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월호 학살에 대한 두 태도 ― 그 차이의 기원과 기능*

채만수 | 소장

I

극우언론 중의 극우언론 ≪조선일보≫1)는 득의만면하여 조롱하듯 말한다. “300여명 희생자 낸 참사 원인…청해진해운과 선원에 있는데 촛불 세력은 反정부에만 초점[을 맞춰] 집회 참가자 수 점점 줄어들고, ‘여당 심판’ 선동 안 먹히는 건 거짓 주장에 국민들 등 돌린 탓”이라고. 그리하여 “‘세월호는 학살’ 억지 쓰다 사그라진 촛불”이라고.

이 극우 ≪조선일보≫, 극우논객은 우선, “촛불 집회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친야(親野) 매체의 보도를 보면 5월 17일 첫 집회 때 참가자 수가 5만명(경찰 1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24일 집회 3만명(경찰 8000명), 31일 집회 2만명(경찰 3000명), 6월 7일 집회 5000명(경찰 2500명)이었다”가 “매주 규모가 절반 가까이씩 줄어들면서” “세월호 참사 60일째를 맞던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던] 제5차 촛불 집회” 때에는 “참가자 수를 주최 측은 3000명, 경찰은 1200명이라고 각각 추산”할 만큼 “다섯 번째 만에 10분의 1 이하 규모로 사그라졌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우리 모두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끄러운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면 ‘촛불’이 왜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저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는, “촛불 세력은 국민적 슬픔을 반(反)정부 에너지로 전환시키려 안간힘을 썼”지만, “국민들은 ‘세월호는 학살’이라는 촛불 세력의 억지 주장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저들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면,

세월호는 승객보다 화물의 안전을 앞세운 청해진해운의 비리ㆍ부실 경영이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 단순 사고로 멈출 일을 참사(慘事) 수준으로 키운 것은 승객들의 발목을 묶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선장ㆍ선원의 파렴치였다. 승객 300여명이 목숨을 잃게 된 책임의 90%가 그 두 가지에 있었다. 하지만 촛불 집회에서 유병언 선주(船主)나 이준석 선장(船長)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었다.

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한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의 성격 규정은 이미 끝내 놓은 상태였다. 집회장 곳곳에 ‘세월호 참사, 사고가 아니다. 학살이다’라는 팻말이 자리 잡았다.

저들의 주장인즉,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지만, 사실은 “세월호 사건의 성격 규정은 이미 끝내 놓은 상태”에서, “국민적 슬픔을 반(反)정부 에너지로 전환시키려 안간힘을 썼”고, 그 때문에 호응을 못 받고 사그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 때마다 ‘청와대로 가자’고 앞장서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호응은 미미했다”고도 쓰고 있다.

“단순 사고로 멈출 일을 참사(慘事) 수준으로 키운 것은 승객들의 발목을 묶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선장ㆍ선원의 파렴치”라고 단언하는 저들의 그야말로 억지ㆍ파렴치나, 그 주장의 자가당착 ―― 세월호 참사ㆍ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는 저들의 궤변ㆍ대중조작을 일일이 지적ㆍ논박하며 그 진상을 밝히는 작업 자체는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한 작업은 우리 연구소를 포함하여 뜻 있는 인사ㆍ단체들에 의해서 꾸준히 진행되어 왔고, 결코 용서받지 못할 학살범죄의 진상이 낱낱이 폭로되어 단죄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저들의 파렴치 한 가지만 지적하고 넘어가자.

저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와 비교했다”는 논란이 일었을 때, 그래서 5월 9일 세월호 유족들이 청와대를 향했을 때 시위꾼들은 모처럼 기회를 잡은 양 흥분했다. 이들은 “분노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부추겼지만 유족들은 “우리는 정치 시위하러 온 게 아니다”며 꿈쩍하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민변 변호사는 “여러분처럼 조용한 사람들은 처음이다. 그래서 안타깝다”고 답답해했다.

 

당시의 특수한 정황과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취했던 유족들의 특수한 행동을 부당하게 일반화하여, 마치 유족들이 분노하지 않고 있고, 꿈적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듯이 왜곡ㆍ선전하는 저 파렴치! 그리고 그 와중에도, 파쇼에 비판적인 민변을 헐뜯는 저 진한 악의!

II

얘길 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에 대한 언급이 길어졌는데, 그렇더라도 저들의 다음 발언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촛불을 든 사람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의 성격 규정은 이미 끝내 놓은 상태였다. 집회장 곳곳에 ‘세월호 참사, 사고가 아니다. 학살이다’라는 팻말이 자리 잡았다. …

세월호는 승객보다 화물의 안전을 앞세운 청해진해운의 비리ㆍ부실 경영이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 단순 사고로 멈출 일을 참사(慘事) 수준으로 키운 것은 승객들의 발목을 묶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선장ㆍ선원의 파렴치였다. 승객 300여명이 목숨을 잃게 된 책임의 90%가 그 두 가지에 있었다. 하지만 촛불 집회에서 유병언 선주(船主)나 이준석 선장(船長)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었다.

이들 발언을 다시 상기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세월호 학살 규탄집회 인원의 급격한 감소와 관련한, 주목해야 할 사실과 악의적 허위선전ㆍ허위선동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저들이 “촛불을 든 사람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으나 “세월호 사건의 성격 규정은 이미 끝내 놓은 상태였다”고 말할 때, 그 행간에는 명백히,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지만, 사실은 진상 규명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의미가, 그러한 주장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과 부합하면서 동시에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바로 세월호 학살에 대한, 상이한 두 태도, 두 대응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우선, 저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는, “승객보다 화물의 안전[?]을 앞세운 청해진해운의 비리ㆍ부실 경영”과 “승객들의 발목을 묶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선장ㆍ선원의 파렴치”를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촛불을 든 사람들”에게서는 그것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비난ㆍ지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촛불 집회 때마다 귀에 딱지가 붙을 지경으로 들린 규제완화나 비정규직 확대, 이른바 ‘관피아’ 등등에 대한 규탄이 실은 모두 “승객보다 화물의 안전[?]을 앞세운 청해진해운의 비리ㆍ부실 경영”과 “승객들의 발목을 묶고 자기들끼리 탈출한 선장ㆍ선원의 파렴치”를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촛불을 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정부와 저들 극우세력은 모든 책임을 청해진해운이나 유병언,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려 학살의 진상을 보다 더 완전히 은폐하고자 하는 데에 비하여, “촛불을 든 사람들”은 청해진해운이나 유병언, 선장ㆍ선원의 행태가 결국은 국가ㆍ정부의 신자유주의 때문이고, 따라서 당장은 박근혜 정권에 있다고 추궁하고 있는 점뿐 아닌가?

아무튼 이것이, 즉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청해진해운이나 선장ㆍ선원에게 있다고 하는 것, 그리하여 ‘학살의 근본적 원인’은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관피아’에 있다고 하는 것이 세월호 학살의 진상에 대한 하나의 태도, 하나의 대응이다.

그런데, 저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바라는 바로는 철저히 면책되어야 할 박근혜 정부가 ‘살인자다’라고 지목된 데에 대한 못마땅함 때문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진상규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허위주장을 하고 있지만, “촛불을 든 사람들”의 목소리와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고자 하는 정부나 저들 극우의 목소리는 사실은 저들이 지금에 와서 하는 소리처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규제완화나 비정규직 확대, 이른바 ‘관피아’ 등등을 애초에 대대적으로 규탄하고 나선 것은 사실은 정부와 저들 극우언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그것을 박근혜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시쳇말로 유체이탈적 화법으로 제기했을 뿐이다.

III

그런데 참사의 원인이 규제완화와 비정규직 확대, 이른바 ‘관피아’, 즉 관료와 자본의 범죄적 유착에 있다고, 평상시라면 필시 ‘종북좌빨의 주장’이라고 매도했을 만한 주장을 저들이, 정부와 극우언론들이 스스로 해야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러한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만큼 저들은 급박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 아닐까? 즉, 사건의 무언가 중대한 진상을 은폐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오늘날 저들이 의기양양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만큼 저들이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타산하고 있고,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만큼 저들의 고육지계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거듭되는 얘기지만, 정부와 극우언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참사의 책임을 청해진해운과 선장ㆍ선원들에게 돌린다. 그리고 정부의 책임은 ‘초기대응의 미숙’, 즉 ‘무능’ 때문에 ‘구제하지 못한 것’에 한정한다. 그리고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쪽은, 그리고 사회진보연대 등 ‘좌파’를 자임하는 단체들은 저들 정부와 극우언론이 초기에 고육지책으로 떠들어댔던 것들, 즉 규제완화니, 비정규직 확대니, ‘관피아’니 등등을 참사의 ‘근본적 원인’으로 고지(固持)하고 있다. ‘국민대책회의’도, 자칭 ‘좌파’들도 극우정부ㆍ극우언론과 사실상 동일한 주장,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극우정부ㆍ극우언론의 고육지계의 주장을 좌익적 언사로 시끄럽게 확대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농락당하던 끝에 “‘세월호는 학살’ 억지 쓰다 사그라진 촛불” 운운하는 조롱까지 당하고 있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모였다고 했”으나, ‘근본적 원인’ 운운하면서, 저들 정부와 극우언론과 같은 얘기를 하면서, 허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 열을 올렸을 뿐, 그야말로 참사ㆍ학살의 진상 그 자체를 규명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진상 규명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는 듯한,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의 주장을 허위이자 동시에 사실이라고 규정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저들의 발언을 다시 상기하면, 마치 “촛불을 든 사람들”이 ‘진상 규명’은 하지 않고,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었”기 때문에 촛불이 사그라진 것처럼 저들은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사실이면서 동시에 사실이 아니다.

촛불이 사그라진 것은, ‘청해진 해운의 비리ㆍ부실 경영’과 ‘선장ㆍ선원의 파렴치’가 참사의 원인인데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것을 규명하지 않고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모였으면서도 학살의 참된 진상을 규명하는 대신에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인 것이다.

언론 조작ㆍ통제, 즉 ‘유언비어’ 단속과, 앞에서 말한 고육지계까지를 동원한 파쇼 권력과 극우언론의 은폐공작에도 불구하고, 300여 명을 수장(水葬)한 사건의 성격은 드러나 있다. 해경 곧 정부의 무능 때문에 구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이유 때문인지 구조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은, 즉 수사(修辭)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살이라는 사실은 이미 사건 초기부터 명백히 드러나 있다. 저 극우논객, 극우 ≪조선일보≫가 악의적으로,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의 성격 규정”을 “이미 끝내 놓은” 것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타 근거를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당국, 그 기관들의 거짓말들, 진실을 보고자 하는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은폐와 들통 난 거짓말들을 통해서 그 성격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성격이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즉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사실 때문에 “촛불을 든 사람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했던 것이며,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던 것, 드는 것도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은폐하기 위해서 구조하지 않았으며, 해경과 선장ㆍ선원들에게 그렇게 구조하지 않도록, 그리고 구조를 저지하도록 명령한 자가 누구인가를 밝히고자 했던 것, 그야말로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고 밝히고자 하는 것인데, ‘근본적 원인’을 찾겠다며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나 극우언론과 같은 소리만 하고 있기 때문에 촛불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온통 ‘박근혜가 살인자다’ ‘박근혜도 조사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 ‘박근혜를 끌어내라’는 구호뿐”이기 때문에 촛불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규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 세월호 학살과 그 후의 움직임ㆍ대응을 이렇게 보면서, 생존자의 증언과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서 그 진실, 진상을 규명하려는 것이 세월호 학살에 대한 또 하나의 태도ㆍ대응이다.

IV

그러면 이 상이한 두 태도ㆍ대응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 차이가 의미하는 바, 혹은 그 기능은 무엇인가?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관피아’, 그리고 민영화 등등 소위 ‘근본적 원인’ 운운하며, “대한민국이 세월호”니, “우리 모두가 세월호에 타고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ㆍ대응은 얼핏 화려하게 보이고, 또한 그야말로 ‘근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근본적이지 않다. 그저 ‘근본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근본적이기에는 구체성, 특수성이 결여되어 있고, 추상성ㆍ일반성 속에 현실을 용해시켜 버리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근본적 원인’을 제거할 근본적 힘인 대중의 폭발적 분노ㆍ투쟁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태도ㆍ대응은, 말로는 “세월호 참사는 학살”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때 학살은, 실제 말 그대로의 학살이 아니라, ‘학살’, 즉 수사(修辭)로서의 학살, 혹은 은유로서의 학살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그러한 태도ㆍ주장은, 그야말로 학살 그것에 분노하며 그 진상을 규명하려는 대중을 폭발적 투쟁으로 이끌기는커녕, 대참사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원인을 은폐하면서 거꾸로 대중의 분노를, 투쟁을 사그라지게 하였다. 그렇게 대중의 분노를, 투쟁을 사그라지게 하는 것이, 그러한 태도ㆍ대응 주체의 주관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바로 그러한 태도ㆍ대응의 현실적 기능이다. 대중조작의 고도의 전문가들인 정부의 선전ㆍ정보기관과 극우언론들이 규제완화ㆍ비정규직ㆍ‘관피아’ 등을 참사의 원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고육지계를 들고 나온 것도 바로 그러한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아직 결코 싸움이 끝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저들의 그런 노림이 크게 적중하고 있다. 바로 대중을 이끌겠다고 자임하며 나선 사람들이, ‘좌파’가 저들의 그 고육지계에 농락당하여 좌익적 언사로 저들의 선전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 학살에 대한 두 태도ㆍ대응의 차이는 구체와 추상, 특수와 일반 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이해의 차이, 더 절실하게 말하자면, 그에 대한 일방의 몰이해ㆍ무지에 기인하는데, 그 몰이해ㆍ무지, 상황ㆍ사태의 구체성과 특수성에 대한 무시는 좌익기회주의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상황ㆍ사태의 구체성ㆍ특수성을 무시한 채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장만 늘어놓아서야 어떻게 대중의 폭발적 분노ㆍ투쟁을 이끌어내고 조직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구체성ㆍ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저지한 해경의 행동들, 국정원ㆍ해경 등의 거짓말들, 정부의 조작ㆍ은폐,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의 한결같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행동들이다.

해군과 소방헬기, 어선들의 세월호 접근과 구조를 해경이 저지했다는 증언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예컨대, 정부는 아직까지도 출항 후 침몰까지의 세월호의 교신 내용들을 대부분 은폐하고 있고, 없다고 거짓말하다가 뒤늦게 공개한 진도VTS와의 교신 내용도 상당 부분이 편집ㆍ조작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선장을 왜 해경 간부의 집으로 데려다 재웠으며, 그때 누구와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도 은폐하고 있다.2) 유조선 둘라에이스호(Doola Ace)가 지적했던, 해경이 도착하기 전 세월호에서 ‘탈출’한 보트의 정체가 무엇이며 누가 탈출했는지는 아예 철저한 침묵으로 은폐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을 정부와 극우언론은 일방적으로 ‘파렴치’라고 몰아 매도하고 있고, 또 파렴치하다는 게 맞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파렴치하게 행동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극우언론들이 말하는 것처럼 ‘안전교육의 부재’ 탓일까? “선장과 선원들”이라고 하지만, 파렴치하게 행동하며 구조된 자들은 세월호의 선원들 전체가 아니라 그 운항에 관계된 선원들만이다. 승객 담당 선원들, 그들의 다수는 승객 구조라는 선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려다가 사망ㆍ실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저들 “선장과 선원들”이 거역할 수 없는 누군가의 강압적 명령에 의해 그렇게 한결같이 ‘파렴치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유추케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 운운하는 저들의 ‘진상 규명’ 속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은 사실상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물론 더러는 ‘의문’이라며 거론하기도 하지만, 건성일 뿐, “왜” 그랬는가를 규명하려는 어떤 진지함, 치열함, 집요함도 없다. “사실상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저들이 사실상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구체성ㆍ특수성 속에는 제국주의의 문제, 신식민지적 예속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저들의 사고 속에는 세월호 참사가, 4년 전의 천안함 침몰사고와 마찬가지로,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에 발생했다는 사실이나, 천안함 침몰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극우언론들의 태도가 심히 석연치 않은 것이 과연 우연일까 하는 의혹 따위는 사실상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기껏해야 한국 자본주의와 한국의 신자유주의만 있을 뿐, 그 자본주의, 그 신자유주의가 미ㆍ일 제국주의에, 특히 미 제국주의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은 (‘좌파’를 자임하는 자들일수록 대개는 적극적으로) 그 종속성, 그 예속성을 부인하고 있다. 아니, 그것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으며, ‘좌파’를 자임하는 자들일수록 그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비록 비판 여론에 밀려 사퇴하고 말았지만, 박근혜 대통령님 각하3)께서 문창극을 총리후보로 지명했을 때, 그는 이미 이 나라 지배계급의 핵심적 대표의 한 사람임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나라 지배계급의 그 핵심적 대표께서는 이 나라가 미국에 철저히 예속되어 있고, 그리하여 미국의 보호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국가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 다름 아니라,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전쟁”은 “미국을 붙잡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그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면,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에게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 끝나면서 우리와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에요, 사실은 6.25를 왜 주셨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 주셨어요.”4)

사실이 이런데도 ‘근본적 원인’ 운운하는 저들 ‘좌파’에 의해서는 이러한 사실들이 깡그리 무시되고 부인된다.

한국(자본주의)의 구체성, 특수성으로서의 예속 혹은 종속의 문제를 저들 ‘좌파’가 하도 완강하게 부인하기 때문에 그 예속 혹은 종속에 대한 하나의 논의만 더 소개해 보자.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가 저들 ‘좌파’보다 한국의 위상, 그 성격을 더 객관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저들 ‘좌파’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3국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귀화인인데다가 지금도 제3국에서 한국학을 연구ㆍ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한국을 가리켜 “미국의 군사보호령이면서도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에게 최악의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1980년대 운동권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신식민지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신식민지’란 단지 강력한 종속관계를 의미한다면 이는 꼭 틀린 말도 아니지만, 여기에다 한 가지의 단서를 달아야 한다. 미국 중심의 세계에서 산업국가로 크고, ‘친미성’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 돼버린 대한민국에서는, 미국은 굳이 일일이 ‘식민지적’ 통치를 할 필요조차 없다. 한국인들이 다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으로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경쟁에서 어느 한쪽에 베팅할 필요라도 있는가? 어느 쪽이 이기든 간에 미군과 미국 투자자를 자국민보다 먼저 배려할 것이 어차피 보장돼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니면 최근 10여 년간의 영어 광풍을 관찰해보라. 과연 고려대나 성균관대 등이 영어강의 비율을 50%까지 높이려고 안간힘을 동원하는 것은 ‘미국 신식민지 당국’ 간섭 때문인가? 한국에서 영어는 이미 전통시대의 한문처럼 사회귀족들의 특권언어가 돼버렸으며, 부모에게 조기유학이나 영어연수 보낼 돈이 없어서 영어를 덜 하게 된 학생들에 대한 차별은 전통시대의 천민차별처럼 당연지사가 되고 말았다. 식민성은 이미 우리들의 집단 정체성이 된 것이다.5)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성, 특수성이 결여된 빗나간 논의를 하고 있지만, 아무튼 그 논의 속에서 미국을 가리켜 “우리 식민 모국”6)이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다.

신식민지적 종속성을 포함한, 세월호 참사ㆍ학살의 구체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채 ‘근본적 원인’ 운운하며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 ‘관피아’ 등을 진상이라며 규탄하고 있는 지금의 ‘좌파’는 사실 지난 1980년대 민주화투쟁, 그 한 형태, 한 부분으로서의 ‘사회구성체 논쟁’ 혹은 ‘사회성격 논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투쟁, 그 논쟁, 그 소산은 물론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투쟁, 그 논쟁이, 무엇보다도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그에 이은 장기간의 반동으로 중도이폐(中道而廢)되었으며, 따라서 그 소산도 극히 불완전한 것, 미성숙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종 반동적 사상들이 교활하게도 ‘진보’, 나아가 ‘혁명’의 의상ㆍ가면을 걸치고 세계를 횡행하고 있는 대반동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금 ‘근본적 원인’ 운운하며 저들 예속적 파쇼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그리하여 자신들의 주관과 상관없이 대중의 분노와 투쟁을 사그라지게 하고 있는 저들 자칭 ‘좌파’에게는 그러한 자기성찰의 자세ㆍ의식이 없다. 그리고는 세월호 학살이라는 사안의 구체성ㆍ특수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근본적 원인’ㆍ‘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민영화 저지ㆍ규탄’ 운운하며 좌익기회주의의 깃발을 맘껏 휘두르고 있다.

독점자본의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민영화를 규탄ㆍ저지하는 투쟁, 부정부패를 통한 저들의 유착을 폭로하는 투쟁은 물론 소중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소중하고 필요하다고 해서 상황ㆍ사태ㆍ정세의 구체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채 언제나 우선적으로 제기되고 배치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체적 상황과 조건, 정세가 반파쇼 민주화 투쟁의 강화를 요구할 때에는 당연히 반파쇼 민주화투쟁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면서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민영화 규탄ㆍ저지 투쟁을 그에 조화시켜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정국처럼 세월호 학살의 구체적 원인ㆍ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상황ㆍ조건에서는 그 특수하고 구체적인 원인ㆍ진상을 밝히는 투쟁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고 이른바 ‘근본적 원인’을 규탄ㆍ저지하는 투쟁을 거기에 종속시키고 조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의 분노를 광범위하고 폭발적으로 이끌어내고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파쇼권력에 파열구를 낼 수 있기 때문이고, 파쇼권력에 파열구를 내지 않고는 규제완화ㆍ비정규직 확대ㆍ민영화 등 ‘근본적 원인’도 저지ㆍ제거할 수 없고 노동자계급이 해방으로 달려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팽두이숙(烹頭耳熟), 대가리를 삶으면 귀도 따라 익기 때문이다.

세월호 학살 이후 악어의 눈물을 흘린 박근혜 대통령님 각하께서는, 아니 그를 둘러싼 파쇼세력은, 그 거짓 눈물의 덕도 있고, 극우 파쇼언론의 대대적인 대중조작의 덕도 있고, “촛불을 든 사람들”의 과녁을 빗나간 대응ㆍ투쟁의 덕도 있고 하여 6ㆍ4지방선거를 예상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치른 후, 극우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배치하면서 ‘친정체제’라는 이름의 파쇼체제를 노골적으로 강화하려 들고 있다. 물론 양수겸장으로. 즉, 한 수는 말 그대로 파쇼체제, 다른 말로 하자면, 제2의 유신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 수는 시쳇말로 ‘노이지 마켓팅’, 즉 인사(人事) 논란이 시끄럽게 벌어지게 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그 쪽으로 유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세월호 학살의 진상은폐 작업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현 상황에서 저들의 이 모든 음모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세월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것, 특히 4월 15일 밤부터 4월 16일, 17일에 걸쳐 무슨 일이 벌어지고 꾸며졌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밝힐 단서ㆍ증거들은 이미 드러나 있고, 계속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을 밝힐 대중의 분노는 아직, 저들 극우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진실을 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노사과연>


* 6월 20일에 있었던 월례토론회에서의 발표문을 수정ㆍ가필한 것이다.

1)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세월호는 학살’ 억지 쓰다 사그라진 촛불”, ≪조선일보≫ 2014. 6. 18.

2) 그 시간 해경 간부 아파트의 CCTV 영상은 삭제되어 있다.

3) 9명의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합법적인 노조가 아니라고 제소했고, 6월 19일 법원은 그대로 판결했다. 같은 논리로 우리는 국정원ㆍ기무사 등의 불법적 선거개입에 의해 ‘대통령’으로 만들어진 박근혜를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고 판결해야 할 것이지만!

4) 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875111&ref=A

5)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아류 제국주의 국가, 대한민국”, ≪한겨레≫ 2014. 1. 23.

6) 박노자, “학피아, 학살의 종범들”, ≪한겨레≫ 2014. 6. 11.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1개의 댓글

  • 근본주의 좌파 내지는 좌파 근본주의자들은 과거엔 참여를 안 해서 문제더니 이번엔 참여를 해도 문제긴 하군요… 과거 촛불국면에서 참가를 안 한건 근본주의로 재단하기엔 뭔가 안 맞아서 , 지금은 재단할 거리가 있어서 … 그러나 그 재단은 공허한 것이 저들의 언사에 사회적, 근본적 색채만 입히는 작업이라 이건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를 벗어날만치 근본적이지 못하고 너무 나간 ‘문제는 자본주의’등은 현 정세에 당연히 어울리지 못하기에 역시 문제다. 물론 이 기본모순 당연히 문제이지만 기본모순은 주요모순과 그리고 나아가서 부차모순과 함께해야 의미를 생성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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