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의 집권

― 특히 그 평가에 대한 단상

채만수 | 소장

인민의 ‘반란’

 

의원내각제인 그리스의 지난 1월 25일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SYRIZA)’이 여당인 신민주당(ND)을, 득표율 36.34% 대 27.81%라는 큰 차로 물리치고, 집권하였다. 총의석 300석 가운데 149석을 확보함으로써 과반의석에서 2석이 부족, 4.75%의 득표율로 13석을 확보한 보수 그리스독립당(ANEL)과 비록 연립정권을 형성하긴 했지만, 그 의석비율로 봐서 ‘시리자 정권’이라고 불러 무방할 것이다.

시리자의 집권은 물론 2007년 하반기부터의 세계대공황, 특히 2010년에 발발한 재정위기 속에서 구제금융의 대가로 속칭 트로이카로 불리는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이 강제한 가혹하기 그지없는 ‘긴축정책’에 대한 그리스 노동자ㆍ인민의 저항의 산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공황ㆍ재정위기 때문에, 그리고 그 때문에 강제된 ‘긴축정책’ 때문에, 다른 것은 다 그만 두고라도, 그리스의 실업률은 25%를 오르내리고 있고, 특히 청년들의 실업률은 60%를 오르내리고 있다. 주지하는 바이지만, 부르주아 통계에서의 ‘실업’ 혹은 ‘실업자’란 이른바 ‘경제활동가능인구’ 가운데 매월 통계기준일이 포함된 한 주일 동안에 일자리를 찾아 뛰었지만 단 1시간도 일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 1주일 동안에 1시간이라도 삯을 받고 일을 한 사람은 통계상 ‘실업’ 혹은 ‘실업자’가 아닌 것이다. 실업률이 이렇게 높은 조건에서는 정규직 취업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물론 온전할 수가 없다. 트로이카가 강제하는 살인적 ‘긴축정책’이 아니더라도, 일자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경쟁 때문에 그 임금ㆍ노동조건이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업률 25%, 청년실업률 60%인 사회,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란 사실 지옥 그것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는, 과거에는 어엿한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는 사람들조차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보도 사진들을 드물지 않게 접해오지 않았던가?

따라서 그리스에서의 이번 정권교체는, 더 이상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인민의 일종의 반란이다. 폭력에 의한 권력의 전복이 아닌 것이 오히려 기이하다고 할 만한 상황에서 발생한, 선거를 통한 일종의 인민반란인 것이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집권에 대한 한 평가

 

시리자, 즉 ‘급진좌파연합’ 집권에 대하여 일부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 혹은 발언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러한 성격, 즉 그 인민반란적 성격을 주목했기 때문일 터이다.

… Syriza 상층부의 개량주의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선거강령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와 Syriza의 승리는 지배계급에 대한 그리스 민중과 좌파의 유의미한 승리임이 분명하다.

2015년 1월 총선에서 Syriza가 승리한 것은 … IMF를 앞세운 국제자본가계급이 구제금융을 빌미로 강요한 구조조정이라는 공격에 파열구를 낸 최초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 민중의 승리이고 좌파의 승리이다.

… 트로이카의 공격으로 동일한 처지에 있는 스페인이나 아일랜드, 포르투갈만이 아니라 자본가 독재에 신음하는 전 세계 민중이 그리스 민중의 운명과 동일시하면서 지금 이 투쟁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 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1)

그런데 그리스의 소위 ‘급진좌파연합’의 집권을 보면서, 그 “의의와 한계”를 그렇게 결론짓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더구나 위 인용문의 필자는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KKE: 1918년 출범한 KKE(그리스 공산당)는 반나치 투쟁에서 민족해방전선과 인민해방군을 창설하여 2차 대전 후 세력이 20만 명에 달했다. 내전(1946-1949)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으나 군부독재(1967-1974)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섰고, 민주화 이후 ND(신민주당), PASOK(사민당)의 양당체제하에서 소수당이지만 노동(PAME-민간노총 내의 공산당의 외곽전선)과 학생운동에 뿌리가 강하고 동원력이 막강하다. KKE는 유럽의 공산당 중에서 유일하게 유로코뮤니즘을 거부하고 반제 반독점 혁명을 주장한다. 대중투쟁의 동원력이 있고, 투쟁에 앞장서기도 하지만 종파적이고 배타적이다. (강조는 인용자)

 

“그리스 공산당은 … 투쟁에 앞장서기도 하지만 종파적이고 배타적이다”? 필시 그간 투쟁과정에서의 특히 시리자, 즉 ‘급진좌파연합’과의 갈등ㆍ대립관계를 염두에 둔 성격규정일 터인데, 과연 타당한 규정일까?

또한 이렇게도 말한다.

 

Syriza의 승리에서 좌파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Syriza가 변혁좌파를 포함하여 다양한 좌파들이 연합한 새로운 유형의 당new party이고 넓은 당broad party라는 점이다. 혁명은 단선적으로 성취되지 않는다는 점, 러시아 혁명 후 발달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혁명 세력 혹은 변혁세력은 집권은커녕 주변화를 면한 적이 없다는 점, 스페인의 인민전선이나 아옌데 정부에서 보는 것처럼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좌파정부 하에서 대중의 의식과 투쟁이 급성장한 사례에서 보듯 선거로 집권한 좌파정부가 더 높은 변혁투쟁의 유리한 고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Syriza의 개량주의적 성격이나 Syriza 상층부의 우경화나 한계만으로 유럽 최초의 좌파정부의 수립이라는 이 중대한 성과를 폄하하고 어두운 전망을 예언하는데 만족하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리스와 전 세계 좌파는 이 투쟁이 좌절하거나 Syriza정부가 자본의 위기관리정부로 전락하지 않도록 그리스 민중이 획득한 이 성과를 엄호하고 이 성과를 교두보로 삼아 투쟁을 더욱 전진시켜야 한다. 그리므로 개량주의적인 좌파정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나 비관적 전망으로만 일관하는 것은 변혁좌파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강조는 인용자)

“Syriza의 승리에서 좌파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Syriza가 변혁좌파를 포함하여 다양한 좌파들이 연합한 새로운 유형의 당new party이고 넓은 당broad party라는 점이다.” ― 맥락으로 보아 분명 ‘긍정적ㆍ적극적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과~연 그럴까?

‘급진좌파연합’은 정말 급진적인가

 

그리스에서의 이번의 정권교체를 내 자신 일종의 인민반란이라고 평가했지만, 나와 위에서 인용한 글의 필자 사이에는 중대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위 인용문의 필자는 “Syriza의 개량주의적 성격이나 Syriza 상층부의 우경화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급진좌파연합(SYRIZA)’의 집권과 그 “투쟁을 엄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 비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도, 세계적으로도 문제는 소위 ‘급진좌파연합(SYRIZA)’에 대한 환상, 그 비판의 부족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어를 전혀 모르는 처지이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급진좌파연합’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SYRIZA가 어떤 단어들의 머리글자들인지 전혀 모르지만, 아무튼 ‘급진좌파연합’의 ‘급진’은, 속도 개념이라기보다는, 분명히근본적(radical, radikal)’이라는 뜻일 것이다. 맑스가 다음과 같이 얘기할 때의 ‘radikal’ 말이다.

 

비판의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서 전복되어야 하는데, 하지만 또한 이론은 그것이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된다. 이론은 그것이 사람들에게(ad hominem: am Menschen) 입증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이론은 그것이 근본적으로(radikal) 되자마자 사람들에게 입증된다. 근본적이라 함은 사물을 뿌리에서 파악하는 것이다.2) (강조는 인용자)

 

그리하여 여기에서 묻고 싶다. ― ‘급진좌파연합(SYRIZA)’은 과연 급진적, 즉 근본적인가?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 의의와 한계”의 필자의 그에 대한 평가는 과연 급진적ㆍ근본적인가? 혹은 과연 그 평가가 급진적ㆍ근본적이지 않아도, 낭만적3)이어도 좋은 것인가?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 의의와 한계”의 필자는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 “변혁좌파를 포함하여 다양한 좌파들이 연합한 새로운 유형의 당new party이고 넓은 당broad party”라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좌파들의 연합”! ― 결국, ‘급진적’을, ‘근본적’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조직구성 자체 때문에 결코 근본적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편에서는 “다양한 좌파들의 연합”이라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적’ㆍ‘근본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소부르주아적 사고의 혼란을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추구하는 정책은 전혀 급진적ㆍ근본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조직의 구성 자체가, 좋게 표현하여 “변혁좌파를 포함하여 다양한 좌파들이 연합한 새로운 유형의 당new party이고 넓은 당broad party”이지, 보다 냉정하게 표현하면 소부르주아 어중이떠중이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인민이 현재 강요당하고 있는 고통의 근원을, 현대 자본주의를 뿌리에서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낭만적으로, 즉 극히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의의와 한계”의 필자는 말한다.

Syriza가 비난받아야 할 것은 최대강령으로부터 멀어지는 끊임없는 선거강령상의 우경화라기보다는 어떠한 작은 슬로건도 트로이카와 지배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대결 없이는 얻어낼 수 없다는 투쟁적인 자세가 아니라 지배계급에 대한 유화적인 면모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대중의 의식화투쟁을 방기하고 악영향을 끼쳤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분석도, 정확한 비판도 아니다. 시리자는 결코 “대중의 의식화투쟁을 방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대중의 의식화투쟁에” 열심이다. 다만 그 의식화가 소부르주아적 의식화, 낭만적 의식화일 뿐이고, 인민 대중을 해방으로 인도하는 의식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비판’이라는 미명하에 마치 ‘좋은’ 자본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인민 대중의 의식 속에 심어주고 있을 뿐이다.4)

‘급진좌파연합’의 노선ㆍ역할

 

“… 의의와 한계”의 필자도 쓰고 있는 것처럼, 지옥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그리스의 노동자ㆍ인민은, 나아가 자본의 착취에 시달리는 전세계 근로인민은 “어떠한 작은 슬로건도 트로이카와 지배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대결 없이는 얻어낼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작은 슬로건도 트로이카와 지배계급에 대한 전면적인 대결 없이는 얻어낼 수 없다는 투쟁적인 자세” 따위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대중이 그렇게 발전할까 봐, 그렇게 발전하지 않도록 ‘급진좌파연합’은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 공산당과 대립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위 “… 의의와 한계”의 필자는, 한편에서는 그리스 공산당이 종파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리스 민중이 획득한 … 성과”라는 미명 하에 그것을 “엄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그리스 공산당의 여러 문건들이 정확히 폭로ㆍ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공황과 그에 따른 노동자ㆍ인민의 고통의 근본적 원인이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 자체임을 은폐ㆍ왜곡하고 있다. 그들은, 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IMF라는 트로이카를 비판ㆍ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ㆍ인민에 대항한 제국주의 국가연합으로서의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사실상 거듭거듭 맹세하고 있다. 그들은 트로이카가 강요하고 있는 ‘긴축정책’을 비판하며 부채의 일부 탕감(이른바 haircut)을 주장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ㆍ인민의 혁명적 저항ㆍ투쟁을 예방하면서 결국은 그 부채 상환, 노동자ㆍ인민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데도 노동자ㆍ인민의 희생에 의한 그 상환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반동적인 그리스독립당(ANEL)을 연정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국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신자유주의 비판’ㆍ‘급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좌파적 언사를 농하면서 독점자본가들의 이익에,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고,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구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급진좌파연합’이 집권하자마자 부채의 탕감이 아니라 장기채권으로의 그 교체(swap)를 요구하고, 그리스 및 국제적 독점자본의 저항은커녕 그리스 주식시장의 주가가,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폭등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르주아 언론은 물론 언필칭 좌파적이고 비판적이라는 지식인들마저도 ‘급진좌파연합’의 집권 혹은 그 집권 가능성에 대해서 호들갑을 떨어 왔고, 떨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은 시리자의 대표 A. 차프리스(Tsapris)를 가리켜 “남유럽의 차베스”니, “가장 위험한 인물”이니 하면서, 좌파적이고 비판적이라는 지식인들은 “엄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성과” 운운하면서, 그리고 다들 입을 모아 “좌파 정부”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언론의 그러한 호들갑은, 시리자 집권에 대한, 그리고 집권 후 그 행보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독점자본의 이익의 노골적인 옹호자인 신민주당이나 사민당(PASOK)의 재집권이 분명 불가능한 조건에서 그들의 이익의 위장된 옹호자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를 집권시키기 위한 사실상 암묵의 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좌파적이고 비판적이라는 지식인들의 호들갑이 선의의 발로라면,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얘기해주고 싶다.

지옥으로의 길도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5)

오도된 대중

 

그리스의 정권교체, ‘급진좌파연합’의 집권은 분명 일종의 인민반란이지만, 그것은 그 형태에서도 그 내용ㆍ방향에서도 오도된 반란이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 정부는 지옥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 노동자ㆍ인민의 고통을 절대 끝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미 있게 경감시킬 수도 없다. 그들이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노동자ㆍ인민의 혁명적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서인데, 더욱 악화되고 있는 위기, 대공황은 그마저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유럽의 디플레이션은, 즉 대공황은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 한두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대중이 오도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오도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그렇게 묻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얘기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재벌개혁! 재벌해체! ― 바로 좌파적이고 비판적인 노동자들이나 대중뿐 아니라 그러한 지식인들의 대부분조차 열렬히 지지하는 슬로건이다. 그런데 재벌개혁ㆍ재벌해체가 과연 노동자ㆍ인민의 이익을 위한 조처인가?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조처인가?

그것은 분명 독점자본의 합리화 프로젝트이다. 반(反)노동자적ㆍ반(反)인민적 조처이며, 독점자본을 강화하는 조처이다. 그런데도 좌파적ㆍ비판적이라는 사람들의 대부분조차 그것에 환호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스의 인민도 그렇게 오도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성이, 따라서 과학이 없으면,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그리고 소부르주아지의 선전이 과학을 압도하면, 그렇게 오도되는 것이다.

갈림길

 

그리스의 노동자ㆍ인민 역시 그렇게 오도되었다. 그러나 사이비 ‘급진좌파연합’에 대한, 그 오도된 지지는 결코 오래 갈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ㆍ인민의 고통이 너무나도 심각한데다가, 대공황 또한 쉽게 극복될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결코 자신들의 구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제자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자본주의의 “좌파 예비군”, 독점자본의 이익의 옹호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노동자ㆍ인민이 이내 알아챌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리스 정국(政局)은, 그리스의 노동자ㆍ인민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 반혁명 곧 파시즘이냐, 사회혁명이냐?

파시즘으로의 길은 다시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몰락하면서 새로운 파시즘 세력이 선거를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권력을 장악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파쇼연합으로 급진하는 길이다. 사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당, 소부르주아 진보정당은 어느 정당이나 그 몰과학성 때문에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파쇼정당으로 급진할 가능성, 잠재성을, 아니 그 필연성을 그 안에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몰과학적인 ‘진보정당 운동’, ‘진보정치’ 운동은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는 운동이다.)

다시 ‘반혁명 곧 파시즘이냐, 사회혁명이냐’의 문제로 돌아가면, 그 길은 무엇에 의해서 갈릴까?

다름 아니라, KKE, 즉 그리스 공산당의 역량에 의해서이다. 그리스 내에서 노동자계급성을, 따라서 과학성을 가진 정당, 정치세력은 KKE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만일 KKE가 그 과학성을 견지하고 발전시켜 대중적 정치역량을 신속히 증대시킨다면, 1917년 10월에 러시아의 볼쉐비끼가 그랬던 것처럼, KKE는 그리스 노동자ㆍ인민의 분노와 투쟁을 성공적으로 혁명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실패한다면, 노동자ㆍ인민의 분노와 투쟁은 엉뚱한 방향, 불행한 방향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고, 반혁명ㆍ파시즘에 그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 지금 그리스의 상황은,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상황도, 그리고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태리, 아일랜드, 프랑스 등의 상황도 그만큼 엄중하다.

******************************

그러나 이는 물론 남의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위기가 당장 첨예한 형태로 폭발하지 않았을 뿐, 미구(未久)의 우리의 얘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엔 현재 노동자계급성ㆍ과학성을 담보하고 있는 어떤 정당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도 몰과학적이고 몰계급적인 ‘진보정당’ 놀음, “대중적 진보정당” 놀음에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사과연>


1) 박석삼(국제포럼), “그리스 시리자, 좌파정부 수립의 의의와 한계”(2015. 1. 30.), 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category2=212&nid=98599.

2) K. 맑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MEW, Bd. 1, S. 385. 최인호 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2010, p. 9.

3) “낭만주의의 내용은 사물의 가장 피상적인 외관에서 취(取)한 일상적인 편견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411.)

4) “시리자는 자신들의 비판을 소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한정함으로써, 다른 ‘좋은’ 자본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환상을 근로인민 속에 조장하고 있다.” (Eliseos Vagenas, “시리자: 자본주의의 ‘좌파 예비군’(SYRIZA: “the left reserve force” of capitalism)”, inter.kke.gr/en/articles/SYRIZA-the-left-reserve-force-of-capitalism/)

5)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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