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영업자의 눈물

배은주 | 회원

 

동네 커피집

저녁을 준비하는데 마침 마늘이 떨어져 동네 슈퍼에 갔다. 슈퍼는 열 개 정도의 상점이 이어져 있는 곳의 중간 즈음에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미용실-부동산-동물병원-반찬가게-빵집-정육점-커피집…을 지나는데 커피집 앞에서 절로 발길이 멈췄다. 상가들을 보거나 의식하며 걸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커피집 안에 있던 조명들은 걷어져 바깥에 쓰레기로 나와 있었고, 유리창 너머 실내는 이미 기존의 것들이 철거되고 새롭게 인테리어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 결국 이 커피집도 문을 닫았구나.’ 남의 일 같지 않게 가벼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레몬차를 맛있게 내어 놓던 남자가 기억났다. 음원을 깔아놓은 것처럼 기계적으로 흘러나오던 재즈음악이 그 남자와 비슷하단 생각을 했었다. 그 남자는 그곳에서 약 2년 정도 장사를 했는데, 아마도 임대기간을 겨우 채우고 나갔을 것 같다. 그 전에는 김밥집이 있었고 기억에 그 집은 커피집보다 더 일찍 폐업했다.

 

 

새벽 한 시, 환하게 불 켜진 동네가게들

자정을 넘기고 새벽 한 시가 가까운 시각. 마을버스가 끊어져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었다.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늘어선 상가들 대부분이 아직 영업 중이었다. 호프집이나 치킨집, 꼼장어집 같은 선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커피집과 떡볶기집, 빵집 그리고 인테리어집 같은 비교적 아침 일찍 문을 열어야 하는 가게들도 불을 환하게 켜고 있었다. 지금 문을 닫고 들어가도 겨우 눈꺼풀이나 잠시 붙였다가 나올 수 있을 텐데… 누구 말대로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비정한 현실 때문이리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자영업

얼마 전엔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들렀다. 본래 두 개였던 점포를 하나로 리모델링을 하고 석 달 전에 개업한 미용실인데, 반경 100M 안에 미용실이 20개가 넘는데도 이곳에 굳이 들어오다니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던 곳이었다. 40대 초반의 부부와 여자의 친정어머니, 이렇게 가족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머리 염색을 하는 동안 성격이 소탈해 보이는 40대 초반의 여성 미용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그이에게 말을 건넸다. ‘이 동네에서 13년째 살고 있는데 요즘은 가게 주인들이 빈번하게 바뀐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이도 기다렸다는 듯 내 말을 이어받아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이 동네에서 이전 동네보다 미용시술비를 조금 더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이쪽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보증금을 제외하고 약 6천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해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현실은 전혀 예상 밖이라고 했다. 미용시술비가 생각보다 저렴한 곳이 많은데다가 한 집 건너 미용실이 있는 것도 자기실력만 믿고 너무 간과했다며 후회했다. 결국 그 미용실은 개업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상권분석실패 가격파괴”라는 간판을 미용실 앞에 세우고 미용가격도 대폭 내렸다.

그날 머리를 염색하는데 시간은 약 2시간 30분이 걸렸다. 나는 시술비로 25,000원을 지불했다. 즉 내 머리를 만져 준 그들 노동력의 대가는 25,000원인 셈이었다. 다른 손님이 있다하더라도 가격은 비슷했으니 재료비에, 물, 전기, 임대료 등을 포함해 생각한다면, 그리고 상대적으로 긴 그들의 노동시간을 생각한다면, 그들 가족 세 명이 버는 돈은 어쩌면 법정최저임금 정도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우려처럼 벌이가 시원찮은지 그 미용사는 자신은 다른 일을 해야 할지, 밤에 치킨집 알바를 해야 할지, 당분간 더 두고 봐야 할지 고민스럽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100만 원을 벌어도 마음 편하게?

후배 중 하나가 떡집을 차릴 생각으로 떡집 창업반에 다니고 있다며 자신의 근황을 알려왔다. 후배는 작년부터 탈출구를 찾느라 분주하고 불안해했다. 후배는 보험업을 하는데 직장 상사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급격하게 일에 대한 의욕도 저하되고 그러다보니 수입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고 기웃거리며 창업할 기회를 찾아다니더니 결국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창업할 때까지 모든 걸 책임져 주는 조건으로 수업료 300만 원을 냈다고 한다. 100만 원을 벌어도 내 장사하면서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다고 후배는 말했다.

사실 창업이야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소자영업자들이 빚으로 시작해 결국 빚으로 소득을 메우고 결국 빚이 늘어나면서 결국엔 폐업의 절차를 밟는다. 그만큼 돈 벌기가 어렵다는 얘긴데 아마 후배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편하게 내 장사를 하고 싶다’는 말은, 아직 절박하지 않거나 혹은 ‘내가 하면 잘 될 거야.’ 라는 핑크빛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덤벼들면 남의 말은 안 들리기 마련, 후배에게도 지금 어떤 말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후배는 3개월 후에 문을 열 예정이라며 나보고 자기네 가게에 와서 알바를 하라고 했다. 최근 몇 개월 사이 나 역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그이에게 부쩍 늘어놓아 그런 말을 던졌을 것이다.

 

 

“모든 직장인의 닭튀김 수렴의 법칙”

그랬다. 자영업 그리고 자영업자에 대한 이 모든 관심은 결국 나도 그 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적 부딪힘 때문에 비롯되었다. 몇 달 전 남편이 갑작스럽게 실직 당할 위기를 겪고 난 후 나는 앞날의 생계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정 고용을 직접 겪으면서 언제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시시때때로 억누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런 날은 분명 가까운 미래에 다시 닥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부부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간에 “모든 직장인의 닭튀김 수렴의 법칙”이란 말이 떠돌아다닌다. 어떤 직장을 다녔든 퇴직 후 결국엔 치킨집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언젠가 우리 부부도 그처럼 치킨집을 하게 될지 모른다(나는 치킨을 좋아하지 않고 잘 먹지도 않는데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치킨집을 해야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반드시 치킨집이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영세음식점 같은 것을 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 부부라고 무슨 재주로 예외가 될까.

어찌 되었든 기회가 될 때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그들에게 창업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그들은 단호했다. 모두가 한결같은 말을 하였다. 하지 않을 수 있으면 하지 말라. 그들의 조언은 대충 이러했다: 장사를 시작하기에 사실 늦었다(나이가 많다),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가게와 차별되게, 특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해 봤자 간신히 먹고 살 정도다, 대박은 없다. 결국 자기 인건비 버는 거다, 필요한 시간만 알바를 쓰는 식으로 해야 그나마 돈을 좀 아낄 수 있다 등. 젊었을 땐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했는데 이젠 자영업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스스로도 밤낮 없이 뼈 빠지게 일해야만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영업자에 관한 수많은 뉴스들과 일맥상통한다. ‘베이비부머들이 퇴직하면서 창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소득이 없어지면서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창업이 대부분이며, 별다른 기술도 없고 자금력도 풍부하지 않은 이들은 그냥 음식 장사나 해 볼까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영세자영업자들이 급증하고 몰락하는 현상이 동시에 초래되고 있다.’… 이런 소식들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일이었다. 영세자영업이란 일선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인 셈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2014년 8월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수는 거의 580만 명에 육박하고 무급 가족종사자를 포함하면 약 71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창업 후 2년 내에 절반이 문을 닫고, 임대기간도 못 넘기고 빚더미를 안고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결국 창업자금을 위해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자영업의 경우 밤낮 없이 일 하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파산하게 되면 가정이 해체되는 이중의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때로 질곡의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이비부머인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는 죽어라고 공부하고 일해야 했다. 50대에 들어서서는 본선에서 폐기처분될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제 알아서 인생 제2막을 준비해야 한다. 노후준비가 아니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저런 블랙홀 같은 창업전선으로 모두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모두 다 같이 죽으란 말인가. 그나마도 없는 비정규직 자리라도 찾아 나서란 말인가. 산업예비군으로 이름을 남겨 놓았다가 누군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란 말인가. 죽기 직전까지 노예처럼 일 하다가 그저 눈감으란 말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한낱 개인이 풀어가야 할 문제인가. 이런 사회구조가 정녕 정상적인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저녁 있는 삶’ 같은 요란한 구호가 정녕 우리의 삶을 바꿔 줄 수 있단 말인가?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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