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우리의 당면 임무(상)

김해인|연구위원

차 례

들어가며

I. 한국 사회의 모순

1. 일제 강점기

2. 해방 이후 현재까지

3. 신식민지 문제

1)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차이

2)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성장과 신식민지 문제

3) 한국의 신식민지성

4.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

1) 신식민지 모순

2) 자본주의 모순

3) 파쇼 모순

II. 박근혜 정권의 성격

1.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2. ‘민주 정부’와 박근혜 정권

3. 박근혜 정권의 성격

III. 우리의 당면 임무

보론: 한국의 아(亞)제국주의성의 문제

들어가며

이 글의 목적은 한국 사회의 모순을 분석함으로써, 이로부터 도출되는 우리의 실천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격에 대한 분석이 선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그동안 무척이나 많은 논쟁들을 불러왔던 문제이며 또한 그 규명이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 지점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증적인 자료들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우선 그 대략적인 내용만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술에 일정한 공백이 있고, 몇몇 부분은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의 경쟁적(비독점적) 자본주의 단계의 문제라든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성립 시기의 문제라든지 등등이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성격 분석에서도, 상세한 논의가 필요함에도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눈에 띌 것이다. 특히, 마지막의 정리가 미흡하다.

다행히 이 글은 애초에 올 5월 노동절에 맞춰 발간 예정인, 연구소의 이론지 ≪노동사회과학≫ 제8호를 위한 초고로 기획되었다. 즉, 초고를 발표한 뒤 제기될 평가 및 비판, 토론 결과 등을 반영하여, 이론지에 보다 완성된 글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독자들께 생략된 부분에 대한 이해를 부탁드린다. 또한 아울러 제출된 초고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 및 비판도 부탁드린다. 여러분들과의 의견 교환 속에서, 이 초고가 보다 과학적인 실천 지침의 모습으로, 이론지에 실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I. 한국 사회의 모순

1. 일제 강점기

한국 사회의 모순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먼저 일제 강점기 조선 사회를 떠올려 보자.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 민중들이 다양한 형태의 민족 해방 투쟁을 전개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고율의 소작료에 신음했던 소작농들의 광범위한 소작쟁의와 원산총파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당시 사회의 모순이 현실적인 형태들로 표현된 것이다.

민족 해방 투쟁을 보자. 주권 강탈, 강압적 통치, 정치적 탄압, 경제적 수탈, 민족 차별ㆍ말살 정책, 전시 강제 징집,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일제의 조선 민중에 대한 억압은, 피억압 조선 민중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 식민 지배 체제를 유지하려는 일본 제국주의ㆍ친일 반민족 세력과 현 상태를 극복하려는 피억압 조선 민중들 사이에 대립을 발생시켰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민족 해방 투쟁으로 나타났다.

즉, 민족 해방 투쟁은, 일본 제국주의ㆍ친일 반민족 세력과 피억압 조선 민중 간의 대립으로 표현되는 식민지 모순의 현실적 표현(민족 해방 투쟁의 구체적인 형태는, 안중근의 의거, 3ㆍ1 운동, 강우규의 의거, 봉오동 전투, 보천보 전투 등으로 표현된다)이며, 이 대립의 투쟁적 운동 형태인 것이다.

광범위한 소작쟁의 역시, 당시 조선의 지주와 소작농 간의 모순(봉건적 모순)이 현실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모순(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자, 이 대립의 투쟁적 운동 형태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제하 조선 사회의 주요 투쟁들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지 모순과 봉건적 모순, 자본주의 모순이다. 물론 어느 사회나 다양한 모순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당시 조선 사회도 일본 제국주의ㆍ친일 반민족 세력과 피억압 조선 민중 간의 모순, 지주와 소작농 간의 모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모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독립 운동 세력 내에서도 다양한 노선을 대표하는 각 세력 간의 모순이 존재했으며, 일본인 자본가와 조선인 자본가 간의 모순 역시 존재했다. 그밖에도 다양한 모순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한 사회의 근본적 모순이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정치적으로 일제 식민지하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한 일본 제국주의ㆍ친일 반민족 세력과 피억압 조선 민중 간의 모순, 즉 식민지 모순이 일제하 조선 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압도적이고 지배적인 생산 관계인 지주-소작 관계에서 발생하는 봉건적 모순과 아직 지배적인 생산관계는 아니지만 발달하고 있는 자본-임노동 관계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함께 존재하는 반(半)봉건제적 모순이 일제하 조선 사회의 경제적 성격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하는 바는,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 속에 있듯이, 이 두 모순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식민지 모순은 단순히 정치적인 성격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으며(표현을 달리하면,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당시 조선에서 발달하고 있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봉건적 지주-소작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특히, 고율의 소작료로), 지주-소작 관계는 다시 자본주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자본주의의 발달은 다시 식민지 성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사회주의 운동과 식민지 해방 투쟁의 결합) 등등. 이 지점은 뒤에서 총괄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2. 해방 이후 현재까지

그럼 다음 시기로 넘어가자. 1945년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한(조선)반도 남쪽에 진주한 미 제국주의 세력은, 세계적인 식민지 민족 해방 투쟁의 전개와 이에 대한 쏘련의 지속적인 지원 및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성립 등에 따라 형성된 새로운 국제적 역학 관계에 속에서,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과 같은 직접적 식민 지배 형태가 아닌 간접적 지배 방식의 신식민지 정책을 추진한다. 45-48년 미 군정의 직접적 지배가 있었고, 48년 이후 반도 이남은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모순은, 식민지 모순에서 신식민지 모순으로 전화되었다.

같은 시기 경제적 측면에서는, 1950년대 초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봉건적 지주-소작제가 해체된 결과,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생산관계로 되었다. 즉, 한국 사회의 모순이 반봉건 모순에서 자본주의 모순으로 전화되었다.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쳐 급속하게 진행된 이농ㆍ탈농, 즉 대규모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졌고, 경쟁적 자본주의 단계를 거쳐 70년대 중ㆍ후반, 늦어도 80년대에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들어섰다.

2015년 현재 독점자본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슈퍼 갑”, “치킨까지 파는 대기업”, “재벌 공화국”, “삼성 공화국” 등으로 표현되는 재벌들의 행태는, 눈과 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 좀 더 구체적인 자료를 더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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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한국 자본주의의 독점화 경향을 더욱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있다. 대기업 중에서도 몇몇 재벌들의 독점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로 예로, 2011년 기준으로 삼성 계열사의 자산총액은 GDP의 33%, 현대 계열사의 자산총액은 GDP의 1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겠다.1)

현재 한국의 독점자본은 대내적으로 하청 계열화를 통해 생산ㆍ유통 과정에서 중소자본에 대한 지배 관계를 완성하였고, 금융부문까지 지배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특정 품목 및 상품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등 과거에 비해 독점자본의 상품 및 자본 수출이 현저하게 증대했다. 따라서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를 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에는, 별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는, 그 성립에서부터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한 자본주의였다. 일제 강점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기에 국가의 광범위한 경제적 역할을 생각해 보면, 이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15년 현재 또한, 이러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이고 강력한 개입은, 한국 자본주의의 존립에 필수적 요소이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경제를 살리겠다”며 어떻게 경제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렇게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한 자본주의를 우리는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이는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가가 경제의 재생산 과정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 즉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조선의 자본주의는 아직 지배적인 생산관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러한 세계적 관계 속에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었고, 2015년 현재까지, 아니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는 더욱더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성격 혹은 모순의 발전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식민지 반봉건 사회(모순) → 신식민지 경쟁적(비독점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모순) →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모순).

3. 신식민지 문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 제기가,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기는 의문, 또는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성장과 신식민지 문제가 뒤섞여 사고되면서 제기되는 의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1)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차이

먼저 식민지의 직접 지배 방식과는 다르게, 신식민지는 간접적 지배 방식이다. 따라서 신식민지의 지배층은 대내외적인 의사 결정과 집행에 있어, 일정하게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그 의사 결정과 집행은 식민지 본국, 즉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하에 있다.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은 주로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주한 미군 주둔,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한ㆍ미ㆍ일 군사정보공유 협정, 사드 배치, 남북(북남) 교류 등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문제를 가지고 혹자는 일본에도, 독일에도 미군은 주둔하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럼 일본, 독일이 미국의 신식민지냐는 반론을 펼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아닌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며, 그것의 역할이다. 미 제국주의는 여전히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음으로써, 한국에 대한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주한 미군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중요하다. 즉, 우리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이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주한 미군이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 지배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 주둔한 미군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문제에서는 한국 지배층, 더 정확하게는 한국 독점자본이 얼마나 지독하게 미 제국주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미군이 철수한다는 것도 아니고 작전권만 가져가라는데도,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듯 소동을 피우는 저들의 꼴을 보라.

한ㆍ미ㆍ일 군사정보공유 협정 체결이나 사드 배치 문제는, 의사 결정 및 집행에서의 상대적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미 제국주의의 입장이 관철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한ㆍ일 정보보호협정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래서 미국을 매개로 한, 한ㆍ미ㆍ일 협정이라는 꼼수를 써서 이 협정을 약정한 것이다. 전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복무해서, 한ㆍ미ㆍ일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실제 동북아의 초긴장을 불러올 것이 뻔하게 예상됨에도 한국이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것 역시, 미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 정부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지점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대중(對中) 관계와 남북(북남) 관계에서이다. 한국 정부는 대중 관계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ㆍ미ㆍ일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특히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또한 사드 배치 등 군사적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을 보여 왔다. 이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미국의 영향력하에서 소위 ‘동북아 균형자’는 구호 혹은 말뿐이지, 국제 관계에서 실제로 한국이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서 행동한 적이 있었는가? 대표적인 ‘동북아 균형론자’이자, 그 정부는 탈미(脫米), 반미(反米) 정부로까지 불린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보자.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배신하면서까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그때의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인용해 보자.

먼저, 임기 첫 해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이라크 파병’ 결정을 되돌아본다. 문 이사장은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첫 번째 계기가 이라크 파병이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결정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훗날 술회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통령은 “나도 개인이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했다”고 털어놨다. 자서전 <운명이다>의 관련 대목이다.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의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 미국의 요청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국방-안보라인은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만명 이상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사단급 규모가 돼야 독립구역을 맡아 독립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청와대 정무분야 참모들은 파병을 반대했다. 대통령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파병을 반대하는 주장을 백번 수긍하고 공감했다.

그러나 그때 한국은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폭이나 제한적 대북공격설이 나오고, 대북봉쇄 등의 제재조치도 제기되고 있었다. 한반도 정세불안을 이유로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 등급 내리자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등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은 미국에 시종일관 ‘무력에 의한 대북문제 해결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천명했다. 북핵문제는 철저하게 대화를 통해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소신이 확고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끌어가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자면 그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통령도, 청와대 참모들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 문 이사장은 파병방침 발표문안 결정 과정의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외교부가 준비해온 초안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치러지는 이번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며 우리의 파병이 향후에 전후재건 복구사업 등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대통령은 “나는 이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인지 모르겠다”면서 그 표현을 쓰지 못하게 했다. 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리 젊은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사지에 내모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적 이익은 파병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이란 현실적 이해로 파병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히라고 지시했다.

…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고,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고, 그것이 국가경영이라는 것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문 이사장의 생각이다. (강조는 인용자)2)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불가피”한, “회피할 수 없는 선택”, 남북(북남) 관계에서의 “미국 정부의 협조”,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 “현실적 이해”, “국익”, “국가경영”이라는 말 속에, 상대적 자율성 속에서 미 제국주의의 이해가 어떻게 관철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미국 정부의 협조”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남북(북남) 관계에서 한국 정부가 제 마음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물론 일정한 자율성 속에서 교류 협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적대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 제국주의의 전략하에서의 상대적 자율성이다. 한국 정부 마음대로 큰 틀의 결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늘 보아왔던 바이고, 위 인용문 역시 간접적으로 이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이북 정부가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것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한국 정부)은 결정권이 없잖아!” 하면서.

이상으로 간략하지만, 한국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은 어느 정도 이야기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2)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성장과 신식민지 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성장과 신식민지 문제가 뒤섞여 사고되는 문제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면,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로 규정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미 제국주의는 이러한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으로 경제적 영향력도 여전히 미치고 있다.

앞서 우리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중요한 계기, 즉 본원적 축적의 계기를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친 급속한 이농ㆍ탈농에서 찾았다. 그런데 이것은 직접 생산자(농민)로부터 그 생산수단(토지)을 수탈해,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대규모 노동자를 만드는 계기, 즉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저렴한 대량의) 노동력이 공급되었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측면도 고찰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수단, 즉 기계 설비, 플랜트, 원자재 등의 고정자본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당시 한국의 생산력, 즉 기술 수준에서는 주로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고, 이러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외화가 필요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에서 필요했던 외화가 어떻게 획득되었는가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및 국제기구들로부터의 대규모 원조 및 공공차관, 상업차관, 대일청구권 자금, 베트남전 파병을 통한 달러 유입, 서독 파견 간호사 및 광부들로부터의 외화 유입, 서남아시아의 건설 사업을 통한 외화 유입, 외국인 직접투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 더 검토해 보려고 하는 것은, 미국 및 국제기구들로부터의 대규모 차관 도입과 대일청구권 자금, 외국인 직접투자가 한국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이다.

해외 차관이 한국 자본주의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대개 돈을 빌릴 때, 빌려주는 사람이 갑이고, 빌리는 사람이 을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에도, 외국의 차관으로 기계 설비를 구입하고 플랜트 등을 건설할 때, 대개 차관을 준 국가의 이해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1960년대 턴키(Turn-Key) 방식으로 건설된 석유공정공장 3개, 화학비료공장 4개, 석유화학공장 9개를 들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자본을 빌려, 그들의 기술과 설비로 공장을 완성하고, 이후 운영 및 설비 교체 등에서도 다시 그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대일청구권 자금을 통한 그것인데, 먼저 대일청구권 자금이 어떻게 포항제철 건설에 쓰였는지를 살펴보자.

박정희 대통령은 단순히 철을 수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직접 생산하는 것을 바랐다. 정부는 외국자본을 확보할 수 없어 일본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활용하기로 한다. 농업 및 어업에 배정되었던 청구권 자금 5억 달러(3억 달러 무이자 및 2억 달러 3.5%의 이자)를 제철소 건설에 사용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처음 한국 정부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재정 및 기술 지원을 요청했을 때부터 강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제철소 건설과 시장 개발을 통해 일본의 철강 상품과 공장을 수출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 정재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대형 철강기업을 참여시키면서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일본의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사건과 지리적 접근성으로 인해 일본의 대한국 ODA 정책에서 경제적 이익만큼이나 안보에 대한 관심도 크게 나타났다. 따라서 일본의 대한국 ODA 정책의 형성 및 결정은 보통의 정부 관료적 과정을 초월했다.

일본의 허가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은 강한 사회적, 정치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1969년 한국 최초의 종합제철소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포항제철(POSCO)을 건설한다. (강조는 인용자)3)

“일본의 허가”에 따라 청구권 자금이 포항제철 건설에 쓰일 수 있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 이유는 일본 철강 자본의 이해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인용문을 통해, 앞서 언급된 대한(對韓) 차관들의 목적과 성격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청구권 자금은 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포항제철 건설 이외에도 다양한 부문―사회간접자본 건설, 설비ㆍ원자재 구입 등―에 사용된다(아래 표: 대일 청구권 자금의 활용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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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위 인용문에서는 “역사적 사건”, “지리적 접근성”하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만, 실상 “안보”로 표현되고 있는 그것이다.

사실 전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이 65년 한일 협정을 체결한 것은, 미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 위해서였다. 미 제국주의의 ‘대공산권’ 전략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및 한ㆍ미ㆍ일 동맹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한일 협정 타결로 한국에 들어온 청구권 자금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대일 무역 적자가 보여주듯,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또 이를 총괄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 자금을 통해, 외국 설비, 원자재, 플랜트를 구입하고 건설함으로써 구조화된 경제에서의 (기술적) 종속이 반드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종속 속에도 발전은 가능하다. 그것이 자본주의이며, 살아 있는 모순 아니겠는가!

한국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앞서 서술한 방식대로, 즉 기계, 설비 등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외국의 기술을 도입하거나, 뒤에서 서술할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한 외국인 기업이나 합자 회사를 통한 방식으로, 혹은 라이센스 계약을 통한 방식으로 해외 기술을 도입하였다.

하지만 이후 한국 자본은 모두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방식으로, 즉 일본 전자 제품을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모방 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자동차 역시 이러한 과정을 밟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최초에는 합자 회사를 통해 기술을 습득했는데 70년대 말경에는 합자 회사의 외국인 지분을 매도하게 하고,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거쳐, 현재 판매량으로 세계 2위에 올랐다. 자동차 산업 역시 외국 기업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기술 습득을 시작해, 80년대 주요 부품의 국산화를 달성했고, 현재 생산량으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약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술 종속은 여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반도체의 경우, 핵심적인 부분은 여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CPU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따라서 주력 수출품인 핸드폰의 머리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인 모바일 CPU(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전량 해외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동차 역시 5-10%의 핵심 부품들은, 그리고 특히 중대형차의 주요 부품들은 여전히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분명하게 해 둘 것이 있다. 우리가 “기술이 종속되어 있으니까 신식민지”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식민지 절의 마지막에서 묶어서 설명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검토하려고 하는 것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영향이다. 먼저 외국인 직접투자는 앞서 이야기한 차관에 비해 그 규모는 작았다.

         해외 차관 및 외국인 직접투자5)   (단위: %, 백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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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영향력이 작은 것은 아니었다. 전자 산업의 예를 보자. 1981년의 경우,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한 외국계 기업의 생산량이 총생산액의 42.5%, 총수출액의 47.2%를 차지하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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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전체를 봐도 그렇다. 1977년의 경우, 외국계 제조업체가 생산한 부가가치가 국내총생산(GDP)의 19.9%를 차지하고 있고, GDP 성장 기여율은 31.2%에 이르고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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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더욱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97년 소위 ‘외환위기’ 이후 그것의 영향이다. 통계가 조사된 1962년부터 2007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 누적액은 1,372억 달러였다. 그중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액수가 1,126억 달러로, 전체의 82.1%를 차지하고 있다.8)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투자량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것의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전 외국인 직접투자 형태는 거의 100% 공장 설립형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M&A형 직접투자가 눈에 띄게 증가해 1998년에는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의 57%를 차지했고, 이후에도 증감을 반복하며 20-4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9) 당시 헐값으로 외국자본에 팔려나갔던 수많은 공기업ㆍ대기업ㆍ부동산들이, 바로 이러한 예들이다.

직접투자의 한 형태인, 외국인의 주식 보유 현황10)도 살펴보자. 2015년 2월 9일 현재 기준으로, 시가총액 중 외국인 보유 비율은 31.52%이다.11) 2003년 41.2%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10% 정도 하락한 수치이다.12) 하지만 여기서도 그것의 양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2월 10일 기준으로 KRX 100종목 중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 종목이 15개, 40% 이상인 종목이 24개, 30% 이상인 종목이 36개이다. KRX 100 상위 10위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율을 아래 표로 살펴보자.

KRX 100 상위 10위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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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서처럼, 유수의 국내 대기업들, 즉 독점자본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 지분이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더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금융 부문에서의 그것의 양상이다. 먼저 국내 주요 은행들을 모아놓은 KRX Banks 지수를 보자.

국내 주요 은행의 외국 지분율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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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수의 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60-70%대임을 알 수 있다. 보험에서도 2013년 기준, 전체 시장 점유율 72.7%에 달하고 있는 손해보험 ‘빅4’―삼성화재(27.5%), 현대해상(16.1%), 동부화재(15.8%), LIG 손해보험(13.2%)―의 외국인 지분율은 다음과 같다.

매출 상위 4개 손해보험사의

외국인 지분율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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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치들은 한국 금융, 특히 주요 은행들의 외국 자본에 대한 종속 심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이러한 상황을, 대중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어 기억을 떠올려 본다. 바로 2012년 농협이 대대적으로 진행한 광고이다. 당시 농협은 다른 은행들과 다르게, 자신은 “국내 자본 100% 은행”이라는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광고를 각종 매스컴에 내보냈었다.16) 농협의 이 애국주의적 구호가 바로, 한국 금융의 현 상황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는가.

3) 한국의 신식민지성

이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자. 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미국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하에 들어갔다. 동시에 ‘원조 경제’로 표현되듯, 그것의 경제적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 한국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식민지는 과거 구식민지와는 다르게,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직접적인 지배 방식이 아닌, 간접적 지배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간접적 지배의 핵심은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을 통해서 관철된다. 따라서 이 상대적 자율성의 표현으로, 한국도 미 제국주의와 정치적으로 일정한 대립 양상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과 갈등 속에서도,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관철되고 있음은 앞서 살펴본 대로이다.

한국 자본 역시 직접적으로 미 제국주의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장한 한국 자본들은, 현재 국내외 시장에서 미국 자본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등 기술적 종속도 상당히 탈피한 모습이다. 또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미국 기업과의 특허 소송도, 미국과의 무역 분쟁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앞서 살펴본 금융 부문의 경우처럼, 여전히 저들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은, 경제적 영향력으로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미 FTA 협상 및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 준 모습들이다. 이렇게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을 탈피해서 발전하는 경향과 종속이 유지ㆍ강화되는 경향이, 계속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것이 모순이다. 한번 식민지가 영원한 식민지일 수는 없다.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한 신식민지일 수는 없다. 신식민지를 유지ㆍ강화하려는 힘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합이 향하는 바가, 즉 현재까지 관철되고 있는 모습이, 바로 현재 한국의 신식민지성으로 나타난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운동 즉 모순의 운동 속에서, 한국의 신식민지성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신식민지라는 규정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ㆍ경제적 지배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주로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을 통한 간접적 지배이다. 신식민지 정부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이 점에 비추어, 한국을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라고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영향력이라고 표현하든, 종속이라 표현하든, 예속이라 표현하든 그러한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한국은 상대적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ㆍ경제적(금융적) 영향력하에 있으니 말이다.

4.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

이렇게 장황하게 한국 사회의 모순을 역사적으로 다룬 것은, 한국 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여일(如一)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과 변화ㆍ발전된 것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17)

연관되어 있는 두 측면을 다시 분리해서 고찰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의 검토에서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방식의 변화에 따라, 식민지 사회에서 신식민지 사회로 이행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 따라, 반봉건 사회 → 경쟁적(비독점적) 국가자본주의 사회→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앞서 뒤에서 설명하겠다고 한 것처럼,) 경제와 정치는 아무런 상관없이 운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밀접한 연관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경제는 정치를 규정하며, 정치는 다시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1) 신식민지 모순

그럼 먼저 신식민지의 측면에서 이 점을 통일적으로 고찰해 보자. 미 제국주의는 왜 한국을 신식민 지배하고 있는가? 당연히 피상적인 첫 번째 답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좀 더 깊이 들어가려면, 누구의 이익이고, 무슨 이익인지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제국주의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 보자. 제국주의의 경제적 토대는 독점자본이다. 독점자본은 안정적인 시장 및 원료의 확보를 위해 세계를 분할(재분할)해 왔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국제적 충돌이 1ㆍ2차 세계대전임은 세계사의 상식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고, 또 2차 대전 이후 한국은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독점 단계에 들어서게 되면, 그 내부의 모순―기본 모순인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간의 모순 및 노동자-자본가 간의 모순, 자본 간의 모순 등―은 극대화되고, 그 모순의 폭발적 양상인 공황도 집적ㆍ집중된 자본의 크기만큼, 그리고 확대된 생산력의 크기만큼 더욱 거대한 모습을 띄게 된다. 자본의 생존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독점자본 간의 경쟁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며, 안정적인 시장 및 원료를 확보를 위한 그리고 과잉 축적된 자본의 투자처 확보를 위한,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 및 동유럽 등에서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성립되고, 세계는 쏘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ㆍ제국주의 국가들이 대립하게 된다.

한국은 이러한 대립 양상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미 제국주의의 ‘대공산권’ 전략에 중요한 축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모순이 격렬하게 충돌한 사건들 중 하나가 바로, 1950-53년 전개된 한(조선)반도에서의 전쟁이었다. 즉, 한국(조선) 전쟁은 세계적 차원의 계급 대립의 표현이자 동시에 한국(조선) 민족의 계급 대립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한국은 미 제국주의의 정치적ㆍ군사적 영향력하에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지금에도 한국은 대중, 대러, 대북 견제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물론 지정학적 위치가 이러한 모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순들이 한국에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정리해 보자. 누구의 이익, 무슨 이익 때문에 한국은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가 되었는가? 미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미 제국주의 독점자본의 모순이 한국에 반영된 것이 바로, 한국에 대한 미제의 신식민 지배이다. 즉, 미 제국주의의 국내적ㆍ국제적 모순의 운동―미국 내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모순, 미국 내 자본들 간의 모순,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가 간의 모순,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모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 등―이, 한국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 지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통 한국 사회에서 민족 모순이라고 불리는, 미 제국주의와의 관계에서의 신식민지 모순과 남북(북남)의 관계에서의 분단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모순, 더 정확히는 제국주의ㆍ자본주의와 그 대립적 관계에 있는 사회주의 간의 모순, 그리고 그것의 계급적 표현인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모순이 한국 사회에서 관철되고 형태이다. 즉, 민족 모순은 계급 모순의 외화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 제국주의의 대중 봉쇄 전략, 대러 봉쇄 전략의 한 축으로서의 한국의 중요성도 존재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 남북(북남)의 영토적 대치를 조건으로, 한국의 신식민성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여기에는 한국의 지배계급, 즉 한국 독점자본의 이해도 걸려 있다. 왜냐하면 남북(북남)의 영토적 대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치이고, 이것은 계급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다 상세한 설명은 뒤에서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대내외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성은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신식민지 모순을 한국 사회를 여일(如一)하게 관통하고 있는, 근본 모순이라고 본다.

2) 자본주의 모순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지금, 언론들도 공공연히 “자본주의 사회”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을 배타적(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본가 계급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해 경제활동을 하려면(먹고살려면) 자본가 계급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 그래서 자본가의 생산수단으로 노동을 하며, 그 노동을 통해 자신이 먹고살기 위한 몫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주인인 자본가가 먹고살 몫까지 만들어 내는 그러한 경제(생산)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한다.

그러면 그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작지만 자신의 가게 그리고 거기에 딸린 생산수단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한 사회 체제를 말할 때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자신의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생산 활동, 즉 소생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외한다. 예를 들면, 노예제 사회나 봉건제 사회를 말할 때, 그 사회에 노예ㆍ농노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영농(자유민)들이 존재함에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생산 관계는 (공장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자본-임금노동의 관계이고, 따라서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그럼 자본주의의 모순은 어떤 모순을 말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러한 자본주의 그 자체의 성격으로부터 나온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매일 보는 것처럼 한 사람이 자신이 쓰기 위해(자신의 필요를 위해) 뭔가를 만드는 사회가 아니다. 판매를 목적으로(타인의 필요를 위해) 임금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생산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다. 그런데 그 노동의 결과인 생산품(상품)은 온전히 만든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산수단의 주인인 자본가의 것이 된다.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것의 주인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에게 배정된 몫(대개 자본가는 어떻게든 작게 주려고 하고, 노동자는 많이 받으려고 하면서 그 대립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몫)만 받고, 나머지는 다 자본가의 몫이 된다. 즉, 자본주의의 성격은, 생산에서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에서의 사적(배타적ㆍ독점적) 성격으로 나타난다. 이 양자의 모순을 우리는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급적으로 표현된 것이, 위에서 서술된 것과 같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적 모순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모순이 현실적으로 표현된 것(현상된 것)이,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공황), 한편에서의 흥청망청과 다른 쪽에서의 극심한 빈곤, 자살, 실업 등의 자본주의적 현상들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관계 속에서 경제(생산) 활동을 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생산관계는 삶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지배적인 생산관계는 자본주의 관계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이러한 생산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은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한국의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섰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독점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격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이 바로 이러한 격화된 모순의 현상 형태인 것이다: 노동자-자본가 간의 격렬한 계급 대립, 거대한 규모의 경제 위기(공황), 만연한 실업 등등. 여기서 추가하고 싶은 것은, 독점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과 노동자 간의 모순이, 생산관계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가장 주된 모순이지만, 격화된 형태의 대립은 이 관계 외에도 독점자본과 중ㆍ소 자본, 독점자본과 자영업자 등 소생산자, 독점자본과 농민 사이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대기업과 자영업자의 대립,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립 등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매일 같이 펼쳐지고 있다.

3) 파쇼 모순

그런데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말한 것처럼, 신식민지 모순이 관철되는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신식민지 모순이 관철되는 과정 속에 노-자 간 계급 모순이 격화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북남) 분단의 문제, 제국주의와의 문제 등으로 표현되는 민족 모순, 즉 신식민지 모순과 노동자-자본가 간의 계급 대립 등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일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한국 정부는 노동자 계급 해방을 위한 사상과 그 정치적 활동ㆍ조직을 극렬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여기서, 이러한 것은 어떤 자본주의 정부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자본가 정부는 그 성격상 당연히 노동자 계급과 대립해 왔다. 하지만 자본가 정부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문화 환경에 따라 정치적 스펙트럼은 다양하게 존재하겠지만, 대개 거칠게 표현하면 가장 왼쪽으로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물론 역사적으로 이미 다 밝혀진 것이지만, 이러한 정부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정부일 수는 없다). 또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설 수도, 보수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으로는 파쇼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

대개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같은 말이지만 계급 힘 관계에 따라, 그 나라의 정부의 성격 및 형태가 결정된다. 물론 그러한 정치적 상황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 상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의 정치적 형태가 대개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체(政體)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과, 한국의 정치적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한국도 의회가 있고 유럽 선진국들도 의회가 있고, 한국도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유럽도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해서 뭐 비슷하지 않은가 할 수도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한국에 여일하게 존재해 온, 국가보안법과 공산당의 불법화가 그것이다. 우리는 반공법18), 국가보안법하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다보니,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피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는,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상과 그 정치적 활동, 조직을 억압하고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1946년 9월 7일 미 군정이 조선공산당을 불법화한 이래, 한국의 합법적 공산당 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조직과 정치적 활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모두 아는 것처럼, 선진 유럽의 국가들에는 국가보안법도 없고, 그 대신 수많은 공산당, 혁명당들이 공공연하게 활동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한국처럼 이렇게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상과 그 정치적 활동, 조직을 금지한 정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 그러한 정치 형태를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물론 지금 파시즘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정치적 성격을 중점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파시즘은 1차 대전 후,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자-자본가 간의 계급투쟁의 격화, 사회주의 혁명의 진전 등에 대응한 독점자본의 정치 체제이다. 대개 인종주의적이고 극우보수적인 이념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그것의 핵심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사상과 정치적 활동, 조직을 탄압하고, 독점자본을 지키기 위한 것에 있다.

그리고 주로 파시즘의 통치 수단은 극단적인 폭력을 동반했는데, 사실 이 지점에서 파시즘과 부르주아 통치 일반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같다고 생각된다. 어떤 부르주아 통치 체제가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모든 국가 체제가 그렇지 않은가! 사실 국가라는 것 자체가, 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을 위한 공적 폭력 기구이지 않은가! 실제로도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우리는 매일 같이 국가 폭력에 의한 집회ㆍ시위의 탄압,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파시즘을 규정하는 데 있어 극단적인 폭력은 필요조건이 아니다. 폭력의 강도는 상황에 따라, 주로 계급 힘 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오랜 군사 독재의 영향으로, ‘파쇼’하면 주로 ‘군사 독재’를 떠올리는데, 반드시 파쇼 정권이 군인에 의해 통치될 필요도 없다. 군대는 본래부터 경찰과 더불어 국가의 주요한 폭력 수단이다.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사례들에 의해 증명된 것처럼, 그것은 외국과의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자국민에 대한 탄압과 학살에도, 상황에 따라 언제나 동원되어 왔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대개 이승만 독재 정권도 파쇼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한국에서의 대표적인 ‘민간 파쇼’ 정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공산당의 합법화가 단 한 번 공론화된 적이 있다. 바로 노무현 정권에서였다. 하지만 이것은 수사(修辭), 잘해야 개인적인 신념의 표현일 뿐이었고, 당시 거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결코 이것을 현실화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소동은, 한국의 신식민지 모순과 자본주의의 계급 모순이 소위 ‘민주 정부’에서도 여일(如一)하게 관철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실 저들이 염두에 둔 ‘국가보안법 폐지, 형법 보완’이라는 것은, 사실상 그것의 개악(改惡)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겠다.

정리해 보자.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신식민지 모순이 관철되는 과정 속에 노-자 간 계급 모순이 격화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것의 정치적 표현은 한국에서의 파쇼 권력의 필연성으로 나타났다. 즉, 사회주의와의 국제적 대립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바로 머리 위에 그러한 국가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내부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반영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계급적 적대가 격화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처한 상황, 모순이고, 따라서 이 위에 들어선 정부의 형태는 필연적으로 파쇼적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성격, 모순이 해소되지 않은 한, 여일(如一)하게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정치적 모순, 즉 파쇼 권력과 노동자ㆍ민중 간의 모순을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으로 보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역사적으로 고찰했고, 각 모순들을 연관 속에서 고찰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을 제국주의와 관계 속에서의 신식민지 모순, 정치권력의 차원에서의 파쇼적 모순, 경제적 토대에서의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장황하게 한국 사회의 모순을 파고든 이유는, 이에 기반해서 박근혜 정권의 성격은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따라서 어떻게 싸워야 잘 싸울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이다. 그럼 다음 주제인 박근혜 정권의 성격으로 넘어가자.

II. 박근혜 정권의 성격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분석하려면, 먼저 앞서 분석한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은 어떻게 박근혜 정권에 관철되고 있는가, 즉 그것의 성립 배경은 무엇이고, 이전 정권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정책들을 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새누리당, 민주당(새정연), 정의당, 노동당 및 현재 추진 중인 ‘국민모임’ 등 각 정당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각 정당의 계급적 기반과 그 역할, 활동 등에 대한 분석도 함께 요구된다.

1.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먼저 박근혜 정권의 성립 배경을 보자.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마찬가지로 세계적 자본주의의 위기,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반영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및 이에 따른 노동자-자본가 간의 계급 대립의 격화를 그 성립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반영된 독점자본의 정권이,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인 것이다. 그럼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로 모순의 정도이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국제적ㆍ국내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으며, 또한 계급 대립도 더욱 격화되었다. 그것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부ㆍ자본의 온갖 인적ㆍ물적ㆍ기술적 자원들을 총동원한 부정선거이다! 선거 부정을 해서라도 반드시 보수(극)우파의 정권을 연장해야 할, 독점자본의 절박한 필요ㆍ의지가 반영된 것이 바로 박근혜 정권의 탄생이다.

따라서 그것의 본질적인 역할은 이명박 정권과 동일하다. 경제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부르주아적 방식으로 극복하는 것, 즉 노동자 계급에 맞서 독점자본의 힘을 강화하는 것, 정치적으로는 노동자 계급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 즉 노동자 계급의 무기가 되는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것, 한ㆍ미ㆍ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 사상적으로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에 맞는 반동적 사상을 강화하고, 노동자 계급의 사상을 탄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은 말이야 어떻게 붙이든 실상은 노동자ㆍ민중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친재벌 반서민 정책을 추진했다. 집회ㆍ시위ㆍ사상ㆍ언론ㆍ출판ㆍ결사의 자유는 극도로 억압되었고, 친자본적ㆍ친일-친미적ㆍ반동적인 사상들이 종편 등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주입되었다. 한ㆍ미ㆍ일 동맹은 표면적인 한-일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실상 더욱 강고해졌다. 이러한 것이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명박 5년ㆍ박근혜 2년 동안 계속된 이러한 경향, 힘의 누적은, 그 자체로도 훨씬 더 강한 힘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박근혜 정권은 모순의 격화를 반영하여 그 힘의 강도를 더욱 세게 하고 있다. 친재벌 반서민 정책은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의 ‘증세’ 논란에서 보듯 노동자ㆍ인민 대중을 폭발 직전으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적폐 일소”, “규제를 단두대에”라는 말에서 보듯, 독점자본에 방해가 되는 최소한의 규제들까지 모두 없애려 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에 반해, 노동자ㆍ민중으로부터는 최소한의 권리들마저 빼앗아 버리고 있다. 집회ㆍ시위의 자유에 대한 탄압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합법적 집회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경찰의 불법적 행위는 이제 공식화되어 버렸다. 이명박 정권의 언론에 대한 철저한 탄압과 장악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결과 공정 방송ㆍ보도는 온데간데없게 되었다. 기자들 스스로가 “기자인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다”고 했던 세월호 방송 보도가, 바로 이러한 결과를 여실하게 보여 줬다. 종편을 위시한 보수 언론들의 사상 주입은, ‘세월호 농성장 일베 난입’, ‘서북청년단 재건위’로, 급기야 ‘통일 콘서트 사제 폭탄 테러’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인터넷 극우파가 아닌, 현실적인 극우파들을 양산하고 있다. 또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부가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던,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강행하고 있다.

이렇게 그 도를 더해 가고 있는 무수한 것들 중에,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통합진보당의 해산이다. 이명박 정부도 ‘종북 척결’의 깃발을 들고 민주노동당을 탄압했다. 공안 정국도 조성했다. 하지만 그 사상이 반미(反米)적이고 친북(親北)적이라고 해서, 의회의 틀 속에 있는 합법적 정당을 해산할 시도까지는 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바로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이 정도로 격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조금의 반미 사상도, 민족 화해적인 사상도, 그리고 그것의 물질화는 더더욱 합법적인 틀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용인의 대상이 아니라, 대대적인 탄압과 박멸의 대상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이상이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차이, 즉 양의 누적, 양의 차이, 강도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럼 소위 ‘민주 정부’들과 박근혜 정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것 역시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지점이다.

2. ‘민주 정부’와 박근혜 정권

우리는 앞서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을 고찰하며,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일하게 관철되어 왔다고 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민주 정부’ 10년에서도 이 모순들은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이었다는 점, 즉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ㆍ자본주의ㆍ파쇼적 성격은, 이 정권하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당시 한-미 동맹의 상황을,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가 작성한 주한 미 대사관의 전문을 통해 살펴보자.

2006년 9월 25일자 전문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안보) 공약은 (전작권을 이양한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 개인적으로도 한국의 당국자들을 만나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주한미군의 상당한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작전 태세가 보다 기민해진 것은 한국의 강력한 군사적 능력과 더불어 한미동맹의 태세가 더 강해진 것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

… 한국은 효과적인 한미동맹에 의해 국가 안보, 민주화, 경제 성장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

2007년 11월 30일자 전문

(노무현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전작권 이양을 포함해 방위동맹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강조는 인용자)19)

이러한 미 정부의 시각과 동일하게, 노무현 자신이 2005년 11월 17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 감축의 문제, 그 밖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이라크 파병 문제, 용산기지 이전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하나하나 정치적으로 부담 많고 폭발적 내용을 갖고 접근하고 있는 일들인데 그걸 지난 1년 몇 개월 동안 거의 다 해결됐다.

지금 어떤 정부 때보다 한미 대화가 활발하고 그리고 원활하게 소통되고 있다. … 남북 관계도 한국 전쟁 이래 지금이 가장 안정된 시기이고 한미 관계도 가장 대화가 잘 이뤄지고 가장 높은 수준의 합의 이루고 있다.20)

그리고 그는 이라크 파병, 한미 FTA 타결 등을 통해, 그의 말 그대로 굳건한 한-미 동맹을 과시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주 정부” 10년 동안 국가보안법은 없어지기는커녕, 이들 정부에서의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그 어느 정부보다 많았다.

                 국가보안법위반사범(97-14년)21)          (단위: 명/ %)

hi09

총계: 구수(전년도 미제) +신수이며, 구속 및 구속율은 신수에 대한 비율임

불기소: 기소유예, 기소중지, 혐의 없음, 각하 등

미제: 검찰에 접수된 사건 중 수사 중인 사건

경제 정책에서도 ‘민주 정부’는 노무현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할 만큼,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책 보고서가 곧 정책으로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집회ㆍ시위에 대한 탄압도 강경했다. 한-미 FTA에 반대 시위를 하던 농민 두 분이, 집회 중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구속된 노동자들도 어느 정부 때보다 많았다.

‘민주 정부’ 10년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 왜 이러한가? 그것은 새누리당(한나라당 등 그 전신들)이 전형적으로 독점자본에 기반한 우익 정당이라면,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등 그 전신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다수가 이를 대표)와 소부르주아지(일부가 이를 대표)에 기반한 정당인데, 그들이 집권할 당시에는 이미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기반을, 한나라당과 똑같은 독점자본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 그때에도 그들은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독점자본의 하수인이었고, 소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는 아주 일부만 대변하는 정당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 지점에서 잠시 한국 ‘진보 정당’들의 계급적 기반을 보자면, 정의당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의 연합으로 볼 수 있고, 노동당은 소부르주아지와 노동자 계급 일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즉, 유럽식으로 말하면 양 당 모두 전형적인 개량주의 정당인 것이다. 정의당의 한 구성이 ‘참여 정부’ 측 인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양 당이 활발하게 합당을 논의하는 것을 보면 지금 노동당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자신들의 지지(혹은 참여) 계급 구성의 반영일 것이지만.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 소위 ‘국민 모임’이다. ‘국민 모임’ 역시, 다수 소부르주아와 일부 노동자 계급 출신, 일부 자유주의 부르주아로 구심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그 계급적 기반은 대개 소부르주아지, 일부 노동자 계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국민 모임’의 결성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한국 자본주의 위기의 그리고, 그 격화의 반영이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이 박근혜 정권, 즉 계속적인 노동자ㆍ민중 죽이기로 나타났다면, 이 위기에 대한 소부르주아 계급의 대응은, 이와 같은 개량주의로 나타난다. 기실 자본주의에 의해 자신들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인데, 정권만 바뀌면 혹 정책이 좀 수정되면, 자본주의하에서도 자신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환상, 이 환상의 정치가 개량주의이고, 그것의 정치적 형태가 ‘국민 모임’과 같은 개량주의 정당이다. 즉, 자본주의 구하기의 소부르주아적 방식인 것이다.

3. 박근혜 정권의 성격

직전까지 우리는 ‘민주 정부’와 박근혜 정권의 공통점을 고찰했다. 그럼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시 정도의 차이다.

그럼 계속 이야기하는 그 ‘정도’의 차이라는 것은, 무슨 정도를 의미하는가? 바로 형식적 민주주의(혹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 사회의 정치 형태는 근본적으로 파쇼일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파쇼적 지배가 관철되는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에서의 신식민지 모순과 자본주의 모순이 관철되는 정치적 형태이며, 이 또한 정치적 모순이다.22)

그런데 근본 모순은 격화되는 가운데, 그로부터 파생되는 모순은 상황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 즉, 파쇼적 모순이 관철되는 가운데,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것의 대립적 부가물로서 일정하게 부침을 겪는다.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가 극심하게 탄압, 형해화(물론 그것 역시도 형식적으로는, 법률적 절차가 존재했다는 의미에서의 형해화)되었던 이승만 독재기, 박정희 유신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87년 민주주의 대투쟁 이후 그것은 그 자체의 부침과 여러 부문에서 불균등하게 발전하기는 했지만 일정하게 성장했고, 소위 “민주 정부” 10년 동안에는 역시 불균등하지만 사회의 여러 부문에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물론 앞서 검토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한국 사회의 본질들은 여일하게 관철되면서 말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들이 여일하게 관철되면서, 이러한 민주주의가 거의 형해화된 단계, 역사적으로 보면 그의 아버지 통치기 중 유신 시대 같은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대립적 부가물이 형해화된 채, 파쇼 정치가 전면에 나타나는 상태는 격화된 한국 사회의 모순의 반영이고, 그것의 부르주아적 해결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시 이미 적대적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는 독점 자본과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모순뿐만 아니라, (전면에 나선 민낯의) 파쇼 권력과 노동자ㆍ인민 대중의 모순, 즉 정치에서의 파쇼적 모순도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변화하고 있는 바로 이 지점에,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한 모순이 있다. 따라서 다음 호에는 이번 호에 분석한 바 있는 ‘신식민지 파쇼 국가국점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미진한 부분이 있는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조금 추가적으로 서술하고, 이러한 분석들을 토대로 지금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을 분석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우리의 당면 임무, 전략과 전술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준비 등 구체적인 현안까지를 다루고자 한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삼성ㆍ현대가 자산, GDP 50% 넘었다”, ≪시사저널≫(1171호), 2012. 3. 29.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7471)

2) “‘문재인의 운명’으로 되돌아본 오해와 진실—(1화)노무현의 ‘고통’ 파병 결정”, ≪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사람사는세상≫, 2011. 6. 17. (http://www.knowhow.or.kr/rmhworld/bbs/view.php?pri_no=999548965&tn=t7&wdate=&gno=999513373&stype=0&search_word=&page=1)

3) 기획재정부ㆍKDI 국제정책대학원, ≪2011 경제발전경험모듈화사업: 한국의 원조수혜 경험 및 활용≫, 2012, p. 43.

4) 같은 책, p. 45.

5) Koo Bohn-young, “New Forms of Foreign Investment in Korea”, Working Paper Series(82-02), Korea Development Institute, 1982, p. 28.

6) Ibid., p. 81.

7) Koo Bohn-young, “Role of Foreign Direct Investment in Recent Korean Eco-nomic Growth”, Working Paper(81-04), Korea Development Institute, 1981, p. 50.

8) “외국인 직접투자 동향”, ≪e-나라 지표≫.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140)

9) 전경련 경제본부 경제정책팀, “해외직접투자 및 외국인직접투자 변동추이 분석”, ≪ISSUE PAPER≫, 2014, p. 26.

10) 물론 여기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불리는 한국 독점 자본의 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케이먼 제도, 룩셈부르크, 영국령 버진 제도, 버뮤다 등 이른바 ‘조세피난처’를 통해 국내에 투자되는 금액 중 일부에는 이러한 투자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금액은 2014년 4월 기준으로, 전체 외국인 투자 보유액 중 1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독점 자본의 행태를 보여주는 자료로는 유의미하나, 이 글이 다루고 있는 ‘종속’ 문제와는 거리가 있기에 더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11) KRX 자본시장통계포털. (http://stats.krx.co.kr)

12) “외국인 증권투자 현황”, ≪e-나라 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1086&clas_div=&idx_sys_cd=544&idx_clas_cd=1)

13) KRX 자본시장통계포털. (http://stats.krx.co.kr)

14) 같은 곳.

15) 같은 곳.

16) 이종용 기자, “농협 “우리는 국내자본 100%”…은행들 ‘부글부글’”, ≪서울파이낸스≫, 2012. 5. 14. (http://www.seoulf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988)

17)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과 이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 발전의 긴 과정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의 상황은 흔히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사물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의 성격과 그 과정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으나 이 근본 모순은 그 긴 과정에 있어서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 차츰 격화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또는 그 영향을 받는 허다한 대소 모순 가운데는 격화되는 것도 있고 잠시 또는 국부적으로 해결되거나 완화되는 것도 있으며 새로 발생하는 것도 있다.” (모택동, ≪모순론≫, 범우사, 2009, p. 66.)

18) 1980년 반공법을 폐지하면서 관련 내용을 국가보안법에 포함시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였다.

19) 황준호 기자, “‘안보 공백’ 개탄하던 성우회 장군들, 위키리크스를 보라”, ≪프레시안≫, 2011. 9. 22.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2678)

20) 김윤경 기자, “노대통령 “한미동맹, 어느 정부 때보다 원활하다””, ≪이데일리≫, 2005. 11. 17.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977846576766704&SCD=DA31&DCD=A01501)

21) “범죄유형별 공안사건 처리현황-국가보안법 위반사범”, ≪e-나라 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1745&clas_div=&idx_sys_cd=834&idx_clas_cd=1)

22) 이러한 것을 지적하고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공주의가 재생산되는 구조를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상과 정치적 활동, 조직이 억압되는 정치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적ㆍ정치적 탄압이라는 형태로, 공산당의 불법화라는 정치적 금지의 형태로, 여일하게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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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4개의 댓글

  • 근데 반봉건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절반이 봉건이란 의미인가요? 봉건주의와 자본주의가 절반씩?
    다양한 모순중 ‘근본’모순을 구태여 강조하신다면, 이러저러한 모순을 나열하고 서로 관계있어요, 라는 게 아니라면
    ‘근본’모순은 그냥 봉건주의 아닌가요?

  • “한번 식민지가 영원한 식민지일 수는 없다.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한 신식민지일 수는 없다. 신식민지를 유지ㆍ강화하려는 힘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합이 향하는 바가, 즉 현재까지 관철되고 있는 모습이, 바로 현재 한국의 신식민지성으로 나타난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운동 즉 모순의 운동 속에서, 한국의 신식민지성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과 이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 발전의 긴 과정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의 상황은 흔히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사물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의 성격과 그 과정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으나 이 근본 모순은 그 긴 과정에 있어서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 차츰 격화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또는 그 영향을 받는 허다한 대소 모순 가운데는 격화되는 것도 있고 잠시 또는 국부적으로 해결되거나 완화되는 것도 있으며 새로 발생하는 것도 있다.” (모택동, ≪모순론≫, 범우사, 2009, p. 66.)

    “이러한 대내외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성은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신식민지 모순을 한국 사회를 여일(如一)하게 관통하고 있는, 근본 모순이라고 본다.”

    필자의 주장 중에서 의문이 가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필자의 주장은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히 신식민지일 수 없지만 신식민지를 유지ㆍ강화하려는 힘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신식민지를 유지.강화하려는 힘이 더 우월하고 지배적이기 때문에 신식민지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은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신식민지 모순을 한국 사회를 여일하게 관통하고 있는 ‘근본모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과 이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는 마오의 모순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아니지만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히 신식민지일 수 없기에 한국사회도 신식민지를 탈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한국사회에서 근본모순이 변하게 되는 것이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근본모순이 변해도 여전히 자본주의 모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의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모순이 완결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인가요?
    이것이 아니면 필자는 “대내외적 조건”이 바뀐다면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모순인 신식민지성은 바뀌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변혁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인지? 위에서 신식민지성을 탈피하려는 힘인 한국의 자본주의의 성장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힘은 변혁적 상황 외에는 없는 것인지?
    필자는 “대표적인 예가 한-미 FTA 협상 및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 준 모습들이다. 이렇게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을 탈피해서 발전하는 경향과 종속이 유지ㆍ강화되는 경향이, 계속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처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경향을 한국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의 이러한 생산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은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다.”이라고 했는데 이것과 신식민지가 근본모순이라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나요? 민족모순(이것은 제국주의 모순 즉 신식민지 모순일 수 있겠죠)의 계급모순의 외화라는 표현이 있던데, 그렇다면 어느 것이 근본모순이라는 건가요?

    필자는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을 제국주의와 관계 속에서의 신식민지 모순, 정치권력의 차원에서의 파쇼적 모순, 경제적 토대에서의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했”는데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성격은 근본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반파시즘 승리의 가능성을 요원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여 도리여 패배주의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 아닌지요? 파시즘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다른 새로운 통치형태로 보고 이 속에서 주요모순의 해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적으로 간주하게 함으로써 파시즘에 대한 집중적 대응을 막을 수 있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파쇼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파쇼에 반대하는 전체 민주주의 세력을 다 결집시켜야 하는데, 파쇼권력의 문제를 근본모순의 해결의 문제와 연결을 지으면 결국 자본주의 철폐를 주장하는 세력들만으로 전선이 한정되고 협소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한번 식민지가 영원한 식민지일 수는 없다.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한 신식민지일 수는 없다. 신식민지를 유지ㆍ강화하려는 힘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합이 향하는 바가, 즉 현재까지 관철되고 있는 모습이, 바로 현재 한국의 신식민지성으로 나타난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운동 즉 모순의 운동 속에서, 한국의 신식민지성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과 이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 발전의 긴 과정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의 상황은 흔히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사물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의 성격과 그 과정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으나 이 근본 모순은 그 긴 과정에 있어서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 차츰 격화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또는 그 영향을 받는 허다한 대소 모순 가운데는 격화되는 것도 있고 잠시 또는 국부적으로 해결되거나 완화되는 것도 있으며 새로 발생하는 것도 있다.” (모택동, ≪모순론≫, 범우사, 2009, p. 66.)

    “이러한 대내외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신식민지성은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신식민지 모순을 한국 사회를 여일(如一)하게 관통하고 있는, 근본 모순이라고 본다.”

    필자의 주장 중에서 의문이 가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필자의 주장은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히 신식민지일 수 없지만 신식민지를 유지ㆍ강화하려는 힘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힘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한국사회는 여전히 신식민지를 유지.강화하려는 힘이 더 우월하고 지배적이기 때문에 신식민지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은 본질적인 것이고 따라서 신식민지 모순을 한국 사회를 여일하게 관통하고 있는 ‘근본모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 모순과 이 근본 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는 마오의 모순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아니지만 한번 신식민지가 영원히 신식민지일 수 없기에 한국사회도 신식민지를 탈피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한국사회에서 근본모순이 변하게 되는 것이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근본모순이 변해도 여전히 자본주의 모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 남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의 사물의 발전 과정의 근본모순이 완결됐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인가요?
    이것이 아니면 필자는 “대내외적 조건”이 바뀐다면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근본모순인 신식민지성은 바뀌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변혁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인지? 위에서 신식민지성을 탈피하려는 힘인 한국의 자본주의의 성장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힘은 변혁적 상황 외에는 없는 것인지?
    필자는 “대표적인 예가 한-미 FTA 협상 및 재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 준 모습들이다. 이렇게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을 탈피해서 발전하는 경향과 종속이 유지ㆍ강화되는 경향이, 계속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처럼, 신식민지를 탈피하려는 경향을 한국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요?

    “한국 사회의 이러한 생산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은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다.”이라고 했는데 이것과 신식민지가 근본모순이라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나요? 민족모순(이것은 제국주의 모순 즉 신식민지 모순일 수 있겠죠)이 계급모순의 외화라는 표현이 있던데, 그렇다면 어느 것이 근본모순이라는 건가요?

    필자는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을 제국주의와 관계 속에서의 신식민지 모순, 정치권력의 차원에서의 파쇼적 모순, 경제적 토대에서의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했”는데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성격은 근본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것은 반파시즘 승리의 가능성을 요원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여 도리여 패배주의를 고착화 시키는 것이 아닌지요? 파시즘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다른 새로운 통치형태로 보고 이 속에서 주요모순의 해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적으로 간주하게 함으로써 파시즘에 대한 집중적 대응을 막을 수 있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파쇼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파쇼에 반대하는 전체 민주주의 세력을 다 결집시켜야 하는데, 파쇼권력의 문제를 근본모순의 해결의 문제와 연결을 지으면 결국 자본주의 철폐를 주장하는 세력들만으로 전선이 한정되고 협소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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