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인공지능 그것은 자본주의의 저승사자다”에 대한 보론 ― ≪정세와 노동≫ 읽기 모임 4월 후기를 대신하여

 

최상철 | 운영위원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인류의 조상은 주술과 미신 그리고 종교라는 환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로부터 쏟아져 나온 온갖 잡설과 인공지능과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연원도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은 주술과 미신 그리고 종교를 극복하게 하였고, 인간이 세계를 변혁하는 추동력을 제공하였다.

이 글은 ≪정세와 노동≫ 4월호에 실린 채만수 동지의 인공지능 그것은 자본주의의 저승사자다―알파고ㆍ이세돌 바둑 대결을 계기로 지식인들이 토해낸 담론 비판이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중심으로 한 짤막한 보론이다. 또한 이 글은 매달 진행되는 ≪정세와 노동≫ 읽기 모임 4월 모임의 늦은 후기이기도 하다.

채만수 동지의 지적대로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누른 것을 기계가 인간에게 거둔 승리로 도식화하는 것은 허구적이다. 그것은 산업혁명 시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아니라 기계를 공격하여 생산력을 파괴했던 시행착오와 결코 다르지 않다. 바둑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복잡한 놀이 중 하나일 뿐 결코 천상의 신비함을 담고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바둑에서 인간 프로기사를 뛰어넘은 것은 컴퓨터 연산능력의 비약적 발전과 고도화된 자본주의 생산력을 확인시켜 주는 징후일 뿐이다. 이번 대결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시합에서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이 컴퓨터에 의해 자원으로 간주될 날이 멀지 않았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1)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인간이 인적자원으로 소모되고 있는 현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문외한에게는 다소 지루한 내용이겠지만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이룬 눈부신 기술적 성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바둑과 인공지능에 대한 서술로부터 시작하겠다. 주로 바둑의 경우의 수와 이를 정복해내기 위한 인공지능의 접근 과정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의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기에 쉽게 검색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해서 서술할 수밖에 없음에 유의해 주길 부탁한다. 또 바둑의 규칙, 용어 및 원리에 대한 부분은 본 글의 목적과 큰 관련이 없으므로 자세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축약해서 서술한다.

바둑이란 놀이는 철저한 인과관계에 근거한 논리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계산으로 다루기 힘든 능력을 활용해야 하기에 흔히 감각이라 불리는 직관 혹은 독창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분야였다. 이세돌은 바둑 기사의 감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표현한다.

 

제가 바둑을 원체 많이 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딱 보고 선택을 하면 맞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금 여기 있으니까 들어가서 깨자. 여기, 여기, 여기다. 그러면 제가 하나를 선택하면 이게 33% 아닙니까, 사실은 맞힐 확률이. 그런데 딱 두어 가면 한 70-80%가 맞아요. 이게 감각입니다.2)

이세돌은 다른 기사들이 상상해내지 못했던 발상과 수법으로 최고의 기사의 지위를 누렸던 인물로 바둑계에서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던 이였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이세돌을 뛰어넘은 것에서 많은 이들은 인간의 창의성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창성(Originality)은 논리적 사고와 연산을 배제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일도양단식의 속류적인 사고로써는 결코 사태를 종합적인 측면에서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독창성은 신이 부여한 카리스마나 천부적인 재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기원(Origin)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먼저 바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수순(手順)을 고려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자. 19줄 361칸의 바둑판에서 첫수의 착점 후보지는 361개 그 다음엔 360, 359 … 3, 2, 1이므로 바둑판 진행의 경우의 수는 (19×19)!≒ PIC2506이 된다. 그런데 바둑판의 대칭형태로 인해 이 수치 중 유의미한 경우의 수는 대략 4분의 1정도로 줄어든다.3) 또 바둑에는 착수금지점이 있으므로 이로 인해서도 경우의 수가 감소한다. 그러나 패(霸)와 동형반복으로 인한 경우의 수의 증가를 고려한다면 바둑 진행의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접근방식을 바꾸어 수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는 있다. 19줄 바둑판 위에 나타날 수 있는 상태를 경우의 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4) 수순을 무시하고 바둑판 위에 나타나는 결과만을 고려할 때 동형반복으로 인한 수순의 경우의 수의 증가는 계산의 고려요인이 되지 않는다. 19줄 바둑판에는 19×19의 착점 가능한 공간이 있다. 그리고 각 착점 가능한 공간에는 흑돌, 백돌 혹은 아무것도 놓이지 않을 세 가지 확률이 있다. 즉 바둑판 위에 나타날 수 있는 상태는 PIC2526=PIC2526PIC25675)이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이 수치는 바둑판의 대칭형으로 인해 대략 4분의 1 정도 감소하며, 착수금지점이 있으므로 유의미한 숫자는 이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바둑을 두는 사람은 결코 이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면서 두지도 않는다. 바둑은 장기나 체스처럼 기물의 특성을 활용하는 놀이가 아니며 바둑판에 놓인 돌 하나하나는 동일한 위력을 지닌다. 그러한 높은 자유도는 오히려 바둑의 복잡성을 지극히 높이는 요인이다. 이러한 복잡한 놀이에 접근할 때는 모든 수를 연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둑을 배울 때는 경험에 의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패턴을 학습하여 기존에 놓인 돌과 향후에 놓일 돌의 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착수한다. 그리고 특정 패턴에 따른 상대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바둑을 두게 된다. 가장 단순한 예를 들자면 바둑을 두는 이들은 첫수를 1선이나 2선에 두어서는 동등한 실력을 가진 상대를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바둑의 초반의 진행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학습을 통해 정석(定石)이나 포석(布石)으로 유형화되어 있다. 또한 초반 진행이 아니더라도 빈도수가 높은 형태의 급소는 맥(脈, 혹은 수근(手筋))이라는 이름으로 학습할 수 있기에 장고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다음 수를 알아낼 수 있다. 다음 착점의 후보지를 361, 360 … 의 등차수열로 줄여가는 것이 아니라 패턴에 의해 대략 수십 곳 이내에서 고려할 수 있다면6) 경우의 수는 혁신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또 첫수를 무조건 화점(花點)에 착점하는 방식으로 극초반의 경우의 수를 대폭 줄이는 방법도 쓸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경우의 수가 줄어든다고 하여도 바둑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의미한 상태는 현재까지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수라 알려진 PIC2587 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따라서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억지(抑止) 기법(brute force method)7)을 사용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8)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이렇게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지닌 바둑의 해법에 접근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 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알고리즘이 발전되었고 그것이 인공지능의 기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2000년대 이전의 인공지능 바둑은 바둑의 패턴을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하여 이를 기반으로 다음 착점을 고안해 내었다. 이 시기의 프로그램은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수법이 나올 경우 그 대응이 미숙하여 바둑을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과의 경쟁을 논할 수준이 아니었다.9)

그러다가 바둑 인공지능에 몬테 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이 도입되는데 이에 바둑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몬테 카를로 방법이란 명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박장(Casino de Monte-Carlo)이 있는 모나코의 도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몬테 카를로 방법은 난수(亂手, 무작위 수)를 이용하여 함수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이다. 이 방법을 도입하면 주어진 시간 내에 계산결과가 나오지만 정답이 아닌 일정한 확률의 오차가 발생하는 정답의 근삿값이 도출된다. 이 알고리즘은 대단히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데 지극히 간단한 예를 들자면 초월수인 원주율의 근사값10)을 구할 때에도 몬테 카를로 알고리즘을 이용할 수 있다. 핵분열 반응을 연구하며 맨해튼 계획에 참가하게 되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가 1930년 중성자확산(neutron diffusion)을 연구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11) 또한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Stanisław Marcin Ulam)과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의 시뮬레이션에도 몬테 카를로 방법이 결정적으로 활용되었기에 인류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했던 맨해튼 계획도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도 몬테 카를로 방법의 도입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몬테 카를로 방법에 대해 배태일은 알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만약 10,000개의 난수를 생성해서 (중략) 10개의 균등한 간격으로 나누어서 그 분포를 보면 각 구간에 평균적으로 1,000개의 숫자가 분포되어 있고, 실제 분포가 1,000개와 차이가 나는 오차는 표준편차가 1,000의 평방근인 31.6이고 오차의 분포가 정상분포라면 이러한 난수를 생성하는 알고리즘은 아주 이상적인 난수 생성기이다. 만약 100,000개의 난수를 생성한다면 위에 말한 10개 구간에 분포된 난수의 개수는 평균 10,000개이고 표준 오차가 100이 될 것이다. 표준 오차를 %로 표시하면 첫 경우에는 31.6/1,000=3.16%이고 둘째 경우에는 100/10,000=1.0%가 된다.12)

이 방법은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통계적 방법과 정확히 같은 발상에 근거한 것이다. 여론조사를 할 때 표본설정과 가중치 부가작업의 객관성이 전제된다면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13) 즉 바둑도 판 위의 가능성을 전수조사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승리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바둑에서 몬테 카를로 알고리즘은 각각의 착점에 대해 난수 표본을 선정하여 모의 대국을 펼쳐 가장 승리 확률이 높은 수를 다음 수로 선택한다는 발상을 구현한 것이다. 실제로 몬테 카를로 방법을 도입하여 800개의 중앙처리장치의 슈퍼컴퓨터에 장착된 인공지능 프로그램 모고(Mogo)는 2008년 프로기사 김명완에게 흑번 9점 치수로 승리한다.14) 이 승리는 19줄 바둑판에서 프로그램이 프로기사에게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그래도 그것은 9점 접바둑이라는 거대한 유리함15)을 안고 거둔 승리이니 만큼 프로그램과 바둑 고수와의 격차는 여전히 상당한 것이었다. 몬테 카를로 기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은 그 후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일본 바둑프로그램 젠(Zen, 天頂の囲碁)은 2012년 다께미야 마사끼에게 4점 접바둑에서 승리16)하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북의 바둑프로그램 은별도 바둑 인공지능 발전사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그 발전이 다소 주춤한 것으로 보이지만 2006년도까지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4연속 우승하는 등 활약을 한 바 있다. 이에 고무된 프로기사 김찬우는 북측과 합작하여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사업을 진행하였으나 군사적 긴장강화와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하여 좌초하게 되었다. 부르죠와의 놀이라고 오랜 기간 바둑을 배격했던 북측이 두뇌 격술로서 바둑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면 흥미로운 점도 많다.17)

그렇지만 몬테 카를로 알고리즘을 통해 현재 상태에서 착점의 승률을 계산하는 방식만으로는 프로그램이 프로기사의 수준에 올라서는 것은 요원한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바둑 인공지능 프로로그램의 실력 증가는 한계치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18) 알고리즘 분야의 권위자 중에도 인간 최고수의 수준을 뛰어넘는 비약적인 실력의 도약은 요원한 것처럼 보였고 프로기사와 동등한 수준으로 가는 데에 100년은 걸릴 것이라 전망하는 이도 있었다. 컴퓨터 공학자 문병로 교수의 발언을 인용한다.

 

문제공간의 탐색은 상위단계로 갈수록 어렵다. 하위단계에서는 가보지 않아도 될 공간을 쳐내는 게 쉽지만, 상위단계로 갈수록 가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그럴 듯한 공간이 많아진다. 그 확장은 아주 방대해서 또 하나의 우주가 다시 펼쳐진다고도 할 수 있다. (중략) 다시 말해 인체를 바둑의 문제 공간 전체라고 한다면 얼굴 위의 먼지 하나 정도를 발견한 것이다.19)

그러나 2015년 후반기에 세계적인 대독점자본 구글과 페이스북이 인공 지능 바둑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1997년에 인간 최고수를 이긴 최초의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 딥 블루(Deep blue)20)를 IBM이 개발해 내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새로운 전기가 도래할 것을 알리는 지표였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전투에서 먼저 승리한 것은 알파고21)를 내놓은 구글이었다.

알파고 역시 몬테 카를로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점은 같지만 알고리즘에 대한 혁신 없이 대자본만 투입한다고 해서 기술혁신을 이루어낸 것은 아니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수 있게 한 것은 인공신경망22) 딥러닝(deep learning)의 도입 그리고 대규모 데이터(big data)의 활용이었다. 인간이 바둑을 둘 때에는 주요한 국면에서 감각이라는 직관을 활용하여 다음 착점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깊은 수읽기(컴퓨터에겐 트리 탐색(tree search)에 해당)를 통해 그러한 감각적 선택이 맞는 것인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착점한다. 그렇다면 바둑 인공지능에서 인간의 감각과 수읽기를 어떻게 구현하고 뛰어넘을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가 된다. 인공신경망은 인체의 두뇌를 모사하여 접근한 통계학습적 알고리즘 방식이다. 인공신경망에서 두뇌의 뉴런은 노드(node)로 시냅스는 가중치(weight)가 된다. 이를 통해 대단위 인공신경망에서의 정보처리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딥러닝은 인공신경망의 일종으로 심층 신경망을 이용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이다. 기계학습은 과거의 데이터에서 기계가 패턴을 파악해 내 학습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알파고는 다층의 심층 신경망을 통한 강화학습을 활용하여 축, 장문, 환격과 같은 바둑의 기술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자기학습을 통해 바둑의 원리를 깨우쳐 갔다. 오궁도화(五宮桃花), 매화육궁(梅花六宮), 유가무가(有家無家), 대궁소궁(大宮小宮)과 같은 기본원리나 여타의 바둑 격언에 대해 입력하려는 시도가 필요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두터움과 엷음과 같은 식의 부정확한 바둑 용어는 알파고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개념이며 승리의 확률을 탐색하는 수학적인 방식으로 바둑에 다가선 것이다. 기계학습 과정을 통해서 알파고는 다음 착점을 할 때 불필요한 탐색의 넓이와 깊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으로 다음 착점에 대해 위치 평가(position evaluation)하였다. 그로 인해 몬테 카를로 트리탐색(tree search) 단독으로 수행될 때 나오는 실수가 급감하였다. 또한 대규모 데이터 활용은 알파고 실력 향상의 주요 배경이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인간이 대국한 수많은 대국 기보(棋譜)를 활용할 수 있다. 알파고는 15만 대국의 기보에서 3천만 수를 학습하였다. 이 정도 대규모 데이터를 입력하고 활용하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거대 독점 자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또한 알파고가 행한 자가 대국 100만 판은 역시 컴퓨터 하드웨어의 비약적인 발전과 자본력이 없으면 요원한 일이었다.23)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국할 때 1920개의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 Unit)와 280개의 그래픽 처리장치(GPU, Graph-ic Process Unit)를 활용하였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알파고는 계산력에서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기사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착수를 보여주며 다른 기사들 누구보다 혁신적이었던 이세돌을 당황케 하였고, 결국 대결에서 승리하였다. 단순하게 환원하자면 알파고의 승리로부터 창의성도 연산력의 진보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양질전화의 법칙이 올바름을 인공지능의 발전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알파고의 승리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개와 고양이도 구분 못했던 인공지능은 바둑에서 인간을 뛰어넘으며 금세기 내에 불가능할 것이라던 혁신을 이루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인공지능이 프로기사를 이겨내는 것도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또 독일 튀빙엔대학 연구팀에 의해 고흐나 뭉크의 화풍을 모방한 튀빙엔(Tübingen)시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수준으로 격상하였다.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의 집적과 집중은 거대한 생산력의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러한 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지적재산권은 가로막힌다. 끊임없는 기술적 혁신을 추동해 왔던 자본주의가 그 수명을 다했음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인공지능이 가져다 준 충격은 비약적으로 증가한 생산력과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가 필연적으로 거대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재확인시켜 준다. 부르주아 계급은 신분제 사회를 철폐할 때에는 혁명의 전위였으나 그 스스로가 지배계급이 되고 나서는 반동적 계급이 되었다. 맑스와 엥엘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찬양한 부르주아지가 창조한 거대한 생산력은 이제 오히려 자신들을 역사의 저승으로 보낼 사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내고 있다. 거대한 사회혁명을 위한 전조는 점점 더 자신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구글 회장 에릭 에머슨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 앞서 승부와 상관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구글측의 승리와 상관없이 그의 발언은 물론 옳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과 같은 천박한 묘사에 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올바름은 반쪽일 따름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은 자본가계급의 승리일 뿐이다. 이번 대결의 패자 이세돌도 바둑에서는 졌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대결 이후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ALC)에서 조지 부쉬와 만나고 세계경제포럼24) 뉴챔피언스 연차총회(Annual Meeting of the New Champions)에서 인류를 대표하는 저명인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뛰어난 두뇌로 인류가 가진 창의성의 대변자가 된 이세돌의 승리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지배계급의 선전수단이 될 따름이다.25)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인간이 기계를 뛰어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간이 만든 구제도를 일소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한편으로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높은 수준의 계획경제를 위한 물적 기반이 더욱더 탄탄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20세기 사회주의 진영이 제국주의 포위 봉쇄로부터 겪었던 컴퓨터 기술 발전의 지체로 인해 경제 계획의 많은 부분이 지체되었던 역사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낮은 단계로서의 공산주의는 물론이고 높은 단계로서의 공산주의도 상상에서만 그려낼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는 결코 자동적으로 붕괴하지도 지배계급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특권을 평화적으로 이양하지도 않는다. 공상과학 소설과 헐리우드 영화에서 그리는 디스토피아로서의 미래는 이들 작가들의 상상력이 결코 자본주의를 그리고 지배계급의 폭력을 뛰어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들에 의해 조장되는 대중들의 공포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구체제가 조장하는 무지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단결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른 세상을 위해서는 혁명적인 단절이 필요하다. 조직된 힘으로 지배계급이 독점하는 폭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학으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행동만이 구체제의 공포를 일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계급의 이윤과 제국주의의 핵전쟁 능력 향상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발전과 진보를 위해 쓰일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모두 분투하자. 그래야만 미래를 위한 산고를 단축해낼 수 있다.


1) 백봉삼, 우리가 알아야 할 인공지능 현주소 9가지―2040년이면 AI가 인간보다 똑똑할 것””.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229093944>

2) MBC 다큐스페셜, 세기의 대결 이세돌 VS 알파고, 2016년 3월 14일 방송.

3) 예를 들어 바둑판을 좌표로 표현할 때 첫수를 (4, 4), (4, 16), (16, 4), (16, 16) 중 어느 곳에 착점할지라도 그 의미는 같다. 그런데 바둑판의 정중앙 좌표 (10, 10) 천원(天元)은 단 한 곳만 존재하므로 수치는 정확하게 4분의 1로 감소하지는 않는다.

4) 수순(手順) 진행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로서만 상태를 판단하는 방식은 이미 17세기 초에 일본의 바둑 명인 나까무라 도세끼(中村道碩)에 의해 수나누기(수할론(手割論) 혹은 배수론(配手論))이라는 방식으로 고안된 바 있다.

5) 바둑의 패는 바둑 진행의 경우의 수를 늘려주긴 하지만 바둑판 위의 상태의 수를 더 늘리지는 못한다. 또 바둑판의 상태에 사석(死石)이라는 변수는 크게 고려할 요인이 되지 못한다. 특히 알파고는 영토와 반상위의 살아 있는 돌만을 자(子)로 계산하는 중국 바둑룰에 기반한 알고리즘이므로 사석의 숫자는 무시된다.

6) 국면에 따라서는 단 몇 군데밖에 적합한 다음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또 다음 수의 후보지가 단수밖에 없는 장면도 있다.

7) 암호를 해킹하는 과정에서 조합가능한 문자열 전수를 대입하는 무차별 대입 공격이 대표적이다. 이 방법은 시간과 자원이 충분하다면 가장 높은 정확도를 보장하는 탁월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복잡도가 증가할수록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현 시대의 상용화된 데스크톱 컴퓨터로도 숫자로만 된 8자리 암호를 푸는 데에는 단 1초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알파벳 대소문자와 숫자와 특수문자를 모두 이용한 무작위적 12자리의 암호라면 슈퍼컴퓨터로부터도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단 억지기법으로부터 안전한 암호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보안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 및 여타의 위협으로부터의 보안성을 획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바둑보다 경우의 수가 훨씬 적은 체스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 못하다. 단 이것은 현재의 기술수준에서의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일 뿐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미래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8) 배태일, 이세돌:알파고, 누가 이길까?―인간:컴퓨터 대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사이버오로≫, 20016. 3. 6.

9) 최창현, 국산 바둑 SW 돌바람 개발자가 본 인공지능 바둑의 역사―이세돌과 대국하는 알파고, 출생의 비밀, ≪동아사이언스≫, 2016. 3. 8.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10741>

예를 들어 정석책에 없는 수를 둔다거나 데이터 베이스를 활용할 수 없는 중반전에 돌입하면 인공지능은 대단한 혼란을 일으키면서 엉뚱한 수를 남발한다. 패와 같은 복잡한 싸움이 벌어지면 더욱 처참한 결과가 벌어진다.

10) 이 방식은 원주율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알고리즘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발생된 난수를 정밀하게 조정해야 오차를 줄일 수 있다. <http://blog.naver.com/anscjsrhks/208831495>

참고로 미항공우주국(NASA)이 달착륙과 관련한 계산을 할 때 원주율의 소수점 이하 5자리 정도만 이용하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1969년 당시 미항공우주국이 보유한 모든 컴퓨터의 능력은 현재 스마트폰의 성능에도 미치지 못한다.

11) https://www.lancaster.ac.uk/pg/jamest/Group/intro2.html

12) 배태일, 앞의 글.

13) 부르주아 사회에서 여론이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테제는 여기서는 아주 잠시만 논외로 하자.

14) http://senseis.xmp.net/?KimMyungwan

15) 접바둑이란 실력차가 나는 상대 간의 대국에서 하수(下手)가 치석(置石)을 미리 배치해 두는 바둑을 뜻한다. 이 치석의 숫자를 치수라고 하는데 9점 치수라면 추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 100집 정도는 미리 확보하고 두는 바둑으로 볼 수 있다. 즉 9점이란 치수는 현격한 실력차를 보여 주는 것이다.

16) 9점에서 4점으로 치수가 줄어든 것은 대단한 발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프로그램과 인간의 실력차는 상당한 것이었다. 대등한 조건에서 대국하는 호선(互先)바둑에서 흑번 선착수의 이점을 상쇄하기 위해 공제하기 위해 6집반 혹은 중국룰 3과 3/4자(한국 바둑룰로는 7집반에 해당)의 덤을 공제한다. 이때 덤 수치가 단 한 집 증감함에 따라 초반 포석 양상이 확연하게 바뀐다. 덤이 없는 정선(定先) 치수라면 분명한 실력차를 보여주는 징표가 된다. 4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참고로 알파고 이세돌 대결 이후에 등장한 현재 최신 버전의 젠은 알파고나 프로기사에 비견할 실력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괄목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17) 윤앙섭, [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18> 북한 바둑 프로그램 은별 몇 단인지 아시나요?, ≪동아일보≫(인터넷판), 2014. 8. 26.; 최병준, 김찬우 평양방문―은별(I-Silverstar)을 확신한다!’”, ≪사이버오로≫, 2006. 10. 14.

18) 배태일, 앞의 글.

19) 김수광, 1조의 천제곱년 지나도 먼지 만큼이라니―인공지능 바둑, 그 미래에 대한 단상, ≪사이버오로≫, 2014. 2. 14.

20) 현재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인공지능도 체스 챔피언의 실력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21) 물론 구글의 알파고는 단순히 바둑 정복만이 목표가 아니라 막대한 이윤을 얻어낼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22) 인공신경망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모습은 존재와 사유에 대한 유물론적인 접근이 올바른 것임을 확인해주는 지표임이 분명하다.

23) 김수광, 스스로 바둑을 깨달은 인공지능 알파고 -1-, ≪사어버오로≫, 2016. 2. 18.

24) World Economic Forum, WEF. 매년 연례 총회를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기에 흔히 다보스 포럼이라고 부른다.

25) 조훈현은 또 어떠한가? 싸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위해 바둑황제가 미제국주의와 새누리의 나팔수로 거듭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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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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