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월호는 우리 시대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국민간담회… 한 어머니와의 대화

세월호라는 말을 입에 담기가 민망할 정도로 유가족은 아직도 이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간담회를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제 모습을 바라보고 저희 모습을 되돌아보면, 이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가지고 있는 사명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 ‘정상적인 사회로 어떻게든 만들어놓자, 그렇게 바꿔보자’라는 막연한 마음으로 이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누가 하라고 시켜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 사건 이후에 저희들이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국민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이야기를 했어요. 돌아봤더니 제자리걸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지만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 많은 것들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희들이 이런 간담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은 국민들과 이런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상황들을 그냥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시대의 숙제,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사실 배가 침몰했지만, 그 배의 침몰로 인해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는 사건. 대한민국이 가진 모든 문제에 대한 침몰, 처음에 사건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침몰이라고 느낌이 왔어요. 이렇게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를 내가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고, 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어떻게 인양을 하고 끄집어내고 해서 이 사회에 반영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도 6개월을 거치면서 고민을 안 할 수 없었고, 제가 폭풍의 핵 속에서 이것을 겪어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침몰로 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 이것을 승화를 시켜내야 하는데, 어떻게 승화를 시켜낼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부모에게 준 숙제이고,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머리로 생각하면 그렇지만 가슴으로는 아직도 이 사건을 아직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단지 우리 아이가 내 옆에 없다는 그 상황만 인지가 될 뿐이지, ‘내가 이것을 왜 해야 돼? 내가 앞에 나와서 지금 이러고 있어야 돼?’ 하는 생각도 12번도 더 듭니다. 그렇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막연한 소명,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옵니다.

6개월 동안 우리가 참사라고 이야기하죠. 저는 참사라고 이야기하기 싫습니다. 죽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싫고, 희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싫고, 참살이었어요. 참살.

구조를 할 수 있었는데 구조를 안 했어요. 3일 동안 사체를 1명도 못 꺼냈어요. 말이 안 되는 거죠.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어요. 180도 오보를 했어요. 저희가 현장에서 철저히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합니다.

그 거대한 권력과 관피아, 그 속에서 국민들이 눈과 귀와 모든 정보들에 대해서 배제되고, 갇혀 있게 되고, 그 상황에 갇혀서 제대로 진실을 볼 수 없게끔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직접 나서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과 ‘함께 합시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왔어요.

6개월 동안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550만 명이 서명운동을 하고 특별법을 통해서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하고자 했는데, 저희가 진상규명을 할 수만 있다면 특별법 필요 없지 않냐, 그렇지만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특별법을 달라고 했고, 대한민국 최대의 변호사들이 법안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은 법안을 걸레법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로 국민을 한 번 기만하고, 두 번 기만하고, 세 번째까지 기만했는데, 또 어떻게 기만할지 저희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도 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정상적인 사회를, 정부를 정상적으로 바꾸고자 작은 부딪힘이라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하자고 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걸레법안 나올 가능성이 크지만, 저희가 실망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렇게 많은 힘을 모아주셨고, 함께했던 국민들의 마음조차도 다치게 하는 정부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국민여러분도 함께 깨어나 달라고 간곡하게 외치고 그랬지만 그 결과는 저희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여러분들이 실망하는 그런 경우가 생기더라도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 ‘여러분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는 그 날까지 함께 합시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해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한 번 죽어본 사람은 죽음이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지옥이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지옥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저희가 겪어왔던 6개월은 정말 죽음이었고, 지옥이었습니다.

한 번 죽어봤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 앞에 용감하게 나설 수 있다고 말씀 드리구요. 이럴 때 많은 힘 실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질의 응답

▶인양과 구조 중에서, 구조를 선택했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10명이 남아 있었죠. 부모라면 구조를 선택한 건 인간적인 선택이고, 인양을 선택한 거면 환경을 갇혀서.

인양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어떤 이들입니까? 인양비가 얼마나 들고, 손실이 얼마나 들고 이런 것을 계산하는 사람이 인양을 이야기 했습니다.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부모 입장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저 차디찬 바다 속에 있는데.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왔어요. 맞죠? 그래서 농사는 아주 잘됐습니다.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그런 것 까지도 슬픈데, 그 차디찬 바다 속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인양이 말이나 됩니까?

그런 정서를… 인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사고로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우리는 사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아이의 뼈라도 찾고 싶다는 심정인 거죠.

우리가 행사할 때마다 비가 많이 왔어요. 100일 행사도 비가 많이 왔어요. 부모라면 인간이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 구조를 결정하겠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엊그저께 아버님이 6개월 만에 아이 곁으로 갔어요. 알고 계신가요?

4월 초에 사고 나기 전에 종합검진을 했는데 정상이었어요. 아주 지극히 정상.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말기암 판정을 받고, 아이 곁으로 갔어요. 가시기 전에 말도 못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환하게 웃으셨대요. 사모님이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아 태범이다’, 그러고 웃고 가셨다는 거예요. 그게 부모마음입니다.

▶처음에 사건 터지고 나서 3일 동안 구조가 되지 않았던 그 때 그 상황에 대해서 혹시 기억나시는 부분이 있는지?

제일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사고가 확 터졌을 때 멈춰버린 거예요. 저는 아이 아빠가 자가용으로 가자고 해서 먼저 왔어요. 팽목항에 도착해보니 구조된 아이들은 이미 부모한테로 가고, 부모들만 있었어요. 관계자들도 진도 체육관에 와 있고.

어쨌거나 ‘전원구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려가다가 중간에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완전히 패닉상태가 됐죠. 진도 체육관에 갔더니 실종자, 구조자 쭉 나와 있는데 아이 이름이 없는 거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고, 내려가는 시간 5시간 동안 그 시간 동안 사망자 이름이라도 올라와야 하는데, 그 상황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 배로 아이들이 오고 있는 팽목항에 가자! 그래서 팽목항에 갔더니 거기가 너무 조용한 거예요.

저희는 뭘 상상하고 갔냐하면, 아이들이 어선이든 어떻게든 구조가 되어서 배를 타고 나오고 모포를 뒤집어쓰고 줄줄이 아이들이 나오고 있을 상황을 대비를 해서 갔더니, 가면 상식적으로 저는 앰블런스가 있고, 구조용 차량이 있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너무 조용했어요. 그 넓은 항에 아무도 없었어요.

저녁이 되면서 체육관에 있던 부모들이 오고, 언론이 오고, 그 때부터 진을 치기 시작.

파도는 너무 잔잔한데 어둠이 밀려와요. 배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만 배가 침몰한 현장에 갈 수 있는데 갈 수 없는 거예요. 어슴푸레 불빛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현장에 가겠다고 했더니 배가 없었어요. 주변에 있는 어선들, 어부들에게 배를 빌려서 나갑니다.

생난리를 치니까 해경이 배를 내줘서 1, 2대 나갔고, 어선의 배를 빌려서 나갔던 바다에 조명탄 300발을 쏘고, 구조를 하고 있고, 몇 백 척의 배가 와서 최대한의 구조를 하고 있다고 3일 내내 떠들었죠.

첫날부터 바다는 너무 잠잠했습니다. 해경 123정만 가고 나머지 몇 개만 그 주위를 배외했지, 헤엄쳐 나와서 탈출했던 아이들만 구조가 됐지 그 어떠한 구조대원도 배 안에 들어가서 유리를 깨고 아이들을 구조해 낸 것은 한 건도 없습니다. 300명의 아이들을 수장을 시켜놓고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는 그 시간에 아이들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인터넷 하고, 사진 찍어서 ‘엄마 아빠 기다리고 있어, 헬기가 떴어, 구조가 될 거야’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45도가 기울 때까지 선장은 기다렸다는 거죠. 해경 보트가 자신들을 구조를 하기 좋은 위치로 기울 때까지 기다렸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그 시간에도 기다리고 있었죠.

249명이 정말 혈기 왕성한 고 2에요. 헤엄을 쳐서라도 나올 수 있는 아이들이에요. 그런데 그 아이들을 ‘가만히 있으라’고 생매장을 시키고. 그것이 나중에 핸드폰을 통해서 증거자료가 나왔는데도 거짓말을 하고 있죠.

이미 부모들이 배를 빌려서 현장에 갔을 때는 배가 꼭지만 남고 침몰을 한 그 상태에서 아마 에어포켓이 있었으면 공기가 있었을 텐데, 이미 사건은 다 벌어진 상황이었어요. 그 상황에서 부모들이 뛰어들지 않겠습니까?

하루는 참았어요. 왜냐하면 2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기대심리가 있었으니까. 이틀째 또 쑈를 했죠. 에어포켓에 호스를 연결해서 유지하면 아이들이 그 공기 속에만 있으면 살 것이라고 해서. 그런데 그것이 (산소) 에어가 아니라 질식사 시키는 (질소) 에어였어요. 그것을 나중에 알게 됐죠. 하는 척 했습니다.

4일째 되는 날, 5일째 되는 날까지 컨트롤 타워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와서 ‘모든 것을 동원해서 구조를 하라’라고 하고 갔어요.

그것이 땡이에요. 현장에서는 구조를 해낼 수 있는 인력과 장비가 없었구요. 제가 물어봤어요. 지금 배가 완전히 침몰한 상태에서 배가 5m까지 내려갔는데, 생존자가 있다고 아직까지도 믿고 있는데, 잠수사가 내려갈 때,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매고 내려가는데, 생존자를 발견해서 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그 아이라도 살리게…

왜냐하면 (바다속) 2~3m에서 올라오려면 그냥 올라오면 폐가 터져서 죽는다는 거죠. ‘이 아이들이 폐가 터지지 않고,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메고 올라올 수 있는 구조장비가 있냐?’라고 물어보니까 해경청장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 동안에 쌩쇼를 한 거죠.

유가족들이, 구조를 해 달라, 이런 것이 필요하다, 저런 것이 필요하다, 해달라고 했을 때, 그럼 그거 해줄게 그거 하나 해주고.

민간잠수사 얘기도요, 민간잠수사들이 구조하러 왔는데 다 막았다고 했죠. 정말입니다. 해서 민간잠수사도 홧병이 났습니다.

사고가 났어요. 그럼 상식이잖아요. 상식 선에서 “우리가 뭘 해야 된다”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정부가 그 큰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무수히 많은 국회의원과 정부 관료들이 왔다 갔죠.

사진 찍고, 컵라면 먹고, 자기네들 정치행보 하고 갔습니다. 어느 누구하나 발 벗고 나서서 무엇을 해결 해야겠다, 그런 거 없었어요.

부모들이 요구하면 그거 가지고 그 방법 써 보고, 또 부모들이 요구하면 그 방법 써 보고. 그렇게 해서 에어포켓 사건도 나온 거예요.

에어포켓 그게 산소가 아니고 질소였다는 사실, 뒤늦게 알게 됐을 때 부모마음이 어떻겠냐구요.

아이들을 살리려고 산소를 주입하라고 했는데, 죽이는 가스를 주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부모는 어떻겠어요.

그 지옥 같은 상황들을 견디면서 5일째 되는 날, 책상을 뒤엎고 청와대를 가겠다고 나서는 부모들을 경찰병력이 부모 1명당… 지금 대한민국의 경찰이 거기 다 왔을 거예요. 이 부모들이 폭도로 변하지 않을까, 그것을 염려를 해서 3~5일 동안 투입된 경찰력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그리고 사복경찰이 300명 이상 있었어요. 그래서 큰 소리 내고 목소리 내는 부모가 누군지 다 사찰당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책위에 계시는 부모님들 그 사건 있었잖아요.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 그거 사찰 아니라고 믿는 사람 별로 없을 거예요. 누가 봐도 뻔한 일인데, 물론 잘잘못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민감하게 다룰 사건도 아니었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사건 중에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들을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보도를 하는 거죠.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유병언이 사건”으로 흐른 것, 그렇게 호도를 하고 방향을 그렇게 몰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국민들이 TV만 보면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거예요.

정작 잘못된 것은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났을 때 국가에서 어떤 책임을 지고,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진실규명이 되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힘들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제대로 된 법 하나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라고 하는 것을 국민들의 염원을 이렇게 막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과 밝히면 안 되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인데요. 여기에서 우리 국민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진짜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가짜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너무 너무 힘든 과정이지만, 지금 관심을 가지고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 앞에서 정말 부끄러운 시대를 만들어버릴 것 같아요.

칼 들고 찔러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린 지금 전쟁하고 있는 겁니다.

내 가족 잘 추스리고, 내 가족이 편하면 사회가 편하고 행복한지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훅… 너무 그냥 개념 없이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살지 않았나, 이런 것 때문에 하늘이 이런 숙제를 훅 던져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보니까 이런 아픔을 겪고 있고, 이런 환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여기에 널 부러져 있다는 것을 안 거죠.

누구도 세월호라는 이 사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인 나조차도 우리 아이를 내가 잃었지만, 우리 아이를 하나만 잃었으면 제가 아마 못살았을 거예요. 죽었을 거예요. 이 안타까움과 절망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 때문에. 그런데 이게 그냥 사건이 아니잖아요. 300명이라는 인재가 한꺼번에 훅 간 거기 때문에 훅 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비정상적인 입장으로 제가 서게 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300명이라는 이 소중한 생명들이 훅 간 것에 대해서 ‘이건 역사적인 무언가 메세지이고, 사명이다’라고 돌아봤더니 제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주변에 그런 사건 사고들이 얼마든지 있었는데, ‘안타깝다, 가슴 아프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을 썼던 것 같아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냥 살기에 급급했던 백성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1년 전에 해병대 캠프 사고 났을 때, 우리 아이들이 먼저 갔다 왔거든요. 말은 못했지만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1년 뒤에는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냐에 따라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내 이놈! 니가 잘못했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어른스러운 마음이 없으면, 국민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이 시대는 그냥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라고 묻거든요. 근데 그건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사회 속에서 세월호가 주는 교훈이 있잖아요.

세월호가 아니라도 뭔가 사건이 났을 때, ‘이건 뭐지? 잘못 됐는데?’라고 느끼는 그 올바른 마음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 같아요.

이렇게 참여해주시는 것, 유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알고 있나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이것부터가 전 지금은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일주일 만에 아이가 나왔어요. 천만 다행이었어요. 왜냐하면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아이가 안 나왔을 때 일주일이 지옥이지 않겠어요. 나왔을 때 그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느낀 거는 ‘지금이라도 엄마 옆에 와서 참 다행이다’ 그 아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못 찾을까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그 자리에 남은 부모님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제가 140번째였어요. 남은 부모님들에게 얼마나 죄송스럽고 힘든지, 지금도 10명의 가족에 대한 마음은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저희 유가족들도 몰라요. 그 사람들은 매일 죽겠죠. 그러면서 지현이가 어제 올라왔어요. 그걸 보고 기뻐하고 있고. 이게 정상이 아니죠. 그런데 이게 정상인 것처럼 사람들은 희미해지고 있고, 잊혀지고 있다는 거죠.

그 상황을 되돌리고 싶지 않아요. 아이가 (바다에서 올라) 오면 얼마나 힘들지… 모든 부모들이 한마음이 돼서 그 아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그 부모를 추스리는 과정에 더욱 걱정인 것은 팽목항에 남아 있는 가족들,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국민 여러분이 해주셔서 할 일 들이구요.

그 자리에 간다는 것조차 사실 힘들고, 왜냐하면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없다뿐이지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참 힘듭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져요.

아버님들이 3개월 정도 지나면 직장에 가요. 한 달 못 견디고 다들 돌아오세요. 엄마들도 마찬가지고.

저희들이 1년 생각을 했어요. 법적으로 보장된 기간이 1년이라고 하더라구요. 사망신고 할 수 있는 기간도 1년까지는 해주고.

힘들지만, 부모들끼리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분향소에 나와야 치유가 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참 나오기 힘들었는데, 그것이 없어지면 부모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지금 현재 팽목항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잠수부들의 실제 상황과 동절기 대책이 어떤지.

자세한 내막은 ‘진도분과’라고 해서 거기 계신 분들, 따로 각자 꾸려지고 움직이고 있어요. 정부에서 정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항상 변해요. 처음에는 언딘이 하다가 나중에는 개인이 들어갔다가 민간잠수사들이 들어가는 상황이고, 그것이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이것에 대한 문제들이 거론되고. 저희 가족대책위 쪽으로도 알려지지는 않고 있어요.

제대로 된 구조체계가 없으니까. 계속해서 인양을 거부하고 구조를 하는 쪽으로 날이 추워도 집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진도군민들 하고, 실종자 가족들하고 갈등에 대해서.

진도군민들하고 관계는 오랫동안 장기적으로 지속되다보니, 그들 생사가 달린 문제잖아요. 사실은 그 분들의 생계 이런 것도 국가에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길게 갔을 경우에 국가 책임이 사실은 크고. 그 상황조차도 세월호 가족들이나 대책위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으로 가는 거죠. 모든 것들이 피해자인 대책위에서 이런 것들을, 그런 문제들이 산재해 있어요. 다 일일이 할 수는 없잖아요.

진도 대책위 차원에서 그런 것들을 해결을 한다고 알고 있구요. 아직은 경황이 없지만, 이후에 김, 특산물, 농산물 판매 등을 하기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일반인 가족대책위 하고 갈등 관계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가족 대책위가 꾸려질 때 워낙 단원고 희생자가 많다보니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원래) 지금의 가족대책위는 실종자, 희생자, 일반인 다 아우르는 체계로 준비를 했었는데… 여러분 그거 아세요? 정부는 우리가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했고, 폭도로 변할까봐 진도 팽목항에 첫날부터 300명의 사복경찰을 풀고 저희가 중간에 진도를 한 번 내려가고 그런 사복경찰들이 다 따라붙어서 그걸 들켜가지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유가족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작전들을 사고 첫날부터 했었어요. 그걸 처음에는 몰랐죠.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런 상황들을 알게 되면서 깨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일반인 대책위와 처음에는 함께 가자고 했었죠.

올라오면서 지역이 안산과 인천으로 나뉘다보니까 일반인은 일반인 대책위를 새로 꾸려야겠다고 해서 꾸린 거고, 국회나 청와대 농성을 함께 움직이기로 했는데, 6개월 기간이 지나면 일반인은 학생들과 달라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굉장히 많아요. 왜냐하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권, 이런 게 6개월 만에 해결이 되어야 하고, 그 법적인 절차들 때문에 문제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렇지만, 그것이 분열되고 그들이 주장한다고 해도, 함께 가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뭐 몇 개월 이렇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1년, 최소 1년이잖아요. 1년 동안 갈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대책위 자체 내에서도 분열이 있었어요.

함께 가야 한다는 것과, 아니면 잇속을 챙겨가면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그런 분열이 있었는데… (중략)

그것이 여러분들이 느낌으로도 아시겠지만, 정부가 조작하고 분열시키는 하나의 상황이었다고 보시면 되요.

지금은 대책위는 다 함께 아울러 간다고 처음부터 이야기 했고, 언제든지 함께 간다고 하면 함께 갈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제주도의 화물기사 분들 그런 분들은 전혀 혜택을 못 받았어요. 생존자분들까지도 함께 뭉치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요.

▶아이들이 언제까지 부모들한테 연락을 했었는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고, 7시 45분쯤1)인가 나왔죠. ‘전원구조’ 오보가 났죠. 왜 이런 보도가 났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되죠. 그런데 그것이 잠깐 떴다가 오늘 아침에 보신 분들은 못 봤어요. 싹 사라졌죠.

“왜 그런 오보가 났을까”를 생각해도 ‘사고’가 아니고 ‘사건’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죠. 8시에 CCTV가 복구가 되고 딱 배가 넘어가기 전까지만 CCTV가 나오고 끊겨버렸어요. 정말 아이러니 하죠.

사고 나기 직전까지만 CCTV가 복구가 되고, 그 후로는 없어요. 8시 40분경 사이에 아이들이 막 문자 오고, 카톡 오고, 배가 완전 침몰 한 게 9시 몇 분인가 그랬어요. 그 동안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겠어요. 아이들 카톡, 문자도 보고, 부모하고 대화도 하고. 문자메세지를 왔다갔다 하고. 9시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아이들은 다 생존해 있었어요.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구조가 되고 올라오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올라온 아이도 있고, 휴대폰이 없는 아이도 있었어요. 구명조끼를 입고 올라온 아이들도 있고, 없는 아이도 있고.

아이들이 비닐에다가 휴대폰을 싸서, 왜냐하면 바보가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장난치고 그런 게 휴대폰 속에 담겨있어요. 그러던 아이들이 증거물로 찍고 메세지 주고 받고 그런 것들이 휴대폰을 살리면 살아있는 게 있고, 딱 고 순간부터 사라진 것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남긴 메세지가 많이 사라졌어요. 이상하다. 처음에는 막 상을 치르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두 달 정도 휴대폰을 복구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자들이 복구를 했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딱 그 만큼만 나오고 사라진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거기에 대한 의구심을 처음에는 가졌다가 지금은 우리가 아는 거예요. 지금 휴대폰 다 사찰당하고 있는 거 아시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우리나라에 정보통신망이라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우리가 직감적으로 감지를 하고. 휴대폰이 안 나온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나중에 휴대폰만 이렇게 온 경우도 있고.

처음에 왜 그렇게 휴대폰들이 안 나왔을까? 다 쥐고 있었는데. 정말 힘들지만 아이들이 이렇게 손에 휴대폰을 쥐고, 마지막에 남길 수 있는 그런 것을 쥐고 나왔는데, 그렇게 나온 아이들도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근데 이제 짐작컨대, 그것을 미리 수거를 해서 그들이 그런 식으로 하고, 그런 것들이 안 밝혀질 텐데, 너무나 자명한 게 많아요. 어떤 아이는 휴대폰을 안 가지고 갔어요. 집에다 놓고 간 아이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랑 주고 받는 문자메세지가 고스란히 집에 남아 있었던 거죠. 그래서 밝혀진 사람들도 있구요.

그래서 진실규명을 하다보면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던 것이고, 그런데 그게 가려지나요? 지금 이 시대에.

그 다음날 아침 10시까지인가 엄마하고 아이가 문자메세지 주고 받은 게 있어요. 그 밤을 지나고.

금방 통화해서 ‘엄마 우리 차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애’ 하고 뚝 끊어진 사례. 그런 사례들이 휴대폰 문자메세지에 남아있는 거죠. 그런 가슴 아픈 분들이 너무 많아요. ‘빨리 나와’라고 했는데, 아이가 ‘아니야, 엄마. 지금 나가면 다른 친구들하고 다 혼란스럽기 때문에 같이 있어야 돼’ 이런 메시지. “단원고 학생들은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는 (선원들의 방송).

그 아픔을 얘기하자면 너무나 국민들이 아파하고 그것을 기회가 있으면 다 드러낼 수 있는데, 안산시에 계신 분들이 마음을 너무 다치셔가지고 안 보려고 하는 게 많거든요. 직격탄을 맞았잖아요. 그분들은.

▶구조작업 당시에 언론만 보면 어느 회사가 이 배를 투입한다, 미국에서 군함을 보내준다 많은 얘기들이 나왔는데, 그것들이 실제로 투입돼서 활약을 했다 이런 얘기들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그거 그냥 정보였죠. 실제로 하겠다고 했다고 국정조사에 잠깐 나왔었는데, 해경이 민간잠수함2)도 차단하고 그랬다고 하는데, 어느 기관에서 누가 어떻게 차단을 했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국정조사에서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어요.

진상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해서 특별법 안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그것을 밝혀내야 하는데, 한 걸음도 못나가고 있는 거죠. 이것이 증거인멸방법이죠. 6개월이 지나고 시간이 확 지나가게 되면 그런 자료들이 다 소멸되죠.

국정원과 청와대에 100가지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한 건도 안 내놨죠. 그런 거죠. 그래서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특별법에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제대로 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그거 안 돼’라고 하고, 그래서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특검에 기소와 수사권을 넘기고 진상조사 조사권이라도 제대로 발동을 하게 하자’라고 가족이 한 발 물러선 상태에서 합의안이 들어갔는데, 그것조차도 ‘조사위원회 조사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으로 하자’라고 걸레법안을 만들고. 안 하겠다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 과정에서 저희가 싸우고 있는 이유는 ‘진상조사라도 제대로 해라’ 거기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나중에 특검에서 제대로 수사와 기소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 조사조차도 제대로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지금 정부의 입장입니다.

‘유가족들이 생떼 쓰는 거 아니야? 왜 자꾸 합의를 거부하지?’ 이렇게 가면 답이 없는 거예요. 내가 스스로 내 얼굴에 침 뱉고 내 발등을 찍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셔야 되요.

▶내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하겠다 그렇게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런 얘기들이 야당과 가족 대책위 차원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저희가 한 발 물러선 상황이잖아요. 왜냐하면 진상조사가 빨리 이루어져야 책임자 처벌을 하든 수사를 하든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한 발 물러서서 진상조사 위원회의 역할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처음에 야당이 내놓은 안, 우리가 내놓은 안을 절충을 해서 가지고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당은 또 딴 소리를 하는 거죠. 그래서 야당이랑 대책위랑은 계속 소통을 하고 있어요.

 

내일 당장 여야가 특별법을 처리한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할까.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통과될 것 같지 않은데…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되고, 유가족은 하도 많이 당해서 패닉상태에 있는 거고.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나중에라도 잘못됐다 되돌려라 그것이 어떻게 돼서 나올지는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도 국회 앞에 며칠 동안 가 있어요. 이 찬바람에 풍찬 노숙을 하면서. 국회 엄청 추워요. 그 한 여름에도 바람이 얼마나 센지. 11월 1일에 어떤 행동이 나올지는 저희도 모르겠어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그 전에 좀 더 압박을 하자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우리가 그렇게 안 했나요. 했죠, (저들은) 눈도 깜짝 안 해요.

여러분들이 몰라도 되는 세상을 알게 되면, 정말로 저희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를 아셔야 할 거구요. 여기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냥 ‘나 죽었소’ 하고, 유가족들 사실은 안 나오고 싶어요. 누구 말마따나 힐링이나 받고 병원 가서 치료나 받고 그러고 싶은 마음인데, 그러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을 안 해요.

우리 아이들의 메세지를 그냥 묻어둘 수 없어요. 왜냐하면 부모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세상이 이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우리 부모님이 저한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이런 세상이 분명히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한 세대 놓치고, 두 세대 놓치고 내가 놓치고 가다보니까 우리 아이들은 이보다 더 못한 세상에서 살아갈 확률이 높은 거죠. 아이들, 자녀분들 계시잖아요. 지금 여러분들이 겪는 이 가슴 아픈 고통 겪게 하고 싶지 않으시잖아요.

저희는 이 일이 저희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뵈면 굉장히 뿌듯해요. 마음은 아프지만. 슬픔이 항상 마음속에 깔려 있잖아요. 그런데 슬픔으로 까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으로 깔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가 주는 메세지 같은 거, 꼭 사명을 떠나서 ‘이러면 안 돼’ 라는 양심의 목소리가 늘 저변에 깔려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이 자리에 서서 이야기 하면 통해요.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만, 걸레법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굉장히 큰 성과에요. 처음에 유가족이 만든 법안을 내놨는데, ‘이것은 있을 수없는 법안이다. 이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정말 살 만하다’ 하고 만들어낸 법안인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랬더니 ’해봐야죠.’ 그래서 저희가 공개하지 않고 온 거예요.

사실은 4개월째인가, 상설특검을 가지고 나왔잖아요. 박영선 의원께서. 근데 우리가 내놓은 법안을 검토도 안 해보고, 유가족을 속여서 2차 3차까지 합의를 한 거예요. 황당했죠.

‘여야는 정말로 정치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은 국민들을 정치로 끌어갈 수밖에 없다. 정말 대한민국의 정치가 썩었구나. 그렇다면 이 썩은 것을 어떻게 도려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특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박영선 대표가 자진해서 물러났죠. (중략) 대리운전 사건으로 집행부가 바뀌면서 실제적으로 선택해야 할 방법들을 선택하게 된 거죠. 저희가 안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진상조사위원회 플러스 조사권, 플러스 특검에서 우리 편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 정부 여당에서 나온 사람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서 나중에 조사 수사 기소권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가 중요해서 지금까지 포커스를 맞춰서 온 거예요. 특검 여기만 신경 썼는데, 조사권까지 건드리는 상황에 온 거예요. 정말 치졸하고 쪼잔하고 비열하고 닭이라면 목이라도 비틀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전면전을 할 수 있는 야당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다는 사실. 누구 말마따나 김제동 씨처럼 목숨 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분, 그런데 정치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우리 시대에 지도자라고 하는 많은 분들, 지식인들이 가슴아파하고 마음아파하시고, 다 좋은데 그들의 마지막 결론은 항상 ‘내가 너무 힘이 없다. 뒤에서 도와줄게, 여러분이 앞장서서 나가면 도와줄게’ 이런 얘기를 들을 때 저는 제일 속상해요. 제가 나가서 독립투사가 되어야 하나…

제대로 된 방패하나 없이 싸워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분들의 마음을 모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과연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과연 내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 시대에 내가 주인이다. 주인 의식으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라!’고 내가 가는 길이 맞다, 아이가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머지 인생을 ‘산다’라는 표현보다는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숙제에요, 숙제.

▶ 수사권 기소권은 얼마나 진척이 되고 있는 겁니까?

특검,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특검에서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데, 두 달이 걸려요. 그 때부터 진상조사를 하는 거죠.

6개월 후에 이것이 문제고, 이것이 문제라고, 이것을 수사를 해야 하고 기소를 해야 한다고 하면, 특검에 넘겨서 판결을 내리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듯이 문제가 되는 것이 조사가 되고 수사가 되고 재판이 되고 그런 게 아닌 거예요.

일단은 진상조사를 하는 기간이 6개월 정도 되지 않을까. 특별법 안에 진상조사위원회 소위원회 3개가 있어요. 이제부터 시작인데, 사실은 삽도 안 뜬 거죠. 저희가 지금 집이 6개에요.

분향소, 광화문, 국회, 청운동, 진도, 재판 있죠, ‘너무 힘들다, 줄이자, 우 모여서 으쌰으쌰 해야 놀라는 거 아니냐.’ 우리가 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잔물결이에요. 이제는 간담회까지 왔어요. 간담회까지 나서는 것은 그래도 용기를 내서 함께 모여서 힘을 합쳤으면 해요.

지금 가장 시급한 게 사실은 진상조사잖아요. 내일 지나면 아우트라인이 좀 나올 것 같구요.

이런 간담회가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일어나기를.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것은 200일이 지나면서, 저렇게 으쌰으쌰 했는데, 정말 눈도 깜짝 않고 특별법을 걸레법안으로 만들고, 시간 끌기 작전으로 해서 국민들 피로를 높이고, ‘경제살리기’라는 이유만으로 세월호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찢어발기기를 한 거죠. 상처에다가 상처를 입히고.

지금도 계속 그런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배상 문제 나오면 ‘유가족들과의 문제, 다른 부분으로 빨리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끝까지 가야 한다, 마음이 다르다’ 이런 식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이간질 시키고, 국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을 이간질 시키고 그것이 수순입니다. 그리고 보․배상 문제 나오면, ‘그것 봐라, 너네들 돈 더 받기 위해서 그러지 않았냐’는 얘기들을 우리 국민들에게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해결을 못하는 거죠. 일베나 아버지 부대, 그런 분들 많이 보셨잖아요.

그런 것을 보고 우리 정서라면 ‘야 이놈아! 나쁜 놈! 그러지 말아라!’라고 철퇴를 가할 수 있는 국민들이 그냥 가슴만 쓸어내리고 있고, ‘오 왜 그러지? 그러지 말아야 되는데’ 그런 상황까지 가 있는 거예요.

그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우리 눈을 못 마주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그런 짓을 하고 있고, 댓글 올라오는 거 보세요.

그들이 알바를 써서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로 제대로 된 댓글을 올리면 ‘알바 쓰는 거 아니냐?’ 그러고. 그런 것들이 SNS 상에서 우리의 정서를 너무 이상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비정상인 거예요. 그런 것을 걸러줄 수 있는 역할들을 우리가 지금 해야 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 이 청소년들이 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제대로 정체성이나 사건․사고에 대한 정립을 해내지 않으면 정말 이상한 식으로 고민이 되는 거죠.

▶ 단원고 2학년 아이를 둔 부모들 이야기

안 그래도 고민인 부분이 얼마나 많아요. 엄마들이 걱정이시잖아요. 우리 아이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할까봐, 제대로 된 인성과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할까봐, 늘 노심초사 하는 것이 우리 부모잖아요. 그런데 그런 환경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은 더 많이 신경을 쓰셔야 하구요.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돌아봤더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우리 부모님들이 다 그래요.

그 아이들이 가고 나서 그 작품들을 보고 ‘왜 이 아이가 그 때 늦게 들어왔지? 왜 이 아이가 그 때 찜질방에 가고 산에 갔지? 이런 활동들을 했지?’ 하고 보니까 그 작품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모들끼리 모여요. 모여서 아이들이 맺어준 인연인 거죠.

처음에 팽목항에서 몰랐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들을 만나보니 그 성향이 아이들 속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너무 닮았고, 우리가 이제 18살 소년들처럼 그렇게 만나요. 그게 아주 큰 위안이 되고 있어요. 대소사 다 챙겨주고.

그리고 반별로 지금 2학년이잖아요. 2학년이 4월이니까 한 달도 채 안됐어요. 아이들이 근데 1학년 때 반이 바뀌어서 올라왔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학년 몇 반 모여 반별로 모인 거예요. 300명이… 생각을 해보세요.

한 반에 29명~31명. 1~2반을 빼고는 거의 다 전멸. 그러니 공감대 형성은 확실히 된 거죠.

그 부모들이 처음에는 내 새끼만 보이고, 내 아이만 보다가 나중에는 그런 거 있어요. 예슬이 전시회, 동혁이 엄마 같은 경우에는 아이 동영상을 공개하고 그런 부모가 있었지만, 내 아이를 드러내는 것도 싫어하는 부모가 있어요. 왜냐하면 아직도 시골에는 그런 거 있잖아요. 손주가 잘못된 거 모르는 할아버지가 있어요. 그래서 분향소에 사진에도 이름도 안 올라오는 그런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 ‘여기서 지금 슬퍼서 울기만 해서 되는 일 같으면 울자. 그런데 울어봤어, 한 6개월 동안. 안 돼, 싸워보자 해서 싸웠는데 철옹성이야. 힘드네.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가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주는 메세지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동안 국민들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그런 호의들, 그 감사함을 우리가 어떻게 갚아. 그거 다 빚이다. 이 빚을 평생 갚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아니냐. 이들에게 우리가 갚는다는 각오로 그렇게 살자.’ 그러고 있어요.

솔직히 부모들은 아이들을 잃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리고 못해준 것만 생각나거든요.

가난한 부모들도 있어요. 수학여행비가 없어서 이모가 돈을 꾸어줬어요. ‘어머니, 내가 지금 고2인데, 고2가 중간고사를 2주일 앞두고 수학여행을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수학여행 안 가겠습니다.’ 그래서 ‘이놈의 자식, 무슨 소리 하냐? 수학여행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추억이다.’라며 가라고 한 건데.

아이가 교실에 자기 꿈을 그려 놓은 게 다 있더라구요. 간간히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아이를 내가 정확히 몰랐고, 저도 그냥 부모로서 어떤 열심히 살아서 돈 많이 벌어서 아이 맛있는 거 사주는 게 그게 그냥 낙이었던 사람 중에 하나여서 그렇게 사는 것,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자유롭게 늘 연결되어 있고,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가고 나니까 너무 아쉬운 거예요. 아까워서 못 살겠더라구요.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알 수 없는 아이잖아요. 이 아이의 꿈이 그렇게 무참하게 짓밟혔다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아까운거예요.

꿈을 그려갔던 그 아이의 모습이 기억나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지켜내 주지 못했다는 부모로서의 그런 거… 그러면 그 꿈을 내가 대신해야 돼?

그렇지만, 이런 자각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 또래에 있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꿈을 그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세월호 통신≫ 2014년 11월 5일 (수) 발행 <제 3호>

4.16 진실규명을 위한 원주 사람들


1) 편집자: 시각에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편집자: 다이빙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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