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자, 아, 유령인간!”

 

배은주 | 회원

 

 

유령인간

 

은평구에 볼 일이 있어 차를 몰았다. 성산대교를 건너 월드컵경기장 쪽을 지나가라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차를 세웠다. 저쪽 편으로 월드컵경기장점 홈플러스가 보였다. 아, 저 곳… 바로 저곳이구나…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2007년 이랜드마트 리테일 소속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를 당한 곳. 영화 <카트>가 다룬 비정규직 복직투쟁이 실제로 벌어진 곳. 무려 510일간 농성을 했다는 곳… 그리고 불과, 내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

다시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 <카트>를 보는 동안에도 내내 그랬다. 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대량 정리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510일이나 농성하던 그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어디에 서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곳, 자동차로 15분이면 도착하는 곳인데, 그들의 농성을 알긴 알았던가. 그들의 농성에 관심을 기울였던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당시 현실정치는 나에게 지겨움과 분노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었다.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어찌 되었든 굴러갈 것이니, 그저 선한 마음으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내 삶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정직하고 검소하게, 욕심 부리지 말고 이웃과 나누며… 그러면 되는 거라고 애써 사회적 문제들을 무시하며 살았다.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를 좀 봐 달라는 겁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영화 <카트>가 말하고 있듯, 실제 여러 사업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내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으므로, “좀 안 되었다” 연민 한 줌 보태면 그만이었다. 그랬다. 그때 그들은 내게 그저 ‘유령인간’이었다. 보이지 않았다. 이 ‘유령인간’들이 영화 속에서 나오고, 언론 속에서 나오고, 책에서 나오고, 이론 속에서 나와 어렴풋하게나마 나에게 실체로 다가온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에서야 비로소 이들을 보았고 비로소 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인간 대접 받고 싶다”

 

이제 고인이 된 경비노동자 이만수씨. 그는 아파트공화국인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매일 만나는 경비노동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아파트 입주자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유서를 쓰고 분신,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 아파트 입주민에겐 고급아파트(와 그 입주민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역적 행위였으니, 입주민대표 전원은 그의 역적 행위를 본보기 삼아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모든 경비노동자들의 밥줄을 끊었다.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만 더 내면 경비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막을 수 있다는 순진한 감상과는 달리 그들은 단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는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허드렛일을 군소리 않고 해 주는 존재, 먹다 남은 음식을 던져주어도 찍소리 하지 않는 존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연신 머리 조아리는 존재, 그런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이만수씨 분신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자신들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노예는 그렇게 죽어도 마땅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 하고 싶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씨. 그는 지난 11월 29일, 45M 높이의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위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굴뚝에 올라 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내려갈 수 없습니다. 공장에 나가 일하고 싶습니다. 노동자가 살아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래께는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건강해라, 운동해라, 눈물을 보내십니다. 동지들.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복투 동지들의 한 서린 분노를 풀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지들과 함께 착취와 억압이 없는 누구나 평등한, 눈물보다는 웃음이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동지들!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세상으로 같이 갑시다. 동지들을 믿고 힘차게 투쟁하겠습니다!”

 

그리고 씨앤엠 노동자 임정균씨. 그는 먹튀자본 MBK 파트너스가 있는 빌딩 앞 전광판에 오르며 그의 아내에게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편지로 남겼다.

“…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결정하고 하는 거라…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해고대오들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회사에 대한 원망보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 같대… 젊은 시절 회사를 위해서 누구보다 잘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별로 필요 없어서 버려진 것 같다고 많이들 아파해…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노동자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 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코오롱 해고노동자 최일배씨는 13년 동안 근무했던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정리 해고된 후 10년 동안 세 번 구속되었고, 점거/고공농성/불매운동/자해 등, 말 그대로 죽는 것 빼고 다 해 보았다. 그런 그가 이제 죽기를 각오하고 코오롱 본사 앞에서 40일 가까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하늘 위로 오르고, 곡기를 끊고, 분신을 하며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일 하고 싶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 “인간대접 받고 싶다” 단지 그것이었다. 이 소박한 요구들이 지금, 아니 벌써부터 전국에서 터져 나왔지만 철저하게 유령인간의 그것으로 취급되었다. 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데도 ‘갑’은 관심은커녕 침묵과 폭력으로 대답하였다. 점점 더 간악해진 ‘갑’은 이제 아예 교섭에 나서지도 않는다. 주류언론은 이 상황을 기사화하지 않으며 진보단체는 공론화하는 일에 소극적이다. 유령인간의 노동은 필요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땅바닥에 떨어지든 사다리나 맨홀에 갇히든 대공장에서 잘리든 말든 그것엔 관심이 없었다. 진보학자인 척하는 한 대학 강사는 희망버스의 원동력은 자기보다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라 폄훼했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을 자랑하고 경제학 이론에는 해박하지만, 왜곡된 ‘맑스주의자’에 불과했으며, 사회를 보는 눈은 과거의 나에 머물러 있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새벽은 가까워 온다

 

사람들이 희망버스에 오르고, 씨앤엠 고공농성장을 찾아가고, “코오롱 아웃”을 함께 외치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파업에 동참하고, 경비노동자의 참상에 분노한 것은 연민이나 동정 그리고 부채의식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연료로’1) 싸우는 이들을 더 이상 유령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들의 절박함은 또한 동시에 나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자신의 일터에서 퇴로가 막힌 채 이러한 위기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을 우리는 매일 만나고 있다.

몇 개 동만 있는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던 A씨는 최근 아파트입주민 대표한테서 일주일에 3일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 3일 근무에 합의하였고 임금은 당연히 반으로 깎였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그의 일은 두 배의 노동 강도가 요구되었다. 대학의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학과가 없어지고 난 후 전공과목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된 B씨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시간강사로 초급 수준의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생활수준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C씨는 병원의 경영상/재정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10년 넘게 일했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잘릴 위기에 처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족 같은 관계라며 공생과 상생을 외치더니 오늘은 돌연 얼굴색을 바꾸었다. 대한항공의 조현아의 ‘땅콩’이 이륙직전 비행기를 후진해 베테랑 승무원을 내리게 하는 이 비정상적인 ‘갑질’ 사회에서 이들 힘없는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더 이상의 퇴로가 없다.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 결국 저 괴물들에 맞서 싸우고 세상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모든 ‘유령인간’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앞장선 선진노동자들과 결합하여 이 강고한 세상에 균열을 낼 것이다. 전국의 모든 차광호와, 최일배와, 김혜란과, 강성덕과, 임정균과, 이만수가 이 암울한 어둠을 뚫고,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을 기어코 열고 말 것이다. <노사과연>


1) 윤지연 기자, 코오롱 최일배 위원장 단식 34일째, 각계각층 ‘3650인의 화답’ 호소,《참세상》, 201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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