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누가 이 남자에게 돌을 던지랴!

―‘서초 세 모녀’ 사건을 돌아보며

배은주 | 편집위원

지난 해 세밑에 남편에게서 편지 한 통과 선물을 받았다. ‘은주에게’라고 시작한 그 편지는 오랜 벗인 남편에게서 받은 수많은 편지 중에 가장 슬픈 편지였다. 남편은 그 편지에 작년 뜻하지 않게 당한 자신의 해고통보에 대해 짧게 소회를 밝혔다.

“… 올 한 해 나에게 뜻하지 않은 변화들이 많이 있었네.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또 분하기도 한 부분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었는데 한 숨 쉬어가라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고…(중략)… 새로운 곳에서 일한 지도 넉 달째이고 아직까지 배우는 상황이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업무가 주어져서 일을 시작할 거 같아요. 사실 여러 측면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아 다른 곳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나를 반기는 곳이 별로 없네…”

남편은 자신의 고충이나 복잡했던 사정들을 나에게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내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으리라.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어찌 그의 움직임을 모를 수 있었을까. 재취업하기 위해 이리저리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의 기대와는 달랐을 것이라는 걸 내가 어찌 모를 수 있었을까. 그가 말하지 않았어도 그가 느낀 배신감과 허탈함, 그리고 상실감에 이어 무기력함까지 나는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하 웃으며 딴청을 피우는 듯하며 서로서로를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생긴 예상치 못한 변화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연초에 발생한 ‘서초 세 모녀’ 사건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서초 세 모녀’ 사건은 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인 강 씨가 아내와 어린 딸 둘을 자기 손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언론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인 강 씨가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세 모녀를 살해했다는 여론을 형성했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감은 하나의 현상일 뿐 근본적 원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회에서 퇴출당한 한 인간에게 더 이상 미래를 희망할 수 없게 만든 사회구조가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세 모녀’의 죽음이 더 안타까웠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녀들과 사회화되지 못한 가사노동을 하는 아내가 결국 가장의 소유물로 이유 없이 죽어가게 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부장적 가치관에 의한 판단도, 개별 가족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우는 이 냉혹한 현실도 결국 자본주의 체제라는 근본적 원인에 기반을 둔 것 아니던가.

나는 강 씨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으로 아는 것이 없다. 그는 이른바 국내 명문사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을 역임했다고 한다. 그의 이웃 주민들은 그들 가족을 두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고 알뜰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말한다. 짐작컨대 강 씨는 그동안 큰 실패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자기 소유로 가지고 있는 아파트의 높은 자산가치가 그에게 비교적 안정된 삶을 제공했을 것이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인이었던 그는 모범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세상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풍족하게 소비를 할 수 있었을 때에는.

강 씨가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려진 대로 그는 재취업을 위해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더 이상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어제와 다름없었지만 어느 순간 그는 무능력자가 되었고 그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반면 자신의 벌이에 의존하는 자녀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는 있으나마나한 무용지물의 존재로 전락한 자신에 절망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가부장적 가치관이 더해져 사회가 책임져 주지 않을지 모를 가족을 결국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이별하게 하였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이나 개별 가족의 문제로 국한시키고 책임지우는 이런 사회는 패악하다. 죽어라고 일하고 또 일해도 인간노릇 하기는 점점 힘들어지는데 여전히 더 계속해서 피를 뽑아내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누가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 위로는 저 재벌급 상위그룹들에서 아래로는 최소한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까지가 마지노선에 해당될 것이다. 이 사회는 그런 사람들만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층민이 대접받지 못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이고 이제 중산층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이 사건은 말해 주고 있다. 누군가는 ‘서초 세 모녀’ 사건을 두고 강남에 드리워진 환상이 깨지기 시작하는 신호라고 진단한 바 있다. 사분오열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노동자계급도 이제 자신을 똑바로 목도할 때가 온 것이다.

서초동의 세 모녀는 한 가장에 의해, 가부장적 가치관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지만, 사회가 그 가장을 품어주지 못하였으니 결국 지배적 사회구조가 강 씨를 파탄에 빠뜨리고 강 씨로 하여금 그의 아내와 두 딸을 죽이게 한 것은 아닐까. 과연 어느 누가 강 씨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때로 앞길은 암담하고 답이 없다. 그러나 죽어가는 현실적인 것 대신 생존력 있는 새로운 현실이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던가.1) 타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이 탐욕의 체제도 언젠가는 그 마지막 조종 소리를 울리며 스러져 갈 것이다. 그때에는 경제단위로서만 인식되어 온 개별가족의 성질도 함께 제거될 것이다.2) 그러나 저 조종은 스스로는 물론 다른 이들에 의해 울려질 수 없으니, 나의 남편들이여, 나의 딸들이여, 나의 동지들이여, 어쩌면 저 마지막 조종은 벌써부터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노사과연>


1) F. 엥겔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그리고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 6권, 박종철출판사, 2009, p. 245.

2) 참고: F. 엥겔스, “가족, 사적 소유 및 국가의 기원”,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제 6권, 박종철출판사, 2009, 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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