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사회과학 제 7호≫ 서평(1)

 

권정기 | 편집출판위원장

지난 11월초에 ≪노동사회과학 제7호: 과학적 사회주의의 어제와 오늘≫이 나왔다. 서평의 형식을 빌려, 발표된 글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이번호에는 책의 전반부에 있는 네 개의 글을 정리해 보았다. 다른 글들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의료민영화를 논한다>

먼저 민영화의 의미를 살펴보자. 민영화(民營化)의 사전적 의미는 “관에서 운영하던 기업 따위를 민간인이 경영하게 함”이고, 영어로는 privatization으로 사유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즉, “국가가 소유하던 국영기업체(공기업) 등을 민간에게 그 소유권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의료민영화” 혹은 “의료사유화”는 국가가 소유‧경영하고 있는 공공병원을 민간자본에게 파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정책을 “의료민영화”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리병원도입: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로, 의사와 비영리법인만을 인정하고 있다. 삼성의료원이나 아산병원과 같이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도 물론 영리(이윤)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 이윤은 목적사업(의료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고, 법인의 구성원과 개인에게 분배할 수 없다. 따라서 이윤이 법인 안에 머문다. 의사가 소유·경영하는 중소병의원은 이윤의 추구와 그 사용에 있어서 일반 사기업과 같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되고, 의료법인은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투자 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다시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로 병원이 운영될 수 있다. 자본이 몰려들 수 있으며, 이윤을 위해 병원을 고급화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비 상승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영리 자법인 설립허용:

지금까지 병원부대사업은 장례식장, 주차장, 구내식당 등 8개로 제한되어 왔는데 그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비영리법인인 병원의 수익금이 영리 자법인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어, 영리병원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 비영리법인인 병원이 의료기기 자회사를 설립하고, 100만원하는 초음파기계를 200만원에 구입하여 100만원의 이익을 자회사로 빼돌릴 수 있다. 영리법인 도입에 대한 인민들의 저항이 강해서, 정부가 편법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운동진영에서는 보고 있다.

원격의료 허용:

병원과 환자 간에 통신망을 설치하여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원격으로 의사와 상담하고 전반적인 건강 진단을 받는다는 취지로,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의료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이익을 보는 건 통신망을 설치할 SK텔레콤, KT, 삼성전자 등 IT기업이다. 또 이러한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게 된다.

의료기관 인수합병 허용:

현행 의료법상에는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 규정이 없어 경영상태가 건전하지 못한 의료기관은 파산 시 까지 운영해야 한다고 한다. 의료기관 간의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자본의 운동이 보다 활발하게 되고, 중소병원이 대형병원으로 계열화되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다. 의료영역에서 자본의 운동과 경쟁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한, 규제완화이다. 따라서 “의료민영화”보다는 규제완화를 통해 의료영역에서 자본의 이윤추구활동을 강화한다는 의미로 “의료영리화 강화”라고 규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물론 그 과실은 의료영역에서도 이미 강력한 힘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 현대 등 독점자본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 대학병원의 차지가 될 곳이다.

<정부의 철도 분할사유화 공세와 철도노동자 투쟁>

정부의 철도 분할사유화 공세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다음 기사가 잘 말해준다.

 

철도 운영사업을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파악한 일부 건설업계도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건설경기 불황에 직면해 중장기적인 수입원을 찾고 있는 건설업계에 철도 운영사업은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철도운영에는 1000여 명이 넘는 직원 고용과 1~2조원대에 이르는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대형건설사나 그룹계열 건설사를 중심으로 컨소시엄 형태의 사업참여가 검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1) (강조는 권정기)

철도시장 민간 개방에 대비해 동부건설 대우건설 등 대기업이 사업성 검토 등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28일 “기초 시장조사 차원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결과 다수 대기업이 `철도운영경쟁체제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사업 참여자 문제가 해결되면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민간 운영 사업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은 동부건설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동부건설 직원들을 중심으로 `고속철도 민영화 사업`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수익성, 사업환경, 진출 분야 등을 검토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정식으로 사업단을 발족한 것은 아니지만 신사업 모색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그룹 내에 철도사업에 필요한 ITㆍ건설ㆍ서비스 등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기본 준비는 되어 있다”고 말했다. 철도시장 민간 개방에는 인력과 운영서비스뿐만 아니라 역사 건설, 차량 제작 등 수조 원대 부대사업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아 건설사도 관심이 높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최초엔 순수 운영서비스 쪽만 검토했지만 회사 전문성과 사업성 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할 때 민자 토목사업과 패키지 형태로 나오면 사업 참여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두산, 한진 등도 기초적 수준에서 사업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2)

즉 공기업의 민영화·사유화란 전반적 과잉생산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독점자본에게, 즉 “건설경기 불황에 직면해 중장기적인 수입원을 찾고 있는 건설업계”에게, 이윤창출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임을 이 기사는 잘 말해주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철도물류회사에 3,000명, 2015년 철도차량정비회사에 2,000명, 2017년 철도시설회사에 6,000명을 철도공사에서 자회사로 파견”하고 “각 회사에 재산ㆍ시설ㆍ설비를 이전하고, 임원을 독립적으로 선출하고, 간부는 전적(강제이직) 시키고, 자회사는 장기적으로 철도공사로부터 완전분리” 하여 “각 회사를 독립된 주식회사로 분할민영화 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철도노조의 26대 집행부는 노조탄압과 조합원 탈퇴 공작을 넘어 조직력 재정비에 집중해야 한다. 작년 파업투쟁을 능가하는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미리부터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적연금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대표적인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기본적 내용을 이해해 보자. 노동하는 인구가 노동을 못하거나 안 하는 인구(아동, 노약자. 실업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이다. 노동하는 사람이 생산한 것으로 노인들이 먹고 입고 거주하게 하는 체계가 국민연금이다.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노동자와 자본가만 있는 사회를 가정하자. 현업 노동자들이 1년에 100만큼을 생산했다면, 그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자본이다. 50은 생산수단의 가치가 이전한 부분으로 소비할 수 없고 재투자된다. 20은 임금으로, 노동하는 인구에게 돌아간다. 30은 이윤이다. 여기서 예를 들어 5만큼의 생산물이 비노동인구 중 은퇴자(노인)에게 돌아갈 것이고, 이것이 국민연금이 된다. 그래서 정부가 그 해에 5만큼의 금액(화폐)을 자본에게 세금3)(혹은 연금기여금)으로 거두어서 노인들에게 나누어주면 5만큼의 생산물을 사서 소비하면 된다. 글에서 연금의 기본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부과방식: 원칙적으로 적립기금 없이, 당해 연도에 필요한 재원을, 당해 연도 가입자에게 부과하는 기여금이나 세금으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독일은 14일치 적립금을 가진 완전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을 운영한다고 서술한다. 이것이 국민연금의 실체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무려 “20년치 정도의 적립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한 기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금은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떼어내어 형성된다. 즉 임금을 삭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이 기금을 가지고 있는가? 국민연금공단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식, 회사채, 국채 등등에 투자되어 화폐자본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의 기금은 독점자본의 수중에서, 그들의 화폐자본으로 기능하게 된다.

반문이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이 기금을 연금으로 돌려받는 것이 아닌가?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그 사회가 노인들에게 줄 수 있는 생산물의 양은 먼저 그 사회의 생산의 양 자체에 의해서, 그리고 계급투쟁에 의해서, 즉 노동자계급의 힘에 비례해서 결정될 것이다. 그 힘에 변화가 없다면 쌓아둔 연금기금의 크기와 관계 없이, 여전히 5만큼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1만큼은 기금운영에서 발생한 수익금에서 부담하고, 4만큼을 자본이 내는 세금(혹은 현업노동자와 기업의 기여금)에서 부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1만큼의 기금운영 수익금이란 무엇인가? 자본이 연금기금을 빌려서 화폐자본으로 사용한 대가로, 연금관리공단에 이자로 지불한 것으로, 30의 이윤에서 떼어낸 것이다. 결국 30의 이윤에서 세금으로 5를 떼어내는 것과, 1을 이자로 4를 세금으로 떼어내는 것은 모두, 자본이 부담하는 것으로 같은 것이다. 또 1을 기금원금에서 부담하는 것도, 그 생산한 30중에서 5만큼을 노인들에게 돌린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차이는 자본이 4만큼 화폐로 세금을 지불하고 그 만큼 판매하고, 1만큼은 기금의 화폐를 받고 판매만을 하기 때문에 이윤이 26원으로 1원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화폐자본이 1만큼 줄어든다. 결국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노동자의 임금을 깍아서, 독점자본에게 거대한 화폐자본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이다.4)

따라서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만 생각한다면, 국민연금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는 독일과 같은 14일치 정도의 적립금을 가진 완전부과방식으로 바꾸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투쟁을 통해 연금 급여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글에서는 사적연금을 도입한 칠레를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이 총자본의 이해, 그 대표격인 독점자본 일반의 이해에 복무하는 제도라면, 사적연금은 개별독점자본이 연금기금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이윤추구에 이용하는 보다 극악한 형태이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 (하)>

 

1. 국가자본주의 사회인가 사회주의 사회인가

좌익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것, 즉 쏘련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을 필자(채만수: 이하 필자는 채만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저들이 “입증해온 것”이라고 하는 것, 사실은 그냥 떠들고 선언해온 것 중의 하나는, 러시아는 그 저발전(underdevelopment) 때문에 10월 혁명 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이행했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산업을 억지로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하여 그 자본주의의 성격 내지 유형이 ‘국가자본주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말한다. “러시아에서 산업화하는 — 그리고 따라서 자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 유일한 길은 국가와 자본의 융합을 통해서였다 ― 즉, 국가자본주의의 완전한 실현을 통해서였다.” 쏘련에서 계획이 시장을 대체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조는 필자)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한 사회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냐를 나누는 기준점은 첫째,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었느냐, 사회적으로 공동으로 소유(국유화)되었느냐, 둘째, 생산을 시장이 조절하는냐, 국가가 계획으로 조절하느냐, 셋째, 이윤을 위한 생산인가, 사회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한 생산인가, 넷째, 노동력이 상품으로 매매되느냐, 아니냐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수가 사적으로 소유하여 이윤을 위해 생산하고, 생산수단이 없는 다수는 노동력을 판매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이다. 반대로 사회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사람들이 소유하여, 국가의 계획에 의해서,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생산하고,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생산할 권리, 즉 취업할 권리가 보장되고 된다.

≪쏘련은 무엇이었나≫에 나오는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보자.

 

다른 한편에서, 쏘련은 맑스가 분석했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는 현격하게 달랐다. 쏘련 경제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조절되는, 경쟁하는 사적 소유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주요 생산수단은 국가소유였고, 그 경제는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조절되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날카로운 분화(分化)가 없었고, 가족과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시민사회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제성장은, 이윤 동기에 의해서 추동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국가와 주민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킬 사용가치의 양(量)을 확대시킬 필요에 의해서 추동되었다. (강조는 필자)

“주요 생산수단은 국가소유” 였고, 경제는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조절되었다”고 한다. 또 “경제성장은, 이윤 동기에 의해서 추동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국가와 주민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킬 사용가치의 양(量)을 확대시킬 필요에 의해서 추동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취업은 권리로서 보장되어 노동력은 매매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력의 매매와 관련하여 ≪쏘련은 무엇이었나≫에서는 노동력이 판매되었다고 입증하지는 못한다. 그 책의 다음의 구절을 보자.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자유가 제한되었다는 것도 진실이다.

실로, 완전고용은 스딸린 이래 쏘련의 정치적ㆍ사회적 결속을 유지하는 중요한 한 요인이 되었다.

노동의 이동에 대한 이러한 제한들이 노동자들을 특정한 생산수단에 결박했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그들은 임금노예들이었다기보다는 산업농노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조는 권정기)

 

“노동력을 파는 자유가 제한, 완전고용, 생산수단에 결박” 등의 표현은 노동력이 판매되지 않았고 권리로서 취업이 보장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 “완전고용”과 관련하여 필자는 아래와 같이 정당하게 비판하고 있다.

 

맑스는 과잉인구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라고 단언하고 있고, 그 증대와 그에 따른 공인된 피보호빈민의 증대를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다면, 맑스주의자들임을 자처하는 저들로서 ‘완전고용’이 보장된 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했어야 하겠는가?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 문자 그대로의 ‘완전고용’이 보장된 쏘련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였다고 규정할 수 있겠는가?(강조는 필자)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쏘련이 사회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좌익공산주의자들의 글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당연히 국유화된 부분에서는 상품생산도 상품유통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갖은 억지를 부리며 자신들 스스로 증언한 것을 다시 부정하지만, 순전히 궤변일 뿐이다.

 

 

2. 쏘련에서의 화폐문제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말한다.

 

더 나아가, 판매하여 수령한 화폐는, 생산자본의 그 특유의 순환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특정한 상품들에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화폐는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의 형태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그것은 생산자본(…)의 특정 순환에 묶여 있었다. 그것은 회수되어 다른 순환에 투하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어떤 일련의 상품들의 다른 일련의 상품들로의 교환을 수월하게 하는 유통수단으로서 복무했을 뿐이다. (강조는 권정기)

 

생산자본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산자본”(공장)은 국유화되었으므로 이미 자본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공장(기업소)일 뿐이다. 따라서 그 생산물은 상품이 아니다, 그냥 노동생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일련의 상품들”이 “다른 일련의 상품들로”로 교환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쏘련에서 A공장에서 B공장으로 생산물을 이전할 때 마치 공장 간에 상품이 구매와 판매되는 것처럼 루불화가 쓰였다. 따라서, 그 노동생산물은 구매와 판매됨으로 즉 교환됨으로 상품일 수밖에 없고, 이때 루불화는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는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로, 맑스가 입증하고 있는 것처럼, 상품 관계는 인간 공동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상품들은 공동체들 사이에서 교환되었고, 상이한 공동체들이 접촉하게 되었을 때에 발생했을 뿐이다. (좌익공산주의)

 

내친 김에 간단히만 말하자면, 이 점, 즉 공동체 내부와 ‘공동체가 끝나는 곳’의 분간은, 일반적으로 화폐라고 불리는, 예컨대 쏘련의 루블의 성격과 관련해서도 관건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 본래의 의미의 화폐이며, 어떤 경우에 단지 화폐로 의제된 것인지를 분간하는 데에 말이다. (채만수)

쏘련의 공업부문은 대부분 국유화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공동체가 된다. 하지만 농업에는 1920년대에 넓은 토지를 소유한 부농들이 있었고, 이들은 사적으로 농업을 경영했다. 따라서 국유화된 공업의 공동체와 부농 사이는 공동체가 끝나는 곳’이 된다.

따라서 공업부문을 대표하는 국가가 부농들에게 루불화로 곡물을 살 때, 그 루불화는 “본래의 의미의 화폐”, 즉 상품을 구매하는 화폐, 가치척도이고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이다. 그러나 공업부문이라는 공동체 내부인 A공장에서 B공장으로 생산물을 이전할 때 쓰이는 루불화는 단지 “화폐로 의제된 것”이다. 맑스의 다음 서술을 보자.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폐지된 후에도 사회적 생산이 유지되는 한, 가치규정은, 노동시간의 규제와 다양한 생산집단들(Produktionsgruppen)로의 사회적 노동의 배분, 마지막으로는 이에 관한 부기가 이전보다도 가일층 중요해진다는 의미에서 의연히 지배적이다(vorherrschend bleiben).5)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이 없어지고 따라서 가치도 사라진다. 그러나 “가치규정” 즉, 상품에 대상화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가치(량)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주의적 생산에서도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노동을 사회적으로 배분하고, 부기”를 하게 된다. A공장에서 B공장으로 생산물을 이전할 때 쓰이는 루불화는 단지 생산물의 노동시간을 측정하여,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노동을 사회적으로 배분하고, 부기”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다.

≪노동사회과학 7호≫ 후반부에 나오는 <레닌주의와 수정주의.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의 근본 문제>에서 306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화폐와 많은 소위 상품-화폐 관계들이 형식적으로 사회주의하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외적인 상품 형식들과 명칭들의 이러한 사용이, 사회주의적 생산이 그것의 본성에 따른 상품 생산이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 의해 사용되는 법정 지폐들(treasury notes)은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에서 화폐가 아니다. 이 법정 화폐들은 생산량과 소비되었던 필요한 노력의 양의 부가적인 간접적 측정수단이고 그것들은 회계단위와 계획단위의 역할을 한다. 사회주의하에서 화폐는 재고 조사의 기능과 직접적인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능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강조는 권정기)

“이 법정 화폐들은 생산량과 소비되었던 필요한 노력의 양의 부가적인 간접적 측정수단이고 그것들은 회계단위와 계획단위의 역할을 한다.”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A기업에서 철강을 만들어 B기업에게 주고 100만원을 받고, 다시 A기업은 C기업에게 철광석을 받고 그 100만원을 주었다고 하자. 즉 A기업의 입장에서 철강―100만원―철광석이라는 “교환”이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자본주의에서는 그 내용은 상품(자본)의 변태이고 100만원은 본래적 의미의 화폐이다. 상품체1(사용가치)―화폐(가치형태)―상품체2(사용가치)로 표현된다. 먼저 철강은 화폐로 모습을 바꾼다(변태). 이 때 화폐는 가치의 화신이며 사회적 노동의 화신이다. 그래서 철강을 만드는 사적노동은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는 그 내용이 다르다. 사회주의에서의 생산물에 들어 있는 노동은, 그 자체로 사회적 노동이다. 또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 그래서 화폐(가치의 화신)와 교환되어 사회적 노동으로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고, 같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서로 교환될 수도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은 단지 100시간 노동의 생산물―100시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100만원―10시간 노동의 생산물로 표현된다. 즉 노동시간을 규제·관리하고, 부기의 필요에 의해서 100만원이 쓰였을 뿐이다. 이 때 100만원은 본래적 의미의 화폐가 아니다. 이것이 쏘련의 국유부분에서 루불화가 쓰인 방식이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 “화폐는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의 형태”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가치의 형태”라는 말은 가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금이 자신 속에 가치를 품고 있고, 금이 반짝이는 금속이라는 모습(형태)로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는 가장 널리 쓰인다는 의미인데, 화폐가 특정한 일부 상품만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는 ≪자본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독립적”이란 표현은 독특하게 사용한 것 같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다음 글을 보자.

쏘련에서는 화폐가, 생산자본의 순환 내부에서 상품들의 단순유통 단계에 필요한 기능들에 ― 즉, 가치의 관념적 척도로서의 그리고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들에 ― 구속되어 있었고, 화폐가 독자적인 가치형태로서 등장하는 것은 배제되어 있었다. 첫째로,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상품들의 가치는 사전에 확증되었다. 트랙터들의 관념적 가격은 트랙터들의 가치로서 직접적으로 실현되었는데, 이는 그 판매가 이미 그 계획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폐는 판매를 위한 상품들의 가치의 관념적 척도로서 작용했지만, 독립성은 없었다.

 

화폐가 단순히 덧없는 유통수단으로 제한됨으로써, 그리고 상품들의 가치가 (국가에 의해: 권정기) 사전에 확증됨으로써, 화폐는 독립적인 가치 형태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 (강조는 권정기)

화폐가 “생산자본의 순환 내부에 구속되어” 상품의 “가치가 (국가에 의해: 권정기) 사전에 확증됨”으로서 “독립적인 가치 형태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기서 “독립적”이라는 말은, 특정 부분에 구속되지 않고 상품교환의 전부분에 사용되고, 국가권력과 같은 비경제적인 어떤 힘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화폐 스스로 모든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생각된다. 화폐의 본래 기능과 부합된다.

따라서 “화폐는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의 형태”라는 말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3. 수정주의 쏘련의 병리적 현상

그리고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시장 신앙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말한다

화폐가 단순히 덧없는 유통수단으로 제한됨으로써, 그리고 상품들의 가치가 사전에 확증됨으로써, 화폐는 독립적인 가치 형태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 (강조는 권정기)

이 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겠다. 쏘련에서는 공장 생산물들이 “상품”아니고 따라서 “가치”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쓰이는 “화폐”는 자본주의에서와 같이 “독립적인 가치 형태”, 즉 본래적 의미의 화폐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실이다.

저들은 이것을 “가치가 불구화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맞는 말이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 가치는 상품생산의 소멸이 시작되며 함께 사라지기 시작하고, 따라서 “보편적이고 독립적인 가치형태”, 즉 가치의 화신인 화폐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한다. 상품생산이 점차 소멸되어가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가치와 화폐는 점차 힘을 잃어간다. 루블화는 특정부분, 즉 국가와 부농들과의 거래와 같은 특수한 부분에서만 본래적 의미의 화폐로, 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불구화되지” 않은 화폐(가치)로 작용한다. 그러나 국유기업 간의 거래에서는 그저 노동시간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루블화는 더 이상 화폐로 기능하지 않고 “불구화되는” 것이다.

저들이 자칭 공산주의자라면, 그것도 우익공산주의자(?)도 아니라 좌익공산주의자라면 이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최고로 발전한 상품생산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가치)가 사회를 지배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상품생산이 점차 폐지되어 화폐(가치)는 “불구화되”지만 여전히 가치규정은 활용된다. 그러나 드디어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면 가치규정을 활용할 필요조차 없어지고, 화폐는 완전히 폐기된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렇게 화폐가 제구실을 못한 게, 오히려 쏘련의 병리적 현상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화폐로서의 화폐―가치의 독립적 형태로서의 화폐―의 완전한 발전 없이 그러한 사용가치들의 내용이 사회적 재생산의 필요에 반드시 들어맞지는 않았다. … 상품의 사용가치의 품질은, 화폐 그러니까 구매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 계획에 의해서 보증되었다. 그러나 국가 계획은, 우리가 입증해온 것처럼, 다양한 경제 행위자들― 그들이 노동자들이건 국유 기업들이건 ―의 외부에 서 있었다.

그 결과, 그 계획에 의해서 규정되고 재가된 사용가치는 사회적 필요에 반드시 들어맞지는 않았다.

… 쏘련에서의 화폐의 결함― 그것이 보편적이고 독립적인 가치 형태로서 기능하지 못한 것 ―은 또한 끝내 쏘련의 종언을 불러오는, 저 고유의 결함 있는 사용가치의 생산을 초래했다.

쏘련의 병리적 현상, 즉, “쏘련의 종언을 불러오는, 저 고유의 결함 있는 사용가치의 생산(불량품: 권정기)을 초래했”던 이유는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발전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은 사회주의 그 자체가 원인라고 주장한다.

저들은 화폐만이 “사용가치들의 내용이 사회적 재생산의 필요에 반드시 들어맞”게 한다고 한다. 즉 화폐에 의해서 시장에서 구매되는 것은, 더욱 많이 생산되고, 구매되지 않는 것은 생산되지 않아서,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재화들이 필요한 만큼 공급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폐/시장의 기능이 “불구화되어서” 필요 없는 생산물이 생산되고 필요한 생산물은 생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한 “상품의 사용가치의 품질”도 화폐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질이 떨어지는 상품은 구매하지 않아서, 화폐가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쏘련에서의 화폐의 결함이 또한 끝내 쏘련의 종언을 불러오는, 저 고유의 결함 있는 사용가치의 생산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시장과 화폐에 대한 신앙을, 자본주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시장과 화폐를 “불구화”시키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초기 공산주의 사회인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 좌익공산주의자라는 자들이 저주를 퍼붓고 있다. (후반부에 대한 서평은 다음호에) <노사과연>


1) 신정운 기자, “<해설> 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 배경은?”, ≪건설경제신문≫, 2011.09.28. http://www.cnews.co.kr/

2) 이지용 기자, “대우·동부 철도사업 참여”, ≪매일경제≫ 2011.09.28.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629054

3) 물론 연금가입자(노동자)와 자본에게 반반씩 부담시킨다. 이때 예를 들어 100만원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5만원을 연금기금으로 납부한다면, 100만원 명목적으로만 임금이고, 실제 노동자의 임금은 95만원이 된다.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10만원 모두를 세금(혹은 기여금)으로 국가가 자본에게 거두어들인다고 보아도 된다.

4) 좀 더 공부하시려면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제5판 1쇄, 480-485페이지를 참고하세요.

5) ≪자본론≫ 제3권, MEW, Bd. 25, S.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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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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