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당신의 인격은 안녕하십니까?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싸부! 싸부! 오늘 제가 싸부가 가르쳐 준 대로 실천했어요.”

몸짓패 연습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환하게 웃는다.

“응? 뜬금 없이 뭔 소리야?”

“흐흐 아까 공장에서 일 하고 있는데 반장이 오더니 갑자기 뒤통수를 툭 치는 거예요. 그러더니 ‘야이 새끼야. 머리가 이게 뭐냐? 대가리 좀 단정하게 깎고 출근해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열이 확 받는 거예요. 근데 예전 같았으면 ‘네 알았어요’ 그러고 투덜투덜 뒤에서만 욕했을 텐데, 오늘은 싸부랑 공부하면서 배운 게 생각난 거죠.”

“응? 뭐가 생각났다는 거야?”

“내가 반장한테 차분하게 목소리 깔면서 이렇게 말했죠. ‘내가 이 회사에 내 노동력을 팔았지, 내 인격과 개성까지 판 건 아니다. 자꾸 툭툭 치거나 내 스타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마라.’ 흐흐흐 나 잘했죠?”

“으응… 잘하긴 했는데 그래서 반장 반응은 어떻디?”

“당황해서 한마디도 못하고 쳐다보다가 ‘나참’ 그러면서 가버리더라고요. 흐흐흐”

“야. 근데 후환은 없겠냐?”

“몰라요. 지가 어쩌겠어요? 뭐 나중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당했던 거 생각하면 정말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니까요. 흐흐흐 싸부가 반장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하하 볼만했겠네.”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얘기를 듣고 있는 내 속은 편치 않았다. 오래 전에 내가 강사로 함께 했던 몸짓패에서 활동하던 어느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내가 강사다 보니 친근함의 표현으로 종종 나를 싸부라고 부르던 키가 멀뚱이 큰 이 20대 젊은 노동자에게 그 날의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통쾌함이었는지는 그 연습실로 겅중겅중  뛰어 들어오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노동력을 팔았지 내 인격과 개성까지 판 것은 아니다… 맞다… 경제학적으로는 그것이 맞고 그런 의미에서 그 친구는 배운 대로 맞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까지 왜 그리도 오래 걸린 것일까? 아니 노동력을 팔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정말 그 사실을 몰라서 그리 말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 일본의 어느 철도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다 이런 말을 들었었다.

“철도가 민영화(사유화)되고 그 과정에서 노조가 무력해지면서 정말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죠. 어느 기관사는 열차를 정해진 시간에서 단 몇 초 늦게 역사에 진입시켰다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근데 그 징계 내용이 ‘나는 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바보입니다’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하루 종일 승강장에 서있는 것이었어요.”

기억에 의존한 거라 정확치는 않지만 그 말을 통역해주던 분의 얼굴을 한참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정말이에요?”라고 되묻는 것 밖에…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되물음이 창피하다. 노동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면서 난 얼마나 현장의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참혹한 고통을 알고 있었던가…

그렇게 하루 종일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역사 승강장에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써놓은 피켓을 들고 서있어야 하는 인간적인 모멸감.

어쩌면 그 모멸감도 견딜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정말 내 폐 속에다가 먹물 한바가지를 들이붓는 듯한 먹먹함과 호흡곤란증을 느끼게 했던 건, 그렇게 서서 사람들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모멸감보다 그렇게 하라는 자본의 명에 “못 하겠노라. 부당하다”라고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거스를 수 없었던 이의 자괴감이 어떠했을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거스를 수 없다… 아마 군대를 갔다 온 분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 건지 더 빨리 느껴지실 테다.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것. 그것이 계급이다.

그래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계급 관계라 한다. 지금 사회에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계급이라는 거 군대에나 있는 거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거스를 수 없는 계급관계라는 게 어디 있냐?’고 항변하시는 분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머… 아무리 항변을 한들 존재하는 건 그 존재감을 드러내놓기 마련이니 사실은 그 계급관계라는 게 위장되어 표현된 말이 소위 요즘 유행하는 ‘갑을관계’라는 말일 게다. 물론 그 두 표현 사이의 간극은 엄청나지만서도…

 

암튼 인격과 개성까지 판 것은 아니라고 공장 관리자에게 항변했던 그 친구의 말이 내 입은 웃게 했지만 내 마음은 울게 했던 이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체면 따위 바닥에 내려놔야 한다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목구멍이 가장 무서운 포도청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내 목구멍을 거머쥔 자가 내 인격이나 개성도 어느 정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소위 ‘고객’과 마찰을 빚은 일이 있었다. 이 노동자로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던 계산을 마친 물건에 대한 확인 요구에 그 ‘고객’은 자신을 의심했다며 모욕을 당했다고 항의를 한 것이다. 급기야 그 마트의 최고 관리자급에 해당하는 이가 불려 나오고 이 ‘고객’은 전화로 가족까지 부르며 격렬하게 항의를 했다고 한다.

사실 이 노동자는 업무상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고객’과 마트 관리자의 사과 요구에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머… 마음 아프지만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

난리를 겪은 그 노동자는 그 마트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탈의실에 가서 잠시 진정을 시키고 있었는데 그때 바로 그 ‘고객’과 가족(기억에 그 고객의 남편이었던 듯)이 그 노동자 혼자 있는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닫힌 문 밖에선 마트 경비가 지키고 서 있었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생략하련다… 그리고 그 고객과 가족이 그곳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도…

그 노동자들의 동료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도, 이 이야기를 옮겨 쓰고 있는 지금도 분노와 먹먹함으로 손가락에 경련이 생길 지경이다.

그 고객이나 가족보다도 그들을 그 장소로 들여보낸 마트관리자의 행위 때문에…

어디…이것… 뿐이겠나…

 

자신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인건비가 아니라 사무보조비 그것도 잡비로 분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비정규직 노동자가 느꼈을 인격적 모멸감, 관리자의 상시적 성폭력에 치를 떠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

 

노동자가 노동력을 파는 건 노동력 말곤 팔 게 없어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무언가를 팔지 않으면 어느 것도 살 수가 없다. 즉, 유일하게 가진 노동력을 팔아야지만 그 무서운 목구멍으로 집어넣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고, 달리 말해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력을 구매하는 이들(자본가)은 사실 그것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노동자의 목구멍까지도 거머쥐게 되고 적어도 구매한 노동력을 사용하는 동안은 그 인격까지도 지배력을 행사할 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이노무 회사 때려치고 장사라도 해야지…”이다. 달리 말해 ‘내 노동력을 팔지 않고 다른 걸 팔아야지’라는 말이다. 노동력을 파는 이에게 해방은 더 이상 나의 노동력을 누군가에게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할 터이다. 그 누구도 노동력 말고 팔 것이 있다면 자신의 노동력을 팔며 살려고 하진 않을 테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선…

그럼에도 그들이 노동력 말고 다른 것을 팔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것을 만들 생산수단이 배타적 독점적으로 누군가의 수중에 소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타적 독적점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을 자본가라고 부른다.

 

‘물적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라는 유명한 사적유물론의 명제가 있다.

달리 말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인격을 규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사회의 물적토대 즉,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은 사실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인격도 규정하고 그 사회의 집단적 생각(지배 이데올로기) 또한 규정할 힘을 가지게 된다.

해서 인간해방의 전제는 바로 계급해방일 수밖에 없다.

 

참… 써놓고 보니… 암울하다…

 

하지만 너무 풀죽어 계시지는 마시라.

현실에선 노동자가 자본가를 거스르기도 한다. 앞서 그 젊은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대들었듯. 바로 그렇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서 노동자는 끊임없이 계급을 거스르는 몸부림을 쉬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우리 조건에선 그렇게 자기 인격의 주체인 인간이고자 하는 몸부림을 위해 해고와 감옥생활과 끝도 없는 노숙, 고공농성을 각오해야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단결하고 투쟁해 왔으며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피지배계급으로서의 노동자가 지배계급의 국가를 장악하고 권력을 수립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너무나 험난하긴 했어도 결국엔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계급을 거슬러 인간이고자 하는 이들이 승리해 온 역사였다.

 

또한 더 다행히도

그 지긋지긋한 ‘계급투쟁의 역사’로서의 인류의 ‘전사’를 끝내고 정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계급 없는 사회로서의 인류의 ‘본사’를 열 마지막 피지배계급이

바로 노동자 계급이다.

 

그들은 지금 자본가 계급을 지옥으로 이끌 저승사자로서 저들의 문 앞에 서 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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