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위기,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극복방안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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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기 | 소장

과잉생산 공황과 조선산업의 위기

지난 ≪정세와 노동≫ 7/8월호(제125호)에는 박성호 동지의 조선산업의 위기에 대한 글이 실렸다. 글은 말한다.

지금의 조선산업의 위기는 자본의 경제적 모순에서 온 것이다. 빅3는 해양플랜트 사업에 생산스케줄 관리능력 검증도 없이 무리하게 자본을 투자했고, 중소형 조선소는 조선소가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과잉투기를 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1) (강조는 인용자. 이하 별도의 언급이 없는 강조는 모두 인용자의 것.)

조선산업의 위기는 자본의 경제적 모순, 즉 자본의 모순 자체에서 온 것이고, 빅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가 무리하게 자본을 투자하고, 중소형 조선소가 과잉투기를 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즉 조선자본이 과잉투자를 해서 과잉생산력을 낳고 결국 과잉생산을 한 것이 조선산업의 위기의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이렇게 과잉생산을 하는 것이 자본의 경제적 모순이라고 읽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 엥겔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대기계의 최고도에 도달한 개량가능성은 개별 산업자본가에게 사회에서의 생산의 무정부적 상태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기계를 끊임없이 개량할 것을, 기계의 생산력을 끊임없이 높일 것을 강제 명령으로 전화시킨다. 그런데 자신의 생산 영역을 확장할 사실상의 단순한 가능성도 개별 산업자본가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강제 명령으로 전화한다. 가스의 팽창력조차 완전히 어린애 장난에 비견될 엄청난 대공업의 팽창력은 어떠한 저항도 조롱하는 질적이고 양적인 팽창욕구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2)

최고도로 발달한 현대기계는 끊임없이 개량되면서 대공업의 생산력을 엄청나게 팽창시킨다. 무정부적 생산의 경쟁에 내몰린 개별 산업자본가는 살아남기 위해 생산력을 팽창시켜야 한다. 박성호 동지의 글은 이를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

중소형 조선소가 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에는 고유가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조선소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자 자본가들의 욕심은 하늘로 치솟았고 한국과 중국의 해안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이는 곧 선박가격 급락을 불러왔고 실제로 조선소를 건립하고 가동 시작점에서 세계 조선경기침체와 맞물려 버린 것이다.3)

물론 자본가들의 욕심은 하늘로 치솟았기 때문에, 또한 그들이 무정부적 생산의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해안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만 가지고 되는 일은 없다. 우후죽순처럼 조선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대기계의 최고도에 도달한 개량 가능성과 엄청난 대공업의 팽창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업의 팽창력은 강력한 저항을 만나고 결국 분쇄된다. 엥겔스의 글을 다시 보자.

이 저항은 대공업 생산물의 소비, 매상, 시장에 의해 형성된다. 그런데 시장의 팽창 능력은 외연적으로나 내포적으로나 무엇보다도, 훨씬 [팽창력이: 인용자] 약하게 작용하는 완전히 다른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 시장의 팽창은 생산의 팽창과 보폭을 맞출 수 없다.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며, 이 충돌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지 않는 한 해결책이 산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기적인 것으로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하나의 새로운 악순환을 산출한다.4)

그러면 시장의 팽창 능력을 미약하게 하는 데 작용하는 법칙들은 무엇인가.

대공업은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 지구상 전체를 돌아다니면서도 국내에서는 대중의 소비를 기아적인 최저한으로 제한하게 되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국내시장을 무너뜨리게 된다. … 한쪽 극에서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다른 쪽 극에서의, 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계급 측에서의 빈곤, 노동의 고통, 노예 상태, 무지, 야수화, 도덕적 타락 등의 축적이다(맑스, 자본, 671면)5) (강조는 엥겔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은 한편으로는 생산력을 극한으로까지 발전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임금을 최소한으로 줄이게 된다. 그 결과 대중의 소비를 기아적인 최저한으로 제한하게 되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국내)시장을 무너뜨리게 된다. 결국 시장의 팽창은 생산의 팽창과 보폭을 맞출 수 없다. 충돌은 불가피하게 되며, 이 충돌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지 않는 한 해결책이 산출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기적인 것, 즉 주기적 공황으로 나타난다. 즉 생산력에 비해, 좁은 시장에서의 과다경쟁은 선박가격의 급락을 불러오고, 중소조선업체의 대규모의 파산으로 생산력이 분쇄되는 것이다.

박성호 동지가 말한 지금의 조선산업의 위기란 이렇게 주기적으로 과잉생산공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자본의 경제적 모순에서 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의 대응

그러면 조선산업의 위기에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 박성호 동지는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나라고 물은 뒤 말한다.

1. 우리가 제안하는 산업위기 극복방안을 정부에게 제시하고 만약 정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내어야 한다.

한국 조선산업의 생태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중형 조선소들에 대해 1) 신규수주 및 물량지원, 2) 선박금융 지원체계 구축, 3) 선종다각화 및 연구개발 지원, 4) 고용보호 및 고용안정화 방안 지원 등을 통한 조선산업 상생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6)

그러나 조선산업의 균형적인 발전, 다른 말로 하면 조선자본의 균형적 발전은 자본과 정부가 할 일이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할 일이 아니다. 또한 조선산업 상생방안이란 주로 조선자본과 조선노동자가 함께 사는 방안을 말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모색하여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생(生)뿐이다. 조선자본의 생을 위한 역할은 자본과 정부의 몫이다. 더구나 노동자계급의 목표는 자본의 폐지이지 자본과의 상생이 아니다.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의 모순

 

현재의 조선산업의 위기는 2007년 발발한 세계 대공황의 표현이다. 즉 생산의 팽창과 보폭을 맞출 수 없는 협소한 시장 때문에 발생하는 충돌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의 팽창과 보폭을 맞출 수 없는 협소한 시장이라는 문제의 근저에 놓인 문제에 대해, 엥겔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부르주아지는 생산수단을 개인의 생산수단에서 사회적 생산수단으로, 요컨대 오로지 인간들의 총체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는 생산수단으로 전화하지 않고서는 저 제한된 생산수단을 강력한 생산력들로 전화할 수 없었다. 물레, 베틀, 대장간의 해머를 대신해서, 방적기, 역직기, 증기 해머가 등장하였다; 개별 작업장을 대신하여 수백 수천 명의 공동작업을 요구하는 공장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생산수단과 마찬가지로 생산자체도 일련의 개인적 행동에서 일련의 사회적 행위로 전화하였고, 생산물도 개인들의 생산물에서 사회적 생산물로 전화하였다. 이제는 공장에서 나오게 된 방사, 직물, 금속 제품 등은 많은 노동자들의 공동의 생산물이 되었으며, 요컨대 완성되기 전에 많은 노동자들의 손을 차례차례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것을 내가 만들었고, 그것은 나의 생산물이다.7) (강조는 엥겔스.)

자본주의 대공업에서는 거대한 생산수단들을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동하면서, 그들의 공동의 노동으로 생산물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누구도 어떤 생산물(생산수단과 소비수단)을 그것을 내가 만들었고, 그것은 나의 생산물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즉 사회공동의 생산물이다. 그래서 공동의 소유물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본가가 소유(전유8))한다.

 

대작업장과 매뉴팩처에 생산수단이 집적되었고, 생산수단은 사실상 사회적 생산수단9)으로 전화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수단과 생산물은 마치 그것이 전[고립적 개인 노동으로 생산하던 중세의 수공업적 생산 시기: 인용자]과 마찬가지로 개인들의 생산수단과 생산물인 것처럼 취급되었다. 이제까지 노동 수단의 보유자가 생산물을 전유한 것은 그 생산물이 통상적으로 노동수단의 보유자 자신의 생산물이고 타인의 보조 노동은 예외였기 때문이라면, 이제 생산물이 더 이상 자신의 생산물이 아니고 전적으로 타인의 노동의 생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노동수단의 소유자가 계속 전유하였다. 생산물은 이제 사회적으로 산출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생산수단을 움직이고 실제로 생산수단을 산출한 사람들이 그것을 전유하지 않고 자본가가 전유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생산수단과 생산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개인들의 사적 생산을 전제로 하는 전유 형태, 따라서 각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보유하고 그것을 시장으로 가져가는 그러한 전유 형태에 복종한다. 생산방식은, 이 전유형태의 전제를 지양함에도 불구하고 이 전유형태에 복종한다. 새로운 생산방식에 자본주의적 성격을 부여하는 이 모순 속에는 이미 현재의 충돌 전체가 맹아적으로 놓여 있다. 새로운[자본주의적: 인용자] 생산방식이 … 모든 나라에 지배적인 것으로 되면 될수록 …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의 양립 불가능성도 더욱 명명백백해질 수밖에 없었다.10) (강조는 엥겔스.)

사회적 생산은 생산력을 무한정 발전시킨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물을 자본가가 개인적으로 전유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소비할 수도 없다. 그 생산물은 상품으로 판매되어야 분배될 수 있다. 생산의 팽창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에는 팔리지 못한 상품이 점차 쌓이게 되고,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공황이 폭발한다.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의 양립 불가능성, 그 충돌이 공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공황 시기에는: 인용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전체 메커니즘은 이 생산방식 자체가 산출한 생산력들의 압력에 눌려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더 이상 이 대량의 생산수단 모두를 자본으로 전화시킬 수 없다; 생산수단은 놀게 되며, 이 때문에 산업 예비군도 놀게 된다. 생산수단, 생활수단 자유로이 이용될 수 있는 노동자들, 요컨대 생산과 일반적 부의 모든 요소들이 여분 상태에 있게 된다. 그러나 여분은 궁핍과 결핍의 원천으로 된다.(푸리에) 왜냐하면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자본으로의 전화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이 여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은 미리 자본으로, 인간 노동력의 착취를 위한 수단으로 전화하지 않는 한, 활동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띠어야 할 필요성이 그것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유령처럼 서 있다. 오직 이 필요성만이 생산의 물적 지렛대와 인적 지렛대가 결합되는 것을 방해한다; 오직 이 필요성만이 생산수단이 기능하는 것을 금하고, 노동자들이 노동하고 살아가는 것을 금한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자신에게 더 이상 이 생산력을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력들 자체는 모순을 지양하라고, 자신을 자본으로서의 성질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사회적 생산력으로서의 자신의 성격을 승인하라고 더욱 강하게 독촉한다.11) (강조는 엥겔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었다.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박수주 물량이 왜 없는가? 물량이 없다면 죽어야(해고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선박을 너무나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물량이 없는 것이다. 선박만이 아니다. 철강ㆍ기계ㆍ자동차ㆍ집 그리고 농산물까지 너무나 많이 만들고 있다. 더 이상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혹은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단시간 노동을 해도, 생산물이 넘쳐나고 있다. 이것은 인류에게 축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은, 사회 공동의 생산물을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ㆍ분배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현실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수백만 노동자의 협업ㆍ분업을 통해) 사회가 공동으로 생산은 하지만,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지도 분배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본의 이윤을 위해 생산한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자본이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물은 상품으로 되어, 너무 많이 만들 능력(생산력)을 가지고 있고, 너무 많이 만들면, 팔리지 않고, 이윤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 자본은 파산하게 되고, 노동자는 잉여 인간이 되어 해고되고, 공장은 잉여 공장이 되어 폐기된다. 사회적 부가 파괴되는 것이다. 무인생산을 향해 갈 만큼 거대해진 생산력은 바로 그만큼 거대한 잉여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 노동자가 폐기되지 않으려면 자본을 폐기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다. 생산수단을 사회의 이름으로 노동자계급이 소유하는 것(생산수단의 국유화). 그리하여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 이것만이 재앙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전략적 과제를 분명히 하여야만 투쟁을 복원할 수 있다.12)

 

위의 엥겔스의 인용문에 있는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띠어야 할 필요성이 그것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유령처럼 서 있다는 글을 되새김해 보자.

박성호 동지는 조선산업의 위기는 자본의 경제적 모순에서 온 것이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조선산업조선자본이 암묵적으로 분리되고 있다. 조선산업이란 배를 만드는 사업 자체, 즉 생산수단(조선소와 그 기계장치, 원료)과 노동력을 결합하여 배를 건조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러한 산업은 봉건시대부터 존재했다. 지금 한국에서의 조선업 상황을 보면 생산수단도 넘쳐나고 노동력 또한 넘쳐난다. 그 기술력을 보면 세계적 경쟁력을 자타가 인정한다. 그래서 배를 만들 능력이 없게 된다는 의미로서의 조선산업의 위기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 조선자본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즉 배를 만들어 이윤을 내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공장, 기계, 원료)은 단지 유용한 생산물(사용가치)만을 만드는 수단이 아니다. 현대 중공업에서는 단지 선박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를 생산하여야 하고, 또 잉여가치, 즉 이윤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소유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이 자기 증식하는 가치인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띠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황이 발발하여 조선소가 이윤(잉여가치)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 조선소는 폐기된다. 그래서 생산수단이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띠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조선자본의 위기가 조선산업의 위기로 전화된다. 자본은 더 이상 이 생산력을 관리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국유화에 대하여: 자본주의적 국유화와 프롤레타리아트적 국유화

박성호 동지는 말한다.

3. 국책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조선소 국유화 투쟁으로 나서자

대우조선, STX, 성동은 사실상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금속에서는 국유화 요구를 수없이 해 왔다. 그때마다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5년이 넘게 국책은행이 경영을 하고 있다. 실제 국가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제대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운영씨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대우조선의 경우에는 실제 국가가 대주주임에도 운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해 왔기 때문에 비리의 온상인 기업이 되고 만 것이다. 국가가 제대로만 운영했다면 대우조선은 충분히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13)

자본주의적 국유화, 즉 자본주의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고 자본주의적으로 운영, 즉 이윤을 내기 위하여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엥겔스의 말을 들어보자. 먼저 그 의의를 보자.

힘차게 성장하는 생산력들이 자신의 자본으로서의 성질에 이처럼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 본성을 승인하라고 이처럼 더욱 강력하게 강요함에 따라 점점 더 자본가계급 자신은, 자본관계 내에서 대체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 생산력들을 사회적 생산력들로서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자본주의 사회의 공식적인 대표자인 국가가 그것들에 대한 지휘를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공황이 부르주아지가 더 이상 현대의 생산력들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였다면, 대규모 생산시설과 교류시설들이 주식회사와 국가 소유로 전화한다는 것은 이 목적[생산력 관리: 인용자]을 이루는 데 부르주아지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가의 모든 사회적 기능들은 이제 봉급을 받는 직원들에 의해 수행된다. 자본가는 수입을 챙기는 것, 이자 표를 끊는 것, 다양한 자본가들이 서로 자본을 뺏는 증권 거래소에서 투기를 하는 것 외에 아무런 사회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14)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처음에 노동자를 몰아냈다면, 이제 그것은 노동자들을 몰아낼 때와 꼭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추방하여, 비록 당장 산업예비군으로 되어 버리지는 않더라도 과잉 인구가 되게 한다.15)

즉, 자본주의적 국유화가 가지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본가계급이 생산력들을 사회적 생산력으로 어쩔 수 없이 인정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둘째, 생산력을 관리하고 이용하는 데 있어서 자본가들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의의는 거기까지이다.

그러나 주식회사로의 전화도, 국가 소유로의 전화도, 생산력의 자본으로서의 성질을 지양하지 못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이것은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명백하다. 그리고 현대 국가 역시 부르주아 사회가 노동자나 개별 자본가의 침해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일반적인 외적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직일 뿐이다. 그 형태가 어떠하건 간에 현대국가는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의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이다. 현대 국가가 생산력들을 더 많이 자기의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인 총자본가로 되며, 국민들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 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트로 남는다. 자본관계는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다.16)

박성호 동지는 국가가 제대로만 운영했다면 대우조선은 충분히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다 주장한다. 그러나 대우조선을 국가가 제대로 운영하여 정상화시키는 것이란 무엇인가. 엥겔스는 그것은 국가가 더욱더 현실적인 총자본가로 되며, 국민들을 더욱더 착취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 노동자로, 프롤레타리아트로 남자본관계는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점으로 치닫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엥겔스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노동자의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러나 정점에서 그 자본관계는 전도된다. 생산력들의 [자본주의적: 인용자] 국가 소유가 충돌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해결의 형식적 수단, 해결의 칼자루는 그 안에 숨겨져 있다.

이 해결은 현대적 생산력들의 사회적 본성이 실제로 승인되는 것에만, 따라서 생산방식, 전유방식, 교환방식을 생산수단의 사회적 성격과 일치시키는 것에만 놓여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지휘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지휘에 비해서도 웃자란 생산력들을 사회가 공공연하고도 솔직하게 점유 획득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로 전화시킴으로써,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변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력을 창조한다. 이 세력은, 사회화된 대규모 생산수단을 국가 소유로 전화시킬 것을 재촉함으로써, 그 스스로 이 변혁의 수행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생산수단을 우선 국가 소유로 전화시킨다.17) (강조는 엥겔스.)

자본주의적 국유화가 아닌 프롤레타리아적(사회주의적) 국유화만이 노동자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엥겔스는 주장하고 있다. 박성호 동지는 조선산업 위기,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극복방안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조선산업의 위기란 조선자본의 위기이고, 그 원인은 자본 자체에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자체를 폭파시켜 버리지 않는 한 해결책극복방안도 없는 것이다.


1) 박성호, 조선산업 위기,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극복방안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정세와 노동≫ 제125호(2016년 7/8월호), p. 77.

2) 프리드리히 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반-뒤링)≫(≪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 제5권), 박종철 출판사, 2000, p. 303.

3) 박성호, 앞의 글, p. 72.

4) 엥겔스, 앞의 책, pp. 303-4.

5) 같은 책, p. 303.

6) 박성호, 앞의 글, p. 75.

7) 엥겔스, 앞의 책, p. 297.

8) 전유: 사전적 의미는 혼자 독차지하여 가짐이다.

9) 인용자: 수많은 노동자가 공동으로 생산한 것이고, 또한 공동으로 가동시킨다는 의미이다.

10) 엥겔스, 앞의 책, pp. 298-9.

11) 같은 책, p. 305.

12) 권정기, 노동자계급은 경제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세와 노동≫ 제123호(2016년 5월호), p. 13.

13) 박성호, 앞의 글, pp. 77-8.

14) 정치판과 공놀이판(축구협회)을 기웃거리며, 조선노동자들의 생명과 바꾼 돈을 흥청망청 뿌려대는 불한당 정몽준을 보라.

15) 엥겔스, 앞의 책, pp. 305-7.

16) 같은 책, p. 307.

17) 같은 책, pp. 3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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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9th, 2016 | By | Category: 이론, 정세와노동 | 조회수: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