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분노하라 분노하라 더욱 분노하라

방의표 | 회원

부끄러운 고백

15년 전에 꽤 큰 주류1)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한 적이 있었다. 본부사무처에서 근무를 했는데 회의 때 그 시민단체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내게 하셨다.

“의표씨, 운동은 결국 상상력인 거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해. 앞으로 운동은 즐겁게, 재밌게 해야 돼. 옛날처럼 그렇게 싸우고, 선동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어.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운동을 해야 해. 앞으로는 문화운동이야. 문화운동이 세상을 바꿀 거야. 아름답게 바꿀 거야.”

하지만 대표님이 말씀하신 문화운동, 추진했던 문화운동은 현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올곧게 표출하는 그런 문화운동이 아니라, 그저 평소 억압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감동을 주는데 그치는 그런 수준’이었다. 어떤 제대로 된 목적(우리들이 봤을 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율 없이 그저 시청 앞 광장에서 ‘자유롭게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는 그런 수준’이었다. 이 시민단체들의 문화운동, 공연 등은 지배계급 입장에서 봤을 때 매우 고마웠을 것이다. 이날 하루 기분 풀면서 분노를 누그러뜨려 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활동가로 있던 주류 시민단체, 같이 연대하던 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의 스폰서는 대기업이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그 대기업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그 말이 옳다고 믿었다. 그 대표님은 그 당시(2000년대 초)보다 더 암울했던 시절인 70년대, 80년대 운동권 출신이었으니까. 그분의 말씀은 그 시대를 올곧게 살아온 분의 체험이요, 성찰이라 믿었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운동은 ‘더 친절해야 하고 더 대중적’이어야 하며 어떻게든 집회에 온 사람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신나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운동의 메시지를 그 유명 연예인을 이용해서 전달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려 한 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집회 현장에서

가수 크레용팝이라고 아시는가? 요즘은 약간 인기가 떨어진 것 같은데 1년 반 전쯤인가 헬멧을 쓰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춤추며 노래하던 걸그룹 말이다. 그들의 5기통 댄스가 엄청난 인기였다. 갑자기 왜 크레용팝 얘기를 하냐면 지난 해 9월 3일, 이들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총파업집회2)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까지 파업집회현장에서 공연을 한 걸그룹은 크레용팝이 처음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걸고 일으킨 파업현장에서 걸그룹이 왜 공연을 했을까? 이 궁금증을 나기완 금융노조 교육문화홍보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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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노동자 민중들이 이런 방식을 선호할까?

“노동조합 투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을 현장으로 유도하고 끝까지 남아있게끔 고안한 방안으로,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콘텐츠를 집회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현장으로 유도하기 위해 선호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정답이다. 그런데 왜 이리 찜찜한 걸까. 정답대로 실천한 것 같은데 왜 이리 낯이 뜨거운 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단순히 일베논란이 있는 걸그룹을 섭외한 것이 문제였을까?

저들은 배신자다

운동방식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건강한 고민이요, 운동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운동의 힘은 노동자, 민중과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 노동자, 민중과의 결합이라는 명목하에 2000년대 초와 2014년에 벌어졌던 저 일들을 보라. 일시적으로 여론몰이에는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를 제거하며 전체 운동에 큰 해악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바로 분노다.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누르고 무마시키는데 일조했으니 저들은(당시 필자를 포함한!!) 결국 노동자, 민중을 적대하고 배신한 것이다. 그러나 참여, 공감, 호응이라는 이유로 십여 년간3) 이런 방식의 운동을 기획하고(저들말로 상상하고!!) 실천해 오다보니 불의를 보며 끓어오르는 분노도 잠재워 버렸다. 무슨 말이냐고?

분노를 억눌렀던 현장

2014년 4월 15일과 16일 우리는 국가 권력에 의해서 자행된 학살 현장을 목격했다. 세월호 학살은 전인민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 분노의 표출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왔다. 동시에 세월호 유족들을 지원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한다며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발족했다. 그러나 국민대책회의가 분노하는 노동자, 민중들을 모아놓고 집회에서 했던 일은 청와대와 점점 멀어지는 행진로 알려주기, 노란 종이배 접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이름 외치기, 눈물 나게 하는 노래 부르기 등등…이었다. 물론,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학살이 일어난 상황에서 이미 학살을 생중계로 보며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고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런 짓들이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이들 국민대책회의는 공세를 취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상황에서도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대신 ‘박근혜 책임져라’라는 수세적 구호로 일관하며 광장에 모인 노동자, 민중들의 분노를 계속 억누르고 대오를 분산시켰다.(국민대책회의의 대책 없는 분들은 섭섭하게 들으실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때문이라며 사건의 본질을 계속 희석시켰다.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죽이며 분노하는 인민들의 기운을 뺄 무렵 세월호 유족들이 다시 운동의 불씨를 살려 다시금 투쟁대오를 만들어냈지만 저들 국민대책회의는 다시 똑같은 얘기(신자유주의, 규제완화, 자본주의의 문제, 안전사회 건설)를 반복하며 세월호 학살문제를 수면에 가라앉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 뻔뻔하게 저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 맞다, 정말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인데 그전에 왜 이 세월호 싸움이 장기적인 싸움이 되어버렸는지 먼저 반성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학살마저 감동과 눈물로 승화시키는 현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운동과 실천을 주로 하고 사람들은 보고 느끼다 보니 이제 우리들은 학살에도 감동받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 해 12월 24일 삽화가 석정현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 장의 그림을 올린다. 언론에서는 이 그림을 ‘세월호 아이들과 신해철’이라고 소개했는데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씨가 함께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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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이건 어설픈 휴머니즘이다.

아마 석정현씨는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과 한창 활동할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석정현씨가 보여준 추모에 감동과 눈물을 흘리며 사건의 본질은 더 흐려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세월호 학살과 가수 신해철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과 병으로 인한 사망(혹은 의료사고일지 모른다고 조사 중인)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왜 우리는 분노하고 싸워야 할 시기에 추모하고 감동하고 눈물만 흘리는 것일까? 이제 눈물은 흘릴 만큼 충분히 흘리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더 이상 저런 진보들에게 희망을 걸지 말자!!

어찌 보면 이건 대중운동을 한다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경고다. 세월호 학살을 보고 그렇게 들끓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은 것도 대중들은 무언가 해보려 나왔지만 연단에 선 지도부의 헛발질을 보고 실망하고 세상에 대한 절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것 아니겠는가. 문제의 핵심을 보고 정면승부하려 하지 않고 그저 달달한 뻔한 얘기만 일삼으며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 직업이 모임대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만행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학살에 그렇게 헛발질로 일관하더니 통진당 해산이 결정되자 국가권력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정면대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종북을 배격하는 진보정당을 결성하겠다는 국민모임의 진보적인 어르신들을 보라. 노동자, 민중에게 제대로 된 전망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선거 때 한 자리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4) 이분들은 통진당 사태의 교훈을 아직까지 이해 못하고 있다. 선거 하나 바라보고 이합집산하는 행위의 결과가 어땠는지 아직도 이해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놈들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사치다. 단호하게 배격하자. 그리고 우리의 길을 찾고 만들어 나가자. 우리들의 분노를 담아내고 폭발시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나가자.

이제 분노를 담아내는 운동을 하자!!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직선제로 선출된 민주노총의 집행부는 박근혜 퇴진을 걸고 총파업을 약속했다. 철밥통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공무원도 박근혜 정부의 꼼꼼한 공무원 연금정책 때문에 투쟁의 선두에 설 것이 확실하다. 실업률은 더 오를 것이요, 월급 빼고 물가, 공공요금 등도 오를 것이 확실하니 노동자, 민중의 삶은 더 어려워 질 것이 자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잃을 것이 있는가? 이런 상황인데도 즐겁게, 감동적인 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선택은 단 하나다. 이 차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운동으로 성과를 내고 그 모습에 즐거워하고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자. 2015년에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뭔지 분명해졌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가 당통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담하라. 대담하라. 더욱 대담하라. 우리는 이제 이럴 때가 됐다. 분노하라. 분노하라. 더욱 분노하라. <노사과연>


1) 왜 주류라고 표현했냐면 그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활동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시민단체의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그 당 소속으로 활동을 했고 그 대표들의 가족 중에 그 당 소속의 국회의원도 있었으며 또, 각종 굵직한 정치현안에 대해서 그 단체의 공식 입장은 결국 민주당을 적극 지지하거나 비판적 지지를 했기 때문이다.

2)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의 산별 노조로, 이날 파업은 박근혜 정부가 ‘금융 공공기관 정상화’를 이유로 구조조정 및 임직원 복지 삭감을 추진했기 때문인데, 은행직원들의 파업은 2000년 이후 14년 만이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를 참조하시라.

“크레용팝이 노조 파업 현장서 노래한 까닭?”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4229.html

3) 이건 좀 더 자세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필자가 느끼기에 한국 사회에 이런 즐거운 운동, 신나는 운동 그러니까 저들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80년대의 거칠고 딱딱한 운동에 대한 지양, 결국 이런 기존의 운동에 대한 반성을 넘어 혐오하며 문화제(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문화제)라는 형식으로 모두 수렴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김대중 정권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4) 정동영씨가 탈당하면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서 필패한다고.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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