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
정세훈
토실토실한 감자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씨감자가 되려면
상처를 입어야만 해
상처도 혈서를 쓰듯
새끼손가락 하나 깨물어 피만 조금 내는
그러한 조그마한 상처가 아니라
적어도 두서너 번은
성한 몸뚱이
온전히 절단 당하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야만 해
그래야만 상처 입은 몸
미련 없이 푹 썩히어
새싹을 틔우고 새 줄기를 내리고
끝내는 새 감자알을 키워 나가는
감자밭 이랑에
비로소 묵힐 수 있는 거야
<정세훈 약력>
정세훈 시인은 195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였으며, 17세 때부터 20여 년간 소규모 공장을 전전하며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노동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은혜의말씀사), ‘맑은 하늘을 보면’(창작과비평사), ‘저별을 버리지 말아야지’(하늘땅),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은금나라),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내일을여는책),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시평사), ‘부평 4공단 여공’(푸른사상) 등과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은금나라), 포엠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문학과현실사) 등을 간행했다.
현재 리얼리스트100 상임위원과 한국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borihanal@hanmail.net
편집자주: 정세훈 시인은 지난 11월 20일 파이낸스 센터 앞 씨엔앰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진행된 문화제에서 시낭송으로 연대하였다. 이 시에 앞서 두 편의 시를 낭송하였고 노래 공연이 아님에도 앵콜을 받아 마지막으로 본 시 를 낭송하면서 힘찬 연대의 뜻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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