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그렇게 울분만 풀어버리면 곤란하다고!!

― 노동운동의 현실을 보여 주는 영화 Brassed Off

유재언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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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스트 오프(1996년)

연출: 마크 허만

시나리오: 마크 허만

주연: 피트 포슬쓰웨이트, 이완 맥그리거, 타라 피츠제랄드, 스티븐 톰킨슨

며칠 전 정부가 노동개혁을 독자 추진한다는 기사1)를 보면서 좀 어이없었다. 왜냐면 이 나라 정부는 항상 노동자 죽이기를 일관되게 추진해 왔는데 새삼스럽게 저런 표현을 쓰니 낯이 뜨거웠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개혁이란 단어 때문이었는데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죽이는 정책들은 모두 개혁, 진보,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하긴 이런 식의 개혁, 진보, 선진화가 이 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 다 아시겠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란 것이다. 선진화, 효율화라는 이름으로(그것을 진보라고 미화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반노동적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그런 예들은 수없이 많지만 하나만 들자면 1984년 자본주의의 고향 영국의 보수당 대처정부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 그 일환으로 수많은 탄광이 폐쇄되는데, 거기에 맞서 광부노조원들은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한다. 이에 대해 대처는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포클랜드 전쟁에 비유하며 적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해 버린다.2) 이상하다. 항상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고 자랐지만 이제는 좀 의구심이 든다는 점이다. 왜냐면 이 국가가 종종 아니 자주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거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경찰까지 동원해서 무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이런 국가권력에 대해 원망하고 하소연하다 분개하고 울분을 토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이런 국가권력을 어떻게 해서든 믿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갑자기 국가권력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늘 그랬듯이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영국 보수당 시절 탄광이 폐쇄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탄광노동자 밴드이야기 ≪브래스트 오프(Brassed Off )≫(1996)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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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들이 출근하면 아내들은 폐광에 반대하며 농성을 하고 있고, 퇴직금을 언급하는 노조지도부에 대해 노조원들도 의견이 엇갈려 싸우고 있다.

영화상의 배경은 1994년이고 요크셔주 그림리(Grimley)라는 가상의 탄광마을이지만 이 영화의 얘기는 1984년에 있었던 대처 시절의 그 사건이다. 정부와 사 측 대표는 탄광폐쇄를 받아들이면 탄광노동자들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주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하고 노조 대표는 탄광이 폐쇄될 경우 받을 수 있는 퇴직금 액수(좀 더 빨리 폐쇄를 받아들일 경우 퇴직금 액수가 늘어난다)와 탄광을 지켜 나가자는 얘기를 노조원들에게 보고한다. 노조원들(탄광노동자들)끼리도 여기에 의견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 와중에 그림리에 사는 탄광노동자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이 마을에 있으니 그림리 탄광노동자 밴드의 리더인 대니(피트 포슬쓰웨이트 분)다. 대니는 30년 넘게 이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도 물론 그림리 탄광노동자 출신이다. 대니가 지휘하는 이 밴드는 전국대회 우승을 노릴 만큼 실력이 출중하다. 그러나 탄광이 문을 닫을 것 같고 이미 많은 동료들이 해고된 상황이라 밴드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대니는 이에 대해 단호하다. 대니에게 있어서 음악은 그림리 광부들의 정신이요, 영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림리 밴드는 리더인 대니뿐만 아니라 밴드 멤버들도 어찌 보면 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멤버들의 아내들은 폐광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해서 가열차게 피켓팅을 하고 있지만 멤버들은 퇴근하면 농성하는 아내에게 가지 않고 모두 모여 회비를 걷고 전국대회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그림리 탄광밴드 멤버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못 말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도 실업의 위기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연습시간에도 늦고 합주할 때 자꾸 틀리기 일쑤다. 이때 이들에게 미모의 여성 글로리아(타라 피츠제랄드 분)가 밴드에 들어온다. 거친 남자들만 바글대는 광부밴드에 여자가 들어왔으니 모든 이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 또, 글로리아는 밴드 멤버인 앤디(이완 맥그리거 분)와 과거에 잠깐 사귀었던 사이였으니 앤디는 글로리아와의 재회에 가슴이 설렌다. 그래서인가 다시 밴드는 실업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잊고 활력을 되찾아 가고 맹연습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못 간다. 글로리아는 영국광산협회가 그림리 광산의 경제성 조사를 위해 파견한 감정사였던 것이다. 당연히 멤버들은 글로리아를 배척하기 시작하고 다시 사귀기 시작한 앤디와 글로리아의 관계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주변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리더 대니는 변함이 없다. 그는 평소처럼 연습하라고 멤버들을 다그치고 전국대회를 준비한다.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 영화 ≪브래스트 오프≫는 이렇게 대니가 이끄는 광부밴드가 전국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영화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고 거기서 우리들은 노동자의 눈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언급은 여기까지만 하고 지금부턴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을 언급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려고 한다.

1. 영국 노동자들의 현실

영화 ≪브래스트 오프≫와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선 빌리의 아버지가 피아노를 부셔서 땔감으로 쓰는 장면이 있다. ≪브래스트 오프≫에서도 영국 노동자들의 가난한 현실을 보여 준다. 대니의 아들 필(스티븐 톰킨슨 분)도 광부밴드 멤버인데 필은 형편이 다른 멤버들보다 더 안 좋다. 10년 전(84년의 파업)에 수감되었을 때 생긴 경제적 어려움이 지금까지 이어져 사채업자에게 살림도구를 뺏기고, 요금을 못 내서 전기와 물도 끊겼다. 그런데도 필은 전국대회를 위해 빚을 내서 악기를 구입했으니 필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현실감각 없는 필의 곁을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 대니도 진폐증으로 입원해서 위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생활하기 위해서 필은 교회에서 꼬마들을 상대로 공연하는 광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필은 꼬마들에게 이렇게 화풀이를 한다.

 

신이라고? 아, 그래 저 자식이 저기 있구만. 그런데 뭘 하고 있는 거야? 존 레논도 데려가고, 애인즐리 탄광의 광부를 셋이나 데려가고 내 아버지마저 데려가려 하면서 왜 마가렛 대처는 살려 놓는 거야?

이렇게 피맺힌 절규를 토해 내며 필은 교회에서 끌려 나간다. 일당은 받았을까?

2.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요즘도 지하철에 설치된 모니터에선 노사정이 서로 웃으며 손을 잡고 상생하자, 동반성장하자는 내용의 광고가 나온다. 판소리까지 하면서 신명나게 같이 가자고 하더군. 그러나 우리는 그게 거짓말이란 것을 이미 여러 번 봤다. 이 영화에선 전국대회 진출이 결정되어 런던의 앨버트홀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된 날에 그림리 광산은 폐광이 결정되고 광산노동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어 직업훈련소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대니는 그 충격으로 쓰러진다. 30년 넘게 그림리 광산에서 일하며 밴드를 이끌던 대니가 진폐증으로 입원했을 때 대니를 위로해 준 친구들은 그림리 탄광밴드 멤버들, 탄광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모금을 하고 대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 앞에서 대니가 가장 좋아하는 곡 ≪대니 보이(Danny Boy )≫4)를 연주한다. 그리고 영국광산협회에서 파견 나온 글로리아도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한때 회사, 정부, 노동자가 협력한다면, 그래서 그림리 광산이 수익성이 있음을 증명하면 폐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왜냐면 영국광산협회와 정부는 이미 수년 전에 폐광하기로 결정하고 일을 진행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리아는 용기를 내어 어려운 환경에서 얻은 자신의 기득권(글로리아의 아버지 역시 그림리 탄광밴드의 유명한 지휘자였다. 글로리아는 광부의 딸, 노동자계급 출신의 엘리트였다)을 과감히 버리고 그림리 탄광밴드를 돕겠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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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의 병실 앞에서 ≪대니보이≫를 연주하며 대니의 쾌유를 기원하는 그림리 밴드 멤버들

3. 노동자들의 분노 그러나……

그림리 탄광밴드는 우여곡절 끝에 앨버트홀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한다. 대니는 몸이 아파 지휘는 못 했지만 밴드의 연주를 지켜보고 수상자로 우승 트로피를 받게 되는데 그 순간 대니는 트로피 수상을 거부하고 이렇게 말하며 시상식장을 나가 버린다.

 

저희가 상을 받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이 없겠죠. 하지만 우리가 이 상을 거절한다면 뉴스거리가 되겠지요? 지난 10년간 이 망할 정부는 거의 모든 산업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산업뿐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가정, 인생까지도 말입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더러운 인간들을 위해서 말이죠. 2주 전에 이 밴드의 탄광이 폐쇄됐습니다. 수천 명이 직장을 잃고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희망도 잃었습니다. 투쟁 의지조차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화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보통의, 정직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티끌만 한 희망조차도 없지요. 이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리고 이들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우승을 자축하다가 대니의 제안으로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중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 )≫를 연주한다. 영화는 이 곡이 흐르며 끝이 난다. 이론의 여지없이 누가 봐도 이 장면들은 정말 훌륭하고 감동적이며 메시지도 잘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부분이었다. 왜냐면 노동자의 눈으로 본다면 마땅히 여기서 딴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 이 앨버트홀 시퀀스가 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앞에서 언급 안했지만 대니가 수상을 거부하고 나가자 밴드 멤버 중의 한 사람이 그 수상 트로피를 신주 단지 모시듯 잽싸게 챙긴다. 우선 그것부터 맘에 안 들었다. 이 나라, 이 정부가 자신들의 일터를 없애 버리고 실업자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 나라 정부에서 주최하고 후원하는 대회의 대상 트로피를 그렇게 갖고 싶을까? 차라리 그 화려한 수상 트로피를 내동댕이치거나 박살내어 버리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래, 이건 좀 너무 과격하니까 넘어가자. 정말 아쉬웠던 것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의 행동이다. 그렇게 이 나라 영국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하고 나갔으면서 버스 안에서 밴드 멤버들과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연주하다니… 이 지적에 너무 과민 반응한 것 아니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곡 ≪희망과 영광의 나라≫5)는 영국인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울분을 토하며 자신들의 처지와 이에 분노하고 있음을 보여 주려고 수상을 거부했건만 좀 이따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영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곡을 연주하다니… 아쉽다. 아직 그 국가권력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 지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떻게 보긴,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는 현재의 의식방향과 수위를 정확히 보여 주는 것 아니겠는가. 영화에서는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 실업자가 되어 버려 만신창이가 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아쉽게 머뭇거린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노동운동이 이 국가권력에 대해서 정면 승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이 이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니 아무리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라 하더라도 그 언저리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영화를 좀 안다는 영화 기자, 영화학과 교수, 영화 평론가, 심지어 노동운동하는 활동가들까지도 이런 노동문제를 다룬 유럽 영화들에 대해서 극찬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영화보다 좀 더 자유롭게 노동문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극찬일색은 낯 뜨겁지 않은가. 자, 영화 ≪브래스트 오프≫의 광부들을 보라. 그렇게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해서 대상을 받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고 그 현실에 울분만 토하다가 결국 일상(실업자 신세)으로 돌아가 버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곡인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연주하다니… 그렇게 그 나라의 공권력에 당하고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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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는 수상식장에서 대상을 거부하고 노동자를 죽이고 있는 자신의 조국 영국의 국가권력을 비판하며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그곳을 나오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국가권력을 찬양하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를 연주한다. 이런 나라에 과연 희망과 영광이란 게 있는 것일까?

4. 고뇌하는 노조지도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지적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그림리 탄광을 폐광하기로 결정되자, 폐광에 반대하던 노동자들이 탄식하고 폐광에 찬성하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퇴직금이라도 챙길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폐광을 발표하는 노조지도부 위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좀 역겨웠다. 저들은 한국의 현실에 대입하자면 노사정 합의에 참여했던 노조지도부들인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1998년 2월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의 노사정 대타협을 말이다.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뭐 했는지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며칠 전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을 거부하고 나왔는데 그만큼 정부에서 제안한 협상안이 민주노총보다 더 한심한 한국노총마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협상안이라는 것이겠지. 어쨌건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그런 역겨운 노조지도부들의 모습을 좀 더 강하게 고발하지 못한 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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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리 탄광 밴드는 우승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실업자 신세뿐이다.

운동이 분발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이제 이 나라 대한민국 얘기를 하면서 마무리 해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이 희노애락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는 모습을 제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는 앞서 나가는 방향의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만들고 싶다면 그와 동시에 세상을 바꿔 나가는 운동이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운동이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예술을 견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과 대중문화예술은 같이 나가는 것이지만, 좀 더 구분하자면 운동이 나아가고 보여 준 길을 대중들이 친근하게 같이 갈 수 있도록 다져 주는 것이 대중문화예술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운동이 자꾸 후퇴하다 보니 대중성을 담보하겠다는 이유로 (이미 후퇴한 운동으로 인한 현실을 반영한) 대중문화(광고 카피, 드라마 캐릭터, 가요 등)의 인기에 편승해서 무언가 해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문화사업이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거나 그저 불만 있는 사람들 하루 날 잡아서 기분 풀어주는 형식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광장이나 거리에서 의미 없는 춤과 랩이나 토해 내고 있다. 이 와중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유럽을 찬양하기 바쁘다. 그러나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영혼의 고향인 유럽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유럽도 노동운동이 후퇴하다 보니 결국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들이 극찬하는 영화 ≪브래스트 오프≫도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다. 적어도 보이는 것은 보인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답답하지만 해결책은 단순하다. 운동이 분발해야 한다. 그 방법이 우선이다.  노사과연


1) 장승철 기자, 정부, 독자 노동 개혁 시동…비정규직 대책 등 입법 추진, ≪MBC 뉴스데스크≫, 2015. 4. 9. (http://imnews.imbc.com/replay/2015/nwdesk/article/3680044_14775.html)

2) 이 상황은 대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을 보면 좀 더 실감나게! 볼 수 있다.

3) 이 영화 ≪브래스트 오프(Brassed Off )≫(1996)와 같이 보면 좋은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다. 대처 집권 시기의 영국 노동자들의 삶이 어땠는지 잘 표현되어 있는 영화다.

4) ≪대니보이(Danny Boy )≫는 아일랜드 포크송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곡은 북아일랜드의 민요 ≪런던데리 에어(Londonderry Air )≫에 잉글랜드의 변호사이며 시인인 프레드릭 웨덜리(Frederic Weatherly, 1848-1929)가 작사한 곡이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800년간이나 지배했다. 따라서 아일랜드 포크가수들은 이 노래 ≪대니보이≫를 잘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의 민요에 자신들을 800년이나 지배했던 잉글랜드 사람이 가사를 붙인 노래가 아일랜드 포크송일 수는 없을 것이다.

5) 에드워드 엘가의 곡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 )≫는 영국의 정식국가는 아니지만 영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으로 영국의 제2의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차 대전 때에는 영국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제국주의 송가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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