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17)

문영찬 | 연구위원장

[목차]

머리말

제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쓰딸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ㆍㆍㆍ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6장 철학과 종교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9. 알튀세르, 발리바르

알튀세르, 발리바르는 20세기 중후반의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이들은 1950년대의 쓰딸린에 대한 탄핵, 그리고 이어지는 중-쏘 논쟁을 배경으로 서유럽의 공산당과 맑스주의자들이 겪었던 이론적 혼란을 표현하고 있다. 1960년대는 기존의 맑스주의(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자로서, 그리고 1970년대는 세계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이 가시화되고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유러꼬뮤니즘으로 전환하는 것이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자로서 역할했다. 그리고 1980년대는 이른바 맑스주의의 전화, 역사적 유물론의 전화를 내세우면서 계급투쟁노선의 청산, 맑스주의의 알튀세르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알튀세르가 이론적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쓰딸린에 대한 탄핵과 중-쏘 논쟁이 세계 사회주의 운동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알튀세르의 초기의 이론적 저서라 할 ≪마르크스를 위하여≫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나타났다. 그는 쓰딸린을 교조주의라 규정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쓰딸린 탄핵 이후 유행이 된 맑스주의 내에서 휴머니즘의 조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러한 맑스주의적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과정에서 휴머니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알튀세르는 ≪경철수고≫ 등 맑스의 휴머니즘이 나타난 저작들은 미성숙된 것으로서 ≪자본론≫ 등 성숙기의 저작과 구분되며 이렇게 청년 맑스와 성숙기 맑스는 문제틀에서 명확히 구분되며 그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으며 그 단절은 1845년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알튀세르를 특징짓는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초기 맑스와 후기 맑스의 차이를 고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나 그것은 과도하고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먼저 알튀세르의 자신의 입장을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특수한 차이의 문제는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지적 성장에 있어서 새로운 철학 관념의 등장을 알리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가리는 문제 ― 그리고 그 단절의 정확한 지점과 관련된 문제의 형식을 띠고 있다. …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전의 철학적(이데올로기적) 의식에 대한 비판으로 내놓았으며 그의 생전에 출간하지 않았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 스스로가 자리매김한 바로 그 지점에서 사실상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그리하여 그 인식론적 단절은 마르크스의 사유를 크게 두 개의 근본적인 시기로 나누는데, 그 하나는 1845년 단절 이전의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시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1845년 단절 이후 과학적인 시기이다.1) 이렇게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알튀세르가 맑스를 이해하는 기본적 개념이다. 맑스를 이렇게 인식론적 단절 이전의 맑스와 이후의 맑스로 나누는 것은 매우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더구나 앞서의 시기는 이데올로기의 시기이고 이후의 시기는 과학의 시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흑백논리에 가까운 것이다. 인식론적 단절 개념 자체를 고찰하기에 앞서 우선 이데올로기와 과학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보자. 이데올로기는 보통 허위의식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개념과 과학이라는 개념은 대립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어떠한가? 그것은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과학인 것, 즉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맑스주의는 허위의식이 아니라 진정한 것, 즉, 과학적 이데올로기이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와 과학은 대립될 수 있지만 그것을 절대화시키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알튀세르는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의 이전의 철학적 의식의 청산이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이것이 인식론적 단절의 증거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편협한 접근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저작 자체는 맑스와 엥겔스가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틀을 자기정립한 저작이다. 즉 인간의 역사는 물질적 삶과 그에 의해 비롯되는 교통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문제의식이 그 저작에서 정립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이전의 철학적 의식의 청산을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인식론적 단절을 의미하는가?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에서는 이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요, 그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맑스가 이미 시민사회에 대한 해부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발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철수고≫에서는 소외의 개념과 더불어 경제학에 대한 고찰이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물질적 삶이 인간 역사의 관건적 요소라는 문제의식이 정립되었던 것이다. 즉, 이 과정은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럼에도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소위 문제틀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즉, ≪독일이데올로기≫ 이전에는 포이에르바하의 문제틀, 영향이 지배했으나 이를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비로소 벗어버렸다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포이에르바하의 문제틀, 혹은 사고틀을 벗어던지고 역사적 유물론의 사고틀을 세웠다는 것 자체는 맞는 것이지만 그것을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비연속성만 강조하고 연속성의 측면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것은 인식에 있어서 일종의 비약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인식에서 비약을 단절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간의 지적 사유를 포함한 이 세계의 모든 운동은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통일이다. 맑스는 헤겔에서 출발하여 포이에르바하를 통해 유물론자로 변신하고 정치적으로는 혁명적 민주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로 변모해갔고 그 과정에서 이론적으로는 인간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의 수립, 역사적 유물론의 정립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은 한편으로 비약의 과정(비연속성)이면서 동시에 연속적인 과정이다. 이렇게 볼 때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비변증법적 개념이며,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향한 운동의 과정을 중간에서 절단시키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심지어 인식론적 단절 이전의 청년 맑스는 진정한 의미의 맑스가 아니라고까지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작을 참작해보면 절대로 마르크스의 청년기가 마르크스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인데, 적어도 그 말이, 모든 역사적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 젊은 독일 부르주아의 변화가 사적 유물론의 원리의 적용으로 계발되었다는 뜻이라면 말이다.2) 청년 맑스는 맑스가 아니다?! 문제틀이라는 개념,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맑스를 절단내고 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주장은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로스테스의 침대3)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틀에 맞춰서 청년 맑스를 잘라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이러한 주장이 우연한 것이 아니다. 알튀세르는 구조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상정하는 구조 혹은 문제틀에 맑스를 끼워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기 때문에 그는 맑스에게서 헤겔적 요소 즉, 변증법적 요소를 잘라낸다. 알튀세르는 맑스가 거꾸로 선 헤겔의 변증법을 바로 세웠다는 주장을 한 것을 근거로 하여 맑스의 변증법과 헤겔의 변증법을 구분하는데 그 과정에서 변증법의 핵인 모순 개념을 기각하고 나아가 지양, 부정의 부정 등의 개념을 기각한다. 그러면서 변증법의 모순 개념을 구조 개념으로 전환시키는데 이는 사실상 맑스에게 존재하는 변증법의 요소를 거세하고 맑스주의를 앙상한 구조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우선 변증법의 모순 개념이 구조 개념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추적해 보자. 알튀세르는 모순 개념을 단순한 것으로 치부한다. 사실 은유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엄격한 본질로서 헤겔적 모델을 취한다면, 우리는 그 모델이 그 두 개의 대립항을 지닌 단순한 과정, 곧 레닌의 언급으로 환기되는 바, 두 대립항으로 나뉘어지는 그 단순한 통일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이와 같이 알튀세르는 통일성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대립항이라는 헤겔적 모순 개념을 단순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그에 대해 구조 개념을 대치시킨다. 즉 단순성은 오로지 하나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단순한 범주의 보편적 존재는 결코 근원적이지 않으며 긴 역사의 종점에서만, 극단적으로 차이 지워진 한 사회적 구조의 산물로서 출현한다는 것, 그래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관계하는 것은, 본질이거나 범주인 단순성의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구체성들, 즉 복잡하고 구조화된 존재들과 과정들의 존재라는 것, 이것이 바로 모순에 대한 헤겔적 모태를 영원히 거부하는 근본적 원리이다.5) 통일성 속의 대립이라는 헤겔적 모순은 단순한 것이며 현실은 복잡한 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것, 구조화된 과정이라는 것이 알튀세르의 주장인데 이는 사실상 변증법의 모순 개념을 기각하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는 모순 개념보다 구조 개념이 현실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현실은 복잡하고 구조화된 존재와 과정이라는 것이 그가 모순 개념에 대치시키는 개념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두 개의 대립항의 통일이라는 모순 개념이 단순하며 그리고 복잡화된 구조라는 개념이 현실을 더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알튀세르가 여기서 잊고 있는 것은 운동이라는 개념이다. 현실은 운동이며 변화라고 본다면 구조라는 개념은 적절성을 잃는다. 구조라는 개념은 고정된 일정한 틀인데 그 틀로는 운동과 변화라는 과정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단순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모순이라는 개념은 운동의 원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여전히 살아있는 개념이 되며 그 외 변증법의 많은 개념들과 법칙들은 운동과 변화로서의 현실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것으로서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사실 구조라는 개념은 변증법의 주요 개념인 제 물질, 대상의 상호연관이라는 개념에 종속되는 개념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상호연관 질서의 하나를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구조라는 개념은 유효하다. 그러나 구조라는 개념으로써 운동과 변화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운동의 원천으로서 모순 개념이 기각될 수는 없다.

이렇게 헤겔에 대한 공격을 통해 맑스에게서 변증법을 거세하고 있는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헤겔 변증법의 모태가 폐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 고유의 유기적 범주들이 그것들이 특수하고 실증적으로 결정된 것인 한 그 모태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없다는 것, 특히 단순한 근원적 통일성이라는 테마를 팔아먹는 범주들, 즉 유일한 전체의 분열, 소외, 대립항들을 결합시키는 추상(헤겔적 의미에서), 부정의 부정, 지양 등의 범주들이 그렇다는 것은 명백하다.6) 알튀세르는 이렇게 모순 개념을 기각하고 그것을 구조 개념으로 대체하면서 지양, 부정의 부정 등의 변증법의 개념을 기각한다. 이는 헤겔에 대한 공격을 통해 맑스에게 존재하는 변증법의 개념들을 사실상 거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양의 개념을 승인하지 않고 운동을 사고하는 것이 가능한가?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지양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승인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란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7) 이와 같이 맑스는 지양의 개념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고 더구나 그 개념은 여기서 운동의 본질을 가리키는 매개로 사용되고 있다. 즉, 지양의 개념 없이 맑스주의 운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양은 긍정의 계기를 내포한 부정의 의미로 흔히 쓰인다. 또한 지양은 통일성 속의 대립을 가리키는 모순의 운동을 통한 새로운 질의 산출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지양의 개념 없이 운동의 발전을 사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새로운 사회의 산출을 사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양의 개념은 알튀세르의 구조 개념으로는 도저히 대체될 수 없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러한 지양의 개념을 맑스에게 존재하는 헤겔적 요소라 치부하면서 거세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필두로 한 도식주의는 이렇게 맑스에게서 변증법을 거세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알튀세르는 맑스에게서 변증법을 사실상 거세하면서 맑스주의 변증법의 진정한 내용은 중층결정화된 모순이라고 한다. 통일성 속의 대립이라는 모순 개념은 단순한 것으로서 거세되지만 현실의 복잡한 구조는 중층결정화된 모순 개념에 의해 설명된다고 한다. 그러나 중층결정화된 모순 개념은 하나의 과정, 구조에는 여러 차원의 결정요인이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으며 거기에서 모순 개념은 변증법적 성격이 상실되고 있다.

그러면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의 진정한 차이는 무엇인가? 먼저 헤겔과 맑스는 변증법을 대상의 상호연관과 변화, 운동의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차이는 헤겔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개념의 자기운동을 가리키는 관념의 요소이지만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관념뿐만 아니라 현실의 제 물질과 대상의 운동의 과정, 연관, 변화를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부정의 부정은 헤겔에게 있어서 개념의 자기운동으로서 일종의 논리적 맥락이지만 엥겔스는 부정의 부정을 현실의 제 대상의 발전의 경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즉, 헤겔 변증법과 맑스, 엥겔스 변증법의 차이는 개념의 자기운동으로서 관념의 변증법인가, 현실의 제 물질의 연관과 운동으로서 변증법인가의 차이이다. 그런 점에서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거꾸로 세워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 알튀세르가 소위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절단시켰던 청년 맑스의 의미, 나아가 맑스주의에서 휴머니즘의 문제를 고찰해 보자. 알튀세르는 청년 맑스의 휴머니즘을 미성숙의 징표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진정한 맑스주의가 아니므로 맑스주의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본다. 알튀세르의 이러한 주장은 쓰딸린 탄핵 이후 이른바 해빙기 속에서 ≪경철수고≫ 등 맑스의 초기저작이 주목받으면서 소외, 인간주의 등이 유행이 된 것에 대한 반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굽어진 것을 펴다가 반대편으로 더 굽게 만들었다. 소외, 인간주의 등의 개념이 맑스주의의 본령이 아니라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타당하다. 맑스주의의 본질은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길을 과학적으로 밝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소외, 인간주의, 휴머니즘 등의 개념이 맑스주의에서 배척되는 것은 아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주의는 반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휴머니즘은 과학적 사회주의 정립의 과정에서 제거된 것이 아니라 지양된 것이다. 즉, 휴머니즘의 한계는 극복되지만 휴머니즘에 담겨 있는 긍정적 요소, 인간해방이라는 지향은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한 계급의 철폐라는 목표에 녹아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맑스주의는 반휴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지양된 상태로 내부에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적 접근을 떠나 역사적으로 보면 청년 맑스가 휴머니즘에서 출발하여 과학적 사회주의에 도달했던 역정은 21세기 지금을 살아가면서 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자와 민중이라면 누구나 거쳐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운동은 처음에는 억압과 착취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다. 또한 국가 폭력을 경험하면서 올바른 정치의 길을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이 땅, 이 세계의 노동자, 민중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러한 과정이 의미가 없는 것인가? 맑스에게서 청년 맑스를 잘라내는 알튀세르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의미가 없게 보일지라도 이러한 과정에 기초할 때만 인간해방의 목표는 계급대립의 철폐로 정식화된다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입장이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서 반휴머니즘을 알튀세르가 제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도식주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알튀세르는 쓰딸린 탄핵, 세계사회주의 운동의 분열이라는 상황에서 문제제기자로서 출발했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도식적인 입장을 제기한 것이다. 즉, 알튀세르는 출발점 자체가 잘못되었다. 알튀세르의 출발점이 잘못되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그의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이다. 그는 문제제기자로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예 이론적 문제제기를 노동을 통한 생산과 계급투쟁과 동열에 놓는 실천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은 철저히 잘못된 개념인데 왜냐하면 이 개념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파괴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천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론과 실천이 대립되어야 하는데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은 이론과 실천의 대립을 폐기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대한 자신의 거부를 다음과 같이 합리화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실천에 대한 평등주의적 개념화…와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의 관계는, 마치 평등주의적 공산주의와 과학적 공산주의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8) 실천에 대한 평등주의적 개념화!? 이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주장은 소위 이론적 실천을 하는 알튀세르 자신과 여타 민중들의 실천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인민 대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테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실천과 통일되지 않는, 통일될 가능성이 없거나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이론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노동자 계급의 운동과 맑스주의 운동에서는 그러하다. 평등주의적 실천이라는 알튀세르의 비하는 현실의 역사가 수많은 노동대중의 노동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하나하나의 계급적 실천과 계급투쟁에 의해 규정된다는 인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주의적 공산주의는 인민대중이 똑같이 노동하고 똑같이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평균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과학적 공산주의는 그러한 평균주의를 거부하고 능력에 따른 노동과 보수를 말한다. 이것은 과학인가, 아닌가를 가리키는 것이지 알튀세르처럼 실천인가, 이론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엉터리 논리로 소위 이론적 실천을 고집하는 알튀세르주의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레닌의 언급이 적절한 비판이 될 것이다. 실천은 (이론적) 인식보다 더 고차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성이라는 가치도 가지기 때문이다.9)

이렇게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통일의 길을 거부한 알튀세르는 진리의 검증기준은 실천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테제를 거부한다. 만약 제 과학이 진실되게 구성되고 발전한다면, 그것이 생산한 지식을 진리, 요컨대 지식이라고 선언하기 위해 외부적 제 실천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 최소한 가장 발전된 형태를 갖는 제 과학에 있어서는, 충분하게 습득된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 제 과학 자체가 그 지식의 타당성에 대한 기준을 제공한다.10) 실천과 분리된 이론, 그리고 이론 자체가 스스로를 검증한다는 이러한 주장! 이것은 일반 상식의 입장으로 볼 때 독단론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 과학과 철학이 발전하면서 정립해 온 진리의 개념에 역행하는 것이다. 근대과학은 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에 의해 검증하는 것을 통해 즉, 실천을 통해 진리를 정립해 왔다. 일반 과학에서 사정이 이렇다면 산업에서는 어떠한가? 생산력의 발전을 위한 많은 시도와 기술은 그것들이 실제 노동에 의해 만들어질 때 타당한 기술로 검증된다. 여기서도 노동이라는 실천이 진리의 검증기준이다. 사회운동에서는 어떠한가? 사회발전을 위한 많은 정책들의 올바름은 그것의 실행을 통한 검증 외는 올바름의 기준이 없다. 나아가 사회의 해방을 위한 많은 노선들은 역사적 계급투쟁이라는 실천에 의해 진리로 검증되는 과정을 거친다.

위에 언급된 레닌의 견해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실천에 의해 요구받는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고 실천에 의해 이론발전의 방향을 찾아내고 그리고 이론에서 실천으로, 실천에서 이론으로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통일과 지속적인 상승을 담보하는 것이 바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개념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을 통해 스스로를 자족적인 이론으로 선언하면 이론의 발전과 실천의 발전은 질곡에 처하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알튀세르의 비극적 행로는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의 오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튀세르의 또 하나의 커다란 오류는 맑스주의를 반역사주의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모든 저작에 녹아 있는 맑스의 역사적 접근을 피상적이고 모호한11) 것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면서 역사적 접근보다 구조적 접근을 제기한다. 헤겔이 역사를 체계적으로 개념화하면서 승화시켰을 뿐인 이 경험론을 우리에게 은폐하는 것을, 우리는 헤겔로부터 보유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간략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생산된 이 결과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사회적 전체의 발전이 고찰되는 역사의 개념화라는 비밀을 사회적 전체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전체의 구조가 엄밀히 음미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12) 이와 같이 알튀세르는 맑스의 무수한 역사적 접근을 도외시하면서 자신의 지고의 논리인 구조적 접근을 제기한다. 실천과 분리된 이론을 주장하는 알튀세르로서 인간 실천의 흐름인 역사는 진리에 접근하는 본질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맑스는 많은 저작에서 역사의 반영으로서 논리라는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그런 한에서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복잡한 것으로 상승하는 추상적 사유의 행정은 현실적인 역사적 과정에 조응한다 할 것이다.13) 추상적 사유의 행정, 즉 논리는 역사적 과정에 조응한다는 것은 논리가 역사적 과정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맑스가 위 인용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는 화폐에서 자본으로의 논리적 발전이 실은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화폐에서 자본으로의 현실적 발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맑스는 정확히 역사의 반영으로서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 또한 논리와 역사의 통일에 주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 나는 역사에 있어서 여러 철학체계들의 연쇄는, 이념이 갖고 있는 여러 개념 규정들의 논리적 영역에서의 연쇄와 똑같다고 단언한다.14) 철학의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논리의 역사적 흐름은 발전된 개념이 갖고 있는 내적 논리에서의 연쇄와 동일하다는 것이 레닌의 고찰이다. 이 또한 정확히 역사의 반영으로서 논리, 논리와 역사의 통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주의를 반역사주의로 파악하는 알튀세르에게서는 이러한 논리와 역사의 변증법은 먼 나라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와 단절된 알튀세르의 논리는 현실성을 결여한 논리, 역사의 반영이 아닌 자의적인 논리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알튀세르는 세계사회주의 운동의 분열과 혼란이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문제제기자로서 이론 활동을 시작했지만 많은 점에서 오류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가 일정하게 대중적 호응을 얻었던 것은 세계사회주의 진영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프랑스 공산당 등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유러꼬뮤니즘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지리멸렬해졌을 때 알튀세르는 많은 내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안이론인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비판작업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견지한 당적인 접근이 아니었고 알튀세르는 당적 실천의 외부에서의 비판자에 머물렀다. 이러한 점은 알튀세르가 운동에 기여하기보다는 운동의 파괴자로서 역할하게 했는데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소위 역사유물론의 전화, 맑스주의의 전화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계급투쟁 노선의 청산, 맑스주의의 청산의 길을 가게 된다.

알튀세르의 주저인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론을 읽는다≫는 1960년대의 저작인데 알튀세르는 그리고 그의 동료인 발리바르는 1970년대에 줄곧 저술활동을 강화한다. 1970년대 초반의 저술인 ≪레닌과 철학≫에는 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알튀세르는 레닌이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고 말한 것처럼 파악하는데 이는 의문이다. 알튀세르가 이와 같이 파악하는 근거는 물질은 철학적 범주이다라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명제인데 물질이 철학적 범주라는 견해가 곧 과학과 구분되는 철학의 독립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비약으로 보인다. 알튀세르는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것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물질이라는 과학적 개념의 내용은 발전과 더불어 즉, 과학적 지식의 심화와 더불어 변화한다. 물질이라는 철학적 범주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15) 레닌이 물질이 철학적 범주라고 주장한 것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레닌은 물질을 주관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규정에서 보이는 물질과 의식의 대립은 철학적 영역 내에서 의미를 가지며 물질과 의식의 대립을 인식론적 영역을 넘어 절대화하는 것은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는 점에서 레닌은 물질을 철학적 범주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을 들어 알튀세르는 레닌이 과학과 구분되는 철학을 논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철학은 과학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 또한 철학에서 과학적 영역을 배제하고 남는 것은 세계관이라는 것뿐인데 이 세계관조차 과학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 이후에는 과학적 세계관으로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과학과 구분되는 철학의 독자적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철학이라 불리는 무수한 영역들은 사실은 과학의 미발달을 근거로 사이비 지식을 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맑스와 엥겔스가 철학에서 이룩한 혁명의 본질은 철학이라 불리는 무수한 사변적 지식들을 극복하고 그것을 단순한 과학적 세계관으로 전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레닌이 철학과 과학은 구별된다고 주장했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물질의 과학적 개념이 변해도 철학적 범주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알튀세르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면 의식과 독립된 객관적 실재라는 물질에 대한 레닌의 규정 또한 새롭게 심화, 발전될 수도 있다.

알튀세르는 역사에 대해 주체가 없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먼저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자연변증법에는 역사란 주체 없는 과정이며, 역사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변증법은 절대자든 단순한 인간이든 그 어떤 주체의 작용은 아니기 때문에 역사에게는 철학적 주체도 철학적 기원도 없다는 논란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16) 역사에는 주체가 없다? 일반적으로 보면 이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알튀세르가 이 주장을 자연변증법을 논하면서 했다는 사실이다. 자연변증법은 자연에 존재하는 변증법을 말하는데 자연을 구성하는 많은 물질, 생물들이 변증법적으로 생성, 변화, 발전, 소멸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 또한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역사가 자연사적 과정이라는 것이 역사에는 주체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알튀세르가 혼동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 또한 자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연사적 과정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자연적 산물과 달리 의식을 가진 존재이고 따라서 목적을 세우고 자연에 대해 노동하고 개조하고 변혁해 가고 나아가 인간 사회 자체를 변혁한다. 즉, 인간은 목적을 가진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삶을 변혁하고 개척해 가며 이것이 곧 인간의 역사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분명히 역사의 주체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역사의 주체라는 점과 역사에는 인간과 독립된 자연사적인 발전법칙이 있다는 점은 상호배제하는 주장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의 자연사적 과정을 인식하면서 역사를 더욱더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 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알튀세르는 오류에 빠져 있는데 자연사적 과정으로서 역사와 목적의식적 주체가 만들어 나가는 역사를 기계적으로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필연을 인식하면서도 필연에 숙명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을 지양하여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를 주체 없는 과정으로 보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발리바르는 1970년대에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저작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를 논한다. 이는 1970년대가 서유럽에서 유러꼬뮤니즘으로의 전환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인데 서유럽 공산당들의 유러꼬뮤니즘으로 전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를 핵으로 한다. 발리바르는 쓰딸린이 1936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전 인민국가를 선언한 것으로 파악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36년 헌법은 전 인민국가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계급의 폐지를 선언한 것이었다. 즉, 누가 누구를이라는 절박한 계급투쟁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지주와 부르주아지의 계급으로서의 소멸, 착취계급의 소멸을 선언하고 정식화한 것이 1936년의 헌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와 전 인민국가를 선언한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1936년 헌법은 계급의 존재를 승인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농민이 계급으로서 구분되고 있다는 점을 담고 있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취하는 소유형태는 국유(전 인민소유)임에 반해, 농민이 취하는 소유형태는 집단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적 소유로서 차이가 있다는 것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의 존재의 승인이 착취계급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잔존하는 반혁명분자의 음모와 사보타지, 제국주의 국가의 위협 등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한편 발리바르는 사회주의에서 착취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주의 하에서 노동력은 여전히 상품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 사회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착취 없는 사회, 모든 형태의 착취가 소멸되는 사회가 아니다17), “… 사회주의는 항상 비상품생산으로의 전화과정에 있는 상품생산과 유통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생산양식이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 그 문제는 사회주의 하에서의 상품관계의 존재는 착취관계의 부활과 여전히 존재하는 착취형태의 발전으로의 항상적 경향을 낳는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노동력 자체가 여전히 상품이며 노동이 여전히 (부르조아 법의 지배를 받는) 임노동이라는 사실의 결과이다.18) 나아가 발리바르는 계획경제가 상품생산의 (절대적) 대립물이 아니라고 본다. 사회주의 제국에서의 5개년 계획과, 경제개혁의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이제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와 더불어 계획은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적 기간을 걸치는 사실상 상품생산 및 유통의 새로운(수정된) 형태이지 그 절대적 대립물은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19)

이러한 발리바르의 주장은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반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주장들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피상적인 고찰에 근거하고 있으며 논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먼저 착취의 문제를 검토해 보자. 사회주의 사회가 착취를 폐절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한 것이 아니다. 지주와 부르주아지라는 착취계급의 폐지가 사회주의 건설의 제일보라는 점에서 착취와 착취계급의 폐지 여부가 그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인가 아닌가를 결정한다.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이지만 착취의 폐지가 2-30년간에 걸쳐 완만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한 착취의 폐지가 이루어질 때만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건설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생산관계 하에서도 노동자계급과 농민이라는 계급구분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착취계급, 착취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과 농민이라는 계급의 구분의 소멸은 생산력의 발달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의 점차적인 극복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사회주의 하에서 노동력은 여전히 임노동이며 상품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노동력이 상품이며 따라서 임노동이 되는 것은 노동력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인민소유를 의미하는 국유와 집단농장 농민의 집단적 소유 하에서 노동자(농민)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회주의 국유기업에서 공장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 국가에 의해 임명되지만 기업에 대한 정치적 통제, 생산에 대한 통제는 기업의 노동자 대표 쏘비에트(쏘련) 혹은 대표자대회(모택동 당시의 중국)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업의 생산과 생산수단에 대해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통제하고 장악한다면 그것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자의 분리가 전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국유기업의 노동자와 집단농장의 농민들에게 기업과 농장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내적인 계급적 적대가 사라지고 공통의 목표를 갖게 되면 그것은 곧 공동체로서 역할하게 된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사회주의 하에서 노동력이 임노동이고 상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가 상품생산에서 비상품생산으로 이행하는 사회라는 것을 도식적으로 이해한 결과이다. 셋째, 계획경제는 상품생산의 새로운 형태라는 주장에 대하여. 상품생산은 사적 생산자가 화폐를 통하여 생산품을 교환하는 생산형태이다. 그러나 20세기 사회주의에서 국유기업과 집단농장은 사적 생산자가 아니라 집단적 생산자이다. 따라서 상품생산의 첫 번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또한 화폐를 통한 교환이라는 점을 보면 생산수단의 생산은 화폐를 통한 교환이 전혀 없고 국유기업에서 국유기업으로 직접 이전된다. 따라서 생산수단은 전혀 상품의 성질이 없다. 그리고 소비재 생산의 경우 국유기업과 집단농장에서 생산하므로 상품이 아니지만 화폐를 통해 이전된다는 점에서는 상품의 성질이 있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 소비재는 상품의 성질과 비상품의 성질이 동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사회주의 사회의 계획경제가 새로운 상품생산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에서 완전한 비계급사회로 이행하는 사회라는 주장의 논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계획경제는 소비재가 화폐를 통해 이전된다는 성질이 갖는 부작용, 즉, 횡령, 사적 생산의 도모 등 상품생산의 구래의 악습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로서 작용하게 된다. 20세기에 있었던 사회주의 사회에서 많은 경제적 논쟁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둘러싼 논쟁들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계획경제는 상품생산 사회의 고유의 특성인 생산의 무정부성을 제거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발리바르가 계획경제가 또 다른 상품생산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든 사회주의 사회에서 경제개혁은 1965년 쏘련에서의 꼬씌긴 개혁, 리베르만 방식의 개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개혁들은 사회주의기업의 자본주의적 방식으로의 운용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그 개혁 이후에는 상품생산적 성격이 조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 또한 발리바르와 유사하게 70년대에 사회주의가 자신의 고유한 생산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의 독자적인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생산양식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자체적으로, 그 자신의 고유한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신에 고유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그것이 배태된 자본주의와 그것이 최초국면이 되는 공산주의 사이의 모순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20)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모순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주의가 자신의 생산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회주의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립하는 생산관계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낮은 형태로 실현된 것이다. 즉, 국유와 집단적 소유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립하는 공산주의적 관계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본질은 착취의 철폐, 계급대립의 철폐라는 점에서 착취를 폐지하는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착취를 폐지를 함축하는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사회주의 사회에 고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같이 1960년대, 70년대의 쏘련의 경제가 혼란한 상황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에게 사회주의 사회의 의미, 사회주의 생산관계의 의미를 혼돈하게 하였다. 또한 70년대 프랑스 공산당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포기 선언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가 맑스주의의 근간인 계급투쟁 개념을 회의하고 해체하는 길을 걷게 했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를 선언한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 대회에 대한 글에서 낡은 시대가 지나갔으며 인민운동은 새로운 투쟁형태를 찾았으며, 여성, 청년, 많은 다른 층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투쟁을 시작하였고, 투쟁목표는 노동 및 생활조건, 주거관계, 교통수단, 위생, 학교, 가족, 환경으로 확산되었다21)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주장은 서유럽 공산당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와 유러꼬뮤니즘으로의 전환이 계급투쟁 노선을 회의하고 청산하고 소위 새로운 투쟁 형태들이라는 신좌파 운동으로 유럽의 운동의 대부분을 전환하게 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유럽에서 전통적인 계급투쟁을 축으로 하는 노선이 쇠락하고 여성, 청년, 소수자, 환경 등등의 계급투쟁을 떠난 저항의 담론이 계급투쟁 노선을 대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는 1980년대 들어서서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쇠락이 역력해지는 상황에서 맑스주의의 전화, 역사유물론의 전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곧 계급투쟁 노선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발리바르의 ≪역사 유물론의 전화≫는 맑스주의로부터 탈출22)을 화두로 던진다. 발리바르는 국가, 당,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기존의 맑스주의적 관념을 과감하게 해체해 가기 시작한다. 또한 맑스주의를 그 내부의 모순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 그 모순을 운동시켜 맑스주의를 해체하는 길을 간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계급투쟁에서 계급 없는 투쟁으로?23)를 제기하고 계급투쟁의 개념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배제에 대한 저항을 내세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영역에서 소수자들에 대한 배제의 문제가 계급투쟁의 개념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제에 맞선 저항이라는 담론은 알튀세르주의자들의 그동안의 현실적 실천을 지배해 온 담론이다.

80년대의 알튀세르주의자들은 청산주의의 모습을 과감하게 보인다. 이들은 심지어 맑스주의가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모든 과학주의에 대한 부정을 선언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하나의 세계관일 수 없으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또 영속적인 실험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열려진 체계이다. … 마르크스주의는 앞에 있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것에 대하여 긴장을 유지해야 하며 사회에 대한 확정적 법칙들을 정식화한다고 주장하는 모든 과학주의를 거부해야 한다.24) 세계관 그리고 과학주의에 대한 거부! 이것은 사실상 맑스주의의 핵심을 청산하는 것이다. 모순과 계급투쟁, 그리고 사회적, 역사적 운동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청산하고 역사의 발전법칙에 대한 관점을 청산하고 난 다음에는 맑스주의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이들 청산주의의 길을 걷는 알튀세르주의자들 스스로는 알튀세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러나 알튀세르의 기여에는 다른 종류의 기여,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윤리적 가치가 있는 기여도 있었다. UNAM의 연구원인 프란시스코 테 라 페나가 이를 잘 요약해 말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맑스주의는 우리가 자신을 회개한 전(前)공산주의자로 선언해야 한다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맑스주의 담론을 내부에서 해체하도록 가르쳐 주었다.””25) 바로 이것이 알튀세르가 걸어온 길의 본질이다. 맑스주의 담론을 내부에서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편하게 해체하도록 해 주는 것으로서 알튀세르주의! 이것이 이론적 실천의 결론이고 쓰딸린을 교조주의로서 규정한 것의 결말이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이론적, 정치적 궤적의 결말은 씁쓸하기만 하다. 쓰딸린 탄핵과 중-쏘 논쟁의 소용돌이, 그리고 쏘련의 쇠락이라는 조건에서 문제제기자로서 출발했지만 이들은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를 선언하자 청산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궤적은 우연이 아니라 출발점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론적 실천이라는 독선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면서 맑스를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형이상학으로 절단내고 맑스의 인간해방의 알갱이를 반휴머니즘이라는 개념으로 공격하고 또 맑스에게 존재하는 혁명적 운동의 정수인 변증법을 거세하여 그것을 구조라는 앙상한 개념으로 대체하면서 맑스주의를 해체하는 길을 걸은 것이 이들의 경로이다. 이러한 알튀세르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한편으로 20세기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교훈을 정확히 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비롯한 가장 근본적인 맑스주의의 기본 원칙을 현실에 녹여내는 것일 것이다.


1)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백의, pp. 34-37.

2) 같은 책, p. 97.

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로스테스는 행인을 유인하여 자신의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랐고 키가 작으면 키를 늘려 죽였다고 한다. 이 신화는 대상을 일정한 틀에 끼워맞추는 것을 비판하는 것인데 신화에 나오는 그 침대는 형이상학적 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4) 알튀세르, 앞의 책, p. 227.

5) 같은 책, pp. 226-227.

6) 같은 책, p. 229.

7) 맑스ㆍ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 215.

8) 알튀세르,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 p. 72.

9) 레닌, ≪철학노트≫, 논장, p. 169.

10) 알튀세르, ≪자본론을 읽는다≫, p. 74.

11) 같은 책, p. 117.

12) 같은 책, pp. 123-124.

13) 맑스,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한 기본 개요≫의 서설, ≪맑스ㆍ엥겔스 저작선집≫ 제2권, p. 463.

14) 레닌, 앞의 책, p. 199.

15) 알튀세르, ≪레닌과 철학≫, 백의, p. 58.

16) 같은 책, p. 130.

17)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p. 139.

18) 같은 책, p. 149.

19) 같은 책, pp. 149-150.

20) 알튀세르, ≪당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 새길, p. 44.

21) 같은 책, p. 24.

22) 발리바르, ≪역사유물론의 전화≫, 민맥, p. 16.

23) 같은 책, p. 253.

24) 장-마리 뱅상,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도서출판 이론, p. 69.

25) 페르난다 나바로, ≪철학적 맑스주의≫, 새실 아카데미, p. 139.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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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둘은 소위 평등파들(가령 최*과 같은!)이 좋아하는 부류들인데 역시나 청산의 궤적을 계속, 지속하는 상황입G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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