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무늬만 중산층, 잠재된 빈곤

배은주|회원

 

 

 

삶의 벼랑 끝까지 몰려 결국 죽음을 선택한 빈곤층의 비보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고 있다. 죽음으로밖에 전할 수 없는 이것은 진정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내일은커녕 당장 오늘 살기도 힘들다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빚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실제로 통계상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약 55%가 스스로를 저소득층1)이라고 말한다. 즉 통계로 나타나는 중산층과 체감지수에는 큰 괴리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빛 좋은 개살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태 파악도 제대로 안 하고, 전체 가구의 70% 이상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겠다고 한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지난 2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세금 내며 자녀를 키우고 저축할 수 있는 ‘위대한 중산층 사회’ 재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입장을 밝혔다.2)

 

그런데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중산층육성/강화 정책이란 게, 가계부채 경감과 사교육비 부담 완화 등을 골자로 해서, 장기적으로는 계층 간 활발한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교육격차 완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빨리 실체를 드러내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계층 간 활발한 이동’이라는 이 표현은 뭔가 께름칙하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이 말은, 결국 이 사회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얘기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회를 지속하겠단 뜻 아닌가. 돈 걱정할 필요 없는 상류층과 고소득층들이야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이야기겠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불안정한 줄타기 인생을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또는 안정된 소득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애를 쓰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누군가 삶의 끈을 놓았다는 어수선한 소식을 들으면서 말이다.

 

“언니, 커피 한 잔 해요!”

며칠 전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흔쾌히 수락하고 바로 뛰어나갔다. 커피 잔을 들기가 무섭게 김씨는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니. 나, 어젯밤에 한 숨도 못 잤어. 내가 한 달에 얼마를 쓰는 줄 알아. 내가 너무 많이 쓰는 거야. 남편도 벌고 나도 벌잖아. 사실, 적게 벌지도 않거든? 그런데 항상 적자야. 매달 대출해서 돌려막기 해. 문제지. 그러면 적금이나 보험 이런 거 넣지 말아야 하거든. 그런데 그거라도 안 넣으면 안 될 것 같거든. 그래서 일단 넣어. 그리고는 약관대출하고 그래. 잘못 된 거지. 내가 씀씀이도 커요. 그런데 그렇다고 아주 엉뚱한 데 쓰는 것도 아니야. 엄마 없는 조카딸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한다니까 내가 이부자리라도 챙겨줘야지. 우리 딸애들 학비, 학원비 내야지. 가끔 외식하고. 남편이 쓰는 돈도 만만치 않긴 해. 나이가 나이니 아랫사람들도 챙겨야 하잖아. 언니, 내가 보험 하는 거 알지. 이제 정말 그만 하고 싶거든. 근데 안 하면 안 돼. 애들 교육 시켜야지, 또 매달 나가는 거 생각하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어. 빚은 점점 늘어나고. 주식투자 한 것도 다 망하고… 내 친구는 가계부를 열심히 쓰더라고. 나도 이제부터 쓰려고… 가계부 쓰면 좀 나아질까? 어떻게 해야 돼?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야? ”

김씨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가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두서없이 자기 사정을 한바탕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쯤하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내가 그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으니 하고 싶은 얘기나 실컷 하라고 들어주는 것 밖에.

 

나는 그저 당신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선에서 내 생각을 전했다; 가계부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가끔 외식도 해야지, 상급학교 진학하는 조카에게 선물도 하고 신경 쓰는 일은 당연하다, 공부 하겠다는 애들 학원 안 보낼 수 없지 않나, 그러니 허투루 쓴 건 아닐 것이다 등등… 하지만 개인의 과소비 때문에 부채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그이에게 그것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부르주아의 음모’라고 말하기엔, 그이와 나의 사이는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너무나 많이 달랐다.

 

김씨는 남편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다. 김씨가 말해 준 대로라면 그들 부부의 소득은 꽤 높은 편이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하든 그것에 정신/사회/문화의 요소를 더해 중산층 기준을 삼든 김씨 가족은 ‘중산층’에 속한다. 하지만 김씨는 은행에 다니는 남편과 자신이 보험설계를 하며 버는 수입으로는 늘 모자란다고 했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가족들 질병과 부부의 노후를 대비해서 가족들 명의로 여러 개의 보험을 들었다. 명목이야 무엇이든 보험설계사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보험을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매달 만만치 않은 보험금을 납입하고 있고, 그리고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약관대출을 비롯해 빚을 내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씨 외에 다른 몇몇 사람과 유사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상황은 거의 김씨와 비슷했다. 그 중 어떤 한 사람의 경우도 수입은 상당했지만, 한 번 기울어진 살림을 회복하기엔 힘이 부쳤다.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기고, 다시 그 집을 월세로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마이너스 통장 신세에다가, 그것 말고도 갚아야 할 게 여러 개 더 있고, 이번 학기 아들 대학 등록금은 3개월 할부로 내야 했다.

여러 말 끝에 그녀는 이런 말을 던졌다. 예전엔 집을 사기 위해서, 차를 사기 위해서, 대학학자금이나 자녀결혼준비금을 모으기 위해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빚을 갚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씁쓸하게 헛웃음을 지었다.〔《긍정의 배신》으로 유명한 바버라 에런라이크도 《오! 당신들의 나라》라는 책에서, “예전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는데 지금은 돈을 ‘갚기’ 위해 일한다(65쪽)”고 기술하고 있다.〕

 

나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은 비록 현실은 빚쟁이 신세로 빈곤층과 다르지 않지만, 자신들은 소득측면에서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나 중산층으로서 이 사회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갈수록 늘어가는 가계부채에 두려움이 커 보이긴 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끌고 가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상들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것의 원인을 규명하고 바꾸어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포기하고 또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두려운지 모른다. 그저 ‘순한 양’으로 자본주의체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적당한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게 만사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주인의식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이런 소시민적인 태도가 지배계급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적극 이용되고 있음을 그들은 알까. 지배계급에게는 체제와 타협하고 순응하며 적당하게 주어진 기득권을 즐기는 중산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선심성 정책을 미끼로 던져주며 ‘위대한 중산층’ 타령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를 잘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중산층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큰 빚이 없다하더라고 만약 가족 중에 누구 하나 큰 병이라도 걸리거나, 재개발 때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거나, 만에 하나 일자리를 잃게 되는 날이면, 쓰임새가 다 한 소모품처럼 아주 가볍게 버려지고 만다.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 빈곤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중산층 대부분은 이미 잠재적 빈곤층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다면, 국가의 시선은 무늬만 중산층인 그러나 이미 빈곤층인 그들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빈곤층을 향하는 것이 옳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붕괴‧몰락하고 있으니 복원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무늬만 중산층인 사람들을 위하거나 또는 빈곤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것을 아무런 대가없이 누리고 있는 ‘가진 자’들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고 있다.

 

비참하게도,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을 넘어, 돈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저 한탄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만 있을 순 없다. 어쩌면 이제 빈곤에 따른 고통과 수치심과 좌절도 더 이상 이전의 모습이 아닐지 모른다. 그대로만 머물 수 없는 어떤 임계점에 다다라 있는지 모른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고단한 삶을 끝장 낼 수 있을 것인가! <노사과연>


1) 현대硏 “OECD기준 중산층 55% ‘나는 저소득층’“,≪연합뉴스≫, 2013.8.27일자 기사 참조.

2) “[우리나라의 통상적 중산층 기준은] 월 소득 500만원 이상, 30평 아파트… 소득에 초점”, ≪쿠키뉴스≫, 2014.2.10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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