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4.13 총선과 노동자계급의 정치

 

 

정인탁 | 회원

 

 

 

최근의 상황들

 

(1) 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공천을 둘러싸고 각 정당 내에서 벌어지는 분파싸움이 치열하다. 급기야 새누리당 김무성의 ‘옥새투쟁’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친박’, ‘진박’의 충성심으로 당선유력지역에서 공천을 받으려는 자들이 결국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분파싸움은 비단 새누리당 내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였고, ‘새정치’를 주창하던 ‘국민의 당’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그리고 언론은 이러한 지배세력 내의 분파싸움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것이 20여일 남은 총선의 대부분의 내용이었다.

대중들은 그러한 분파투쟁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환멸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세기의 대결을 보는 것처럼 그들만의 싸움을 흥미롭게 관람하고 있다. 어느 세력이 더 기발하고 노련하게 상대 세력을 제압하고 있는가? 하지만 결국 그 경기에서 누가 승리하든 그 승리의 성과물은 관객들에게는 단 한 가지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들은 망각하고 있다.

 

(2) 3월 22일 민주노총은 “인간다운 삶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바람을 담아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노동ㆍ진보 정치의 희망을 위한 20대 총선 투쟁 방침”을 발표했다. 관련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지난 1년 내내 노동개악을 막아내기 위해 총파업과 총궐기로 싸워왔다. 그러나 하나도 우리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고, 쉽게 해고 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구체화 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진정하게 민주노총이 선정한 후보가 노동개악을 저지하고 떨어진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후보 및 투표 방침은 이렇다. 민주노총 전략 지역구 후보로, 창원 성산에 노회찬, 울산 북구 윤종오, 울산 동구 김종훈, 경주 권영국, 부산 진구 을 김재하, 대전 동구 이대식, 대구 달성 조정훈 등 7명이 선정됐다. 정당명부 투표 방침으로 민주노총 요구 및 민중총궐기 12대 요구를 수용하고 총선공동투쟁본부에 참여하는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정의당 등 4개 정당을 지지정당으로 선정했다.

낙선후보 또한 발표하였는데 노동개악 5법을 대표발의하고 쇠파이프를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한 김무성, ‘초이노믹스’로 민생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국정교과서를 강행한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노동개혁ㆍ테러방지법ㆍ경제활성화 등 박근혜 대통령 관심법안이라면 밀어붙이는 원유철 원내대표, 평생 비정규직과 기간제법ㆍ파견법 개악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인제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 비용을 이유로 세월호 선체 인양을 반대했던 김진태 의원(당 인권위원장), 용산참사의 주범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 7명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선국면을 ‘총선 투쟁’으로 규정하고 ‘총선 투쟁 승리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총선 ‘투쟁’이라고 부를 만한 투쟁계획은 배치되지 않고 있다. 또 심판하자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심판은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대중적 힘이 응집되어 있지 못하다면 불가능하다.

 

(3) 민주노총의 ‘총선 투쟁’ 구호와는 다르게 단위 현장에서의 선거분위기는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가라앉아 있다. 이번 총선에서 눈에 띌 만큼 뭔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번 선거 국면을 활용하여 현 정세를 의미 있게 돌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노동조합의 집행부는 몇이나 될까?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지역에서의 전반적인 선거분위기는 대중들의 관심을 사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구도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양당구도로 잡혀졌다. 양당의 내부에서야 치열하겠지만 대중들은 두 세력 중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더라도 자신의 삶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소위 진보정당의 후보들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다. 강원지역에서 노동당, 정의당, 민중연합당에서 3명의 지역구 후보를 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역시도 민주노총의 지지정당인 이들과 총선투쟁본부를 결성했지만 특별히 이어지는 대중투쟁 계획은 별로 없다. 3월 26일 열리는 제5차 민중총궐기에서 후보들이 무대로 올라와 한마디씩 하고 “박근혜 정권 심판하자!”, “총선투쟁 승리하자!”는 정도의 구호를 외치고 내려가는 것 말고는 더 할 일이 없어 보인다.

후보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이들이 노동자 민중을 대변하며 앞장서 투쟁할 투사로 보이지 않는다. 지역과 현장에서 오랜 투쟁으로 검증된 사람들도 아니고 그 투쟁을 상징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민주노총의 지지정당이고 또 일부는 민주노총 정치 방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조직후보니까 당연히(?) 지지해 달라는 것뿐이다. 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대리주의 정치이다.

이들 진보정당은 지역구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다만 정당명부 투표에서 나름 의미 있는 득표를 하여 1명이라도 국회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서 “자본가계급의 지배수단인 ‘의회’를 분쇄하기 위해 ‘의회로 간다”는 결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는 이러한 선거 때만 되면 의례적으로 선거방침, 정치방침을 만들고 형식적으로 집행하고 또 평가를 위한 평가를 남기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각 후보들에게 자신들의 현안문제가 담긴 질의서를 보내는 것 또는 당선유력 후보와 정책협약 등을 체결하면서 기념사진 촬영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적극적인 조직에서 하는 정치활동이다. 물론 수없이 반복되지만 그 정책협약은 당선 이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4) 노동자 민중의 삶은 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 중 한국이 1등한 50개 종목’ 중 몇 가지만 들어보자.

 

자살률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가계부채 1위, 남녀임금격차 1위, 노인빈곤률 1위, 가장 낮은 최저임금 1위, 저임금 노동자 비율 1위, 학업시간 가장 높은 순위 1위, 환경평가 뒤에서 1위, 어린이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청소년 행복지수 낮은 순위 1위, 자살 증가율 1위, 실업률 증가폭 1위, 사교육비 지출 1위, 근무시간 많은 국가 1위, 세부담 증가속도 빠른 국가 1위, 국가부채 증가속도 1위, 사회안정망 가장 안 좋은 순위 1위, 정치적 비전이 안 좋은 순위 1위…..

 

지난 3월 17일 유성기업의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부터 노골적으로 자행된 현대자동차 자본의 노조파괴 공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년에 걸친 치열한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 되고 있다. 말이 5년이지 매일같이 폭력이 난무하는 고도로 긴장된 분위기와 탄압과 투쟁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반복되고 있는 현장에서 견뎌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의 중에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 위험군이 일반인의 6배를 넘었다. 조합원 40%가 정신질환 위험군에 속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버텨내야 하는 노동자들! 그러한 과정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 열사! 그러나 서울 시청 앞에 세우려는 농성장이 경찰 공권력에 의해서 또다시 짓밟혔다.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노동자들의 태도

 

인류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진 이후 계급투쟁의 역사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라는 폭력을 조직하고 독점한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계급지배’와 ‘국가’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이데올로기 조작을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계급지배의 진실을 폭로하고 변혁을 꿈꾸는 모든 세력에 대한 학살을 수없이 자행해왔다.

부르주아 선거라는 형식은 현상적으로는 1인이 1표를 평등하게(?) 행사하여 마치 대다수의 국민들이 직접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지배-피지배 관계는 이미 봉건시대 이후 사라진 것처럼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부르주아 선거의 본질은, 모든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의 도구였던 국가기구를 창출하는 과정이고, 따라서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들은 소위 부르주아 선거가 노동자 민중들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시켜 줄 것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오히려 부르주아 선거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더욱 고도화된 지배계급의 지배 수단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선거판을 잠깐만 살펴보더라도 쉽게 그것을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일정 조건이 갖추어지면 ‘피선거권’이 보장된다고 한다. 하지만 ‘피선거권’을 행사하려면 ‘일정 조건’과는 별개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금의 규모는 일반적인 노동자들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이다. 결국 부와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다시 그 부와 권력을 영구적으로 세습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부르주아 선거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선거판을 뒤덮고 있는 온갖 이데올로기 선전과 조작을 이야기할 수 있다. 선거가 임박하면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박빙승부’, ‘혼전양상’, ‘투표율이 선거 판세 주요 변수’ 등등… 하지만 그러한 ‘승부’의 본질은 자본가계급 내부의 권력분할일 뿐 노동자계급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이러한 자극적 용어들은, 노동자 대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치적 상상력을 펼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부르주아 야당의 승리나 패배를 자신의 승리나 패배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정치적 노예상태를 강요하고, 자신이 노예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 행위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선전과 조작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선거에 관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비록 부르주아들만의 선거 공간이지만 선거 국면에서는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또한 지배계급 내의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지배계급의 취약함이 드러나고, 이것이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촉매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부르주아 선거 국면에서의 투쟁도 노자 간의 역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주체역량이 준비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20세기 사회주의의 해체 이후 세계 자본주의에서 노자 간의 역관계는 자본진영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 있다. 게다가 노동계급진영의 내부 역량도 상당한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변혁의 전망을 확고히 갖고 있는 전위적 정치부대가 없어, 대중들에게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극도로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특히 한국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의 심각한 조합주의ㆍ경제주의적 경향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한국 노동운동의 조합주의ㆍ경제주의적 경향은 주요한 정치투쟁의 시기마다 그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긴 터널과도 같은 반동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4.13 총선과 노동자계급의 정치

 

이러한 엄혹한 정세 속에서, 그리고 반동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지금의 정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특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반동세력의 공세가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선거 국면을 활용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대중들과의 일상적인 정치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물론 정치교육은 선거철에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일상적으로 대중들의 정치의식 강화를 위한 교육과 토론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철에는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각 대중조직별로 정치 사업을 자연스럽게 배치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밀도 있게 정치교육의 기회를 확장시켜야 한다.

정치교육의 내용이 중요할 것이다. 그 내용은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등의 협소한 주제가 아니어야 한다.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기본적인 입장과 태도를 기본으로 해서 의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깰 수 있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역사의 전진을 위해서 어떻게 싸워왔는지에 대한 교육, 중요한 정치 정세에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정치정세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요한 동력이었다는 것 등을 강조하고 토론해야 한다.

물론 의회주의와 대리주의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라고 배워온 대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이 처음부터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익히고 있기 때문에 결국 지배계급이 아닌 노동자 민중들 자신이 대안이라는 것을 오히려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활동가들은 이러한 선거 시기에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선전하고 교육하기 위해 스스로 강사로서의 소양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활동가들 스스로가 정치교육의 기획자가 되고 강사가 되면서 새로운 정치교육 담당자를 양성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단기적인 투표행위에 대한 고민보다 투표 이후에 어떠한 실천을 지속할 것인가를 기획하고 모색해야 한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활동가들의 무기력함, 특히 의회주의를 반대하고 소위 진보정당들의 후보전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활동가들의 경우 선거철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가들의 무기력함은 그 활동가들이 사실은 조합주의적 활동에 심각할 정도로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항상 근시안적으로 그때 그때의 현실에 매몰되어 활동하다보니 결국 정말로 중요한 정치정세에서는 올바른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요 정세마다 꾸준한 정치선전선동의 노력을 해 왔다면 꼭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주요 시기마다 혼란 없이 올바른 실천 방침을 세우고 집행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2) 현 지배체제의 기만성을 폭로할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

선거철은 폭로의 계절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폭로는 노동자민중운동 진영보다 지배계급들 내에서 더 노련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진다. 지금 언론과 인터넷만 보더라도 실시간으로 폭로의 소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의 폭로는 우선 지배계급 분파 내에서 상대진영을 타격하여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들은 더 나아가 대중들로 하여금 정치적 환멸과 무관심을 유발시키고 결국 그것이 지배계급들의 지배를 지속시키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 민중들은 지배계급들의 파렴치한 작태를 바라보며 정치적 환멸과 무관심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타격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선전선동해야 한다. 선거철을 맞아 가능한 다양한 주제의 폭로 활동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 세월호 학살의 문제, 노동자 민중운동을 압살하는 테러방지법, 복면금지법 등 파쇼적 억압의 문제, 급증하고 있는 실업과 불안정한 삶의 문제, 지배계급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온갖 부와 권력의 부당한 세습과 비인간적 행위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다양한 주제들의 폭로들이 확대되어야 한다.

 

(3) 대중투쟁력의 복원이 급선무이다.

지금의 정세는 ‘휘발성이 높은 연료가 피스톤 안에서 고압으로 압축된’ 상태와도 같다. 박근혜 정권의 파쇼폭력은 노동자민중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동자민중운동은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맞서 정확한 시기에 집중력 있는 분노를 표출해내지 못해 왔다. 그러나 압축된 연료는 폭발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다만 압축된 연료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에 따라 폭발시기가 다를 뿐이다.

2015년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가 그 폭발의 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의 융단폭격으로 폭발의 도화선인 민주노총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고 노동자계급이 심각하게 위축되어버렸다. 민중총궐기 이후 연쇄폭발이 좌절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민중총궐기의 대오는 결코 적은 대오가 아니었다. 즉 투쟁의 대오는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서히 복원되고 있는 투쟁동력을 더욱 속도 있게 복원시켜야 한다. 투쟁동력의 복원 없이는 어떠한 정치적 구호도 대중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이슈가 없어서 싸움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할 동력이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짧은 선거기간이지만 지금은 적들의 탄압이 상대적으로 완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대오를 정비하고 그 투쟁에 폭넓은 연대전선을 구축하며 싸움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유성 투쟁에 주목해야 한다.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지난 5년간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한광호 동지의 죽음 이후에 서울시청으로 농성장을 펼치는 등 공세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엄호하고 사수해 나가면서 투쟁대오를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어디든 파열구를 낼 수 있는 강고한 대오가 형성되면 다시 투쟁의 불꽃을 확산시킬 수 있다. 민주노총의 지지후보, 조직후보들에게 온몸으로 유성투쟁을 사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 사업장들의 완강한 투쟁을 중심으로 투쟁동력을 다시 복원해 낼 때만이 선거 이후에 자행될 저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투쟁 동력은 여전히 폭발력을 갖고 있고, 소강상태를 넘어 조만간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 참사 이후 2년간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투쟁은 완강하게 진행되었다. 전국 주요 지역에 대책기구가 장기간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4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전국적인 대중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 투쟁을 다시 전국화해 내야 한다. 세월호 문제를 소부르주아적인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태도, 또는 ‘탐욕의 자본주의’ 운운하면서 추상적인 근본주의로 접근하려는 태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야당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세월호 투쟁을 약화시키는 교란요인이다. 우리는 왜 저들이 그토록 잔인하고 집요하게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은폐하고 조작하려고 하는지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학살의 실체’를 밝혀내고 타격하는 투쟁을 확고히 하면서 전국적 투쟁 전선을 복원해야 한다.

 

 

역사에서의 ‘심판’은 ‘투표’행위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역사를 되돌아 봤을 때 부르주아 선거에서 투표행위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심판을 한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1) 그것은 부르주아 선거자체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지배하는 계급지배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결과는 이미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반복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져 있다. 다만 어떤 자본가계급의 분파가 지배하는지만 바뀔 뿐이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들의 처절하고도 완강한 투쟁이,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파쇼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던 역사적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 아니 오히려 그러한 사례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례의 하나로 1979년에 있었던 YH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시 기억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어서 8월 9일에는 YH 무역 노동자 170여 명이 마포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회사 운영의 정상화와 근로자 생존권의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YH 무역은 1966년에 설립되어 가발 수출에 종사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수출의 둔화와 업주들의 대규모 사기 횡령 등의 사건이 겹쳐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와 함께 민주노조의 활동이 눈부시게 전개되자 회사 측은 노조를 파괴할 목적으로 1979년 3월 30일 정부기관과 짜고 기만적인 공장폐쇄를 시도했다. 이에 노조는 4월 9일 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회사 정상화 방안을 채택한 뒤 이를 각 기관에 발송하는 등 직장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노조 파괴에만 눈이 먼 회사 측과 정부 당국이 노동자의 요구에 대해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자 결국 노동자들은 장기농성에 돌입함으로써 치열한 투쟁의 막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폭력적인 농성진압 책동을 자행하는 등 노동자들이 숱한 시련을 겪게 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긴 투쟁을 계속해나갔으며 급기야는 산업선교회의 알선에 힘입어 신민당사 농성을 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YH 여성 노동자의 신민당사 농성이 갖는 의의는 매우 컸다. 우선 이 사건은 노동자들의 농성을 받아들인 신민당이 그동안 독재권력의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 김영삼 총재를 중심으로 반유신투쟁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음을 행동으로 입증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이 사건을 통해 각계 민주세력들이 농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명실공히 노동자에서 보수야당에 이르는 범민주세력의 공동투쟁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권력의 언저리에 기생하고 있던 야당조차 투쟁에 동참하고 모든 민주세력의 공동투쟁이 구체적으로 실행되었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누차 확인되듯이 대규모 민중항쟁의 도래를 예고해주는 것이었다. 요컨대 YH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가오는 민중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 역할을 해낸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2)

 

당시 YH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반, 심지어는 10대의 경우도 있었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 당시 한국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그들이 결국 거대한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노사과연>

 


1) 1972년 11월 2일 선거로 집권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더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가 결국 8개월 만에 반동 쿠데타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붕괴된 역사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선거로써 심판’이 아니라 ‘강력한 노동자계급의 무장되고 조직된 힘’만이 지배계급을 심판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바로 그 핵심인 것이다.

2)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제2권, 돌베개, 2015.7.20.(신판), pp.366-377.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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