음에 드는 구절은 많은 것처럼.

 

* * *

 

“스펙 옵스 더 라인”이라는 게임이 있다. 간략히 설명하면 미군 델타포스 소속 주인공 일행이 모래폭풍으로 지배계급은 모두 도망치고 일반 대중들만 남겨져 무정부 상태로 쑥대밭이 된 두바이로 가서 정찰하라고 보냈더니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옳은” 일은 한답시고 임무에서 벗어난 일과 판단을 하다 자신들의 최초의 목적도 이유도 잊어버린 채 학살자가 되어버리는 (여기서 그들을 조종해서 민간인과 남은 군인들을 학살하는 건 플레이어 나 자신이다)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시 진행할 때마다 나오는 문구인데 조언을 해 주거나 이야기 진행이 어떻다거나 명언들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개판으로 만든 건 너 자신이다. 이제야 좀 영웅이 된 것 같나?” 하면서 하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어 준다. 이 말이 가장 알맞을 것 같아 광장에 나왔던 사람들과 내 자신에게 그 문구 중 하나로 시작하고자 한다.

 

Can you even remember why you came here?

당신이 왜 여기에 왔었는지 기억이나 하십니까?

 

사회 정의가 무너지는 것이 민주주의가 작살나는 것이 두려워서 분노를 토해내려고 우리가 이만큼 많고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아니면 말 그대로 대통령 퇴진시키려고??

정작 광장에 오고 나서 진행자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고개만 끄덕이고 목청만 부르짖다 행진이라고 듣고 방황이라고 하는 짓을 하다가 집에 갈 때가 되면 뭔지는 모르지만 이만큼 했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정말 무엇을 위해 나온 건가 기억하시는지 그저 남이 “나쁜 놈”이라니까 막상 나왔다가 주최 측이 초대한 광대들의 쇼가 더 즐거워서 다 잊어 먹은 건 아닌지…

심지어 아무리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라지만 엊그제까지 노동자 대중들과 싸우고 짓누르고 억압하고 증오하도록 배운 공권력에 버스에 붙은 딱지를 “불쌍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며 선량한 마음으로 떼 주고 간식까지 갖다 주는… 마치 자기들이 벌써부터 세상이 바뀌고 무엇인가 된 양 매우 선구적이고 강력한 평화의 사도마냥 된 것처럼 하고 다니신다. 저들은 민중이 언제든 약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기를 집어 들고 우리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때려죽일 준비가 돼 있는 놈들이건만… 그리고 집에 가서 항상 사람들을 매도하고 교란시키는 언론의 쇼와 칭찬에 선진국 국민다웠어! 참 잘했어!라고 뿌듯해 하면서 그 뒷줄에 있던 노동자들의 함성은 온갖 연사들과 연예인들의 쇼에 들리지도 않고.

리우스의 체 게바라 만화책에 “사람들은 게바라의 잔소리보다 극장의 쇼에 더 관심이 있었지요”가 이만큼 잘 어울릴까?!

물론 며칠 문득 생각해 보니 이들에게 화를 내던 나조차 그런 것 같다. 한참 부족하지만 이들에게 잘 이야기하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나와 함께하던 사람들과 의논을 하고 어떻게 저들 시민사회단체들과 국회의원 놈들에게 놀아나지 않고 이 민중들의 힘과 분노를 앞세워 나갈 수 있을까 대신 허탈감과 “국가의 지배 폭력기구”에 온정을 베푸는 그들에게 증오까지 느끼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정작 내 자신이 좋은 것은 해 주지 못할 망정 총체적 아름다운 개판, 난국을 무기력하게 보기만 했으니. (막상 혼자서는 어떻게 말할지 생각도 안 나는 주제에 쩝 개한테 미안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허탈하게 몇 주가 지나가고 어쩌면 더 기다려야 한다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며 사람들과 시국에 대해 각자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한 지금 상황의 대한 나의 생각을 얏지라는 게임 평론가의 말을 빌려 게임에 빗대어 표현해 보자면

 

슈팅 게임이란 게 그냥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들을 쏴 죽이는 게임’이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죠. 어쩌면 이것도 철이 드는 과정일지도 몰라요. 우리들의 유치한 환상들이 뜯겨져 나가고, 피할 수 없는, 비정한, 부조리한 증오와 비극, 죽음으로 가득한 세계와 마주하는 과정 말입니다. (제로 펑츄에이션 “스펙 옵스 더 라인” 평론 중.)

 

단 우리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받은 교육에 의해 저러고 있다는 것이 차이가 있지만.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나쁜 최고 권력자와 못된 자들, 악한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힌 자들을 평화와 정의의 힘으로 그들을 벌하고 구제하고 용서하고 사람만 기존 체제에 “착한 사람” 앉혀 주면 구시대적인 야만적인 방법으로 피를 묻히지 않고도 희망차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민중들이 조만간 “유치한 환상들이 뜯겨져 나가고, 비정한 자본과 권력자들의 부조리를 앞세운 전진 증오와 비극으로 향하는 순수하거나 순진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죽음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와 마주하는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우리가 받은 교육의 힘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위선적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앞으로는 민주주의와 민중의 위대한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지배계급들의 이념을 교묘하게 섞어서 주입하고 국가 자체는 지켜 줘야 할 것이고 존재 이유는 국민들을 위한 조직이며 교육, 국방, 납세의 의무는 누가 뭐래도 무조건 성스러운 의무이며 자본주의 역사에서 있었던 경제위기라는 이름의 공황을 “민중의 과소비 탓” 운운하며 은근슬쩍 떠넘기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사회교과서에 IMF의 원인 중 하나를 “무분별하게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서 달러를 소비하고 다닌 국민들 탓도 크다!”라고 당당히 말하지 않나! 하하하! 이거야 원.. 이때가 그 노동자 민중의 편은 아닌 것 같지만 “좋은 대통령”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교육도 이러할진대… (야당 놈들은 지들이 대통령 탄핵 못 시키면 국민 여러분들이 지지와 성원이 부족해서 못 시켰어요! 그러니 선거에서 우리를 위해 투표를! 정의의 심판을 위하여!라고 징징댈 그림이 훤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닌 것 같다.)

그 와중에 말씀 잘하신다는 연예인 김제동 씨도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함을 추켜세우면서 그 와중에도 이북을 끌어들여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반공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평소에도 나는 북한에 대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종북이 아닙니다”라며 몸부림을 치는 모습 등.

지금 민중들이 집회 현장에서 하는 행동들을 2008년 인터넷 부르주아 정치 경제 유명 논객 미네르바의 말을 인용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존재 한다… 즉 A라는 사물을 보고 B라는 관점이나 C라는 관점으로 다 갈라지듯이 보는 시각이 다 틀린 것이 이런 해석적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건 원래부터 간사한 동물이라 여태까지 자기 자신만이 쌓아 온 개념적 틀이나 사고에서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강한 저항감을 가진다… 이런걸 탈이탈 패턴 양식에 따른 비수용성 혹은 거부감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걸 극복할 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지만 이런 제약적인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할 경우에는 가능성의 제약이라는 걸 받게 된다… (“내일 손자가 컴퓨터를 가지러 온다”라는 글에서.)

 

대중 스스로가 지배계급을 욕하면서 우리는 깨어있다고 부르짖지만 지배계급이 제작하고 쳐 놓은 교육, 언론의 그물 안에서 형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보는 중이건만 정작 지배계급은 허구한 날 짓밟는 “평화”와 빠져나가고 어기는 그 “법”을 민중은 저항을 하면서도 법 어기면 안 돼 폭력 안 돼 평화만 돼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질서질서질서…… 자기 스스로 엄청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그 많은 인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다음의 시작 문구로 정리해 보자면

 

We cannot escape anguish. It is what we are.

우리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일상에서도 괴로움에 헤엄치는 분들이 여기서도 이러시면 안 되건만…

이러한 강요는 집회에 참석하는 어린 초중고생들에게도 너넨 공부나 열심히 해라. 도대체 너네가 대자보 붙이고 집회 나가서 까불고 뭐하는 짓이냐?라는 선생“님”(이라 쓰고 놈이라고 읽는다)과 어른들은 걱정하는 척하면서 이들에게 “너넨 열심히 괴로워나 해라. 뭐 안 그래도 괴로울 텐데 왜 쓸데없이 더 괴로워질라 그래? 미개한 어린것들아!”라고 하시는 것 같다.

시민대중과 지배계급 이야기만 하다 보니 언론 이야기가 빠진 것 같아서 해야겠다.

대중들이 저렇게 “괴로운 평화”에 집착하는 것은 방송사와 신문 언론사 놈들이 평소에는 가소로운 주둥아리를 다물고 있다가 좋은 기사거리가 나타나서 허겁지겁 먹다가 막상 자기네들의 후원자인 자본 지배계급까지 불똥이 튈까 봐 무슨 스포츠나 행사 중계하는 양 매체에 내보내면서 너네 “평화”할 거지? “평화”로울 거지? “평화”집회 이어갈 거지? “평화”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거 알지? “평화”롭지 않으면 여론 반전되서 사람들 다 떠날지도 모른다? 응?? 욕설도 쓰레기도 없어야 되고 질서 있는 의식을 지키고 깨끗해야 돼!

압박을 넘어서 간접 협박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람들을 길들이고 세뇌시키고 있다.

심지어 11월 25일에 트랙터를 타고 서울로 상경하던 농민 분들이 30명 넘게 연행당하고 부상자까지 나왔음에도 그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이번 주말 150만 촛불집회도 부상자 연행자 없음! 평화집회 끝! 이렇게 못 박아 버린다. 정말 잔인, 잔악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저들 눈에는 트랙터를 타고 오는 농민들은 애써 외면해야 할 “눈엣가시” 질서를 파괴하는 변수를 창조하는 “난동꾼” 그 이상도 아닌가 보다.

평상시에 졸렬하기 짝이 없는 언론에 행태를 그렇게 냉소하고 비꼬시던 분들이건만 그 언론기사의 댓글에서조차 자진모리인지 무슨 음절인지 모를 장단에 맞춰 평화타령을 해 댄다.

그런 충고에 맞서 패닉의 “단도직입” 가사를 흥얼거려 본다.

 

그런 충곤 집어쳐 거짓 치장은 싫어 내가 말하는 것 그게 내 마음일 뿐

너는 나를 욕하지 아직 어린애라고 그게 어른이면 나는 아이가 될래 그편이 나아.

 

평소에도 그렇게 자본주의 지배에 “질서와 순응”하라고 민중을 교육시켜야겠다고 깔보시던 분들이 하! 지금 이 순간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더러운 권력과의 유착관계는 감추려고 눈물겹게 애쓰시고 가진 자들의 분노와 요구는 귀가 찢어져라 “들어라! 나약하고 어리석은 민중들아! 니들 먹여 살리는 건 니네 근로인민대중이 아니라 우리 지배계급들이 다 한다!” 홍보하는 분들이 대중들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영문 모를 평화로만 포장하고 노래하라니. 이따위 분노가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화가 나서 부들부들하는 사람들에게 웃으면 복이 오니 웃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인가? 다음 가사를 마저 “읽지 말고 불러보자.”

 

이 답답한 세상에 웃음만을 짓기엔 지쳤어 화가 나 나는 바보가 아냐

내 마음 그대로 곧바른 칼날처럼 찌를래 싫음 마 나도 어쩔 수 없어.

 

당신들이 싫다 그래도 자꾸 그러시면 어쩔 수 없다. 당신들이 민중의 분노를 오도하고 열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뿐히 즈려밟히시기 싫다면 우리는 칼날이 되어 당신들의 창과 방패를 박살내고 몸뚱이를 손수 찔러서 고꾸라뜨리고 거칠게 즈려밟아 드리시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옆에서 아닌 척 눈치나 보던 더러운 부역언론들도.

지배계급의 고충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검찰 경찰의 처지도 옹호해 달라며 우리의 분노를 망각시키고 광장에 나온 이유를 지워 버리는 그들의 행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배계급의 고통을 이해해 준들 그들의 생각은 이럴 것이기에.

 

You cannot understand, nor do you want to.

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겠죠.

 

지배계급만 그런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무조건 뭔지 모를 평화부터 외치고 차벽에 붙은 스티커를 떼 주는 사람들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평상시에 투쟁하던 사람들을 (세월호 유가족, 투쟁하던 수많은 노동자와 장애인들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똑바로 보지 못하고 언론이 주는 대로 받아듣고 나름 합리적이고 인격적인 판단을 한답시고 가혹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외면하다 눈앞에 자기들 눈에 불쌍해 보이는 의무경찰들을 보고 왜 저렇게 괴롭히지?하며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도 그래서 그런 것이리라. 그들의 마음은 민중의 편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러한 거칠고 힘겨운 투쟁을 해서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자신들만의 틀에서 갇혀서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분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똑같이 당해보고 연행도 되고 온갖 억울하고 서럽고 심하면 비참한 경험을 시켜보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되겠지만 평소에도 여론에 휩쓸려 우르르 몰려서 착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쯤되면 나오려고 하진 않을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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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찰 차벽에 붙인 스티커를 떼고 있는 시민들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The First History Man)”, 영화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중.)

 

그럼에도 저 광장의 사람들이 당장 원망스럽더라도 투쟁성을 잃어버리고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고전하는 노동자 동지들이 씁쓸하더라도 당장 답이 없어 보이더라도 언제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정세가 있고 이끌어준다면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준비하고 있어야 되고 결코 새로운 삶의 대한 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거짓 희망을 노래하며 마음 놓고 웃는 꼬라지야말로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증거니까. 지옥으로 가는 길을 선의로 포장하는 놈들이 나타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구원자 행세를 하는 꼴을 보긴 싫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여야 할 것 없이 현재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행태는 사극 “불멸의 이순신” 빗대어 표현해 보려 하는데 극중 당시 지배계급의 군인인 권율이 이순신에게 하는 대사에서 무리 없이 비유된다 생각된다.

 

아무런 계산 없이 모든 것을 내던지기에는 보통의 사람들은 두려운 것이 너무나 많아요.

 

사실 위의 대사는 지배계급뿐 아니라 내 자신과 민중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지만 거기까지 빗대서 말하기엔 너무 길어지기에 넘어간다.

무엇이 불안하기에 저들은 탄핵에 시큰둥하고 국회 질서를 운운하며 그렇게 줄 세우기를 하려 하는 것인가? 온갖 매체에서 쏟아지는 소식을 보면 광장에 나온 민중들이 자기 말 안 듣고 독자적으로 힘을 키우려 하는 걸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가득하다. 자신들의 무기인 공권력이 비하의 대상이 되고 권위가 무너져 내리도록 만든 것은 저 잘난 지배계급 스스로 그러한 것이 아닌가? 저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고 눈치나 살살 살피는 이유는 다음 대사에 빗대서 보자.

 

역도의 굴레를 감내하고 백의종군의 불명예를 감내하기에는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고 세상에 닳고 닳아 일찌감치 영악해졌어.

 

예나 지금이나 저러고 싶은 위인들은 없지만 자본주의 세상에도 써먹기 손색없는 대사들이라고 생각된다. 그 좋은 머리로 세상에 닳고 닳아 영악해지신 분들이 계산기 두드리기 바쁘지 불명예(?)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앞으로는 우매한 대중들의 존경심을 한번에 독차지하고 자기들끼리 뒷거래할 거 다 계산해서 이것저것 해 주기로 하지 않았겠는가? 수년 전부터 평소에 차벽으로 행진로 막고 공권력으로 통제하고 살수차로 최루액을 민중에게 퍼붓고 벌금과 공권력에는 해당 안 되는 정의로운 법을 집행하는 짓거리에 대해 한마디도 말이 없던 야당과 자기 행정구역에서 벌어지는 정권의 폭압에 그럴싸한 말만 하고 입 다물고 계시던 서울시장님께서 정세가 바뀌자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고 백남기 농민 열사 추모식에서 목 놓아 하시던 말씀이 무엇이던가? 아! 백남기 선생님! 백남기 선생님! 백남기 선생님!

대중들이 집회를 해도 모른 척 철저히 피해 다니던 분들이 어디 그 더러운 목청으로 추도사를 복창하고 백남기 열사님을 애타게 찾는 척을 한다는 말인가?

그 뒤에 그들의 태도는 어떠하였는가? 이제는 대놓고 대중들을 기만하는 척도 하지 않고 늘상 하던 대로 “우리 입맛대로 합의하고 민중이 주도하는 정국을 다시 우리 손아귀에 돌려놓겠다”라고 당당히 부르짖지 않는가?

탄핵 말고 개헌을 하겠다고 대중을 우롱하다가 아차 싶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대중의 지지를 받지만 우아하게 부르주아의 이름으로 탄핵하겠다!라고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투덜대는 그들의 태도가.

이런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위에서부터 쭉 보면서 느끼는 것이 없는가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발 꿈 깨고 정신 차리시라! 순수한 노동자 민중의 손으로 일구어 내지 못한 정치권력은 언제나 우리를 옥죄고 괴롭고 회의에 가득 차게 만들 뿐 백남기 열사께서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다시 말해 줘야 하는가? 가엾다고 감싸주고 보호해 주는 그들 공권력에게 살해당하신 것을 당신은 잊은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호시탐탐 다시 민중이 약해지기만을 노리는 의무의 부름을 받은 살벌한 무장 양떼를 앞에 세운 자들에게 아직도 바보같이 환한 가족 미소를 짓고 웃고만 있고 싶은 가 말이다. 그래 난 너무 착해서 차마 사람에게 해코지는 못 하겠다 치자. 누구도 그게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라는 건 알아두시라. 성난 표정으로 노려봐도 모자랄 판에 국가 폭력기구의 살인도구를 광내 주는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노동력 착취로 세금으로 삥 뜯어 돈도 많고 국가를 위한다는 이유로, 징집당하고 끌려와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 많다. 내가 경찰차에 붙인 딱지가 더러우면 알아서 치운다. 법 잘 지키라는 명분으로 돈 뜯어내려 민중들의 차에 벌금딱지를 덕지덕지 붙이는 놈들에게 우리가 그들의 딱지를 치워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상 광장에 나오는 순진한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대사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여전히 태연한 척 그리 앉아있지 말고 사람답게 분기라도 한번 터트려 보라 이 말이외다!

 

– 글을 집필하던 중 2016년 11월 25일 90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 동지께 애도를 표한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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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집회’라는 이름의 저 집단적 무기력과 광대짓에 ‘혁명’이라는 말을 갖다붙이면서 그야말로 혁명을 희화화한 소위 ‘진보’지식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놈들의 세치혀에 다시는 속지 않도록 그 이름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무엇보다 현 시기까지 투쟁을 벌이면서 도처의 극복감들을 너무 마니 확인해 왔습니다. 바로 소위 ‘평화 집회’라는 것이 이러하고 이걸 또 ‘변혁’, ‘혁명’의 명칭으로 포장하는 행태들이 이러합니다. 예전에 ‘평화 변혁’, ‘평화 혁명’의 구주 수정주의/유로 코뮤니즘 정말 이의 집산물이었지요… 바로 자신들의 출세를 ‘변혁’, ‘혁명’이라고 포장한 행태 말입니다. 현 시기에 보는 것은 유*극 따위를 벌이지 않은 것을 ‘평화’라고 위장하니 말이지요… 진실한 주역의 탄생을 소원한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급박한… 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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