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15)

문영찬 | 연구위원장

[목차]

머리말

제1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2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ㆍㆍㆍ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크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5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6장 철학과 종교

제4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7. 샤르트르

샤르트르는 20세기 중, 후반의 프랑스의 철학자, 작가이다. 그는 2차 대전 전에 독일로 유학하여 후설, 하이데거 철학을 연구하고 프랑스로 돌아와 2차 대전 말엽에 ≪존재와 무≫라는 실존주의 철학서를 발표했다. 하이데거가 1차 대전 후의 독일사회의 불안정성을 바탕으로 실존주의 철학을 전개한 것과 유사하게 샤르트르는 2차 대전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실존주의를 탐구했던 것이다. 이후 샤르트르는 맑스주의에 접근하여 실천적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것은 사민주의적 경향에 머문 것이었다.

≪존재와 무≫는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실존주의의 연장선 상에 있는 저작이다. 샤르트르가 이들과 부분적인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 골격, 기본적 개념은 이들과 차이가 없다. 먼저 샤르트르는 후설의 현상학의 본질과 현상 개념, 그리고 본질직관이라는 개념을 수용한다. 결국 우리는 나타남과 본질의 이원론을 똑같이 거부할 수 있다. 나타남은 본질을 감추고 있지 않다. 나타남은 본질을 드러내 보인다. 나타남이 본질인 것이다.’”1) 여기서 샤르트르는 나타남, 즉 현상이 곧 본질이라는 후설의 현상학의 관점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다. 그에 따라 현상과 본질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기초로 후설의 본질직관이라는 방법론을 수용한다. 다시 말해서 본질은 그 자체가 하나의 나타남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본질에 대한 하나의 직관(이를테면 후설의 본질직관)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2)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그리고 일반적인 과학에서는 현상과 본질을 나누고 현상을 통해 본질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론인데 현상과 본질의 구분을 거부하는 후설과 샤르트르는 현상=본질을 직관에 의해 파악하는 것을 학문의 방법으로 승인하고 있다. 이는 개념적 사고가 아니라 직관을 학문의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 승인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샤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직관적 인식 이외에 다른 인식은 없다. 연역과 추론은 부당하게도 인식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실은 직관으로 이끌어 주는 방편에 불과하다.3) 직관만을 올바른 인식으로 승인하는 이러한 입장은 사실상 개념적 사고를 거부하는 것인데 이는 샤르트르 스스로 자신의 실존주의와 존재론이 개념적 사고가 아닌 것, 즉, 비과학적인 것임을 천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의식, 심리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적 심리학이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후설의 주장을 이어 샤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의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부정한다. 하나의 법칙은 의식의 초월적 대상이다. 법칙에 대한 의식은 있을 수 있으나 의식에 대한 법칙은 있을 수 없다.4) 의식에 대한 법칙은 의식을 과학의 대상으로 놓고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일정한 법칙성을 탐구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과학적 심리학과 과학적 인식론이라 할 수 있는데 샤르트르는 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자의적으로 발생,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법칙성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의식이 외적 세계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설, 하이데거를 잇는 샤르트르는 인간의 의식이 외적 세계의 반영, 모사라는 점을 승인하지 않고 의식에 대한 법칙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있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의식을 반영이 아니라 완전한 능동성이라고 본다. 아무리 조그만 수동성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지각이나 인식에 부여할 수 있을까? 지각과 인식은 완전히 능동성이고 완전한 자발성이다.5)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존재라는 개념은 하이데거와 대동소이하지만 하이데거가 고찰하지 않았던 라는 개념을 샤르트르는 전면적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론이 철학적 심오함을 갖고 있는 듯이 포장한다. 특히 존재와 무의 대립의 설정은 헤겔의 ≪대논리학≫의 도입부에서 전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러나 헤겔이 존재와 무의 변증법을 펼쳤다면 샤르트르는 그것을 형이상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존재는 그 자체와의 동일성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규정의 공허이지만, 비존재는 존재의 공허이다. 다시 말해, 헤겔에 비해 여기서 상기해야 하는 것은 존재는 존재하고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 존재는 존재하고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절은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샤르트르 철학의 근원적 성격, 하이데거를 포함하는 존재론이라는 형이상학의 뿌리가 놓여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파르메니데스는 관념론의 원형에 해당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견해를 대표했는데 존재와 무,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에서 날카롭게 대립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보였다. 존재와 비존재는 동일하고 또한 동일하지 않다.7)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비존재는 무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그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존재일 뿐이며 그것은 부동의 정신이며 사고가 존재라고 했다. 이러한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는 관념론의 원형, 형이상학의 원형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헤라클레이토스는 존재와 비존재는 동일하면서 동일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는 존재는 비존재를 근거로 하여 존재하고 또 존재는 끊임없이 비존재로, 비존재는 존재로 전화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생성과 운동의 관념이 나온다. 이것은 곧 변증법을 의미하는데 샤르트르는 자신이 변증법의 노선이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의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존재와 무의 통일이 곧 운동이고 생성인 반면 샤르트르에게서 무는 존재의 부정에 지나지 않는다. 무는 판단의 근원에 있다. 왜냐하면 무는 그 자체가 부정이기 때문이다. 무는 작용으로서의 부정에 근거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무는 존재로서의 부정이기 때문이다.8) 여기서 무 혹은 비존재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샤르트르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무 혹은 비존재를 존재의 대립물로 보는 반면에 샤르트르는 무 혹은 비존재를 존재에 대한 단순한 부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샤르트르는 존재를 떠나서는 무를 사고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그때 상호보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든, 존재가 그 속에 매달려 있는 무한한 환경으로서든, 존재의 밖에서는 무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9) 이러한 샤르트르의 관점은 무 혹은 비존재에 대해 전형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샤르트르의 비변증법적인 사고는 운동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변화는 운동이 아니다. 변화는 이것의 성질의 변질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변화는 하나의 형태의 나타남 또는 분해에 의해서 일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반대로 운동은 실질(實質)의 항상성을 전제로 한다. … 운동은 하나의 이것이 다른 점에서는 변하지 않으면서, 오직 이것의 장소만 변화하는 것이다.10) 여기서 샤르트르는 운동을 물체의 위치이동으로 본다. 이것은 사실상 운동에 대해 뉴턴 시대의 관념을 주장하는 것이다. 뉴턴과 데카르트 당시는 운동은 곧 위치이동, 즉, 역학적 운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화학과 생물학 등의 발전으로 운동은 역학적 운동만이 아니라 화학적 운동도 포함하게 되었고 나아가 진화론에 의해 생물학에서 과학이 정립됨에 따라 생명체의 운동과 진화라는 관념이 발생하였고 또한 자본주의 생성 이래 계급투쟁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사회적 운동이라는 관념 또한 발생하였다. 샤르트르는 이러한 모든 성과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운동은 곧 위치이동, 역학적 운동이라는 관념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화학, 생물학, 계급투쟁 이론의 성과가 표현하는 것, 즉, 변증법적 사고를 무시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샤르트르는 물질의 성질의 변화는 변화이지 운동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그가 화학적 성질의 변화를 운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과 변증법 철학의 발전으로 운동과 변화는 동일한 것으로 포괄되게 되었고 이러한 관점은 지금은 일종의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샤르트르의 이러한 몰과학적, 비과학적 관점은 감각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인식의 원천으로서 감각을 부정하면서 그것을 심리학자의 몽상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감각은 주관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 사이의 잡종적인 관념이며, 대상에서 출발하여 고안되고, 이어서 주관에 적용된 관념으로, 그것이 사실상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권리상 존재하는 것인지 결정될 수 없는 사생아적 존재이며, 감각이란 결국 심리학자의 순수한 몽상이다. 감각이라는 관념은 의식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이론에서는 특히 제외되어야 한다.11) 인간의 인식에서 감각은 외적 세계를 인식으로 받아들이는 원천이 된다. 따라서 감각이 없으면 인간의 인식은 불가능하며 이는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이 없는 시각ㆍ청각 장애인 등의 경우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서 입증되기도 했다. 그러나 존재론이라는 형이상학의 미몽에서 헤매는 샤르트르는 자신의 인식에 방해되는 감각이라는 인간의 성질, 인식에 있어서 감각의 역할을 아예 지워 버리고자 하는 것이고 감각이라는 관념은 심리학자의 몽상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는 후설의 현상학이 본질직관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현상=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샤르트르는 이러한 비합리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그리고 세계성의 개념은 도구 개념을 매개로 하여, 주관, 현존재를 어떤 것을 지향하게 하는 구조가 세계라고 파악하였다. 이는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고 세계에 대해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샤르트르에게도 일정하게 나타나는데 샤르트르는 사물,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하는 유물론적 관점을 거부하고 도구라는 개념을 매개로 세계에 대해 주관적으로 접근한다. 그것은 우리가 실재는 사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도구로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도구-사물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지적했을 때 우리가 보여 주었던 것이다.12) 실재, 즉, 객관적 실재는 도구-사물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는 것은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인하고 이 세계가 하나의 도구로서, 도구-사물로서 즉, 주관과 연관하에서 파악되는 객관이라고 샤르트르는 주장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사물로서인가, 아니면 도구-사물로서 나타나는가는 사실상 이 세계에 대해 유물론적 관점에 설 것인가 아니면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 설 것인가를 가르는 지점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로 세계를 파악하면 사물과 세계에 대한 객관적 접근, 과학의 추구가 가능해지지만, 도구-사물로서 접근하면 이 세계에 대해서 과학이 아니라 주관적 목적이 일차적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기 때문에 샤르트르는 세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따로 존재론이라는 이름하에 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하는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존재 일반의 의미를 묻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은 필요하지 않고 반대로 객관적 실재의 각각의 영역에 대한 과학적 접근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각각의 영역이 상호연관하에 파악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샤르트르, 하이데거처럼 이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인하는 입장에서는 사고, 물질, 자연에 대해 존재라는 개념을 매개로 불변의 형이상학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론이라는 형이상학의 현실적인 내용은 불안, 죽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등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외적 세계라는 광대한 현실의 영역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샤르트르는 자신의 실존주의, 혹은 존재론이 하나의 형이상학임을 공언한다. 우리가 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기술을 마치게 될 때, 우리는 이 세 가지 존재 양상의 기본적인 관계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존재 일반에 대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13)

샤르트르는 자신의 실존주의 혹은 존재론을 휴머니즘으로 포장하는데 그에 따라 그는 자유에 대해 긴 고찰을 하지만 샤르트르의 자유는 내용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유는 본질을 갖지 않는다. 자유는 어떤 논리적 필연성에도 따르지 않는다. … 여느 낱말처럼, 자유라는 말도 하나의 개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면 자유라고 이르는 것조차 이미 위험한 일이다. 규정할 수도 없고 일컬을 수도 없다면, 자유는 기술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14) 자유가 본질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가 내용을 갖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내용이 없는 자유! 이것이 샤르트르의 자유 개념이다. 또한 자유는 규정할 수도, 기술할 수도 없다는 것은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샤르트르는 자유는 라고 파악하여 합리화한다. 자유란 그야말로 인간의 핵심에서 존재되는 무이고, 이 무가 인간존재로 하여금 존재하는 대신 자기를 만들도록 강요하는 것이다.15) 여기서 무는 운동, 생성의 근거가 되는 변증법적 무가 아니라 존재의 부정에 지나지 않는 무, 내용을 갖지 않는 무인 형이상학적 개념이며 따라서 이를 통해서 자유라는 개념에 내용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샤르트르의 자유 개념은 사실(현실)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관념으로 연결된다. 자유가 주어진 것으로부터의 탈출, 사실로부터의 탈출로 규정된다면, 거기에는 사실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이것이 자유의 사실성이다.16) 이것이 샤르트르의 자유 개념의 초라한 결과이다. 주어진 사실로부터의 탈출! 샤르트르 자유 개념의 이러한 귀결은 유물론적 관점을 거부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유물론적 관점에 선다면, 이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한다면, 세계에 흐르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관철되는 필연성을 통찰하고 그에 대응하여 스스로 자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필연성의 지양으로서 자유라는 개념이 가능해지는데 유물론을 거부하고 형이상학적 관점에 서는 샤르트르는 존재, 실존이라는 개념으로 쪼그라들면서 고작 주어진 사실로부터 탈출로서 자유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샤르트르는 자유는 존재로부터의 탈출17)이라고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한다.

샤르트르가 ≪존재와 무≫라는 저서를 발표한 것은 1943년인데 이는 2차 대전이 한창일 때였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존재, 실존을 탐구한 것이다. 이후 2차 대전의 결과 성립한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존재, 서유럽에서 공산당들의 급격한 성장은 샤르트르에게 영향을 주어 그가 맑스주의에 접근하게 한다. 그러나 샤르트르는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맑스주의 운운하지만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적 한계에 머무는 것이었다. 1965년에 발표된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2차 대전 이후의 샤르트르의 사상의 궤적을 보여 준다. 지식인이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은 유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18) 그러면서 샤르트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혁명 또한 언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에 대립되는 것이었다. 샤르트르는 지식인의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지식인이 하는 이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 일을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6. 그 일은 모든 권력―대중정당과 노동계급의 조직에 의해서 표현되는 정치권력까지 포함한 모든 권력―에 대항하면서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는 것입니다.19) 이는 현실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리고 쏘련 등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반대하면서 이를 지지하는 서유럽의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에 대해 지식인들이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샤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지식인의 과제를 정리한다. 지식인은 이처럼 그 자신이 지닌 모순 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인은 그가 지닌 모순 자체를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권리가 갖는 추상적인 성격에 맞서 저항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인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권리를 모두 폐지시키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한편으로 그는 자유가 지닌 기능상의 진리를 민주주의 전반에 걸쳐 보존해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의 구체적인 권리를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추상적인 권리를 보충하기 위해 저항하는 것입니다.20) 이러한 샤르트르의 입장은 쁘띠 부르주아적 존재를 갖는 지식인은 자기모순 속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한계를 사회민주주의를 통해 보충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존재론은 후설과 하이데거를 잇는 것이었고 유물론에 대한 거부 속에서 존재 일반에 대한 일종의 형이상학의 수립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는 존재 개념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따랐고 비변증법적인 길을 걸었다. 샤르트르는 운동과 감각에 대한 관점에서는 매우 비과학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의 승인이 과학의 추구로 이어지는 데 반하여 외적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의 승인에 대한 거부가 사고=존재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론으로 나타난 것이 하이데거, 샤르트르의 존재론, 실존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샤르트르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의 맑스주의에 대한 접근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반대하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이었다.


1) 샤르트르,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p. 13.

2) 같은 곳.

3) 같은 책, p. 310.

4) 같은 책, p. 25.

5) 같은 책, p. 30.

6) 같은 책, pp. 64-5.

7)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편집, ≪세계철학사≫ 제1권, 중원문화, p. 149.

8) 샤르트르, 앞의 책, p. 69.

9) 같은 책, p. 73.

10) 같은 책, p. 365.

11) 같은 책, p. 530.

12) 같은 책, p. 538.

13) 같은 책, p. 602.

14) 같은 책, p. 722.

15) 같은 책, p. 726.

16) 같은 책, p. 792.

17) 같은 책, p. 794.

18) 샤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이학사, p. 79.

19) 같은 책, p. 95.

20) 같은 책, 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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