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싸이코 패스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그 학교 공부 잘하는 학교래?”

 

어느 고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TV에서는 쉼 없이 세월호 관련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고, 맛을 느끼지 못한 채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던 5~6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 그랬대잖아”

“그니까 저럴 땐 위에 것들 하라는 거 딱 반대로 해야 살 수 있다니깐”

“야 솔직히 너 같으면 생판 모르는 애들 구하겠냐? 아님 살려고 도망가겠냐?”

“에이그 애들만 불쌍한 거지…”

 

입으로 밥을 밀어 넣고는 있었지만 감각은 그 학생들의 대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던 숟가락질마저 멈칫하게 한 그 말이 들려왔다.

“야 근데 그 학교 공부 잘하는 학교래?”

순간 무슨 말이 이어질지 퍼뜩 떠올랐기에…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어야 되는데…”

“야! 너 아직도 (대학입시) 미련 못 버렸냐? 허긴 저 애들이 너 하나 구원하고 가면 좋은 일 하는 거지. 하하”

 

결국 다 먹지 못한 채 계산을 하고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뭔지 모를, 뒷덜미 쪽에서부터 느껴지는 섬뜩함에 잠시 멍한 상태로 길을 걸었다.

‘그 학교 공부 잘하는 학교래?’

‘하하하하’ 그 학생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귀에 맴도는 채로….

 

불과 몇 달 전에도 리조트 건물이 무너져 그 곳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던 어느 대학 학생들이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고 직후 학교 쪽에서 합격대기자들의 추가합격 여부와 관련된 문자를 발송하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 일었었다. 학교 쪽에선 오히려 사고 직후 추가합격 문의가 많이 들어와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섬뜩함이 공포가 되어 덮친다. 문득 그 학생들이 나누던 대화를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하고 있는 내 모습 때문에… 같은 또래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실시간 생중계로 지켜보며, 입시 경쟁자 몇 백 명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몸서리 처지게 수긍이 돼서…

 

언젠가 어느 TV 드라마에서 싸이코패스에 대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범죄에 맞서는 법의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거기서 한 법의학자가 이런 말을 한다.

“근데 말이야, 정말 아이러니한 게 있어.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이 바로 싸이코패스형이야. 오직 자신만을 알고, 남의 고통이나 슬픔 따윈 무시해야 잘 살 수 있는 세상. 이러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몸 속에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생겨날지도 몰라. 우린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가게 되고.”

 

싸이코 패스. 백과사전은 이것을 이렇게 정의한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속하는 하위 범주로서,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얕은 감정, 자기중심성, 남을 잘 속임 등을 특징으로 하는 종류이다. 정서, 대인관계에서는 공감 능력 부족, 죄의식, 양심의 가책 결여를 특징으로 하고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피상적이고 불안정하다. 대인관계에서 자기중심적이고, 과대망상적, 지배적, 착취적이며, 거짓말과 교묘한 조종에 능하다. 행동 내지 생활 양식은 충동적이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며, 행동제어가 서투르고, 자극을 추구하며, 책임감이 없고, 사회규범을 쉽게 위반한다. 이러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망상, 비합리적 사고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병(psychosis)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반사회성이라…

학생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인간’이라는 말이 한자말로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를 쓰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니?

‘인간’이란 그 자체가 사람과의 관계 즉, 사회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사회’를 떠나서 혼자만으론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희들 개개인이 ‘사이’라는 말로 연결된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너희들 스스로도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거야.”

사이. 친구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선생과 제자 사이, 동료 사이, 우리 사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그 관계로서의 공동체, 사회.

 

아마도 그 땐 이 말을 전적으로 이해하진 못했을 게다. 사람이 그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진 못했을 테니.

여하튼 그래서 반사회성이란 반공동체적이란 말이며 또한 그 자체로 반인간적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가장 요구하고 있는 인간형이 바로 반사회적인 인간형이라…

 

내가 수험생으로 입시를 치른 대학에서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난 내 친형과 함께 그 학교를 찾아갔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하고 돌아서는데 형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축하한다. 그런데 너 한 명이 저 명단에서 니 이름을 발견할 때, 수십 명의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을 거다.”

우연히도 그 학교는 형이 시험을 봤다 떨어진 학교였다….

눈물만 흘렸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

 

난 그 때 학생이 아니라 군인이길 강요받았었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입은 옷이 교복이 아니라 군복이라고도 했었다. 입시전쟁. 학교가, 이 사회가 내게 요구한 것은 친구 ‘사이’를 적대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눈물 흘리고 고통 받아야 니가 선택된다는 것이었다. 즉, 사회는 내게 가장 반사회적이길 강요했었다.

 

가장 반사회적이길 원하는 사회. 이 말은 결국 이 사회야 말로 가장 반사회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말일 게다.

이 사회 시스템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떠받들고 있는 ‘자유주의 시장질서’라는 것. 그 질서에 조금이라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있을라치면 곧바로 가장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몰아, 소위 빨갱이 공세를 퍼부으며 온 국가권력을 총동원해 처단해마지 않는 그 신성불가침의 질서.

그 질서가 뭔지는 시장에 가 본 사람(물론 당연히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이들)은 다 안다.

‘니가 손해 봐야 내가 이익을 본다’는 질서. 내가 안락하게 살기 위해선 니가 불행해야 한다는 질서이다. 또한 그런 타인의 불행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웅변하는 것이 바로 이 부르주아 사회가 말하는 ‘자유주의’이다. 시장이 모든 것이 되어버린 이 자본주의 사회가 최고로 원하는 이는, 말 할 것도 없이 시장에서의 최강자일 터이며, 아이들은 그 강자가 되기 위해 친구의 불행을 딛고 승리하라고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 최강자가 되는 정점엔 효과적으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유효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대살육과 파괴, 가장 반사회적인 광란, 바로… 전쟁이 있다.

 

실은 이 자본주의 시장이 가진 가장 반사회적 성격 … 그것은 스스로는 그렇다고 인식도 못한 채 사고 팔려지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존재일 게다.

‘산 자와 죽은 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투쟁 과정에서 나온 이 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듯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일상화된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동료 ‘사이’가 아니라 ‘니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적대적’ ‘사이’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뿐만 아니라 경쟁사가 망해 그 곳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불행을 겪는 것은 내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고용을 보장받는 행운이 된다. ‘실적이 없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이 보여주듯, 영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사람들의 지갑을 가장 잘 털어낼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으며 바로 그럴 때 최고의 ‘영웅’ 칭호를 받고, 그렇게 지갑이 털린 이들의 불행 따위를 생각했다간 곧바로 구조조정 영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질서. 질서.. 질서….

 

북미 선주민(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백인 교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 백인교사가 “자, 여러분 이제 시험을 칠 터이니 준비하세요”라고 하자, 그 아이들은 마치 게임이라도 하려는 듯 책상을 돌려 둥그렇게 모여 앉더란다. 그래서 선생님은 “얘들아, 시험 칠 준비하라고 그랬잖니?”하고 화를 냈고, 그러자 아이들은”선생님, 저희들은 예전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해결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아이들의 대답 속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게다.

어쩌면 그 순간, 싸이코패스란 다름 아니라 그 아이들의 눈에 비친 백인교사였을 테다. 그리고 또한 그 아이들이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잠시라도 생활 해 본다면 사방천지가 그 백인교사와 같은 이들로 차 있다는 생각을 할 테다. 그 아이들과 백인 교사를 가르는 차이. 그 본질은 바로 그들이 살아온 사회 시스템의 차이에 있다. 백인 교사가 사는 사회는 생산수단이 사적, 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었고 그 아이들이 살던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것. 그럴 때만인간은 생존을 위한 자연과의 물질대사 즉 ‘생산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고 실제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 북미 선주민 아이들처럼 진정한 ‘사회’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그런 생산활동에 있어서의 사회적 성격이 훨씬 더 커져 있는 지금, 인간은 가장 반사회적으로 살아가길 강요받고 있다.

 

앞서 드라마의 법의학자가 한 말… 그 말 중 ‘아이러니하게도’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말일 게다.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다만 변증법적 모순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순은 다름 아니라 생산활동 그 자체는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생산활동을 위한 생산수단은 사회가 아닌 특정 개인에게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것을 맑스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덧붙여 이 모순이 해결될 때 비로서 인류 역사의 전사가 끝난다고도 했다.

 

아직 인류는 진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

참으로 처절하게…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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