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찬 | 연구위원장
*1)
[목차]
머리말
제 1 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 2 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 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1) 물질과 운동
2) 공간과 시간
3) 물질과 의식
4) 원인과 결과
5) 개별-특수-보편
6) 필연성과 우연성
7) 본질과 현상
8) 가능성과 현실성
9)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
10) 모순 혹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내용과 형식)
11) 부정의 부정
12) 인식론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 4 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크 샌덜의《정의란 무엇인가》
제 5 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 6 장 철학과 종교
제 4 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맑스주의가 탄생하고 노동계급운동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부르주아 철학은 중대한 변모를 겪는데 맑스 이전의 부르주아 철학이 나름대로 진보적 요소를 띠고 과학을 추구하는 면모를 보였다면 맑스 이후의 부르주아 철학은 변호론을 펼치고 비합리주의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1870년의 파리꼬뮨 이후 심화되었는데 노동자계급의 성장에 겁을 먹고 반동화되면서 체제유지에 몰두하게 되는 부르주아지의 분위기가 철학에 반영된 것이었다.
부르주아지가 혁명에 반대하고 보수화되는 흐름이 철학상에서 반영된 것으로는 콩트를 들 수 있다. 콩트는 실증주의 철학을 제창하고 사회학을 창시했는데 실증주의는 당시 발전하던 과학의 흐름을 나름대로 수용하여 기반으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콩트의 실증정신은 과학정신을 속류화한 것이었는데 실증주의는 혁명의 시대를 마감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속류적인 이론체제를 제출한 것이었다.
콩트는 철학의 영역을 3가지로 파악한다. “사회에 대한 철학의 책임 한계를 정하고 있는 이러한 거대한 종합이 현실적이고 항구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학의 3중의 영역, 즉 사변의 영역, 감정의 영역, 행동의 영역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1) 콩트는 철학의 3가지 영역의 구분을 자신의 이론체계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사변의 영역은 철학자계급이, 감정의 영역은 여성이, 행동의 영역은 민중계급이 담당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설정은 혁명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사회질서에 대한 저항세력을 이루는 민중세력과 여성을 체제내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콩트는 자신의 실증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오늘날에는 현상의 법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현실적인 예측능력을 제공하는 이론만이 유일하게 외부세계에 대한 자발적인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수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둔 이후, 실증정신은 그 기본원칙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우리의 개념 전체를 체계화하기에 이르렀다.”2) 이러한 콩트의 규정은 실증주의가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에 관계되고 나아가 실증정신은 과학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신의 입론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콩트가 실증정신으로써 과학을 표방하고자 하나 실증정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과학적인지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로 사변, 감정, 행동이라는 철학의 3가지 영역을 구분하면서 인류 발전에 대해 도식적인 3단계를 제시한다. “그 3단계는 이러하다. 처음은 신학의 단계로서, 이 단계에서는 어떠한 증거도 지니고 있지 못한 즉각적인 허구들만이 공공연하게 지배한다. 다음은 형이상학의 단계로서, 의인화된 추상이나 본체들의 통상적인 우위가 그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증의 단계가 있는데, 이는 항상 외부 현실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한다.”3) 콩트는 인류의 발전을 신학의 단계, 형이상학의 단계, 실증의 단계로 도식적으로 나눈다. 신학의 단계는 카톨릭의 지배를 말하고 형이상학의 단계는 이성적 철학, 사변적 철학이 지배적이던 단계를 말하고 실증의 단계는 과학의 발전과 대두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식적인 구분은 인류발전의 원천이 무엇이고 어떠한 법칙을 따라서 발전하는가 즉, 사회와 역사발전의 과학과는 거리가 멀고 단지 역사적 발전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콩트는 자신이 역사발전의 법칙을 해명했다고 과장하고 이를 기초로 사회에 대한 과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콩트는 18세기 이후 유럽의 철학사에서 도도한 흐름이었던 유물론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유물론은 낮은 수준의 과학이 높은 수준의 과학을 침식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 내가 보기에는, 공공 본능에 의해 정당하게도 ‘유물론’이라는 수식이 붙은 과학적인 일탈은 그러한 과장에 속한다.”4) 콩트는 이렇게 유물론을 과학적인 일탈로 규정하는데 철학과 과학에서 유물론적 경향이 위험한 것이라고 보고, 과학정신을 실증정신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자신의 의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본 것이다. 콩트는 과학연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는 유물론에 대해 비판한다.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는, 대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기하학적이거나 기계적인 것을 흡수하고자 하는 현재의 평범한 수학자들의 성향 속에서 유물론의 경향을 알아차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학전체에 의한 물리학의, 혹은 물리학에 의한 화학의, 무엇보다도 화학에 의한 생물학의 더 분명한 사칭 속에도 유물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 유물론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기본적 해악으로 작용하며, 논리의 남용이다.”5) 콩트는 과학발전이 자연발생적으로 가져오는 유물론적 관점을 적대시하는데 이는 18세기 유물론이 혁명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혁명의 시대를 마감하고자 하는 것이 실증주의의 기본목표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콩트는 실증주의가 유물론과 관념론(정신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둘러댄다. “실증주의는 유물론과 정신주의라는 상반된 주장들 속에 존재하는 합당한 것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유물론은 무정부주의적인 것으로 정신주의는 반동적인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이 둘을 완전히 거부한다.”6) 여기서 실증주의의 사이비성이 드러나는데 실증정신이 과학정신을 말하는 듯이 표방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실증정신의 과학성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도식적인 인류 3단계 발전론 이외에는 콩트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유물론에 적대하고 혁명에 적대하는 것이 콩트의 논리의 기본적 흐름이다.
콩트는 실증주의의 사회적 측면을 말하면서 진보의 개념과 질서의 개념을 ‘화해’시킨다. “모든 측면에서 진보는 질서의 발전된 모습이기 때문에 진보만이 질서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준다.”7) 이러한 관점에서는 진보는 질서라는 보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것으로 역할이 국한된다. 콩트는 나아가 ‘질서와 진보의 필연적인 화해’를 주장하고 “질서가 진보의 영원한 조건이라면, 진보는 질서의 지속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8)고 본다. 질서가 진보의 영원한 조건이라면 혁명은 원천적으로 부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보는 내용을 상실하고 형해화된다고 할 수 있다.
콩트는 부르주아 혁명이 부정했던 중세의 질서, 카톨릭 지배의 역사에 대해서도 정당화를 시도한다. “당시로서는 구체제로부터 뛰쳐나오기 위해서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가 반드시 필요했다. 반대로, 이제부터 완전한 해방은 과거 역사 전체를 완전히 정당화시킬 것을 요구한다.”9) 과거 역사에 대한 정당화는 혁명에 대한 부정인데 이는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올라선 후에 보수화되는 경향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콩트는 실증철학의 목표가 민중들로 하여금 혁명에서 등을 돌리게 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증철학은 최종적인 재조직화를 주재할 수 있는 권한을 두고 경쟁하는 다양한 유토피아들의 필연적 허무와 근본적 위험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민중에게 이러한 정치적 소요에서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모든 이들로 하여금 여론과 관습들을 완전히 혁신시키는데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 것이다.”10) 한편으로 과학정신을 실증정신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다른 한편으로 진보와 질서를 ‘화해’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실증주의를 창출하여 민중들을 혁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바로 이 점이 콩트의 실증주의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콩트는 혁명과 저항의 주력군인 노동계급과 민중들, 그리고 여성을 실증주의로써 체제내화하는 방안을 제출한다.
콩트는 노동자계급을 실증주의 철학자들의 보조자로 설정한다. “노동자계급만이 새로운 철학자들의 중요한 보조자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쇄신의 추진력은 최종질서의 두 극단적 요소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관계에 의존한다.”11) 노동자계급은 중간계급과 달리 개인적 이익의 추구에 물들지 않아서 올바른 도덕성을 담지할 수 있어서 실증주의 철학자계급의 보조자로서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실증주의 철학자들 간의 유대관계가 쇄신, 즉, 질서를 조건으로 하는 진보 혹은 혁명의 체제내화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콩트는 실증주의 철학자계급을 영적 권력으로 상정하고 민중들을 자신들의 보조자로 본다. “민중의 기능은 영적 권력이 정부의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 영적 권력이 자신의 중요한 사회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민중의 기본 성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중세 때 이미 가톨릭의 정신성 속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12) 영적 권력의 보조자로서 민중의 기능은 그들이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도덕적 담론의 장으로 후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중들은 이윽고 질서의 담지자가 된다. “민중의 참여는 기본 질서를 흐트러뜨리기는커녕,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질서를 가장 확고하게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증주의로 인한 최후의 변화이다.”13) 여기서 콩트는 민중들의 체제내화가 실증주의의 최종목표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실증주의만이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중대한 시도들로부터 서구를 지켜줄 것”이며 “부자들을 안심시키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만족시켜 준다”14)고 본다. 그리하여 이러한 실증주의의 구상은 “대혁명의 유기적인 마무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진정한 철학자들과 노동자들이 최종적으로 맺게 될 협약”15)이라고 규정한다.
콩트는 자신의 철학을 사변, 감정, 행동이라는 3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는데 감정의 영역의 담당자로서 여성을 설정한다. “철학자와 민중이 각각 인간 본성의 지성적 요소와 실천적 요소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성은 인간 본성의 감정적 요소를 대표한다.”16) 여성을 감정의 대표자로 보는 콩트의 구상은 실은 정치의 도덕에 대한 종속이라는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중세의 카톨릭에 대한 세속권력의 종속과 유사한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여성의 성향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 쇄신의 중요한 조건, 다시 말해 중세보다 더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토대 위에 도덕에 대한 정치의 체계적인 종속이라는 원칙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17) 이러한 콩트의 구상은 매우 반동적인데 세속권력의 영적 권력에 대한 종속 혹은 도덕에 대한 정치의 종속은 근대 부르주아 혁명이 이룩한 성과를 무력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을 중요한 담당자로 설정한 콩트는 실은 여성에 대해 매우 편향된 입장을 보여준다. “물론 여성의 정신은 남성에 비해 일반적인 귀납과 심오한 연역, 한마디로 말해 모든 추상적인 노력에 적합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18), “여성은 가정에서 뛰쳐나올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가정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모든 지배권력을 철학자들과 노동자들보다 한층 더 잘 포기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조절권력에 참가해야 한다.”19), “여성이 사변적 일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시적인 창조에서이다. 왜냐하면 과학 분야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여성의 진정한 본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20) 콩트는 또한 이혼제도를 비판하고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더라도 관습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일부일처제의 궁극적 보완인 영원한 수절의 의무를 강화시켜나갈 것”21)을 주장한다. 이러한 콩트의 구상은 여성을 감정의 대표자로서 높이 위치지우는 듯하면서도 실은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고 여성을 봉건적 굴레에 묶어 두는 것이다.
실증주의 철학을 세속권력에 대비되는 영적 권력으로 설정한 콩트는 카톨릭을 대체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데 이를 발전시켜 실증주의 철학을 하나의 종교로 전화시키는데 그것이 인류교이다. “실증주의는 마침내 유일하게 완전하고 현실적인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가 되어, 처음에 신학에서 비롯되었던 불완전하고 잠정적인 온갖 체계화보다 우위에 서게 될 것이다.”22), “실증주의는 기독교의 계승자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다. … 다양한 시대와 수단은 인류숭배의 창시자들이 스스로를 진보적인 가톨릭 위인들의 진정한 계승자로 간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23) 이리하여 세속권력과 구분되는 영적 권력이라는 콩트의 구상이 완성되었고 콩트의 실증주의는 사변, 감정, 행동이라는 3 요소를 묶어주는 인류 개념을 통해 하나의 종교, 인류교로 전화되었다.
이러한 콩트의 실증주의는 외면상의 논리적 정합성은 갖지만 그 내적 근거는 취약하다. 실증주의가 대중의 관심을 끈 이유는 그것이 과학의 발전을 흡수하는 듯한 외양을 띠었기 때문인데 실증정신은 실은 과학정신의 속류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증 개념을 기초로 콩트는 자신의 모든 주의를 민중과 여성을 체제내화하여 혁명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에 맞추고 있다. 이러한 실증주의의 등장은 프랑스 혁명 이후 자본주의 발전이 노동과 자본의 모순을 심화시킴에 따라 부르주아지가 혁명에 반대하고 질서의 옹호자가 되고 보수화되는 경향의 철학적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콩트와 거의 동시대인인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를 표방하였다. 공리주의는 처음에는 벤담이 제창했으나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 효용이론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심화시켰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는 윤리학의 기준 혹은 원리로서 효용이론을 제기했는데 이들은 효용을 “쾌락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쾌락 그 자체를 의미”24)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효용과 최대 행복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삼고 있는 이 이론은, 어떤 행동이든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것이 되고, 행복과 반대되는 것을 낳을수록 옳지 못한 것이 된다.”25) 밀의 공리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와 효용이론이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행복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정한 차이가 있는데 벤담이 행복의 양적인 측면에 머물렀다면 밀은 인간의 개성의 발전을 행복의 주요 기준으로 놓았고 그리하여 행복의 질적인 측면을 강조했다고 평가되는데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26)는 것을 표방했다.
그런데 밀은 효용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그 기준은 행위자 자신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을 합친 총량”27)이다. 즉, 공리주의의 기준이 되는 행복은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닌 모든 사람의 행복의 총량이라는 주장인데 과연 이런 기준이 성립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보는 주장을 따를 때 모든 사람의 행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고 따라서 사람들이 계급적 존재라는 것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밀에게서는 단순한 최대다수 혹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이라는 실용주의적 접근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밀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보다 실감나게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가능하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28) 여기서 밀은 전체 혹은 최대다수의 행복에 접근하기 위해 그들의 고통의 근원, 계급적 존재에 접근하는 대신 이익의 ‘조화’라는 절충으로써 개인과 전체의 이익의 문제에 접근한다. 이는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올바로 봄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근원의 문제에 대한 접근을 빼먹고 단순히 행복을 조화, 혹은 조절의 문제로 보는 것인데 이는 공허한 것이며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접근도 아니다.
밀의 이러한 접근은 칸트와 마찬가지로 밀 또한 어느 시대에나 합당한 혹은 인간 보편에 적합한 윤리의 기준을 시도하는 것인데 그러나 윤리는 인간 보편의 관점에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역사적 단계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즉, 노예제 시대의 윤리, 봉건제 시대의 윤리, 자본제 시대의 윤리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성격에 대한 인식이 없는 밀은 윤리학에서 그동안 불변의 기준으로 삼아왔던 정의 개념에 대해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정의 개념과 효용 개념을 통합하고 있다. “나는 효용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정의에 관한 가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든 이론을 반박하는 한편, 효용에 바탕을 둔 정의가 모든 도덕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그 어느 것보다 더 신성하고 구속력도 강하다고 생각한다.”29) 윤리의 기준으로서 정의 개념이 갖는 한계는 효용 개념과 정의 개념을 통합하여 ‘효용에 바탕을 둔 정의’ 개념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밀은 공리 혹은 효용 혹은 유용성(utility)의 개념을 자신의 윤리학의 근본 토대로 삼고 있고 정의 개념조차 효용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러면 여기서 이러한 효용(유용성) 개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맑스의 분석을 인용해 보자. “인간 상호 간의 온갖 다양한 관계가 유용성이라는 <단 하나의> 관계로 해소되는 현상, 언뜻 보기에 황당무계하고 형이상학적 추상인 듯이 보이는 이 현상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관계가 실질적으로 단 하나의 화폐, 교역관계 아래에 포섭된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 홀바흐에 따르면 상호 교류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모든 활동, 이를테면 말하는 것과 사랑 행위 등은 모두 유용성의 관계 또는 이용관계이다. 여기서 전제로 주어져 있는 현실적 관계 즉 말하기, 사랑 행위 등은 일정한 속성을 갖는, 개인의 특정 활동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관계들이 그에 내재하는 나름의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기 보다는 그들 사이에 개입하는 제 3의 관계인 <유용성의 관계 내지 이용관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 부르주아지의 관점에서 볼 때 해방은 곧 경쟁인데 이 경쟁이 18세기만 하더라도 개인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발전의 새로운 활동 무대를 열어 줄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상황에 상응하는 의식의 이론적 선언, 즉 개인 간의 보편적 상호관계로서의 상호 이용(착취)을 밝힌 이론적 선언은 어쨌든 하나의 대담하고도 공공연한 진보였다. 다시 말해 그것은 봉건제도 아래 자행되던 착취의 정치적, 가부장적, 종교적, 정서적 위장을 폭로하고 그 거짓된 신성을 벗겨내는 <계몽>이었다. …”30) 공리주의 혹은 효용 개념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그 자체의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이용(착취) 관계로 나타난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맑스는 파악한다. 그것의 단적인 표현이 화폐관계인데 이러한 인간 활동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 공리 혹은 효용의 개념이고 이를 이론적으로 선언한 것이 다름 아닌 공리주의인데 이는 중세에 비해서는 하나의 진보이고 ‘계몽’이었다고 맑스는 파악한다. 그리하여 벤담과 밀은 효용의 개념으로써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조화’시키고 행복을 계량하고 심지어 정의 개념조차도 효용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밀은 ≪자유론≫으로 유명한데 19세기 중반의 사회상황을 반영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중핵으로 하는 민중들의 정치참여를 인정하고 이들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로 자유 개념을 정리한다. 그런데 밀의 ≪자유론≫은 부르주아 혁명의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동시에 자유 개념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하나의 요소로서 제한하는 성격이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자유 개념을 제도화시키는 것이었다.
밀은 “사회가 개인에 대해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 및 한계를 주제”31)로 삼는다고 한다. 이러한 밀의 접근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삼는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자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에 의해 확보된 민중의 정치적 자유를 부르주아 사회에 맞게끔 한계지우고 제도화시킨다는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밀의 자유 개념은 전형적으로 자유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집단의견이 개인의 독립에 대해 합법적으로 간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발견하여 집단의견이 그 선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보다 바람직한 인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이 한계를 잘 지키는 일은 정치적 전제에 대한 민중 보호와 다를 바 없다. … 개인의 독립과 사회적 통제 사이의 적절한 조정은 어느 선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와 같은 실제적 문제는 거의 미해결 상태이므로 지금부터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32) 여기서 밀은 자유를 개인의 독립의 보장의 문제로 본다. 즉, 자유는 개인적 자유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집단의 자유, 계급의 자유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예 되지 않는다. 또한 밀은 자유 개념을 자유에 대한 통제 문제를 전제로 하여 접근하고 있다. 자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빠진 채로 통제를 전제로 하는 자유에 대한 접근인데 이러한 접근은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접근의 지배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현대 부르주아 헌법의 구조는 정치적 자유를 자유권으로서 승인하면서도 그것을 사회의 이익의 관점에서, 혹은 공공질서의 관점에서 통제하는 이중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밀의 접근은 이러한 관점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밀의 언급은 흥미로운데 자유 개념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국인의 사회적 불관용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어떤 의견도 근절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의견을 위장하게 만들고, 널리 퍼뜨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못하게 한다. … 확실히 이것은 지적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평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 정신의 도덕적 용기를 모두 희생시키는 것이다. … 정통적인 결론으로 귀착되지 않는 모든 탐구를 금지함으로써 가장 손해 보는 대상은 이단자들의 정신이 아니다. 이단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신적 발전이 위축되고 이성이 겁에 질린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33) 도덕적 용기의 희생, 정신적 발전의 위축이 밀이 제시하는 사상의 자유의 보장 근거이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발전, 부르주아 혁명은 카톨릭의 정신적 압제에 맞서 싸운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사상의 자유는 근대에 있어서 널리 확산되어 있었고 밀의 주장에서 그 전형적인 입장이 보인다. 즉, 사상의 자유는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밀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사상의 자유는 무엇인가? 사상의 자유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도덕적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에게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것은 일차적으로 보면 계급적 관점을 벼려내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즉, 계급의식의 형성의 자유의 문제이다. 그리고 나아가 사상의 자유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조건과 전망을 내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자유는 노동자계급의 당건설의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밀의 자유주의적 접근과 노동자계급의 접근은 이러한 차이가 있다.
밀의 ≪자유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요소로서 정치적 자유의 문제를 정리했다는 성과가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유 개념을 제도의 틀에 가두는 측면이 있고 또한 자유주의적 관점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밀의 이러한 한계는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진리란 인생의 중대한 실제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견해들을 화해하고 결합하게 만드는 문제이다.”34) 다수견해와 소수 견해가 있을 때 진리는 그러한 견해들의 적절한 결합 혹은 화해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단히 피상적이고 속류적인 이러한 관점은 실은 자유주의자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견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진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상정조차 되지 않는다. 과학이 아닌 절충! 그리고 그에 따른 계급화해의 몽상! 이것이 진리의 문제에 대한 밀의 접근이다.
밀의 이러한 자유주의적 접근의 한계는 대중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천재와 대중을 대립시킨다. “이런 이유로 나는 천재의 중요성과 그들이 사상과 실천이란 두 분야에서 자유롭게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허락하는 사회적 자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있다. 정치계를 보면 여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표현이 진부하게 들릴 정도이다. 오늘날 힘이라고 불릴 만한 유일한 것은 바로 대중의 힘이다.”35) 밀은 정치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 민중의 정치적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면서도 개인의 능력과 대중의 힘을 대립시키고 있다. 즉 대중을 격하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자유주의적으로 한계지우는 경향의 반영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정반대로 대중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승인하고 내세우는 것이다. 개인들의 연합으로서 대중의 개념을 승인하고 오직 대중적 힘을 통해서만 사회변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승인한다는 점에서 밀의 자유주의적 접근과 구분된다.
밀은 심지어 대중의 힘을 개성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파악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가는 사회적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다수자의 우위에 반대하면서 대중과는 다른 의견 및 경향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사회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개성에 적대적인 하나의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36) 인간의 개성의 발전과 대중적 힘을 대립시키는 이러한 관점은 자유주의적 관점이다. 세태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 고유의 길을 걸어가는 개성적 인간! 이러한 것이 흔히 보이는 개성에 대한 부르주아 사회의 관점이고 자유주의적 관점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개성의 발전은 오직 계급적 단결의 강화, 집단적 힘의 고양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 개성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여가시간의 확보는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이고 이는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 집단적 힘의 고양과 개성의 발전의 통일! 이것이 노동자계급이 개성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밀의 공리주의는 맑스가 말한 대로 모든 관계가 이용의 관계, 효용의 관계가 되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론적 표현이다. 행복도 효용의 관점에서 파악되고 정의도 효용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그러나 밀은 행복을 고통이 없는 상태라 보면서도 고통의 원인,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는 건너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구호는 공허하다. 밀은 ≪자유론≫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성과로서 자유개념을 정리했지만 자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사상하고 자유의 개념을 제도화시켰다. 그의 자유주의적 관점은 대중에 대한 태도에서, 인간 개성의 문제에서 한계를 보였는데 이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극복할 때만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의 형성이 가능할 것이다.
2. 쇼펜하우어, 니체
19세기는 혁명과 진보의 시대였으나 19세기 중반 전 유럽을 휩쓴 부르주아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반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부르주아 대중은 과학적 푯대를 상실하고 비합리주의에 빠져들었는데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비합리주의 철학으로 부르주아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칸트, 헤겔 등의 부르주아 철학은 진보하는 부르주아지를 대표했다면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반동화, 보수화되는 부르주아지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맑스주의가 등장한 이후,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후 부르주아 철학은 과학적이고 진보적 내용을 상실하고 변호론적, 아류적 성격을 띠는데 쇼펜하우어는 칸트 철학의 아류인 동시에 칸트 철학을 비합리주의 철학으로 변화시켜서 이후 니체 등으로 이어지는 비합리주의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세계를 주관의 표상으로 보는 주관적 관념론이었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 그럴 경우에 인간은 태양이며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보는 눈과 대지를 느끼는 손을 지니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는 표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것, 즉 세계는 다른 존재인 인간이라는 표상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해진다.”37) 세계는 주관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의 표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세계는 주관과 관계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을 쇼펜하우어는 천명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주관적 관념론인데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관에 의해서만 존재”38)한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을 취한 쇼펜하우어는 의식적으로 유물론을 반박한다. “실재론적 독단론은 표상을 객관의 결과로 고찰하고, 사실은 하나인 이 둘을 분리시켜, 표상과는 완전히 다른 원인, 즉 주관과는 무관한 객관 자체를 가정하려는 것인데, 이는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39) 표상을 객관의 결과로 보는 것은 유물론적 인식이다. 또한 유물론은 객관을 주관으로부터 독립한 것으로 보는데 쇼펜하우어는 이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본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유물론적 인식을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우리는 유물론으로 사실 물질을 사유한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물질을 표상하는 주관, 물질을 보는 눈, 물질을 느끼는 손, 물질을 인식하는 오성을 사유했을 뿐이었음을 단번에 깨닫게 될 것이다.”40)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객관 현실이 아니고 단지 우리 자신의 눈, 손, 오성일 뿐이라는 것이 쇼펜하우어, 주관적 관념론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주관의 인식은 객관의 반영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인식가능한 것은 우리의 감각일 뿐이며 객관은 단지 그러한 감각의 표상일 뿐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실천을 통해, 실험과 산업을 통해 객관 현실을 변혁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각, 인식과 객관현실의 일치를 검증하고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식은 우리의 눈과 손, 우리의 감각의 올바름에 대해 실천을 통해 검증하게 된다. 객관의 정확한 반영이 주관의 올바른 인식이고 감각이다. 그러나 세계를 주관의 표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객관은 주관의 산물일 뿐이고 “주관 없이는 객관도 없다”41)는 인식으로 흘러가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 서면서도 나름대로 과학적 인식을 표방하는데 그의 과학적 인식은 속류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시간은 전적으로 연속에 불과하고, 공간은 전적으로 위치에 불과하며, 물질은 전적으로 인과성에 불과한 것이다.”42) 과연 그러한가? 시간은 연속의 성질만이 아니라 변화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공간은 단지 위치인 것만은 아니다. 공간에는 위치뿐만 아니라 길이, 넓이, 공존성 등의 개념이 포함된다. 물질은 인과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본질적 속성이 있고 물질들 간의 상호 연관성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모든 것을 사상하면서 쇼펜하우어는 시간, 공간, 물질이라는 근본 개념을 재단하고 있다. 그러나 주관에 의해 존재하는 객관이라는 입장에서는 시간, 공간, 물질의 객관적 성질의 탐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표상되는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일정 정도의 인식으로도 충분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속류적 태도는 개념보다 직관을 일차적으로 놓는 데서 잘 드러난다. “증명을 거친 판단도 아니고, 그 판단의 증명도 아니며, 직관에서 직접 건져낸 판단, 모든 증명 대신 직관을 기초로 한 판단이야말로 우주에서의 태양에 비길 만한 학문에서의 태양인 것이다.”43) 과학적 개념을 통한 증명과 판단이 아니라 직관을 통한 판단이야말로 학문에서의 태양, 즉, 진리의 시금석이라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주장이다. 과학적 인식의 발전은 직관적 인식을 개념화하고 증명을 거쳐 법칙의 발견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기본적인 과학의 원리를 부정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수학 특히 기하학에서 기초가 되는 공리는 직관에 의한 것임을 들고 있다. 기하학의 기본적인 공리가 직관에 기초한 것이라는 주장은 맞는 것이다. 고대 유클리드 기하학의 근본을 이루는 공리는 자명한 것으로 여겨져서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즉,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는 직관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과학적 개념이 아닌 직관이 진리의 시금석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유클리드의 공리가 직관이라는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 올바르며 실제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통해 극복되고 있다. 직관은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이고 방법이지만 그것이 개념화될 때만 과학으로 성립할 수 있다. 또한 진리는 직관 자체가 아니라 개념과 대상의 일치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주관적 관념론에서는 개념이 아니라 직관이 진리로 통하는 길이 된다.
세계를 주관의 표상으로 놓고 주관 없이는 객관도 없다는 주장을 확립한 쇼펜하우어는 거기서 나아가 의지의 철학을 정립한다. 이 점이 쇼펜하우어의 독특한 성격이고 그의 비합리주의 철학을 특징지운다. 그는 의지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심지어 모든 물질에 강력하게 작용하여 돌을 지면으로, 지구를 태양으로 끌어당기는 중력마저도, 이 모든 것은 현상만을 놓고 보면 서로 다르지만, 내적인 본질로 보면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그 자체로 그에게는 직접적으로 너무 친숙하여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 것이며, 그것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경우에 의지라고 불리는 것이다. …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모든 표상, 즉 모든 객관은 현상이다. 하지만 의지만이 물자체이다.”44) 중력과 같이 뚜렷하게 작용하는 어떤 힘을 쇼펜하우어는 의지라고 보고 그러한 의지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본질의 심급이라는 의미에서 물자체라고 보고 있다. 쇼펜하우어에게서 의지라는 개념은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신비로운 개념인데 헤겔의 절대정신, 피히테의 자아와 같이 세계와 모든 현상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으로 작용한다. 쇼펜하우어는 자연 속의 모든 힘을 의지로 파악한다. “여태까지 의지라는 개념이 힘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반면에 나는 이를 반대로 돌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힘을 의지로 생각할 작정이다.”45) 자연 속의 모든 힘을 의지로 파악하는 쇼펜하우어는 무기계에도 의지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여기서 의지라는 개념이 신비화되어 비합리주의적으로 적용된다. “새벽의 여명도 대낮의 광선도 햇빛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듯이, 무기계나 인간의 경우에도 의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의지야말로 세계에서 모든 사물의 존재 그 자체이며, 모든 현상의 유일무이한 핵심을 나타내는 것이다.”46) 의지야말로 모든 사물의 존재이며 핵심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규정은 사실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의지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의 물자체가 객관적 성격을 지니지만 알 수 없는 본질을 의미했다면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과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상실하고 비합리주의적으로 왜곡된 물자체라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자연, 세계를 의지의 객관화로 파악하는데 의지가 객관화되는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의지의 객관화의 이러한 단계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다”47)라고 본다. 신비로운 의지라는 개념은 스스로를 객관화하는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가 선의 이데아 등의 여러 단계가 있는 것처럼 의지 또한 여러 단계로 객관화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 이론과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사실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두 학설의 내적인 의미가 완전히 동일하고 양자가 가시적인 세계를, 자체로는 공허하고, 현상 속에서 표현되는 것(칸트에게는 물자체, 플라톤에게는 이데아)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고, 차용한 실재성을 갖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분명하고 더 이상의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48) 칸트와 플라톤은 모두 현상 혹은 가시적 세계와 본질 혹은 물자체, 이데아를 구분했는데 이러한 접근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의지 철학 또한 그러한 철학의 노선을 계승한다는 것을 비치고 있다.
그런데 칸트의 물자체는 주관의 인식 밖의 일종의 객관이며 외적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고 플라톤의 이데아는 외적 세계 너머의 일종의 정신적 세계를 가리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쇼펜하우어가 이를 동일시하는 것은 그를 통해서 이념이라는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서이다. 즉 물자체와 이데아의 동일성을 통해, 물자체와 이데아와 동일한 심급인 의지가 객관화되는 것으로서 이념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이념만이 의지 또는 물자체의 적절한 객관성일 수 있고, 표상의 형식하에서만은 그 자체로 전적으로 물자체이다.”49) 즉, 이념은 물자체인 의지가 객관화된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이념이라는 개념은 쇼펜하우어에게서 예술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예술은 순수 직관에 의해 파악된 영원한 이념, 즉 세계의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것과 영속적인 것을 재현한다.”50) 쇼펜하우어는 예술의 의미는 이념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보면서 이념의 재현으로서 예술의 여러 영역을 고찰한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이념이라는 개념을 통해 단순히 예술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과 천재를 구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념의 인식은 천재적 인식이며 “근거율에 따르지 않는 인식”51)이라고 본다. 근거율은 충족이유율로도 불리는 것인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원리로서 이 원리는 쇼펜하우어에게서 과학적 인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용된다. 그런데 천재적 인식, 이념의 인식이 근거율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천재적 인식, 이념의 인식은 과학에 구애받지 않고 과학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천재성과 광기가 직접 맞닿아 있다”52)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이념의 인식이 과학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이념의 인식 혹은 천재적 인식이 광기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은 쇼펜하우어의 비합리주의를 잘 드러낸다. 이러한 비합리주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의 핵심 개념인 의지 개념 자체가 비합리주의적이다. “순수하게 그 자체로 고찰하면 의지는 인식이 없고, 단지 맹목적이고 제어할 수 없는 충동에 불과하다.”53)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핵심 개념으로 세계 자체가 의지의 표현인데 의지가 맹목적이고 제어할 수 없는 충동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삶 또한 맹목적인 충동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러한 의지의 비합리성은 자유와 필연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의지는 그 자신이 현상이 아니고 표상이나 객관이 아니라 물자체이므로 … 그러므로 필연성을 알지 못하므로 즉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개념은 그것의 내용이 필연성의 부정”54)이다. 의지가 필연성의 부정으로서 자유롭다면 그러한 자유는 맹목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게 된다. 칸트에게서 자유는 필연성으로부터 분리된 선험적인 것이었다면 쇼펜하우어에게서는 이것이 발전되어 필연성의 부정으로서 맹목적인 충동으로 전화된 것이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비합리주의는 염세주의, 비관주의로 결말을 맺는데 그는 “죽음이야말로 힘겨운 항해의 최종 목표”55)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관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으로서 의지 철학의 발전의 결과이다. 그는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죽어가는 것으로 본다. “인간 개체의 본래적인 현존은 현재에만 있을 뿐이고, 현재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과거로 도망쳐가는 것은 죽음 속으로 끊임없이 넘어가는 것이고, 끊임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 개체의 현존은 형식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현재가 죽어 있는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쓰러지는 것, 즉 끊임없는 죽음이다.”56)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주관적 관념론으로서 의지의 철학을 끝까지 밀어부친 결과이다. 겉으로는 의지라는 개념을 최고로 내세워 인간의 주체성을 높이는 것 같지만 결국 의지의 내용은 맹목적 충동으로 귀착되고 주체를 둘러싼 세계의 의미는 사라진다. 그에 따라 주체와 객관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서 삶이라는 것의 내용이 상실되기 때문에 염세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물론은 이와 정반대로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하기 때문에 과학의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주체적 측면에서 보면 주체의 능동성을 최고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의 능동성은 자신을 둘러싼 객관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이루어질 때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부르주아지가 혁명을 두려워하게 되고 반대하게 되면서 보수화되는 변곡점에서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표상을 보여준다. 쇼펜하우어는 처음에는 칸트에서 출발하여 헤겔을 반대하였지만 나아가 의지의 철학을 정립하여 비합리주의 철학의 흐름을 열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과 비합리주의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보다 대중적으로 변형하여 표방했다.
니체는 19세기 후반에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화되는 시기에 그리고 파리꼬뮨의 충격이 유럽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이데올로기적 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니체는 그 시대를 ‘붕락의 시대’로 파악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표방하였다. 니체의 철학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더욱더 속류화시킨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니체가 당시 부르주아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의 표방이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와 맞아 떨어졌고 또 형식면에서 부르주아 대중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 종교, 형이상학 등 무너지고 있는 기성의 가치체계를 공격하였고 이를 아포리즘이라는 간단한 경구 형태로 표현하고 시적인 형식을 구사하여 철학과 문학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면 니체의 철학을 형식과 내용이라는 측면을 나누어서 고찰해 보자.
먼저 형식을 보면 니체의 저작들은 체계적인 내용이 없고 일관성, 개념의 엄밀성을 구사하지 않는다. 또한 니체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장할 따름이다. 이러한 니체의 방식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포리즘이라는 것인데 아포리즘은 자신의 주장을 간단한 경구형식을 통해서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인데 니체에게서 아포리즘은 실제로는 체계적 주장의 결여와 주장의 일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포리즘이 서술상의, 문학상의 형식이라면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데 일종의 형식으로서 구사하는 것은 부르주아 대중의 허위의식에 대한 공격, 종교, 형이상학에 대한 공격이다. 이 공격들이 니체 철학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서 파악되는 것은 이러한 것이 내용 있는 비판을 담지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 민주주의와 대중에 대한 경멸이라는 자신의 진정한 내용을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니체 철학의 진정한 내용을 다루기 앞서서 먼저 니체 철학의 포장을 벗겨내 보자.
니체는 아포리즘이라는 간단한 경구 형식을 통해서 부르주아 대중의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인간의 물자체―가장 상하기 쉽고 가장 격파하기 어려운 것은 인간의 허영심이다. 뿐만 아니라 손상을 입음으로써 그 힘을 증대케하고 결국은 거대하게 될 수도 있다.”57) 여기서 니체는 허영심이라는 부르주아 사회의 약한 고리를 비판하지만 그것의 원인, 근원 등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니체는 자유정신을 주장하는데 니체의 자유개념은 내용이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사랑과 증오의 속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없이 자유의지대로 가깝고 멀어지며, 기꺼이 탈주하며 회피하며 펄펄 날아다니고 다시 돌아서거나 또다시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다.”58) 이러한 니체의 자유 개념은 맹목적 충동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니체철학의 원형인 쇼펜하우어의 자유 개념이 필연성의 부정으로서 자유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필연성에 대한 부정, 즉, 현실로부터의 탈주가 니체의 자유개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필연성의 지양이라는 자유개념은 전혀 없고 억압에 맞선 투쟁이라는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조차 없다.
니체는 19세기 후반이라는 자신의 시대를 붕락의 시대로 표현하면서 기성의 도덕, 종교, 철학(형이상학)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이들을 기성의 가치체계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그는 부르주아 도덕의 허위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도덕적 이상의 승리는, 모든 승리와 동일한 비도덕적 수단에 의해, 즉 폭력, 거짓말, 비방, 불공정에 의해 획득된다.”59) 지배적인 도덕은 비도덕적 수단에 의해 획득된다는 니체의 공격은 부르주아들의 허위의식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그러면서 부르주아 도덕이 민중들에 의해 영향 받고 있음을 비판한다. “유럽의 모든 도덕은 가축떼의 이익을 기초로 하고 있다.”60) 니체는 민중과 대중을 가축떼로 표현하며 경멸하는데 부르주아 도덕이 민중들에 의해 영향 받고 있는 것을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 일체를 불신하고 심지어는 개념 자체를 불신한다. “사람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마치 무언가의 기적의 세계로부터의 불가사의한 지참금이라도 한 듯이, 스스로의 개념을 신용하고 있었다. …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전승된 개념들에 대한 절대적 회의이다.”61) 기존의 철학체계를 회의하는 것은 과학의 추구에 있어서 하나의 조건이다. 그러나 ‘전승된 개념’ 일체를 회의하는 것, 즉, 과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기존의 철학 체계를 회의하더라도 거기에 들어있는 개별적 개념들로 표방되는 성과는 계승되어야 하는데 니체는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를 표방하면서 과학자체를 거부한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의 골간을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우리가 주체와 객체라는 개념을 포기하면, 실체라는 개념도 역시 포기된다.”62), “목적과 수단은, 개념과 마찬가지로, 전혀 존재의 본질에 탐닉하는 일이 없다.”63) 주체와 객체, 개념에 대한 부정은 과학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철학을 회의하여 새로운 발전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개념들에 대한 니힐리즘적인 부정이 니체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리하여 니체는 이 세계에 진리는 없다고 선언하며 인과성, 원자론, 다윈의 진화론 등 과학적 성과를 부정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무신론이 아니라 기존의 기독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니체는 신은 죽었기 때문에 지상의 삶이 중요하고 지상의 삶을 가꾸어 나가고 현실의 삶에서 진보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은 죽어서 기존의 종교의 권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초인이 나타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64) 대중을 가축떼로 경멸하는 니체는 기성의 종교의 권위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 대중 위에 우뚝 서는 초인의 출현을 요구한 것이다.
종교, 형이상학을 비롯한 기존의 철학, 도덕 등에 대한 니체의 공격은 내용 있는 비판이 아니라 이미 무너지고 있는 기성의 가치체계에 대한 즉자적 부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니체의 이러한 기성체계에 대한 비판은 니체 철학의 진정한 내용이 아니고 형식, 포장에 지나지 않는데 니체 철학의 초점, 진정한 내용은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를 핵심으로 하여 민주주의와 대중에 대한 경멸, 진보에 대한 부정이었다.
니체는 평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계에 관하여. 평등의 전율할 만한 귀결―마침내는 각인이 모든 문제를 거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모든 위계가 없어지고 말았다.”64) 이와 같이 니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회적)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니체는 대중을 한편으로는 가축떼라고 하여 경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진출을 두려워한다. “중층 계급과 하층계급(저급종의 정신과 육체를 포함하여)이 서서히 출현하고 대두했다는 것, … 이 일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은 1. 정신의 암울화 … 2. 도덕적 위선 …”65) 니체는 이와 같이 대중의 진출이 부르주아들의 정신세계를 암울하게 하고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위선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 니체는 또한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실질적으로 부정한다. “우리는 아마 민주주의적 특성의 발전과 성숙을 지원할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약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뒤에, 안일을 탐하는 것을 막는 하나의 가시를 인정하는 것이다.”66), “국가의 경시와 몰락, 그리고 국가의 죽음, 사인(私人)― 나는 개인이라는 말을 경계한다 ―의 해방이 민주적 국가 개념의 귀결이며 여기에 그것의 임무가 있는 것이다.”67)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하나의 가시라는 것! 민주주의 국가가 되면 국가의 죽음이 불가피하는 것! 이렇게 니체는 대중을 경멸하는 것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니체는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대를 드러낸다. “다음 세기에는 여기저기서 전대미문의 소요가 일어나, 독일에도 그 변호자와 대변자를 가지고 있는 파리꼬뮨은, 도래할 것에 비하면, 아마도 가벼운 소화불량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너무나도 많은 유산자가 있을 것이므로, 사회주의는 질병의 발작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68) 파리꼬뮨은 소화불량이라는 니체의 규정은 유산자의 입장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며 전대미문의 소요는 다음 세기인 20세기에 발생할 혁명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니체는 나아가 사회주의에 대한 대처방안까지 제시하고 사회주의를 민중을 전염시키는 페스트로 규정한다. “혁명정신의 소유자와 소유 정신의 소유자―아직도 그대들의 힘에 미치는, 사회주의에 대한 몇 가지 대항 수단은 이런 것이다. 사회주의에 반항하지 말 것, 즉 스스로 절제하며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할 것, 사치를 전시하는 일을 극력 저지할 것, 그리고 국가가 모든 잉여물과 사치품에 심한 세금을 부과할 때에는 국가에 협력할 것, 등등이다. … 이런 일이 바로 사회주의의 가슴에 난 상처자국으로서 오늘날에도 갈수록 대중에게 퍼져가고 있으며 그러나 그대들의 내부에서 처음으로 발생하고 부화된 것, 즉 민중 질환의 독약 살포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 누가 이 페스트를 지금이라도 막아낼 것인가?”69) 이렇게 니체는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해 대항할 것을 주문한다. 이러한 니체의 입장은 도덕, 종교, 철학 등 기존의 가치체계가 붕괴되고 나아가 파리꼬뮨으로 대표되는 노동자계급의 도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부르주아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니체는 부르주아지의 반동화를 선동하는 것인데 실제로 니체는 진보의 개념을 부정한다. “진보―속아서는 안 된다. … 1888년의 독일 정신은 1788년의 독일정신에 비해 퇴보이다. …인류는 전진하지 않았고, 그것은 현존하지도 않는다.”70), “진보에의 신앙―지성의 저급한 영역에서 진보는 삶의 상승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기만이다. 지성의 고급한 영역에서는 삶의 하강으로 여겨지고 있다.”71) 진보라는 개념에 속아서는 안 되며 그것은 현존하지 않았고 하층에서는 진보가 삶의 상승이지만 상층에서는 진보는 삶의 하강이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은 니체가 철저히 부르주아 당파성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니체는 진보의 부정에 이어서 군국주의를 선동한다. “나는, 유럽의 밀리타리즘의 발달을, 내적인 아나키즘의 상태를 기뻐한다.”72) 밀리타리즘, 즉 군국주의가 니체에 의해 노골적으로 선동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과 관점을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으로 뒷받침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철학을 변형하여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을 창안했는데 이때 권력에의 의지는 단순히 인간 사회의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모든 현상을 권력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비합리주의인데 이는 니체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쇼펜하우어가 이미 의지라는 개념을 인간사회를 넘어 자연의 무기계에까지 확대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니체는 “삶이란, 권력에의 의지이다.”73)고 본다. 또한 니체는 진리의 푯대를 권력의지에서 찾는다. “진리의 감각은, 거짓말하지 말지니라의 도덕성이 기각되고 있다면, 다른 법정에 의하여 그 합법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된다―즉, 인간보존의 수단으로서, 권력의지로서.”74) 기존의 도덕이 붕괴되고 또 진리의 감각이 도전받는 상황에서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해 니체는 권력이 곧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니체는 “진리의 표지는 권력 감정의 상승 가운데 있다”75)고 본다.
권력에의 의지라는 니체의 개념은 자연에 대해서까지 확대되는데 그는 법칙 개념을 권력개념으로 대체한다. “어떤 현상들이 불변으로 잇달아 발생하는 것이 증명하는 것은 법칙이 아니라 둘 혹은 그 이상의 여러 힘의 사이에서의 권력관계이다.”76) 니체가 다윈의 진화론을 반대하는 근거는 고급종은 저급종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견해 때문인데 이는 인종주의의 싹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類)가 진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세계에 관한 가장 불합리한 주장이다. 당장 유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하나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고급한 유기체가 저급한 그것으로부터 발달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결코 증거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77) 대중을 가축떼로 보고 인간을 저급종과 고급종으로 나누는 니체는 인간이 원숭이에서 나왔다는 진화론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진화론에 대한 반대논리는 인종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니체에게서 자유정신에 대한 주장, 형이상학, 도덕, 종교에 대한 비판이라는 형식, 포장을 벗겨내면 그 내용으로는 반과학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 대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이 드러난다. 또한 그의 권력에 의지 개념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대중적으로 각색하여 의지개념을 권력 현상과 연관지운 것인데 그것을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전체 자연으로 확대하여 그의 비합리주의를 특징지웠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비합리주의 철학은 주관적 관념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후 이어지는 다양한 비합리주의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노사과연>
* 편집자: 연구소에서 철학세미나를 지도하고 있는 문영찬 연구위원장이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2015년 1월호부터 연재하고 있다.
1) 콩트, ≪실증주의 서설≫, 한길사, p. 36-37.
2) 콩트, 앞의 책, p. 39.
3) 콩트, 앞의 책, p. 64.
4) 콩트, 앞의 책, p. 81.
5) 콩트, 앞의 책, p. 82.
6) 콩트, 앞의 책, p. 83.
7) 콩트, 앞의 책, p. 95.
8) 콩트, 앞의 책, p. 140.
9) 콩트, 앞의 책, p. 120.
10) 콩트, 앞의 책, pp. 154-155.
11) 콩트, 앞의 책, p. 164.
12) 콩트, 앞의 책, pp. 173-174.
13) 콩트, 앞의 책, p. 186.
14) 콩트, 앞의 책, p. 190.
15) 콩트, 앞의 책, p. 241.
16) 콩트, 앞의 책, p. 243.
17) 콩트, 앞의 책, p. 246.
18) 콩트, 앞의 책, p. 264.
19) 콩트, 앞의 책, pp. 267-268.
20) 콩트, 앞의 책, p. 358.
21) 콩트, 앞의 책, p. 280.
22) 콩트, 앞의 책, p. 376.
23) 콩트, 앞의 책, pp. 396-397.
24)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책세상, p. 23.
25)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24.
26)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29.
27)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32.
28)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42.
29)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118.
30) 맑스, ≪철학 대사전≫, 동녘, pp. 112-113.
31)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동서문화사, pp. 123.
32)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128.
33)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p. 161-162.
34)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182.
35)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p. 212-213.
36) 존 스튜어트 밀, 앞의 책, p. 223.
37)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을유문화사, p. 39.
38)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43.
39)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57.
40)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79.
41)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83.
42)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99.
43)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137.
44)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03.
45)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06.
46)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16.
47)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34.
48)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93.
49)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298.
50)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314.
51)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319.
52)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324.
53)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461.
54)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479.
55)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519.
56) 쇼펜하우어, 앞의 책, p. 516.
57)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 p. 323.
58) 니체, 앞의 책, p. 21.
59) 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하, p. 201.
60) 니체, 앞의 책, p. 186.
61) 니체, 앞의 책, p. 256.
62) 니체, 앞의 책, p. 338.
63) 니체, 앞의 책, p. 312.
711) 니체,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민음사, p. 136.
64) 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하, p. 510.
65) 니체, 앞의 책, p. 65.
66) 니체, 앞의 책, p. 101.
67)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 p. 241.
68) 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아≫, p. 98.
69)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 pp. 404-405.
70) 니체, ≪권력에의 의지≫, 청하, p. 76.
71) 니체, 앞의 책, p. 91.
72) 니체, 앞의 책, p. 99.
73) 니체, 앞의 책, p. 176.
74) 니체, 앞의 책, p. 309.
75) 니체, 앞의 책, p. 330.
76) 니체, 앞의 책, p. 379.
77) 니체, 앞의 책, p.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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