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함께 막는 비

박현욱 | 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길을 걸어가는데 길바닥에 천원짜리와 만원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다면 어느 것을 줍겠는가?”라는 질문 받아보신 일 있으신가? 피식하고 웃음을 지으시는 분들이라면 아실 텐데 추억의 어릴 적 장난질이다. 누군가 “당연히 만원짜리 줍지”라고 대답하면 기다렸다는 듯, “바보. 둘 다 주워야지~”라고 말하며 한껏 비웃어 주던. 요즘말로 소위 ‘낚시질’이라는 건데… ‘왜 시작부터 애들 장난질 하던 유치한 얘기신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뭐… 이게 유치한 장난질인 건 맞는데, 요즘 어떤 이의 발언 때문에 이게 애들 장난만은 아닌 거 같아 해 본 얘기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최근에 최경환 경제부총리라는 자가 한 말이 제법 화제다. 일명 정규직 과보호 발언인데 “정규직을 지나치게 과보호하다 보니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해서 비정규직만 늘어간다”라고 말했다는 거다. 그리고 “기업이 한번 정규직을 뽑으면 60세까지 고용을 보장해야 하고…운운… 그러니 기업은 겁을 먹고…운운…”그 딴 말을 했다는 건데…

 

일단 그의 절절한 충심(?)혹은 진심(?)은 십분 공감된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며칠만 집을 비웠다 들어와도, 집 앞에 없던 건물 하나가 떡하니 서 있을 만큼 끔찍하게 발전하는 생산력 덕에, 단 하루 앞을 내다 볼 수도 없이 불안으로 요동치는 위기의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당최 한번 뽑으면 40여년 가까이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자본으로선 참으로 터무니없이 부당하고 철없는 요구로 보일 일이다.

헌데 공감은 공감이고, 그의 그 말 자체는 동기의 진심 여부와 무관하게 거짓이다. 아니면 그가 지나친 바보이거나…뭐… 둘 중 어느 것이어도 상관 없고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서도….

 

암튼 그의 말을 보자. 기업(실은 자본)들이 정규직 채용을 기피해서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흐흐흐 이들 말장난의 교묘함은… 참… 정규직은 ‘채용’기피라고 말하면서도 비정규직은 ‘채용’한다라는 말 대신 애써 ‘늘어난다’라고 돌려 말하신다. 절대로 ‘자본’이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표현은 쓰기 싫으신 게지. 머..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그 이유가 정규직들을 과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흠… 당신은 길바닥에 천원과 만원이 떨어져 있을 때 만원이 천원보다 크다는 이유 때문에 만원짜리를 주울 텐가? 당연히 둘 다 줍지.

최경환씨가 바보일진 몰라도 자본가들이 그리 바보일 리는 없을 터. 반대로 물어보자. 당신이 자본가이라면 정규직에 대한 소위 ‘과보호’가 없다고 해서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는데도 굳이 정규직 채용을 선택할 텐가? 설마 ‘아 이제 정규직 과보호가 없으니 당연히 정규직을 채용해야지’라고 생각하실 바보(?)가 계신가? 정규직을 과보호하든 말든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더 큰 이득이 되는데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거 아닌가? 즉, 자본이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말에서 고백하고 있듯이 채용의 형태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바로 ‘자본’이다(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말을 상기하시라). 길에 떨어진 천원과 만원 중 하나를 줍든 둘 다 줍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줍는 자에게 달렸다는 말이고, 둘 다 주울 수 있는데 굳이 만원짜리가 천원짜리보다 큰 돈이란 이유로 만원짜리만 주울 바보가 그리 흔할까?

 

해서 그의 말은 비정규직을 더 보호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이 지나치게 대접받고 있는 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픈 것도 아닌, 그저 그나마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지난 수십년간 피눈물 나는 투쟁으로 만들어 낸 정규직 노동자들의 쥐꼬리 만한 권리마저 무력화시키겠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며, 따라서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쩝… 뭐… 바보라면 바보라서 고생스러우실 테고, 거짓말이라면 고심고심 거짓말 짜내느라 고생하시긴 하는데… 이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잉모순이 극에 달해 니들 고용 같은 거 보장해줄 수 없다고 속 시원하게 솔직허니 말하지 못하는 그들 답답한 심정 생각하니 심지어 좀 짠해지기까지 하긴 한다.

 

여튼 그거야 그들 이야기고, 실은 좀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있다.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 무려 국민의 47%가 그의 말에 공감한다고 언론들이 떠들어 대고 있는 건데… 물론 소위 여론이니 통계니 하는 것이 결국 지배계급의 숫자놀음이라 그걸 따지는 게 큰 의미는 없다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47%는 그 중 불순한 의도를 지닌 이들을 제외하고선 단지 천원과 만원 중 어느 걸 줍겠냐는 질문에 낚시질 당해 만원을 줍는다고 대답한 순박한 어릴 적 내 친구들과 같은 이들일 뿐이지 않겠나. 헌데 이게 어릴 적 장난질에 낚인 것처럼 하루 이틀 분하고 말면 될 일이 아니라서 문제라는 거지.

 

몇 해 전에 실제로 있었던 어느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카트’라는 영화가 얼마전에 개봉해 화제를 일으켰는데 그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역전환에 따른 계약해지에 맞서 파업 투쟁을 하는 와중에 한 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을 종용하자 누군가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한다. “야. 넌 정규직인데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 과보호되고 있어서 아쉬울 거 없는 이들…

실은 많은 이들이 이런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며 47%라는 숫자는 또한 그 현실의 증명이기도 하다.

 

그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용역으로 전환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이야 파리 목숨인데 그 파리들의 눈에 ‘정규직’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아니꼽고 치사한 과보호 장치로 보이겠냔 말이다. 해서 47%라는 숫자가 아니 그 이상이 그의 말에 공감한다 해도 사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 과보호되고 있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수천명이나 대량해고 되고 그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피범벅이 되도록 국가권력에 의해 두들겨 맞고, 수십명의 동료를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구속되고, 6년여 아니 10년여를 찬 길바닥을 뒹굴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현실들은 하루 하루 목숨 이어가기도 힘든 파리에겐 볼 여력도 생각할 여유도 없는 일 아니겠나?

저 자애로운(?) 자본과 국가권력이 그런 파리들의 아픔에 어찌 눈감고 가만 있겠나…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는 요구에 부응해 정말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마지 않는다. 바로 그렇게 차별을 만들어내는 절대악인 정규직들의 노동조건을 비정규직과 같은 조건으로 만들어 버려 아예 차별 따위가 존재하지 못하도록…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발언자들로부터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돕는다는 것은 비를 맞고 있는 이에게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함께 맞는 비’… 어느 분의 유명한 말로 사람들로부터 자주 인용되어 쓰이는 말이다. 역시나 그 말의 진심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일 텐데… 그렇다 한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하게 언짢은 건 어쩔 수 없다.

 

함께 비를 맞아라… 그래서 최경환 같은 자들이 일갈한다. 비정규직의 아픔을 헤아린다면! 그들의 아픔이 그토록 안쓰럽다면! 그래서 그 차별을 철폐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비를 함께 맞아라. 정규직이 들고 있는 과보호라는 우산을 던져버리고 비정규직의 처지가 되어 비를 함께 맞아라!라고…

 

공단에서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을 하고 있는 한 노동자 후배녀석으로부터 오늘 이런 말을 들었다. “야간 때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하다보면 새벽녘엔 정말 딱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옆에서 동료가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전신이 마비되어 쓰러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휴게실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몸이 움직여지면 기계 앞에 와서 서서 다시 일을 하지요. 그렇게 쓰러져 휴게실에 가 누워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든대요. 그냥 이대로 내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겠다… 이대로 그냥 눈을 감는 게…”

잘라 말하건데… 난 그들을 돕기 위해 그와 함께 기계 옆에 서서 죽도록 일하다가 같이 쓰러졌다가 다시 기계 앞에 와서 서서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 절대 없다. 그게 돕는 거라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게 해야, 즉 함께 비를 맞아야 그 고통을 공감하는 거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그의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그 고통이 느껴져 몸서리 쳐지니깐…

난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쓰러진 동료를 병원에 데려 갈 것이고 다시 그 기계 앞에 서서 일하지 못하게, 그리고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사람으로서 살 수 있게 할 방법을 강구할 거다.

 

혹시나 내가 고통의 비를 맞고 있어서, 그게 안쓰러워 돕고 싶으시거들랑 내 옆에 와서 같이 비를 맞고 계시지 말고, 내게 우산을 들어주시라. 가지고 있는 우산을 던져 버리는 짓 따위 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그 우산을 더 튼튼하고 더 크게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비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라.

 

함께 맞는 비가 아니라 함께 막는 비가 되도록.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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