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판갈이 중

조돈희 | 현대중공업 해고자, 울산이주민센터장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2013년 10월 17일 임원선거 이후 2015년 1월까지 일련의 역동적 ‘사건’들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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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자대투쟁” 27주년 기념집회 선동자

 

2015년, 벌써 ‘2015년’이란 말인가? 이 숫자를 쓰고 보니 1987년이란 숫자가 동시에 연상된다. 2015 빼기 1987은 28이라… 1987년에도 노동자였던 사람들은 대투쟁을 기억한다. 노동자 의식과 노동조건 등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던 대투쟁을…

2013년 10월 17일 현중노조 임원선거에서 민주파 당선 이후 2015년 1월까지 현중노조 조합원 대중들이 빚어내는 일련의 ‘판갈이 투쟁’들은 28년 전 대투쟁 그것과는 비교 될 수 없지만1) 양상은 닮은꼴이다.

울산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1987년 7,8,9월 대투쟁을 통해 현장권력과 민주노조를 쟁취한 후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1994년 10월까지만 그러했다. 자본의 통제로 노동조합의 힘을 급격히 잃은 현중노조는 2013년까지 무쟁의 18년을 기록했다. 그나마 2002년 7월까지는 민주노조의 명맥만 유지하다가 그해 9월부터는 노동조합이 자본의 손아귀에 완전히 쥐어졌다. 그리하여 2002년 9월부터 2013년 10월 16일까지 현대중공업노조 만11년 역사는 자본의 통제하에 있는 어용노조에 의해 쓰여 졌고, 그 기간 현중 노동자들은 치욕과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현중노조 치욕의 역사를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러한 만큼 2013년 10월 현중노조 임원선거에서 정병모 후보의 당선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현장이 얼음장 같아서 모두가 절망의 공장으로 규정했던 무너진 현장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중노조 임원선거에서 ‘민주파’가 당선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서 놀라고 축하하고 기뻐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스런 기대를 하기도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임원선거에서 민주파가 당선은 되었으나 10년 이상 손 놓고 있었던 이유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세력이라는 점, 자본의 통제하에 있는 대의원들이 여전히 100% 버티고 있다는 점, 현장통제력이 여전히 사 측에 있다고 판단한 것 등 이었다. 반면에 조심스런 기대의 내용은 민주노총 재가입을 희망해 본다든가, “민주파 대의원 의석이 조금이라도 확보될 것”이라든가, “하청노조가 숨 좀 돌리겠다”고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 등이었으며, 모두의 바람은 “임기동안 부정 비리사건으로 쫓겨나지 않고 다음에도 집권을 이어가도록 토대나 잘 닦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쫓겨나지 않고 토대나 잘 닦길 바라는 소박한 바람은 그만큼 민주세력이 집행권을 확보한 만큼 장기적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대중들의 판갈이 투쟁은 2015년 1월 21일 대의원선거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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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2014년 12월 17일 7시간 3차 파업

뒤집기 일지

●2013.10.17. 현중노조 제20대 임원선거 ‘민주파’ 승리! 정병모 후보 팀 52.7%로 당선

어느 누구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현중노조 제20대 임원선거결과, 조합원수 18,057명2) 중 16,864명이 투표하여 민주파 정병모 후보 선대본이 연임을 시도했던 11년 집권 어용세력 ‘노민투’(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소속 19대 위원장 김진필 후보 팀(45.5% 획득)을 제치고 승리를 쟁취했다. 정병모 후보는 1987년 대투쟁 당시 11인 대책위원회3) 일원이었고, 현중노조 첫 민주집행부 쟁의부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1987년 민주노조 건설 이후 2001년 13대 임원선거까지 현중노조 조합원 대중은 어용세력의 집권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7월 13대 집행부 사무국장의 비리사건으로 쫓겨나다 시피 중도 사퇴한 이후 만11년 간 현중자본은 ‘물샐틈없는 방어태세’로 양심적 민주세력의 제도권 진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파의 제도권 진출을 막은 자본의 ‘물샐틈없는 방어태세’는, 관리자들과 조합원들의 생존본능을 약점 삼아 비밀무기명투표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회사가 어렵다고 엄살 피울 때 노조위원장이 임금교섭권을 백지위임해도, 반기 들기를 꾹꾹 눌러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노예 같은 삶뿐이었다.

반면, 대중들의 불만이 폭발직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한 민주 활동가 대부분은 2002년 7월 이후 패배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13년 10월 20대 임원선거시기에도 선거 불참론이 만만치 않았으며, 선거에 참여하면서도 승리 가능성이 있다고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집권프로그램을 준비할 리 만무했다.

어용세력의 선거관리는 당연히 비민주적으로 진행되었고, 정병모선대본은 선관위의 부당한 통제를 벗어나 선거를 치른 결과, 당연히 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승리하는 결과를 얻었다.

선거를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고 다닌 위원장후보는 “이번 선거는 다르다!”는 점을 느꼈으나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선거 후 뒷이야기로 나온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에는 현장관리자들이 투표 개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신껏 찍어라”고 했다 한다. 따라서 2013년 10월 17일 현중노조 임원선거에서 민주파 승리의 주요 요인은 ‘중간 관리자들의 반란’이며, ‘현중노조 조합원들의 반란’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4.06.12  조합원 첫 집회 ‘임투 승리 결의대회’ 5천여 명 참석

현중노조 조합원들의 반란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은 정병모 집행부는 5월 14일 단체협상 상견례를 시작하여 6월 12일 첫 집회를 개최했다. 조합원교육을 임기기간 주요사업으로 설정한 정병모 위원장은 수개월간 조합원교육을 통해 직접 소통하며 새로운 다짐을 해 나아갔다. 또한 집행간부들의 ‘한 번 해 보자!’는 결의와 활동이 성과로 모아진 것인지 1천 5백 명을 예상하고 준비한 간식 등 집회물품이 단시간에 동이 나는 일이 벌어졌다. 5천여 명 이상이나 모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30대의 젊은 조합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간 나는 어떤 지역토론회에 참여하고 있었고 스마트 폰 카톡으로 현중 집회현장 모습을 사진으로 받아보고 뛰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었다. 1996-97년 노개투 총파업 집회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고, 1994년 임·단투 파업 후로는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30대 조합원들이 노조다운 노조를 경험하는 것은 처음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한편에 남는 아쉬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1987년과 달리 하청노동자들은 그곳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몇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과 깃발이 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했다.

●2014.06.25 정병모 위원장 식당음식점에서 ‘훌라도박’ 행위로 입건. 공개사과문 발표.

부패한 노조간부들의 놀음행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혁신 대상이 되고 있지만 끊임없이 잔존하면서 자본으로부터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단체협상을 진행하던 시기, 11년 만에 조합원들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는 위원장이 식당에서 놀음하다 걸렸다.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입건되었다는 소식이 지방 언론에 의해 폭로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어렵게 확보한 기회를 다시 적들의 손아귀로 넘겨주는구나”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용세력에 의해 고통 받았던 조합원들은 정병모 위원장을 엄호했다.

조합원들은 “가볍게 밥값내기 한 게 무슨 놀음이냐”면서 과거 어용세력의 행각들을 폭로하는 등 역공세를 펴면서 어용세력의 준동을 사전에 무력화시켰다. 정병모 위원장은 이러한 조합원들에게 공개 사과하면서 다시 한 번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갖게 된다.

●2014.09.17 쟁의발생신고 대의원대회 만장일치 결의

5월 14일에 시작한 단체협상은 9월 17일 급기야 20년 만에 쟁의결의를 시도하게 되었다.

현중 자본의 노조무력화 전략은 1995년부터 회사 측이 대의원의석 과반수를 확보함으로서 무쟁의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그 후 아직도 100%가 회사 측 관리자 ‘공천’으로 당선된 대의원인데 쟁의결의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과 전혀 다른 만장일치 결의라는 결과를 접하면서 이 모두가 조합원대중들의 역동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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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3차 공장

현중자본의 무기력한 저항, 파괴되는 20년 무쟁의 기록

2014.09.23 쟁의행위 찬반투표 조합원 총회 시작 / 회사, 조합원 투표 감시 등 총회방해

2014.09.24 쟁의행위 찬반투표 무기한 연장 / 회사, 조합활동 부당개입 / 교섭중단 기자회견

2014.10.22 쟁의행위 찬반투표 종료.

투표결과: 조합원수 17,906명, 투표자수 10,313명(57.6%), 찬성 10,011명(투표자대비 97.1%, 재적조합원대비 55.91%)

조합원 대중의 역동적 힘은 어용대의원들조차 강제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집행부의 투쟁방향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의원대회에서 쟁의발생결의가 만장일치로 결정된 이후 노동조합은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하기 위해 마침내 조합원총회에 돌입했다. 그런데 회사 측이 또 방해공작을 시작했다. 2013년 10월 노조임원선거에서 회사의 말4)을 듣지 않은 관리자들을 재검증하는 의미와 향후 있을 구조조정5)에서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리자들을 투표감시에 배치한 듯 했다.

투표감시 배치가 의외의 효과를 보는 듯 했다. 수개월간 전자투표 관리 훈련을 한 집행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이 자유로운 투표를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집행부는 현장을 돌며 투표감시 관리자들을 제지하는 등 사 측의 총회방해에 항의하고 투표소를 확대 지정하는 등 총회를 무기한 연장했다. 9월 23일에 시작된 투표는 10월 22일에 종료되었다. 결과는 압도적 가결이었다. 총회를 앞두고 지난 12년을 ‘노사상생’ 기조로 활동한 어용현장조직 노민투도 ‘압도적 가결’ 입장을 제출할 정도로 현장의 분위기는 이미 멈출 수 없는 탄력을 받은 기관차와 같았다.

20년 만에 성사된 쟁의행위 찬반투표 총회였고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애당초 현중노조가 파업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총회를 압도적 가결로 성사시킨 현중 조합원들은 이미 탄력을 받은 기관차가 되어 정병모 집행부를 밀고 가는 상황이었고, 집행부는 파업일정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사 측이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파업을 계획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2014.10.31 중앙쟁의대책위원회 출범 집회 5천여 명 참석 / 11.07 첫 2시간 부분파업 결정

/ 11.07 파업유보 (사 측, 노조쟁의행위 적법성 문제제기 공문을 노조에 전달)

현중노조는 20년 만에 다시 민주노조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첫 부분파업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중자본은 노조의 발목을 잡기 위해, 쟁의행위 찬반투표 총회가 문제가 있었으므로, 쟁의행위의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는 공문을 노조로 보냈다. 이에 정병모 위원장은 파업유보를 결정하고 11월 7일 아침선전물을 통해 알리고 퇴근 후 조합원 보고대회를 통해 소통과정을 거쳤다. 파업유보 입장에 대한 요지는 “총회-쟁의행위에 대한 사 측의 적법성시비는 분명히 시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제는 조합원들의 혼란과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는 판단을 했다. 정확한 법적자문을 통해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뉘었지만, 대부분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위원장을 신뢰하고 지지했다. 지난 6월 위원장이 식당에서 ‘훌라도박’으로 입건된 일이 있어도 용서하고 믿고 따르고, 사 측의 협박공문 하나에 파업을 유보하는 위원장에 대해서도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현중 조합원들을 보는 지역의 활동가들이 입을 모으는 것은 “현재 현중 조합원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 아닐까”였다.

어쨌든 현중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은 분명 한 몸이 되어 지난 오욕의 역사를 하나하나 지워 나아가고 있었다.

●2014.11.12 파업유보 철회 (변호사 자문 결과 적법성 문제없음) -> 11.27 첫 부분파업 4시간 6천여 명 참여 -> 12.04 2차 부분파업 4시간 6천여 명 참여 -> 12.17 3차 부분파업 7시간 7천여 명 참여 (체감온도 영하10도 강추위) -> 12.24 군산공장 조합원 4시간 첫 부분파업 2백여 명 참여 -> 12.30 4차 부분파업 4시간 5천여 명 참여 -> 12.31 임금협상 잠정합의

집행부는 11월 12일 변호사들로부터 신중한 자문을 통해 ‘지난 총회는 적법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고 파업유보결정을 철회했다. 이후 11월 27일 4시간 부분파업을 성공적으로 진행 한 후, 12월 30일 4시간 부분파업을 마지막으로, 총 네 차례 부분파업을 진행하며 잠정합의를 도출했다. 현중노조는 그렇게 조합원들의 역동적 힘이 뒷받침되었음에도 ‘아슬아슬하게’6) 2014년을 마무리 했다.

●2015.01.07.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조합원 총회 결과 부결. 반대 10,390명으로 66.5% (조합원수16,762명 / 투표자수15,632명 / 찬성5,183명 33.16%)

2014년 12월 말일에 임·단협 교섭 잠정합의를 보고받고 한해를 마무리한 현중 조합원들은 해를 넘긴 2015년 1월 7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하여 이를 부결시켰다. 총회를 앞두고 사 측은 잠정합의안을 포장하여 적극적으로 선전활동을 펼쳤다. 반면에 노조 측은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펼치지 않은 듯했다. “잠정합의에 대한 판단은 조합원들이 하는 것이고, 부결되면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것이 위원장의 입장이었고 현장에서는 부결운동이 있었다.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뒤로도 위원장과 집행부에 대한 불신은 없었다. 오히려 2014년 10월에 치러졌어야 할 대의원선거가 미루어졌던 만큼 “대의원선거를 치러 ‘물갈이’를 하고 난 뒤에 투쟁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집행부의 방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었다.

●2014.01.21 제27대 대의원선거. 정족수175명 중 130여 명이 현 집행부 지지 세력으로, 의결 정족수 과반수 확보.

현중 조합원들은 대의원선거에서 사 측 현장관리자의 회유공작을 극복하고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투쟁할 민주세력을 압도적 다수로 선출시켰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은 1월 28일 정기대의원대회 운영위원 선출에서 친정체제를 구축했고, 2월 4일 예정되어 있는 분과장 선출도 친정체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현중 제2 민주노조의 안정적 집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는 셈이다. 현중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렇게 2014년을 경과하면서 판을 갈았다. 지역의 보수 일간지 기사를 통해 현중노조를 들여다보자.

“…정병모 집행부는 회사를 상대로 강도 높은 임·단협 교섭을 펼치며 20년 만에 파업에 나서는 등 무파업 기조를 깨뜨렸다. 이번 대의원 선거에서도 조합원들 기대치가 이어졌고, 결국 강성 노선 대의원들의 대거 당선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한 지역 노동계 전문가는 “당초 온건과 강선 노선 현장조직들이 비슷한 수준에서 대의원석을 확보하거나 혹은 온건이 다소 우세일 것으로 예상됐다”며 “하지만 예상결과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최근 회사가 발표한 희망퇴직이나 성과 연봉제 등도 조합원들의 반감을 샀기에, 강성 노선 대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올라갔다”고 분석했다.” ≪울산매일신문≫, 2015.1.22.

세계경제 공황과 함께 현대중공업에 찾아온 두 가지

하나는, 사람 잡는 구조조정이다

세계경제 공황의 여파는 현대중공업에도 그 영향이 직접적으로 미치고 있는 듯 하다.

2012년 100여명의 관리직 사원들을 희망퇴직·권고사직 시킨 현중자본은 2014년 1-3분기 영업실적을 3조 2200억 적자, 수주액은 153억 달러로 목표액의 60%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2014년 10월 임원직 262명 중 31%인 81명을 감원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작업을 거쳤다. 사람을 줄이는 구조조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선 적용되었을 텐데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변화추이를 조사하지 못한 이유로 언급을 생략한다. 이점에 대해 독자들에게 죄송함을 전한다. 이 글이 현대중공업 정규직노조의 변화되는 모습을 중심으로 쓰여진 글이라는 핑계로…

또 하나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민주노조이다

조합원들은 만11년 간 상생을 표방하고 협조적 노사관계를 기조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노조운영을 맡겨 보았으나 도움이 안 됨을 깨달았다. 노동자 자신들에게 보탬을 주기보다는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더 이상 자신의 대표로 두었다가는 회사가 어렵다고 할 때 저들이 어찌할 것임을 잘 알았던 것 아닐까. 그리하여 진정으로 노동자 자신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들로 바꾸어 민주노조를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민주노조는 세계경제 공황과 함께 현대중공업에 찾아 왔다.

글을 마무리 하며

1987년 7월 28일, 현재 현중노조 위원장인 정병모 동지가 참여한 ‘민주노조개편 대책위원회’주도의 노동자대투쟁 서막이 열리는 파업 첫날, 공구를 내팽개치고 ‘여름방학’을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해 여름의 파업을 ‘방학’이라 불렀다. 그렇게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노동자운동에 참여한 지 27년. 이렇게 나와 같은 경험으로 투쟁과 활동을 쉼 없이 전개하는 동지들이 현장조직으로 또는 개인으로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현중노조 판갈이는 그들에 의해서 준비 기획하고 실행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공황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노동자들 스스로가 판을 갈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그들이 스스로 노조운영의 중심주체로 나서고 있다. 과연 새로운 주체들은 복구된 조직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2015년에 노동자가 승리하는 투쟁을 보고 싶다.

노동자는 하나다!

정병모 집행부는 2013년 10월 임원선거 승리를 시작으로, 2014년을 경과하면서 2015년 초까지 전반기를 집행하면서, 노조조직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차례의 대규모 집회와 네 차례 부분파업을 전개하는 것을 보면서도 한편의 허전함을 메우지 못했다.

이제 압도적 다수가 되어 있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노조의 파업공간을 메워버린다. 정병모 집행부도 충분히 예상했던 지점이다. 이제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직접 조직하여 하나의 노조로 만들지 않는 한 어렵게 회복된 조직력은 종이호랑이로 남게 될 것이다. 사내하청노조가 있으나 2003년 어용노조의 시작과 함께 수십 명으로 출발한 하청노조는 아직도 깃발만 나부끼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과장급 이상 1500명 감원계획 발표로 일반직노조가 결성되었으나 이 또한 구조조정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 될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현 시기 현중노조 정병모 집행부는 좀 더 거시적이고 계급적 관점에서 운동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것과 과감한 결단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그 운동 방향을 제시하며 현대중공업노동조합 판갈이 투쟁의 승리를 기원한다.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조직으로!

*모든 노동자를 입사와 동시 조합원으로!

이는 노동자가 승리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의 요구를 쟁취할 수 없다. [2015년 2월 3일 (화)] <노사과연>


1)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원·하청 노동자는 하나 되어 자본가권력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게 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았고, 현중노조가 그들이 나설 수 있도록 적극 조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이는 전혀 다른 점이 있다.

2) 현중노조 조합원수는 2013년과 2014년 정년퇴직자가 늘어나면서 2015년 1월 7일 조합원 총회시기 까지 1,295명 줄어 16,762명으로 감소한다.

3) 정식명칭 ‘현중노조개편대책위원회’로 1987년 7월 21일 권오성 등 50명이 기습으로 설립한 유령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그동안 노조설립을 준비해오던 각각의 사람들이 7월 25일에 구성한 단체. 사실상 당시 노동자대투쟁 지도부 역할을 했다.

4) 회사의 방침은 분명 정병모 후보 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들은 그 방침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의 방침에 역행하여 말없는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5) 이는 이미 수년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비대해지는 임원조직과 중간간부층을 잘라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이는 항아리 구조로 형성되고 있는 회사조직구조에 대한 생산직노동자들과 노조집행부의 비판적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현중자본은 결국 2014년 들어 회사조직을 대폭 개편하는 동시 이사급 이상 임원 262명 중 31%인 81명을 감축했다. 더 나아가 2015년 1월 들어 급기야 과장급 이상 1,500명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희망퇴직 접수에 착수했다. 관리직들은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현중노조 집행부의 지원 아래 200여명 규모로 1월 28일 ‘금속노조현대중공업일반직지회’를 결성했다.

6) 나는 아슬아슬했다. 준비되지 않은 집행간부들, 존재하는 어용대의원들, 사내하청노조와의 불협화음, 집행부 도덕성에 대한 치명타, 사 측의 협박공문에 파업철회 과정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덩치 큰 곰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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