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돌고 도네 돌아가네”

배은주|회원

 

하영 엄마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시어머니의 자살이 있고 난 얼마 후였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충격이라 생각했다. 통장을 챙겨나간 것으로 봐서 어머니를 따라갈 생각은 아닐 것이라고 한편 안도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곧 들어오려니 하고 기다렸다. 그런 남편은 몇 달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이 연락을 하고서 몇 년이 지나서 나타난 남편은 노숙인 행색이었다. 그가 집에 온 이유는, 아내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 법적 혼인 상태를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집을 나갔고, 하영 엄마는 그렇게 이혼녀가 되었고 아들 둘을 혼자 키워야 하는 싱글맘이 되었다.

 

 남편이 집을 나가기 전, 하영 엄마는 남편과 함께 김밥집을 했다. 자영업이란 게 인건비 버는 거라고, 남편이 집을 나간 후 다른 사람을 써서 김밥집을 꾸려 나가는 건 고달프기만 했지 남는 게 없었다. 김밥 외에 여러 메뉴를 추가하기도 하고 추어탕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꿔 변화를 모색해 보기도 했지만, 돈이 안 되기는 매 한가지였다. 하영 엄마는 결국 가게를 정리했다. 초등 4년생과 중 2인 아들 둘을 공부시키려면 어떻게든 벌어야 했다. 벼룩신문이나 취업 싸이트 등을 둘러 보다 경력이나 전문지식이 없어도 쉽게 취업이 된다는 콜센터 상담원을 양성한다는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실무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그리고 OO은행의 콜센터 업무를 위탁운영하는 한 도급회사에 취직했다. 인바운드 상담일이었다. 마흔이 되던 해였다. 사람들은 그랬다. 그래도 그 나이에 받아주는 데가 있는 게 어디냐고. 그것도 은행에서. 하영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상담원 일이 어느덧 벌써 5년 째… 운이 좋은 것도 일의 내용이 좋은 것도 아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고, 먹고 가르치고 살아야 하니까 일할 뿐이다.

 

 하영 엄마는 자신의 일터를 콜공장이라고 부른다. 콜센터, 고객센터, 요즘은 컨택센터라고 이름을 바꾸고 있는 추세지만 그이에게 그곳은 그저 콜공장이다. 넓은 홀에 400여 개의 칸막이 책상들이 빼곡이 차 있고, 각 책상 위에는 헤드셋과 컴퓨터들이 놓여 있고, 그 책상 앞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고객 감동’을 초 단위로 생산해 내는 곳이다. 6-70년대 가난한 여성들이 봉제공장에서 수출물량을 맞추기 위해 쉴 틈 없이 미싱 발판을 밟아야 했던 것처럼, 콜공장 여성노동자들은 헤드셋을 쓰고 고객이 이해하고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말로써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6-70년대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산업의 최일선에서 저임금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며 노동했던 것처럼, 지금 콜공장 여성노동자들 역시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저임금에 여전히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며 일하고 있다.

 

 하영 엄마는 어느덧 딴 짓을 하면서도 상담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회사가 요구하는 하루 목표 콜수 160콜을 채울 수는 없다. 160콜을 채우려면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이 고객한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평균 3분 안에 끝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요구를 충분히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하는 고객을 상대로 하는 일이, 마치 공산품 찍어내듯 항상 일정한 시간 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영 엄마는 보통 평균 시간당 16콜, 하루 130콜 정도를 처리하고 있다. 그것도 콜을 받으면서 밀려 있는 대기콜 숫자에 눈을 떼지 못하고 통화가 끝나는 대로 다음 콜을 받아야 가능하다. 콜이 밀리는, 특히 월요일에는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각각 10분씩 줄여가며 밀린 콜을 받아야 한다. 자리를 뜨는 이석시간은 절대 하루에 30분을 초과할 수 없다. 이석시간이 30분을 넘거나 목표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하나하나 성과급에서 깎이게 된다. 혹 목표 콜수를 다 채운다 해도 민원이 발생하게 되면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가고 만다. 목표량(더 많은 콜)뿐만 아니라 품질향상(무한고객감동)을 위해 노동자들은 인권이 억압당할 정도의 항시적인 감시와 평가체계 아래서 고강도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흔히 콜 상담원을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이 말이 표현하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기업 쪽에서는 이 표현을 꺼리며 상담원에게도 사용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용을 자제한다고 실체가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하간, 하영 엄마는 감정노동을 하다보면 이 사회가 새로운 신분사회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전산상의 오류로 어떤 고객의 카드사용한도액에 문제가 발생된 일화이다. 그 고객은 카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고객센터 상담원과 팀장과 관리자 등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자신에게 찾아와 대면사과를 할 것을 요구했다. 콜센터 상담원과 관리자들은 과일바구니까지 준비해 찾아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과했으나 여전히 그 고객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빌라고 요청, 결국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진 사람처럼 빌었다고 한다.

 

 신음을 내며 성희롱을 일삼는 고객,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욕설을 해대는 고객, 그리고 위에서 예를 든 사람처럼 신신분사회를 기꺼이 즐기는 고객까지 매우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는데, 언제나 칼자루는 고객의 손에 달려 있다. 아무리 악성 전화여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으며, 고객이 전화를 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끊어야 한다.

 

하영 엄마는 그간 콜 상담을 해 오면서, 성희롱 고객보다는 억지고객이, 단순하게 성질을 내며 화를 내는 고객보다는 오히려 교양 있게 행동한답시고 화를 참으며 꼬치꼬치 묻고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설명을 하라는 지식인 부류들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콜공장 노동자들은 거의가 여성들이다. 손쉽게 기술을 습득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령층은 한정되어 있지 않고 광범위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객의 ‘귀높이’에 맞추는 일이다보니 아주 젊은 여성보다는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이 주를 이룬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경력단절여성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이며, 하영 엄마처럼 이혼녀이거나 싱글맘인 경우도 다섯 명 중 하나 꼴로, 적지 않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해 낼 수 있다는 직업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동료들과 그리고 도급업체와 콜수를 올리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받은 콜에 대한 정리를 하는 후처리시간은 종종 일과 후로 미루어지며, 정기적인 평가시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과 가정의 병행은 애초 불가능한 말, 그저 선전에 불과한 말이다.

 

 어린 자녀, 특히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직장 동료들은 방과 후 돌봄을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특히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한부모가정의 경우가 그렇다. 형편이 좋으면 그야말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며 퇴근시간까지 학원에 묶어두는 궁여지책이라도 쓰겠지만 저임금으로 그러기도 어렵다. 아이가 마땅히 갈 데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집 안에서 티비나 게임에 정신을 팔고 있어도 다른 어떤 대책이 없다. 염려 섞인 잔소리만 해댈 뿐이다. 엄마 없는 시간대에 그냥 방치되는 아이를 생각하면 한국이 개인소득 2만 달러를 상회하며 OECD가입 선진국이라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나 유의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콜공장 노동자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찾기 어렵다. 오히려 70년대 가난한 가정, 일 나간 엄마와 그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일상과 더 가깝다고 할까.

 

 대부분의 콜센터업체는 대체로 원청업체와 1년씩 계약하는 도급업체이다. 하영 엄마는 도급회사의 정규직이지만 자신이 소속된 회사가 언제 어떻게 될지 또한 모르기 때문에 때때로 불안하기도 하다. 하영 엄마의 말에 의하면, 콜센터산업현장에서 이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관리자와의 충돌이다. 즉 도급회사는 원청회사와 지속적으로 재계약을 맺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통제 감시하게 되는데, 결국 원청회사와 도급회사의 갑을관계에서 생기는 압력이 도급회사의 관리자를 통해 고스란히 상담원에게 가해진다. 이렇게 간접고용은 불안정한 고용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금전 문제에 인정은 금물입니다!”하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도급업체는 기업의 이윤을 더 높이기 위해서라도 노동강도를 세게 한다. 그리고 장기근속자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장기근속 노동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퇴직금이나 4대 보험 지급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원들이 견디다 못해 퇴사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견디든지 나가든지. 이 바닥에선 이전의 콜 상담경력도 인정하지 않고, 며칠만 교육시키면 곧장 콜 상담이 가능한 싼 노동인력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이것이 기업의 생각이다.

 

일하던 콜센터를 떠난 상담원들 대부분은 다시 다른 콜센터로 이직하고 있다. 상담원이 하는 일은 산업에 따라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거의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경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초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돈을 쥔 기업이 콜센터 노동자들을 일하던 일터에서 쫓아내고 초임의 저임금 노동자로 재고용해 이중 삼중으로 착취하고 있다. 콜공장은 이렇게 돌고 돌아간다. 상담원을 몰아붙이며 잘도 돌아간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콜센터산업은 언제든지 누군가로 대체가능한 그런 불안정한 간접고용만을 양산하며 돌아가고 있다.

 

 하영 엄마의 큰 아들이 올해 대학에 진학해 겸사겸사 만났다. 봄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지는 토요일 낮이었다. 하영 엄마는 ‘태양 때문에’ 살인했다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모인 사람들은 그저 헛헛하게 웃었다. 대화 중에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폴더를 열어 번호를 확인했다. 오래 전에 이혼하고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친구였다. 학습지교사, 논술교사를 거쳐 최근 몇 년은 아웃바운드 상담원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는 친구였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내 말에, “다시 콜공장으로 들어가야 될까 봐. 이따 오후에 면접을 보기로 했어.”라고 친구가 대답했다. 햇빛만 속절없이 좋은 날이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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