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단 말 듣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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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자본의 만행에 침묵하는 우리들의 비겁함을 꾸짖는 영화 “영아”

 

 

 

유재언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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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2012)

연출: 최아름

시나리오: 최아름

주연: 조현철, 김고은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혹은 불의를 보고 무력감에 견딜 수 없을 때, 그 잘못 때문에 피해(불편, 불쾌)를 본 사람들에게, 그 불의 때문에 희생을 당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논리적인 설명 따위 안 해도 우리는 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우선 그 순간을 모면한다는 것을 말이다.1)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감정, 그 분위기로 진실을 덮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미안하다는 감정을 알면서 이용하거나 그 감정에 휘둘려 이용당하거나 결론은 같다.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은 똑같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미안해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결국 이 잘못된 현실을 계속 방관만 하다가 가끔 생각날 때 또 미안해하고 슬퍼하기만 한다.

좀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미안하다에 대해 생각해 보니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명색이 영화감상문이잖아.) 지금 보면 약간 지루하거나 유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영화 ‘러브스토리(Love Story, 1970년)’에 이런 대사가 있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

영화 ‘러브스토리’는 이 대사 하나로 우리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고, 이 대사는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되었다. 광고 카피는 물론이요, 심지어 코미디에서도 패러디를 했었다. 아마 실제 연인들 사이에서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을 타는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많이들 할 것이다. 10대, 20대들도 영화 ‘러브스토리’는 못 봤어도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은 들었거나 직접 말해봤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이 말을 해 봤을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영화의 명대사는 수없이 많은데 왜 유독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쓰는 걸까? 아마 이 말에 담긴 뜻이 우리 정서, 우리 마음에 맞기 때문이리라.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이번에 하고 싶은 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보다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에 더 주목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의 해악에 주목한다. 나는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말이라고. “미안하다.”라는 말을 꾸짖기 위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이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 미안함’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는 우리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 미안하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며 비겁한 우리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영화 ‘영아(2012년)’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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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첫 장면은 장례식장이다. 화면 상단을 보라. 흐릿하지만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 ‘영아’는 거대 자본의 만행을 외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다. 그 거대 자본이 어딜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한 자본이 어딜까? 저기 청와대에 계신 그 분과 그 분의 비서실장, 그리고 그 분이 당선되도록 선거 조작까지 지휘하는 국정원장보다 더 강하다는 거대자본, 그래서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그 거대 자본이 어딜까? 알면서 모른 척 해 봤다. 이 영화 ‘영아’는 삼성 얘기는 단 한마디도 안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삼성반도체’ 얘기하고 있는 거구나 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분명히 선동적인 투쟁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인데 영화의 표현방식은 매우 잔잔하다는 점이다. 별 생각 없이 누군가와 얘기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는 장례식장에서 시작한다. 그곳에 취업 준비 중인 20대 후반의 청년구직자 완무(조현철분)가 있다. 완무는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지만 불편하기만 하다.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어렵고 위화감만 느낀다. 그래서 완무는 조의금도 냈고 밥도 먹었으니까 몰래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아뿔싸! 차비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십여 년 만에 만난 동창들에게 쪽팔리게 차비를 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완무는 주변을 살핀다. 어라? 아무도 조의금을 관리 안 하고 있네? 완무는 머뭇거리다 조의금을 훔친다. 양심에 찔리지만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기억도 안 나는 고등학교 동창 장례식에 불려 나온 것인데…. 완무는 이제 집에 가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말을 건다. 그것도 굉장히 친한 척 하면서 완무에게 말을 건다. 여자는 완무를 알고 있다. 여자의 이름은 영아(김고은분)다. 완무는 생각한다. 이 여자애는 누구지? 여자애가 예쁘네. 그런데 여름인데 마스크를 하고 있고, 털모자를 쓰고 있네. 왜 그런 걸까? 영아는 완무에게 다짜고짜 상갓집 음식이 맛이 없다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조른다. 이런 사정으로 완무는 본의 아니게 영아와 밤샘 데이트를 한다. 이 영화 ‘영아’는 이렇게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완무와 영아의 이야기다.3)

완무와 영아는 밤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얘기를 나눈다. 편의점에서 라면도 먹고, 자신들이 다녔던 고등학교 교실도 가보며 수다를 떤다.

완무 : 너가 메일 같은 거 보냈었잖아. 그때 약품 같은 거 물어보지 않았었나?

영아 : 뭐 그런 거.

완무 : 근데 내 전공이 기계과란 말야. 화학이나 반도체 이런 거는 잘 몰라. 답장을 했어도 못했을 것 같애.

영아 : 나는 너 공대생이라서 물어본 거야. 너 머리 좋잖아.

완무 : 그래도 그런 거는 모르지. 그리고 나 대학 나와서 전공도 완전히 병신인데…

영아 :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완무 : 그냥 생각해 보니까 생각이 나서.

영아 : 야! 그냥 니가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거잖아.

얘기 나누는 모습에서 흥미로운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완무는 왜 먼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까? 그러다가 완무는 이런 말까지 한다.

영아 : 나는 대학가고 싶었는데.

완무 : 그래도 넌 돈 많이 벌잖아. 빨리 돈 버는 게 훨씬 나아.

이제 완무와 영아는 지금 완무가 살고 있는 고시원에 간다. 좁은 고시원 골방… 완무의 답답한 현실이다. 이곳에서 영아는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영아 : 나도 답답해. 방진복 입고 있으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진짜 답답하거든. 손에서 발까지 다 싸매고 있는 거야. 그리고 마스크는 부직포라서 이게 숨 쉴 때마다 들락날락한단 말이야. 답답하게.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땀이 목덜미에서 가슴으로 막 이렇게 흐른다. 진짜 눈물 나는 것 같이 흘러, 줄줄. 거기다가 손이랑 발이 계속 축축하게 있으니까 습진 같은 게 걸려가지고…

완무 : (옆벽을 쾅쾅 치며) 조용히 좀 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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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데 있어서 생각이 좁아져 버렸다는 영아의 지적에 말문이 막혀버린 완무의 모습. 영아의 지적은 지금 우리들에게 하는 말 아닐까.

완무가 누구에게 화를 낸 것일까? 이 장면은 완무가 고시원 옆방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이 모습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나도 살기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들이 겪는 일에, 불의에 점점 더 둔감해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영아가 자신의 얘기를 꺼내자 완무는 처음에는 무관심한 척하다, 견딜 수 없어서 짜증을 내더니 변명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한다. 우리들도 지금 완무처럼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완무(우리들)의 이런 찌질한(?) 모습에 영아가 이렇게 말한다.

영아 :좁은 데 있으니까 생각이 자꾸 좁아져서 그래.

완무는 영아의 일침에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조금씩 영아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영아를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 그 후에도 이렇게 이 두 사람은 계속 담담하게 얘기를 나누다 건물 옥상에 올라간다. 건물 옥상에 올라가며 두 사람의 감정은 점점 고조된다. 아시겠지만 이쯤 되면 누구의 장례식인지, 영아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영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다 알게 되는 상황4)이다. 이제 영화는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두 남녀 주인공이 전망이 탁 트인 높은 곳에 올라갔고, 그곳에 바람까지 살랑살랑 분다면, 이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할 순서가 아니겠는가.) 영아는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다며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완무에게 고백한다. 난 정말 이 장면에서 울컥했다. 이런 예상 가능한 장면을 보여주면서도 정서적인 울림을 준다는 것은 이 영화 ‘영아’의 힘이고 연출한 최아름 감독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아의 고백을 받고 완무는 이런 장면에서 보여주는 뻔한 말을 한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 다음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영화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완무의 이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영아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말을 한다.

“미안하단 말 들으러 온 거 아니야.”

완무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영아를 위로했지만 영아는 위로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이 영화를 연출한 최아름 감독이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자본의 만행, 국가권력의 학살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그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같이 슬퍼하고 눈물 흘렸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우리는 항상 그분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안하다며 위로하고 난 뒤 무엇이 달라졌는가.5) 지난 해 세월호 학살 때 우리들은 어땠는가. 구조하지 않은 국가권력을 보며 분노한 민중들이 광장으로 나왔지만 연단에 선 일명 진보적인 인사들은 분노한 민중들 앞에서 계속 미안하다고 울부짖으며 아이들의 이름만 외치지 않았는가. 그렇게 눈물만 흘리다가 세월호 학살의 진실도 눈물과 같이 흘려보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국가권력의 만행에 분노했던 우리들도 같이 울어버리며 우리의 분노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만약 다른 영아가 이곳에 잠시 왔다가 노란 리본과 종이배만 광장에 가득 있는 모습을 봤다면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미안하단 말 들으러 온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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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무는 영아의 모자를 벗기고 자기가 눌러 쓴다. 완무가 느끼는 자괴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완무는 영아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눈물 흘리며 고백하는 완무에게 영아는 싸늘하게 이렇게 속삭이고 사라진다. “미안하단 말 들으러 온 거 아니야.”

이제 졸고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 ‘영아’는 우리들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안하다고만 하는 것은 비겁한 자기변명이라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런 말 아무 소용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영화 ‘영아’를 본 분들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동지들도 느껴주시리라 믿는다.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땅의 수많은 영아는 미안하단 말을 제일 혐오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는가. 그렇게 사라져간 영아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는가. <노사과연>


1) 지금 이 얘기가 어떤 이들에게 잔혹하게 들릴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니 동지들의 양해를 구한다.

2) 이 영화는 2012년 인디포럼 개막작으로 선정된 24분짜리 단편영화인데 최아름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재학시절에 만든 워크숍 작품이다.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 영화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독립단편영화라서 쉽게 구해서 보기 어렵다. 이 영화를 보려면 서울독립영화제2012 베스트 컬렉션DVD(가격 2만원)를 구입해야만 볼 수 있는데 이런 독립단편영화DVD는 소량생산, 판매하기 때문에 구입하기도 쉽지 않다.(현재 이 DVD는 품절상태다.) 그래도 혹시 만약에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동지들이 계시다면 지금 같은 폭력적인 저작권(지적재산권)에 저촉되는 행위지만 chord11@empas.com으로 메일 보내주시면 내게 이 영화 파일이 있으니 보내드리겠다.

3) 그동안 영화의 내용은 자세히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 ‘영아’는 꼼꼼히 줄거리를 언급하려 한다. 이 영화가 단편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야만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동지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4) 완무가 간 기억도 안 나는 고등학교 동창 장례식이 누구의 장례식이었을까? 이 글을 읽는 동지들도 누구의 장례식인지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5) 지난 2월 10일 삼성전자LCD 천안공장에서 근무했던 조아무개씨(23세)가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이로써 삼성전자LCD 공장에서 일하다 혈액암에 걸린 노동자는 확인된 사람만 8명이 되었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Mar 18th, 2015 | By | Category: 정세와노동, 회원마당 | 조회수: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