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서평> 희망은 과학적 사상에서 움튼다

―≪노동사회과학≫ 제5호·제6호 서평―

 

장진엽|회원

 

내가 ≪노동사회과학≫ 제6호를 건네받은 것은 지난해 12월 28일, 시청광장에서였다. 철도민영화(사유화) 저지투쟁이 열렸던 그날 서울에는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불었다.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인파를 헤집고 겨우 일행을 만났을 때, 옆 대오의 동지들이 맛 좀 보라면서 떡을 내민다. 지방에서 맞춰 온 떡인데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와, 서울은 이리 춥구마.”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그날 저녁 십만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수많은 노조와 학생조직, 시민단체들의 깃발들이 꿈틀대면서 광화문으로 진출했다. 철도 파업은 20일을 훌쩍 넘겼고 복귀율도 매우 낮았다. ‘노동탄압분쇄’, ‘민영화저지’, ‘박근혜퇴진’의 목소리가 점차로 높아지고 있었다. 세종대로 사거리에는 예의 그 차벽이 가로놓였고 시위대는 차도를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했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몸싸움이 일어났고 몇몇은 연행되었다. 파업은 성공적이었고 대중의 열기도 높았다. 그날은 2008년의 광우병 집회를 연상케 했다. 투쟁은 고양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 후 파업은 중단되었고 철도노조에 대한 탄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날 시청광장을 에워싸고 세종대로를 봉쇄한 차벽은 그리 높아보이지도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한 규모, 그만한 열기의 대중 앞에서 그 정도의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경찰의 ‘과도한’ 대응에 투덜대기만 했을 뿐 누구도 그 차벽을 넘거나 쓰러뜨리지 않았다. 경찰버스를 끌어당겨 뒤집었어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던 예전의 기억 때문일까? 민주노총은 저녁 7시 30분 경 집회를 공식 해산했고, 남아 있던 참가자들은 여기저기서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부딪치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차벽을 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높아서가 아니다. 차벽을 넘지 못한 것,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차벽 너머의 것에 대한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넘어 청와대로 간다는 것, ‘국가’에 직접 따지러 간다는 것, 그것까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중은 바로 그러한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 다음엔? 소부르주아 지도부는 ‘속풀이’를 한 대중에게 얌전히 집에 돌아가서 다음 선거 때 누구를 찍을지 잘 생각해 보라고 타이를 것이다. 철도노조는 민영화 문제를 전 인민의 문제로 상승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그것을 뒷받침하기에 민주노조 진영은 역부족이었다. 거기에다 박근혜정부는 ‘종북’ 논리를 앞세워 대대적인 파쇼 공세를 펼치면서 노동자계급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차벽을 넘어뜨린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상상조차 어렵다.

전 세계적 대공황으로 이미 정세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그러나 “운동의 재건은 경제상황에 의해 자동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1)며,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은 경제적 토대의 위기를 기초로 하되 노동자계급의 사상의 재건을 필요로”2) 하는 것이다. 그만한 규모, 그만한 열기의 대중이 차벽을 넘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며 대중을 견인해야 하는 노동자계급의 사상적 토대가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임이 자명하다. 이는 또한 노동자·민중운동을 올바른 노선에 따라 지도할 전위당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는 바, 전위당의 건설 역시 이러한 전망의 수립과 그것에로의 결집이 선행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는 현장의 노동자들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세계관을 자기화하고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사상적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당면한 정세를 분석하는 글이 많이 있고, 맑스·엥겔스와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의 저작을 직접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이 두 권의 이론지를 추천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사회과학≫에 실린 글 하나하나는 모두가 지금 이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사상적 건설’을 위해 분투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2008년 “과학적 이론 없이 운동의 전진은 없다!”는 기치하에 창간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이론지 ≪노동사회과학≫은 그간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정세 분석, 20세기 현실 사회주의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검토에 주력해 왔다. 즉, 이 책들은 금세기의 대공황이 발발한 때로부터 현재까지 각 시기의 정세와 마주하여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고 ‘현실’을 변혁해야 할지에 대한 전망의 제출인 것이다.

≪노동사회과학≫ 제5호(2012년 4월)와 제6호(2013년 12월)는 1년 반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발행되었으나 각 호에 실린 글들이 동일한 문제의식하에 기획된 것들이 있고 연속적인 정세의 변동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두 권을 묶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제5호의 주제는 ‘좌·우익 기회주의의 현재’이며, 제6호의 주제는 ‘그리스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이 주제들은 노동자계급의 사상적 건설이라는 다소 막연해 보이는 목표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성취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즉, 오늘날 우리가 어떤 경향들과 싸워야 하며, 어떤 전망을 움켜쥐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과 맞설 것인가 ― 좌·우익 기회주의의 현재

제5호의 주제인 ‘좌·우익 기회주의의 현재’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한데, 오늘날 활개를 치고 있는 온갖 형태의 기회주의들에 ‘과거’가 있다는 것, 그러한 경향들과의 강고한 투쟁을 통해 20세기 사회주의가 건설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투쟁이 여전히 우리의 과제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5호와 6호에는 좌·우익 기회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개괄하는 글과 현 시기 국내외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글이 고루 실려 있다.

이번 5, 6호에서는 특히 좌익공산주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량주의, 우편향의 경향들이 쉽게 눈에 띄는 반면 좌익공산주의는 교묘한 언사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운동을 교란하고 있기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두 권의 책에서 좌익공산주의에 대한 글은 <좌익공산주의의 발생 배경, 출현과 그 주장>(제5호),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상)>,(제5호)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중)>(제6호)의 세 편이다. 이외에 <인도 공산당의 좌경 노선과 혁명의 실패—초기 인도 공산당의 식민지 문제에 대한 논쟁>(제6호) 역시 좌편향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므로 이 주제와 관련이 있다.

<좌익공산주의의 발생 배경, 출현과 그 주장>은 20세기 초 좌익공산주의가 출현한 배경, 좌익공산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 이들의 유형과 대표적 주장을 살펴본 글이다. 좌익공산주의가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하여 각 시기마다 잘못된 역사 인식과 교조적인 태도로 운동에 혼란을 가져왔음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또,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에서 이루어진 비판이 오늘날의 좌익공산주의의 견해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이에 기초하여 그들의 대표적 견해를 비판하였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전위와 대중, 당과 계급의 상호관계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 또,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며 이를 대체할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선거에 참여하거나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한다. ‘자본주의 쇠퇴론’ 역시 그들 사고의 주요한 거점이다. 물론 21세기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주특기는 역사 왜곡을 통한 반쏘·반공주의 선전이며, 이들의 실천적 힘은 아직 미약하지만 향후에 미칠 해악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전면적인 비판이 시작되어야 함이 글의 말미에서 강조되고 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역사 왜곡과 이를 통한 반쏘·반공주의 선전의 생생한 예가 바로 ≪소련은 무엇이었나≫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상), (중)으로 나뉘어 수록된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아우프헤벤 저, 오세철 ‘역’,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중심으로>는 그러한 역사 왜곡을 가능하게 하는 억지 논리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좌익공산주의자들의 혼란스러운 사고 경향을 확인케 해주는 글이다. ≪소련은 무엇이었나≫는 ‘아우프헤벤’ ― 지양(止揚)이란 뜻 ― 이라는 좌익공산주의 그룹의 저서를 오세철 교수가 ‘번역’, 소개한 책이다. 필자는 우선 이 책이 과연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글을 시작한다. 제시된 오역의 사례와 번역에서 제외된 부분들에는 상당한 정도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요컨대 반복적이고 일관성 있는 오역은 하나의 의도·목적을 보여주며, 그러한 오역의 경향을 읽음으로써 번역자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련은 무엇이었나≫의 저자들은 쏘련을 국가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왜곡과 억지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고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반대로 쏘련 사회의 진실한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저들이 맑스, 레닌 등의 저서를 인용할 때 흔히 범하는 ‘오해’는 실제 현실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데, 이는 독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읽고 싶은 대로 읽기 때문이고 현실을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은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악의적 반쏘·반공의 논리를 분석한다는 본래의 목적 외에, 우리가 저들의 교묘한 언설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알려준다는 의의가 있다.3)

<인도 공산당의 좌경 노선과 혁명의 실패—초기 인도 공산당의 식민지 문제에 대한 논쟁>은 인도 혁명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 글이다. 인도 공산당 내에서는 1920년대 창당 초기부터 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식의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인도 공산당은 의회 내의 세력 확보, 자연발생적인 파업과 시위 및 농민 봉기 등의 유리한 정세 변화와 대중적 지지를 활용하지 못하여 반제 투쟁 전선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 30년대 중반부터는 꼬민떼른의 지도를 수용하여 민족부르주아와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으나, 자체적으로 좌경적 노선과 기회주의를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에도 인도 공산당은 반제 투쟁과 반파쇼 투쟁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제 투쟁에 소극적이었다. 인도 공산당은 민족해방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제시하여 인도 독립투쟁을 이끌어야 했으나, 좌경적·기회주의적 노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다가 인민들로부터 고립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인도 공산당은 이후 중쏘 이념분쟁으로 또다시 동요하게 되고, 64년 이래로 심각하게 분열했다. 필자는 인도 공산당이 영국제국주의자들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투쟁의 최전선에 서서 인도의 인민을 고무했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잘못된 노선을 바로잡고 변화·발전하는 현실에 근거해 끊임없이 과학적 이론과 사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도 공산당의 투쟁 과정에 나타난 과오를 검토한 이 글은 반제—반자본 투쟁의 결합이라는 한국사회 운동의 과제와 관련해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이 글은 최근의 정세가 강제하고 있는 민주주의 투쟁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취해야 할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도 교훈을 준다. 협소한 경제주의와 같은 좌편향은 노동자계급이 인민 대중 사이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한다는 것을 인도 공산당의 역사를 통해서도 명백히 알 수 있다.

한편 중국에 대한 두 편의 번역 글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파악하는 관점>과 <중국의 국제적 역할>은 우익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더불어 서평 <강신준의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을 읽고> 역시 개량주의에 대한 비판의 글로 볼 수 있다. (이상 세 편은 제5호 수록) 또, 제6호에 실린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수정주의의 발전>은 개량주의, 수정주의가 역사적으로 전개된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좌우익 기회주의의 현재’라는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을 제공하는 글이다.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파악하는 관점—‘개혁·개방’ 30여 년이 지난 중국 ‘사회주의’의 변모>는 2011년 일본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계간지 ≪사회평론≫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는, 중국 공산당이 ‘시장경제’(상품경제)를 모든 생산양식을 관통하는 중립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파악하며 상품경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왜곡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본질적 차이를 흐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는 상품경제의 부정·극복에 의해 완성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1920년대 쏘련의 신경제정책(NEP), 즉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일시적으로 시장경제의 요소를 활용한다는 방침을 훨씬 넘어섰으며, 국유기업 대부분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되살아나는 것은 민족주의이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이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 ‘사회주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다. 필자는 중국의 현실을 ‘변혁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중국 공산당의 와해는 반드시 피해야 함을 강조한다. 노동자계급의 시각, 즉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시각에서 중국에 접근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관점이라 하겠다.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이 작성한 <중국의 국제적 역할> 역시 동일한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있으며, 특히 세계 제국주의 질서 내에서의 중국의 위치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강신준의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을 읽고>는 “맑스의 이름으로 맑스를 왜곡하는”4) 진보적 지식인들의 행태를 꼬집은 글이다. 강신준 교수는 자본주의를 폐기하지 않고 그 모순을 완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맑스주의를 케인즈주의와 동일시한다. 또, 노동시간의 단축과 사회적 임금의 확대를 통해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공황이 이러한 변화를 강제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노동자계급 해방의 사상인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론화하고 실천에 옮겼던 맑스에 대한 몰계급적 해석이라고 비판하며 이러한 주장이 노동운동에 확산되는 것을 경계한다.

필자는 이 서평을 쓰는 목적을 “그 책의 내용에 반대하여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보급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싶어서”5)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서평을 통해 독자들이 그러한 종류의 비과학적·개량적 사고를 비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다.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복지국가의 테두리에 가두려하는 한편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운동의 전망을 흐리는 것은 금세기 개량주의자들의 공통적인 행태이다. 한국사회에는 또한 국가보안법에 기생하며 반공주의의 기수로 활약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이와 같은,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능란한 언사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칙을 굳게 잡고 있어야 함을 이 서평은 보여준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상’으로서 실천을 통한 현실의 변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연장을 기도하며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광범위한 세력들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수정주의의 발전>은 사회주의 진영 내부에 들어오는 소부르주아적 요소로서의 ‘편향’을 넘어서서 계급성을 타격하여 사회주의를 해체하는 역할을 했던 ‘수정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본문에서는 수정주의의 1단계로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의 수정주의를 비판하고, 이어서 2단계로 티토, 3단계로 흐루쇼프와 똘리아띠, 4단계로 덩샤오핑과 장쩌민의 수정주의를 살펴본다. 특히 중국 공산당의 수정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정치적 현실로서 이에 대한 극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필자는 20세기 수정주의의 전개과정 전체에 걸쳐 각각의 역사적 단계에 적절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및 세계변혁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발전 문제가 사활적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한국의 현실을 보자. 다수의 인민이 여전히 부르주아 정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 운동이 개량주의의 덫에 걸려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조합주의가 판을 치고 대중투쟁은 힘을 받지 못한다. 또한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오랜 반공주의는 정치 투쟁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건설은 요원해 보인다. 한국의 노동자계급 운동은 어떠한 전망을 갖고 나아가야 할까. 이에 대해 ≪노동사회과학≫ 제6호는 그리스 공산당 19차 당 대회 테제를 제시한다.

 

전망 ― 그리스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제6호의 <편집자의 글>에서는 현 정세의 요구사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공세는 세계대공황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반동화 경향의 한국적 현상이다. 이러할 때 노동자계급은 시야를 국내에만 고정하여 수세적 방어에만 자신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세계대공황이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 나아가 세계대공황이 중국과 미-일 동맹의 대립 등 세계질서의 격동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전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세계질서의 변동을 조건으로 운동을 사고해야 하며 따라서 국제주의의 기치를 전면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세계적으로 눈을 돌리면 터키, 그리스, 브라질, 이집트 등 세계 각국의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계급과 격돌하고 있다. 한국의 투쟁 또한 그러한 세계적 투쟁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6)

 

이러한 취지에서 제6호는 2013년 4월에 열린 그리스 공산당의 19차 당 대회 문건을 중요한 비중으로 싣고 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이므로 공황도 전 세계적일 수밖에 없으며, 한국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 역시 전 세계적 해방운동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이에 “현 단계에서 달성된 가장 선진적인 사회주의 운동과 활동을 집약한 내용”7)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공산당의 테제는 한국사회의 운동의 전망을 바로 세우는 데에 결정적인 지침을 제공한다. 1918년에 창당하여 2차 대전과 군사독재,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와 개량주의의 득세를 겪어내면서 맑스-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며 노동자계급의 전위로 발전해 온 그리스 공산당의 경험은 오늘날 전 세계 노동자계급 운동의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제6호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는 이 글을 번역, 소개한 것 자체만으로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이다.8)

<그리스 공산당 19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테제>는 전체 100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테제는 현 시기의 정세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황으로 인한 EU 내부의 모순 심화, 그리스 주변 지역의 에너지 수송 등을 둘러싼 제국주의 국가들의 각축, 터키의 부상과 NATO의 개입 강화 등이 발칸반도의 현 상황이다. 한반도의 정세를 분석할 때에도 “세계대공황이 중국과 미-일 동맹의 대립 등 세계질서의 격동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함을 여기에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다음으로 그리스의 경제공황 및 그것과 관련된 경제구조와 정치적 지형의 변동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테제는 그리스 국가채무의 문제로 자본가 권력의 약점이 드러났는데도 그리스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기관들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국가와 준국가적인 억압기구들과 반동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법에 의한 노동자·민중 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상호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협력의 형식을 취한다. 중도우익 정당인 민주당(ND)과 사민당(PASOK) 외에 중도좌파인 급진좌파연합(SYRIZA)이 부상하고 있다. 거기에 민족주의적 파쇼 정당인 황금새벽당(Golden Dawn)이 가세하고 있다.9) 이러한 상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진단은 한국사회의 정치 현실과 관련해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17. 공황의 관리를 위해 친독점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정당들 사이의 정치적인 모순은 하나 혹은 또 다른 관리 방식에 대한 모순, 금융통화방식과 팽창방식에 대한 모순으로 드러나는데 자유주의와 개량주의—기회주의의 방식 간의 충돌로 은폐되었다. 양자의 관리 방식은 독점체들과 자본의 이윤의 회복에 봉사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새로운 공황의 순환을 초래할 것이다. 자유주의 관리 모델과 케인즈주의 관리 모델의 양자의 교대는 20세기 내내 경제공황의 순환을 발생시켰고 부르주아 상호 간의 그리고 제국주의자 상호 간의 모순을 첨예하게 하고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을 초래하였다.

관리 방식의 교대를 기초로 하여 부르주아정치체제의 개혁이 촉진되고 있으며 그 결과 그것은 서로 협력하는 정당들을 통하여 정부들의 더욱더 빈번한 교대를 제공할 수 있다.10)

 

한국의 정치 상황은 파시스트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의 갈등이 주요하게 부각되고 소부르주아들이 자유주의 세력에 이끌려 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와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개량주의—사민주의적 방식을 공황 극복의 유력한 대안으로 여기는 경향이 운동 진영 내부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방식과 개량주의적 방식의 양자가 공히 독점자본에 봉사하고 있으며, 그러한 부르주아적 관리 방식의 교대를 통해서는 결코 현 시기의 공황, 나아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정세 분석을 토대로 그리스 공산당이 제기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공황의 관리인가 아니면 인민에게 유리한 탈출구인가? 말을 바꾸면, 개량인가 아니면 혁명인가?”11) 2009년 18차 당대회부터 2012년까지 그리스 공산당의 사상적 대결 국면은 바로 이 문제에 집중되어 왔음을 테제는 밝히고 있다.

정세 분석을 제외하고 테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은 〈18차 당대회부터 19차 당대회까지 당 사업의 보고〉와 〈20차 당대회까지의 기본적인 의무들〉이다. 당 사업에 대한 보고에서는 노동운동과 인민동맹의 발전, 이민자 문제, 사상적—정치적 투쟁, 선거 과정, 당 건설 과정과 그 요소로서의 당의 사회적 구성, 당 기관과 간부들, 그리스 공산주의자 청년 동맹, 국제 공산주의 운동 및 국제주의적 연대, 중앙위원회의 업무 수행과 당의 재정 문제를 중심으로 당의 활동을 정리, 평가하고 있다. 20차 당대회까지의 의무는 인민동맹과 관련한 과제가 주를 이룬다. 당 사업 보고와 향후의 과제를 서술한 이 부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량이 아닌 변혁을 위해 실제로 어떤 활동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리스 공산당의 당 조직 및 전선체에서의 활동 방식이다.12) 그리스 공산당은 작업장이나 거주지 등 다양한 부문의 기층조직(PBO)들로 구성되며, 당 산하 조직으로 그리스 공산주의 청년동맹(KNE)을 두고 있다. 또한 당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선조직이 있는데, 그리스 공산당이 주도하는 전선조직으로 전노동자투쟁전선(PAME)이 대표적이다. PAME는 반자본·반독점을 지지하는 노조나 활동가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대중조직으로, 당원들이 PAME에 파견되어 활동함으로써 당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스 공산당이 강령적 통일성을 지니고 강력한 규율로 묶인 결사체라면 PAME는 개방적인 전선조직이고, PAME를 통해 그리스 공산당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조직으로 자영업자와 소상인의 전국적 반독점 연대(PASEVE), 전농민투쟁연대(PASY), 학생 투쟁전선(MAS), 그리스 여성연맹(OGE) 등이 있으며, PAME가 이들 전선조직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테제에서는 이들 전선체를 강화하여 독점자본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대중적 조직인 ‘인민동맹’을 건설하는 것을 그리스 공산당의 당면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인민동맹의 힘은 “노동자들과 인민들의 조직화의 정도에, 그리고 작업장과 부문들에서, 노동자들의 이웃들에서, 농부들과 인민층의 거주 지역들에서 밑으로부터의 참여에 달려 있다.”13) 그러므로 인민동맹은 “동맹의 기초를 구성하는 노동조합들, 자영업자들, 농부들, 학생들, 고등학생들, 여성조직들에 의해 조직된 총회들로 훨씬 더 많은 인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14) 노력한다. 동맹에 속한 인민들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조직화의 과정을 통해 정치적 경험을 증대시키며 두려움과 동요를 극복하고 견고한 투사로 거듭날 것이다.

테제의 두 번째 부분인 〈그리스 공산당의 강령 초고〉에는 광범위한 투쟁의 전선을 형성한다는 당면 목표 이후의 궁극적인 지향, 바로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이 담겨 있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구체적인 방식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세 번째 부분 〈그리스 공산당 규약 초안〉에서는 혁명적 정당의 근본적인 운영 원칙인 민주집중제의 일관된 적용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당의 기층조직(PBO)에 대한 규약들은 당 건설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끼의 전위적 역할은 쏘련 전역에 걸친 쏘비에트의 건설을 토대로 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스 공산당 역시 “당의 기층조직(PBO)은 당의 토대이고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당이다.”15)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각 부문들에서의 PBO의 창출을 통한 당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동자계급 정당이란 몇몇 정치조직들의 연합으로, 혹은 추상적인 결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노동자·민중의 조직화라는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 건설되는 것임을 동시대의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격화하고 있는 공황의 국면에서 그것의 부르주아적 관리, 즉 개량주의적 방식을 거부하고 인민에게 유리한 유일한 탈출구로서의 변혁을 목표로 사상적·정치적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 이와 함께 노동자 전위당에 의해 지도되는 노동자 전선조직을 중심으로 반제·반자본의 전 인민 투쟁전선을 구축하며 그러한 투쟁의 전 과정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주체적 요소들을 준비해 나가는 것 ― 이것이 현 시기 그리스 공산당의 투쟁 전망이다.

그리스 공산당의 경험에서 우리는 어떠한 전망을 획득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공황은 전 세계적 공황이며 따라서 우리의 투쟁 역시 전 세계 해방 운동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세계질서의 변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국제주의의 원칙을 관철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지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내용상으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 처음에는 일국적”이며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당연히 맨 먼저 그들 나라의 부르주아지를 끝장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우선 한국의 독점자본과 싸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독점자본에 빌붙는 온갖 종류의 기회주의적 세력들과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 개량이 아니라 변혁을 목표로, 노동자·인민이 단결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전망을 움켜쥐고 나아가야 하며, 그러한 투쟁의 과정이 전 세계적 해방 운동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스 공산당의 테제는 분명히 말해준다.

 

되살려야 할 것들 ― 노동자계급운동의 역사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은 없듯이 미래의 전망은 현실의 투쟁에서 솟아나며 현실의 투쟁은 과거의 경험에서 그 추동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억압적인 세력들은 언제나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는 감추어져 왔다. 거기에다 쏘련 붕괴 이후 운동진영 내부의 청산주의적 경향이 자본가계급의 필요와 맞물려 확산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역사를 세우려는 주체적인 노력 역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노동사회과학≫의 많은 이론 글들은 노동자계급 운동의 역사를 회복하려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제5호에 수록된 <스딸린에 반대하여 쏘련공산당이 취한 조치들에 대하여—흐루쇼프 동지와 해외의 다른 동지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은 인도의 공산주의 운동가였던 쉬브다스 고쉬(1923—1976)가 1956년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글이다. 당시 흐루쇼프의 스딸린 탄핵은 20세기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을 가져온 결정적인 조치였다. 고쉬는 흐루쇼프가 제시한 세 가지 쟁점, 즉 개인숭배, 관료주의, 권력 남용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힌 후 스딸린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쏘련공산당이 채택한 탈스딸린주의라는 수단이 수정주의로 향할 위험이 충만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16)

고쉬는 흐루쇼프가 그러한 조치들을 여러 나라의 공산당들의 도움으로 실행하려고 결의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면서 구체적인 사실들의 제시, 사실들의 확실성 입증, 사실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이루어지기 전에 각국 공산당들이 쏘련공산당의 조치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에 이미 22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제시한 사실들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쏘련의 해체 이후 얼마나 많은 반공주의적 왜곡이 덧씌워졌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편 고쉬는 스딸린이 있었기에 사회민주주의, 뜨로츠키주의와 구분되는 레닌주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이해가 공산주의운동을 현재의 위치까지 가져왔음을 역설한다.

 

정말로 그의 선구자들인 맑스, 엥겔스, 레닌처럼 스딸린도 역시 맑스-레닌주의의 권위자입니다. 스딸린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그의 권위를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을 거부하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미래의 세대들에게,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정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뜨로츠끼주의자들과 부하린주의자들에 반대하여 스딸린이 수행한 끊임없는 투쟁의 장(중요한 업적)은 어둡고 검은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고 미래의 세대들은 이론적으로 강철같이 단련되는 기회를 박탈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반혁명 사상이 맑스-레닌주의로 통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공산주의운동의 이론적인 토대는 후퇴를 경험할 것입니다.17)

 

정확히 오늘날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고쉬는 또한 스딸린을 ‘평화공존 이론의 설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최초로 사회주의국가를 설립하고 평화공존이론의 씨를 뿌린 사람은 레닌이며, 그 사회주의국가를 사회주의 최후의 거점으로 강화시키고 평화공존이론을 실제로 쏘련 외교정책의 중심점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스딸린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에는 ‘상식’ 차원의 생각이었다! 흐루쇼프는 바로 이러한 스딸린의 역할을 부인하면서 마치 자신이 평화공존이론의 설립자인 것처럼 교묘히 선전하고 있다고 고쉬는 지적한다. 물론 역사적인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요인, 그리고 변화가 일어난 시점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의 역사관은 신앙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다.

제5호의 <맑스주의 전술론 발전의 역사>에서는 “20세기의 무수한 사회주의 운동과 건설의 경험은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전술의 수립과 실천의 과정”18)이었으며 “현실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은 전술원칙의 수립과 그것의 풍부화, 정교화의 역사”19)였다는 전제하에 맑스로부터 레닌, 스딸린, 꼬민떼른, 마오쩌둥에 이르는 전술론 발전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결론에서는 이러한 전술론 발전의 역사를 통해 맑스-레닌주의 전술원칙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노동자계급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초로 이러한 전략·전술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한국의 노동자계급 운동이 대중의 자발성에 의지하고 사회주의자의 의식적·과학적 전술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고, 쏘련 붕괴 이후 무너진 사상을 재건하는 한편 현실적인 전술의 수립과 운용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무장시키는 양 날개의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이론과 실천의 영역에서 사회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이 글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제6호에 실린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수정주의의 발전>과 함께 20세기 사회주의의 흐름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확보하게 해주는 글이다.

제5호와 6호에 걸쳐 수록된 <옌안문예강화 당파적으로 읽기>(1)(2)는 ‘과학적 문예이론의 복원’이라는 목적하에 마오쩌둥의 문예론을 살펴본 글이다. 필자는 마오의 문예론이 맑스-레닌주의 문예론의 원칙을 중국의 구체적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며, 옌안문예강화는 마오 개인의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해방구에서의 치열한 집단적 투쟁의 산물이라고 파악한다. 1)문예란 인민 대중에 봉사하는 것이고 무산계급의 관점을 대표해야 하며, 2)노농병 인민대중에 대한 보급을 기초로 여기에서 출발하여 문예 수준의 제고가 이루어져야 하며, 3)문예는 당 사업과 혁명 임무에 종사해야 하며, 4)문예비평은 정치적 기준을 제1로 하여 예술적 기준과 상호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화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또한 문예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맑스-레닌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학습이다.

이 글에서는 강화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강화의 배경 및 그것을 둘러싼 논쟁들, 강화와 관련한 숙청 문제 및 반뜨로츠끼주의 투쟁 등을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문예에 있어서 당파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실천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를 혁명운동의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추상적인 ‘인성론’과 ‘사랑’에 기초한 문학이 아닌 명확한 계급성을 견지”20)해야 한다는 것, “소자산계급의 문학은 광명을 찾아낸 적이 없으며 단지 암흑을 드러낸 ‘폭로문학’”21)이었다는 강화의 내용은 소부르주아적인 문예에 길들여진 평소의 ‘감성’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생동하는 현실에서 출발해 그것을 더욱 높게 변혁시키는 문예의 힘”22)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흥미로운 글이다.

이외에 일본의 정세와 관련한 두 편의 글이 있다. 제5호에 실린 <3.11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정세>는 일본의 ≪사회평론≫지에 실린 글로, 지진 참사를 기화로 국가주의를 강화하며 개헌책동을 펼치는 일본 정권에 노동운동의 재건으로 대항하자는 취지의 글이다. 제6호에 실린 <아시아·인터내셔날리즘의 소재를 묻다—《영토문제와 역사인식》에서 받은 문제의식을 중심으로>는 마찬가지로 ≪사회평론≫지에 실린 왕복서간이다. 이 서간에는 ‘총력전 체제’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기존의 파시즘 체제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파시즘과 데모크라시의 결합으로서의 자본주의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체제는 일본·독일·이딸리아 외에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도 존재하였으며 데모크라시와 파시즘이 일체가 되어 인민억압에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주주의란 부르주아 독재의 다른 이름이며,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총력전 체제라는 개념은 파시즘과 민주주의가 계기적이라기보다는 동시적인 억압의 기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 새로운 부분이 있다. 저자는 또한 일본을 둘러싼 영토문제가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패권 확보를 위해 일·중, 한·일, 일·조 사이의 분쟁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심어놓았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동아시아를 둘러싼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상에서 ≪노동사회과학≫ 제5호와 6호에 실린 글들을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확실히 느꼈던 것은 현재의 정세, 현 시기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이론 투쟁을 전개해 나갈 때에 비로소 교조주의를 벗어나 현실을 변혁하는 무기로서의 생동하는 이론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사회과학≫은 물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노동자계급의 역사를 쓰고 읽는 것에, 과학적 이론을 익히고 스스로의 관점에서 소화하는 것에 아직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시작은 해야 한다. 꼭 이 책들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현장에서, 작업장과 학교에서 함께 읽고 토론하며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바로 세우고 운동의 목표와 전망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과학적 사상은 강력한 투쟁의 무기이며, 그러므로 그 속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다시 책의 주제로 돌아가자. 볼셰비즘이 노동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적 경향들과의 계속적인 투쟁을 통해 발전되고 단련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 운동에 널리 퍼져 있는 분파주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갈 길이 멀지만 전망은 분명하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에서 복수의 진영이 존재할 수는 없다. 단 하나의 해방진영이 있을 뿐이다. <노사과연>


1) 문영찬, <편집자의 글—격동하는 정세일수록 이론의 전진이 필요하다>,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7.

2) 같은 글, p. 7.

3) 또한 이 글을 통해 평소의 궁금증을 하나 해결했는데, 바로 뜨로츠끼주의와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나하는 것이다. 이들이 갈라지는 지점은 “어느 시기부터의 쏘련을 ‘타도해야 할 체제’로 매도하는가”(채만수,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상)>,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104)의 문제이고, 그것은 곧 “쏘련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꼬민떼른 성립 후 그 내부에서 세계혁명의 전략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책 ‘경쟁’에서 그들이 패배한 시기의 차이”(같은 글, p. 104)라는 것이 그 답이다. 가히 ‘소아병’적이다!

4) 천연옥, <강신준의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을 읽고>,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250.

5) 같은 글, p. 239.

6) 문영찬, <편집자의 글–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자!!>, ≪노동사회과학≫ 제6호, pp. 7—8.

7) 같은 글, p. 15.

8) ≪노동사회과학≫ 제3호(2010년 5월)에서 그리스 공산당의 1995년 테제를 번역, 소개한 바 있다. 당시의 테제에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반동의 물결 속에서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겨 있다. 전 세계적 공황과 그로 인한 거대한 반동의 공세 속에서 그리스 공산당이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게 만든 힘이 여기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9) <그리스 공산당 19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테제>, ≪노동사회과학≫ 제6호, pp. 172—176 참조.

10) 같은 글, pp. 174—175.

11) 같은 글, p. 185.

12) 그리스 공산당의 조직과 전선체에 대한 이하의 설명은 백철현, <볼셰비키 전위 그리스공산당 제19차 당대회 분석> (2013년 6월 노사과연 연구토론회 발제문) 참조.

13) <그리스 공산당 19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테제>, ≪노동사회과학≫ 제6호, p. 228.

14) 같은 글, p. 229.

15) 같은 글, p. 290.

16) [편집자 주]에서는 이 글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쉬의 글은 이러한 한계와 일정한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데 1962년 당시의 세계정세, 특히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지형을 반영하고 있고 스딸린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기 위해서 어떠한 쟁점들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딸린에 반대하여 쏘련공산당이 취한 조치들에 대하여—흐루쇼프 동지와 해외의 다른 동지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편집자 주],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200) 고쉬의 논의에서 발견되는 한계와 오류에 대해서는 [편집자 주]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17) 같은 글, p. 230.

18) 문영찬, <맑스주의 전술론 발전의 역사>,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254.

19) 같은 글, p. 254.

20) 최상철, <옌안문예강화 당파적으로 읽기(2)>, ≪노동사회과학≫ 제6호, p. 55.

21) 같은 글, pp. 55—56.

22) 최상철, <옌안문예강화 당파적으로 읽기(1)>, ≪노동사회과학≫ 제5호, p. 324.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2개의 댓글

  • 서평을 보니 조만간 <>도 보고 싶습니다. 특히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 하편까지의 완결을 보고 싶고 이 완결까지 나온 후의 서평을 보고 싶습니다. 변혁 정당은 다수 공화제 국가 사회에서 복수로 존재하지만 그 양상은 모두 차이도 발현하는데 한 사회의 역사적 경험 탓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물론 노서아/러시아 변혁기에도 다른 여러 잡사상과의 전투를 벌였지만 동시에 사회혁명당(좌파)와는 연합해서 혁명을 성공한 바 있지요.
    주의, 사상이 동일한 원래 단일 정당이 여럿 분할한데는 패배의 원인도 큰데 독일의 KPD 와 KPD(ML), 인도의 CPI(ML), 맹가랍국/방글라데시의 CPB(ML)등등이 이러한 예입니다. 물론 미국 역시도 유사한 예일 수 있습니다.

  • 문서에 수정이 없어서 정정할 방법이 없는데 의 내용은 ‘노동사회과학 제 7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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