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동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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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다시 편지 씁니다.

지난 편지를 써놓고 발송을 못했습니다. 이번 편지와 함께 동봉합니다.

완전승소는 아니더라도 부분 승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했는데 지난 2월 13일 판결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1분도 안 되었을 짤막한 판사의 판결. 사건번호와 원고 이병진, 피고 대한민국을 호명한 다음 사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기각 재판비용 원고부담” 이렇게 나지막이 외치는 판결을 듣고 허망하게 재판정을 나서야 했습니다. 누구보다 이병진 동지께서 실망이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지의 아버님께서 칠순을 맞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패소로 귀결된 것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곧바로 2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판결 내용에 대한 제 단체들의 입장서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 부분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을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적으려 하는데 동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3분 29초 간의 짧은 통화가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제 생각은 말씀드린 대로 단호하게 항소해야 하는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밖에 계신 많은 동지들께서도 당연히 항소해야 할 사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재판비용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니 꼭 항소해서 서신검열의 부당성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지께서는 괜히 재판 때문에 밖에 있는 동지들께 걱정 끼치고 부담 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십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오히려 밖에 있는 동지들이 재판을 계기로 더욱 모이고 소통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지의 부모님과 말씀 나누면서 실정법 위반은 맞지만 간첩이라는 누명은 너무나 억울하다는 호소도 더욱 가까이 접하게 되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패소한다 하더라도 법정 투쟁 과정에서 쌓인 상호 간의 신뢰는 이후에도 큰 자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옥에 있는 동지와 변호사님의 소통이 원활치 않은 점이 다소 걱정이 됩니다만 이제까지 해 오신 대로 하신다면 큰 문제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지와 전화를 마치고 바로 ○○○ 동지와 통화했고 변호사님께, 항소준비상황을 이병진 동지께 바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설연휴 때문에 지체되겠습니다만 조만간 연락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나서 아버님께서 제게 살짝 민가협 조순덕 의장님께 그 전에 전화로 언성을 높이고 했던 적이 있는데 죄송했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직접 말씀하셔도 되었을 텐데 제게 전해달라는 모습에서 아버님의 의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키도 크시고 체구도 좋으신 분인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린 면도 있으셨네요… 아버님이 약속 때문에 먼저 자리를 뜨신 후에 조순덕 의장님께 말씀 전해드렸습니다.

매번 모든 것을 좋게 좋게만 풀어갈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대하기엔 세상에 명백히 현존하는 적대가 너무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화해할 수 없는 적대와 화해하는 것이 순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갑오년이 저물어 갑니다. 갑오농민 전쟁 120주년도 함께 저물어 갑니다. 두 갑자가 지났습니다. 무협지를 보면 내공이 한 갑자만 되어도 능히 경천하고 동지하는데 과연 새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역사의 내공이 과연 두 갑자만큼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설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건강하게 을미년 새해에 뵙겠습니다.

 

 

해가 지나 해가 뜨나

감옥 속은 어둡네

밤낮으로 간수놈이

아! 아! 아! 아! 아! 아!

철창을 넘겨보네.

 

네멋대로 넘겨보렴

담을 넘지 못하고

자유에 목말라도

아! 아! 아! 아! 아! 아!

쇠사슬은 못 끊네.

 

아, 무거운 이 쇠사슬

아! 아! 아! 아! 아! 아!

간수놈의 줄기찬 감시

아무래도 끊지는 못하니

너를 해방은 하네.

 

막심 고리끼 희곡 ≪나그네≫ 중에서

출처: 함대훈, “노농문단의 기린아 막심 고리끼 연구 —문단생활 40년을 기념하여—, ≪고리끼와 조선문학≫, 좋은책, 1990. p. 44.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Mar 18th, 2015 | By | Category: 독자편지, 정세와노동 | 조회수: 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