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우리 동철이와 세진이는 요즘 어떻게 지낼까?

―아름답지만 잔혹한 환상.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유재언 |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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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깡패 같은 애인(2010년)

연출: 김광식

시나리오: 김광식

주연: 박중훈, 정유미

 

이 말이 언제 생겼더라. 청년백수, 이태백, 사오정….기억이 안 난다. 어느 순간에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하도 들어서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이런 말들은 최소한 예의(?)는 있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었다(고 믿고 싶다). 이건 잘못된 것인데 지금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온 말들이다(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주변이 이태백, 사오정이다 보니 우리가 내성이 생겼나 보다. 이제 그러려니 하며 담담히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현실을 수긍하니까 이제 더 예의 없는 것이 나왔다. 열정페이, 중규직… 열정으로 적은 급여를 감수하고, 정규직이라고는 하는데 실상은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처우를 받아들이란다. 어디 그뿐인가. 최경환 부총리는 이제 대놓고 정규직 보호가 너무 과하다는 망발까지 하며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누굴 탓하겠는가.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망을 보여주고 함께 싸워서 권리를 쟁취하고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많은 동지들이(그들이 정말 동지였을까?) 경제주의, 개량주의 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회적 합의, 대통합, 동반성장 등등에 놀아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 대가로 노동자, 민중의 삶은 피폐하다 못해 이제 바짝 마른 낙엽처럼 부스러지기 일보직전이니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될 수 없어도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노동자의 눈으로 무언가 볼 수 있고 노동자의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이 척박한 세상에서 서로 위로해주고 작은 희망을 찾아가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년)1)’이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하는 작품답게 인물설정이 꽤 과감하다. 지방대 출신이지만 스펙이 빵빵한 세진(정유미 분)은 다니던 회사의 부도로 실업자가 되어 버리자, 허름한 빌라의 반지하방으로 이사 온다. 세진은 시골에 계신 아버지에게는 회사일이 바빠서 집에 못 간다고 안심시키며 불철주야 이력서를 뿌리며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은 다 찾아가는 열혈청년백수다. 그런데 아뿔싸 이럴 수가!! 세진의 옆방에 나이만 먹은 양아치가 살고 있으니 그가 바로 동철(박중훈 분)이다. 동철은 동네유흥업소 몇 군데 운영을 도와주는 날건달이다. 싸움실력은 예전만 못하니 업소에 오는 진상손님들에게 얻어맞기 일쑤지만 입심은 살아있고, 조직 보스를 위해 대신 옥살이를 할 정도로 의리는 있어서(실은 그 의리라는 게 어리석은 것임을 동철도 알고 있다.) 조직입장에서는 마지못해 데리고 있는 계륵 같은 존재다. 이 두 사람이 이웃사촌으로 서로 이런 저런 일에 얽히고 본의 아니게 서로 미묘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과정들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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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진은 취업을 위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을 느꼈는데, 첫째는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고학력 청년백수(세진)와 일자무식 깡패(동철)가 실은 매우 닮았다는 점이요, 둘째는 차이점인데 일자무식 깡패가 고학력 청년백수보다 세상을 좀 더 제대로(진실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닮은 점은 세진과 동철은 모두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서 더 나은 삶(신분 상승)을 원한다는 것이다. 세진은 좋은 조건의 회사에 다시 취직해서 얼른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하고 동철은 조직 보스를 대신해서 옥살이를 했으니 그 조건으로 얼른 업소 한 개 넘겨받으며 현찰을 좀 챙기고 사장님이 되어 업소 시다바리 생활을 쫑내고 싶어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 세진은 면접장소에서 춤과 노래까지 하고 동철은 업소 운영에 방해되는 놈들에겐 무조건(조직 간의 나와바리도 고려하지 않고) 린치를 가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세진은 면접장소에서 굴욕감만 느끼고, 혹시나 하고 기대를 갖고 만난 다른 회사 인사담당자(라고 속인 사람)은 세진을 모텔로 데리고 가서 노골적으로 성접대를 요구한다. 동철도 절망적이다. 동철이 공을 세워 보려고 했던 짓은 이미 조직들끼리 윗선에서 교통정리가 되어 있었으니, 동철은 오히려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 꼴통으로 찍혀버린다. 즉, 동철이 아픈 몸을 이끌고 싸움질을 해봐도 동철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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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패 동철은 이 세상이 어떤지 제대로 알고 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이런 굴욕과 좌절을 겪고 나서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고학력 청년백수 세진은 구직에 실패할 때,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인생이 이렇게 꼬여야 하냐며 신세 한탄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더 노력하면!!), 자신을 차별(학력, 여성)하지 않는 좋은 회사를 찾아서 면접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동철은 세진보다 가방끈도 짧고(중졸) 생각보다 주먹이 앞서서 일을 자주 그르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직관은 세진보다 뛰어나다. 동철은 논리적인 설명 따위는 할 수 없지만, 세진처럼 성실하고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 젊은이가 회사에 취직 못하는 것은, 세진의 노력이 부족해서, 실력과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이 사회, 이 체제)의 문제임을 알고, 현재의 세진에게는(세진이 원하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위로를 해 준다.2) 이 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좀 불편하고 불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고학력 청년백수를 포함한 어렵게 사회에 진출한 고학력 노동자들은 자신이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언젠가는(도대체 그날이 언제 오니?) 나도 떵떵거리며 신분상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아시는가? 허위의식이라고 한단다. 자신이 가진 건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노동자이지만 언젠가는 노동자를 뛰어넘는 근사한 무엇(잘 풀려서 자본가가 되면 더 좋고!)이 될 것이라는 근거가 거의 없는 환상…. 멋있어 보이지만 현실은 잔혹 그 자체인 거짓 환상… 근거가 거의 없다고 한 것은, 실제로 역경을 딛고, 갖은 노력으로 분명히 신분상승한 노동자 출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그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서 다른 노동자, 그리고 노동력을 팔 기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산업예비군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거의 거짓인 희망을 안겨준다.3) 이 영화에서의 세진은 아마 그런 거짓 환상을 일방적으로 주입받고 자라지 않았을까.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동철의 그런 직관은 오랫동안 밑바닥에서 고생을 하며 체험하면서 실제로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며 얻은 것이겠지. 사회에 나오기 전에 책으로 일방적인 교육을 받으며 현실에 순응하며 자라온 세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을 이해했을 테니까 말이다. 세진과 다르게 동철은 그 직관으로 자신이 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4)

그렇다고 영화를 세상을 바꾸는 운동과 ‘너무 연관’시켜 해석하려 하면 곤란하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니까. 이렇게 동철은 여러 일을 세진과 같이 겪으면서 세진의 취업이 곧 자신의 일이 되어 버린다. 동철은 조직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세진의 취업을 위해 노력한다. 동철의 노력이 통했는지 세진은 평소 원했던 학력차별, 성차별 없는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 물론, 세진의 취업 때문에 동철이 겪게 되는 대가는 굉장히 컸지만 말이다. (어떻게 일자무식 깡패가 열혈청년백수의 취업을 도와줬냐고?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루냐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 그만!!)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성공하고, 세월이 좀 지나서 어느 날 세진은 꿈속에서 동철을 만난다. 세진은 동철에게 고백한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준 이웃사촌 동철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가슴이 아려오는 장면이다. 꿈에서 깨어나자 다시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세진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해서 최연소 팀장의 자리까지 오르고, 대가를 치른 동철은 평소 원했던 만큼 일들이 풀리지 않았지만, 조직에 들어왔던 후배와 함께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세진과 동철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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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웃음을 아니 우리들의 웃음을 꿈에서 아니라 현실에서 보고 싶다. 꼭 보고 싶다.

 

이제 졸고를 마무리 해야겠다. 이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있고, 사람 간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건강한 영화다. 그리고 보는 내내 동철과 세진이 보여주는 진심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편으로는 좀 답답했다.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결국 잔혹한 환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세진이 정말 회사에서 승승장구해서 최연소 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취업을 미끼로 모텔까지 끌려갈 정도로 순진하고 맹한 구석이 있는 세진이 그게 가능할까? 동철이 현실에서 그런 고초를 겪게 된다면 몸이나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 영화는 재밌게 봤지만, 이 답답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약 2시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남은 시간의 행복은 영화가 만들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페이, 중규직, 시간제 일자리 등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삶이 파괴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세진은 정말 행복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그리고 동철은 어땠을까? 일자무식 깡패가 이 사회에서 온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동철보다 더 이 사회가 이 체제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던 사람들도 버림받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 답답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실천이 부족할 뿐이다.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강한 단결과 연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바꿔 나가야만 이 답답함을 해결하는 일말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세진(정유미)이 행복하게 노동할 수 있을 것이고, 동철도 좀 더 이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바란다. 5년 뒤, 10년 뒤에 아니 되도록 빨리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이런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운 환상을 진짜 아름다운 현실을 느끼고 싶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노사과연>


1) 이 영화를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실제로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못해 괴로워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2) 이 영화에서는 동철과 세진이 동네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동철의 대사가 압권이다. 동철이 세진에게 아직 취직이 안 돼서 놀고 있냐고 매너 없게 물어보며 이렇게 얘기한다.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는데 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애들은 착해요. 테레비에서 보니까, 프랑스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아우,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마.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XX.”

3) 요즘 SBS의 힐링캠프나 삼성에서 정기적으로 꾸준히 열고 있는 토크콘서트 열정樂,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처세술, 성공노하우, 창업관련 서적들을 보라.

4) 동철은 조직에 갓 들어온 후배가 조직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갔다 오겠다고 하자 못 하게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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