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대를 통해 투쟁의 주체로 서다 -전교조 조합원들과 떠난 4박 5일간의 장기투쟁농성장 연대방문기

 

 

송송이 | 전교조 조합원, 회원

 

 

나는 왜 이 여정을 함께 하고 싶었을까?

 

4년 전에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고 3~4개월 고민을 하다가 전교조에 가입을 했다. 가입을 한 후에 보니, 나의 첫 번째 발령지에서는 교장, 교감의 말에 교사들이 대체로 순응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5~6명이었던 조합원은 특별히 전교조 조합원으로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나 분회에는 별다른 애정을 가지지 못했다.

그나마 당시 분회장의 추천으로 지회활동을 하게 되면서 멋진 활동가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지부의 2030특별위원회(주로 20대 30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기획하는 단위)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지부활동가들을 만났다. 어쨌든 나의 조합활동의 시작은 멋진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러한 선배들을 좇는 새내기일 수만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부 몸짓패와 전국의 현장몸짓패들이 모인 문선대를 하게 되면서 전국의 투쟁하는 동지들을 가까이서 만나게 되었다. 해고된 동지들이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임금인상과 부당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당시 전교조의 주요투쟁과제는 연금개악반대, 법외노조 공세를 저지하는 투쟁이었지만 나는 전교조의 투쟁이 절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교조의 투쟁은 해고, 임금, 일상적인 차별 및 억압과 같은 생존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보였고, 비정규교직원들도 포괄하지 못하는 정규직 교사노조의 투쟁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되었다. 때문에 처음에 내가 이 여정에 부여한 의미는,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의 투쟁에 연대함으로써, 이토록 불안정한 사회에 살면서도 생존의 위협에서 비껴나 있을 수 있는 내 삶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었다.

3년 전부터 방학 때마다, 전국의 투쟁농성장을 찾아다니는 활동을 기획하셨던 한 조합원이 2016년 1월의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활동을 조직하였다. 전남순천, 전북, 울산, 대전, 서울에서 모인 10명의 전교조 조합원들이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으로 이 여정을 시작했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 부정하지 말되 갇혀서는 안 될 프레임

 

울산과학대 천막농성장,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천막농성장, 모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주축인 투쟁현장이었다. 이 투쟁을 이끌고 있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김순자 지부장, 청주시노인전문병원 간병 노동자 권옥자 분회장, 모두 너무나도 강건하셨고, 강력한 투쟁만이 승리를 쟁취하는 길이란 걸 다년간의 싸움에서 터득하신 터라 한 치 흔들림이 없어 보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이 분들이 대부분 학력이 낮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일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일상적인 무시와 차별에 시달리고 인권유린을 당했는지 생생히 들었기 때문이다.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의 경우 늘 계약해지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인사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새벽같이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먼저 출근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관리자는 일상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애인으로 부르며 성폭력을 서슴없이 가했다. 남편이 죽었으나 그것을 회사사람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이유가 ‘관리자가 언제 어느 모텔로 자신을 부를지 몰라서’라는 다큐멘터리 속 청소노동자의 삶에 대해 듣고, 우리네의 비참한 삶을 생각했다는 김순자 지부장님의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은 청주시가 세금을 들여 만들고 그것을 민간병원에게 위탁해서 운영해왔다. 정당한 임금, 제대로 된 쉬는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노조를 만들자, 이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함께 근무하던 노동자들을 꾀어내어 노조원들을 괴롭히도록 했다고 한다. 그 중 누군가가 노조원을 폭행했지만 오히려 노조원이 더 많은 처벌을 받았다. 노조원들에게 행해지는 욕설과 폭력은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CCTV를 설치하여 노조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내 일터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지역 및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부분 관리자는 신규 여교사에게 강자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자신이 인사권을 쥐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향해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얼마 전 나와 같이 세월호 500일 행동주간을 함께 하려고 했던 젊은 여성 비정규직, 내 동료는 올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세월호 행동주간과 같은 일을 또다시 할 것이냐?’, ‘안 한다고 약속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관리자의 치졸한 물음에 답해야 했다. 무기계약직 전환 후에는 ‘당신을 언제든지 날려버릴 수 있다’라는 교장의 협박을 듣기도 했다. 일상적인 반말, 차별적인 언행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질서를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이것은 남성 대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또다시 힘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싸움이다. 소위 인사권, 평가권이라는 형태로 권력을 지닌 이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은 힘을 모아 맞서는 방법뿐이다. 승리로 가는 길이 투쟁뿐이란 걸 아는 사람의 눈빛은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김순자 지부장, 권옥자 분회장의 지건한 눈빛은 잊지 못할 것이다.

 

 

조직을 지키는 일상적인 규율과 실천들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동지들은 일상적인 억압과 통제, 권고사직에 맞서고, 근속수당을 확보하기 위해 작년 5월 노조를 결정했는데, 이로 인해 170여 명이 문자로 해고통지를 받았다. 200여 일이 넘는 지금은 50명의 노동자들이 남아 공장 앞에 천막을 세우고 사측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50명의 노동자들이 조직에서 이탈하지 않고,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규칙들이었다. 우선 50명이 조를 짜서 공장과, 구미시청 앞을 교대로 지킨다. 또한 일상적인 학습과 토론 및 평가시간을 가지고 이 결과물을 남기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게다가 끊임없이 연대활동을 다니며 그 느낌과 평가를 SNS상에 올려 공유한다. 얼마 전에는 계속되는 생활고와 심적 부담 때문에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는 노조원이 있었는데 같은 조의 조원들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찾아가서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다시 투쟁현장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조 위원장 차헌호 동지가 이러한 조직의 문화를 앞장서서 만들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해고된 상태에서의 투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힘든 투쟁이기에 이 투쟁을 이어갈지 말지에 대한 개인의 판단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인 학습과 토론, 평가를 통해 구성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일상적인 고민을 함께 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은 모든 구성원이 이탈 없이 끝까지 함께 투쟁해 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점을 투쟁현장에서 배우게 되었다.

 

 

피켓팅을 통해 돌아 본 교사의 역할

 

풀무원 화물노동자들은 풀무원의 위탁업체에 등록되어 있는 1인 사업자이다. 하루 700Km를 왕복해서 운전하고, 인력감축으로 화물 상하차 업무 또한 해내야 하는 등 노동강도가 매우 강해졌다. 그러나 20년 동안 임금이 동결되고 추가운임비도 줄었다. 게다가 화물상하차시 부상을 입어도 산재인정을 해주지 않아 생활고를 겪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지만 이러한 노조의 주장에 사측은 계약해지 위협으로 답할 뿐이다. 작년에는 68일의 고공농성투쟁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전국의 사업장 및 대형마켓에서 풀무원 불매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부천 더불어민주당 원혜영의원 사무실 앞 노숙농성장이었다. 원혜영의원의 아버지가 풀무원의 창립자이며 현재는 원혜영의 지인이 풀무원을 인수한 상태이다. 원혜영은 부천에서 4선 의원으로 그 힘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힘이 없다며 시민단체의 힘을 모아보라고 권유한 상태라고 한다. 풀무원 동지들은 원혜영에게 희망을 걸고 계시는 듯 보였지만 그 자신이 자본가이거나 혹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기 마련인 국회의원에게 노동자를 위한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은 그들을 압박하는 투쟁만이 승리의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숙농성장을 찾아가서 노숙농성장과 근처 홈플러스를 왕복하는 ‘풀무원 불패’ 선전전을 함께 진행했다.

선전전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러한 선전전에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로 싸늘하거나, 생소한 것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만을 보내는 것으로 그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대부분 적어도 고등학교까지의 배움의 과정에서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그 무엇도 접해보지 못하고 성장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알기 전까지는 계속 그런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살아갈 것이다. 투쟁, 선전전, 집회, 이 모든 것이 그 지배이데올로기 속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니 이 낯선 것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거부감을 느낄까?

작년에 학교에서 세월호 행동주간을 정해서 학생들과 활동을 해보려 하는데 관리자가 막아선 일이 있었다. 그 때 친한 전교조샘이 학교 앞 피켓팅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두려운 생각이 들어 행동주간을 축소해서 진행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학생들에게 부당한 힘에 맞서 싸우는 방법들을 모델링 해주는 것은 굉장한 교육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익숙한 사람이 피켓팅을 하고, 부당한 것에 맞서 싸우고, 집회에 나가고 하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래서 그것을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이 어쩌면 교사의 몫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에서 투쟁의 주체로…

 

단원고 존치를 위해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매일 두 시간 동안 피켓팅을 하시는 유가족 분들의 활동에 동참했다. 바람이 매우 세차고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날 두 시간을 꼬박 한자리에 서서 피켓팅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유가족분들은 단원고 존치에 대한 절실한 맘으로 매일매일 이 일을 해내고 계신 듯 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에 가서 면회시간에 맞춰 백남기 농민의 가족과 백남기 농민을 면회했다. 가족은 백남기 농민이 다시 깨어나실 것이라는 희망은 없으신 듯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이별할 시간을 만들어준 것에는 한편으로 감사하신다고도 했다.

이 모두 박근혜 정권하의 거대한 국가권력과 경찰의 폭력에 의해 벌어진 일들이다. 이 분들의 가족은 희생자의 가족이자 피해자이지만, 사실 이 분들이 언제까지나 희생자의 가족, 피해자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로서는, 진실을 숨기고 오히려 그것을 왜곡하여 공격해오는 저 거대권력에 맞설 수 없다. 세월호 학살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의 희생으로 이미 커다란 투쟁전선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 투쟁이 지금은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있다. 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할 몫은 다른 단위에 부여하더라도 가족들 모두가 함께 그것에 동참하고 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다.

 

동양시멘트의 경우, 노동부로부터 위장도급 판결을 받자마자 원청으로부터 사내하청업체 계약해지라는 형태로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강원지노위로부터 이것이 부당노동행위라는 판결 또한 받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인 상태이다. 인권위 건물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비정규직 동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법원에서 이들의 고용이 불법파견이므로 이들의 정규직 전환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음에도 회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절망적일 때 법의 힘에라도 기대어보려 하지만 때로 노동자에게 이렇게 법은 힘이 없고, 또 반대로 자본가의 이익에 기여하려고 할 땐 막대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콜트콜텍의 경우, 콜트콜텍을 다년간 운영하며 재력가가 된 박영호 사장은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을 하고 남아있던 물량을 해외로 빼돌려 생산을 지속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끝내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만으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여정의 마지막 날에 있었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에서 고등법원이 전교조에 패소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전교조가 헌재에 낸 위헌법률심판 소송에서 헌재가 교원노조법 2조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기도 했었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사례이지만 이 사례들에서 명확히 할 수 있는 것은, 법은 노동자의 편이 아니며 때문에 그것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력화시킬 힘은 노동자의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만 나온다.

 

 

늘 언제나 그랬듯이 노동자 운동을 좀 먹는 세력들…..

 

사회보장정보원(구 보건복지 정보개발원) 투쟁은 2012년 말 보건복지개발원이 다음해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자를 줄이기 위해 콜센터 상담원 150명 중 42명을 대량해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기 위해 8명의 노조원들이 힘을 합쳤지만 이들에게 힘을 보테 줄줄만 알았던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일반노조 관료들은 오히려 노동청과 접촉하여 ‘신규채용안’이라는 형태로 합의안을 받는 데만 골몰했다. 신규채용안은 그간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고용보장도 되지 않는 쓰레기 합의안이었는데 일반노조 관료들은 분회원들의 동의도 없이 신규채용안을 받는 것이 일반노조의 결정사항이라며 일방적 통보를 서슴지 않았다.

기아차 비정규직의 투쟁은 지난해 법원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기아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다’라는 판결을 내린 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규직이 대부분인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열린 노사특별교섭에서 사내하청노동자 3400명 중의 일부에 불과한 465명을 정규직 전환이 아닌 ‘특별채용’ 형태로 고용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비슷한 노사 간 교섭이 현대차에서도 벌어진 바 있다.

사측과 적당한 합의를 통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지니고 있는 권리를 지키는 것에만 골몰하는 사람들, 한국사회의 주요 운동조직에 몸담으며 그 조직과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우선인 이러한 사람들을 과연 함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명목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적어도 이러한 행동들이 운동을 좀 먹는 일이라는 것에 동의가 된다면 제대로 평가하고 처리하여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의 투쟁은 내 일터, 내 삶의 공간에서부터 시작이다!

 

처음 이 여정을 시작할 때와는 분명 다른 그 무엇이 나에게 생겼다. 무엇보다, 정규직 교사 노조, 전교조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의 시선을 조금은 거두게 되었다. 정규직 교사가 현재의 삶이 별로 절박하지 않기 때문에 투쟁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전교조의 역사를 봤을 때 투쟁을 이끈 한 두 사람의 과오가 있을지언정 노동조합 구성원의 공통된 지향점은 옳은 경우가 많았다. 1989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 체제 내로 편입될 것이 요원하자 일부가 들고 나온 교원단체로의 조직전환론은 조합원들의 별다른 호응 없이 폐기되었다. 최근엔 법외노조 공세의 근거가 된 9명의 해직조합원의 노조 내 거취에 대한 판단도 조합원들은 명확히 해냈다. 그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해고된 동지들,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은 생존을 건 절박한 싸움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제껏 그들의 싸움에만 눈을 돌렸었다. 그러나 내가 전교조의 싸움이 절박하지 않다고 느꼈던 건 어쩌면 내가 이 싸움을 제대로 시작한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상황이 나를 투쟁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투쟁에 대한 당위로부터 싸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 당위로부터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해 한발자국 내딛으면 그 때부터가 치열함의 시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규직 교사이기 때문에 삶이 치열하지 않은 건 아니다. 문제투성이, 바꿀 것투성이 학교에서 이것을 바꾸자고 목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내 삶이 치열해 질 것임을 나도 이미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투쟁은 내 일터, 내 동료들과 학생들이 함께 하는 그곳, 학교, 분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짧은 연대의 여정을 통해 깨달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인생에 꼭 한 번 마법 같은 우연이 주어지는 때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이 여정을 끝낸 후라고 하겠다.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교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있었는데 그것이 무산되었고, 한 번은 꼭 같이 근무해보고 싶던 지회의 멋진 활동가가 우리학교로 오게 되었다. 더구나 그 분을 포함 꽤 많은 조합원들이 우리학교로 오게 되면서, 분회활동이 거의 없던 우리 분회는 거대한 활동력을 담보하게 되었다. 그 동안 연가투쟁, 세월호행동주간 등 혼자서 관리자와 맞설 일이 조금 있었는데 사실은 많이 외로웠다. 이제는 교원평가반대투쟁, 성과급균등분배, 일제고사 반대투쟁,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항의 등, 학내에서 해야 할 많은 투쟁을 함께 시도해보고 싶다. 올해가 정말 기대된다. (2015.2.7.)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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