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니?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그리고 가족.   영화 “도쿄 소나타”

유재언 |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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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나타 (2008)

연출: 구로사와 기요시

시나리오: 구로사와 기요시

타나카 사치코

주연: 카가와 테루유키

코이즈미 쿄코

 

얼마 전 예능프로 ‘무한도전 토토가’를 봤다. 오랜만에 내가 20대 때 즐겼던 1990년대의 노래와 춤을 만끽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재밌게 보고 있는데 거기에 출연했던 한 가수(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이렇게 즐겁지만 내일이 되면 오늘 하루도 한 순간의 꿈이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맞다. 정답이다. 내일이 되면 오늘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 한 순간이 되어버리는 거다.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화려했던 시기를 그리워한다. 아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큼 더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복고가 유행이다. 요즘 들어 더 강해진 느낌이다. 다들 느끼겠지만 현실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리라. 고된 현실을 잠시 잊고 활력을 되찾는 정도로 옛날을 그리워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인지상정의 수위를 넘어 현실의 삶에서 전망이 안 보이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심각한 상황 아니겠는가. 난 좀 걱정되는 점도 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인해 우리들이 허무함에 빠져 무기력해 지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언급한 이런 감정과 비슷한 지점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암울한 현실에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지다 결국 다람쥐 쳇바퀴 돌듯 현실에 순응하는 우울한 영화 ‘도쿄 소나타(トウキョ ウソナタ 2008년)’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이야기니까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각자 사연이 있는데 정리하자면 첫 번째, 아버지 사사키 류헤이(카가와 테루유키분)는 어느 날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체면 때문에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매일 고용센터에 나가서 점심은 공원에서 무료급식으로 때운다. 아내가 알아챌까봐 퇴직금을 다른 통장으로 옮기고 매달 평소 하던 데로 아내에게 월급날에 맞춰서 생활비를 준다. 두 번째, 18살 첫째 아들 사사키 타카시(코야나기 유분)는 말도 별로 없고 집 안에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던 녀석인데 어느 날 주일미군에 지원한다. 군인이 되어서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며 말이다.1) 상의도 없이 타카시는 결국 주일미군에 입대한다. 세 번째, 학교생활에 싫증을 느끼는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 사사키 켄지(카이 이노와키분)는 어느 날 피아노에 필이 꽂혀서 엄마가 준 급식비로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머니 사사키 메구미(코이즈미 쿄코분)는 이들을 매일 맞이하고 뒷바라지 한다. 권위적이고 무뚝뚝하지만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남편, 집에서 말은 별로 없고 약간 반항기가 있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 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 큰 아들, 급식비로 피아노를 배우는 막내에겐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해 준다. 메구미는 지금의 이런 생활(전업주부 역할)에 불만은 없다. 그러나 외롭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외롭다. 이렇게 이 영화 ‘도쿄 소나타’는 같이 살고 있지만 각자 사연을 숨기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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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헤이가  해고를 통보받는 모습()과 류헤이가 공원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 류헤이의 얼굴이 안 보인다. 이 영화에선 이렇게 의도적인 화면구성으로 류헤이의 존재감을 지우고 있다.

영화는 이 네 명의 주인공들의 일상을 좇으며 이들 세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버지 류헤이가 공원에서 무료급식을 받을 때 같이 줄을 서 있는 수많은 노숙자와 노인들, 평소 대화를 하지 못한 전형적인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첫째 아들 타카시와 아버지 류헤이의 관계, 켄지가 다니는 학교에서 보이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 집에 있고 아이들과 남편의 이름을 부르지만 어머니이자 아내인 메구미는 종종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느낌 등…. 씁쓸하지만 이건 우리들의 일상임을 부정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네 명의 주인공 중에 더 특별히 눈길이 가는 것은 역시 아버지 류헤이와 어머니 메구미다. 이 두 사람을 지목한 이유는 서두에 잠깐 언급한 그 감정이 이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무직 중견간부였던 류헤이는 실업자가 되자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나마 그에게 위안을 줬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고용센터에서 만난 친구인데 그 친구도 역시 실업자)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류헤이는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낀다. 메구미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우연히 남편이 실업자임을 알게 되고 남편의 알량한 권위를 지켜주려 잠자코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화내는 모습에 메구미도 참았던 속내를 류헤이에게 터뜨리고 만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가족 구성원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족들 몰래 키워나가다가 갑작스럽게 터뜨리며 상황이 급박해진다. 첫째 아들 타카시는 결국 주일 미군으로 중동지역에 참전하고, 둘째 켄지는 피아노 실력을 인정받지만 류헤이의 반대에 부딪혀 사고가 나고 또 사고를 낸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류헤이는 새로운 직장을 얻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 메구미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구미는 우연한 계기로 집에서 나가 버린다. 그 과정에서 류헤이도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 역시 얘기할 수 없다.) 흥미로운 건 이 가족들의 이런 일이 거의 동시간대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잔잔하고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약간의 충격에도 산산조각 나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전하고, 평안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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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울부짖는 류헤이()와 메구미(). 이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순식간에 엄청난 일을 겪고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이 가족들은 다시 돌아온다. 허무하게도 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류헤이는 새 직장에 변함없이 출근하고, 켄지는 피아노 전공으로 예술학교 시험을 준비하며, 타카시는 미군 생활을 청산하고 중동에 남아서 이들과 교류하며 이들을 이해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온다. 메구미는 늘 그랬듯이 이들을 뒷바라지 한다. 그리고 몇 달 뒤 켄지의 피아노 실기시험 보는 날, 류헤이와 메구미는 긴장된 표정으로 켄지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켄지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켄지의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이 가족들이 힐링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느낌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이런 영화들에 대한 필요이상의 극찬은 좀 자제하자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이란 무엇이냐면…. 이 영화 ‘도쿄 소나타’같이 현실의 문제를 보여주지만(이것 자체만으로도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 해결방식이나 결말은 매우 개인적인 해소나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영화들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노동자라면 새로운 세상이나 변혁에 관심이 있는 노동자, 민중이라면 이런 류의 영화에는 마땅히 아쉬움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많이 보는 매니아들, 영화팬들이 이런 류의 영화가 굉장히 진보적인 영화, 앞서가는 영화라고 얘기들을 하던데 그건 아무리 봐도 영화평론가, 영화전문기자들의 책임도 있다. 툭 터놓고 묻고 싶다. 진보적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현실의 문제, 그로인한 괴로움을 결국 인정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자족하며 지내는 게 진보적인가? 혼란스러워하다 울부짖으며 허무하게 떠나버리는 것이 진보적인가? 아니면 좀 시끄럽고 거칠더라도 반 발짝, 아니 반의 반 발짝이라도 무언가 시도해보고 이 사회, 이 체제에 질문과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진보적인가? ‘도쿄 소나타’같은 영화 스타일은 한국에 소개되는 유럽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나는 솔직히 좀 불편하다. 몇몇 유럽예술영화 혹은 좌파영화, 노동자영화2)라고 소개되는 작품들을 보면 ‘도쿄 소나타’같은 분위기가 많다. 사회적인 문제, 현실 문제를 보여주지만 그 사회적 문제, 현실 문제에 대해 행동하고 무언가 변화를 주는 모습보다는 그 안에서 인물들의 심리상태에만 천착하고 고뇌하다 괴로워하며 그 괴로움 속에서 해결책을 찾는 모습….. 다시 말하지만 이런 유럽영화들도 충분히 볼 만한 가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걸 진보적인 영화라고 평하는 것은 오바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필요이상의 극찬은 좀 낯 뜨겁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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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리로 힐링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다른 방법으로 힐링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관심이 있으신가?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이다. 난 정말 궁금하다. 현실의 괴로움을 영화 ‘도쿄 소나타’에서처럼 저렇게 풀면 해소될까? 물론 해소되는 분들도 있겠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 <노사과연>


1) 이 영화 속의 뉴스에서 주일미군, 일본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거리에서 일본인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매우 흥미롭다. 한국의 현실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종미(從美)지 뭐 종미. ㅋㅋㅋ

2) 난 성질이 못돼서 실명을 공개하겠다. 영국의 켄로치, 덴마크의 다르덴 형제, 프랑스의 장자크아노 등… 이런 유럽영화감독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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