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집의 의미

 

 

김도균 | 건설노조 활동가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나요? 이런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집의 크기나 형태, 위치와 수익률을 얘기해준다. 하지만 정작 그 집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사회의 모든 상품이 그런 것처럼.

나는 지난 7월부터 건설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건설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알아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소위 ‘노가다’라 불리며 천대받는 건설노동자의 처지와 건설산업의 실태, 그리고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리고자 한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들

 

보통 건설노동자들의 하루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날은 쉬어야 한다.

새벽 인력시장에 사람들이 모이면 팀장, 오야지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의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 여름처럼, 사람에 비해 일자리가 많은 때에는 그나마 일을 구하기 수월하지만, 날이 추워지고 일이 줄어드는 계절이 오면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일을 안정적으로 구하기 위해서는 팀반장 인맥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인맥을 따라 팀반장이 불러주는 데로 가서 일을 한다.

 

 

체불

 

보통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5시 30분쯤이 돼야 하루 일은 끝이 난다. 일이 끝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일명 ‘데쓰라’라고 불리는 출력일보에 자신이 오늘하루 일을 했다는 것을 체크한다. 이 데쓰라에 적힌 공수가 그날의 일당이 된다.

그런데 일당은 한 달 후에 나올 수도 있고, 두 달 후에 나올 수도 있다. 돈을 못 받는 일도 허다하다. 이렇게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스메끼리’라 불리는 유보임금이고 다른 하나는 중층적 다단계하도급이다.

스메끼리(유보임금)란 임금을 일정기간이 지난 이후에 주는 것을 말한다. 스메끼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건설현장에 동원하면서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죽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일당만 받고 도망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는 사람들을 돈으로라도 묶어놓기 위해 한 달, 두 달씩 임금을 깔아놓고 주기 시작했고, 한국의 자본주의화가 고도로 진행되면서 현재는 스메끼리가 관행이란 이름으로 구조화되었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30일에서 45일 정도 임금을 밀어놓고 주다보니 몇 달치 임금이 밀려버리거나, 돈 줄 사람이 도망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스메끼리는 ‘모든 금품은 15일 이내에 청산하도록 한다’는 근로기준법에 위배됨에도 거의 모든 건설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중층적 다단계하도급은 말하자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재하도급이다. 하도급 구조는 복잡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도 않다.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은 내게 돈 줄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시다오께, 실행이사, 오야지, 팀장, 똥쟁이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건설노동자들의 돈을 만지고 있다. 그런데 원청업체, 하청업체로부터 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돈을 빼먹거나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명 ‘배달사고’가 터져버리면, 결국 모든 피해는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중층적 다단계하도급 구조는 비단 임금체불 문제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의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중층적 다단계 하도급

 

건설현장은 피라미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발주처에서 건설노동자에게 이르기까지 각 층별로 수많은 이권이 개입해 있고, 이들은 건설노동자를 뜯어먹고 산다.

처음 노조활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왜 다단계하도급 구조가 산업재해의 원인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아파트 숲은 건설노동자의 피를 먹고 생겨난다.

도급단가는 도급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낮아진다. 도급을 준 사람은 확실한 이윤을 보장받으며, 도급을 받은 사람은 자신도 얼마만큼을 남기고 다른 사람에게 도급을 줄지, 아니면 어떻게든 맞춰먹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임금은 간신히 생존할 수 있을 정도까지 떨어진다. 노동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시키는 팀장들은 건물의 한 평을 지어주는데 얼마씩을 받는 조건으로 도급계약을 작성한다. 도급계약을 작성한 팀장과 노동자들은 건물 한 평을 지을 때마다 그만큼 돈을 더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다. 현장에선 ‘일을 죽인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일을 죽이다가 한 해에만 700여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 재하도급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건설현장에서 능률급제, 성과급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노동조합

 

토목건축노동자들은 1988년 서울건설일용노동조합으로 처음 조직되기 시작하여 2007년에 이르러 지금의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건설현장은 한 지역 내에 일정기간 운영되는 일종의 프로젝트 사업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건설노조는 지역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일자리 창출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경기중서부지부 같은 경우 지역에 개설되는 현장에 찾아가 조합원을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각 현장별로 단체협약을 체결함으로써 현장의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건설노조의 고용안정 사업을 통해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많은 건설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앞으로 건설노조는 단위 사업장을 넘어 지역단협을 만들어내고 산별 중앙교섭으로 나아가는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젠가는 원청 사용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건설산업은 한국 경제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뿌리산업이다.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는 건설산업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건설노조가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외국인과 내국인 노동자가 공존하고, 청년들이 언제든 들어와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더 힘차게 싸우고자 한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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