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철도노조, ‘수서발 KTX’ 민영화 저지투쟁 과정과 파업투쟁

김형균|회원, 철도노동자

 

 

 

퇴직한 철도 노동운동의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배된 지부장들이 경찰에 출두했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저것 후배들이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사장은 아무런 재량권이 없고 박근혜정부가 노조를 못 죽여서 안달입니다.”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상황보고)를 하고 난 후 형님 하시는 말 “온 길은 천리요, 갈 길은 만리라더니…”하신다. 전화를 끊고 ‘온 길은 만리요, 갈 길은 천리 아닐까?’ 생각했다.

철도노조는 23일간의 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수서KTX운영회사 법인설립을 막아내지 못한 채 현장투쟁으로 전환했다. 철도파업이 끝난(상황에 따라 2차 파업을 결의할 수도 있으나) 현재, 파업의 단편적인 평가들이 술자리 안주처럼 운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엄밀한 평가는 누군가에게 미루고 파업에 참가했던 한 사람의 위치에서 민영화저지 투쟁을 돌아보고, 소회를 밝히는 수준으로는 정리할 것이다.

 

 

1. 이명박 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과 대응투쟁

 

1) 이명박정부의 철도민영화 공세를 둘러싼 부침들

2011년 11월 22일, 한미FTA 비준 직후인 11월 27일, 국토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수서발KTX 분할민영화 방침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1월 사업자 공모를 거쳐 3월 운영자를 확정한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는 철도의 적자를 명분으로 ‘경쟁체제 도입’을 공언했는데, 그 경쟁체제라는 것이 수서발 KTX를 재벌(대우, 동부건설 등)에 넘겨주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재벌특혜’라는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그러나 말을 바꾸어 ‘민관 합동 운영체제’로 수정해서 발표했으나 역시 강한 반대여론에 부딪혔다. 이명박정부는 임기 내 당초의 계획 실현이 무망해지자, 이제는 우선 철도공사의 ‘관제권’을 비롯하여 역사·철도차량정비단 등 철도공사의 주요자산을 환수하여 시설공단에 이관하려 했다. 이러한 시도도 여론에 민감한 대통령선거 국면과 맞물리면서 무산되었다.

 

2) 철도노조, 범국민대책위를 중심으로 한 공중전 전개

철도노조는 2012년 초부터 본격적인 민영화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시민사회단체와 법조계, 노동계, 정치권이 합동으로 “KTX 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이하 범대위)”를 발족시켰다.(2012.1.18.) 범국민대책위는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야권을 비롯해 참여연대, 녹색연합, 평화 재향군인회, YMCA 등 시민사회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민주언론연합, 한국대학생연합 등 60여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다. 범대위는 KTX민영화 저지 100만인 서명운동, 철도역사 선전전 및 1인 시위, 철도노조와 함께 대규모 집회, 국제심포지엄, 철도공공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법 개정 등을 추진했다.

 

3) 2012년 상반기 투쟁, 4월 총선에 주목

철도노조의 민영화저지 투쟁기조는 2012년은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 공간을 주목했다. 노조의 방침은 ‘민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철도관련법안의 개정’,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 방안에 대한 제 정당과의 정책 협약 등을 추진’하고,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법개정투쟁에 함께하고며, ‘8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2012년 상반기 민영화저지 투쟁의 양상은 총력결의대회를 포함한 집회투쟁, 100만인 서명운동과 대국민 선전전이 주를 이루었다. 4월 총선에서는 노조차원에서 명시적으로 ‘야권연대’ 방침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관철되는 과정이었다. 철도노조 후보 3명을 출마시켰고 총선시기 노조의 중견간부들이 통합진보당은 물론 민주당과 함께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전개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결과는 사실상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4) 총선직후 국토부의 공식 입장발표

권도엽 국토부 장관은 “총선직후로 공고를 미룬만큼 입찰공고를 낼 것”이라며 “민간사업자들의 참여 요건을 담은 KTX 민영화 사업제안서(RFP)공고를 4월 말 확정해 발표하고, 늦어도 7월까지는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4.12) 6월에는 보도자료를 내서 “철도역 435개를 회수해 민간에 위탁하고, 23개 차량기지를 회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철도공사에 대해 “1613명의 인력감축을 당장 시행하라”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이로써 철도민영화 문제가 다시 정국의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강한 긴장이 걸리게 되었다.

 

5) 노조, 임단협과 연계한 민영화저지 투쟁

노조는 조합원 총회(민영화저지를 위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개최했고, 조합원들은 86%의 찬성으로 압도적으로 가결시켰다.(4.18~20) 노조는 임·단협 및 현안사항에 대한 교섭과 집회 투쟁을, 다른 한편으로 시민, 국회, 언론에 대한 사업을 통한 공중전을 계속했다. 임·단협 교섭은 진전 없이 공전을 거듭했고, 국토부의 민영화 압박이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철도노조는 실질적인 파업수순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9월 25~17일, 노조는 ‘KTX 민영화 저지와 임단협 쟁취를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76.6%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4월에 실시한 조합원 총투표는 민영화저지 투쟁에 대한 조합원의 결의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면, 9월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실질적인 파업을 포

함한 쟁의행위를 위한 절차로서 배치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관제권 회수를 위해 ‘11월 중 장관 결정 뒤 법령 개정 예정’이라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9.13) 철도관제권 환수는 향후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민간사업자의 진입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노조는 추석 연휴를 틈탄 국토부의 도발이 가시화됨에 따라 대규모 결의대회(10.13)를 열고 “총파업 태세에 돌입하라!”는 투쟁명령 3호를 발표했다. 이는 10월 27일 1차 경고파업 계획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10월 25일, 노사 간의 밤샘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이 도출되면서 파업투쟁의 긴장은 사라졌다. 이로써 대통령 선거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6) 11~12월 대통령 선거국면

대선시기에도 총선과 마찬가지로 ‘민영화추진 후보 낙선운동’, ‘투표참여 캠페인’을 한편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에 대해 ‘정책질의’라는 형식으로 철도민영화에 대한 입장으로 요구했다. 그 결과 박근혜후보와 새누리당에 대해 거짓공약일지라도 ‘일방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확보하여 선거 이후 “박근혜대통령은 약속을 지켜라!”는 요구를 강하게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대통령선거 당시 철도민영화 관련 새누리당 주요발언>

◦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12월 14일, 선거 5일 전)

“민영화는 국민들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한 만큼 국민과 관련 당사자 간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추진하겠다.”

◦ 이상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12월 15일, 선거 4일 전)

“장기비전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만큼 섣불리 민영화로 갈 수 없다는 것이 박근혜 후보의 입장이다.”

◦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12월 17일, 선거 2일 전)

“박근혜 후보는 물론 새누리당도 KTX 민영화에 반대한다.”

◦ 박근혜 대통령 후보 선대본(12월 17일, 선거 2일 전)

“새누리당은 근본적으로 철도산업은 장기 비전을 먼저 마련하고, 마련된 장기 비전에 따라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으로, 지금 KTX 민영화 추진에 반대한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2. 2013년 박근혜정부의 철도민영화 공세, 노조의 대응 양상(파업돌입 전까지)

 

1) MB정권 말기와 대선 및 ‘인수위’가 공존하는 시기

이명박정부는 수서발KTX를 재벌에게 넘기려 하다 “재벌특혜” 논란에 휩싸이면서 민간자본을 49%로 제한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했었다. 그러나 민영화를 반대하는 ‘국민여론’에 막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어느새 임기 말에 방향을 선회하여 ‘철도자산’과 ‘관제권’을 철도공사로부터 환수하여 시설공단으로 이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는 자신의 임기 중에 수서발KTX 분할 민영화의 장벽을 제거해 놓자는 집착인 셈이다. 이명박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유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대선시기와 맞물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후보와 인수위의 입김에 따라 좌절되었다. 이는 철도노조가 여론전에서 승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편, ‘박근혜후보가 당선되면 가장 먼저 민영화 할 것’이라는 ≪프레시안≫의 기획보도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박근혜대선 캠프는 철도노조의 ‘철도민영화에 대한 정책질의’에 답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전술한 발언 참조)

 

2) 철도노조 총선거로 집행부 교체

철도노조는 총선거를 통해 본조합, 지방본부, 지부 집행부와 각급대의원 선거를 치렀다.(2013. 2.25~27) 본조합은 김명환위원장 후보조가 단독으로 꾸려져 당선되었고, 지방본부는 부산지방본부만 경선이 있었을 뿐, 대부분 단독후보 양상이었다. 단위지부도 대부분 경선없이 진행되었다.(간부 기피현상의 표현)

 

3) 박근혜정부의 “철도발전 전략”, 노선별·사업별로 찢어 민영화

박근혜정부가 공식 출범하고 국토부 장관도 서승환씨로 교체되었다. 국토부는 대통령후보 시절의 ‘약속’은 쓰리기통에 던져버리고,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출한 몇가지 방안 중에서 저울질하고 있었다. 국토부장관은 처음에는 ‘제2철도공사 설립’을 언론에 흘리더니, 결국은 철도를 노선별·사업별로 분할하여 별도회사를 설립하는 사실상 영국식 분할민영화 방안을 내 놓았다.

정부의 “철도산업 발전전략”이란 것의 내용을 보면, 간선 여객운송 노선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명분으로 앞세워, △수서발KTX 여객회사 설립·운영, △광역철도 신규노선을 민자로 건설하여 민간자본(재벌)이 진입토록, △화물수송 사업은 철도물류회사 설립(2014년), △철도차량 정비와 관리는 철도차량관리회사(2015년), △철도시설 유지보수(선로, 전기 등) 사업부문 역시 별도 회사를 설립(2017년)한다는 것이다.

 

위 그림은 철도공사가 각 자회사를 거느린 것처럼 보이나 이는 현행법(철도산업 기본법, 철도사업법)의 제약을 피해가기 위해 그림에 끼워 맞춰 놓은 것이다. 그래서 국토부는 철도사업법의 개정(개악)을 발의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철도공사(korail)는 여객사업의 일부(서울 및 용산발)를 담당하는 회사일 뿐이다.

 

4) 국토부는 ‘수서KTX주식회사’ 추진 절차 돌입(2013년 6월~)

6월 25일, 국토부는 ‘철도산업위원회’를 열어 철도산업을 사업별, 노선별로 분할하는 안을 의결했다. 지난 6월 14일 단 한 차례 공청회를 열었을 뿐(노조 항의로 무산) 어떠한 이해당사자들과의 어떠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현행법(철도사업법)조차 무시한 채 불법·초법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민변 등 7개 법률가 단체들은 “법률 개정이나 별도의 입법 없이 정부부서의 행정집행만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의회제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 초법적인 조치”이고, “수서발KTX는 기존선을 포함하고 있고 신설구간 역시 15조 규모의 국고로 건설된 국가 소유 철도노선으로서 철도공사가 운영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철도분할 민영화 반대 입장을 견지하던 정창영 사장을 임기 도중에 사퇴시키고, 신임 사장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는 추천위원들에게 외압을 가해 특정 사장신청자를 추천하도록 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처음부터 다시 사장 선임절차를 밟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최연혜사장 신청자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사장취임 10.4)

 

5) 철도노조, 민영화저지 투쟁 본격화(2013년 5월~)

철도노조는 5월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철도분할민영화 저지와 박근혜 대통령 공약 이행 촉구 철도노동자 제1차 총력 결의대회’를 시발로 박근혜정부의 민영화 계획 저지를 위한 투쟁에 다시 나섰다. 2002년 당시와 같이 ‘민영화저지를 위한 쟁의행위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89.7%라는 압도적 가결로 쟁의행위를 결정했다.(역대 최고)

민영화저지 투쟁의 주요 활동기조는 이전과 같이 범국민대책위와 함께하는 활동으로서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6.7), 기자회견, 대 시민 선전전, SMS를 통한 폭로전, 국회차원의 입법발의와 국정감사, 법률적 대응 등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 서울 철도노조 집중결의대회와 범국민대회(7월13일, 8월25일, 10월26일), 지역집회, 촛불집회를 열거나 시국촛불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이와 별도로 철도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철해투)는 6월 전국도보 행진, 정부청사 농성, 대전청사 농성 등 별도의 투쟁을 진행했다.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기까지의 전반적인 투쟁기조는 국민·국회·언론에 대한 사업을 매우 중요하게 배치하고 치열하게 실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철도민영화 저지를 둘러싼 국민적 지지와 호응은 이러한 수년에 걸친 ‘공중전’의 결과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파업동력인 조합원의 정신무장·조직력·투쟁력을 다지기 위한 사업,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사업 등은 비중 있게 배치하지 못했다. 이러한 제반 사업은 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방본부나 지부단위의 자발적 판단에 따라 진행되었다.

 

6) ‘전면파업’이냐, ‘필공파업’이냐의 재격돌(파업전술을 둘러싼 내부 논쟁)

철도노조는 파업돌입 시기가 임박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파업전술을 확정하기 위해 각급 회의를 소집했다.(11.11~12) 회의는 의장단회의(중앙과 각 지방본부장)→중앙쟁의대책위 회의→대의원대회(12일) 순으로 진행되었다. 파업이 임박한 11월 26일 확대 쟁의대책위회의가 열렸다. 5개 지방본부별 혹은 지부별로 전술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며 논쟁은 매우 격화되었다.

‘전면파업’을 주장의 근거는 대체로 필공파업을 하더라도 정부는 불법파업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파업파괴력도 별로 없는 필공파업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필공파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철도노조의 현재 상태는 전면파업을 감당할 조직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 파업 후 징계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 등이다.(실질적인 파업동력을 만드는 데는 매우 소홀했다는 점이 평가되어야 한다)

대체로 서울본부와 대전본부가 적극적으로 전면파업을 주장했고, 부산본부와 호남본부가 필공파업을 주장했다.(물론 지방본부 산하의 모든 지부가 하나의 입장은 아니다) 전술을 둘러싼 토론과 논쟁이 팽팽하게 밤늦게까지 지속되다가 중앙지도부는 ‘필공파업’ 전술을 확정했다. 이로써 중앙지도부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다.

 

7) 노조, 2003년 ‘임금교섭’과 ‘민영화저지 현안’을 결합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11.20~22)를 실시하여 재적대비 76% 찬성률을 보였다. 노조집행부에서는 파업권이 봉쇄된 조건에서 어떤 파업전술을 구사할 것인지에 대해 물밑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상 ‘합법적인’ 쟁의권 확보를 목적으로, 임금요구안과 더불어 노동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수서KTX 민영화 계획 철회 요구를 결합시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술은 ‘필공파업’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전면 총파업’을 주장하는 간부들에게 의구심을 주는 것이었다.

임금 및 현안 교섭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결렬되었고, 중노위에 임금과 현안을 묶어 조정을 신청한 후, 2차에 걸친 특별조정회의는 “입장차가 커서 조정을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아 ‘조정종료’”를 선언했다.(11.27) 이로써 파업돌입을 위한 절차는 마무리 된 셈이었다. 철도공사는 정기이사회(11.28)를 열어 수서발KTX 출자결의를 위한 이사회 일정(12.10)을 확정하면서 파업돌입 날도 사실상 확정되었다.

 

 

3.  23일간의 파업 과정(12.9~31)

 

1) 파업투쟁의 전반적 기조와 파업의 상

파업투쟁의 기본 방침은 △‘철도민영화에 철도노동자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철도노동자는 국민과 함께 전면적으로 투쟁’, △‘민주철노 조직역량 강화사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파업의 상은 △“철도노동자가 위력적인 중심대오가 되어 앞장서고 연맹,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파업 대오를 형성”, △“범대위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국토부 입장에서 분리되도록 설득과 압박을 진행” 한다는 것이었다.

 

2) 주요 파업프로그램

주요 파업프로그램은 △지부별 자율 프로그램, △지방본부와 민주노총지역본부가 주관한 지역 및 권역별 결의대회와 촛불집회,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이 주관하는 서울집중 대규모 범국민대회(12.14서울역. 12.19시청, 12.28시청)를 축으로 진행되었다. 각 지부단위는 지방본부 및 본조합이 배치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부별 프로그램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파업프로그램을 소화했다. 노조차원에서 지부단위의 파업프로그램 매뉴얼이 별도로 없었기 때문에 각 지부마다 다양한 특색과 편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조합원 집단프로그램 및 교육, 각종 집회와 거리 투쟁, 소조별 자율프로그램 등)

 

3) 국가권력은 파업을 유도하여 노조를 파괴하려 한 듯

박근혜정부는 파업을 ‘유도’해서 철도노조를 파괴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파업돌입 직전, 철도노조 김명환위원장이 공언하기를 “이사회를 연기하면 파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은 파업주체들에게는 ‘파업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하는 의구심을 낳았다. 철도노조의 파업돌입에 직면한 정부(국토부, 청와대)는 이 말을 무시하고 ‘이사회’를 강행했다.(이사회 개최와 연기연부는 철도공사의 권한이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 실질적인 권한은 국토부에 있다) 아마도 철도노조 파업이 위력적이고 장기간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까짓 이사회를 일정 기간 연기하면서 철도노조 파업대오를 기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사회를 강행하여, 즉 ‘파업을 유도하여 철도노조를 이참에 박살내자’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파업기간 내내 청와대가 국토부를 통해, 총리실을 통해, 검·경을 통해, 그들의 나팔수(수구언론)를 통해 보여준 일관된 태도는, 파업대오를 무너뜨리고 철도노조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풀고 현장에 복귀한 지금도 사상 초유의 징계해고를 통해 노조를 초토화시키려 하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의도대로 파업대오는 깨지지 않았고, 징계국면 역시 불순한 의도는 관철되지 못할 것이지만…. 이 때문에 철도노조는 철도민영화저지를 위한 현장투쟁으로의 전환만이 아니라 노조사수를 위해 잠시도 휴식을 취할 틈이 없는 상황이다.

 

4) 철도노조 파업의 역동성의 어디서 나왔을까?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대 내외적으로 확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면파업을 준비했던 곳은, 지도부 의지를 의심했다.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조기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노조간부들이 상당수 있었다. 대 시민 선전전(공중전)에 집중하면서 전면파업을 처음부터 준비하지 않았던 (지역)지도부는 조합원 동력에 확신이 없었다. 파업에 돌입했으나 준비된 파업 프로그램은 집회투쟁(결의대회와 촛불집회)을 중심으로 짜여진 일주일분 뿐이었다. 파업에 돌입한 첫날, 모 지방본부 핵심 간부는 “3일만 버티면 좀 더 길게 갈 수 있”다며 파업조합원들의 상태에 대해 절치부심하는 모습이었다.(아마도 전면파업을 미리부터 상정하고 조합원의 태세를 준비시켜온 지역이나 지부는 전혀 태도가 달랐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23일간의 철도파업의 역동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첫 번째는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의 절박성과 정당성의 확보이다. 철도노동자들은 수년간의 민영화 저지투쟁 과정에서 학습되어 있다. 둘째는 각계각층의 자발적인 연대와 지지는, 박근혜정부·철도공사·보수언론의 압박과 융탄폭격에도 23일간 파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철도노조는 철도민영화와 관련하여 수년간 대국민 선전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 조직적 표현이 광범위한 ‘범국민대책위’ 구성과 활동이다. 범대위에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조직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모두 포괄되어 있다.

 

 

4. 파업마무리, 현장투쟁으로 전환

 

1) 조직적 복귀 시기 임박

파업과정에서 전술을 구사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근거와 필요조건은 파업대오의 튼튼함 정도이다. 12월 28일, 최연혜 사장의 ‘최후통첩’이 있었고, ‘징계절차 없이 직권면직 방안마련’을 운운했다. 온갖 협박, 교묘한 협박문자가 쉴 새 없이 조합원들의 휴대폰을 울렸다. 무엇보다 관공서에 업무가 종료된 지 오래된 밤 10시에 졸속으로 수서KTX주식회사 ‘면허’가 발급되었다.

박근혜정부가 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혀지면서 이탈자가 눈에 띄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관사들은 거의 이탈자가 없었고, 차량, 전기 등 골간대오는 여전히 건재했다. 복귀율은 다소 올라가고 있었고 2개의 지부가 조직적으로 이탈했다. 지도부는 객관적인 조직판단을 위해 엄밀한 보고를 요구해 왔다. 현장복귀의 적절한 시기는 조직력을 유지하되, 더 지속하면 심각한 훼손이 올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이다.

이 시기는 파업참여 조합원들의 심리적 압박도 크지만, 철도공사와 정부도 힘든 상황이다. 파업이 해를 넘겨 민주노총 총파업(1.9)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정부와 공사의 불안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체인력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한 상황이어서 운행률을 계속 줄일 수밖에 없었다. 운행되는 열차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에 노심초사하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연내 파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압박수위를 최대치로 높인 것이다. 이리하여 파업조합원의 조직력이 이러한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조직력의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질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2) 국회 ‘철도발전 소위’ 구성 합의는 파업복귀 명분이었을 뿐

철도노조 집행부는 비밀리에 파업철회를 조건으로 ‘국회 철도발전 소위 구성’ 안을 민주당을 통해 추진하고 있었다. 철도노조는 수서발KTX 민영화저지와 국회에 ‘철도발전소위’를 구성하는 것을 ‘사회적 합의기구’ 5대 요구에 포함시켜 왔었다. 문제는 면허발급을 중단하지 않은 채 구성된 국회 철도발전 소위는 파업철회의 명분용일 뿐이었다. 노조위원장이 서명을 한 ‘합의서 형식’은 실수이자 오류다. 파업복귀 시점에서의 파업참가자 토론과 의견수렴 과정은 생략한 채 그 합의서에 강제 당했다. 지난한 투쟁의 귀결을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에게 맡기는 모양이 연출되고 말았다.

철도 파업대오가 고비를 넘어 1월 9일 민주노총 총파업까지, 투쟁을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예상을 넘어 능력 이상으로 싸웠다고 판단한다. 파업을 접고 현장투쟁으로 전환한 지금, 서슬 퍼런 징계국면을 투쟁을 통해 돌파하는 것, 민영화저지 투쟁을 지속하는 것, 이미 지펴진 투쟁의 불꽃을 계속 키워가야 할 과제가 있을 뿐이다.

 

3) 징계국면 정면 돌파, 민영화저지투쟁 계속

이번 파업은 조합원의 기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장에 복귀하여 투쟁동력이 살아있다. 23일간의 파업투쟁은 현장 지도력을 훈련시켰고 조합원간의 유대감을 깊게 했다. 특히 소조체계가 일반적으로 가동되었기 때문에 소조장을 맡았던 지부대의원의 현장구심력이 강화되었다. 반면에 정부와 철도공사는 이참에 철도노조를 반신불수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다. 그 유일한 수단이 손배가압류와 조합원 징계다.

‘공격이 최대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철도노조는 징계국면을 정면 돌파할 것이다. 징계국면 정면 돌파는 노조사수투쟁과, 지속해야 할 민영화저지 투쟁과 결합되어 있다. 여전히 2013년 임금교섭도 마무리되지 못했다. 철도민영화 저지투쟁 과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철도노조는 1월 7일 확대쟁대위에서 민주노총 파업투쟁 일정과 함께 철도의 동력을 결합시켜 나가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재파업을 포함한 현장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정세는 노동자·민중들에게 단결하고 연대하여 투쟁으로 응답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과정에서 박근혜정부는 민주노총을 침탈하면서 노동자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정부는 공공부문 사유화를 국정과제로 분명히 한 상황이다. 투쟁으로 확보한 그나마 있던 기본권과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경제위기의 손실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모든 정책에 맞서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하는 정세다. 민주노총 파업투쟁의 일정을 따라, 대규모 노조들의 실천으로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도 그 궤적을 따라 현장투쟁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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