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용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앞으로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가?

—용산참사 6주기에 즈음하여 유가족 이충연·정영신씨 부부 인터뷰

 

 정리: 배은주(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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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4구역.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주검으로 내려와야 했다. 가난하고 힘없는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던 그들은 테러리스트로 둔갑되었고, 망루에 올라간 지 만 하루 만에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세월호와 강정, 밀양, 청도, 삼척 그리고 그외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노동현장의 참상은 용산과 닮아 있다. 국가권력이 자본과 결탁하고, 자본은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민중들을 압살시키고 있다는 지점에서 그렇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못 살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국가는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오히려 국가폭력은 날로 진화 중이다.

용산4구역의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씨와 그의 부인인, 현재 용산참사진상규명회에서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영신씨를 만나 용산참사를 비롯해 국가폭력의 실체와 그에 대응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싸워 나가야할지 대담을 나누었다.

기고문은 대담형식 대신 이충연·정영신씨와의 대담을 정리,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    *    *

 

 

투쟁 중에 다져진 유가족들, 생계조차 잇기 어려운 출소자들

 

장례 치르기 전 약 1년 동안 다섯 유가족은 장례식장에 모여 살면서 지난한 싸움을 했다. 그 중 한 가족의 자녀들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경찰들한테 말도 안 되는 고초를 당하는 것을 보고 참사초기부터 굉장히 힘들어 했는데, 결국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연락이 끊어졌다. 우리(이충연씨의: 편집자)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들이 감옥에 있다 보니까 유가협 등에서 열성적으로 활동을 하셨고 지금도 여전하시다. 유가족 중에는 아직도 철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싸움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들들하고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분들도 있다. 사실 유가족들은 계속해서 싸움을 하면서 많이 다져졌다.

문제는 출소자들이다. 이들은 사건의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되어 그날로 바로 구속되었다. 이들은 감옥에 있을 때에, 내가 현장에 있던 생존자니까, 내가 나가서 이야기하면 들어주겠지, 그리고 뭔가 바뀌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까, 용산은 예전의 사건으로 묻히고, 자신들은 범법자라는 낙인이 찍혀 생계조차 이어가기도 어려워지게 되었다.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출소자들의 생활이 굉장히 어렵다. 그나마 가족이 있는 분들은 조금 나은데, 대부분의 경우, 국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내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갈 데도 없다는,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우리들은 12월 말에서 1월이 되면, 몸이 기억해서, 잠도 못 자고 예민해 지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갑자기 올라오곤 한다.

 

 

힘없는 철거민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우리는 용산참사가 발생하기 전 1년 동안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살았다. 삼성이 주도했던 사업문건을 보면, 하루 이행이 늦어질수록 지체보상금 500만원을 용역이 삼성에게 주게 되어 있다. 그 돈을 주지 않으려고 용역은 우리를 1년 동안 탄압해 왔다. 이런 상황을 지자체 등 아무 곳에서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를 들어봐 달라고 망루에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진압되었다. 우리를 보호해 줄 줄 알았던 국가는 우리를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고, 모든 언론들도 덩달아 도심에서 화염병을 던진 테러리스트라고 떠들어 댔다. 사람들이 왜 망루에 올라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검거하고 섬멸하려고만 했다. 우리가 인질범이었다 하더라도 몇 차례 대화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예인데, 단 한 번도 그런 시도가 없었다. 우리가 거기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어떤 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정권에 대한 욕심, 삼성의 탐욕. 이런 것들이 작용해서 참사가 벌어졌다고 본다.

 

공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정부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유가족들을 흩어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예 안 되니까 유가족들의 친척들에게까지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용산에 연대해 온 사람들과 유가족들을 찢어놓으려고 했다. 유가족들 한 명 한 명에 경찰들이 달라붙어 사찰을 일삼았고, 유가족들에게, 네 남편이 보상금 때문에 죽은 거지 내가 죽였냐는 막말을 해댔다. 용산의 이름을 걸고 하는 모든 것은 차단됐고 집회신고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낼 수조차 없었다. 용산과 함께 하려는 시민들도 왕래하지 못하게 차단시키면서 우리를 고립시켰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상에 언론이 이럴 줄 몰랐다, 내가 보던 세상이 다 거짓인 줄 몰랐다고 한다. 우리는 그때 그것을 겪었다. 당시 정부가 언론들을 다 때려잡아 놔서, 그 당시 믿었던 언론들도 우리 얘기를 쓰지 않았다. 대다수 언론들은 연대하러 온 사람들을 두고 돈 받고 왔고, 거기서 죽은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거짓 보도를 퍼뜨렸고, 당시 연행된 사람들이 몇 억짜리 집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생존권 투쟁이냐, 2008년 촛불로 확산될 수 있으니 무조건 덮으라는 식의 기사들이었다. 청와대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간 등으로 용산을 덮으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용산4구역의 근원적 문제를 성찰하지 않으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용산4구역은 다른 구역의 모델하우스가 한 귀퉁이에 지어져 있고 일부는 주차장으로 일부는 공터로 남아 있는 상태다. 당시 그곳은 코레일 부지였다. 전철차량을 정비하던 기지로 수만 평에 이른다. 건설업 사장을 했던 이명박이 온 국토를 헤집어 놓으면서 건설에 대한 허황된 꿈을 심어주었고, 뉴타운공약을 앞세운 뉴타운돌이들이 각 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건설 붐을 타고 차기대권후보였던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재선되면서 강북에 강남 이상의 초현대식 수준의 도시를 만들어주겠다는 둥,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 경인 아라뱃길을 만들겠다는 등 현실성 없는 사업들을 진행했다.

 

이러한 진행모습을 보면 용산이 그렇게밖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현직 최고 권력자의 토건자본과의 결탁, 그리고 차기대권을 노리는 후보, 그리고 그들에게 충성하는 김석기 등이 무슨 일을 못했겠는가. 거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용산참사는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왜곡되었다. 세월호도 그렇다.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이런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현실이, 작은 기업은 건드려도 삼성은 건드리지를 못하지 않는가. 우리는, 외국 나가서 삼성로고만 봐도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용산의 모습을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전체적 모습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용산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용산 때 제대로 성찰했다면 세월호가 없었을 것이다. 인식이 변화되면서 용산도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 활동도 그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용산4구역 사업을 처음 주도했던 사업체는 삼성물산인데, 사업이 주춤하니까 삼성은 발을 뺏다. 다음에 롯데가 들어갔다. 지금은 롯데도 발을 뺏는데, 여태껏 수조 원 정도 들어갔고, 코레일과 롯데가 서로 상대편에게 더 내라고 소송에 들어 간 상태고 현재 사업은 무산되었다.

용산, 서부이촌동과 그 주변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 받아 투기를 한 사람들이, 뉴타운 거품이 꺼지고 나니까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해서 집까지 날리고 목메고 자살한 경우도 있다. 그날 죽임을 당했던 세입자뿐만 아니라 거기에 집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거기에 집을 샀던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하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차기대권후보였던 오세훈, 권력총수였던 이명박, 뉴타운돌이 모든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들이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선동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단죄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분명한 반성이 있기 위해서라도 용산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모두에게 알려져야 한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국가폭력에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투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구속자가 감옥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구속자 석방운동과 김석기 책임자 처벌을 묻는 투쟁을 했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국가폭력과 잘못된 재개발정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재개발 관련한 법안 마련을 위한 싸움도 했다. 재개발관련 법안들은 굉장히 많지만 어떤 법안도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법안은 없다. 그래서 세입자를 보호하는 강제퇴거금지법을 2년에 걸쳐 만들었는데, 18대에선 단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채 폐기되었고, 19대에 정창래 의원이 발의해 계류 중에 있다.

 

박근혜정권 들어서기 전에 양 후보에게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의향이 있냐고 질의서를 보냈다. 양쪽 다 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권력을 잡자마자 발로 찼고, 되려 살인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를 공항 공기업 사장으로 앉혔다. 사실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용산 유가족들이 원하는 만큼 진상규명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싸움을 쉽게 끝낼 것은 아니다. 용산의 진상규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개발제도자체의 변화다. 다시는 용산과 같은 그런 아픔이 없기를, 그래야 돌아가신 분들도 편히 눈을 감으실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재심을 해서 명예회복을 한다하더라도 용산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진다면 그분들은 편히 눈 감으실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힘을 실어준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 해서 그 정권이 재개발제도개선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국가폭력에 희생되신 분 그리고 현재 자본폭력에 시달리는 전국의 사람들과 함께 연대해서 용산싸움을 넓혀가야 한다. 많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살아야 하는데 몇 년씩 구속되어 있었고, 여유가 없는 철거민들이다 보니까 생계문제가 눈앞에 있어 많이 다니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하나 다져서 연대의 끈을 좀 더 만들어 가려 한다.

 

 

용산을 기억하는 공간, ‘레아’

 

유가족들의 유품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어머니들께 드리기는 너무 잔인해서, 그리고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물품이 필요한 거라 생각하고 보관하고 있다. 그때 사진들이나 아버님들의 유품들을 보면, 단순한 화재사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건, 분명히 용산은 잊힐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 마음에 용산이 기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용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있는 것도 맞다. 여기 있었던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을 기억하는 사람들 누구나 언제든지 왔으면 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용산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었던 용산 ‘레아’는 가족의 꿈이었다. 2009년 그날 이후로부터는 용산에 있었던 사람들의 또 다른 꿈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 공간이 미디어공간이며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소통의 장이 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용산을 다시 알았고, 철거문제를 다시 알았고, 정부가 용산사람들과 철거민들을 그동안 어떻게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거기 나올 때 미디어 활동가들이, 이런 공간이 계속 유지된다면 제2, 제3의 용산 같은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최근 우여곡절 끝에 다시 ‘레아’를 열게 되었다. 용산에 대한 상징적인 공간을 갖는 게 꿈이었다. 지금 당장은 생계 문제로, 물질적인 여력이 없어 어렵지만, 궁극적으로는 용산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용산을 기억하는 사람들, 용산이 기억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지금도 수많은 용산이 존재하고 있다. 수많은 철거지역과 세입자들이 대책 없이 국가폭력에 의해, 잘못된 제도로 쫓겨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와서 위로 받고 또 대안을 만들어 내고, 그런 분들과 함께 하는 문화 활동가들이 공연을 하고 또 정책 토론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용산은 기념될 일이 아니라 파헤쳐져야 될 일

 

박원순시장이 역사박물관 한 귀퉁이에다가 용산을 기념할 수 있게 하겠다는데, 용산은 기념될 일이 아니라 용산은 파헤쳐져야 될 일이다. 우리는 전시가 목적이 아니다. 용산에 이런 아픔이 있었다고 박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부딪히는 사람들이 와서 행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시장이 되면서 무엇인가 바꾸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변화한 것도 없다. 정부가 국가폭력의 최고책임자라면 서울시는 도시재개발문제의 최고 책임자다. 지금 최고 책임자로서 털 것을 털고 본인들이 잘못한 것을 시인하는 것이 우선이지 무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를 방패로 쓰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아직 기념할 단계는 아니다. 용산4구역이 별 문제가 없었다면, 그들 말대로 우리가 떼쟁이였다면, 지금 그 자리엔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서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 것도 없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서울시는 그것부터 먼저 밝혀야 한다. 서울시가 그걸 밝히지 못하고 또다시 용산을 갖고 자기 정치싸움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박원순하고도 싸울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진상규명조사회를 만든다고 하는데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국가폭력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서울시가 어떤 조사위원들을 고용할지는 모르겠다. 최대한 우리가 들어가서라도 본인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감시하는 역할이라도 하려고 한다. 용산에 잘못된 도심재개발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 보려고 한다. 다시는 용산 같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초점을 맞춰 싸울 것이다. 박제화된 기념관이 아니라 용산이 왜 필요하고, 알려져야 하고, 성찰되어야 하고, 바뀌어야 하는지를 호소하는 그런 공간을 용산은 바라고 있다.

 

 

구조적 문제에 저항하는 싸움들, 사람들

 

일각에서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불쌍하게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동정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사실 누군가가 싸워야 할 일을 싸우지 않아서 반복되는 일이지 않은가. 여기에 맞서 싸운다면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지 동정 받을 사람들이 아니다. 노동자들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다시는 그런 아픔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누구나 다 안정된 직장에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정리해고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기 때문에 사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고 쉽게 정리해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규모 장사하는 사람들이 삼사백만 명이 되고 가족까지 합하면 상당하다. 창업 후 3년 안에 열의 아홉은 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듣고 있다. 그런데도 소규모 창업에 나서고, 결국 적정수를 넘기고, 서로 힘든 상황이 되었다. 소규모 창업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어서인데 자영업자들도 이런 문제에 근본적인 인식을 못하고 있다. 국가는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망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리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망하면 ‘네 탓’이라고 한다. 소상공인들도 내가 장사해서 망하면 내 탓이라고만 생각한다. 사실 구조적인 문제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돈을 벌어 상공인들에게 돈을 쓰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대형마트의 문제는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데 비정규직싸움이나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소상공인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까지는 인식을 못하는데 이것도 용산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용산은 진행형이다. 우리들도 깨닫지 못한다. 인식자체가 변해야 사회도 변한다. 인식을 바꾸는 것도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본다.

 

 

모든 힘들을 집결하여 세상을 뒤집어놓자

 

용산은 쌍용차, 강정, 밀양 등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만났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노동자와 장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들 만났더니 다 똑같았다. 함께 만나 뭉쳐서 ‘함께 살자 농성촌’을 차렸는데 그런 것이 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노동현장, 철거현장, 그리고 강정, 밀양, 삼척, 청도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자본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이제는 각개전투가 아니라 그 힘들이 시청이나 국회를 장악해서라도, 한 곳에 거점을 잡아서, 여태 우리가 뽑았던 정치인들이 우리를 대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본다. 더 이상은 죽으라고 해서 죽을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올해는 더 힘들 것이라며 사람들이 위축되어 있다. 이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 3년차, 손만 꼽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모든 힘들이 방향을 찾는 대화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힘들이 저들이 이렇게 계속 밟으면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 같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현장파인 사람이 위원장에 당선된 것으로 보아도 투쟁에 대한 열망이 충분히 반영된 것 같다. 시청이나 청와대 앞에 거점을 만들어 전국의 수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들을 하고 앞으로의 투쟁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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