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글 – 맑스-레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복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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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복원을 위하여!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창간호가 발행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호가 발생되게 되었다. 그간에 현 정세를 규정하고 있는 대공황은 심화되었다. GM, 크라이슬러가 파산하였고 각국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각국에서 계급투쟁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투쟁에 투쟁의 깃발이 없다는 것이다. 쏘련이 무너진 후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던 사회주의가 아직 복권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사회주의를 평가하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전망하는 것은 투쟁의 진전을 위하여 긴요한 일이다.

이번 호에는 위와 같은 취지에서 소련에 대한 평가,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전망의 모색을 가로막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자율주의에 대한 비판, 공황기 노동자투쟁의 교훈, 통일전선 전술에 대한 평가, 맑스-레닌주의 문학 예술론에 대한 모색 등 다양한 주제가 실려 있으며 끝으로 그리스 공산당 18차 대회의 ‘사회주의에 대한 테제’와 자본론 해석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이윤율에 두 가지 접근에 대한 글이 번역되어 있다.

먼저, 김해인의 “‘쏘련 국가자본주의론 비판’을 위한 시론”은 토니 클리프와 그 추종자들이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완성된 글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시론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클리프의 쏘련 국가자본주의론이 가지는 맹점들과 논리적 균열을 예리하게 추적하고 있다. 생산수단이 사회화된 쏘련이 자본주의라고 억지 주장을 하는 클리프는 쏘련의 지배계급이 관료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러한 주장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고 또 쏘련에서 자본주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은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으로 인해 이러한 외부적 압력으로 쏘련 내에서도 자본주의 법칙이 작동한다는 클리프의 주장의 허점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토니 클리프의 주장들은 하나의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글이 아니라 쏘련이 사회주의가 아니고 국가자본주의라는 선입견을 ‘증명’하기 위한 억지논리의 체계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

문영찬의 “쏘련 사회주의의 흥망과 스탈린”은 쏘련 붕괴의 원인으로 스탈린 사후 수정주의의 발생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경제개혁 즉, 코시긴 개혁을 들고 있다. 코시긴 개혁이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충돌하는 자본주의적 원리의 도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쏘련 붕괴의 교훈으로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확립된 이후로 사회주의 사회의 주요모순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라는 것, 사회주의에 잔존하는 상품-화폐관계는 사회의 지배적 법칙이 아니며 활용의 대상이라는 것, 끝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이 쏘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채만수의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에서는 사회주의 변혁이 필연성으로서 강제되고 있다는 것, 과잉생산으로 인한 현재의 대공황이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요구한다는 것, 과학기술 혁명으로 인한 무인화 등 생산력의 발전이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한 다음,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으로서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물은 상품으로서 성격을 띠지 않는다는 것, 21세기 사회주의는 보다 높은 생산력에 기초한다는 것, 세계시장의 연결망과 생산력에 조응하지 못하는 생산관계로 인해 후진국의 혁명이 아니라 선진국의 혁명이 전망된다는 것, 그리고 끝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품성 등 이데올로기가 토대에 의해 개조될 것 등을 논증하고 있다.

김광석의 “네그리와 자율주의 비판”은 자율주의에 대한 전면비판을 담고 있다. 네그리가 말하는 제국이 실은 팍스아메리카에 대한 찬양이라는 것, 제국에서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의해 반박된다는 것, 국민국가는 약화되기는커녕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 비물질 노동이라는 것이 실은 노동가치론을 부정하고 노동자계급의 변혁에서 헤게모니를 부정하는 논거가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향후 변혁을 위해서는 네트워크라는 차원을 넘어 강고한 민주적 중앙집권적인 조직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살아 숨 쉬는 필체로서 서술하고 있다. 그간 자율주의에 대한 비판은 간간히 있어 왔으나 이와 같이 전면적인 비판은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문영찬의 “통일전선 전술의 현재적 의의”는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온갖 좌우편향을 극복해야 함을 주장한다. 통일전선을 술책 혹은 상층의 협정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며 통일전선은 계급협조에 대립되는 계급의 통일이라는 대의를 담고 있는 전술원칙이라는 것, 통일전선은 계급동맹과 달리 정세에 의해 규정받는 전술이라는 것, 반파쇼 인민전선은 노동자통일전선을 파시즘에 반대하는 전인민의 단결로 확장한 것이며 따라서 반파쇼 인민전선이 계급협조라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은 통일전선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는 것, 중국의 경우 반제민족해방전선이라는 통일전선의 결성과 와해를 반복하며 끝내 통일전선을 성취하여 민족해방혁명을 달성했다는 것, 선진국의 통일전선은 반독점통일전선이 아니라 반자본주의 통일전선이 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서술하고 있다.
손미아의 “세계경제공황과 노동자계급 대투쟁의 역사”는 경제공황을 맞이하여 노동자계급의 투쟁들이 어떠했는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설명하고 교훈을 도출하고자 하는 글이다.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의 시기에 계급투쟁이 활성화되고 고양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투쟁의 활성화에는 공산주의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잘 설명되고 있고 또 이론적 문제제기의 하나로서 공산당의 루즈벨트에 대한 지지가 갖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반파쇼 통일전선의 결성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공산당이 쏘련과 동맹한 루즈벨트에 대해 지지를 했으나 이것이 미국 내의 계급투쟁에는 악영향을 미치고 1940년부터 반공주의에 입각한 탄압에 의해 미국 내의 공산당 세력이 소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점은 향후 연구과제로서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의 공황기 계급투쟁에 대해서도 각 역사적 시기별로 해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큰 그림을 통해서 현재의 과제를 끌어낸다면 이 글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다.

최상철의 “맑스-레닌주의 문학 예술론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고찰 ―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복원을 위한 시론이 되기를 바라며”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역사를 소묘하면서 부르주아적 예술론에 대한 비판과 20세기 맑스-레닌주의 예술론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맑스-레닌주의 미학은 단지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투쟁이다”라는 점을 기본축으로 하면서 엥겔스의 발자크론(論), 레닌의 톨스토이론(論)을 예로 들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당의 통제, 이념적 편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의 보고를 유지하고 계승하면서 사회주의 사회에 걸맞는 혹은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동자계급 대표하는 리얼리즘을 건설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글에는 필자의 예술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리얼리즘 복원을 위한 기본적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高木彰의 “ ≪자본론≫의 이론적 성격과 이윤율 개념의 두 가지 규정에 대하여”는 일반적 경향으로서 평균이윤율 저하의 법칙과 시장이윤율의 운동을 구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번역자인 김성구 교수는 지난 호에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과 관련된 글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번 번역은 그 입장을 보완하는 글로써 번역을 한 것이다. 번역자는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일반적 평균 이념의 수준에서 분석하여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발견으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에서 그 이윤율은 공황 등 산업순환과 관련되는 시장이윤율의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 평균적 이윤율로서 파악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사회주의에 관한 테제”는 역사적인 문건이다. 제18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이 문건은 사회주의의 개념,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 특히 쏘련의 역사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쏘련이 붕괴하게 된 원인으로서 수정주의의 발생, 그리고 수정주의의 원인 등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시장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발전을 통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매우 원칙적 입장으로서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혼란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문건이다. 인상적인 것은 테제 후반에 있는 강령인데 여기서는 에너지 등 사회 각 분야의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어서 우리의 강령 수립에 매우 많은 참고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이 테제는 약간은 강약이 없어서 다소 밋밋한 느낌도 주는데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여 읽는다면 무엇이 보충되어야 할 것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6월 25일
≪노동사회과학≫ 편집책임자 문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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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3rd, 2013 | By | Category: 〈노동사회과학 제2호〉 사회주의 20세기와 21세기 | 조회수: 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