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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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영찬 | 연구위원장

[목차]

머리말

제 1 장 세계관과 철학의 근본문제

  1.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 철학의 근본문제

  3. 세계의 통일성

제 2 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 철학의 발생

  2. 데모크리토스 노선과 플라톤 노선의 투쟁

  3. 아리스토텔레스

  4.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에 의한 고대 원자론의 계승, 발전

  5.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쟁, 토마스 아퀴나스

  6.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 뉴턴

  7. 베이컨, 홉스

  8. 데카르트

  9. 스피노자

  10. 로크

  11. 라이프니츠

  12. 흄

  13. 디드로, 엘베시우스, 돌바하

  14. 볼테르, 루쏘

  15. 칸트

  16. 피히테, 셸링

  17. 헤겔

 18. 포이에르바하

제 3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2.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

    1) 물질과 운동

    2) 공간과 시간

    3) 물질과 의식

    4) 원인과 결과

    5) 개별-특수-보편

    6) 필연성과 우연성

    7) 본질과 현상

    8) 가능성과 현실성

    9)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전화

    10) 모순 혹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내용과 형식)

    11) 부정의 부정

    12) 인식론
3. 자유와 필연성

  4. 목적의식성

  5. 사적 유물론의 범주들

  6. 레닌, 스탈린, 마오쩌뚱, 그람시에 의한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

제 4 장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철학사조에 대한 비판

  1. 콩트, 밀

  2. 쇼펜하우어, 니체

  3. 후설

  4. 하이데거

  5. 프로이트

  6.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7. 샤르트르

  8. 하버마스

  9. 알튀세르, 발리바르

  10. 푸코, 들뢰즈, 데리다, 라캉

  11. 지젝

  12. 자율주의

  13. 이진경

  14. 롤즈의 《정의론》, 마이크 샌덜의《정의란 무엇인가》

제 5 장 과학의 발전과 그에 대한 철학적 일반화

제 6 장 철학과 종교

제 2 장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

18. 포이에르바하

포이에르바하는 초기에 헤겔주의자였다. 신학을 전공했으나 헤겔을 접하고 철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헤겔 철학의 사변적 성격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보였고 유물론으로 방향을 돌렸다. 포이에르바하는 한편으로 ≪기독교의 본질≫≫ 등의 저작에서 종교비판을 수행하고 다른 한편으로 칸트부터 이어져 오던 독일관념론을 극복하고 다시 유물론을 복원한 공적이 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의 장점이고 성과인 변증법을 살리지 못하고 관념론 비판 속에 변증법을 같이 폐기해 버렸다. 그런 점에서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을 부정하고 유물론을 제기한 공적은 있으나 헤겔을 ‘지양’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자신의 기독교 비판으로 인해 대학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골로 물러나 연구활동에 전념했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포이에르바하 철학의 협소함 혹은 한계를 구성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본질≫로 대표되는 그의 종교비판과 유물론 철학은 독일 나아가 유럽의 철학적 조류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맑스, 엥겔스가 유물론 철학을 발전시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창시하는 토대가 되었다.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의 해방적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때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이 나왔다. 이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유물론을 다시 왕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한 방에 모순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 금기는 깨졌다; ‘체계’는 분쇄되어 한 구석으로 내팽겨쳐졌고 모순은 공상 속에만 있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누구든 이 책의 해방 효과를 생각해 보려면 이 효과를 몸소 체험했어야 한다. 누구나 다 열광했다. 우리는 모두 한 순간에 포이에르바하주의자가 되었다.”1)

그러면 포이에르바하 철학의 두 요소, 즉, 유물론적 측면과 종교 비판의 측면을 각각 나누어 고찰해 보자. 먼저 포이에르바하는 자신의 유물론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나는 더 잘 사유하기 위하여 머리에서 자신의 눈을 빼내는 철학자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나는 사유하기 위하여 감관 특히 눈을 필요로 한다. 나는 나의 사상을, 언제나 감관을 매개로 하여서만 습득할 수 있는 재료를 기초로 만들어간다. 나는 사상으로부터 대상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상으로부터 사상을 산출한다. 그러나 대상은 오직 두뇌의 외부에 실재한다. 나는 다만 실천철학의 영역에서만 관념론자다.”2) 감관에 기초한 사유, 그리고 사상으로부터 대상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사상을 산출하는 것! 칸트와 같이 감관과 분리된 사유를 으뜸으로 치는 것을 거부하고 감관에 기초한 사유를 주장하는 것은 유물론적 인식론이다. 또한 사상과 대상 중에 대상을 일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의 지반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실천의 영역, 즉, 사회적 실천, 인간사회에 대한 관점에서는 스스로 관념론자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포이에르바하가 자연에 대해서는 유물론적 관점을 지녔지만 사회, 역사에 대해서는 유물론적이지 못함을 말하는데 사실 포이에르바하 이전에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은 존재한 적이 없었고 맑스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에 대한 유물론, 사적 유물론이 성립했다.

그는 철학의 근본문제라 할 의식과 자연의 문제에서 의식이 자연의 산물임을 주장한다. “자연이나 물질은 지성으로부터 설명되거나 도출될 수 없다. 물질은 지성이나 인격성의 근거며 그 자체는 다른 근거를 갖지 않는다. 자연 없는 정신은 단순한 환상물이다. 의식은 다만 자연으로부터 발전되어온다.”3) 자연의 산물로서 의식이라는 관점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또한 고대 유물론이 의식과 자연, 물질의 관계를 정확히 해명하지 못하여 관념론에 자리를 내어준 측면이 있는데 포이에르바하는 그동안의 과학의 발전을 반영하여 의식을 자연의 산물로서 명확히 주장하고 있다. 그는 정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특질을 분석한다. “정신은 물론 인간 속에서 최고의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고귀함이고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인간에게 최초의 것이 자연적으로 또는 자연에서도 최초의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최고의 것, 가장 완전한 것이 최후의 것, 가장 늦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시원이나 근원으로 삼는 것은 자연질서의 전도이다.”4) 정신이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최고의 것이지만 최초의 것은 아니며 그런 점에서 정신이 시원이 되는 것은 아니며 만약 정신을 시원, 근원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자연질서를 전복, 전도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정신은 혹은 의식은 자연의 최고의 산물이지만 정신, 의식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점에서 일차적인 것은 정신이 아니라 자연, 물질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포이에르바하는 유물론을 의식적으로 정립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물론은 협소한데 왜냐하면 헤겔의 변증법을 살리고 발전시키지 못하고 헤겔의 관념론과 함께 폐기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비변증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예를 들면 헤겔에게서 생성과 운동의 주요 요소였던 비존재, 무에 대한 태도가 그러하다. “무나 비존재는 무목적적이며, 무의미하며, 무오성적이다. 존재만이 목적과 근거와 의미를 갖는다. 존재만이 이성이며 진리기 때문에 존재는 존재한다.”5) 헤겔에게서 무 혹은 비존재는 생성의 근거였다. 즉, ‘생성은 존재와 무의 통일이다’가 헤겔의 입장이었다. 나아가 헤겔은 부정성이 운동의 근거가 된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증법적 관점이 포이에르바하에게서는 간단히 폐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헤겔의 철학은 폐기의 대상이 아니라 ‘지양’의 대상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어떤 철학을 잘못된 것이라고 간단히 선언함으로써 그 철학을 끝장낼 수는 없다. 그리고 헤겔 철학처럼 민족의 정신발전에 그토록 엄청난 영향을 미친 강력한 작품은, 손쉽게 무시한다고 해서 제거되지는 않는다. 이 철학은 말뜻 그대로 ‘지양’되어야 했다. 즉, 이 철학의 형식은 비판적으로 폐기되어야 하지만 이 형식을 통해 얻은 새로운 내용은 구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6) 여기서 엥겔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는 폐기의 대상이지만 새로운 내용, 즉, 변증법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합리적 핵심은 구제되어야 하고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지양’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이렇게 헤겔의 부정을 통한 유물론으로의 전진은 이루었지만 헤겔을 지양하지는 못했고 따라서 발전, 운동의 사상인 변증법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리하여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은 관조의 철학이라고 맑스에 의해 혹독하게 비판을 받았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관조에 대립시켜 실천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오직 객체의 혹은 관조의 형식 아래에서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감성적 인간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 파악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능동적 측면은 유물론에 대립해서 관념론에 의하여─ 물론 관념론은 현실적 감성적 행위 자체를 알지 못한다 ─추상적으로 발전한다. 포이에르바하는 감성적인 객체들─ 사유 객체들과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객체들 ─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서 파악하고 있지 않다.”7) 포이에르바하 스스로 실천의 영역에서는 관념론자라 했는데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한계를 실천을, 인간의 활동 자체를 포함하지 못하는 유물론, 따라서 관조의 유물론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실천을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실천이 철학의 영역에 포섭되면 세계의 개조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되고 철학 자체는 변화의 철학, 변혁의 철학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 발전의 사상인 변증법은 유물론과 결합되게 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이 된다. 철학에 실천을 포섭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은 (이론적) 인식보다 더 고차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 현실성이라는 가치도 가지기 때문이다.”8) 실천이 인식보다 고차적이라는 것! 이 말을 인간의 인식과정에 비추어서 본다면 실천이 빠진 인식,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인식은 매우 협소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또한 실천과 인식의 문제를 파고들었는데 그는 ≪실천론≫에서 인식-실천-재인식-재실천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실천과 인식의 거듭된 상호작용을 통해 인식의 풍부화, 과학화가 가능하고 실천은 올바른 침로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맑스주의 철학은 포이에르바하 유물론의 관조적 성격을 극복하고 실천을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임으로써 변혁적 세계관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면 포이에르바하의 종교 비판에 대해 고찰해 보자. 포이에르바하의 종교비판은 기존의 종교를 부정하면서도 참된 종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종교는 인간학이라고 한다. 그는 종교에서 비인간적인 본질과 인간적인 본질을 나눈다. “확실히 나의 저서는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종교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한 것이며 종교의 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란다.”9) 그는 기존의 기독교의 억압과 독재는 비인간적인 본질 때문이며 신은 인간적 본질의 독립화이기 때문에 올바른 종교는 인간학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신적 본질과 인간의 본질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우리의 과제는 바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대립은 착각이라는 것,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과 인간 개인의 본성 사이의 대립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므로 기독교의 대상과 내용은 모두 인간적인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적 본질은 인간본질이 개별적이고 현실적ㆍ육체적 인간의 한계로부터 분리되어 대상화된, 곧 개인과 구분되어 다른 독자적 본질로서 직관되고 존경되는 인간의 본질이다. 신적 본질의 모든 규정은 인간본질의 규정이다.”10) 신적 본질은 인간의 본질이 대상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이 주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고 기존의 기독교의 교리를 전복하는 것이었다. 인간 위에 우뚝 서 있는 신, 신이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기독교의 관점에 비해 신은 인간적 본질일 뿐이라는 주장은 기독교의 지반을 허무는 것이었고 당시의 종교적 억압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를 의미하였다. 이렇게 인간 본질의 대상화로서 신이라는 개념을 세운 포이에르바하는 여기서 인간의 소외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신은 가장 주관적이고 가장 본래적인 인간본질인데, 그것이 추상화ㆍ독자화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모든 선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신이 주체가 되면 될수록, 인간적이 되면 될수록 인간은 더욱더 자신의 주체성과 인간성을 상실한다. 왜냐하면 신 자체가 소외된 인간이고 인간은 다시 소외를 벗어나 스스로가 되기 때문이다.”11) 신이 주체화될수록 인간은 소외된다는 것은 당시 기독교의 억압을 규탄하는 것이다. 신의 주체화, 자립화, 그에 대립되는 인간의 왜소화, 상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맑스나 엥겔스가 ≪기독교의 본질≫이 해방적 작용을 했다고 평가하는 대목일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광신이 종교의 본질 속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본다. “종교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관계다. 여기에 종교의 진리와 도덕적 치료의 힘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에서 자기 자신의 본질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구별되는 또는 상반되는 다른 본질로서의 자신의 본질과 관계한다. 여기에 종교의 비진리, 종교의 제한성, 이성이나 도덕과의 모순이 들어 있고 또 여기에 화를 잉태하고 있는 종교적 광신의 근원이 들어 있으며 여기에 피비린내 나는 인간희생의 최상의 형이상학적인 원리가 들어 있다.”12) 자신의 본질이 자기 자신과 구별,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종교! 바로 여기에 비이성, 광신의 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을 포이에르바하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종교적 광신도 자신의 본질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것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이렇게 기독교의 억압에 대한 해방작용은 하였지만 신의 본질은 대상화된 인간본질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참된 종교는 인간학이라는 주장을 하였고 그것의 기초는 사랑이라고 주장하였다. “누가 우리의 구원자며 화해자인가? 신인가, 사랑인가? 그것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신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인격성과 인간적인 인격성의 구별을 초월한 사랑이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이다.”13)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입장은 비판의 여지가 있는데 그에게서는 참다운 인간적 본질, 인간 관계가 참다운 종교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순수한 인간 관계가 실존한다는 점이 아니라 이 관계가 새로운 참다운 종교로 파악된다는 점이다. …포이에르바하가 본질적으로 유물론적인 자연관을 토대로 진정한 종교를 세우려 한 것은 현대 화학을 참다운 연금술로 파악하는 것과 유사하다.”14) 포이에르바하가 기독교 비판을 통해 당대의 기독교의 억압을 규탄하고 신의 개념을 인간의 개념으로 환원한 것은 무신론과 유물론을 제기한 것이었지만 그의 유물론은 근원적으로 종교를 지양할 수 있는 전면적인 세계관이 아니었다는 한계가 있다. 포이에르바하가 인간학을 참다운 종교로 세우려 한 것과 그의 유물론이 제한된, 자연에 국한된 유물론이었다는 것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간 사회에 대한 유물론,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의 결핍이 종교의 전면적인 지양을 어렵게 했고 참다운 종교로서 인간학이라는 관념적 이론으로 흐르게 했던 것이다.

칸트부터 시작된 독일의 고전철학이 헤겔에서 완성되었다면 포이에르바하는 완성된 독일의 고전철학을 부정하면서 다시 유물론을 복원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기독교 비판은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을 부정하기는 했으나 지양하지는 못했는데 그에 따라 포이에르바하에게는 변증법적 관점이 없고 또 그의 유물론은 자연에 국한된 것이었고 인간 사회에 대해서는 관념론적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포이에르바하의 한계의 극복, 인간사회에 대한 유물론의 정립은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 3 장 맑스, 엥겔스에 의한 철학에서의 혁명

1. 맑스, 엥겔스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의 창시

 

맑스, 엥겔스가 활동을 개시하던 1840년대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 노동자계급의 참정권 획득 운동인 차아티스트 운동, 프랑스에서 리용방직공들의 봉기, 독일에서 슐레지엔 노동자들의 봉기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 맑스, 엥겔스의 사상과 활동을 결정적으로 규정한 요인이었다. 부르주아 혁명이 약속한 자유와 평등의 세상은 소유의 자유와 법 앞의 평등으로 나타났고 무산자인 노동자계급은 소유계급에 의한 억압과 착취에 무방비로 놓여 있었고 평등은 사회적 평등, 현실적인 평등이 아니라 형식적 평등에 국한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처음에는 헤겔주의자였다. 맑스의 박사학위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는 고대 원자론을 소재로 한 것이었지만 그것의 전개방식은 관념론적이었다. 그러나 맑스는 대학교수의 길이 좌절되고 나서 실천의 길에 투신하는데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서 민중들의 삶과 결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맑스는 관념론을 극복하고 유물론자로 변모하게 된다. 엥겔스 또한 처음에는 헤겔주의에 심취했으나 노동자계급의 삶을 접하고 유물론자가 되고 노동자의 삶을 규정하는 경제적 현상과 경제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한편 맑스와 엥겔스의 세계관의 형성과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당시 자연과학의 발전이었다. 다윈의 진화론, 세포의 발견,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 등 19세기 중반의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맑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세계관이 형성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튼의 만유인력의 발견이 이전 시기에 전 세계에 대해 세계관적 충격을 가져왔다면, 19세기 중반의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변증법적 자연관이 형성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 전체가 무수한 연관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의 전체이고, 물질과 운동은 불멸의 것으로서 끊임없이 상호전화하며, 우주와 세계 전체는 이러한 물질의 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세계상의 성립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총체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유물론을 수립하는 것, 인간과 역사에 대한 과학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을 부정하고 유물론을 복권시켰으나 인간사회에 대해서는 관념론적이었고 비과학적이었다. 여기서 맑스와 엥겔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통해 헤겔을 극복하면서도 포이에르바하의 한계의 극복 즉,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관점을 수립하는 길로 나아갔다.

맑스는 혁명적 실천으로 나아가면서 철학의 위상을 변화시켰다.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 이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요, 그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양 없이 철학은 자기를 실현할 수 없으며, 철학의 실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지양할 수 없다.”15) 여기서 철학은 계급투쟁의 무기로 변모되었다. 맑스 이전의 철학은 이러한 성격이 없었다. 계급과는 무관한, 사회와 세계에 대한 관조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러나 맑스는 이러한 철학의 위상을 뒤집고 혁명적 실천의 무기로서 철학, 계급성을 각인한 철학으로 나가갔다. 이러한 관점을 맑스는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였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16) 세계에 대한 관조, 해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변혁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은 그 이전의 철학과 선을 긋고 새로운 철학으로 나아가는 것이었고 철학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맑스에 의해 새롭게 정립되는 철학은 철학과 실천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실천을 철학에 전면적으로 끌어들이는 것, 나아가 철학을 실천의 무기로 전화시키는 것! 그런데 맑스는 이렇게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이론이 아닌 실천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비판의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이 된다. 이론은 대인적(對人的)으로 증명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되자마자 대인적으로 증명된다. 근본적이라 함은 사태를 뿌리에서 파악하는 것이다.”17) 비판의 무기는 이론적 비판을 말하고 무기에 의한 비판은 혁명적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맑스는 이론 자체가 혁명적 실천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맑스는 비판을 넘어선 혁명을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론이 아닌 실천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주장한다. 이리하여 관조적 철학의 지양은 맑스에 의해 이론과 실천의 통일로 나타난다.

이렇게 철학의 위상을 변화시키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정립한 맑스는 철학과 정치의 통일18)을 수행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는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19) 철학을 통해 단지 이상적인 상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혁해가는 무기로서 철학을 상정한 맑스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로서 현실을 지양해 가는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맑스는 실천가이며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은 철학 혹은 이론에 의해 방향을 잡아가는 실천이다.

이렇게 현실을 지양해가는 운동, 과학으로서의 운동을 지향하는 맑스에게서 가장 긴요한 것은 현실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었다. 그는 헤겔 법철학을 비판하면서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을 구상한다. 흔히 사적 유물론(史的 唯物論)이라 불리는 인간사회와 역사에 대한 과학의 출발점은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관계의 문제이다. 전체 철학에서 근본문제가 물질과 의식의 문제였듯이 사회에서는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문제가 초석이 된다.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과 자신들의 물질적 교류를 발전시키는 인간들이 이러한 자신들의 현실과 함께 또한 그들의 사유 및 그 사유의 산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20) 여기서 생활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생활, 사회적 존재의 규정으로서 생활을 의미하고 의식은 사회적 의식을 의미한다.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에서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의 문제는 사회에 대해 유물론의 입장에 설 것인가, 관념론의 입장에 설 것인가를 가르는 문제이다. 여기서 맑스는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먹고 사는 문제, 사회적 관계, 친교, 문화적 삶, 정신적 삶 등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가장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먹고 사는 문제임을 맑스는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물질적 삶, 물질적 생산의 문제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있어서 가장 일차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맑스 이전에 이 문제에 대해, 맑스와 같이 유물론적 견해를 표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약간의 역사가들이 유물론적 접근을 한 적은 있으나 철학적 차원에서, 세계관적 차원에서 사회에 대해 유물론적 접근을 한 것은 맑스가 처음이었다. 맑스의 이러한 발견, 즉,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 사회의 물질적 삶, 물질적 생산이 역사의 발전과 사회 전체의 근본 초석이라는 발견은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서 거대한 진보였고 사회에 대한 온갖 모호하고 비과학적인 견해를 물리치고 인간사회와 역사에 대한 과학이 성립되게 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파악을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역사 파악의 근거는 현실적 생산 과정을 그것도 직접적 생활의 물질적 생산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적 생산 과정을 전개하는 것, 그 생산 양식과 연관된 그리고 그 생산 양식에 의해 산출된 교류 형태를, 따라서 그 다양한 단계에 있어서의 시민 사회를 역사 전체의 기초로서 파악하는 것, 그리고 시민 사회를 그 행동에 있어서 국가로서 표현하는 것, 이와 함께 종교, 철학, 도덕 등등의 의식의 각종 이론적 산물들과 형식들을 시민 사회로부터 설명하고, 또한 그 형성 과정을 시민 사회로부터 추적하는 것 등에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사태는 그 총체성 속에서(그래서 또한 이들 다양한 측면들의 상호 작용도) 표현될 수 있다.”21) 여기에는 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틀이 제시되어 있다. 물질적 생산 그리고 그에 의해 산출되는 교류형태(생산관계), 또한 이를 시민사회로 파악하고 이 시민사회가 역사 전체의 기초이며 국가, 종교, 철학, 도덕 등을 시민사회로부터 설명하는 것! 이로써 사회 전체에 대한 일목요연하고 총체적인 관점이 확보되고, 사회 전체의 구성을 유기적으로,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사회발전의 추진력을 정신, 영웅, 신의 섭리 등으로 보는 관점은 더 이상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사회에 대하여 유물론적 인식을 수립한 맑스는 사회에 대한 해부학으로서 정치경제학을 연구하고 그 결과로서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폭로한, 자본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단계와 과정으로 파악한 ≪자본론≫을 저술한다. ≪자본론≫에서 맑스는 노동자가 산출하는 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취득하는 것이 자본의 이윤의 비밀임을 폭로하고 자본의 운동은 이러한 잉여가치의 취득과 축적에 다름 아님을 밝혔다. 이리하여 한편으로는 물질적 생산을 사회의 초석으로 파악하는 사적 유물론이 성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비밀로서 잉여가치가 폭로되면서 사회주의는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하나의 과학적 운동으로 성립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두 가지 위대한 발견들은 맑스의 공로이다: 유물론적 역사 파악, 그리고 잉여가치를 매개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밀의 폭로, 이 발견들에 의해 사회주의는 과학이 되었으며,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학을 모든 개별성과 연관성의 지점에서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다.”22)

이렇게 사회에 대한 과학, 역사에 대한 과학을 성립시킨 것에 기초하여 맑스와 엥겔스는 자연과학의 발전을 조건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더욱 다듬고 정교화하는 길을 걷는다. 이 작업은 주로 엥겔스가 맡았는데 엥겔스는 맑스와 협력하여 자신들의 세계관에 대한 대중적 개설인 ≪반듀링론≫을 썼다. 여기에는 후에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이름 붙여진 세계관의 개요가 서술되어 있다. 엥겔스는 자신의 유물론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끝으로 나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변증법적 법칙을 구성하여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법칙을 자연 속에서 찾아내어 자연으로부터 전개하는 것이다.”23) 변증법적 법칙은 하나의 개념인데 이것으로써 자연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변증법적 법칙, 개념을 찾아내고 나아가 자연으로부터 그 개념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념과 자연 중에서 자연을 일차적으로 사고하는 엥겔스의 유물론적 관점이 선명히 드러나 있고 나아가 변증법과 자연의 관계가 정리되어 있다. 자연 자체가 변증법적이라는 것! 변증법의 법칙과 개념은 자연에 존재하는 관계, 연관들, 운동들의 반영이라는 것을 엥겔스는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서술만으로도 엥겔스와 맑스의 세계관이 변증법과 유물론의 통일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임이 드러난다. 맑스와 엥겔스가 유물론과 변증법을 통일시켜 변증법적 유물론을 성립시킴에 의해 철학에서는 거대한 변혁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엥겔스의 언급을 들어보자. “두 경우에 있어서 현대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며, 더 이상 다른 과학들 위에 군림하는 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별과학이 사물과 사물에 관한 지식의 전체적 연관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실히 이해하라는 요구를 받자마자, 전체적 연관을 취급하는 특수한 과학은 일체 불필요하게 된다. 그럴 경우 지금까지의 철학 전체에서 여전히 독자적으로 존속하는 것은 사유와 사유의 법칙들에 관한 학설이다─형식 논리학과 변증법. 그밖의 것은 모두 해체되어 자연과 역사에 관한 실증과학이 되었다.”24) 인간사회와 역사에 관한 과학이 성립하고 또 자연에 대한 과학이 발전하여 각 개별과학이 전체적 연관 속에서 발전하면서 전체적 연관 자체를 취급하는 과학은 불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과학 위에 군림하는 철학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은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으로 전화되는데 이 세계관은 역사과학과 자연에 대한 과학들에 기초하여 세계전체를 파악하는 관점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철학에서 이룩한 혁명은 ‘철학의 과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화’25)라고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는 철학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철학의 과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이며, 이 세계관은 과학의 과학이라는 특별한 과학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과학들에서 확증되고 실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철학은 “지양”되었다. 말하자면 “극복되는 동시에 보존되었다.”; 형식에서 보면 극복되었고, 그 현실적 내용에서 보면 보존되었다.”26) 고대 그리스 등의 유물론이 인간 정신을 해명하지 못하여 관념론에 밀려났으나 근대 과학의 발전으로 유물론이 다시 부활하는데 현대 유물론은 고대 유물론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이천 년에 걸친 사상 내용 전체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이라는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단순한 세계관으로서 충분한데 왜냐하면 역사와 자연에 관한 개별과학이 전체적인 연관의 추구 속에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이 형식 면에서 단순한 세계관으로 전화한다는 점에서 극복되었지만 그에 담겨 있는 내용은 보존되었다는 점에서 철학은 지양되고 결국 철학의 과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화가 이룩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철학의 발생 자체가 인간의 지식이 어느 정도 축적되면서 비롯되었고 또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의 역사에서 철학은 한편으로 과학적 인식을 자극하고 지평을 넓힌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 관조적 성격, 사변적 성격으로 인하여 인간의 인식을 속박하는 측면도 있었는데, 이제 여기서 긍정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은 전체적 연관 속에서 발전하는 개별과학으로 계승되고 부정적이고 사변적 측면은 소멸의 길을 걷고, 인간의 세계에 대한 전체적 인식을 의미하는 세계관은 더 이상 철학이라 불릴 필요가 없으며 개별과학의 기초 위에 개별과학의 전체적 연관의 파악으로 충분한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과학적 세계관으로 전화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남아 있는 것은 변증법과 유물론의 통일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는 것이다. 혹자는 유물론도 승인하고 변증법도 승인하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부정한다. 이러한 사고는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남긴 영향 때문이다.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미친 세계관적 충격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변증법과 유물론으로의 분해로 귀착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점은 20세기 당시에 변증법적 유물론이 하나의 교조로서 강제되었다는 측면에도 기인한다. 변증법의 몇 가지 법칙을 외우면 변증법적 유물론과 철학을 통달한 듯이 여기던 운동의 얄팍한 풍조에 대한 반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가 남긴 혼돈의 측면이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과학적 접근을 하는 것이다. 과학을 통해 혼돈을 치유하고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다시 수립하는 것! 철학의 영역에서, 그리고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에서 과학적 접근을 수립하여 혼돈을 치유하고 다시금 변혁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억압받는 민중이라면 그리고 깨어 있는 노동자라면 관념론이 아닌 유물론의 길을 쉽게 택한다. 몽상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곧 유물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인류가 달성한 성과,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할 때만 지금의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무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인류 역사에서 진보의 측면, 과학의 측면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유물론은 각각의 역사적 시기의 한계를 또한 지닐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직관에 기초한 유물론, 근대에 이르러서는 뉴튼 역학의 영향으로 인한 기계적 유물론, 그리고 형이상학적 유물론 등이 그러하다.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나름대로 역사적 역할을 했고 17세기, 18세기 과학의 발전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유물론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헤겔이 ‘형이상학적’이라고 부른 낡은 연구방법과 사유방법은 특히 사물을 이미 주어진 완성물로 보고 연구하는 데 몰두했는데 그 찌꺼기들이 아직도 강하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다. 이 방법은 그 시대에는 충분한 역사적 자격이 있었다. 과정을 연구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사물을 연구해야 했다. 임의의 사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각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사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자연 과학에서의 사정은 이랬다. 사물을 완성된 것으로 받아들인 낡은 형이상학은, 죽은 사물과 살아 있는 사물을 완성된 것으로 연구한 자연 과학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 결정적으로 진보할 수 있었을 때, 즉 자연 자체에서 일어나는 이 사물의 변화에 대한 체계적 연구로 넘어갈 수 있었을 때 철학 영역에서도 낡은 형이상학의 사망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27)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자연을 과정으로서, 변화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고정시켜서, 불변의 것으로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제반의 자연과학에서 기초적인 인식이 수립되는데 기여했다. 예를 들면 생물학에서 종의 불변성은 종이라는 개념이 수립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종의 불변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진화론에 의해 종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물리학과 화학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예를 들면 종이가 불에 타는 현상, 연소라는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당시로서는 산소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연소를 일으키는 어떤 불변의 고정된 물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형이상학적인 어떤 개념을 설정하면 곧 과학적 인식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 자체가 과학에서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고를 추방했고 과학은 사물을 운동으로서, 상호연관으로서, 과정으로서 파악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인식이 철학에서는 변증법으로 정립되었던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이 맑스, 엥겔스에 의해 유물론적으로 개작되고 변증법이 관념론적인 신비화에서 해방되면서 유물론과 변증법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변증법과 유물론의 통일은 자연의 변증법적 성격이 설명되면서 공고화되었다. 자연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하고 자연의 모든 과정이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것이 정립되면서 변증법과 유물론의 통일은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정립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변증법은 사고의 법칙을 넘어 존재의 법칙이 되었고 이를 수미일관하게 설명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성립된 것이다. 이렇게 변증법이 사고의 법칙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법칙이기도 하다는 점은 관념론자들에 의해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이들은 특히 자연의 변증법을 부정한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 자체가 나날이 자연의 변증법적 성격을 확증하고 있다.

이렇게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고의 법칙과 존재의 법칙의 통일인데 사고와 존재 중 일차적인 것은 존재라는 점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초석이 되는 범주는 존재를 설명하는 범주, 특히 과학의 발전을 반영하는 물질이라는 개념과 그 물질의 속성인 운동이라는 개념이다. 즉, “

물질과 운동” 혹은 “물질의 운동”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구성에서 가장 근본적인 범주가 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여타의 모든 범주들은 바로 이 물질과 운동으로부터 파생하는 것이다. <노사과연>


* 편집자: 연구소에서 철학세미나를 지도하고 있는 문영찬 연구위원장이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2015년 1월호부터 연재하고 있다.

1)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제6권, 박종철 출판사, p. 251.

2)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한길사, 2011. p. 43.

3) 포이에르바하, 앞의 책, p. 176.

4) 포이에르바하,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 한길사, 2013, p. 234.

5)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한길사, 2011, p. 114.

6)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제6권, 박종철 출판사, p. 252.

7) 칼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184.

8) 레닌, ≪철학노트≫, 논장, 1989, p. 169.

9)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한길사, 2011. p.46

10) 포이에르바하, 앞의 책, p.77

11) 포이에르바하, 앞의 책, p.99

12) 포이에르바하, 앞의 책, p.323

13) 포이에르바하, 앞의 책, p. 130.

14)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제6권, 박종철 출판사, p. 264.

15) 맑스, “헤겔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15.

16)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들”,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189.

17) 맑스, “헤겔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9.

18)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연구소, ≪세계철학사(6)≫, 중원문화, p. 62.

19) 맑스, “독일이데올로기”,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215.

20) 맑스, 앞의 책, p. 202.

21) 맑스, 앞의 책, p. 220.

22) 엥겔스, “반듀링론”,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5권, 박종철 출판사, p. 29.

23) 엥겔스, 앞의 책, p. 14.

24) 엥겔스, 앞의 책, p. 28.

25)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철학사(6)≫, 중원문화, p. 136.

26) 엥겔스, 앞의 책, p. 155.

27)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제6권, 박종철 출판사, pp. 27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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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Sep 25th, 2015 | By | Category: 이론, 정세와노동 | 조회수: 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