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재난

박현욱|노동예술단 선언 “몸짓선언”, 자료회원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00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진도 7.5의 강력 대량 해고가 발생했습니다. 이재민(해고자) 숫자만 수천 명에 달해 정부는 긴급히 이 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에 나섰습니다.”

 

만약 이런 뉴스 멘트를 실제로 듣게 된다면… 어떠신지들?…

시작부터 쉰소리처럼 들리셨겠지만 앞으로 이런 뉴스멘트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을 거 같아 써본 말이다.

 

기업에 의한 대량 정리해고가 발생한 지역을 정부가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그러는데… 해고는 살인이라고, 정리해고 문제 정부가 해결하라고 그토록 외쳐온 데에 대한 대답을 드디어 내놓은 그들의 노력과 애민정신이 일단은 눈물(?)겹다.

일상적인 정리해고 공포에 가슴 졸이며 살았던 노동자들에겐 그나마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을 텐데… 어째 영 뒷맛이 씁쓸한 것이….

 

고용재난지역 선포. 이게 그러니까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는 거지. 그래서 ‘특별재난지역 선포’라는 것을 검색해보니 그 설명이 이러하더군.

‘재난 발생으로 국가의 안녕 및 사회질서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피해를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하여 행정적·재정적 지원 등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로써,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선포합니다’

재난이라… 사전은 이 말을 ‘뜻하지 않게 발생한 불행한 변고’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대로라면 해고라는 것을 뜻하지 않게 발생한 불행한 변고로서의 재난이라고 그들은 인식한다는 것일 테다.

 

뭐… 재난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는 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정부의 이 발표가 앞서 가상으로 써본 뉴스멘트처럼 쓴 헛웃음만 짓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한데…

“자연재해야 그렇다 치지만 해고는 기업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하는 거잖아. 개별 기업이나 사업자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을 왜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거지? 뭔가 많이 억울한데…”

 

당연히 억울할 일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란 사회가 어떤 곳인가? 사적소유와 시장질서가 신성으로 받들어지는 사회 아니던가?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대부분 기업 즉, 생산수단이라는 것을 사적, 즉 개인적으로 소유한 이들(자본가)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 기업을 운영하든 돈을 벌든 말아먹든 문을 닫든 그 모든 것이 사실 그것을 소유한 이들의 ‘자유’라는 게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자유주의 시장질서’의 신성불가침성은 바로 국가가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그 준엄한 공권력을 통해 철저히 보장하고 있으며 거기에 토를 다는 즉시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대역죄인’ 정도 취급 받는 게 이 자본주의 아닌가 말이다.

 

나 참… 억울하다고 해서 뻔히 대량해고라는 재난에 처한 이들에 대해 사회가 “그건 사적인일이고, 니들 팔자소관이니 죽든 살든 공적인 영역이 어찌 개입하겠는가? 어차피 죽고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신성불가침의 ‘자유’ 아니더냐”라고 손 놓고 있어야 한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답답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재난을 당한 이들이 안쓰러워서라기보다는 사실 개별 자본에 의한 개개인 노동자의 해고 문제는 결코 나와 무관한 ‘니들 팔자소관’일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 말할 수 없는 게다.

간단히만 보더라도, 내가 만약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해고자가 많아진다는 건 소비가 위축된다는 것이니 매출에 타격이 생길 테고, 내가 만약 노동자라면 실업률의 증가 즉, 노동력 공급의 증가로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임금이 낮아지고 고용이 불안해질 테고, 뭐 이도 저도 아니라 해도 해고자의 증가는 세수의 감소를 낳을 테니 결국 나의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게다.

 

사실 ‘답답함’의 정체가 바로 거기에 있다. 개별 자본가들 개인에 의해 자유롭게 운영된다고 하는 ‘사기업’의 경영이라는 것은 결코 ‘사적’일 수가 없고, ‘사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공기업의 민영화(사유화)’ 문제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큰 화두가 되었다. 당연히 투쟁으로 막아야 할 일이다.

헌데 앞에서 말했듯 애초에 ‘공적’, 즉 ‘사회적’이지 않은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해고’라는 사기업의 ‘사적’ 문제는 결국 ‘공적’, 즉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고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한참 유행했던 소위 ‘사회적 기업’ 열풍도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을 상당 부분 해소할 대안이 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그저 말 자체로서 동어반복일 뿐인 하나의 해프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기업도 사회적이지 않은 것은 없으므로…

 

이건 뭐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팔자도 아니고 분명히 사회적, 공적이라는 것이 그 본질이고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소유형태와 운영은 철저히 사적, 개인적인 것으로 되어 있는 현실이 주는 답답함과 억울함…

실은 오래 전에 칼 맑스라는 사람이 이런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의 정체를 하나의 문구로 정리해 놨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모순’이라고…

 

아무튼 아무리 덮어놓으려 해도 본질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놓기 마련이다. 특히 그 체제가 위험에 처할수록.

바로 정부가 해고에 대해 재난지역을 선포하고 국가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기업경영 즉 생산관계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라는, 그 본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 볼 일이다.

 

가만… 근데 왜 ‘해고재난지역’이 아니라 ‘고용재난지역’일까?…

노동자에게 해고는 재난임이 분명하다. 응당 지원이라 함은 그 의미와 이유가 당연하게도 그렇게 재난을 당한 해고 노동자들을 구제하고 돕는 것이라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될 테고,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는 국가가 그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겨지기 마련일 텐데…

 

의미만 통하면 되지 ‘해고재난’이냐 ‘고용재난’이냐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뭐… 까칠한 천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말은 ‘아’다르고 ‘어’다르다.

‘해고’라는 말은 확실히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따라서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해고재난지역’이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자본가들이 그런 극악한 재난을 일으킨 자들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어 분노와 원성이 그들을 향하게 되기 마련일 터. 하지만 고용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그런 자본에 의한 일방적 폭력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고 심지어 고용에 어려움을 겪는 자본도 그 재난의 피해 당사자인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지. ‘아이고 기업들이 고용에 재난을 겪는데 글쎄… 이를 어째…’

그래도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음… 아까 검색해 본 ‘특별재난지역 선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재난 발생으로 국가의 안녕 및 사회질서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흐흐흐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고백하고 있네. 사기업의 해고는 ‘사회질서 유지’ 심지어 ‘국가의 안녕’까지도 위협한다고. 그러니까 어떤 사기업도 실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거라고…

아무튼 국가가 고용재난 지역을 선포하는 것은 ‘해고된 노동자의 안녕’이나 그 ‘노동자 가정의 질서 유지’에 중대한 영향이 미쳐서라기보다는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서이다.

 

대량의 해고가 발생하면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가 위협받는다… 그렇다면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당연히 이 말대로라면 해고자들이다.

즉 해고자들이 많아지면 그 해고자들은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를 위협하게 될 거란 거다.

실제로 그렇다. 특히나 그들은 2001년 부평 대우자동차에서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그리고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워왔다.

 

앞에서 ‘아무리 덮으려 해도 본질은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국가의 본질…아무리 미사여구로 꾸민다고 해도 그 본 모습은 ‘계급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관리기구’이다.

자본가계급의 관리기구로서 자본주의국가의 역할이란 당연히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유지하고 자본주의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하기에 그들이 ‘고용재난지역’을 선포하는 진짜 의미는 해고된 노동자들의 안위를 보살피기 위함이 아니라 해고노동자들로부터 자본가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함이고, 해고를 대량으로 해야 할 만큼 위협받고 있는 ‘임노동관계’로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함이다. 또한 잠시나마 단비 같은 소식에 안도했던 노동자들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앞으로 대량 해고가 더욱 강하게 진행될 거라는 일종의 예고이기도 하다.

 

뭐…하지만 너무 절망하진 말자. 위기가 기회라는 뻔한 말도 있듯이, 달리 말하자면 ‘고용재난지역 선포’라는 제도를 만들 만큼 이 자본주의가 아주 많이 위기 상태라는 것을, 그 생산관계가 뿌리 깊은 곳으로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저들의 고백에 그저 화답해주면 될 일이다.

비로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사회적 성격을 되찾는 투쟁으로. 공기업 사유화 저지가 아니라 모든 사유화된 기업의 공적 성격을 되찾는 투쟁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안녕과 사회질서에 재난을!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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