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월호 2주기 다시 정치투쟁 전선으로 싸우러 나가자!

 

백철현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다시 ‘잔인한 4월’이다. 역사에서 4월은 4.19 ‘혁명’에서의 피의 화요일의 학살극을 기억하면서 ‘잔인한 4월’로도 기록되지만, 그 4월은 백색테러로 얼룩진 이승만 권력의 잔학무도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사상계≫ 1960년 5월호, 나무위키)처럼, 민주주의 혁명 과정에서의 민중의 위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잔인한 4월’은 역사성을 망각한 채,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로부터 출처도 모르고 너나 할 것 없이 통상적으로 읊어대는 ‘진부하게’ 사용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부터 잔인한 4월은 말 그대로 “가장 잔인한 달”로서의 4월이었다.

세월호 2주기를 앞둔 지금 다시 그 날을 떠올려보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서의 침몰 보도와 이후 ‘전원구조’ 속보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2012년 MBC파업으로 당시 해고자였던 MBC 강지웅 PD는 희대의 ‘전원구조’ 속보는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고 증언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누가 봐도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수 백 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 남겨진 채로 배가 거꾸로 침몰했는데 그 시간 대부분의 방송들이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뒤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관계당국은 사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원구조’라는 방송자막은 한참 뒤까지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순오보일까요?

세월호가 침몰한 그 시간, 그 지점에서 대한민국 언론도 함께 침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끄럽게도 그 중심에 MBC가 있었습니다. 사고 지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목포 MBC 기자들이 현장을 보고 서울에 여러 차례 정정보도를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전원구조는 오보라고. 침몰한 배 안에 ‘최소 200여 명’의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묵살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생존자에 대한 구조마저 지연시켜버렸던 이 ‘엄청난 오보’의 주인공들인 MBC 보도국의 수뇌부들은 더 참담한 일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MBC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깡패”에 비유했습니다. 목포 MBC 기자들의 애타는 보고를 묵살한 보도국 전국부의 부장은 자신이 직접 뉴스에 출연해 유가족들의 생떼가 결국 잠수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 아니냐고 힐난했습니다.1)

이러한 생생한 증언에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언론에 대대적으로 도배된 ‘전원구조’ 자막에 대해 “관계당국은 사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전원구조’라는 방송자막은 한참 뒤까지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사고 지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목포 MBC 기자들이 현장을 보고 서울에 여러 차례 정정보도를 요청했었”는 데도 불구하고 “이 요청은 묵살되고” 만다. 그러나 “MBC보도국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깡패’에 비유”하고, “보도국 전국부의 부장은 자신이 직접 뉴스에 출연해 유가족들의 생떼가 결국 잠수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 아니냐고 힐난”하는 짐승 같은 ‘잔인한’ 망언을 계속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세월호 탑승자들과 그것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피가 마르는 가족들에게 언론은 ‘골든타임’이라는 조어(造語)로 그 마지막 구조의 절박함을 표현했다. 그러나 저들 언론의 조어 ‘골든타임’은 마지막 생존과 구조가 가능하다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희망고문’이자 조작과 은폐를 위한 가림막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기레기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던, “잠수사 500명 투입, 야간 조명탄 발사, 에어포켓 설치, 최첨단 구조 장비 동원” 등등은 다 거짓말이거나 ‘구조 쇼’에 불과한 것들로 드러났다. 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야간에 배들은 조명탄을 켜놓고 세월호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하며 구조 시늉만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구조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무수한 증언과 증거로 밝혀졌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언론사 고위 간부들의 막말과 조롱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대하는 권력과 극우파쇼 정치인들과 똑같은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조차 잔인한 막말과 조소를 일삼던 파렴치한 극우파쇼 정치인들은 이제 총선을 앞두고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다시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읍소하고 있다.

억지 눈물을 짜내며 고개 숙이고 조문연출을 하기도 했던 권력자는 그 피 마르는 ‘골든타임’을 ‘경제의 골든타임’이라고 함부로 가져다 쓰며, 심지어는 ‘세월호 문제로 소비심리가 위축된다’며 세월호 가족들과 진상규명 염원을 매도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악의적인 발언까지 했다.

‘학살’로서의 그 첨예한 정치문제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거짓말과 유언비어’ 척결을 내세워서 SNS에 대한 감시와 통제, 고소고발과 수사를 남발했다. 세월호 학살 원인을 추정하여 인터넷에 유포한 게시자들을 구속까지 시켰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세월호 2주기를 앞둔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교통사고’도, 중립적인 표현으로서의 ‘참사’도 아니었다.

세월호 문제는 철저하게 ‘학살’로서의 정치문제였다. 새누리당 극우 정치인, 파쇼언론, 극우 인사들이 하나 같이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적개심과 망언ㆍ망발을 일삼으며,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알려지면 권력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철저한 정치문제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저들의 지속적인 행태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세월호 ‘참사’ 5일째 새벽인 4월 20일 당시 ‘실종자’ 가족 수백 명은 “우리 아이들을 살려내라!” “정부는 살인마다!” “정부는 악마다!” “청와대로 가자!”며 진도실내체육관을 나와 진도대교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본능적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정치권력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정보과 사복경찰들을 대거 배치하여 사고 초기부터 가족들을 감시하고, 무언가를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청와대로 향했던 것이다. ‘참사’ 직후에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도 구조하지 않고, 구조를 가로막고, 의심쩍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참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채널A≫를 비롯한 종편에서는 “진도대교 도보행진은 외부인이 부추겨 벌어진 일”이라며 어김없이 배후조종설을 흘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고일로부터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혜숙 씨는 “이것은 대학살”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사태가 단지 ‘무능함’ 때문이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역시 가만히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무능을 넘어 모든 거짓과 음모를 겪었고, 건져낼 수 있었던 아이들을 시간을 지연하며 건지지 않은 것을 목격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2)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특조위 관련한 해수부 문건은 ‘청와대에 대한 조사를 의결할 경우 기자회견을 해라, 사퇴를 해라’ 이런 것도 있고. 청문회 때도 아예 답안을 만들어서 배포를 하고. 왜 이런 식으로까지 조직적으로 은폐를 하고 거짓말을 하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말 못할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서 공개되어선 안 될 무슨 상황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구조를 안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저희는 정말로 그렇다고 단정짓고 싶지 않아요. 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비참한 상황입니까, 대한민국이. 그래서라도 다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3)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또한 2016년 3월 30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비슷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오늘은 세월호참사 후 715일.

이틀간의 청문회를 통해 그 동안 99%였던 의심이 200% 확신이 되었네요.

이제 남은 것은 확신을 더욱더 확실하게 증명할 증거를 실에 꿰는 것 뿐.

애써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아니기를 바라던 우리가 스스로 “참사”를 “학살”로 규정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프지만 분명해진 오늘은 “그 날”에 715일만큼 가까워진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저들은 ‘해상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그 동안의 다른 참사와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치적으로 사안을 몰고 가고 싶어서도 아니고, 저들의 악의적 매도처럼, 누군가의 배후 조종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아서 정치투쟁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세월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배경은 아직도 수많은 의혹과 추측을 낳은 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사고의 본질은 퇴선방송 한 번이면 살릴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구조를 했으면 살릴 수 있었던 사고가 304명의 참혹한 죽음으로 귀결된 끔찍한 의문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우리는 무능을 넘어 모든 거짓과 음모를 겪었고, 건져낼 수 있었던 아이들을 시간을 지연하며 건지지 않은 것을 목격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라고 외치며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서 공개되어선 안 될 무슨 상황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구조를 안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왜 사고가 났는지, 왜 의도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고, 왜 자식들이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유가족들에게 권력기구와 정보기구, 언론기관은 총출동해서 사건을 은폐ㆍ조작하고, 심지어 가족들을 감시ㆍ통제하고 조롱하고 매도하고 악선전해왔다. 그렇기에 도대체 이 사고의 배후에 무슨 일이 있기에 저들이 저러는지 “그래서라도 다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지금까지 가족들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투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수백 만 명의 국민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하고, 추모와 투쟁에 동참해왔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무능해서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가로막은 ‘학살’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권력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한편으로는 세월호 문제를 ‘학살’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성격과 다르게 ‘안전한 사회’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유가족들 역시 시민단체, 노동단체의 요구에 맞춰 ‘안전한 사회’를 내걸고 있다. 여기서 안전한 사회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모종의 사고로 인식하고, 이 사회 전체에 누적된 안전불감증을 경고하고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 더 이상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애초 의도와 다르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흐리는 요구로 전락하게끔 한다.

세월호 사고는 정부의 초기 재난 대응역량의 부족과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관행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사고 당시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돼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또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의 무책임이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 세월호 사고뿐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대형 사고를 분석해 보면 법과 제도의 미비, 부실한 안전점검, 안전의식 미흡 등이 공통된 원인임을 알 수 있다.4)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세월호 대책기구에서 발표한 문서로 인식할 법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학살’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성격을 은폐하고 일반 재난 사고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대해 “희생 학생들이 판단력과 분별력이 없이 따르면서 희생이 컸다”는 식의 악랄한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 ‘학생의 자기결정권 등 인권의식 강화’를 주장하는 것도 역시 정반대의 대응이라고 할지라도 세월호 ‘참사’의 성격을 물타기하고 진상규명을 회피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는 마찬가지다.

4월 16일 오전 8시 49분부터 9시 45분까지 약 12번 가량이나 선내에서 승객들에게 ‘대기하라’며 집요한 선내 방송을 하는 것을 비전문가들인 학생이나 승객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내에 대기하고 있는 학생과 승객들이, 해경이 의도적으로 선수 조타실로 가서 선장과 선원들만 구조하고, 해경123정이 퇴선 방송을 하지 않고, 세월호 진입을 하지 않고, 해경 특공대원들이 일반승객들의 구조노력을 방관하며 구조를 하지 않는 등 세월호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 도리가 있는가?

지금까지 거듭 강조해 왔지만, ‘안전한 사회’, ‘학생의 자기결정권 등 인권의식 강화’ 요구는 추상적이고 일반적 요구로 세월호 사고의 특수한 성격을 흐리는 요구에 불과하다.

다시 대정부 투쟁으로 세월호 학살의 진상을 밝히자

지난 3월 28일부터 29일 양일에 걸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 제2차 청문회가 열렸다. 2차 청문회에서는 그 동안 제기되던 의혹들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거나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번 청문회에선 해경 도착시까지 승객들을 탈출시키지 말고 대기시키라는 청해진해운 본사의 지시가 있었으며 참사 당일인 16일 9시 25분경, 간부 선원들이 협의를 통해 선내 대기로 결론을 내린 사실이 드러났다….. 2014년 7월 복원된 세월호 선내 노트북에 남아있던 ‘국정원지적사항’ 문건이 발견된 이후 각종 의혹과 추정에 머물던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관계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청문회를 통해 새로 제기된 의혹들도 있다.

특조위가 2014년 10월 29일 수중촬영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세월호의 평형수 게이지는 ‘0’이었다. 박종운 특조위원이 “0으로 돼 있다는 건 촬영할 당시 평형수가 하나도 없다는 의미냐?”고 묻자 강원식 1항사는 “눈금상은 없는 걸로 나온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는 “세월호를 운항하는 과정에서 평형수를 더 뺀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서 “그런 일은 없다”며 “이유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침몰 이후 평형수가 유출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평형수 배출이 일어났다면 그 시점과 원인에 대한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같은 시기 해경이 촬영한 영상에서 조타기의 시스템 전원이 ‘OFF’로 맞춰져 있는 점도 지적됐다. 세월호는 인천-제주를 오갈 시 목적지 방향에 따라 조타기를 인천행과 제주행으로 선택하도록 돼 있다.“침몰과정에서 저절로 오프로 갈 수 있느냐?”는 김서중 특조위원의 질의에 조준기 조타수는 “그런 일은 거의 없는 걸로 안다”고 답변했다. 김서중 위원은 “진술이 엇갈리고 선체가 해저에 있어 지금 살펴본 전원모드나 수동모드, 실제 조타기로부터 러더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연결기관들이 과연 어떤 상태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며 “정부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는 못하고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5)

이번 2차 청문회에서는, 정부의 주도에 의해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이 조작됐다는 그 동안 제기됐던 의혹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고, 침몰 이전에 평형수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운행이 됐고, 조타기 시스템 전원이 ‘OFF’로 맞춰져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최소 12번이나 “가만히 있으라”며 승객들의 탈출 의지를 집요하게 가로막은 선내 대기 방송이 청해진해운 본사의 지시사항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6).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라는 사실은 세월호 선내 노트북에서 발견된 국정원 지적사항으로 이미 폭로됐는데, 이번 청문회 전에도 이미 국정원과 청해진 해운과 긴밀하게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국정원은 참사 당시 청해진해운 직원들로부터 문자보고만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청해진해운 직원들에게 7차례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소상하게 파악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로써 선내 대기 방송에 청해진 본사뿐만 아니라 국정원도 직접 개입했거나 최소한 그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물론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해서, 그것이 국정원이 세월호 사고에 사전 개입했다는 사전기획설의 증거로 주장될 수는 없다. 부정선거 상쇄용으로 세월호 침몰 사전 기획설은 여전히 사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단지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였다는 것으로부터는, 국정원이 사고와 무관하게 어떤 ‘안보’상의 이유로 세월호를 소유하고 있다가, 중간에 사고가 난 이후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부랴부랴 개입했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사고는 그야말로 세월호 내부의 문제 때문인데 국정원 연관을 막기 위해 사고 이후에 개입했을 수 있는 등 여러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명한 것은 사고 시간대,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검경합동수사본부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점이고, 게다가 사고 원인을 정권이 조작하거나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AIS항적도가 원본 데이터와 달리 최종 보고서에서 삭제된 부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사고 직전 36초간의 누락된 부분이 확인되는 점, 세월호가 우선회하다가 갑자기 좌선회하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회전 각도를 보이는 등, 검경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세월호의 침몰 시간대 직전에, 조작ㆍ은폐 의혹이 집중돼 있다. 이러한 의혹들은 청문회 이전에도 꾸준하게 제기됐고, 이번 청문회에서도 역시 제기됐지만, 관계자들은 역시 “잘 모르겠다”로 답변을 회피했다.

이번 2차 청문회가 부분적인 성과가 있었으나 여전히 수사권ㆍ기소권이 빠진 특별법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청와대 관계자ㆍ국정원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에 대해 조사하지도 못했고, 증인으로 부르지도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3차 청문회와 더불어 특별법 개정ㆍ특검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특검은 수사권ㆍ기소권이 빠진 특별법 합의에 대한 반발을 누르기 위해 애초에 합의됐던 사항이었다.

2014년 10월 31일 수사권ㆍ기소권이 빠진 ‘가짜’ 특별법이 여야 야합으로 합의되고, 11월 7일 국회 본회에서 의결되면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조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권과 새누리당ㆍ언론은 이 특조위조차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세월호 특조위는 출범 전부터 끊임없이 내외의 공격을 받았다. 또 파견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 간, 여ㆍ야 추천 위원 간 끊임없는 힘겨루기의 장이었다.

세월호 특조위원은 총 17명으로 여야(각 5명)와 유가족(3명), 대법원(2명), 대한변호사협회(2명)가 추천한 인사로 구성된다.

그러나 여당 추천 위원 2명은 4.13 총선에 나가기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며 사퇴했고, 고영주ㆍ차기환 위원은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조사에 반발해 지금까지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이헌 부위원장은 2월 “특조위는 기울어진 것을 넘어 절벽에 가깝게 편향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부위원장을 수행하는 것은 세금 도둑에 가깝다”며 사퇴했다.

내부 갈등의 시작은 이 부위원장의 전임인 조대환 부위원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7월 특조위 부위원장이었던 조 변호사는 ‘정치편향’과 ‘인사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결근투쟁’ 등을 단행하다 결국 사퇴했다.

이 부위원장의 부임으로 갈등이 일단락되는가 싶었지만 11월 23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관련성이 있으면 조사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전원위에서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자, 여당 추천 비상임위원 4명은 중도 퇴장, 사퇴를 표명했다. 갈등이 폭발한 셈이다.

….언론의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도 이어졌다. 세월호 특조위 채용과정과 미국 9·11위원회와의 비교, 상임위원 월급 지출 등의 의혹을 쏟아내며 특조위 본연의 업무를 어렵게 했다.7)

세월호 특조위는 1년 동안의 활동 시한에 더해 연장 시에는 특조위 의결로 추가 6개월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못박아두고 있는데, 정부는 특조위 구성이 완료되기도 전인 2015년 1월 1일부터 특조위가 시작된 날로 간주하여 2016년 6월말로 활동이 종료된다. 세월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선체가 인양되기 전에 특조위 활동이 마감되는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하에서 만들어진 기구인 특조위의 한계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정부ㆍ언론의 특조위 파괴 공작은 충분하게 예상됐던 것이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저들의 노골적인 사보타주에도 불구하고 2차 청문회에서 부분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다시 특별법 개정과 특검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6월로 특조위 활동 시한이 끝나면 다시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요구를 내걸고 싸웠던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요구는 수사권ㆍ기소권이 들어간 세월호 특별법 요구보다도 미흡한 요구로 내려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문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를 중심으로 7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서명을 하고, 이 요구를 거부하는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해 “가자 청와대로!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펼쳐졌던 대대적인 대중투쟁 전선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세월호 가짜 특별법 합의 이후에 만들어진 특조위는 한편으로는 일부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국회 내부로, 제도권 내부로 대중투쟁을 흡수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학살로 규정할 때 새누리당이 중심이 되고, 지배계급의 일원인 더불어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내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분명한 것이다. 총선 이후 권력이 재편된다 하더라도 이점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져 있는 박주민 변호사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교란시키고 약화시켰던 더불어 민주당에 들어가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후보로 나왔다는 점은 심각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점이다.

학살자들과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이다. 정권과 새누리당은 학살 주범과 공범이라는 성격에 부합하게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과 특조위에 대해 일관된 적개심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피학살자들의 유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을 외치는 노동자 민중은 세월호 학살의 성격에 부합하는 투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학살자들과 그 공범이 득실거리는 국회에서 학살 진상규명을 하는 데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이로부터 생긴 잘못된 투쟁 기조가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 투쟁과 학살자 처벌을 위한 대중투쟁 전선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다시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대대적인 전 민중적인 투쟁전선을 복원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우리는 2015년 4월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세월호 학살 1년의 피맺힌 교훈 : 박근혜 퇴진 투쟁 없이 진상규명은 요원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는 세월호 2주기를 앞둔 지금 더 명확해졌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세월호 2주기를 앞둔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세월호 ‘학살’의 성격에 부합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사고 초기부터 이 사건의 성격, 권력과 언론의 태도를 보며 이미 확인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차마 믿고 싶지 않을지라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라고 수백 번을 주저해 왔더라도, 이제라도 “우리가 스스로 ‘참사’를 ‘학살’로 규정할” “그 날”이 찾아 온 것이다.

세월호 실소유주 국정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포함한 국민들을 감시, 사찰해 왔다. 지난 해 국정원 카카오톡 사찰은 세월호 투쟁과 직접 관련이 있다. 국정원은 세월호 가족들에게조차도 통신내역을 조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정원은 이제 국가사찰법, 국가테러법인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전체 국민을 감시ㆍ통제하는 훨씬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테러방지법은 세월호 투쟁을 가로막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할 것이다.

부정선거, 세월호 학살,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세에 맞서 우리들이 외쳤던 정치 투쟁 구호를 다시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세월호 학살 주범 국정원은 해체하라!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 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해 다시 싸우러 가자!

가자 청와대로! 박근혜는 퇴진하라!! <노사과연>


1) 강지웅 MBC PD, 해고 노동자, “MBC노동자를 위한 변명: 어느 해고노동자의 세월호 참사 읽기”, ≪노동자정치신문≫, 105호(통합117호). 2014.5.31.

2) “지금여기”, ≪가톨릭뉴스≫, 2014.6.9.

3) 문형구 기자, “<인터뷰>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한숨… 진상 조사, 국정원 통화 내역 밝히는 건 기본”, ≪미디어오늘≫, 2016.3.9.

4)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특별기고> 국민안전의 날, 세월호 교훈 되새기며”, ≪서울신문≫, 2016.4.4.

5) 장슬기, 문형구 기자, “건드리기만 한 의혹, 세월호 특검은 필수다”, ≪미디어오늘≫, 2016.3.29.

6) 편집자: 이 부분에 대한 선원의 진술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유병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2014년의 조작극이 재현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조작을 할 시간이 충분하였기 때문에, 청문회에서 나온 자료는 거의 대부분이 믿을 것이 못 되거나 의미 없는 것들이다. 특히 증언은 거의 100% 조작되고, 오히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짜맞춘 것으로 보아야 한다.

7) 김일창 기자, “세월호 2년, 침몰하는 특조위…비협조ㆍ공격ㆍ흔들기 ‘심각’, 진상규명 없이 끝날 ‘위기’… 이 시대의 자화상 같다”, ≪뉴스1≫, 2016.4.4.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2개의 댓글

  • “그러나 이처럼 한편으로는 세월호 문제를 ‘학살’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성격과 다르게 ‘안전한 사회’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유가족들 역시 시민단체, 노동단체의 요구에 맞춰 ‘안전한 사회’를 내걸고 있다. 여기서 안전한 사회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모종의 사고로 인식하고, 이 사회 전체에 누적된 안전불감증을 경고하고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 더 이상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애초 의도와 다르게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흐리는 요구로 전락하게끔 한다.”

    라는 주장 뒤에,

    “세월호 사고는 정부의 초기 재난 대응역량의 부족과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관행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사고 당시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돼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안전과 관련된 법과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또한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의 무책임이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 세월호 사고뿐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대형 사고를 분석해 보면 법과 제도의 미비, 부실한 안전점검, 안전의식 미흡 등이 공통된 원인임을 알 수 있다.4)”

    라는 인용이 있으면, 보통은 앞의 주장 즉 세월호대책위는 “안전한 사회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를 모종의 사고로 인식하고, 이 사회 전체에 누적된 안전불감증을 경고하고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어 더 이상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일테지요.

    그런데 그 다음 문단이 의아합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세월호 대책기구에서 발표한 문서로 인식할 법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학살’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성격을 은폐하고 일반 재난 사고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알고보니 앞의 인용은

    4)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 국민안전의 날, 세월호 교훈 되새기며”, ≪서울신문≫, 2016.4.4.

    의 것이군요.

    음…..

    보통은 양쪽의 주장을 인용해서 실제로 A는 B와 같음을 보이겠지요. A가 B와 같다면서, B를 제시하고 B가 A와 같다고 동어반복하는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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