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혹은 이른바 브렉씨트(Brexit) ― 누가 왜 유럽연합을 거부하는가?

채만수 | 편집위원

대공황 속에서 허우적대는 영국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경제

경기후퇴(景氣後退)를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영국의 가정마다 현찰을 소나기처럼 퍼부어라.1)

유럽연합 탈퇴로 결과가 밝혀진 지난 6월 23일의 국민투표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며,2) 이자율의 인하 등 8월 4일에 영국의 중앙은행이 취한 조치들이 아무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 논평의 제목이다.

8월 4일에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이 발표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9년 이래 처음으로 연간 0.5%에서 0.25%로의 이자율의 인하, 600억 파운드(약 90조 원) 상당의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여 기존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총액 4350억 파운드(약 652조5천억 원)로 확대하겠다는 계획, 또 다른 100억 파운드(약 15조 원)로 회사채를 매입하여 영국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계획, 1000억 파운드(약 150조 원)의 새로운 자금을 은행들에 공급하여 기본 대출이자를 낮추겠다는 계획, 내년의 영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유례없이 낮춘 것, 즉 향후 수개월 동안 성장이 거의 정체될 것이며 2017년과 2018년에는 브렉씨트 투표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할 것이라는 것 등등.3)

그러나 위 논평에 의하면, 이 날 취한 조치들이 영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조금만 인용해 보면,

경제는 점프스타트(jump start)4)가 절실히 필요하다. ― 이자율 인하는 지금껏 비참하게 실패해왔다(cutting interest rates has failed miserably). 그러니까 그 대신에 실제로 돈을 쓸 사람들에게 돈을 줘라.

정말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현찰을 줘라. 베풀어라. 연금을 올려라. 부가가치세를 낮춰라. 돈을 써버릴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들,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줘라. …

영국은 고전적인 유동성 함정5)에 시달리고 있다. 수요가 부족하다. 그런데도 목요일[8월 4일]에 잉글랜드은행이 한 일이라곤 비통해하고 브렉씨트 탓을 하면서, 타성에 젖어 파던 구멍들을 계속 파는 것이었다.

이자율 낮추기, 양적 완화 그리고 은행을 위한 더 많은 현찰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것들이다. 그들 정책은 대략 7년 전부터 시행되어 왔다. 그것들은 실패해왔고, 실패해왔고, 실패해왔다(They have failed, failed, failed).6)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여기 이 주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브렉씨트 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 훨씬 전부터 영국경제가 대공황 혹은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 있었음을, 간접적이지만, 지적하고 있는 점이다. 지금껏 비참하게 실패해왔다거나, 파던 구멍들을 계속 파고 있다거나, 7년 전부터 정책들이 실패해왔고, 실패해왔고, 실패해왔다거나 하는 말들이 모두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즉 영국 경제가 장기간 대공황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국민투표가 브렉씨트로,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결말이 난 직접적인 배경이다.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장기간에 걸친 공황이 가난한 사람들, 즉 노동자계급의 실업과 빈곤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켰고, 바로 그렇게 실업과 빈곤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이른바 브렉씨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켜본 것처럼, 6월 13일의 국민투표가 브렉씨트로,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결론이 나자 전 세계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 언론이 모두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양 비명을 지르고 나섰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나선 것도 이와, 즉, 대공황으로 인해 그 실업과 빈곤의 고통이 배가된 노동자들에 의해서 그 브렉씨트가 결정되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공황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라 사실상 자본주의 세계경제 전체이며, 그 때문에 대공황으로 인해 그 실업과 빈곤의 고통이 더욱 격심해지고 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이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것을 이번 영국의 국민투표, 브렉씨트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해서는 특히 유럽연합 자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브렉씨트(Brexit)라는 식의 신조어의 단초를 열었던 그리스의 이른바 그렉씨트(Grexit), 즉 2010년 이래 가장 격심한 공황의 고통을 받고 있는 그리스의 유로존(Euro zone) 탈퇴가 교활한 반(反)노동자ㆍ인민 집단인 시리자(SIRIZA), 즉 급진좌파연합(!!!)의 집권으로 설왕설래로만 끝났음에7) 비해서, 브렉씨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이 됨으로써 그동안 사실상 그저 호사가들의 한담(閑談)으로 치부되던 프렉씨트(Frexit) 즉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이나, 넥씨트(Nexit) 즉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등등이 자못 무게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유럽연합 자체의 해체 가능성마저 부인만은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경향신문≫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EU 지도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도날드 투스크 상임의장은 독일・프랑스 정상 등과 잇달아 접촉했고, 유럽의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쇼크는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유럽에 마지막 일격을 날린 것일 뿐이어서, 갈등과 균열을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유럽을 들쑤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는 가까스로 봉합됐으나 영국의 결정을 계기로 유럽 곳곳에서 이탈 도미노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8)

브렉시트 쇼크는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유럽에 마지막 일격을 날린 것일 뿐!? ― 아주 흥미 있는 관찰이다. 그러나 무엇이 유럽(연합)을 어떻게 갈라질 대로 갈라놓고 있는가 하는 데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브렉씨트는 극우파의 선동의 결과인가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언론은 대개,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브렉씨트로 결론이 난 영국의 이번 국민투표의 결과를 대재앙(catastrophe)으로 규정하면서, 그 이유를 그것이 바로 이민자・난민에 적대적인 극우의 승리이기 때문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예컨대, ≪경향신문≫의 위 기사는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 중의 하나의 반응에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관점을 싣고 있다.

가디언[The Guardian ]은 유럽 전역의 극우파들이 브렉시트에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극우파는 네덜란드의 EU 국민투표를 주장했고,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결선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극우파 민족전선(FN) 마린 르펜 대표도 영국 투표 결과를 반겼다. 유럽 정치에서 극우파가 득세할 최대 호기를 맞은 셈이다.9)

그런데 브렉씨트를 지지하고 환호한 것이 과연 극우파들뿐일까? (이에 대해서는 좀 뒤에서 보기로 하자.)

자신의 극우본색을 숨기려는 국내 극우언론의 반응들, 즉 이번 브렉씨트 결정을 극우파의 선동이니 승리니 하고 떠들고 있는, 극우언론의 자못 비판적인 반응들이야 으레 그러하려니 하고 넘어가자. 그러고 나서 이번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에 대한,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언론의 반응만을 잠시 살펴보자.

영국 현지에 체류 중인, 영남대학교의 김보영 교수는 ≪프레시안≫에 이렇게 쓰고 있다.

… 이번 국민 투표는 감성적으로는 탈퇴, 이성적으로는 잔류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반이민 정서가 높다고 하더라도 보다 분명해 보이는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했다. …10)

 

분명해 보이는 경제적 위험이라는 이성을 누르고 반이민 정서라는 감성이 승리했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번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잔류가 아니라 탈퇴를 선택한 사람들은 반이민 정서에 지배되었다는 주장이다. 더 들어보자.

왜 영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 안보 불안을 감내하면서도 탈퇴를 선택했을까. 그 답은 이 결과에 최대 수혜자로 부상한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 나이젤 패라지(Nigel Farage) 대표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유럽연합 탈퇴가 공식 발표된 직후 의회 앞에서 영국의 주류 정당은 그동안 이민자들로 인해 병원 약속이 밀리고, 학교에 자리가 없고, 소득이 떨어지는 대중들의 고통을 외면했다고 일갈했다.

물론 그 발언에서 결정적으로 틀린 한 가지가 있다. 대중들의 고통의 원인은 이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운영하는 영국 병원이, 지방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현 정부의 극심한 긴축 재정에 원인이 크다.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민자는 그렇게 세금 혜택을 받는 것보다 그들이 내는 세금이 더 많다는 것이 여러 통계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또 이민자가 임금에 주는 영향도 최저 임금 수준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여러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도 말한다.

기존 정치가 이들을 외면하는 동안 그 분노는 이민자와 같은 엉뚱한 희생양으로 향하고 있다. 이번 결과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최근 미국의 트럼프를 비롯하여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정치와 맞닿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아주 고약스러워진다. 위 글의 필자인 김 교수 자신은 이민자가 대중들의 고통의 원인이 아님을 알고 있는 데에 비해서 브렉씨트에 찬성한 영국의 대중은 그것을 모르고 있으며 단지 극우 성향의 선전・선동에 놀아났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렉씨트는 결국 극우의 프로젝트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무지의 프로젝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 글의 필자인 김 교수가 왜 영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 안보 불안을 감내하면서도 탈퇴를 선택했을까 하고 물을 때, 그리고 글의 제목이 영국 국민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일 때, 이는 그의 사고(思考)가 속류적・비과학적・국가주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국민은 대략 48 대 52의 찬반으로 나뉘었고, 브렉씨트를 결정한 것은 분열된 그 국민 가운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투표자들 가운데 52%를 차지한 사람들, 주로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었지 영국 국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로서의 영국 사회의 적대적인 계급적 분열을 보지 못하고 있고, 보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브렉씨트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적대적인 계급적 분열이 있는 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보려 하지 않는 언설(言說)! 이야말로 그의 사고를 가리켜 속류적・비과학적・국가주의적이라고 하는 소이이다. (물론 이러한 몰계급적・국가주의적 사고방식, 따라서 속류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은 부르주아적・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들・논객들 일반의 사고방식이지만….)

김 교수는, 바로 이러한 속류적・몰계급적・비과학적・국가주의적 사고 때문에, 그가 왜 영국 국민은 경제적 불안, 안보 불안을 감내하면서도 탈퇴를 선택했을까 하고 물을 때, 사실 영국 국민은 탈퇴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신년이 되면 대통령이 지난 한 해 동안 뜨거운 지지를 보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할 때 그(녀)를 뜨겁게 반대한 엄청난 다수의 (법률적・형식적) 국민들, 즉 대부분의 노동자・인민은 국민이 아닌 것처럼, 저들이 국민이라고 할 때 그것은, 대략 말해, 자본가들을 가리키고, 경제적 불안이니, 안보 불안이니 할 때 그것은 바로 그들의 불안인 데도 말이다.

또 하나. 김 교수가 대중들의 고통의 원인은 이민자가 아니며, 국가가 무상으로 운영하는 영국 병원이, 지방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가 어려워지는 것은 현 정부의 극심한 긴축 재정에 원인이 크다고 말할 때, 그 자체로서는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할 때 그는 대중들의 고통의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악의 즉 의식적으로든 선의 즉 무의식적으로든, 함구하고 있다. 아니, 오도하고 있다. 대공황, 그리고 특히 그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탈퇴 진영의 공통된 주장은 세계화로 인해 악화된 일자리와 복지를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서구 복지 국가의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대공황과 세계 대전을 경험한 서구는 무너진 경제와 불안정한 삶을 모두 되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복지 국가를 건설하였고, 황금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세계화된 경제에서 지속성에 위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서구 사회는 세계화된 경제 아래 불안정한 경제와 무너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대안을 요구받고 있다. 새로운 복지 국가와 같은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지금과 같은 극우의 부상으로 더 불안해진 세계는 그 대가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자체가 아니라 소위 세계화이다! 그런데 세계화 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존재한 적이 있으며, 존재할 수 있는가?

또한 그는 다시 발발한 대공황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1930년대의 대공황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한가하게도 새로운 복지 국가와 같은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운운하고 있다. 그의 역사적 전망, 역사적 상상력이 얼마나 협소한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단언컨대, 김보영 교수가 몽상하는 새로운 복지국가 따위는 없다. 있을 수 없다. 대공황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자본과 그 국가에게는 새로운 복지국가 따위를 건설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고, 노동자계급의 경우 복지국가라는 일장춘몽은 한 번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기에 서유럽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던 복지국가는,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서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이른바 고도성장기 혹은 자본주의의 황금기 속에서, 그러니까 전례가 없는 대대적인 파괴와 살육에 힘입은 대호황 속에서 건설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것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에 대한 유화주의적(宥和主義的) 대응으로서 건설된 것이었으며, 대대적인 파괴・살육에 따른 대호황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저간의 사정이 그러한데도 새로운 복지국가 따위를 몽상하다니!? 다시 어찌 그러한 조건이 조성될 수 있겠으며, 또 그러한 조건, 즉 대대적인 파괴와 살육을 허용해야 하겠는가! 하물며, 또 한 번의 대전은, 제2차 대전 당시와는 그 질에서도 그 양에서도 말 그대로 천양지차인 현대의 병기체계로 미루어, 분명 사실상 인류 자체의 절멸을 의미할 터인데!

브렉씨트사회적 유럽 프로젝트의 위기?

     ― 혹은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이제 자못 진보적인 논조인 것처럼 보이는 한 기고를 검토해보자. 그리고 그것이 자못 진보적인 논조인 것처럼 보이는 만큼, 우리는 상당한 지면을 그것을 검토하는 데에 할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브렉시트(Brexit)가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정치적 사건인 한 이러한 정치적 사건의 배경과 교훈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11)인 만큼.

계명대학교의 임운택 교수는 역시 ≪프레시안≫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영국인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이 며칠째 전 지구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12)

여기까지는 무난하다면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영국인의 … 결정 운운이 그 자체로서는 역시 국가주의적 사고의 표현이지만, 이는 논의가 전개되면서 자본 대 노동의 문제로 해소된다.

다만, 며칠째 전 지구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고, 우선,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고 말할 때, 약간은 무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인 파장 혹은 영향과 당장의・단기적인 소용돌이 혹은 요동을, 특히 그 원인을 동렬에 놓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씨트가 미칠 장기적인 파장 혹은 영향은 현재 단지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한다. 즉, 잠세적(潛勢的, potential)일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어떤 현실로서 나타난다면, 그 주요한 원인의 하나는 그야말로 브렉씨트 그것일 터이다. 그러나 당장의 소용돌이, 특히 세계 금융 시장… 요동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경우 브렉씨트 결정은 단지 그 계기에 불과하고, 그 소용돌이요동의 주요 원인은 브렉씨트를 둘러싼 금융자본의 대대적인 투기이다. 생각해보라. 영국의 국민투표 그 자체를 통해서 변한 것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자는 것으로 그 결과가 나왔을 뿐이고, 그에 책임을 지고 수상을 비롯한 영국의 내각이 바뀐 것뿐이다. 더구나 그 국민투표의 결과대로 영국이 실제로, 다시 강조하건대, 실제로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제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수년 후에나 벌어질 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브렉씨트라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광란하듯 한 저 소용돌이요동을 금융자본의 투기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 소용돌이요동의 원인이 금융자본의 투기임을 간파하는 것은, 영남권 신공항을 가덕도에 건설하느냐, 밀양에 건설하느냐가 문제되었을 때 시의회나 도의회의 의원이니 지방 유지 혹은 언론인이니 하는 등의 허울을 쓴 땅투기꾼들이 열렬히 보여준 애향심의 실체, 특히 밀양으로의 유치가 실패했을 때 거기에 이해관계를 가졌던 땅투기꾼들이 보여준 분노에 찬 애향심의 실체를 간파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임 교수의 논의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시장의 즉물적 반응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국가 프로젝트를 넘어선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르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진다. 국가의 본질이나 기능 등에 관한, 문맥으로 보아 분명 몰계급적이고 따라서 비과학적・비현실적인 관념・사고는 차치하기로 하자. 그것은 그가 브렉씨트 결정으로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하고 있는 점에 비하면, 너무나 한가하고 추상적인 문제일 터이니까 말이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며 임 교수가 심히 애석해 하는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란 게 무엇인지, 그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1970년대에 보수주의자로부터 노조 국가라는 푸념을 들을 만큼 유럽의 전후 자본주의 질서는 강력하게 조직화한 노조의 힘에 기대어 국가별로 독특한 복지 국가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유럽의 개별 국가에서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쟁에서 패배하고 세계화라는 자본의 전략에 맞서기 위해 사민당, 녹색당 그리고 유럽의 거대 노조는 더 적극적으로 유럽이라는 사회적 공간으로 뛰쳐나가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반면,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유럽 보수 세력의 단일화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은 오랫동안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여기에서는 우선 그 경제적・정치적 이해나 노선을 달리하는 세 경향의 세력들이 언급되고 있음을 일단 확인하자. 첫째로는, 보수주의자・신자유주의 세력・자본, 둘째로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사민당・녹색당 그리고 유럽의 거대 노조, 셋째로는,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유럽 보수 세력의 단일화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 그런데 임 교수에 의하면, 이들 좌파 정당은 오랫동안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13)

또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은 위 인용문에, 한 번은 사회적 공간으로, 다음번엔 “‘사회적 유럽’”으로, 두 번 등장하는 사회적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똑같이 사회적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회적의 의미, 즉 사회적 공간이라고 했을 때의 사회적의 의미는 아주 평범한 그것, 즉 사전(辭典)에 의하면, 사회에 관계되거나 사회성을 지닌 정도의 의미이다. (그리고, 필자 임 교수에게는 실례가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위 인용문에서 사회적 공간이라고 할 때, 그 사회적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적 유럽’”이라고 할 때, 사회적의 경우는 그 의미도 앞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뿐 아니라, 거기에는 필자 임 교수의, 그리고 그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사민당・녹색당 그리고 유럽의 거대 노조나 그 지지자들의 세계관・역사관・정치적 노선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충 (현대) 사민주의적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유럽이란 사민주의적 유럽이고, 현대 사민주의가 독점자본가계급 좌파의 정치노선임을 감안하면,14) 사회적 유럽이란 결국 독점자본가계급 좌파 지배의 유럽이다. 그러한 한에서, 임 교수가 브렉씨트로 판명이 난 이번 국민투표의 결과 때문에 국민 국가 프로젝트를 넘어선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일정한 진실로 받아들인다. 단지 일정한 진실로?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로는, 위기에 봉착하긴 봉착했지만, 잠세적・부분적 위기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그리하여 더구나 심각한 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같은 글에서 자본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해오는 데 일정한 학습 능력을 획득 운운하고 있는바, 그런 학습 능력을 가진 (독점)자본인지라 실제의 브렉씨트도 단지 잠세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단행되더라도 그 이탈은 사회적 유럽 전체에서는 단지 부분적일 뿐이다.

한편, 위 인용문 속에서 임 교수는, 1980년대 이후 개별국가에서[의] … 패배더 적극적으로 유럽이라는 사회적 공간으로 뛰쳐나가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힘주어 대비시키고 있다. (필시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유럽이라는 사회적 공간은, 발생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유럽의 노동자・인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공간이고, 독점자본의 동맹이다.15) 따라서 거기에 건설될 수 있는 사회적 유럽이란 아무리 화려한 수사(修辭), 기만적 수사를 농하더라도 애초부터 독점자본의 유럽으로서의 (현대) 사민주의적 유럽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임 교수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사민당과 거대 노조의 선택은 시장의 유럽화에 대항하여 민주적 유럽을 지켜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으며, 그러한 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 에티엔 발리바르와 같은 유럽의 지식인은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다.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는 1997년 조인된 암스테르담 조약에 사회 헌장을 추가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더 이상의 커다란 진전은 없었다.

여기에서 임 교수가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는 1997년 조인된 암스테르담 조약에 사회 헌장을 추가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더 이상의 커다란 진전은 없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 정확한 것이 아니다. 암스테르담 조약에 추가된 사회 헌장이 개가라면, 그 후 유럽연합은 그러한 말의 성찬인 헌장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구속력을 가진 여러 사회적 지침들(social directives)을 통과시켜 회원국에 하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1999년의 기간제 고용 지침, 2000년의 평등고용 지침, 2002년의 파견노동 지침, 2003년의 노동시간 지침 등등. 실제로 이번 국민투표에서 EU 잔류 캠페인을 벌였던 노동당과, 영국의 노총인 노동조합회의(TUC)가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의 구체적 성과로, 그리하여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할 경우 위태로워질 10가지 노동자의 권리들로 내세운 것도 주로 그들 지침이 담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들이었다.

그러나 영국 노동자들의 경우 이들 권리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획득하고 있었던 것이고, 기간제 고용 관련이나 파견노동 관련과 같은 새로운 권리들은 사실은 제국주의 연합으로서의 유럽연합이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그 필요가 절실해진 것들이다. 말하자면, 유럽연합의 사회 헌장이라든가, 사회적 지침들에 의한 노동자들의 권리는, 죽음의 의사인 제국주의 연맹 유럽연합이 유럽의 노동자들의 혈관에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 신자유주의적 노동관행이라는 독극물을 계속 주입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그 독극물이 유발하는 고통이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경련・혁명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주입하는 지연성(遲延性) 항독제 혹은 마취제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유럽 운운하는 사민당이나 TUC는 그러한 것들을 EU 탈퇴 시 위태로워질 노동자들의 권리라고 부르지만, 그러한 권리들은 제국주의 연합으로서의 EU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가 격퇴된다면 전혀 문제조차 되지 않게 된다.16)

더구나, 유럽연합의 지침이란 것들은 강제성을 갖는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각국이 입법 절차를 거쳐 법률화해야 효력을 발휘한다. 그 때문에, ≪모닝스타≫의 정치 담당 편집자 헤일릿(John Haylett)이 말하는 것처럼,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해서 그 권리들이 저절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 권리들을 폐기하고자 하는 정부는 그 폐기를 위해서 동일한 입법 절차를 밟아나가야 하는 것이다.17)

참고로, 지금 우리가 인용하고 있는 임 교수의 기고에 붙은 브렉시트, 진짜 패배자는 유럽 좌파’”라는 제목은, 그것이 임 교수 자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프레시안≫의 편집 데스크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에 의한 것이든,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바로는, 임 교수 자신이 사회적 유럽이라는 프로젝트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것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지만, 그가 사민당과 거대 노조의 선택은 시장의 유럽화에 대항하여 민주적 유럽을 지켜내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였으며, 그러한 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 에티엔 발리바르와 같은 유럽의 지식인은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하였다고 할 때 우리는 더욱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잠깐 여담을 하나 하자면, 일찍이 맑스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 평평한 평야에서는 흙무덤도 언덕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우리 부르주아지의 천박함을 그들의 위대한 정신(großen Geister)을 척도로 삼아 측정해야 할 것이다.18)

여기에서 위대한 정신이란, 이런저런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노동자 역시 자본가로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19)을 가리킨다.

만일 임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위르겐 하버마스, 에티엔 발리바르와 같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사민당과 거대노조의 저 선택시도를 적극 지지했다면, 임 교수는 그들 유럽의 지식인[들]을 마땅히 맑스가 말하는 저 위대한 정신에 비유했어야 하지 않을까? 독점자본 지배 하의 유럽을, 더구나 제국주의 연맹 유럽연합을 민주적 유럽으로 파악, 그것을 지켜내겠다고,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민당과 [사민당 영향력 하의] 거대 노조의 선택시도를, 그러한 기만적 선택과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저 위대한 정신에 못지않은 비판적 지성의 발로일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임 교수는 이들 유럽 지식인[들]위대한 정신으로 고발하는 대신에 스스로 어느 지성 못지않은 위대한 정신으로 상승하다. 그 기만성과 자가당착에서만 수미일관한 사민당, 사민주의 노조관료들의 주장을 수미일관 지지・옹호하면서, 듬뿍 애정을 실으면서 말이다. 우선 들어보자면,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유럽 사민당과 거대 노조의 문제 운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브렉씨트라는 국민투표의 결과와 관련하여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 국가 프로젝트를 넘어선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라거나, 브렉시트의 진정한 위험은 사민당, 녹색당 등의 중도 좌파가 주도한 국제 연대의 실험으로서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라고 말할 때, 사민당・사민주의에 대한 이보다 더 진한 지지・옹호・애정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임 교수의 사민당・사민주의에 대한 이러한 수미일관한 지지・옹호・애정은 자연스럽게도 그 왼편의 정치적 조직들이나 정치적 노선에 대한 폄하를 수반한다. 앞에서도 우리는 임 교수가 어떤 근거에서인지,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은 오랫동안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20)고 말하는 것을 보았지만, 좀 더 예를 들자면, 이렇게 말한다.

… 가장 큰 변화의 조짐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아래서 급격히 진행되는 계급 구성의 변화이다. 유럽 전반에 걸쳐 반이민 전선에 앞장선 사람은 대부분 산업 사회의 시민적 규범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이다. 이들은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 시장화의 희생자로서 거대 노조의 통제(혹은 관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정규 일자리에 내몰리고, 사회적 안전망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지만, 정작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은 난민을 볼모로 잡아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펴는 포퓰리즘 극우 정당이나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매우 급진적인, 그러나 조직화된 노조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당이다.

브렉시트의 진정한 위험은 사민당, 녹색당 등의 중도 좌파가 주도한 국제 연대의 실험으로서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렇다고 더 급진적인 좌파의 브렉시트 찬성 의견도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민주적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2016년 6월 4일자 ≪가디언≫에 기고한 그리스 전 재무부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영국의 EU탈퇴 반대 의견은 바로 그러한 딜레마를 반영하고 있다.

위 인용문은 그 내용에서 역시 사민주의(옹호)자다운 자가당착을 수미일관 내포하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위에 인용자인 내가 강조한 부분을 보자면, 그 발언들은, 포퓰리즘 극우정당 운운과 상관없이, 분명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에 대한 폄하이고, 나아가 사실상의 매도이다.

그런데, 임 교수 머릿속의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21)은 누구일까?

문맥상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매우 급진적인, 그러나 조직화된 노조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당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형식상 이들이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임은 분명하다. 그 이름도 사민당이 아닌데다, 그 정강・정책도 그 표현만을 보자면, 전통적인 사민당들보다 좌익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뿐이다!

임 교수는 글의 모두(冒頭)에서 영국인의 브렉시트 찬성의 직접적이고 피상적인 이유는 … 운운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대해서도 그 본질적 성격을 들여다보았어야 한다. 그가 일견 매우 급진적으로 보이는 두 정당의 본질적 성격을 그렇게 들여다보았어도 그는 이들 두 정당을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으로 규정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정신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네 같은 평범한 정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시리자도, 포데모스도 현대 사민주의의 보다 더 교활한, 보다 더 기만적인 정당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이 말이 믿기지 않거든 시리자 (주도의 연립)정권이 지배하고 있는 그리스를 보라! 사실 시리자는 전임 정권이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이른바 트로이카(troika)가 강요한 반인민적 구조조정・재정긴축 정책들을 받아들인 것을 규탄하면서 등장하였다. 그런데, 집권 후 여러 쇼 끝에 위 트로이카가 새로운, 그리고 더욱 가혹한 구조조정・재정긴축 정책들을 제시하자 6월 27일 그것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선포, 7월 5일에 안 돼(No)!라는 인민의 의지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국민투표는 보다 더 반인민적이고, 보다 더 가혹한 구조조정・재정긴축 정책들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시리자(와 포데모스)의 정체이다!

아무튼, 한편에서는 피상적인 운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정작 반드시 검증이 필요한, 시리자나 포데모스의 계급적 성격을 간과하는 것. 이것은 임 교수의 수미일관한 자가당착의 일각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는, 그렇게 시리자를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으로 폄하하면서도, 동시에 6월 4일자 ≪가디언≫에 기고한 그리스 전 재무부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영국의 EU탈퇴 반대 의견은 바로 그러한 딜레마를 반영하고 있다 운운하고 있다. 즉, 그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또한 임 교수의 수미일관한 자가당착의 다른 일각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바루파키스야말로 시리자의 핵심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것도 바로 그 시리자 정권에서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임 교수 머릿속의 또 하나의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브렉시트[에] 찬성더 급진적인 좌파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에 대해서 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더 급진적인 좌파의 브렉시트 찬성 의견도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민주적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품을 살려 더 급진적인 좌파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임 교수가 지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국의 공산당들이다. 영국의 3개 공산당들 가운데 한 당은 이번 국민투표 자체를 보이코트했고, 2개의 당은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했기 때문이고, 그 외에는 영국 내에 브렉시트[에] 찬성더 급진적인 좌파 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공산당의 브렉씨트 찬성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이유가 되는지?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이에 대한 민주적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만일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데, 브렉씨트 찬성은 그러한 자본에 대한 대응을 국내적인 과업이게끔 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라면, 그는 이렇게 얘기했어야 할 것이다. ― 자본은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임 교수의 수미일관한 자가당착의 일각이다.

독점자본의 지배, 그 유럽 규모의 지배체제로서의 유럽연합을 그대로 둔 채, 아니 바로 그 속에서의 민주적 규제를 운운하다니! 그 정신세계는 가히 돈키호테 이상이다! 호랑이나 사자를 길들여 애완동물로 삼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독점자본에 대한, 그것도 이미 유럽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규제? ― 이건 정말 악질적인 대중기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악질적인 대중기만이 버젓이 진보적인 언설로 통하는 것. 그것은 이 시대에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지배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해왔다. 그 때문에 맑스와 엥엘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와 관련, 자본은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 운운하는 것은 영국 노동자계급의 영국이라는 부르주아 국가체제에의 종속을 당연시하고 전제하면서 다시 그것을 제국주의 연합으로서의 유럽연합에 종속시켜두려는, 혹은 그 종속이 바람직하다고 강변하려는 둔사에 불과하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브렉씨트에 찬성한 것은, 그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독점부르주아 국가체제에 종속되기를, 독점부르주아지의 앞잡이인 노조 관료들의 기만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이 일국적으로 작동하든,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든, 세계적 차원에서 작동하든, 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자본의 정치, 자본의 문화로부터의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확립하는 것이 전진을 위한 관건이다. 브렉씨트는 유럽 차원이든, 세계적 차원이든, 영국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 국제주의에 어떤 저해요소도 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국제연대・국제주의를 소생시키고 강화할 수 있는 조건이다!

유럽연합과 노동자계급

우선, 앞에서 우리는 임 교수가 브렉씨트 문제를 둘러싸고 그 경제적・정치적 이해나 노선을 달리하는 세 경향의 세력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첫째로는, 보수주의자・신자유주의 세력・자본, 둘째로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사민당・녹색당 그리고 유럽의 거대 노조, 한마디로 사민주의 세력, 그리고는 셋째로는,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 그리고 그의 논의 속에서는 이외에 또 다른 두 개의 세력들도 언급되고 있었다. 이미 본 것처럼, 난민을 볼모로 잡아 무책임한 정치 공세를 펴는 포퓰리즘 극우 정당이나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매우 급진적인, 그러나 조직화된 노조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당이 그들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고 특히 그리스의 시리자 (주도의 연립)정권이 보여주는 것처럼, 시리자나 포데모스는 보다 더 교활하고 보다 더 기만적인 사민주의 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언급할 필요는 더 이상 없다.

브렉씨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당연히 사민주의 세력의 입장과 주장이다. 그들은 사민당 왼편에 있는 좌파 정당에 반대하여 기만적인 언설로 노동자계급을 독점자본에 종속시키려는 세력이고, 그 기만성 때문에 노동자계급에게는 그만큼 위험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우리는, 브렉씨트 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 훨씬 전부터 영국경제가 대공황 혹은 장기적인 침체에 빠져 있었음을, 간접적이지만, 지적하고 있는, 영국 ≪가디언≫지의 한 칼럼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바로 이 점, 즉 영국 경제가 장기간 대공황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국민투표가 브렉씨트로,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결말이 난 직접적인 배경이다.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장기간에 걸친 공황이 … 노동자계급의 실업과 빈곤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켰고, 바로 그렇게 실업과 빈곤의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이른바 브렉씨트, 즉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실업문제에 대해서 영국의 한 연구자는 최근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영국의 실업은 전후(戰後) 장기호황기보다 아주 높아서, 1980년대에는 평균 11.6%로 증대했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각각 9.6%와 5.4%로 이어졌다. 현 10년대의 전반(前半)엔, 대경기후퇴(Great Reces-sion)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 실업이 평균 7.2%였다. 이러한 수치들은 하지만 공식적으로 일거리를 찾는 것으로 공식적으로 보고된 인구 중의 비율을 반영할 뿐이다. 노동 연령의 성인들 가운데 상당한 일부는, 그 전 달에 일거리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비활동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2015년 8월에서 10월까지 공식 실업은 5.2%였는데, 인구의 21.9%는, 학생들, 만성 환자들, 노동 불가능한 신체장애자들(disabled), 아이나 병자를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과거에 일거리를 찾다가 실망한 사람들 같은, 경제적으로 비활동적이었다. 이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 여러 이유로 취업의 희망을 포기했을 뿐이다. 따라서, 총실업률은 27.1%였다….22)

총실업률이 27.1%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만성 환자들이나 노동 불가능한 신체장애자들까지가 포함되어 있어 다소 과장된 수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영국의 실업상태,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독점자본주의에 특유한 만성적・누진적 과잉생산과 그 귀결로서의 대공황의 반영인 이러한 심각한 상태는 물론 (독점)자본주의 경제의 운동법칙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초래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1930년대의 대공황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러한 참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상적인 운동법칙에 의해서는 해소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민주의자 임 교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 운동법칙 따위엔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이미 유럽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는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 규제는 필요하다 운운하는 몽상에 빠져 있다.

그런데, 진보적인 듯한 사민주의자들의 반동적인 글에는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거기에는 본의 아닌 진실 혹은 그 단초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장점에 의지하면서 논의를 해 보자. 이는 당연히 그의 수미일관한 자가당착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유럽 통합은 제1차, 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소련을 포함한) 유럽과 북미 양쪽의 평화 정착을 위해23) 카를 도이치, 데이비드 미트라니, 에른스트 하스 등과 같이 유럽에서 영미로 망명한 일군의 학자들, 이들을 후원한 미국 대학의 국제 관계 연구소와 싱크 탱크, 미국 국무부, 윈스턴 처칠과 쿠덴호프-칼레르기 백작 등 유럽 내부의 정치가에 의해 백가쟁명으로 추동된 정치 프로젝트였다.

유럽연합은 바로 이 유럽 통합의 현존 형태이다. 그리고 그는 자못 진보적인 척하면서 브렉씨트를, 즉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연합을 거부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의 사고 속에서는, 노동자들의 천국까지는 아닐지라도 필시 친노동자계급적인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그런데 묻건대, 유럽 통합을 추동한 위 백가(百家) 가운데 어느 한 인간, 한 기관 노동자계급과 이해를 같이하는 자・기관이 있는가? 저 백가 모두 독점자본의 이해의 대변자들 아닌가?

그는 이렇게 계속, 아니 고백한다.

정치적 유럽 통합 프로젝트는 1970년대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단일 시장 통합프로젝트로 둔갑되었고,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하였다. 이러한 시장 통합의 주역은 금융 자본이었다. 이미 1980년대 영미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개하면서 … 유럽의 금융 자본은 유럽 단일 시장이라는 보고(寶庫)를 놓칠 수가 없었다.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부분적으로 양적 완화 정책을 폈음에도 기본적으로 유럽중앙은행의 시장 독재는 EU와 국제통화기금(IMF)과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하면서 철저하게 금융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였다.

그런데도 임 교수는, 브렉씨트를, 즉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연합을 거부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의 노동자들이 금융자본의 종속물이기를 거부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임 교수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사법 및 경찰 공동 협력, 내부 시장,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이라는 소위 EU를 지탱하는 세 개의 층은 결국 시장의 기능을 최적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총성 없는 시장 전쟁을 이끌어가는 주력 부대는 유럽중앙은행과 각국의 중앙은행이었다. 시장의 행위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이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내세워 탈정치성을 강조하면서 개별 국가의 재정 자율성을 현저하게 제약하였다.

재정 적자를 GDP 3% 이하로 유지해야만 하는 유로존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 주권을 침탈당하기에 이르렀다.

사법 및 경찰 공동 협력, 내부 시장,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이라는 소위 EU를 지탱하는 세 개의 층이라고 고백하는 데에 이르면, EU, 즉 유럽연합이 무엇인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도 임 교수는, 브렉씨트를, 즉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연합을 거부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의 노동자들이 더 이상 그 세 개의 층에 종속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면,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의 노동당을 포함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치세력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임 교수는 이렇게 실토한다.

이러한 국면 전환의 이면에는 유럽의 시장화 모델이 역설적으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정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과 거대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유럽의 시장화 모델이 역설적으로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정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과 거대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었다! ―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민주의의 계급적 역할・기능이다.24)

그런데, 그 역할을 실토하면서 그것을 아이러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아이러니라고 할 때, 그것이야말로 아이러니이다. 그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사법 및 경찰 공동 협력, 내부 시장,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이라는 … 세 개의 층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바로 그 유럽의 시장화 모델 속에 계속 종속되어 있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 가지만 더 간단히 언급하면서 우리의 논의를 끝내기로 하자.

우선, 영국은 정말 유럽연합을 떠날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앞에서 지난해 여름 시리자 집권 하의 그리스의 국민투표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그리고 선거 때면 언제나 달콤한 공약을 했다가 집권 후에는 으레 언제 그랬더냐 하는 것을 늘상 경험하지만, 자본은 실로 노동자・인민을 기만하는 데에는 이골이 나서 투표 결과대로 정말 브렉씨트할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은 자본이 그런 기만적 재주를 부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설혹 브렉씨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으로 그러할 뿐, 실질은 여전히 유럽연합 속의 영국일 가능성은 99.9% 이상일 것이다.

참고로, 영국 독점자본의 이익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지금은 외무대신이 된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으로 대표되는 브렉씨트 선동파가 상당수 있었지만, 이는 독점부르주아지 내부의 분파 간 이해의 차이・대립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논해야 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

다음은, 극우정당이 국수주의를 부추기기 위한 선동에 볼모로 삼은 난민 문제인데, 이는 김윤태 교수에 의하면, 전쟁을 막기 위해 출범한 국제시스템이라는 제국주의 연합 유럽연합이, NATO 및 미 제국주의와 더불어 주요한 주체가 되어 벌인 중동 침략・파괴 전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극우 영국주의자들이야 자신들이 침략전쟁의 희생자들을 다시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데에 이용하고 있지만, 브렉씨트를 주장한 영국의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52 대 49로 판명 난 국민투표의 결과를 고려하면, 제국주의 연합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 주장하는 노동자계급이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데에는, 사실은 영국독립당(UKIP)으로 대표되는, 그에 가장 적대적인 파씨스트들의 국수주의 선동이 일정한 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해방으로 전진하는 데에서 이들 파씨스트들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그에 대한 경계・투쟁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대공황, 부르주아 지배의 대위기는 국수주의・파씨즘이라는 독버섯의 온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선진노동자들은 이번 국민투표의 결과를, 긴 잠 끝에 눈을 뜨고 있는 노동자계급을 더욱 독려하여 독점자본과의 투쟁을 배가(倍加)하는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25) 그리고 한국의 선진노동자들 역시 노동자계급 속에 파고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사민주의 등과의 투쟁을 배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1) Simon Jenkins, Want to avoid recession? Then shower UK households with cash, The Guardian, 2016. 8. 5.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16/aug/05/recession-bank-england-money-uk-households>

2) Bank of England cuts interest rates to 0.25% and expands QE, The Guard-ian 참조. <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16/aug/04/bank-of-england-cuts-uk-interest-rates>

3) 같은 기사 참조.

4) 점프스타트(jump start): 배터리 방전으로 자동차의 시동이 안 걸릴 때, 다른 차의 배터리와 연결시켜 시동을 거는 것. 여기에서는 경기부양책을 써 빈사상태의 경제를 소생시키는 것의 의미.

5) 유동성 함정: 이자율 조작이 아무런 경기부양 효과를 초래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부르주아적 비과학적인) 케인즈 경제학의 용어.

6) Simon Jenkins, 앞의 글.

7)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름난 좌파 철학자(어수웅 문화부차장, 지젝에게서 얻은 교훈, ≪조선일보≫, 2013. 8. 6.) 지젝은 최근, 그 특유의 화려한 사이비 비판정신을 구사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 우리가 직면한 슬픈 곤경은 이런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정말로 작동하고 유권자들이 진정한 선택을 하게 되는 드문 계기들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로 간주된다는 것. 우리의 제도화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종종 규칙으로서의 선거가 진정한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대체로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 사이의 선택인데 그 둘은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스 유권자들은 제대로 된 선택지를 부여받았다. 한쪽에는 기존 체제가, 다른 한쪽에는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러하듯, 그처럼 진정한 선택에 직면하는 순간은 기존 체제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는다.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그릇된 선택이 이루어질 경우 그것을 사회적 혼란과 가난, 폭력의 이미지로 채색한다. 시리자가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세계 전역의 시장에 공포의 물결이 밀어닥쳤고, 그런 경우 늘 그렇듯이, 이념적 의인법이 절정을 구가했다. 시장이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 발언하기 시작했다. 선거에서 재정 긴축 계획을 지속할 수 있는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우려를 시장의 이름으로 표한 것이다.(슬라보이 지제크(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교수), 번역 최재봉 선임기자, [슬라보이 지제크 칼럼] 동의 조작의 위기, ≪한겨레≫, 2016. 7. 29.). 시리자를 가리켜 그리스 유권자들제대로 된 선택지이고 그 진정한 선택기존 체제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니!? 더구나 시리자(연정)의 반노동자・인민적 정책이 1년을 훨씬 넘기고 있는 시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름난 좌파 철학자라니!? 극우 ≪조선일보≫가, 지젝에게서 얻은 교훈이라며, 그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이름난 좌파 철학자이지만,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극복과 대안은 당연히 보수 진영에서 포용하고 나서야 할 일이 아닐까 하고 나서는 것도 결코 이유가 없지 않다. 다름 아니라, 좌파적 언사를 낭자하게 구사하지만 사실은 지젝 그가 누구의 편인가를 극우의 본능적 감각으로 금세 알아차렸던 것이다. 지젝이 시리자가 승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세계 전역의 시장에 공포의 물결이 밀어닥쳤고 운운하는 것, 즉 시리자의 집권에 즈음한 독점자본의 요란스러웠다면 요란스러웠던 반응 그것은 사실은 시리자의 반노동자・인민적 성격과 정책들을 엄폐하기 위한 독점자본의 의도된 호들갑이었고, 그 집권에 대한 독점자본의 축포였다. 왜냐하면, 시리자의 반노동자・인민적 성격과 정책들, 특히 유럽연합이나 IMF, NATO 등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정책은 선거 이전에 이미 명확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고, 당시 그리스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제정파의 세력판도에 비추어 그들만이 유일하게 선거에서 재정 긴축 계획을 지속할 수 있는 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는 (―결코 출범시킬 수 없는이 아니라 출범시킬 수 있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8) 구정은 기자, 영국, EU 탈퇴…세계 정치・경제 대격변’”, ≪경향신문≫(인터넷 판), 2016. 6. 24.

9) 구정은 기자, 같은 글.

10) 김보영 영남대학교 교수, [현지 기고] 영국 국민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나?, ≪프레시안≫, 2016. 6. 2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284>

11) 임운택 계명대학교 교수, 브렉시트, 진짜 패배자는 유럽 좌파: [기고] 브렉시트(Brexit)가 남긴 교훈 : 금융 권력의 독재, ≪프레시안≫, 2016. 6. 28.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371>

12) 같은 글.

13) 참고로, 이 세 번째 경향의 세력에 대해서만 임 교수의 글을 직접인용하는 형식으로 적고 있는 것은, 우선 임 교수의 글에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유럽 보수 세력의 단일화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것이 사민당인지, 아니면 그 외편에 있는 좌파 정당인지 불분명하고, 또한 그 좌파 정당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불분명하며, 또한 유럽 보수 세력의 단일화에 대한 회의적 전망을 견지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것이 좌파 정당이라면, 사실 그 좌파 정당이 누구든, 과연 그들이 단지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 회의적 전망을 견지한 것인지, 그 외에 어떤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정말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자본의 유럽 통합 프로젝트를 비판해 왔던 것인지, 비판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그것을 상세히 논할 여유는 없지만 말이다.

14) 현대 사민주의가 독점자본가계급 좌파의 정치노선임은 임 교수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실토하고 있다. 이렇게. ― … 20세기 중반 조직화한 노동자(노조)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위기관리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복지 국가의 구축에 기여했던 유럽의 사민주의자는 어느덧 …엘리트 정치 계급으로 전락하였으며, 소위 제3의 길을 주창하였던 신사민주의자는 2007년에 공식 합의된 리스본 조약을 통해 유럽 시장의 현대화라는 미명 아래 금융 시장화를 전면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임 교수 자신은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바로 그 리스본 조약의 EU와 결별하는 것을 못내 가슴 아파하고 있다!) 사민주의가 만일 정말 노동자계급의 노선이라면, 자본주의 위기관리 따위에 그 능력을 보탰겠는가?! 참고로, 임 교수가 보다 더 솔직하고 정확하려 했다면, 위 문장은 대략 이렇게 되어야 했을 것이다. ― … 20세기 중반 이른바 복지 국가의 구축에 기여함으로써 조직화한 노동자(노조)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위기관리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유럽의 사민주의는 …. 한편 신사민주의자 운운하지만, 그것은 현대 사민주의로부터 질적으로 구분될 만큼의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양적으로 보다 더 타락한 사민주의일 뿐이다.

15) 유럽연합(EU)의 단초를 연 것은 1951년 서독・프랑스・이딸리아・베네룩스 3국 간의 빠리 조약에 의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창설, 즉 이들 독점자본 연합체의 창설이었다.

16) 참고로, 눈알을 번뜩이면서,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만이 문제이고 자본주의 자체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냐 하고 시비 걸고 대들지도 모를 종파주의 하이에나들에게 미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그러한 당신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선택 가능한 정책들이 아니라,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된 시기의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17) HAYLETT on the EU – Time for trades unionists to wake up from a long slumber, 2016. 3. 1. <http://www.communist-party.org.uk/britain/eu/2244-haylett-on-the-eu-time-for-trades-unionists-to-wake-up-from-a-long-slumber.html>

18) K. 맑스,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541.

19) 같은 책, SS. 540-541 참조.

20) 사실 이 말은, 맑스-레닌주의 정당들은 오랫동안 독점자본의 유럽 통합 정책에, 즉 유럽연합에 반대해 왔다고 해야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된다.

21) 임 교수가 쓰고 있는 대로라면, 사민당 왼편에 있던 좌파 정당이지만.

22) David Matthews(Lecturer in sociology at Llandrillo College in northern Wales), UK Monopoly Capitalism – Applying a North American Brand to Britain, Monthly Review, Vol. 68, No. 3(July-August 2016), pp. 105-106.

23) 여기의 (소련을 포함한) 유럽과 북미 양쪽의 평화 정착을 위해쏘련에 대항하여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항하여) 유럽과 북미 양쪽의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로 읽어야 한다. 사민주의자들을 포함한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기만적 어법은 다음과 같이도 나타난다. ― EU야말로 전쟁을 막기 위해 출범한 국제시스템이다. 유럽을 하나로 만들자던 프랑스 외교관 장 모네의 꿈은 프랑수아 미테랑과 헬무트 콜이라는 현실 정치인들의 안보 계산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이 탈퇴하고 EU가 갈라지면 유럽과 세계의 안보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김윤태 고려대 사회학 교수, “‘영국 경제위기 원인을 외부로 떠넘긴 브렉시트는 답이 아니다, ≪경향신문≫(인터넷 판), 2016. 5. 22.) EU야말로 전쟁을 막기 위해 출범한 국제시스템[!]인데, 영국이 탈퇴하고 EU가 갈라지면 유럽과 세계의 안보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왜? 과거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침공 때와 같은 연합한 제국주의 침략의 동력이 다소간 손상・타격을 받을 터이니까!

24) 유럽연합 잔류 캠페인을 벌인 영국 노동당의 당수는 제레미 코빈(Jeremy Ber-nard Corbyn)이다. 냉혈의 제국주의자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고 나서는 미국의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가 그 치욕을 겪었듯이 노동당 당수로서 등장할 당시 부르주아・소부르주아 언론에 의해서 마치 급진적 혹은 진정한 사회주의자인 것처럼 선전되는 치욕을 겪었던 그 제레미 코빈 말이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야기할 엄청난 정치적 혼란을 얘기하면서, 고려대 김윤태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 1970년대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에 반대했던 제레미 코빈 노동당 당수도 이제 잔류를 지지한다.(김윤태, 같은 글). 그는 물론 그 엄청난 정치적 혼란이란 게 부르주아지들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혼란이란 것도, 늙어가면서 제레미 코빈이 보다 더 (독점자본가)계급적 이익에 철저해졌다는 것도 얘기하지 않는다.

25) 좌파는 이제 이 국민투표의 결과를 EU-IMF-NATO라는 전체 축을 패퇴시키는 데로 돌리는 노력을 배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A VICTORY FOR POPULAR SOVEREIGNTY – a defeat for the EU-IMF-NATO axis. <http://www.communist-party.org.uk/britain/eu/2273-a-victory-for-popular-sovereignty-a-defeat-for-the-eu-imf-nato-axi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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