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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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찬 | 연구위원장

[목차]

머리말

제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쓰딸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6장 철학과 종교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 푸코

푸코는 20세기 중, 후반의 프랑스 철학자이다. 쏘련이 붕괴하고 난 뒤에 이른바 프랑스 철학의 열풍이 한국사회에 불 때 푸코는 가장 대중적으로 읽혀졌다. 푸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그가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담론의 전형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쏘련의 붕괴로 맑스주의가 타격을 받고 그에 따라 계급투쟁노선과 이론이 위축될 때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이라는 것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운동을 청산하고 떠난 많은 활동가들이 푸코에 심취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을 내세운 것은 푸코가 맨 처음은 아니었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의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이른바 신좌파이론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현대에 있어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의 효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푸코는 대중적 영향력이 광범한데 그것은 그가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푸코는 감옥, 병원, 광인, 성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관철되는 미시적인 권력현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러한 분야에서 관철되는 배제의 논리를 폭로하였다. 기존의 맑스주의는 거시적인, 총체적인 권력현상만을 문제 삼아서 미시적 권력 메커니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다. 또한 푸코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 관철되는 방법론을 세웠는데 그것이 고고학적 방법론과 계보학이다. 지식의 지층을 파헤치는 것으로서 고고학적 방법과 기존의 과학이 갖고 있는 권력효과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계보학을 푸코는 자신의 이론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푸코는 그러한 자신의 방법론을 반(反)과학이라고 규정했다.

푸코는 1950년대 초반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2년 후에 프랑스 공산당에서 탈퇴했다. 당시 푸코는 스스로를 니체적 공산주의자로 규정했는데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탈퇴는 쓰딸린에 대한 의사들의 음모 사건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고 한다. 푸코는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학에 대한 학습을 마쳤다고 스스로 말한다. 푸코는 프랑스 공산당에 있을 당시 알튀세르를 추종했다고 하고 이후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해 매우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푸코는 68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68혁명을 통해 유럽의 혁명운동이 맑스주의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파악한다. 그러면 푸코의 사상에 대해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성격과 고고학, 계보학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적 성격을 각각 나누어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푸코가 저술활동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내놓은 저작은 ≪광기의 역사≫인데 이는 전형적으로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의 모습을 보여 준다. 푸코는 광기가 비이성으로서 배제되었다고 본다. 아마 고전주의 시대의 세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된 죄악의 체계에 대한 일반적인 비이성의 경험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감호에서 피넬과 튜크의 해방까지 150년 동안 광기였던 것에 대해 지평의 구실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비이성의 경험일 것이다.1), 광인은 타자이다. 즉 보편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예외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 타자이다.2) 이와 같이 푸코는 광인이 타자로서 배제되는 역사를 그렸는데 이러한 관점이 그의 사상과 이론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또한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의학과 병원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분석하였다. 점차 어둠에서 출발해 광명의 빛을 찾아 나오는 모든 권력, 언제나 신중하기만 한 모든 의학의 독해, 질병의 추이와 새로운 위험성마저 계산해야 하는 의학의 섬세함, 그리고 아버지의 특권마저 몰수해버릴 만한 의학의 강고한 지배의식, 바로 이런 것들을 통해 임상의학적 시선의 지상권이 우뚝 서게 된다. 알고 결정하는 시선, 즉 지배하려는 시선이 그것이다.3) 푸코는 의학의 발달을 추적하면서 의사의 시선이라는 개념을 분석하는데 근대적인 임상의학에 이르러서 의사의 시선은 일종의 권력이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광인에서처럼 배제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푸코는 점차적으로 사회의 각 영역에 존재하는 미시적인 권력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푸코의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이 두드러지는 저작은 ≪감시와 처벌≫이다. 인간의 신체에 가해지는 형벌의 역사, 그리고 감옥에서의 감시의 시선을 분석하는데 특히 판옵틱이라는 감옥체계는 미시적 권력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판옵틱은 원형의 감옥의 중앙에 감시탑이 있는 것인데 이러한 구조를 통해 감옥의 죄수를 포함하는 일체의 사람들에 대해 감시의 시선을 완성했다고 본다.

푸코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국가기구와 제도가 작용시키는 이른바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란 것인데 그것의 유효한 영역은 이러한 기구와 제도의 대규모 작용과, 그것들의 물질성과 힘을 포함하는 신체 자체의 사이에 놓여 있다.4) 국가기구와 인간의 신체 사이에 놓여 있는 다양한 영역의 권력현상과 그것의 작동 메커니즘을 푸코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 있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 바깥에 존재하는 권력현상을 분석한다. 국가는 일련의 권력관계의 그물망 위에 존재하는 상부구조이며, 실제로 인간의 육체를 규정하고 성이나 가족관계, 인척관계, 지식 그리고 기술 따위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전체에 퍼져 있는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일 뿐입니다.5) 이와 같이 푸코는 국가 이외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권력 현상을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러한 미시적 권력의 작동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을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으로 이루어 내고 있다. 그런데 푸코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맑스주의는 미시적 권력에 대해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판옵틱의 체계는 국가기구에 의해서 이용되었다기보다는 차라리 역으로 작고 지역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판옵틱의 체계에 국가기구가 의존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결국 권력의 섬세한 작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분석의 초점을 국가기구에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권력의 문제를 국가기구에만 한정시켜 계급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맑시스트적인 시각의 한계라 하겠습니다.6) 푸코는 여기서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을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판옵틱이라 규정하고 있고 국가 또한 이러한 곳곳의 판옵틱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기존의 맑스주의는 이러한 사회 곳곳의 판옵틱을 바라보지 못하고 국가 자체만을 파악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푸코의 시각에는 긍정할 부분과 부정할 부분이 모두 담겨 있다. 먼저 긍정할 부분은 국가권력 자체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판옵틱, 즉 감시의 시선, 권력의 그물망을 파악하고 저항의 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 병원, 감옥, 철거현장, 노동현장에서 노조파괴 등등의 대중이 부딪히는 억압과 감시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저항의 이론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타당하다. 국가 바깥의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 혹은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은 그러한 점에서 긍정성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푸코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의 맑스주의가 자신의 시야를 국가기구에만 한정했다고 비판하는 점인데 여기서 푸코 이론의 맹점이 드러난다. 맑스-레닌주의는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보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맑스-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정치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일체의 억압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정치폭로라고 보고 있다(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참고하시오). 포괄적인 정치폭로는 푸코에 따르면 권력의 미시적 현상이라고 파악되는 것을 포함하여 일체의 억압을 폭로하고 그에 맞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코가 기존의 맑스주의가 국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미시적 권력현상을 놓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또한 푸코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권력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포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권력에 대한 자유주의적 시각이나 맑시스트적 시각을 넘어서는 새로운 권력 개념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로 환원되지 않고 권력을 분석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 가능할까요? 내 생각에 그 방법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우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권력은 주어진 실체도 아니며, 따라서 교환되거나 되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차라리 권력은 행사되는 영향력이라고 개념화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권력이 결코 경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매개체라기보다는 사회 속에 퍼져 있는 세력관계라는 것입니다.7) 이러한 푸코의 주장에서 긍정적인 것은 권력을 영향력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세력관계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권력을 경제와 분리시켜 파악하는 입론이다. 영향력과 세력관계라는 개념이 권력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것은 근원적으로 경제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푸코의 권력이론이 일정한 긍정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으로 빠지는 것이며 나아가 푸코 스스로 계급적 접근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 그리고 국가 바깥의 섬세한 권력의 그물망은, 사회 곳곳의 감시와 억압체제인 판옵틱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판옵틱은 국가를 비롯한 권력체제의 가일층의 고도화를 의미하는데 국가가 그렇게 발전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국가는 자본주의 초기에는 야경국가였지만 21세기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회 전체를 짓누르는 세력이 되었고 하나의 괴물이 되었다. 국가가 비대해지고 고도화되고 나아가 사회 곳곳의 감시, 억압체제가 발달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가 적대적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고 그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국가의 발달의 이유는 단 하나, 즉 계급대립의 심화 때문이다. 이것이 국가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권력관계, 권력의 그물망의 발달의 본질인데 푸코는 권력에 대한 계급적 접근은 맑스주의적 접근으로 낡은 것이고 경제적 접근과 계급적 접근을 떠나 권력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처럼 (국가)권력에 대한 경제적, 계급적 접근을 놓치면 남는 것은 사회변혁의 전망의 상실이고 고작해야 사회의 다양한 영역의 권력현상에 대한 저항, 배제의 논리에 대한 저항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푸코적 접근, 배제의 논리에 대한 저항은 지금은 우리 사회의 운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발휘하는 논리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운동은 전망을 상실하고 있고 역으로 운동의 전망의 상실이 푸코적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푸코의 이러한 접근 즉, 맑스주의적으로 국가에 접근하는 것을 부정하고 권력의 미시물리학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논리적으로 보면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성의 부정을 푸코는 다음과 같이 합리화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인식의 시야에 방해가 되어왔던 소위 총체적인 이론구성의 맹점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저항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가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총체적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총체적인 이론을 구성해 왔던 담화의 내적 완결성이 어느 정도 재단되고 알맞게 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총체성이라는 입장에서 사회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바라는 연구결과를 얻는 데는 방해가 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8) 이와 같이 푸코는 맑스주의적 총체성을 권력의 미시물리학의 수립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바로 이 점에서 푸코의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은 일정한 긍정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 결여되면, 나아가 국가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이 결여되면 계급투쟁의 개념과 노선은 사라지게 되고 운동은 전망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맑스주의적 총체성의 개념은 다시 복원되어야 하며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의 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푸코의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에서 비과학적인 측면은 걸러 내야 하지만 사회와 국가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전제로 하여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은 운동에 포괄될 필요가 있다. 사실 푸코가 강조하는 권력의 섬세한 그물망은 국가의 고도화와 그것에 기초한 사회 곳곳의 억압과 감시체제의 발달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자본주의가 폐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급대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한다. 따라서 푸코처럼 권력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거부하면 미시권력에 대한 투쟁 또한 올바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총체적 접근, 맑스주의적 접근을 복원하면서 그것과 미시적 접근을 통일시킬 때만 변혁의 전망과 미시권력에 대한 투쟁을 다 아우를 수 있다.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위의 고찰은 푸코 사상의 정치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푸코가 자신의 배제에 대한 저항,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논리, 권력의 미시물리학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적용한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방법론을 중심으로 푸코의 이론적 측면을 고찰해 보자.

먼저 푸코는 참된 인식은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참된 인식은 직관에 의해서만, 다시 말해 순수하고 세심한 지성의 특이한 행동에 의해서만, 그리고 자명한 사실들을 서로 연결 짓는 추론에 의해서만 성립한다.9) 참된 인식은 직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은 푸코가 과학적이고 개념적인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푸코는 자신의 이론이 반(反)과학임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계보학은 과학이라고 규정된 엄밀한 지식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실증주의적 시도는 아니지요. 오히려 반과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10) 계보학은 푸코의 주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데 기존에 지성사 혹은 과학사에서 과학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여러 현상과 지식들이 배제되는 것을 규명하고 찾아내려는 방법 혹은 전략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보학이라는 개념은 푸코 이론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푸코는 계보학을 가리켜 반과학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푸코가 과학에 대해 취하는 입장,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개념을 고찰해 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지식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지식의 내용이나 방법, 또는 과학적 개념 따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유기적이며 과학적인 담화의 기능이나 그것이 제도와 연결됨으로 해서 발휘되는 권력의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계보학이 전제하는 투쟁의 목표는 소위 과학적 담화가 발휘하는 권력의 효과에 대항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1) 푸코는 이와 같이 기존에 과학이라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반란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학이 발휘하는 권력효과에 대해 대항하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푸코는 반과학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저술한 광기, 임상의학, 감옥, 형벌, 성 등의 영역의 저서들은 과학의 입장에서 배제되는 영역을 고찰하고 그를 기초로 배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펴는 것들이다. 그러나 푸코가 배제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서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권력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항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과학은 필연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법칙성을 탐구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 아무리 대항한다고 해서 과학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푸코의 문제의식을 살리는 것은 과학의 권력효과에 대한 대항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민중들을 기만하는 사이비 과학을 폭로하고 나아가 과학이 계급적 억압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계급적 접근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반란을 제창하는 푸코는 과학 자체에 대한 저항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짚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푸코는 맑스주의 또한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점에서 거부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맑시즘을 거부하였던 이유는 그것이 효과적으로 과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회의 때문이었습니다. … 맑시즘이나 정신분석학 등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기능하는 면에서나, 이론으로서 성립하기 위해 근거하고 있는 규칙들과 개념들이라는 차원에서, 그러한 분과학문이 어느 정도나 과학이라는 기준에 적합한지를 묻기 전에, 또한 맑시즘과 정신분석학에 동원된 담화 사이에 존재하는 공식적이고 구조적인 유비관계를 의문시하기 전에, 우리는 소위 과학이라는 것에 따라다니는 권력의 효과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2) 맑스주의 또한 과학이라는 것에 따라다니는 권력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 푸코의 논리이다. 그런데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개념은 타당한 것인가? 푸코의 논리를 따르면 과학이 권력 효과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과학이 객관적인 법칙성, 필연성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즉, 배제와 억압의 논리이기 때문에, 권력이기 때문에 과학이 영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기 때문에 과학이 영향력을 갖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과학의 권력효과라는 푸코의 개념은 올바른 개념이 아니다. 만약 푸코의 개념이 올바르다면 과학자는 곧 권력자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푸코의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을 본격적으로 고찰해 보자. 고고학에 대해 푸코는 서양문화의 가장 깊은 지층을 파헤치려는 시도13)라고 주장한다. 과학에서 배제되어 왔으나 의미 있는 지식들을 역사적 계기를 따라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푸코는 자신의 방법론을 고고학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일반 사회에서의 고고학이 과학을 추구하는데 반해 푸코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들을 일정한 계기에 따라 파헤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더구나 과학이 아닌 직관을 최고로 치는 푸코에게서 과학적 논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이 전형적으로 적용된 ≪말과 사물≫에서 푸코는 유럽의 지성사, 과학사를 고찰하면서 지적인 지형이 변화해 가는 것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푸코는 지적 지형의 변화를 직관에 기초하여 추적하지만 그 개념은 비과학적이다. 푸코는 정치경제학의 주요 개념인 가치가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가치는 생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확보하는 노동자의 소비이건, 이윤을 얻는 기업가의 소비이건, 일을 하지 않고 재산 수익만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의 소비이건, 소비에 의해 형성되고 증가한다.14)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그리고 맑스에 의해 정립되고 발전된 가치 개념은 그것이 인간노동의 응결물이라는 것이다. 즉, 가치는 노동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 노동가치설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푸코는 과감하게 가치의 형성이 노동,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푸코에게 항의할 수는 없는데 그는 과학에 저항하는 지식의 반란을 주장하고 있고 또 과학적 개념이 아닌 직관을 최고로 치기 때문이다. ≪말과 사물≫ 전체에 흐르는 지적 지형의 변화의 역사, 푸코의 용어로는 에피스테메의 변화는 16세기, 이어지는 고전주의 시대, 18세기 말 이후의 시기 등에서 각각의 지적인 조건들의 지형의 일단을 보여 주지만 그것들은 피상적인 고찰에 기초한 것이다. 푸코는 각 시대의 지적 지형의 얼개는 묘사하지만 푸코가 과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과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푸코는 또한 변증법을 거부하는데 그에 따라 각 시대의 지적 조건들의 상호연관이라는 것은 변증법적으로 엄밀하게 구사되지 않고 대략적인 스케치로 끝난다. 푸코의 고고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스로는 지식의 가장 깊은 지층을 파헤치려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으로 승인될 수 없는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시도에 그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코의 감옥과 형벌, 임상의학, 광인 등에 관련된 고고학적 저서들은 폭로로는 일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과학적 의미는 가질 수 없고 따라서 변혁의 이론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고고학이 이렇게 켜켜이 쌓여 있는 지식의 지층을 파헤치려는 방법론이라면 계보학은 좀 더 전투적으로 과학에 대항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따라서 계보학과 과학이라는 서열구조 안으로 지식을 각인시키려 했던 지금까지의 경향과 비교해 본다면 계보학은 이러한 서열구조를 반대하고, 과학적 담화 안에서 요구하는 이론적이고 단일하며 형식적인 언술체계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계보학은 <부분적인 지식> 또는 델루즈[들뢰즈: 필자]의 표현에 따라 <작은 지식>을 재활성화해서 과학적 서열구조와 그에 수반되는 권력효과에 대항하려는 시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파편적인 지식을 재구성하려는 계보학의 목표라고 하겠습니다.15) 계보학은 지식의 지층을 파헤치는 고고학에 따라 이루어지는 성과를 기존의 과학에 대립시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푸코는 계보학을 반과학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과학은 과학의 서열구조에 대항할 수는 있지만 즉, 학문적 권력에서 일정한 자리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과학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따라서 변혁의 이론이 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은 비과학적 방법론이고 나아가 반과학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가 맑스주의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이론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주의 운동을 침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변혁의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푸코는 후설과 니체를 높이 평가하고 프로이트를 중시하는데 후설과 니체는 공공연하게 반과학의 입장을 표방했다는 점에서 푸코의 선행자라 할 수 있고 프로이트 또한 무의식의 이론으로 비과학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푸코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푸코는 변증법에 매우 적대적이다. 그러나 그의 변증법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이다. 그는 모순을 통일성의 외관으로 파악한다. 모순, 그것은 숨는 또는 숨겨지는 어떤 통일성의 외관일 뿐이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 사유와 텍스트 사이, 관념성과 표현의 우발적인 신체 사이에서의 어긋남 속에서만 그의 자리를 잡는 것이다. 어쨌든 분석은 가능한 한 모순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16) 모순이 단지 통일성의 외관일 뿐인가? 모순은 통일성 내에 존재하는 대립을 가리키는데 푸코에게서 모순의 역동적 성격은 거세되고 모순은 단지 통일성이 어떤 조건에서 어긋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따라서 모순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변증법에 대한 매우 피상적인 이해에 기초한 것이며 통일성 속의 대립을 통한 운동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변증법에 대해 매우 피상적으로 접근한 푸코는 변증법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전략의 논리를 내세운다. 정확히 말하면 바로 여기에서, 이런 종류의 분석 내에서, 속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변증법이 아닌 논리가 사용되고 또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변증법이 어떤 것이기에 그러는 것일까요? 변증법적 논리, 그것은 서로 모순되는 여러 항들을 동질적인 것의 영역 내에서 작동시키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변증법의 논리를 대체하기 위해 저는 제가 전략의 논리라고 부르는 바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의 논리는 서로 모순되는 여러 항을, 모순이 하나의 통일성 내에서 해소됨을 약속하는 동질적인 것의 영역 내에서 활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략의 논리는 조화롭지 못한 항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연결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을 그 기능으로 합니다. 전략의 논리는 이질적인 것을 연결하는 논리이지, 모순적인 것을 동질화하는 것이 아닙니다.17) 푸코는 변증법을 모순되는 것을 동질적인 영역 내에서 작동시키는 논리로 파악한다. 이렇게 변증법을 인식하면 변증법은 매우 보수적인 것이 된다. 서로 모순적이고 갈등하지만 결국은 동질적인 영역 내의 문제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푸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운동의 관념이며 나아가 모순의 운동의 결과 성립하는 지양의 개념이다. 그에 따라 푸코는 이질적인 것의 연결을 새로운 논리로 내세우며 그것을 전략의 논리라고 개념규정한다. 배제에 대한 저항,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논리로서 이질적인 것의 연결이라는 논리가 변증법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모순을 통일성의 외관으로 파악하는 푸코에게 변증법은 변혁과 저항의 무기가 아니며 배제에 따라 성립하는 이질성들의 연합이 저항의 논리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논리의 핵이라 할 수 있다.

푸코의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국가권력의 비대화, 고도화의 결과 사회 곳곳에 성립하는 억압과 감시의 권력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갖지만 그것이 곧바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맑스주의적 접근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변혁은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의 통일이다. 미시권력들의 성립과 확산은 이 사회에서 계급대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맑스주의적 관점으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개조될 필요가 있다. 푸코의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은 과학적 접근을 부정하고 반과학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지식의 지층을 파헤치려는 의도는 좋지만 과학적 방법을 놓치면 피상적이 되며 폭로로는 의미가 있지만 과학적으로 승인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변혁이론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푸코의 반변증법적 관점은 푸코가 계급투쟁을 떠났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며 그에 따라 푸코는 배제되는 이질성들의 연합으로서 저항이라는 논리에 귀착되었다. 노사과연


1) 푸코,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p. 208.

2) 같은 책, p. 316.

3)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 이매진, p. 157.

4)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p. 57.

5) 푸코, ≪권력과 지식≫, 나남, p. 155.

6) 같은 책, p. 103.

7) 같은 책, pp. 121-2.

8) 같은 책, p. 114.

9) 푸코, ≪말과 사물≫, 민음사, p. 94.

10) 푸코, ≪권력과 지식≫, pp. 116-7.

11) 같은 책, p. 117.

12) 같은 책, pp. 117-8.

13) 푸코, ≪말과 사물≫, p. 22.

14) 같은 책, p. 281.

15) 푸코, ≪권력과 지식≫, p. 118.

16) 푸코,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p. 211.

17)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난장, pp.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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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Oct 9th, 2016 | By | Category: 이론, 정세와노동 | 조회수: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