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6. 7. 유인물> 누가 아이들을 죽였나

20140607   지난6 월 3일, 사고 발생일로부터 49일이 흘렀다. 불가의 말처럼, 49일 동안 지상에 머물던 망자의 영혼은 저승으로 훨훨 떠나 버렸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들은 떠나갔지만, 산 자들에게는 남겨진 과제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가야 했는지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1. 누군가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아이들을 바닷속으로 밀어 넣어라”

 

월호의 한 선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미국 방송 ≪엔비시TV≫가 보도한다)에서 증언한다: “배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그녀와 동료들은,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1) 그러나 ‘명령’을 누가 언제 어디서 했는지는 언급하지 못한다. 우리는 ‘배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 배를 버리라’는 이 ‘명령’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고의로 막았다

 

고 당일 8시 50분경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다. 언론은, 선원들이 응급조치를 하면서 실수를 한 것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고의로 탈출을 막고 있었다. 당시 진도관제소와의 교신내용을 보자.

 

[9시 13분-14분]

진도관제소: 세월호, 현재 승객들이 탈출이 가능합니까?

세월호: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9시23분-24분]

진도관제소: 경비정, 도착 15분전입니다. 방송하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착용토록 하세요.

세월호: 현재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세월호는 “탈출이 불가능”하고, “현재 방송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9시 30분경 사망자의 카카오톡에는 “아직 움직이면 안 된대”라고 방송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38분경 선원들은 유유히 걸어 나왔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선원들이 승객들의 탈출을 막으려는 작전을 펼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9시 40분경까지도 “현재 굉장히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계속 선내 방송이 나왔다. 10시 1분–8분 사이에도 안내실의 사무원이, 해경 구조대가 배 밖에 왔으니, 객실이 더 안전하다고 대기하라고 방송했다.2) 그런데 9시 54분이면 선원들은 완전히 탈출한다. 이 사무원에게 대기 방송을 하라고 명령했던 상급자들은 이미 빠져나간 것이다. “배에 승객들이 갇혀 있는 동안, 그녀와 동료들은,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집단 학살 명령은 그렇게 수행된 것이다.

 

2) 구조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에 있는 비상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구난 신호(SOS)가 퍼져 나가고, 승객 대피 명령이 떨어지며, 당연히 주변의 배에도 구조 요청이 전파된다. 그런데 선원들은 누르지 않았다.

8시 50분에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지만, 8시 55분에 제주관제소와 처음 교신을 한다. 그러면 정말 구조를 요청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어설픈 연극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정말 구조가 다급했다면 가까운 진도관제소나 목포해경에 연락을 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이유로 무선통신이 불가능했고, 비상 버튼도 작동하지 않았다면, 핸드폰으로라도 연락을 했을 것이다. 배가 사용하는 초단파 무선통신은 30-40km 내에서만 통신이 가능하다. 그런데 제주관제소는 90km나 떨어져 있다. 제주관제사는 진도 부근에서 오는 교신을 처음으로 기적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왜 제주로 했을까? 8시 52분에는 이미 단원고 학생이 119로 구조 요청을 하고 수십 명의 승객도 구조 요청을 하여, 전국에서 119헬기들이 날아오고 있었고, 119가 목포해경에도 연락하여 상황이 전파되었다. 그런데도 선원들이 아무런 구조 요청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떤 의심을 받겠는가.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제주관제소에라도 연락을 하며, 구조 요청을 하는 시늉을 한 것이다. 그들의 연극이 어설펐다는 것은 제주관제소와 교신하는 세월호 교신자의 목소리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배가 넘어가고 있다”고 아주 사무적(!)으로 말하고 있다.

 

3) 구명정을 쇠줄로 묶어 놓았다

 

에는 탈출할 수 있는 15인승(25인승이라는 주장도 있다) 구명정이 44개 있었다. 그런데 2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쇠줄로 묶여 있었다. 언론에서는 해운사의 과실로 처리해 버린다.

그러나 선원들이, 승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그렇게 볼 수 없다. 고의로 묶어 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9시 35분경 도착한 해경은 구명정을 확인하고, 두 개를 바다에 던지지만 하나만 펼쳐진다. 왜 그랬을까? 이미 주위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간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어, 구명정은 필요 없었다. 구명정이 쇠사슬에 잘 묶여 있는지 확인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면 왜 구명정 2개는 쇠줄에 묶여 있지 않았을까? 만약 배가 병풍도에서 더 나아가 침몰하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8시 50분의 사고에 비추어 보자. 선원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8시 50분의 침몰이 119에 신고될 수 있었던 것은, 섬 근처였기 때문에 핸드폰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불가능하다. 수심은 250미터 내외이다. 수온이 낮아 바다로 뛰어든다 해도 저체온증으로 곧 사망(수온 15도, 6시간 정도 생존 가능)할 것이다. 결국 몰살될 것이다. 그러면 선원들은 어떻게 되나. 자신들이 살 궁리를 해 두었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선원 15인은 구조되었는데, 이들은 자신들만 탈출할 구명정을 미리 챙겨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섬 부근에서 나는 바람에, 승객들이 핸드폰으로 신고를 하고, 해경이 도착하게 되어 구명정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해경이 구명정 두 개를 풀어서 바다로 버린다.또 세월호에는 250인용 대형 보트가 네 대 있었다. 8시 50분에 침몰이 시작되고, 선장 등이 탈출하는 9시 54분까지, 적어도 1시간이라는 충분한 탈출 기회가 있었다. 이때 보트를 타고 나왔다면, 모두 무사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과실이 아니라 계획된 범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탈출할 구명정을 미리 챙겨 두었다면, 사고를 예측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는, 애초에 사고가 4월 15일 밤 11시경 태안반도 서쪽 울도 부근에서 일어났고, 그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서 항해를 계속한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홈페이지(http://www.lodong.org)에 있는 글들을 보면 된다.

 

2. 집단 학살을 직접 “명령”한 자들은 보트로 탈출했을 것이다.

 

도관제소와 세월호 교신을 다시 보자.

 

[9시 13분-14분]

세월호: 네, 빨리 좀 와 주십시오.

진도관제소: 주변에 어선들까지 다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두라 에이스: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좌현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접근이 위험합니다.

 

두라 에이스(Doola Ace)는, 우연히 사고 인근을 지나다 구조를 위해 달려온 유조선이다. 그러면 9시 13분-14분에 “보트로 탈출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해경의 구조선 123정은 약 20분 후인 9시 35분경에나 도착한다. 선장보다도 먼저 탈출했다는 것은, 선장보다 힘이 세다는 의미이고, 그래서 이들이 바로 선원들에게 집단 학살을 “명령”한 자들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이른바 “오렌지맨”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에서,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 중 20분의 영상을 보라)에 보면,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고, 검은색 모자에 하얀색 마스크를 한 건장한 사람이 나온다. 9시 35분경 도착한 해경 123정은 가장 먼저 세월호의 중앙 부위로 달려가 이 사람을 제일 먼저 구한다. 같은 뉴스에는 “쾅하는 폭발음을 들었다”, “가스 냄새, 계란냄새(유황)가 난다”는 사망 승객들의 카카오톡 내용을 전하며, 폭발 의혹을 제기한다. 또 오렌지색 작업복은 정보당국의 폭발 요원들이 입는 단체복이라고 보도한다.

0607_orange_guy

 <인터넷상에서 ‘오렌지맨’이라 불리는  사람 .이 사람은 승선인 명부에도 없는 의문의 인물이다.> 

 

우리는 이 자가 “명령”한 사람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자는 무엇을 폭발시켰을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세월호와 유사한 배로, 차를 실어 나르는 카페리호이다. 중앙에 동그라미 친 부분이 격벽(隔璧)이다.

 0607_like sewol

 

 

배가 기울 경우, 화물을 묶지 않아도, 한쪽의 화물이 다른 쪽으로 완전히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구조적 장치다. 이 부분을 폭파한다면, 모든 짐이 한쪽으로 쏠리며, 급격하게 배가 침몰할 것이다. 이곳을 폭파했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의 외부(특히 뒷부분에 있는 짐을 실을 때 내리는 문)에 특별한 상처가 보이지 않는 것, 격벽이 비교적 얇아 폭파가 용이해 보이는 것, 위의 기사에서 폭발음이 들릴 때에 화염이나 연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소규모 폭발이었다는 것, 오렌지맨이 배의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에서 구조된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짐이 일단 쏠리게 되면 벽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고, 그러면 나중에 배가 인양될 때, 파괴가 은폐될 것임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폭발이, 6825톤에 이르는 커다란 배가 불과 1시간 30분 만에(8시 50분―10시 17분, 108도) 완전히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이는 승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기획되었을 것이다.

 

3. 해경은 구조를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구조를 막았다.

 

론은 “구조: 172명”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해경은 선장을 포함한 선원 15명은 분명히 구조했다. 그러나 나머지 157명은,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탈출하여 목숨을 건진 생존자일 뿐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출하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고 19일이 지난 5월 4일까지도, 해경은 사람을 구하라는 “구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단지 조난 선박을 인양하라는 “구난 명령”만을 내렸다. 사고 초기부터 중요한 책임을 맡았던 언딘은 선박을 인양하는 업체로, 구조 인력도 장비도 없었다. 그들은 4월 16일 오후 2시에 투입되었는데, 그날 밤 11시 반이 되어서야 300여 명의 승객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애초에 단지 ‘배를 인양하기 위해’(?), 아니 무언가 구조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짓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투입된 것이다. 결국 그들은 뒤늦게 잠수사를 수소문하여 다음 날 7시 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잠수사를 투입할 수 있었다.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도, 망치질로 쉽게 깨지는 유리창을 깨지도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현장으로 출동한 119소방헬기는 해경이 “항공구조 종료 통보”를 하는 바람에 구조 작업을 할 수 없었고, 팽목항에 대기만하다 돌아갔다. 구조를 위해 달려온 민간 선박의 선장이 “어선을 여객선 가까이 대려 했더니 해경은 ‘방해된다’고 방송하면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첫날 동원된 잠수요원은 해경 140명과 해군 42명 등 모두 182명이었지만, 실제 수중 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9%에 불과한 16명”에 불과했다.진도관제구역에 세월호가 진입했고, 아침 8시 50분경, 관제소에서 23km 떨어진 지점에서 배가 넘어가는 순간에, 해경은 그저 모니터로 주시만 하고 있었다. 23km 거리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무려 47분이 지난 9시 37분에 해경이 현장에 도착했다. 500명에 가까운 승객이 배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착한 것은 14명이 타는 100톤급 경비정 1척, 고무보트 1대, 헬기 3대가 고작이었다. 구조대의 규모가 부족했던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탈출시킬 시간이 충분했고, 그들을 구조할 민간 어선들이 달려와 대기하고 있었지만, 경비정은 세월호에 접근도 하지 않고 멀리서 대피 방송만 했다. “배가 완전 침수하기 직전(30여 분간)까지만이라도 아이들을 끌어올리기만 했다면 최소 몇 십 명은 더 구했을 텐데 아무런 장비도 없이 배에 올라타서 그냥 보고 있기만” 했다.

16일 해군은, 잠수사들이 세월호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줄(하잠색)을 최초로 설치했지만, 해경이 막아 잠수하지 못했다. 17일에도 해군의 최정예 잠수요원인 해군 특수전 전단(UDT/ SEAL)과 해난구조대(SSU) 대원 19명이 잠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해경은 해군 잠수요원들의 현장 접근을 통제했고, 이들은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안전행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4월 17일 오전 9시 브리핑에서 잠수 인력을 555명으로 늘렸다고 발표했고, 4월 18일에는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이 “4월 17일부터 4월 18일 09시까지 함정 173척, 항공기 29대, 잠수요원 532명을 지속 투입했다”고 밝혔지만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사까지 합쳐 수중 수색에 투입된 실제 인원은 76명에 그쳤다.

≪문화일보≫는 문화재청이 4월 16일, 수중 발굴 인양선 2척(누리안호ㆍ씨뮤즈호)과 잠수전문요원을 현장에 급파했지만, 해경이 5일간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자, 사건 발생 5일째인 4월 20일,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철수했다가, 이후 다시 해경의 투입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프레시안≫은 해군참모총장이 4월 16일, 구조전문함인 통영함을 세월호 구조 작업에 투입하라고 지시했지만, 불과 이틀 뒤 국방부가 기술적인 문제로 통영함을 구조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해경은 민간 잠수사의 투입도 꺼렸으며, 민간 잠수사는 사고 발행 후 만 하루가 지난 17일 오전 8시 반경에야 처음으로 투입되었다.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온 잠수사들도 “골든타임”이라는 72시간 동안 단 한 명도 투입되지 않았고, 3일이 지난 19일이 돼서야 2명을 처음 투입시켰다. 17일의 경우 “인원은 200명도 안 됐고, 헬기는 단 두 대, 배는 군함 두 척, 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 작업을 하면서도, 9시 대한민국 재난본부에서는 인원 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으로 구출 작업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4월 23일 현재, “현장에 달려온 민간 잠수부 600여 명 가운데 실제 물에 들어간 잠수부는 30여 명뿐”이며 “민간 잠수부들은 구조를 위해 물 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계속 요청하고 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잠수사들은 증언한다. 잠수 구조 작업에 가장 필수적이고 우선적인 바지선도 사고 다섯째 날인 20일이 되어서야 배치했다.

해경은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의 효율성을 문제 삼으며 시종일관 구조에 투입시키지 않았지만, 언딘 측이 강릉 모 대학에서 2인승 다이빙벨을 빌려서 사고 해역까지 가지고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후 여론에 밀려 투입을 하였지만, 해경경비정이 잠수 작업을 하는 바지선에 충돌하고, 해군소장과 해경 국장이 숙소로 찾아와 ‘작업을 해야 하니 작업 안 할 거면 빨리 배를 빼라’ 하는 등의 반응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철수하였다.3)

배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사고 후 만 이틀이 지난 18일이 되어서야, 활용이 가능한 28개의 리프트 백(공기주머니) 중 겨우 세 개를, 그것도 아무 효과도 없이 설치하더니, 더 이상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크레인은 공식적 ‘사고 발생시각’ 후 5시간이나 지난 뒤에 요청하여, 12시간 만에 출발하고, 만 이틀이 지나서 배가 완전히 침몰하고서야 도착했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한 현대삼호중공업이 지원하기로 한 플로팅도크는 담당자가 “세월호의 길이가 146m, 폭이 22m라고 하는데 그 정도 크기의 선박은 어렵지 않게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투입되지 않았다. 군함은 배가 기울고 있을 때 이미 도착했고, 이때 군함들을 세월호에 밀착시켰다면 배가 더 이상 기울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빤히 보이는 3km 인근에 병풍도가 있다. 배가 뒤집히고 앞부분만 올라와 있을 때라도, 예인선(터그 보트) 6척이면 충분히 끌고 갈 수 있고, 군함으로도 밀거나 끌고 가면 되는데 시도하지 않았다. 배의 앞부분을 크레인과 밧줄로 묶어 두기만 해도, 그대로 유지되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결국 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해경의 범죄 행위의 빙산의 일각이다. 해경은 구조를 하지 않았고, 구조를 막았다. 이것은 명백하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 그들도 선원들처럼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4. 누가 집단 학살을 “명령”했는가

 

이지 않는, “명령”하는 자들의 힘은 막강하다. 배 안에서는 선원들에게 명령한다. 해경에게도 명령한다. 해군참모총장에게는 통영함을 투입시키지 말라고, 안전행정부에게는 허위 보고를 하라고 명령한다. 문화재청, 119소방청도 한없이 무기력하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조 활동’에서의 범죄행위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다. 구성을 보자. 본부장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상황실장 문해남 해양정책실장, 총리실, 안행부, 기재부, 복지부, 교육부, 국방부, 소방방재청, 경찰청, 전남도 담당 국장 등이다.

이들이 일시에 의기투합해서, 태업을 벌이며, 하지도 않는 구조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고,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을까. 어림없다. 그들 전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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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22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전격 경질되었다. 그토록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던 그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질되었다. 남재준은 퇴임식도 치르지 못하고 쓸쓸히 국정원을 떠났다. 그들은 “세월호 정국”에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말(!!!) 정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로서는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뒤의 보이지 않는 배후도!뿐만 아니다. 저들은 거의 모든 언론을 통제한다. ≪KBS2 TV≫ “굿모닝 대한민국(2부)”에는 4월 16일 아침 7시 20분경에 세월호가 “관매도에 피항했다는 내용”의 자막을 내보내는데,(*) 이후 이 자막이 검게 처리되어 삭제된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모든 지상파 방송도 주요 신문도 거짓말로 일관하며, 국민을 속였고 또 속이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조차 없다. 보이지 않는 이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5. 단 90분, 길어도 90시간이면 진실은 규명된다

 

실을 규명한다고 국정조사팀이 구성되었다. 새누리당 9명, 새정연 8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는 범죄자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극우 ≪조선일보≫(2014. 5. 17)의 사설(社說)처럼 “정치쇼로 갈 게 뻔해지는 세월호 국정조사”.

저들은 6월 2일부터 8월 30일까지 90일간 조사를, 정치쇼를 한다고 한다. 웃기는 일이다. 우리는 주장한다. 90일이 아니라 단 90분, 길어도 90시간이면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배가 왜 침몰했는지, 누가 그들에게 학살 명령을 내렸는지 말하게 하라. 해경 책임자에게, 구조를 하지 말라고, 구조를 막으라고, 누가 명령했는지를 말하게 하라. 그리고 사고의 흔적이 있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배 좌측 뒷부분 바닥의 사진을 공개하면, 선장과 선원들의 증언이 증명될 것이다.

 

2014년 6월 7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운영위원회

 


(*) 오류를 정정합니다.

“≪KBS2 TV≫ ‘굿모닝 대한민국(2부)’에는 4월 16일 아침 7시 20분경에 세월호가 ‘관매도에 피항했다’는 내용의 자막을 내보냈는데,…”는 다음과 같이 수정합니다. 

“≪KBS2 TV≫ ‘굿모닝 대한민국(2부)’에는 “‘7시 20분에 여객선 침몰사고가 발생했다’는 내용을 자막으로 보냈다”고로 수정합니다. 자막이 검게 처리된 것은 맞습니다. 

-“관매도 피항” 관련하여 부언설명드립니다. 

‘관매도에 피항했다’는 내용은, 남해에 산다는 어부가 < 다음 아고라>에서 증언합니다. 자신이 시청한 KBS 보도 내용을 기억해내며 “세월호 선장은 아침 7시 20분 이전에 관매도로 피항하면서 ‘구조요청’을 보냈다.”라고 주장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200517에 있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접근이 안 됩니다. 

또 관매도 어민이 7시 30분경 “하얀 배가 가만히 있”었다라고 증언하는 기사가 한계레 신문에 나와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3760.html

 

 


1) Reuters, “South Korea Ferry Crew: We Were Ordered to Abandon Sinking Ship”(한국 여객선 선원: 우리는 침몰하는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NBC NEWS, April 24 2014.

(http://www.nbcnews.com/storyline/south-korea-ferry-disaster/south-korea-ferry-crew-we-were-ordered-abandon-sinking-ship-n88396)

 

2) 이니지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초동대처의 심각한 과실들”, ≪서프라이즈≫, 2014. 5. 24.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6108)

 

3) 조현호 기자, “이종인은 다이빙벨 잠수시켜놓고 왜 철수했는가”, ≪미디어 오늘≫, 2014. 5. 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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