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레닌의 여정을 따라서

 

변순영 | 회원, 구속노동자후원회 해고자

올 봄, 인권단체라는 구속노동자후원회(구노회)를 운영한다는 자들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그들은 나를 해고하며 온갖 추악하고 야비한 짓을 했다. 해고 2달 전, 짐승 굴로 나를 인도한 전 사무국장은 상처만 안고 사라졌고, 그 자리를 두고 각다귀판이 벌어졌다. 주변에다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상황을 절규하며 호소했다. 구속자와 가족들한테까지 호소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구속 동지들께 ‘도와 달라’고 호소를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딱하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몰라, 밤마다 가슴을 치며 울었다. 심지어 민주노총 총파업집회가 열리던 광장에서, 백주대낮에 폭행을 당해도 공식적으로 성명서 하나 내주는 단체가 없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비빌 언덕도 없고, 잡고 일어설 풀 한포기 없었다. 절망감에 외롭고 고독했다. 내가 뒷걸음치면 저들은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쓰러져도 나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 때쯤 ‘레닌 초기 저작 읽기’ 세미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리만 차지하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당시 시대 상황과 내가 처해 있는 조건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군. 1902년 러시아가 지금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 “맞아 맞아. 그 때도 요런 인간, 사상이 있었구나!” 레닌의 말에 밑줄 쫙~ 그어 가며 맞장구를 쳤다. 세미나는, 1894년경에 나온 소책자 “공장노동자에게서 징수되는 벌금에 관한 해설”에서부터, ‘피의 일요일’, 1905년 혁명 초기 저작까지 읽으며, 7개월간 진행됐다. 내용을 다 거론하기는 벅차고, 내가 눈여겨 본 것만 써보겠다.

 

“손 튼 공장의 남녀 노동자들이여”는 레닌이 1895년 11월 7일 이후에 쓴 전단지이다. 손 튼 공장 직물공 5백여 명이 빼쩨르부르그 “노동자 계급 해방 투쟁동맹”의 지도 아래 파업을 일으켰다. 레닌의 이 전단지는 파업과 관련하여 나온 것으로, 파업에 들어간 직물공들을 지지할 것을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호소했다. 파업은 노동자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러시아에는 노조가 없었고 레닌이 지도하는 ‘투쟁동맹’은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필요나 요구를 기초삼아 대중적인 정치선동을 전개했다. 레닌은 “공장 노동자에게서 징수되는 벌금에 관한 해설”에서 노동자들이 벌금을 내는 것이, 고용주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변상이라는 부르주아적 관점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으로 혁파했다. “과거에 농노적 농민이, 지주에게 몽둥이로 처벌이란 미명하에 맞았으나, 이제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루블화로 처벌을 받고 있다.” 이 짧은 문장에서, 현상만을 말하지 않고 과거의 농노와 현재의 노동자의 처지에서 공통점을 찾아, 빼앗는 자와 빼앗긴 자의 계급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정치선동이란 이런 게 아닐까?

 

1894년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맑스의 ≪자본론≫을 우습게 아는 나로드니끼즘의 주관주의 사회학자 미하일로프스키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구노회 사태 초기 때, 희한한 두 분이 나를 직간접적으로 공격했었다. 한 분은 아이디도 ‘00사상교’, 또 한 분은 구노회 소식지에 기고한 글만 읽으면 한국판 맑스 같았다. 두 분 모두, 단체 활동가는 임금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고’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운영위원장은 사적 기업체의 대표라도 되는 듯, 인사권한은 대표인 운영위원장한테 있다며, ‘해고’가 아니라 ‘정리’한다며 나를 구노회에서 몰아냈다. 나를 비판한 두 분들은, 한 활동가의 생사여탈권을 운영위원장 한 사람이 쥐락펴락 하며, 자본가적인 논리를 펼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분들은 구노회 안에서 벌어졌던 구린내 나는 일들은 애써 외면하면서, 부처님 설법 같은 말씀만 되풀이 했다.

 

구노회 현 운영진이 조합주의적 방식으로 구노회를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짚을 수는 없었다. 운동의 퇴조기라, 별의별 쓰레기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하필이면 나에게?”라는 생각이 들고, 억울함만 커갔다. 그런 와중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게 되었다.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서 저자와 교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레닌과 함께 운동의 절박한 문제에 대해 모색하게 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1902년 3월 초에 출판되었다. 1902년 3월 10일 ≪이스끄라≫ 제18호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공표가 실려 있다. 부제가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이다. 레닌이,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자 조직들 간의 통합시도를 앞두고, 경제주의자를 단호하게 청산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서문에 밝혔다. 러시아 경제주의자는 스스로 경제주의자라 표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운동의 원칙을 고수하는 사회 민주주의자들을 오히려 “낡은, 교조적 맑스주의자”라 비판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경제주의는 현재 한국에서도 만연해 있으며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 구노회 현 운영진은 운영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사무국 내규’라는 노동조합단체에나 있을 법한 조항을 들먹이며 관료적인 통제를 하려고 했다. 운동단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협업이 아니라 자본가들처럼 ‘쉬운 해고’로 활동가를 해고했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대한 예속과 굴종을 거부하며 노동해방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 나는 구노회에 존재하는 경제주의자(조합주의자)와 단호하게 싸워 나갈 것이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당대회에서는 레닌과 마르또프 진영 간의 당규약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다. 레닌의 규약 1조(당원의 정의) 안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당원은 그 강령을 받아들이고, 재정적으로, 그리고 당 조직 중의 하나에 직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다.”였고, 마르토프가 제출한 안은 당 조직 중 하나의 통제와 지도 아래서 일하는사람이었다. 끈덕진 논쟁이 이어졌고 레닌은 내부의 기회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문제를 뿌리부터 파헤치면서 색조를 분명하게 한다. 문구만 보면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이 이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의 볼쉐비끼와 멘쉐비끼 노선 간의 차이는 이론적•실천적으로 극명하게 벌어졌다.

사회주의 운동 내의 경제주의자들은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에 심취해 정치투쟁을 기각한다. 그러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환상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레닌은 ≪브뻬료드≫ 제3호 “노동계급과 부르주아 민주주의”편에서 주장한다:

 

가장 나쁜 부르주아지라도 실제적으로 짜리즘과 투쟁하는 한 지지한다.”

 

이 말은 구노회 정상화 활동을 하면서 정말 와 닿았다. 또 작금의 정세에도 적절하다. 경제주의자(조합주의자)들은 조합주의적이며 경제주의적인 협소한 활동을 자본과의 핵심적인 싸움인 냥 착각한다. 정치투쟁을 부르주아에게 맡겨버리면서, 민주주의를 노동자가 전면에 내세울 구호가 아니라 생각한다. 구노회 현 운영진 또한 이러한 생각이 내면화 되어 있다. 감옥인권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구노회를 마치 노동조합의 하부기관인 것처럼 몰아가려고 한다. 이들은 단체 내에서도 회원 간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주의 절차도 무시한다. 회원들의 의견의 장인 인터넷 카페에서 현 운영진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글을 삭제해버렸고, 회원들을 강제퇴장 시켰다. 심지어 나를 해고하면서 내가 쓴 과거의 글까지 삭제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집회에서 모금함 들고 돌아다니며, 돈을 많이 걷는 일을 우선시한다.

나는 레닌의 여정을 따라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힘은 모든 문제를 뿌리부터 찾아서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나온다. 앞으로 여정에도 동참해, 레닌으로부터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다.

 

구노회 현 운영진과 싸움은 밤길을 걷듯 외로운 싸움이다. 그러나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지지의 글을 남기고 후원금을 보내준다. 삼삼오오 내 주변에 모여 피켓을 들어주고 향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나는 외롭지 않다. 진실한 동지가 있으므로…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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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는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 직업으로 이해되는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해야할 난해하고 민중을 강압하고 속이는 일을 맡김으로써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그러나 정치는 원래 원시시대부터 가족이나 씨족 그리고 부족 공동체에서 족장의 몫이었다. 노동으로 삶을 꾸려온 공동체에서는 경험과 경험속에서 체득한 과학적 판단력을 혈연 공동체 원로들에게 맡겼다. 그래서 공동체의 규율은 노동속에서 규율을 구현해옴으로써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몫이었다. 정치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노장이 곧바로 공동체의 수장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정치는 돈을 가진 그리고 법률을 쥔 자들의 독단적 몫이다! 노동공동체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데 반해 자본주의에서 정치는 자본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빨갱이 정신병자 취급당한다. 이런 불합리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는 4살짜리 금수저에게 회사경영권을 맡기는 일도 벌어질 것이다! 북한 김정은을 세습체제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족벌세습에 대해서 침묵을 강요한다면 이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아전인수한 것에 다름아니다! 공동체 연장자는 그가 부를 소유해서가 아니라 긴 세월 인격으로 쌓아린 그리고 경륜으로 쌓은 사리분별력이 과학적인 판단과 어긋나지 않기에 정치인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 수장정치를 물려받기 위해서 연장자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그래서 연장자를 존경하는 수장으로 대접하는 공동체 규율은 가부장제가 아니라 노동대중들이 상호분쟁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유물론적 정치규칙이다!! 그가 노동자출신이든 인텔리 출신이든 아니면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근로대중 출신이든 그가 살아온 인생은 존경받아야 한다. 연장자의 인생철학은 새로운 삶을 난관없이 살아가려는 민중들에게 가뭄에 단비처럼 매우 소중하다. 소위 지역유지로 행세하는 사업가보다 천배 만배 이상의 인간적 가치를 가진다! 인생의 시련기에서 혼자 힘으로 난관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면 공동체 연장자에게 물어보라! 구절양장 인생경험을 헤치고 진실을 구현한 노장들에게 사리 분별력을 맡기라!! 그것이 우리가 과학적 사회주의 전통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계급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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