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세미나 후기> ≪자본론≫ 세미나를 마치고

옥철|회원

 

 2012년 여름에 시작한 ≪자본론≫ 세미나가 2014년 1월 9일 밤 10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1년 6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된 세미나이다 보니 그 동안에 작은 변화들도 있었다. 처음에 열 명 남짓 시작했던 팀원들 중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인원은 다섯 명이 되었고, 진행이 원활치 않았던 앞 기의 팀원 중 한 사람이 합류하기도 했으며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팀장이 바뀌는 일도 있었다. 짧지 않은 스케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더듬어보건대 공식적으로 세미나가 진행되지 못한 것은 아마 2~3회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으니, 아무런 강제성을 띠지 않는 자발적 모임이 억척스럽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쉼없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소박한 동기, 즉 현재의 자본주의제도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 세미나에 참가하게 되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주 일정한 시간에 맞춰서 미리 책을 읽고, 또 발제 준비를 하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나름대로는 가능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무사히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으니 열심히 출석했음에 대한 뿌듯함과 상당히 두꺼운 책을 완독할 수 있었음에 대한 작은 자부심은 스스로 누려도 괜찮을 사치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세미나를 마치고 깊이 느끼게 된 감정은 상투적인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것인데, 적지 않은 허탈함과 당혹감이었다.

 

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을까를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허탈할까? 여기에서의 허탈은 약간의 실망스러움을 동반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더욱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본론≫ 1, 2, 3 권을 모두 읽고 나서 느낀 것이 기껏해야 허탈함이라니. 감히 ≪자본론≫을 직접 읽어 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해설서만 여러 권을 사다 놓고 조금씩 읽어갈 시절, 내가 ≪자본론≫이라는 책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선입견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한다. 어릴 때 읽었던 무협지에 반드시 등장하는 절세의 무공비급. 그리하여 이 책을 다 읽으면 그 순간에 현란한 초식과 웅혼한 내공의 소유자가 되어 절세의 무림고수로 등장하게 되는 그런 종류 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능력도 생기지 않았고 기연과도 거리가 멀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본주의제도의 각종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높은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의 눈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고사하고 애먼 딸만 인당수로 팔려 보낸 개념 없고 욕심 많은 심학규의 보지 못하는 눈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에 대한 허탈감과 자기 실망.

 

그렇다면 당혹감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나름대로는 ≪자본론≫을 꽤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했고, 가능한 알고 있던 자본주의 경제학 이론들의 틀을 극복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들이 생각 외로 단단한 지반 위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나의 여러 번의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데 있겠다. 예를 들면 임금과 물가의 관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상품의 가격, 즉 물가는 전혀 상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산가격은 비용가격과 평균이윤의 합으로 구성되며 비용가격은 c+v이고 v는 가변자본의 가치인데, 이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1)으로 임금이 상승한다고 해서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이 상승하는 경우에 자본가의 이윤은 임금의 상승에 비례하여 줄어들지만, 물가는 상승하지 않는다. 이러한 맑스의 경제이론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이론적으로 볼 때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하여 여러 종류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생겨난다.

 

과연 맑스의 이론이 진실일까? 내가 자본주의 경제학에 정통하지 못해서 맑스의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숙하게 넘어가는 것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해서 그 동안의 수많은 천재들인 경제학자들이 예외없이 한결같이 부도덕하게 자본가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학자적 양심을 팔아넘길 수 있었다는 말인가? 150년이나 지난 맑스의 경제학 이론이 과연 극도로 고도화된 현대 경제학 현상들을 제대로 비판하고 진단할 수 있을 정로로 아직도 그 유용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전도된 사고방식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가며 애써 이를 외면하려는 나약함이나 소심함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내 당혹감의 실체이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하는 것 같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뼛속까지 깊이 침투해 있어 어떠한 논리적 접근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자율적 방어체계.

 

마지막으로 ≪자본론≫을 읽기 시작한 후부터 계속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의문 한 가지. ≪자본론≫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완성했고, 또 그 논리적 전개는 누가 보더라도 인정하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한 자기완결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과학이란 명확하고 예외없는 인과관계를 표현하고 증명하는 것. 자본주의제도는 그 체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결함(원인)으로 인해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결과). 이것이 ≪자본론≫이 이룬 과학적 결과물 아닌가? 그렇다면 어차피 필연적으로 소멸할 운명인 자본주의의 종말을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왜 우리는 새삼스럽게 ≪자본론≫을 읽어 가며 또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 한단 말인가?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신화인 ≪자본론≫을 대하는 방법이지 과학인 ≪자본론≫을 인식하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나의 감정들이 오직 ≪자본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부족이나 자질의 미흡함에서 발생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내게 약간의 총명함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마 고민하는 힘이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제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는 어떠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처음으로 돌아가기와 정면으로 부닥치기. ≪자본론≫과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들을 처음부터 새롭게 천천히 읽으며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야 겠다.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고,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 역시 쉽게 나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 터이다.

 

제1권 제1편 제1장 상품에서 시작된 ≪자본론≫은 제3권 제7편 제52장 계급들에서 결말을 맺는다. 상품사회의 유지와 계급 간의 대립은 자본주의 경제의 커다란 두 개의 축이자, 동시에 극복되어야 할 양 극이다. 대립은 내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고 극복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프랑스의 시인인 폴 발레리는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자본론≫을 읽고 난 내게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의 숙제이다. <노사과연>


1) 편집자: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상품의 “생산가격”이 아니라, 상품의 “가치”입니다. 비용가격(c+v)+평균이윤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가격은 임금이 사회 전반적으로 오르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따라서, 동일하거나 오르거나 내리는 등 자본마다 다양합니다.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상품의 “가치”는 물론 임금의 등락과 상관없이 변함이 없습니다. ≪자본론≫ 3권 2편 11장, <임금의 일반적 변동이 생산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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