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 동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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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9월 12일에 민사재판 첫 재판이 있었습니다. 법무부에서 준비서면을 제출하였고 우리는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법무부 훈령, 예규 등 비공개 문서들) 하였고, 전주교도소에 서신검열에 관계된 전반적인 사실조회를 신청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였고 문서제출 명령신청은 법무부의 답변을 듣고 다음 재판에서 판단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재판 변론일은 10월 24일입니다.

민사재판 출석 호송비용은 자부담이어서 104,600원을 냈어요. 전주교도소에서 서초동 법원까지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더군요. 오랜만에 밖의 풍경을 보니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추석연휴가 지나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서울 도심의 거리가 한산했어요. 재판이 끝나자 교도관들이 바로 이동을 시켜 송상교 변호사님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급히 돌아왔어요. 오늘 송변호사님이 편지와 재판 자료들을 보내주셨군요.

정부공단에서 제출한 답변서 자료 가운데 행사재판 1심 판결문이 있군요. 과거의 악몽이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너무나 사실과 다른데도 나를 ‘간첩’으로 판단한 판결문을 다시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의지만 강해집니다.

추석전에는 공동면회단에서 다녀갔고, 추석연휴인 9월 6일에는 대구에 사시는 한기명 여사님(범민련), 신동숙 여사님(인혁당 사형수 도예종 선생님 부인), 윤종순 여사님(학산 윤윤기 선생님 셋째 따님), 김대용(대구 통합진보당)님이 다녀가셨어요. 신동숙 여사님은 남편분 이야기를 해주셨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 우시더군요. 저도 먹먹하고 숙연해졌습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신 신여사님을 직접 뵈니,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얼마나 깊고 한이 맺힌 것인가 뼈 속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가끔 제가 나약해지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굳게 마음을 먹어야겠습니다.

≪노동사회과학≫에 제출할 논문의 개요를 잡았고 지금 집필 중입니다. 다음주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생각 중이고 주요 논지는 1950년대 인도 공산당의 노선투쟁의 내용과 비판입니다.

1948년 인도공산당은 뜨로츠끼주의와 유고슬라비아의 잘못된 노선에 경도되어 혁명에 실패하여 좌초됩니다. 1950년 모스끄바에 가서 스딸린에게 자문을 구한 뒤 돌아와서 겨우 인도공산당을 수습하고 인도식 노선을 제안하지요. 그때 중국공산당 혁명전략 목소리가 높았는데, 당의 단합이라는 이유로 얼렁뚱땅 넘어갔어요. 인도공산당은 1952년 제1대 총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런 내용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글이 될 것입니다. 인도공산당의 의회주의 전략1)은 그 당시에는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956년 쏘련의 평화공존 노선 우경화로 인도공산당 내부에 큰 혼란을 야기하지요. 네루의 비동맹 외교전략도 큰 영향을 줍니다. 이때부터 인도공산당이 혼돈에 빠지게 되지요. 의회참여는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논문은 1960년대 인도공산당의 분열과 그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인도공산당은 과거에 비해서 영향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인도 사회의 계급대립과 모순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정세 변화에 따라서 인도공산당의 혁명 전통이 강하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도를 긴 안목에서 봐야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뉴스에서 박영선 의원의 탈당설까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새정연이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야당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다들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 연구소의 과학적 이론 정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유행처럼 경제적 부의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세금 징수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 이론적으로 냉정히 따지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대중들의 환상을 깨야할 것입니다. 그런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양심적인 연구자들이 마음껏 활동하게끔 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여러 제약 때문에 위축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제가 부족한데도 감옥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연구자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함인데,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해요. 최 동지께서도 많이 힘드시겠지만 조금 더 힘내세요. 저도 더 힘낼게요.

9월 23일 전화신청을 하였습니다.

전주 KBS 한주연 기자님께 방송 다시보기가 일정기간 동안만 가능한지, 아니면 계속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지 알아보시고 방송녹화 테이프라도 복사 신청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요. 출소 이후에라도 꼭 그 프로그램을 보고 싶습니다.

어제(9월 14일) SBS 8시 저녁뉴스 보도에 북이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을 개발하고 있음을 우리 군이 인식하였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군요. 핵미사일 장착 잠수함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6자회담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요. 북의 군사력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네요. 참 걱정스러운 일이에요.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우리 사회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을까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 겠습니다.

그럼 전화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병진 드림

2014. 9. 15.

밝은 최상철 동지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여름 내내 운동을 열심히 하여 5kg의 체중을 줄였어요. 건강이 좋아졌어요. 지난 첫 민사재판 때 방청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시니 제가 더 미안하고 죄송해요.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으신데, 재판에 참여 못한 일을 미안해하지 마세요. 제가 최동지에게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대한 노력하고 집중하려는 것입니다. 재판 출석도 나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재판에 임하는 나의 의지를 재판부에 분명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수갑을 두 개씩이나 차고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여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민사법정에 나가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불법적인 서신검열을 단죄하려면 그런 모멸감을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재판 일정을 석방모임에 공지하시겠다니 좋습니다. 서신검열 재판의 사회적 관심과 여론을 재판부에 알려 의미 있는 판결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10월 24일 두 번째 재판도 법원에 출석을 할 것입니다. 그전에 송변호사님이 접견을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강성준 동지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송변호사님께 응원의 힘을 보태어 주세요.

오늘 여동생과 부모님이 면회 오셨어요. 징역 초기에는 가족 접견도 시켜주었는데, 전주교도소 측과 다투고 있어서 그런지 가족접견도 허용하지 않네요. 부모님들은 제 상황을 이해하시고 용기를 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동생은 가족들의 고생과 상처 때문인지 저에게 속상함을 갖고 있어요. 요즘 시대의 평균적 여성들의 입장이 그럴 거예요. 세상이 좀 더 좋게 바뀌려면, 그 일을 추진하고 실천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주류사회에서 배제되고 지배계급에 밉보여 봉변당하는 사례들이 많다보니 불안해하고 근심어린 눈으로 저를 보는 것이겠지요. 동생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며 ‘미안하다’는 말만했어요. 나보고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는데, 그럼 우리의 현실은 무엇일까? 같은 형제, 자매인데도 현실 인식이 참 다르네요.

물론 제 길이 주류 사회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은 맞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주류층의 시각과 생활이 돌다리처럼 튼튼한 기반 위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변화에 동참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요. 여동생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주부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높은 벽을 실감합니다. (중략)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인민들이 혁명에서 성공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자주의식이 없어요. 늘 지배계급의 눈치를 보며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나마 용기 있는 대중들이 조그만 움직임만 보여도 국가보안법, 집시법, 여론조작과 감시 등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억누르고 탄압하니까 참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탄압이 무서워 침묵한다면 지배계급은 대중들을 더욱 무시하고 착취하려 들겠지요. 그래서 고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인데, 대중들이 그런 사회변혁 운동에 동참하기는커녕, 종북이네 빨갱이네하며 공격하는데 참담한 심정이에요. 그런 무지몽매하고 이기심으로 가득찬 욕망 덩어리 사람들을 볼 때마다 벽을 느낍니다. 그런 벽을 깨 힘을 모으고 조직적인 세력을 키워야겠어요.

오늘 ≪21세기 자본≫을 받았습니다. 여론에서 크게 떠들고 선전을 해대서 호기심에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태생적으로 불평등한 분배구조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로 통제해야 한다는 게 피게티의 주장인데, 제게는 공허하게 들립니다. 근본적으로 모순이 가득찬 자본주의를 해체하지 않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되요. 오히려 ≪자본론≫을 읽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더 갖게 됩니다.

우리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공유되어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안을 찾는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으로 번역문도 제출하고 논문도 쓰고 있습니다.

과거 학술진행재단 홈페이지에는 개별 연구자의 연구 실적을 등재하게끔 합니다. 최근에 학술진행재단이 새로운 조직으로 통합되었는데 확인해보시고 제 연구 업적과 글들을 등재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아보고 싶어요. 확인해보시고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 동지께서 저의 대리인으로 대신 관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세와 노동≫ 번역글도 중단 없이 연재가 되도록 하여야겠어요. 중간에 연재가 중단되면 독자님들의 신뢰를 잃게 될까봐 걱정입니다.2)

정설교 시인님이 제 자서전 그림을 그려주시겠다고 하셨는데 1년 6개월 징역을 선고받으셔서 안타깝군요. 정설교 시인과는 가끔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정설교 시인님도 자서전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세요. 최상철 동지께서도 옥중서신집이 출간될 수 있게끔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안 통치가 장기화되면서 진보진영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어요. 완전히 군사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활력을 잃은 지는 오래되었구요. 돌파구가 필요한데, 턱! 턱! 장애물에 갈리고 탄압의 강도는 세지고 있어요. 어떤 강력한 반작용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예상됩니다.

남북긴장이 고조되겠지만, 이왕에 깨진 것, 끝까지 가서 결단을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 정책이 성공할 것 같지도 않아요. 이렇게 남북이 대결과 갈등하면서 끝날 것 같습니다. 인천 아시아 경기대회가 박근혜 정권이 남북관계를 바꿀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냥 무의미하게 흘려보냈습니다. 박정권에서 더 이상 남북관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허망해보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이어서 시리아 공습을 확대하고 있네요. 외신기사들의 보도는 미지상군 투입 없이는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할 수 없다는 경향이 강해요. 이미 CIA 특수군이 전개되었다는3) 보도도 있었구요. 결국 미지상군이 파병될 것이라 봅니다. 베트남 전쟁도 처음에는 공습만하다가 지상군까지 파병하면서 전면전으로 번졌듯이 대이슬람국가 전쟁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지금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단조로운 이곳 생활에서 비오는 소리만으로 추억의 향수와 애뜻함을 불러 일으켜 옵니다. 좀 더 참고 이겨내면 최 동지와 비오는 밤에 밤새 이야기 나누며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아직 실감나는 일이 아니지만 그날이 조금 가까워졌잖아요. 최 동지께서도 건강 잘 돌보세요. ≪정세와 노동≫ 9월호 나오면 보내주세요.

논문 쓰면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연구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자꾸 나오네요. 완성이 되는대로 보내겠습니다.

이병진 드림.

2014년 9월 23일

그리운 최상철 동지께

어제 송상교 변호사님이 다녀가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규정이 바뀌었다면서 변호사 접견을 장소변경접견 기준에 따라야 한다며 접견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송변호사님이 항의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변호인 접견까지 방해한다니 말도 안 되지요. 천주교 인권위원회에 사실을 알리고 대응 방법에 대해서 도움을 부탁드렸습니다4).

지난 5월에 국가인권위원회에 공안수 수용과 이송 차별 진정에 대한 답변이 왔는데 이것도 기각되었어요. 경비등급과 달리 공안수들은 예외적으로 이송할 수 있다는 내부지침에 따라 차별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법무부 장관의 재량권이라고 하는군요. 이 문제도 천주교인권위에 조언을 부탁드렸습니다. 최상철 동지께서도 천주교 인권위에 이와 관련된 사안들을 공유하시면 좋겠습니다.

2차 변론기일은 예정대로 10월 24일에 열리고 이번에도 저는 법정에 출석합니다. 송 변호사님께서 열정적으로 변론을 준비하고 계시니 응원 부탁드립니다.

전주교도소에서 2013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서신검열 목록을 제출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최상철 동지께 보낸 서신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서신검열<사실조회에 대한 회신>도 함께 보내니 자세하게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전주교도소는 ‘석방모임카페’ 활동을 서신검열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따라서 석방모임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시고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시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인 형식과 내용, 방법에 대해서는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송상교 변호사님과 의논하시면 좋겠군요. 제 의견도 있지만, 서신이 검열되므로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어제 송변호사님과 대략적인 이야기는 하였습니다. 서신검열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재판부에 알리기 위해서 변순영님께 의견서 제출을 부탁하려고 해요. 최상철 동지께서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제출방법은 송상교변호사님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을 카페에 공지하셔서 서신검열 피해자 분들께서도 재판부에 의견을 내주시면 재판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을 보내드리니 카페에도 올려주시고 재판에도 적극 참여하고 관심을 갖게끔 해주세요.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10월 28일에 전화드리겠습니다.

≪노동사회과학≫ 논문 제출은 지연되고 있어서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습니다. 초안은 써놓았는데, 수정을 하면서 다시 자료들을 읽으면서 혼선이 있네요. 1950년대 인도 공산당 내부에 노선투쟁이 치열했는데, 참고하는 저자의 시각에 따라서 해석이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제가 확신이 안 생겨요. 특히 선거참여와 평화이행노선과 무장투쟁노선이 충돌하는데 간단치 않네요. 코콤도 1947년에 폴란드에서 첫 회의하면서 노동계급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강조하다가 중국혁명이 성공하면서 입장변화를 보입니다. 1945년부터 1950년대 초에 쏘련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노선들이 충돌하였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논문집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도공산당은 인민전쟁노선 전략에 따라 부르주아와 연대투쟁으로 반영전선을 구축하려 하지만, 반파시스트 전선에 묶여서 반영투쟁에 적극 나서지 못하지요. 그에 대한 반발로 티토식 유고슬라비아 게릴라 투쟁 노선의 극좌노선이 1947년도에 인도공산당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제가 볼 때는 이것은 당시 인도 정세에서는 무모한 봉기죠. 문제는 유고슬라비아 대표단이 인도에 와서 인도공산당에 영향을 주었던 유고슬라비아식 모델이 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문제가 해석이 안 되어 논문이 교착상태입니다. 추측하건데 뜨로츠끼의 노선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자료가 없어서 답답합니다.5)

재미 있는 점은 1950년 6‧25 전쟁으로 미제국주의의 침략본성이 국제적으로 확인되면서 신식민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평화이행노선(인민정권건설)이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6‧25 전쟁의 국제적 성격을 새삼 깨닫게 되었네요. 논문 제출은 지연되고 있지만 가능한 완성해서 제출하려고 해요. 부족한 자료는 없는 대로 비워두고 전반적인 흐름과 맥락만이라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정세와 노동≫ 번역 작업은 중단되었는데, 분발하여 계속 진행하여야 겠습니다. 독자분들에 대한 약속과 신의는 꼭 지키겠습니다.

최상철 동지와 연구소 동지들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우리 연구소가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서 선봉에서 싸웠는데 성과가 미미해서 안타깝습니다. 요즘 남북관계도 대화와 군사적 충돌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종잡을 수 없군요. 북은 자신감을 갖고 적극 나서려는 것 같은데 박정권은 미국에 자꾸 의존하려 하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내부의 일탈을 막기 위해 공안통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뉴스에 감청 영장의 87%가 국가보안법 사건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내사가 진행되고 있을까 섬뜩합니다. 아무쪼록 신변 안전에 각별히 신경쓰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검찰 오빠들까지 설치고 다니며 인터넷망 감시와 도청을 한다니 민주주의는 끝장났습니다.

어제는 막내 남동생이 4살 조카 데리고 면회 왔어요. 그 어린 아이가 ‘큰 아빠’ 하는데 목이 메이더군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최상철 동지도 힘내세요!

이병진 올림

2014. 10. 21.


1) 편집자주: 인도공산당의 의회주의 전략’은 ‘인도공산당의 의회참여 전술’이라고 바꾸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2) 편집자주: 연재 지연에 대한 책임은 이병진 동지가 아니라 최상철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3) 편집자주: 부정확한 표현이나 필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그대로 옮깁니다.

4) 편집자주: 법부부에서 관련 시행령을 변경하였고, 교도소는 이 시행령에 따라 조치를 취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부당한 시행령에 대해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해서는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단위와 함께 논의를 해 나갈 것입니다.

5) 편집자주: 당시 유고슬리비아 티토 수정주의와 관련한 논의가 인도공산당 내부에서도 있었던 모양이나 다른 인도연구자를 통해 확인해 본 바로는 이 논의는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소수를 통해서 잠시 제기되었던 주제에 불과하다고 한다.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Nov 6th, 2014 | By | Category: 독자편지, 정세와노동 | 조회수: 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