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월호 참사는 노동자계급에게 어떠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가?

정인탁 | 원주지역노동자, 회원

2014년 4월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엄청난 충격이 한국사회를 강타하였다. 전 국민이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TV를 통해서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 혼란, 거짓과 은폐, 절망과 분노, 좌절과 투쟁이 마치 쇠사슬처럼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6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지금 세월호 참사는 초기의 교란요인들을 일정 정도 걷어내고 하나의 본질적인 투쟁으로 수렴되고 있다. 즉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타협할 수 없는 두 세력의 거대한 정치 투쟁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세력 중 한 쪽은 세월호의 침몰과 그 원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세력이다. 당연히 직접적인 학살의 책임이 있는 학살자들이다. 그들은 최근 수 십 년 동안 권력의 중심에서 이 땅을 부당하게 지배해 왔던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려 하고 있다.

다른 한 편의 세력은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과 그리고 그들과 동일한 피해를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소수의 학살자들에게 평생 착취와 억압을 당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에 본능적으로 공감하고 분노하면서 그 진실을 밝혀내고자 투쟁하고 있다.

우리들의 고민은 이러한 중대한 정치투쟁의 전선에서 노동자계급은 어떠한 역할을 자임하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가령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조 총파업!” 단순히 선언으로서의 총파업이 아니라 생산을 멈추는 실질적인 정치총파업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조직된 힘을 우리는 꿈꾸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의 모습은 우리가 희망하는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국 노동자 투쟁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은 세월호 투쟁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저 범국민대책회의 참가단체 중 하나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아니 꼭 세월호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중대한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위력적인 투쟁을 조직하기에 한국 노동자계급은 어딘지 모르게 둔해 보인다. 과연 왜 그럴까!

우리는 세월호 투쟁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노동자계급의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진단해봐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것이 세월호에서 학살당한 고귀한 생명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역사적 과제이다.

이 글의 필자 역시도 지난 6개월간 강원도 원주지역1)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실천 활동을 전개하면서 많은 벽에 부딪치고 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세월호 투쟁을 경험하면서 고민하게 되었던 우리 운동의 과제를 먼저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원주지역에서 실천과정에서 가졌던 몇 가지 원칙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처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자 원주에서도 자연스럽게 거리의 추모 행렬이 형성되었다. 민주노총 소속 현장 활동가들이 먼저 시작했다. 이후 지역 시민사회진영으로 확산되었다. 그 힘으로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분향소를 거점으로 세월호와 관련한 지역 투쟁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단식농성장 운영을 포함한 다양한 선전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활동해왔던 단체들이 공동 활동을 하면서 신뢰와 연대감이 깊어지는 성과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각 단체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면서 투쟁 방향에 대한 내부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 목격되었다. 세월호 투쟁 과정에서, 수 년 동안 민주노총 소속이었던 조합원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현장 활동가들 중 절대 다수는 세월호 투쟁 대열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평생 동안 투쟁이라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소위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일반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을 결의하고 나섰다. 소위 ‘일반 시민’이 더 자유로워 보였고, ‘조직된 노동자’들은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목격하면서 필자도 매우 큰 혼란에 빠졌다. 우리들이 수십 년 동안 ‘조직’해왔던 그 ‘조직’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조직’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것은 현재 한국의 노동자계급,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고 동시에 현장 활동가들의 상태이기도 하다. ‘경제주의, 조합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정치활동이 강조된 것도 수십 년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이러한 ‘경제주의, 조합주의에 매몰’된 상태를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세월호 투쟁이라는 중대한 정치투쟁에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참담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주의 조합주의에 매몰’은 더 이상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주의, 조합주의에 매몰’은 우리들의 운동을 심각하게 짓누르고 있다. 우리 운동을 사망선고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그 피해는 현장 활동가들과 노동자 대중들의 패배로 되돌아오고 있다. 매우 치명적이다.

현재 필자를 포함한 조직된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는 철저히 자신의 현안에 대부분의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이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어쩌면 자신의 현안을 해결하기에도 너무 벅차 보인다. 노동자 투쟁이라는 것이 늘 그러했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현장투쟁은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조금이라도 단결력이 약화된다면 곧바로 노조무력화 공세가 가해지고 있는 극단적 상황이다. 우리 현실은 현장 활동가들을 하루하루의 현장투쟁에 자신의 대부분의 열정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장 활동가들에 대하여 ‘조합주의자’ 또는 ‘경제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판만으로는 우리 선진노동자들의 관성과 활동방향을 바꿔내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상이라는 막강한 힘이 현장 활동가들을 숨 쉴 시간도 없게 몰아가고 있는 이 구조를 깨야 한다. 이는 개인 현장 활동가의 각성, 결의만으로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건강한 현장의 선진 노동자들이 정치적 과제를 자기 과제로 삼고 그 투쟁에 자신의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체계와 구조를 가질 것인가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정치조직의 역할, 정치조직의 역할을 공고히 하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세월호 투쟁전선의 강화를 위해 필자가 경험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점, 실천과정에서 준수하려 했던 몇가지 원칙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현장 활동가들은 세월호투쟁의 정치적 성격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싸움이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며 결국 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체 노동자계급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이해하면서 정치투쟁의 장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민주적인 운동 세력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한다. 그간의 서로 달랐던 활동방식을 이해하고 낮은 수준의 실천을 광범위하게 조직해야 한다. 이러한 연대전선이 공고해 지기 위해서 조직 노동자들은 우선적으로 자기희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다수라고 해서 기득권을 앞세우거나 패권적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가장 헌신적으로 앞장서서 투쟁하고 가장 마지막까지 투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기존의 조직적 틀, 형식적 틀에 대해서 과감하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 전선이 확대될 수 있고 문호가 개방될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조직적 실천과 결의된 개별인자들의 실천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노동자 대중들에 대하여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을 제안하고 동참시켜야 한다. 자기 현안에 빠져 있는 노동자 대중이 세월호 투쟁을 경험하면서 정치적 자극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비록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세월호 투쟁 공간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정치의식을 깨우는 공간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운동의 질곡이 되고 있는 조합주의, 경제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정치실천이 지속적으로, 아주 집요하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조합원들이 선전물을 잘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양한 정치선전매체들을 무조건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정기적인 정치선전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일상적 정치실천이 안정화되고 훈련되지 않는다면 세월호 투쟁과 같은 중대한 정치정세에서도 노동자계급이 아무런 투쟁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 상태가 될 것이다. 정말 투쟁을 해야 할 때 투쟁하지 못하는 상태, 겉으로는 조직으로 묶여 있으나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살아있지만 사실은 죽어 있는 상태.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해방세상은 영원히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노사과연>


1) 원주는 인구 32만 명이 거주하는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이다. 노동자 조직율은 전국 평균 이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밀집된 대공장이 많지 않다. 반면에 원주의 진보적, 민주적인 운동은 천주교와 협동조합운동의 전통이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는 민주노총 원주지역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원주시민대책위원회’에 파견되어 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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