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자 교양 정치학 지상강좌

연구소에서는 지난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2013년 노동자 교양 정치학 강좌”(총 8강)를 채만수 소장이 진행했다. 강좌의 개설취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진보’ 혹은 심지어 ‘맑스주의’를 내세운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사상과 담론들, 한마디로 허위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있고, 노동자계급운동과 그 상층부의 선진노동자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들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사상, 허위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고는 노동자계급운동이 해방을 향해 전진할 수 없다. ‘노동자 교양정치학’ 강좌는 바로 이들 허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이다.


제1강: 국가와 사회

제2강: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3강: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노동자계급운동의 독자성

제4강: 한국사회에서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제5강: 제국주의와 노동자계급운동의 분열

제6강: 고전 속의 사회주의의 원리와 20세기 사회주의

제7강: 21세기 사회주의의 전망과 과제

제8강: 뜨로츠끼주의, 그 특징과 역할


그동안 진행되었던 강좌내용을 보완하여 이번호부터 <노동자 교양 정치학 지상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이론

<노동자 교양 정치학 지상강좌>

제1강 국가(1)



채만수|소장




무릇 과학과 그 발전은 통상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엉뚱하게, 아니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를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우선, 예컨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그 나라의 국민인가? 물론 그들도 국가의 구성원 혹은 주민이고, 따라서 각국은 당연히 헌법과 기타 법률들에서 그들이 그 나라의 국민임을 전제하고 있고, 그 국민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그러한 ‘법률적 의미에서의 국민’ 여부가 아니다. 노동자ㆍ인민이 실제로, 즉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명실상부하게 그 나라의 국민인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아무리 황당하게 들릴지라도 이렇게 묻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 때가 되면 모든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서 …” 어쩌구 하고 떠들어대지만, 우리의 현실, 일상적 경험은 우리에게 그러한 규정들이나 그러한 떠벌림 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주권은 실제로는 재벌로 대표되는 소수 독점자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그들 독점자본으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국가의 사실상 모든 정책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들 아닌가?

다음으로는, 우리는, 학교에서도, 언론 등을 통해서도, ‘일제시대’에는 나라를 빼앗겼고, 그리하여 나라가 없었다고 배우고 있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이 땅에는 과연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리 황당하게 들릴지라도 이렇게 묻는 이유도 간단하다.

‘일제시대’에도 오늘날 ‘친일파’로 알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애국’을 외치며, 예컨대, 이 땅의 청년ㆍ학생들을 향해서 ‘애국을 위해서’ 전장에 나가라고 독려했고, 대표적으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즉 오카모토 미노루(宮本實) 같은 수많은 ‘애국’ 청년들이 실제로 일제의 장교가 되고, 헌병이 되고, 순사가 되고, 밀정이 되어 불령선인(不逞鮮人)들, 불령지도(不逞之徒)를 도륙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친일파들의 행태로 미루어 보면,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성씨를 달라고 한 것에서 시작됐다”1)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 아소 타로(麻生太郞)의 ‘망언’도 전혀 무근거한 헛소리만으로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시대’에 저들 친일파들의 행태가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에도 바로 그들 친일파들이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각 분야에서 역시 ‘애국’을 내세우며 이 나라의 ‘지도자’ㆍ지배자로 승승장구해왔고, 그들의 후손ㆍ후계자들이 오늘날에도 역시 그러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국가가 무엇인지, ‘애국’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왕 말이 난 김에 하는 얘기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왜 ‘심심하면’(?) 그러한 제국주의적 망언을 거듭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망언을 거듭할 때마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조중동’ 등 바로 그 친일파, 그 친일파의 후계자들이 ‘망언’이라며 짐짓 길길이 뛰고 나서는 것일까?

한편, 이 땅의 극우세력은 종종 한 손엔 태극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미국의 국기 성조기를 들고 시위를 벌이며 애국을 외친다. 저들의 그러한 행태와 ‘일제시대’ 친일파의 행태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과연 ‘애국’이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최고의 가치, 절대적 가치일까? 만일 그렇다면, 예컨대, 수천만 인명을 살육한 나찌나 일본 군국주의, 그 병사들의 만행을 어떻게 비난하고 단죄할 수 있겠는가? 그들 병사들을 그러한 살육ㆍ만행으로 몰아간 것도 필시 애국의 일념, 애국의 열정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국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대답, 올바른 관점은 국가라는 문제를,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주입하는 관점에 따라서가 아니라, 진실로 과학적으로 이해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기껏해야, 예컨대, ‘국민대통합’ 운운하는 헛소리, 혹은 “국가의 역할과 기능은 이러저러 해야 하는데, xx 정권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운운하며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들’ㆍ‘진보적 언론’이 벌이는 소위 ‘비판’과 같은 선의의, 그러나 분명 얼빠진 헛소리들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1. 계몽주의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방금 말한 소위 ‘국민대통합’ 운운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하자.

주지하는 바이지만, 양대 선거, 즉 국회의원 총선거(4월)와 대통령 선거(12월)가 있었던 지난해 2012년은 여나 야,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사실상 거의 모든 정치가들, 거의 모든 정치집단들이 이른바 ‘국민대통합’이라는 깃발을 유난히 요란하게 흔들어댄 한 해였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당연히 이 사회 ‘국민’의 분열과 그 대립ㆍ투쟁이 그만큼 격화되어 있고 격화돼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한 현상이었다. 그 ‘국민대통합’이란 슬로건을 현재의 새누리당, 박근혜 정권으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집단이 선도한 것도 바로 그들이 그러한 분열과 대립ㆍ투쟁으로부터 깊은 위협ㆍ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그러한 분열과 대립ㆍ투쟁으로부터 소위 ‘대통합’으로 돌려, 즉 대중을 기만ㆍ오도하여 도리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공작적 의도에서였을 터이다.

저들 극우 정치집단과 그 아류인 부르주아 야당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사실 조금도 이상할 게 없으며,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저들 극우 정치집단과 각을 세워 투쟁하겠다고 나섰던 소위 ‘노동자(계급의) 후보들’이나 ‘진보적 후보’, 그리고 그들을 내세운 자칭 ‘좌파’ 혹은 ‘변혁적’ 정치단체들이나 ‘진보정당’에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정치인이나 어떤 정치집단도 그 ‘국민대통합’이란 슬로건의 기만성을 지적ㆍ폭로하기는커녕, 자신들이야말로 ‘국민대통합’을 더 잘 해낼 수 있다며 어릿광대춤을 추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이 그렇게 어릿광대춤을 추고 나선 것은 이 사회의 지적 풍토, 그것도 진부하고 몰계급론적인 부르주아적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규범적 형태로, 그나마 어설픈 형태로 재생산하면서도 언필칭 “진보적입네” 하고 행세하는 지식인들이나 언론의 지적 풍토를 반영한 것이다. 파쇼에 대한 비판이랍시고, “국가의 기능과 역할은 이러저러 해야 하는데, xx 정권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운운하곤 하는, 그런 풍토 말이다. 여기에서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것의 내용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계급 간의 이해, 저들의 표현을 빌리면 “계층 간의 이해”를 조절ㆍ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어서,2) “국민대통합” 운운하는, 혹은 “국가의 기능과 역할은 …” 운운하는 이들 헛소리들은 물론 모두 이 시대의 지배적 국가관인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혹은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반영이다.



1) 봉건적 국가관과 (소)부르주아적 국가관


그러면, 이 부르주아 시대,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 국가관으로서의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혹은 계몽주의적 국가관이란 어떤 국가관인가?

오늘날의 지배적인 국가관인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혹은 계몽주의적 국가관은, 봉건적ㆍ절대군주제적 지배와 그 국가관에 대항하여 서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시민혁명을 추동하고, 그 혁명이 승리한 결과 확고하게 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국가관이다.

봉건시대나 절대군주제하에서는 국가는 왕권과 동일시되었고, 그 왕권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하늘이 내는 것”이라는 옛 촌로(村老)들의 사고(思考)나, 중국의 황제들, 즉 왕들이 ‘천자(天子)’, 즉 천신(天神)의 아들임을 자처한 것, 혹은 프랑스의 어느 절대군주가 지껄였다는 “짐(朕)이 곧 국가다”라는 발언 등등으로 나타난 이른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혹은 왕권천수설(王權天授說)은 그러한 봉건적 국가관의 전형적인 표현이었다.

이러한 봉건적 국가관은 물론 봉건적 착취ㆍ억압관계를 당연시하면서 그것들을 영구화하려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귀족들, 즉 봉건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 협소한 봉건적 생활관계 속에 갇혀 있던 피착취ㆍ피억압 근로인민들에게는 이 봉건적 국가관을 극복할 능력이 없었고, 그리하여 이러한 국가관이 대중을 지배하는 한, 봉건적 질서에 저항하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근로인민들은 기본적으로 그 피착취ㆍ피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가렴주구와 폭정으로 농민들이 반란을 강요당하고, 그리하여 왕조를 갈아세우는 경우조차, 왕조 교체가 잦았던 중국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증언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하늘의 뜻’(!)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봉건적 국가관은 17-18세기에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사상가들에 의해서 비로소 극복되고, 전복(顚覆)되게 된다. 저 유명한, 영국의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나 록(John Locke, 1632 -1704), 프랑스의 루쏘((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등과 같은 ‘계몽사상가들’이 바로 그들인데, 그들의 국가관은 봉건사회의 균열ㆍ해체기에 등장한 ‘제3신분’, 즉 신흥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었다. 봉건적 질서, 봉건적 체제를 전복하고 근대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봉건적ㆍ절대군주제적 국가관으로서의 ‘왕권신수설’을 전복하는 국가관의 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혹은, 봉건사회의 균열과 해체는 국가관의 혁명을 수반했다.

저들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계몽사상가들의 국가관은, 주지하는 것처럼, ‘사회계약론’ 즉 ‘민약론’(民約論)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왕권은 결코 신에 의해서, 즉 하늘에 의해서 주어진 게 아니다. 저들은 국가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계약’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그 자유와 평등을 보존하기 위하여, 혹은 그들 사이의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투쟁’이나 ‘전쟁상태’ 같은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하고 자기보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일정한 ‘계약’이 이루어졌고, 그 계약의 산물 혹은 그 이행이 국가와 그 지배질서이며, 통치자는 그 계약 내용의 집행을 위임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그 ‘계약’의 내용ㆍ목적으로서의 ‘민의’에 반(反)하는 왕권ㆍ국가ㆍ지배질서는 ‘계약위반’이요 위임의 범위를 넘는 월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정당성을 잃은 부당한 왕권ㆍ국가ㆍ지배질서를 철폐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워야 하는 것, 혹은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은 계약의 주체로서의, 혹은 ‘주권자’로서의 인민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가 된다. 실제로 17-18세기의 계몽사상 혹은 그 사상가들의 역할은 그렇게 반(反)봉건적ㆍ반(反)절대군주제적 정치혁명을 정당화하고 추동하는 정치의식을 대중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봉건적 절대왕정을 타도할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근대 부르주아 국가의 투표ㆍ선거는, 저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바로 그 민의, 즉 ‘주권자들’의 총의(總意)를 표현하고 확인하는 절차 혹은 행위이다.

여기에서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세 사람의 발언들을 들어보자.

(1) 먼저, 가장 선구적이었던 토마스 홉스:


사실상 사람들이 소가죽으로 생활했던 모든 곳에서 강탈과 약탈은 하나의 생업이었고,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여겨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탈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예롭게 여겼다.3)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사랑하고 타인을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코먼웰스(commonwealth, 국가) 속에서 스스로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궁극적 원인과 목적 그리고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보존과 그것을 통해 좀 더 만족스런 삶을 통찰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통찰은 비참한 전쟁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데 대한 것이다.4)


공통의 권력은 그들을 외적의 침입이나 서로의 침해로부터 방위함으로써 안전을 보장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노동과 대지의 산물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여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능력이 있는 공통의 권력을 확고하게 세우는 유일한 길은 그들 모두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에 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 또는 합의체를 임명하여 자신들의 인격을 위임하고, 그 위임받은 자가 공동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하든 또는 국민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 하든, 각자는 그 모든 행위의 당사자가 되고, 또한 당사자임을 인정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개개인의 판단을 그의 단 하나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동의나 화합 이상의 것이며, 사람이 사람과 서로 신약(信約)을 맺음으로써 인간이 단 하나의 동일 인격으로 결합되는 참된 통일이다. …

이것이 실행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Commonwealth),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한다. 이리하여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 [국가: 인용자])이 탄생한다.5)


주권자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주권자에게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이 존속하는 한 계속된다. 인간은 달리 아무도 보호해줄 자가 없는 경우 자기보존의 자연적 권리를 지니고, 이 권리는 어떤 신약(信約)으로도 양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6)


마지막 인용에서 보다시피, 토마스 홉스의 경우 주권자는 지배자이고, 그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 혁명권은 극히 조심스럽게, 극히 소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당연히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홉스가 처한 개인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의 ≪리바이어던≫(1651)이 출판되던 당시 영국은 시민혁명의 와중에 있었고, 특히 공화국(1649-1660)이 선포되어 있었지만, 홉스는 1640년 이래 빠리에 망명해 있었고, 1645년 이후에는 그곳에 망명해 있던 영국의 망명 궁전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리는 아직 반동적 교회와 절대왕정의 지배 아래 있었다.


(2) 다음엔 한 세대 뒤의 존 록:


나는 ‘정치적 권력’을 이렇게 생각한다. 즉 소유권을 조정하고 보전하기 위해 사형 및 그 이하의 모든 형벌을 가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하며, 적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공동사회의 힘을 사용하는 권리이고, 또한 이 모든 것은 오직 공공의 복지만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7)


자연 상태란 개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의 뜻에 맡기지 않고 자연법 안에서 자기 행동을 관리하며 자기가 합당하다 생각한 대로 자기 소유의 물건이나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하게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8)


사람들이 이성에 따라 함께 생활하고, 그들 사이를 재판할 권리를 가지는 공통의 우월자를 지상에 가지지 못한 상태, 이것이 자연 상태이다. 그러나 구제를 호소할 만한 공통의 우월자가 세상에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러한 의도를 선언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전쟁 상태이다. …

… 권위를 갖는 공통의 재판관이 없는 경우, 모든 사람은 자연 상태에 놓이게 된다. 권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신체에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공동의 재판관이 있든 없든 전쟁 상태를 만들어 낸다.9)


법의 목적은, 그 아래에서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죄 없는 사람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것에 있다. 그것이 성실하게 실행되지 않는다면, 언제라고 피해자에 대해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10)


이러한 전쟁 상태 ― 거기에서는 호소할 곳이 하늘 밖에 없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 사이를 재판할 권위가 없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의견 차이에도 파멸상태에 빠지게 된다 ― 를 피하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사회 상태를 지향하고 자연 상태를 떠나게 된다. 이것은 지상의 권위나 권력에게 호소하면 구제받을 수 있고, 전쟁 상태는 사라지며 다툼은 그 권력으로 심판되기 때문이다.11)


인간은 자기 소유물 ― 즉 생명, 자유, 자신 ― 을 다른 사람의 침해와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권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연법을 범했을 때에는 이것을 재판하고 또한 그 범죄에 상당하다고 믿어지는 벌을 가하고, 범행의 흉악함으로 인해 사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죄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권력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사회는 그 자체 안에 소유물을 보전할 권력과 그것을 위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범죄를 처벌할 권력을 갖지 않으면 존재할 수도, 존속할 수도 없다. 따라서 사회의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와 같은 자연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률의 보호를 받도록 호소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관해 이것을 공동사회의 손에 위임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정치적 사회는 성립되는 것이다.12)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통치 형태로 간주되는 절대군주제가 실제로는 시민사회와 모순되고 있어 시민적인 통치 형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모든 절대군주는 그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자연 상태에 놓여 있다.13)


절대군주의 추종자들이 민중의 오성(悟性)을 기만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의 감정까지 방해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 어떤 지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해악을 당하고, 또한 이것을 호소할 만한 수단이 지상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자연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첫 번째 목적이며 그들이 거기에 참가한 유일한 목적인 시민사회 안에서의 안전과 보장을 가능한 한 빨리 얻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14)


이렇게, 존 록에 이르면, 부르주아적 사유재산권, 사적 소유의 보장의 문제가 전면(前面)에 제기된다. 이것이 그의 사회계약론적 국가론의 첫 번째 특징이다. 당시 영국엔 이미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임금노동자들, 즉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무산자(無産者)들이 대량으로 존재했지만, 부르주아 사상의 대표자로서의 그의 눈에는 당연히 이 무산의 인간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존 록의 사회계약론적 국가론의 두 번째 특징은, 역시 보다시피, 절대군주(제)에 보다 준엄하게 반대하면서, 그에 대한 저항과 혁명의 정당성, 그 필연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3) 마지막으로, 사회계약론의, 시쳇말로, ‘종결자’ 장-자끄 루쏘: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여기저기 쇠사슬에 묶여 있다. …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지 나는 모른다. 무엇이 그것을 정당하게 만들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만일 내가 권력과 거기서 나오는 결과만 생각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인민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또 그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좋다. 왜냐하면 그때 인민은 (지배자가) 인민의 자유를 빼앗은 것과 같은 권리를 통해 자기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며, 인민에게는 자유를 되찾을 권리가 있거나 아니면 인민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을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질서는 다른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그렇다고 이 권리가 자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15)


모든 사회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으며,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가족이다.16) 그런데 자식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필요한 동안만 아버지와 연결을 맺고, 그 필요가 없어지자마자 이 자연이 맺어 준 연결고리는 끊어진다.

… 그러므로 가족 자체도 약속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 자유는 인간 본성의 결과이다. …

그러므로 가족은 정치 사회의 첫 모델이다. …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탄생했으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그 자유를 양도한다. 단 가족과 국가의 차이는 … 왕은 인민에 대한 애정이 아닌 명령하는 기쁨을 그 지배의 이유로 갖는다는 데에 있다.17)


어느 누구도 자연적으로 동료를 지배할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또 힘이 그 어떤 권리도 낳지 않는 이상, 인간 사이에 성립하는 정당한 권위의 기초는 오직 약속뿐이다.18)


구성원 하나하나의 신체와 재산을, 공동의 힘을 다하여 지킬 수 있는 결합의 형식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저마다 모든 사람과 결합을 맺으며 자기 자신 이외에는 복종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자유로울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계약이 해결해 주는 근본적인 문제이다.19)


이 결합 행위는 곧바로 특정한 계약자 하나하나를 대신하여 하나의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를 만들어 낸다.

이 단체는 집회에서의 투표와 같은 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이 공적인 인격은, 예전에는 도시국가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공화국’ 또는 ‘정치체’라고 불린다.20)


사회계약에 의해 우리는 정치체에 존재와 생명을 부여했다.21)


정치체로서의 생명의 근원은 주권에 있다. 입법권은 국가의 상징이며 …

국가는 법률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권에 의해서 유지된다. 어제의 법률이 오늘은 강제력을 잃는다.

그러나 침묵은 암묵의 승인을 뜻한다. 주권자가 법률을 폐지할 수 있는데도 폐지하지 않을 때, 그는 계속 그 법률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22)


주권자는 입법권 이외의 아무런 힘도 없으므로 법에 의해서만 행동할 수 있다. 더욱이 … 인민은 집회했을 때에만 주권자로서 행동할 수 있다.23)


루쏘에 이르면, 그의 사회계약론은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해질 뿐 아니라, 통치자가 아니라 인민이 주권자임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국가는 주권자인 이 인민의 입법권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며, “인민은 집회했을 때에만 주권자로서 행동할 수 있다”며, 인민의 적극적이고 직접 민주주의적 정치 행위가 고무된다.


2)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의의, 특징과 한계


봉건귀족, 봉건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국가관으로서의 계몽주의적 국가관은 이렇게 전통적이고 숙명론적인 왕권신수설을 부정ㆍ극복하고, 인민의 계약, 그 의지, 그 주권에 기초한 국가라는 관념ㆍ사상을 확립, 대중화하기까지 한 국가관의 일대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천적으로도 17-18세기 근대 시민혁명기에 봉건적 절대왕정을 전복하고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데에 지대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로 여기에 이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진보성이 있었고, 그 최대의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아니 이 시대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적 언론’이 그러하듯이, 오늘날에 와서도 누군가가 계몽주의적 국가관에 입각하여 정치ㆍ사회적 문제를 재단하고, 그리하여 그러한 국가관을 음으로 양으로 선전한다면, 그것은 과연 진보적일까?

우리는 앞에서, “국민대통합” 운운하거나 “국가의 기능과 역할은 …” 운운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로서, 이는 모두 이 시대의 지배사상인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혹은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즉, 그것은 진보적이기는커녕 반동적이라는 뜻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국가관으로서의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특징과 한계 때문이다.

계몽주의적 국가관은 이중의 의미에서 ‘선의(善意)의 산물’이다. 우선 첫째로는 그것이 폭압적인 봉건ㆍ절대왕정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도ㆍ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로는 그것이 사회의 구조와 역사, 그 운동법칙에 대한, 즉 사회과학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무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어쩔 수 없는 무지의 산물’이라는 데에 대해서 부연하자면, 주지하듯이, 사회과학은 맑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유물론적인, 역사적 유물론적인 패러다임이 확고히 확립되고 나서야 비로소, 따라서 인류 사회의 역사를 계급적 분열과 그 이해의 대립, 투쟁의 역사로 파악할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과학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계몽사상가들은, 따라서 그들에 의해서 확립된 계몽주의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ㆍ사회관은 선(先)맑스ㆍ엥겔스 시대의 그것이다. 어쩔 수 없이 비과학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대표적인 세 사람의 발언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사회ㆍ국가ㆍ인간 등에 대한 이들 계몽사상가들의 관점과 논의는 순전히 사변적ㆍ추상적이다. 이른바 ‘자연 상태’나 국가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근거한 그것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인간관에 기초한 그들의 상상의 산물, 추론의 산물이다. 그 설명은 전혀 역사적이지도, 유물론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관념적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인류 사회의 계급적 분열과 대립ㆍ투쟁이라는 관점은 한 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유로운’, 즉 자의적인 개인들만이 존재하고, 그들의 자의적인 투쟁과 그것을 지양하기 위한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계약ㆍ의지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국가관이 그 성격, 그 이해관계에서 초계급적이라거나 몰계급적이라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그것은 몰계급론적이지만, 철저히 계급적이고, 부르주아적이다.24) 다만 그 사상의 창조자들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그 부르주아적 성격을 은폐하고자 했기25) 때문에, 초계급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국가관이 바로 그렇게 초계급적인 형태로 제시됨으로써 부르주아 국가 그것은 마치 초계급적인 기구, 계급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기구인 것 같은 외관을 획득하고, 부르주아지를 그들 계급의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특수한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무릇 범(凡)계급의 이익을 추구하는 보편적 계급으로서 내세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계몽주의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은, 계급대립ㆍ계급투쟁이라는 역사적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그 계급대립ㆍ계급투쟁을 은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서, 또한 기타 사회교육을 통해서 계몽주의적 국가관을 사실상 국정(國定) 국가관으로서, 즉 국가 공인의 국가관으로서 교육하는 것도 바로 계몽주의적 국가관의 그러한 성격과 역할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필칭 진보적 지식인, 진보적 언론이라는 존재들이, 착취자와 피착취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로의 주민의 계급적 분열을 무시하고, 마치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서로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다는 듯이 ‘국민대통합’ 운운하고 있다니! “국가의 기능과 역할은 이해의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운운하고 있다니! 우리는 그들을 진짜로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2. 민주노동당 강령을 둘러싼 논쟁


국가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기 전에, 독자들이 최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듣게 되는, 국가에 관한 ‘진보적 담론들’이란 게 대개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먼저 이 문제와 관련한 10여 년 전의 한 논쟁을 소개하고 싶다.

이 논쟁에서 나에게 쏟아진 이른바 ‘반비판’은 나로서는 사실상 봉변(逢變)이기도 했는데, 그 논쟁이란 이제는 기억 속에 그 이름만 남아 있는 ‘민주노동당’이 창당(2000. 1. 30.)과 함께 천명했던 ‘강령’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이었다. 그 ‘강령’이 공표되었을 때에 나는, 그 비판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여러 이유에서 “전문 및 정치, 경제 강령을 중심으로 그 기본적ㆍ계급적 성격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간단히” 비판했었는데, 그 비판 가운데 여기에서의 우리의 주제인 국가의 문제와 관련된 부분만을, 좀 길긴 하지만, (발췌) 전재(轉載)하면 이렇다.


오늘날 통속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국가는 사유재산권과 더불어 가히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되어 있지만,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조차도 국가 그것이 사회의 계급적 분열과 함께 등장한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을 진지하게는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

국가는 이렇게 계급지배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자체가 당연히 계급적 착취와 수탈을 영속화하기 위한 억압기구이고, 따라서, 민노당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지향하는 ‘진보정당’에게 있어서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어떻게 변혁시킬 것인가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로서 대두된다. 다시 말하면, “‘새 세상’에서는 국가는 어떻게 변혁될 것인가,” 즉, “거기에는 현재의 국가기능과 유사한, 어떠한 사회적 기능이 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맑스에 의하면,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만 대답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인민(민노당 식으로 하면, 민중)이라는 말과 국가라는 말을 천 번을 결합시켜 봐도 벼룩이 한 발짝 뛰는 만큼도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민노당의 강령과 관련해서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패러디(parody)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와 민중 주체(중심)’이니 ‘민주’니 하는 말을 천 번을 결합시켜 봐도 벼룩이 한 발짝 뛰는 만큼도 문제에 접근할 수 없다”라고! 왜냐하면, 민노당의 강령을 거듭거듭 장식하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민주정부’니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니 하는 말들은 사실은 현실적 내용을 갖지 않는 상투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민노당의 강령이 정치적 장식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전문]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계급의 철폐를 위한 어떤 실질적 방침도 밝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새 세상’에서도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의 온존을 전제하고 있는 한, 그것들은 당연히 상투어일 수밖에 없다. …

따라서, 변혁과 사회혁명기의 국가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등에 관한 논의가 들어설 자리는 민노당의 강령에는 있을 수 없다.

물론, 필시 자신들의 머리에서 생각 가능한 모든 비판과 그것을 비켜갈 길을 치밀하게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을 것이 분명한 민노당의 강령에 국가(기구)의 ‘개혁’이나 심지어 ‘폐지’에 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국가기구와 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것이다.” [전문]

“억압적 국가기구를 전면 폐지하고, ….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따위를 폐지한다. … 나아가 군과 경찰, 행정 관료 기구 등 국가기구를 민주적으로 개조하고 ….” [정치]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지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의 일부 기구만이 폐지되어야 할 ‘억압적 국가기구’일 뿐 국가 자체는 계급적 지배ㆍ억압장치가 아닌 것으로 되는데, 이는 말할 나위 없이 국가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국가 및 정치와 관련한 민노당의 강령은 부르주아적 정치개혁의 차원을 조금도 넘지 않는데, 그렇게 하자니 물론 그 계급적 본질에 대한 부르주아적 왜곡이 선행하지 않을 수 없고, 속 빈 미사여구가 현란하게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강령에 등장하는 ‘정경유착’이니 ‘부정부패’니 하는 말들은 그것들이 사회체제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제도의 본질적 특징을 이룬다는 인식 대신에 천박하게도 기존의 정치인들의 개인적 범죄 정도로 파악된다. 따라서 “썩은 정치, 부패정치의 완전 척결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지는 정치,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구현…(하고), 무엇보다도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부패정치인들에 대해 영구적인 선거 출마 금지 조치 등을 실시해 공민권을 대폭 제한”[정치]하겠다고, 소부르주아적 시민운동단체의 주장과 조금도 다름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한편, 강령은 “향후 설립될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민주정부는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참여를 확대시킨다”[정치]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ㆍ민중ㆍ주체ㆍ민주정부ㆍ참여 등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일견 근사한 말이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참여를 확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정부’일 수 있겠는가?26)


이렇게, 여기 비판문 속에 인용된 구절들로부터만 판단하더라도, 당시 민주노동당의 국가 관련 강령은 분명 “속 빈 미사여구가 현란하게 동원된”, 그리하여 다소 급진주의적으로 보이는 (소)부르주아 개량주의적 강령, 기회주의적 강령이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동당의 입장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대표하던 두 명의 이데올로그, 즉 사상적 대표자들이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발끈하여 격렬하게, 그러나 역시 개량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내용으로, ‘반비판’하고 나섰다.


(1) 맨 처음 발끈하고 나선 것은 그 “‘강령’ 작성 작업에 적극 결합한 바 있는 장상환 교수”27)였다. 교수께서는 민주노동당의 기관지 ≪진보정치≫ 창간호(2000. 3. 24.)에 “채만수씨의 [민주노동당 강령비판]에 대한 반론”을 게재하셨는데, 그 제목은 아예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비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는, 나의 “비판은 강령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었으며,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렇게 대꾸한다.


채만수씨는 민주노동당 강령이 억압적 국가기구의 폐지와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혁만을 제기할 뿐 국가의 폐지를 제기하지 않으므로 계급의 철폐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채만수씨가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 역시 국가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당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국가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오랜 과정을 거치고 나서, 그리고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였을 때 국가의 기능 중 억압기구로서의 성격이 비로소 소멸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사회 국가 기구의 기능 중에는 공동체의 공동사무를 수행하는 부분과 계급적 억압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병존하고 있다. 국가를 계급지배의 장치로 보고 국가를 폐지한다고 했을 때 이는 억압적 기구와 기능을 폐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엉뚱한, 그러나 물론 국가 문제에 대한 그의 이해 수준을 반영한 대꾸이다. 우선, 독자가 보다시피 나는 결코 그 강령이 “국가의 폐지를 제기하지 않으므로 계급의 철폐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해방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않았다. 만일 문제를 그렇게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정부주의자이거나 그 아류일 것이다. 그들만이 문제를 그렇게 제기할 뿐이다. 이런 엉뚱한 대꾸를 할 때에 맨 먼저 장 교수의 염두에 있었던 나의 비판은, 짐작컨대, 아마 다음 구절이었을 것이다. 즉,


민노당의 강령이 정치적 장식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전문]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계급의 철폐를 위한 어떤 실질적 방침도 밝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새 세상’에서도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의 온존을 전제하고 있는 한, 그것들은 당연히 상투어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의 “비판은 강령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었으며,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장 교수의 ‘반비판’이 그에 값하는 것이었다면, 위와 같은 엉뚱한 소리를 하는 대신에, 그 강령은 결코 “‘새 세상’에서도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의 온존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계급의 철폐를 위한 실질적 방침을 밝히고’ 있음을 증거와 함께 밝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부당하게도 내가 자신들에게 무정부주의자스러운 공격이라도 가했다는 식의 엉뚱한 ‘반비판’을 하고 나섰다. 결국 그는 논점을 엉뚱한 데로 돌림으로써, 자신들의 강령이 자본주의적 계급구조의 온존을 전제하고 있는 것, 즉 국민의 절대다수의 무소유를 전제로 하는 소수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 사유재산제에 대한 소부르주아적 신앙을 은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폐는 동시에 그에 대한 소리 없는 신앙고백이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은폐, 신앙고백은 물론 “국가는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다”28)라는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인 엄연한 사실을 ‘침묵’으로써, 즉 부정직하게 부인하는 한 수법이기도 하다.

위의 ‘반비판’ 중 다른 논의들도 무척 흥미롭긴 하지만, 이 글 전체의 균형상, 다른 한 가지만 더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자. 다름 아니라, 위에서 인용한 문단에 이어 장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민주노동당이 민중의 참여를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실질적 참여를 확대시키지 않고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형식상으로만 노동자와 민중주체의 정부를 자임한 과거 국가적 사회주의체제의 국가형태의 오류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실질적 참여를 확대시키지 않고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형식상으로만 노동자와 민중주체의 정부를 자임한 과거 국가적 사회주의체제의 국가형태의 오류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 여기에서 그가 “과거 국가적 사회주의체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분명 쏘련을 위시한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20세기 세계체제가 해체된 후 ‘진보적’이라는 가면을 쓴 반쏘ㆍ반공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품 있는 매도의 언어 말이다! 그런데 그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실질적 참여를 확대시키지 않고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형식상으로만 노동자와 민중주체의 정부를 자임”했다? 바로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의 선전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 것 아닌가?29)

그가 이렇게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의 선전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니다. 나의 비판을 가리켜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비판”이라고 규정할 때에 명백한 것처럼, 이는 그가 맑스ㆍ엥겔스ㆍ레닌의 과학적인 국가관을 거부ㆍ적대하면서 소부르주아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의 ‘진보적 담론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진보적 담론들’을 전포(傳布)하는 것을 자신의 자부심 만만한 소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 나의 비판에 발끈하고 나선 또 한 사람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교육부장이었고, 그 후 ‘진보신당’을 거쳐 최근엔 새로운 의상을 걸친 그 당인 ‘노동당’의 부대표님으로 계신 장석준이라는 논객이시다. 그런데 이 분께서는 민주노동당 강령의 내용이나 그 사상적ㆍ정치적 성격 자체를 논하는 대신에, “‘오른쪽의 실용주의’와 ‘왼쪽의 실용주의’”라는 “두 개의 실용주의”가 어떻고, “‘오른쪽의 교조주의’”와, “‘왼쪽의 교조주의’”니, “두 개의 교조주의”니 하며 장차 한 정당의 부대표, 저명인사가 될 재목다운 시답잖은 설교로 지면을 메워가면서, 이렇게 재단한다.


‘왼쪽의 교조주의’는 몇 개 고전의 테제들이 우리가 알아야 할 전부라는 식의 근본주의로 나타났다.30)


최근의 ‘강령’ 논쟁은 교조주의의 양 극단을 반복하는 것 같다. 현실사회주의의 경험을 ‘계획의 과잉’으로 진단내리고 곧바로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으로 시장사회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한 편의 극단이라면, 20-30년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건설의 교훈을 정전(正典)의 목록에 올려놓지 않는 것은 다른 한 편의 극단이다. 후자의 경우, 국가론에 관해서는 그람시나 풀란차스가 마치 땅 위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고색창연한 테제들에 만족하기까지 한다.31)


여기에서 장석준이란 분께서 “‘왼쪽의 교조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분명 나의 견해를 가리키는 것이고, “몇 개 고전의 테제들”이니, “근본주의”니 “고색창연한 테제들”이니 하는 것은 분명 국가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논의들ㆍ명제들이다. 결국 그가 여기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국가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적 이론에 대한 진하디진한 거부감, 사실상의 적의(敵意)인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에 대해서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물론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긴 하지만!

이 장석준이란 분의 시답잖은 설교 따위엔 별 관심이 없지만, 아무튼 그가 이 사회의 저명한 ‘좌파’ 이데올로그로서 맹렬히 활동 중이기 때문에, 사실은 그의 ‘반비판’을 읽으면서 그의 정신상태가 과연 정상인지 궁금했었다는 사실은 털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령’에 대한 채만수의 비판은 그 주장의 현실 적합성 이전에 자신이 비판하려는 텍스트의 성격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우선 잘못된 출발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강령’을 마치 단일한 입장에서 비롯된 테제들의 집합인 것처럼 상정한 채 자신의 비판을 풀어낸다. 필자가 너무 과도하게 이해한 것일 수도 있으나, 국가관, … 등등에 대한 그의 비판은 ‘강령’의 발화자로 상정되는 ‘민주노동당’이란 단일한 주체에 대한 비판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노동당은 결코 그렇게 단일한 주체가 아니다. 그리고 ‘강령’이라는 텍스트는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기는커녕 상호 갈등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극히 모순적이며 분열적인 텍스트이다. 이는 어떤 한 주체의 확신에 찬 테제들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주체들 사이의 어지러운 대화 과정이 잠시 멈춰 선 중간 정차역 같은 것이다. 이는 ‘강령’의 실제 작성 과정이 말해주는 바이며, 또한 텍스트 자체의 혼란스러운 서술들이 직접 보여주는 바이다.32)


저 ‘반비판’을 쓰고 발표할 당시 그는, 그 글의 필자 소개에 명시되어 있는 바에 의하면, 민주노동당의 ‘교육부장’, 그러니까 그 당의 고위 당인(黨人), 고위 당직자였다. 그런데 그런 지위에 있는 자가 제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그러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반비판’이랍시고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이 아직 공표할 계획이 없는, “어지러운 대화 과정이 잠시 멈춰 선 중간 정차역 같은” 내부 문서를 내가 훔쳐내거나 강탈하여 그것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가 발끈하며 ‘반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그 글에서 이미 밝힌 대로, 내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강령 원문은 창당대회 후 민노당 홈페이지(http://www.kdlp.org)에 실린 ‘민주노동당 강령(ga.html, ga2.html … ga5.html)”33)이었다. 즉, 자신들이 자신들의 강령이라며 만천하에 공표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자신들이 공표하고 나선 문서가 장석준 교육부장께서 밝히고 있는 ‘성격’의 것,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기는커녕 상호 갈등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지극히 모순적이며 분열적인 텍스트”이자 “어떤 한 주체의 확신에 찬 테제들이 아니라 다양한 복수의 주체들 사이의 어지러운 대화 과정이 잠시 멈춰 선 중간 정차역 같은 것”, “혼란스러운 서술들”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면, 게다가 자신이 고위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그 조직 ‘민주노동당’이 “결코 …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상호 간에 “어지러운 대화”가 오가는 “다양한 복수의 주체들”의 무정형한 집합에 불과했으며, 그런데도 진보적인 정당임을 자칭하며 ‘강령’이라며 그러한 문건을 만천하에 공표하고 나섰다면, 그렇게 사기치고 나섰다가 뽀록났다면, 그리고 그가 파렴치하게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면, ― 그렇다면, 그러한 ‘정당’이 그러한 ‘성격’의 문서를 강령이랍시고 온 세계에 공표하고 나선 자신들의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자기비판해야지, 외부의 비판자에 대해서 ‘반비판’이랍시고 저렇게 떠벌일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파렴치하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데, 이렇게 그는, 내가 문제의 “‘강령’을 마치 단일한 입장에서 비롯된 테제들의 집합인 것처럼 상정한 채 … 비판을 풀어낸다”고 투덜대면서, 그 ‘강령’이 “지극히 모순적이며 분열적인 텍스트”임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장황하게 떠벌리고 있지만, 사실 나는 “‘강령’을 마치 단일한 입장에서 비롯된 테제들의 집합인 것처럼 상정한 채 … 비판을 풀어낸”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나는 글의 모두(冒頭)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비판을 시도하는 이유는 … ≪고타 강령 비판≫(1875)에 첨부한 편지 속에서 맑스가 말한 것처럼, “강령을 작성하는 것은 당 운동의 높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경계석을 온 세계 앞에 세우는 것”이고, 실제로 강령은 그 정당의 현실 및 역사 인식과 요구, 목표 등을 담은 문서로서 그 정당의 성격과 지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자료이기 때문이다.34)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많은 주제가 분야를 달리하면서, 특히 전문과 본문 사이에 겹치고, 별도의 ‘강령 해설서’가 사실상 필요 없을 정도로 장황히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장황하게 서술되고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이 반드시 명확하고 엄밀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 장황함과 엄밀함의 부족이 서로 어울리면서 많은 내용이 사실상 모순ㆍ충돌하고 있기도 하다. 관점과 사고 자체가 엄밀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앞으로의 논의가 비록 부분적이나마 이를 밝혀줄 것이다.35)


나의 비판은, 굳이 말하자면, 강령이란 “단일한 입장에서 비롯된 테제들의 집합”이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강령’은 “많은 내용이 사실상 모순ㆍ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부끄러움이란 전혀 모르는 그의 저 장황한 떠벌림이 얼마나 황당한 헛소리인지 명확해졌을 것이다.

아무튼 이 논쟁에서 나의 비판에 대한 저들의 ‘반비판’의 주지(主旨)는, 국가의 문제에 대한 나의 관점은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장상환)인 것이며, “왼쪽의 교조주의”, “고색창연한 테제들”(장석준)이라는 것이었다.

좋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독자들에게 명백히 미리 밝히고 싶다. 내가 여기에서 전개하는 국가에 관한 논의는, 저들이 그토록 거부하고 매도하는 바로 그 “왼쪽의 교조주의”, “고색창연한 테제들”이며,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논의라는 것을! 내가 여기에서 저어하는 것은, “왼쪽”이니, “교조주의”니, “고색창연”하니, “낡은 이념”이니, “시대착오적”이니 하는 매도가 아니라, 그와는 전혀 반대로 바로 그 “왼쪽의 교조주의”, “고색창연한 테제들”, “고색창연”하고 “시대착오적” “테제들”을 나의 무능력 때문에 정확히,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라는 것을!

3. 국가란 무엇인가


자, 이제 저들이 무어라 하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자. 저들이 ‘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념’이니, “왼쪽의 교조주의”니 하며 낙인찍는 “몇 개 고전의 테제들”ㆍ“고색창연한 테제들”에 기초하여, 즉 맑스-레닌주의 고전에 기초하여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를 보자.



1) 지배계급들에 의해 혼란ㆍ왜곡되어 있는 국가 학설


국가의 문제는 모든 정치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며, 폭풍우 치는 혁명적인 시대뿐만이 아니라 가장 평화적인 시대에도, 어떤 신문에서나,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서나 우리가 매일 부딪히게 되는 문제이다.36)

이 문제는 맑스-레닌주의의 고전에 의거해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본질과 역할ㆍ기능의 문제는, 사회과학의 태반의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비로소 과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레닌에 의해서 그 성과가 고스란히 계승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문제야말로, 레닌의 말을 빌리면, “어쩌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부르주아 학자들이나 저술가들, 철학자들에 의해서 혼란되어 있는 문제”37)이기 때문이다.

레닌이 이 발언을 했던 것은 스베르들로프(Sverdlov) 대학의 강의(1919. 7. 11.)에서였는데, 사실은 내가 여기에서 인용한 것과는 약간은 다른 맥락에서였다. 내가 여기에서 이 발언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문제는, “부르주아 학자들이나 저술가들, 철학자들에 의해서” “어쩌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혼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맑스-레닌주의적 고전에 의거해야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이다.

이에 비해서 레닌은, 자신의 강의를 듣는 청강생 대부분이 이 어려운 국가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은 필시 자신의 강의가 맨 처음일 것이고, 그리하여 많은 청강생이 자신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렇더라도 이는 “국가의 문제는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며, 어쩌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부르주아 학자들이나 저술가들, 철학자들에 의해서 혼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므로 당황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였다. 그러면서 레닌은 청강생들에게 짧은 강의 한 번으로 문제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말 것이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표시를 해두었다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반복해서 학습할 것 등을 당부하는데, 아울러 “대화와 강의 외에, 시간을 내어, 맑스와 엥겔스의 가장 중요한 저서들 가운데 최소한 몇 권을 읽을 것”38) 등등, 학습에 중요한 여러 가지를 당부하고 있다.

이러한 당부는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그 때문에 그 주요 부분을 여기에 옮기자면 이렇다.


그리고 비록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그 설명[맑스와 엥겔스의 설명: 인용자]이 어려운 데에 놀라더라도, 다시 주의해두지만,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처음 읽어서 불분명한 것은, 두 번 읽으면, 혹은 나중에 문제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분명해질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 문제는 아주 복잡하고, 부르주아 학자들과 저술가들에 의해서 아주 혼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진지하게 학습하고 자주적으로 터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을 여러 차례 공략해야 하고, 그 문제로 거듭거듭 되돌아가야 하고,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정치에서 그토록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와 같이 폭풍우 치는 혁명적인 시대뿐만이 아니라 가장 평화적인 시대에도, 어떤 신문에서나,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서나 매일 그 문제에 조우(遭遇)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로 되돌아가기가 아주 더 쉬울 것이다. 매일, 이런저런 맥락 속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 본성은 무엇인가? 그 중요성은 무엇이며, 우리 당, 즉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당, 공산당의 태도는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그 태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의 결과로, 그리고 국가에 관해서 듣는 대화와 강의의 결과로 이 문제에 자주적으로 접근하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여러분은 극히 다양한 기회에, 극히 사소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극히 예기치 않았던 맥락에서, 그리고 반대자들과의 토론 및 논쟁에서 그 문제와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자주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확신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언제 누구에 대항해서도 그 신념들을 충분히 성공적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39)


국가의 문제 그 자체도, 따라서 그에 대한 학습도, 그리고 충분한 이해도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지배계급은 국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왜 그것을 혼란ㆍ왜곡시키고, 또 스스로 그러한 혼란에 빠지는가?

이에 대해서 역시 레닌의 강의는 아주 정곡을 찌르는 답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이 문제가 그토록 혼란되어 있고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지배계급들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40)


그리고 이렇게 국가에 대한 견해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지배계급의 이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그 이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국가 학설은 사회적 특권을, 그리고 착취의 존재를, 그리고 자본주의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다.”41)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부르주아 과학이나 부르주아 철학, 부르주아 법학, 부르주아 경제학, 부르주아 언론의 대표자들”, 간단히 말해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들, 부르주아 강단의 학자들에게서 “이 문제에 관한 불편부당(不偏不黨; impartiality)을 기대한다면, 즉 과학적임을 자임하는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이 주제에 대하여 순수하게 과학적인 견해를 제공하리라는 믿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최대의 오류일 것이다.”42)



2)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ㆍ표현으로서의 국가

   ― 원시공산사회와 그 해체


우리는 앞에서 국가에 관한 근대 계몽사상가들의 논의가 순전히 사변적ㆍ추상적이며 몰계급론적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선(先)맑스ㆍ엥겔스 시대의 사상가들로서의 그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국가 이론은 당시에는 반(反)봉건ㆍ반(反)절대왕정적 사상으로서 혁명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완숙한 현대에 있어서는 반동적임도 확인하였다.

국가의 “문제에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사를, 그 발생과 발전을 대략이라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43) “오늘날까지도 종교적 교리의 대표자들(…)뿐 아니라, 스스로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자주 … 국가란 어떤 신적인 것, 어떤 초자연적인 것이라든가, 그 덕분에 인류가 살아온 어떤 힘 …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을 만들어내려고”44) 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것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때 맨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인류의 역사에는 국가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45) 그것도 바로 이 무(無)국가의 시대가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것처럼, 실제로 국가라는 것이 인류사에 등장한 것은 길어야 5ㆍ6천 년 전의 일 아닌가!46) 누구라도, 세계 어느 곳에라도 그 이전에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입증할 수 있는가?47) (하도 각종 귀신들이 득시글거리는 사회라서 하는 말이지만, 물론 예컨대 ‘하나님의 나라’ 운운하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면,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사실, 즉 인류의 역사에는 국가 따위가 존재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은 그러한 시대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예로 들면, 초등학교 3ㆍ4학년의 과정을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초등학교 3ㆍ4학년이면, 국가도 문자도 없던 장구한 선사(先史)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누구나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완고한 극우 반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사실(史實)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란?’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역사적 관점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다. 장삼이사는 비유기적인 부르주아 교육 탓에, 그리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들은 한편에서는 그들 자신이 그러한 교육의 희생자가 되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론 계급적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러나 물론 인류의 역사에는 국가 따위가 존재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든가, 그러한 시대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않다. 앞에서 본 것처럼,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계몽사상가들조차, 혹은 그들로부터 유래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공정(公定)’ 국가론조차 그러한 무국가의 시대, 그들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회계약’ 이전의 ‘자연상태’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무국가의 시대 혹은 무국가의 사회는 왜 존재했으며, 혹은 그 사회에는 왜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사회에서의 인간과 인간 간의 사회적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회가 왜 장기간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되었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아는 첩경이다.

그러면 선사(先史)의 무국가 사회는 어떤 사회였으며, 왜 거기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누구나 무엇보다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약간이라도 발전한 사회에서는 무엇인가를 몸에 걸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며, 천연의 동굴에 사는 혈거인(穴居人)이 아닌 한, 무언가 축조된 거처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먹거리, 몸에 걸칠 거리, 즉 옷, 그리고 축조된 거처, 즉 집이 그러니까 인간생활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물질적 생활수단인데, 인간은 그것들을 노동을 통해서 자연으로부터 획득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그 자신의 형상을 본떠 창조했다’는 식의 완고한 종교적 신념ㆍ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한, 아득한 옛날, 그러니까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갓 분리되었을 때에는 인간의 모습도, 자연을 지배하는 그 능력, 혹은 자연으로부터 그 물질적 생활수단을 획득하는 능력, 즉 그 노동생산력도 침팬지나 고릴라, 원숭이 같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대로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물질대사(物質代謝) 과정, 즉 노동과정을 통하여 자연소재를 변화시켜 물질적 생활수단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노동생산력을 제고해왔지만,48) 그것이 어느 수준, 예컨대 일하는 인간들이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도 무언가 남는 것, 즉 잉여가 발생하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 걸렸으리라는 것 역시 누구나 쉽게 짐작하고 인정할 수 있는 그대로이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자들이 발굴하는 선사시대의 수많은 유물들은 실제로 그랬음을 입증하고 있다. 인간이 석기를 만들기까지도 수많은 세월이 흘렀겠지만, 그것이 타제석기(打製石器)였든 마제석기(磨製石器)였던 돌도끼, 돌칼, 돌화살 등등을 가지고 어떻게 잉여를 생산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잉여를 생산할 수 없었던 낮은 생산력, 바로 거기에 인류사 초기에 장기간 지속된 무국가 사회의 비밀이 있다.

그 사회는 착취와 피착취가 없는, 혹은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없는 무계급사회, 즉 원시공산사회였다. 거기에는 억압과 피억압, 혹은 억압자와 피억압자도 없었다. 거기에는 국가도 없었다. 노동을 해도 잉여가 없으니 착취(자)ㆍ피착취(자)가 있을 수, 있을 리 없었고,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없는 무계급 공산사회이니 억압과 피억압,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있을 필요, 있을 리가 없었으며, 따라서 국가가 있을 필요, 있을 리가 없었다.49) 그 사회는 부족이 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노동하며, 생산의 성과, 즉 생산물을 공동으로 분배ㆍ소비하는 공동체 사회, 원시의 공산사회였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게도, 그 원시사회 속에서도 비록 극히 느린 속도였지만, 그리고 끝없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였지만, 보다 효율이 높은 새로운 형태의 도구들, 새로운 재질의 도구들이 만들어지고, 식량 등의 관리ㆍ보존법도 터득해가면서 노동의 생산력이 발전했다. 그리하여 역사의 어느 시점에 이르자 사회적 잉여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잉여가 발생하기 시작하자 무위도식하는 인간들, 착취자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사회가 계급들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거기에 국가가 등장한다.50)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다름 아니라, 피착취자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혹은 피착취자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착취ㆍ피착취의 체제, 그러한 ‘질서’를 유지ㆍ강화하고 영구화하기 위해서!

국가는 이렇게 사회 자체가 계급들로 분열되어 착취자 계급과 피착취자 계급의 대립ㆍ투쟁을 억눌러 그 착취체제를 강화하고 영구화할 필요에서 출현했기 때문에, 주지하는 것처럼, 엥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란 그리하여 결코 외부로부터 사회에 강요된 권력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헤겔이 주장하듯이, “윤리적 이념의 현실성(Wirklichkeit)”, “이성의 형상(Bild) 및 현실성”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특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사회의 산물이다. 그것은 이 사회가 자기 자신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끌려들어가, 자신이 물리칠 힘이 없는 화해할 수 없는 대립물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의 고백이다. 그와 더불어 그러나 이 대립물들, 즉 상반되는 경제적 이해를 가진 계급들이 무익한 투쟁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먹어치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충돌을 완화하고 그것을 ‘질서’의 한계 내에 유지할, 외견상으로는 사회 위에 서는 권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태어났지만, 그러나 그 자체 사회의 위에 서고, 갈수록 그로부터 소외되어 가는51) 이 권력이 국가이다.52)


엥겔스로부터 이 구절을 인용한 후에 레닌은, “이는 국가의 역사적 역할 및 의의에 관한 맑스주의의 기본 사상을 완벽하게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며 이렇게 얘기한다.


국가는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다. 국가는 계급대립이 화해될 수 없는 곳에서 그 때에,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거꾸로 국가의 존재는 계급대립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53) (강조는 레닌.)



3)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회주의적 견해에 대한 레닌의 비판


레닌은, “국가는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라는 것, “그리고 거꾸로 국가의 존재는 계급대립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국가에 관한 이해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점”이라고 규정하면서, “바로 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점에 관해서, 두 개의 주요 노선으로 진행되고 있는, 맑스주의의 왜곡이 시작되고 있다”54)고 말하고 있다.

다소 길긴 하지만, 맑스주의의 그러한 왜곡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거의 그대로 옮기기로 하자.


한편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들의 무게에 눌려, 국가는 계급대립과 계급투쟁이 있는 곳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 특히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국가란 계급들의 화해를 위한 기관이라는 식으로 보이도록 맑스를 “수정”하고 있다. 맑스에 의하면, 계급을 화해시킬 수 있다면, 국가는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존속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용자] 소시민적이고 속물적인 교수나 정치평론가들이, 아주 빈번히 그리고 친절하게 맑스를 언급하면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국가는 실로 계급을 화해시키는 것이 된다. 맑스에 의하면, 국가는 계급 지배의 기관, 즉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관이며, 그것은 계급들 간의 충돌을 완화시킴으로써 이 억압을 합법화하고 영구화하는(perpetuate)55) ‘질서’를 창출한다. 하지만, 소부르주아 정치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질서란 실로 계급들의 화해이며, 한 계급의 의한 다른 계급의 억압이 아니다. 충돌을 완화시키는 것은 계급들을 화해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억압자들을 타도하기 위한 일정한 투쟁수단과 투쟁방법을 피억압계급으로부터 탈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컨대, 1917년의 혁명에서 국가의 의의와 역할의 문제가 즉각적인 행동을, 그것도 더구나 대중적 규모의 행동을 요구하는 실천적인 문제로서 전면적으로 제기되었을 때, 모든 사회혁명당원들(SR)과 멘쉐비끼들은 “국가”는 계급들을 “화해시킨다”는 소부르주아 이론으로 즉각 전락해버렸다. 이들 두 당의 정치가들에 의한 무수한 결의와 논설들은 이 소부르주아적이고 속물적인 “화해”론이 흠뻑 배어 있다. 국가란 대척자(對蹠者)(자신에게 대립하는 계급)와 화해할 수 없는 어떤 특정한 계급의 지배 기관이다라는 것을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혁명당원들과 멘쉐비끼들은 결코 사회주의자들이 아니며 (우리 볼쉐비끼들이 언제나 견지해왔던 점)56),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어법을 구사하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의 가장 뚜렷한 표현의 하나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맑스주의의 “카우츠키주의적” 왜곡은 훨씬 더 교묘하다. 국가는 계급 지배의 기관이라는 것, 혹은 계급대립은 화해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부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을 못 본 체하거나 흐지부지 뭉개버리고 있다. 즉, 만일 국가가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라면, 만일 그것이 사회의 위에 서 있는 권력이자 “갈수록 그로부터 소외되어가는” 권력이라면, 명백히 피억압 계급의 해방은, 폭력 혁명 없이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나아가 지배계급에 의해서 창조되고 이 “소외”의 화신(化身)인 국가권력 기구의 파괴 없이도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 맑스는 이론적으로 자명한 이 결론을 혁명의 제 임무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아주 명시적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 바로 이 결론을 카우츠키는 “망각했고” “왜곡한” 것이다.57)


자못 궁금하다.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 비판”이니, “왼쪽의 교조주의”니, “고색창연한 테제들”이니 하고 떠들며 최신의 이론가, 최신의 실천적 사상가를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인품 좋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레닌의 이러한 “낡은 이념에 기초한 시대착오적”이며 “왼쪽의 교조주의”적인 “고색창연한 테제들”, 소부르주아적이고 속물적인 교수ㆍ지식인 등의 기회주의 비판에 대하여 과연 어떤 고견들을 내놓으실지가! 물론 앞에서 소개한 논쟁에 등장하는 이들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4) 지역에 의한 국민의 구분


전 세계를, 적어도 남극대륙을 제외한 전 세계의 육지와 그 근해를 시작도 끝도 없는 국경선으로 가르고, 그 국경선을 넘나드는 인간과 인간 소유의 물품에 대하여 국경통제를 가하는 것을, 즉 그 입국과 출국을 제한ㆍ허가ㆍ금지하는 것을 우리는 으레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국가란 태고적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국경선과 그 국경선에서의 통제도 태고적부터 존재했다고 부지불식간에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사고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부도(附圖)를 열어 예컨대 우리의 상고대(上古代)의 지도를 보라. 그러면 거기 만주와 반도 일대에, 많은 사람들이 부족‘국가’라고 부르기도 하나 사실은 아직 국가를 형성하기에 이르지 못한 부족연맹체들의 이름들이 부여, 옥저, 예, 맥, 진한, 마한, 변한 … 하고 표시되어 있지만 그들 사이에 국경선은 그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각 연맹체의 집단적 생활근거지를 중심으로 짙고 옅은 점의 집합들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부지불식간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국경선’이, 더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에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다르다. 국가는 일정한 지역을 자신의 영역(領域)으로 삼아 그 안의 주민을 자신의 국민으로 지배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옛 씨족조직(Gentilorganisation)에 비해서, 첫째로, 지역에 따라서 국민을 나누는 것이 국가의 특징이다. … 소속지역에 따라 이렇게 국민을 조직하는 것은 모든 국가에 공통적이다.58)


한편, 지역에 따른 이러한 국민의 조직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엥겔스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 혈족에 의한 옛 조직을 대체하기까지는 아주 힘들고 오랜 투쟁이 필요했다”는 점도 지적해두어야 할 것이다.



5) 무장한 인간의 특수한 부대

   ― 공적 폭력 혹은 공권력


다음으로, 우리가 일상적이다시피 겪어왔고, 또 겪고 있는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청년ㆍ학생들의 시위ㆍ투쟁이나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ㆍ농민의 파업ㆍ투쟁 등이 조금만 격렬해지거나 어떤 대자본 혹은 독점자본 일반의 이익에 위협이 되거나, 대중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미가 보이면, 국가는 으레 ‘공권력’을 투입한다. 즉, 투쟁의 현장에 무장한 전투경찰대를 투입하여 투쟁을 진압하고,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정권의 성립 시기에는 ‘계엄령’ㆍ‘위수령’ 등의 이름으로 아예 탱크ㆍ장갑차 등으로 중무장한 군부대들까지 투입하여 진압하고 위압을 가한 적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대개 그러한 ‘공권력’의 투입, 그에 의한 진압ㆍ억압ㆍ위압을 특정 (독재)‘정권’과 그 정권의 핵심 주체의 ‘반(反)민주적’, ‘반(反)노동자적ㆍ반(反)민중적’ ‘폭거(暴擧)ㆍ폭압(暴壓)’으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판단에 의거하여 규탄하고 투쟁한다. 이러한 판단과 규탄ㆍ투쟁의 밑바탕에 흐르는 사고는 당연히, “정권이 바뀌면, 그것도 ‘민주적’이고, 나아가 ‘친(親)노동자적ㆍ친(親)민중적’ 정권으로 바뀌면, 그러한 ‘독재적’ ‘폭압ㆍ폭거’는 사라진다”는 것이리라. 그러한 위력적ㆍ억압적 공적 폭력의 존재나 노동자ㆍ인민에 대한 그 행사가 국가 그것의 고유한 성격과 기능ㆍ역할의 발휘라는 생각은 좀처럼 안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객관적으로는, 물론 그 ‘공권력’, 즉 공적 폭력이 현실적으로 ‘정권’, 즉 부르주아지 중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혹은 1961년 박정희 등의 쿠데타처럼 때로는 그 권력을 장악하려는 특정 분파의 이익을 위해서, 즉 그 권력의 강화나 장악, 혹은 유지를 위해서 동원되는 일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하는 사람들의 측을 보면, 일부의 사람들, 특히 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잔혹함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겠지만,59) 대개의 경우는 부르주아적ㆍ소부르주아적 국가관, 즉 몰계급론적인 국가관60)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이러한 몰계급론적 국가관에 의하면, 국가란, 특정 계급의 국가, 특정 계급의 지배도구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놓치고 있는 것은, 어떤 특정 ‘정권’이나 그 주체, 즉 ‘집권자’가 그것을 동원하여 ‘폭압ㆍ폭거’를 자행하기 전에 그러한 공적 권력이란 것이 왜, 누구에 의해서 조직되어 있는 것인가, 즉 왜 국가는 그러한 공적 폭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며, 왜 그것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간단히 말하자면, 앞에서 본 것처럼, 국가란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그 표현이다. 즉, 국가란 그 계급대립을, 피억압 계급의 저항과 투쟁, 반란을 억누르고 완화하는 기구이고, 그러한 폭력기구이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인용자] 두 번째 [특징: 인용자]은, 스스로를 무장력으로 조직하는 주민과는 더 이상 직접 일치하지 않는 공적 폭력의 설립이다. 이 특수한, 공적인 폭력이 필요한 것은, [주민이: 인용자] 계급들로 분열된 이후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주민의 무장 조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노예도 역시 주민에 속한다. 9만 명의 아테네 시민은 36만5천 명의 노예에 대하여 단지 특권계급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민군은 노예들에 대한 귀족의 공적 폭력이며 그들을 억압했다. 그러나 … 시민도 역시 억누르기 위해서 경찰대가 필요했다. 이러한 공적 폭력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이 공적 폭력은, 단지 무장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씨족사회에서는 전혀 몰랐던 물적 부속물,61) 즉 감옥과 온갖 종류의 강제시설로도 이루어져 있다. 공적 폭력은 … 계급대립이 아직 발전하지 않은 사회나 벽지(僻地)에서는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내부에서 계급대립이 격심해짐에 따라, 그리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이 강대해지고 인구가 증대함에 따라 공적 폭력은 강화된다.62)


보는 바와 같이, 엥겔스는 군대, 경찰, 감옥 등등과 같은 공적 폭력, 즉 공권력과 그 발동이, 계급대립의 화해불가능성의 산물 및 표현으로서의 국가의 본질적 속성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바로 ‘공권력’, 즉 공적 폭력의 조직ㆍ존재와 그 동원ㆍ행사의 문제는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들의 지배기구로서의 국가의 문제이지, 단지 ‘정권’의 문제, 즉 지배계급 내 분파의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계속> <노사과연>



1) 신윤석 도쿄 측파원,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일 자민당 정조회장 망언”, ≪한국일보≫, 2003. 6. 2.; 아소 타로(麻生太郞)는 그 후 외상(外相), 수상(首相)을 역임하고, 2013년 9월 현재 부수상.



2) “지배 계급의 사상이 어느 시대에나 지배적인 사상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권력인 바의 계급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권력이다. 물질적 생산을 위한 수단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계급은 그와 동시에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또한 정신적 생산을 위한 수단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에 종속되어 있다. 지배적 사상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의 관념적 표현, 사상의 형태로 표현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실로 하나의 계급을 지배계급이게 하는 관계의 관념적 표현, 따라서 이 계급의 지배의 사상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K. 맑스ㆍF.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MEW, Bd. 3, S. 46.); “어떤 시대의 지배적인 관념(Ideen)은 언제나 단지 지배계급의 관념이었다.” (K. 맑스ㆍF. 엥겔스, ≪공산당 선언≫, MEW, Bd. 4, S. 480.)



3) 토마스 홉스 저, 최공웅ㆍ최진원 역, ≪리바이어던(Leviathan)≫(1651), 동서문화사, 2012, p. 173.



4) 같은 곳.



5) 같은 책, pp. 176-77.



6) 같은 책, p. 223. 강조는 인용자의 것이며, 이하에서도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마찬가지이다.



7) 존 록,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1689) (토마스 모어/존 스튜어트 밀/존 로크 저, 김현욱 역, ≪유토피아/자유론/통치론≫, 동사문화사, 2012, p. 288).



8) 같은 책, p. 289.



9) 같은 책, pp. 299-300.



10) 같은 책, p. 300.



11) 같은 책, p. 302.



12) 같은 책, pp. 345-46.



13) 같은 책, pp. 347-48.



14) 같은 책, p. 351.



15) 장-자끄 루쏘,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1762) (장 자크 루소 저, 최석기 역,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동서문화사, 2012, pp. 157-58.



16) [인용자주] “… 본원적으로는 가족이 부족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부족이 혈연관계에 기초한 인류 사회형성의 본원적이고 자연발생적인 형태여서 부족적 기반(羈絆)의 해체가 시작되고 나서 나중에야 비로소 가지가지 다른 가족형태들이 발전했다.”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372의 F. 엥겔스의 각주.)



17) 같은 책, pp. 158-59.



18) 같은 책, p. 161.



19) 같은 책, p. 168.



20) 같은 책, p. 169.



21) 같은 책, p. 190.



22) 같은 책, pp. 238-39.



23) 같은 책, p. 239.



24) “그가 [홉스가: 인용자] 주권론의 근본원리로 이용하고 있는, 인간은 만인에 대하여 이리[狼]다라는 명제에는 봉건적 사회질서에 관한 두 개의 전적으로 다른 해결태도가 총괄되어 있다. 첫째로, 한 신분 내부에서의 지방적 통일체의 구성원들 간의 동업조합적 관계를 제거하고 그것을 자유경쟁으로 대체하는 것이 문제로 된다. 인간의 자연적 적대성이라는 홉스의 서술이 경쟁사회[즉, 부르주아 사회: 역자]에 대응해 있다는 것은 이미 퇴니스[Ferdinand Tönnies]가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프란츠 보르케나우[Franz Borkenau], ≪봉건적 세계상으로부터 부르주아적 세계상으로의 이행. 매뉴팩춰 시대의 철학사 연구(Der Übergang vom Feudalen zum bürgerlichen Weltbild. Studien zur Geschichte der Philosophie der Manufacturperiode)≫, Paris, 1934 [フランツㆍボルケナウ 著, 水田 洋 等 9人 共譯, ≪封建的世界像から市民的世界像へ≫, みすず書房, 1965, p. 551.])



25) “계몽주의 이익사회학의 특징은 계급투쟁을 부인하기 위해서 사회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프란츠 보르케나우, 같은 책, p. 556.)



26) 채만수, “민주노동당 강령 비판”, ≪진보평론≫ 제3호, 2000년 봄, pp. 175-177.



27) 장석준, “이제 출발이다: 민주노동당 강령 논쟁과 우리의 과제”, ≪진보평론≫ 제4호, 2000년 여름, p. 201.; 장 교수는 그 후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에 몸담았다.



28) V. I. 레닌, ≪국가와 혁명≫(1917), Lenin Collected Works, Vol. 25, p. 387.



29) 20세기 사회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쏘련에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과 상태가 어떠하였으며, 소부르주아 반쏘ㆍ반공주의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왜곡ㆍ날조하며 비방ㆍ중상ㆍ모략하고 있는가 하는 한 예의 일단은, 비록 장 교수와는 달리 자신들이 진짜 맑스주의자들이고 진짜 공산주의자들로서의 좌익 공산자의자들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에 관한 것이지만, 채만수, “좌익공산주의자들의 쏘련론 (상) ― 아우프헤벤 저, 오세철 ‘역’, ≪소련은 무엇이었나≫를 중심으로”(≪노동사회과학 제5호, 좌ㆍ우익 기회주의의 현재≫, 노사과연, 2012.) pp. 55-137, 특히 pp. 71 이하를 참조할 것.



30) 장석준, 같은 글, p. 207.



31) 같은 글, pp. 207-08.



32) 장석준, 같은 글, pp. 202-03. 강조는 인용자.



33) 채만수, 같은 글, p. 174.



34) 채만수, 같은 글, p. 173.



35) 같은 글, p. 175.



36) V. I. 레닌, “국가에 관하여. ― 스베르들로프 대학에서의 강의”(1919), Lenin Collected Works, Vol. 29, p. 471.



37) 같은 책, p. 470.; 레닌은 이렇게도 얘기하다. ― “국가의 문제만큼, 부르주아 과학, 철학, 법학, 경제학 및 언론의 대표자들에 의해서, 고의로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혼란되어 있는 문제는 아마 달리 없을 것이다.” (같은 책, p. 472.);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논쟁에서의 ‘반비판’자들 역시 “고의로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이 문제를 혼란시키고 있었던 전형적인 예이다.



38) 같은 곳.



39) 같은 책, p. 471.



40) 같은 책, p. 472.



41) 같은 곳.



42) 같은 곳.



43) 같은 책, p. 473.; “이 문제에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사를, 그 발생과 발전을 대략이라도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과학의 문제에서 가장 확실한 것, 그리고 수많은 세세한 것들 속에서 혹은 엄청나게 다양한 모순적인 견해 속에서 헤메지 않고 이 문제에 올바로 접근하는 습관을 정말로 획득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 이 문제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역사적 연관을 잊지 않는 것, 모든 문제를 소여(所與)의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생했으며 그 발전의 주요 단계들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 발전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어떻게 되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 “이 문제는, 다른 문제 ― 예컨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어떤 조건들이 그것을 발생하게끔 했는가의 문제 ― 처럼, 그 발전 전체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만 비로소 올바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도록 접근할 수 있다.”(같은 곳.)



44) 같은 책, p. 472.



45)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맨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국가가 언제나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같은 책, pp. 473-74.)



46) 우리의 경우 ‘단군 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세우신 지 어언 반만 년’ 하고 배우지만, 그것이 꽤나 과장된 연대기라는 것은 누구나 대개 인정할 것이다.



47) “사람들이 작은 씨족집단들(family groups; Geschlechtsverbände) 속에서 살았고 아직 그 발전의 가장 낮은 단계들에, 야만에 가까운 조건 속에 있었던 원시사회에서는 ― 현대의 문명화된 인간 사회로부터 수천 년 격리되어 있던 시대에는 ― 아직 국가가 존재했다는 징후가 전혀 없다.” (같은 책, p. 474.)



48) “노동은 우선 첫째로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즉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자연소재(自然素材) 그것에 하나의 자연력(自然力)으로서 상대한다. 그 자연소재를 자신의 생활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획득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육체에 속해 있는 자연력들을, 즉 팔이나 발, 머리나 손을 가동한다. 그는, 이 운동에 의해서 자신의 외부의 자연에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의 자연을 변화시킨다. 그는 자신의 자연 속에 잠자고 있는 능력들을 발전시키고, 그들 힘의 운동을 자신의 지배하에 둔다.”(≪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192; 칼 맑스, ≪자본론≫ 제1권 (1), 백의, 1989, p. 217.)



49) “… 그 시대에는 국가가 없었고, 조직적으로 폭력을 이용하고 폭력에 의해서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특별한 기구가 없었다. 국가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구이다.”(레닌, 같은 책, p. 474.) “



50) “국가는 사회가 계급들로 분열되는 곳에서, 또 분열될 때에,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발생할 때에 출현한다.”(같은 곳.)



51) “갈수록 그로부터 소외되어 가는(alienating itself more and more from it; sich ihr mehr und mehr entfremdend)”은 “갈수록 그 사회로부터 멀어져 가고 외적(外的)인 것, 낯선 것으로 되어 가는”의 뜻이다.



52) F.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1884), MEW, Bd. 21, S. 165. (김대웅 역, ≪가족의 기원≫, 아침, 1985, p. 191; 최인호 역,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김세균 감수,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6권 (제1판 제4쇄), 박종철출판사, 2002, pp. 187-88.)



53) V. I. 레닌, ≪국가와 혁명≫(1917), Lenin Collected Works, Vol. 25, p. 387.



54) 같은 곳.



55) 독일어판(Lenin Werke, Bd. 25, S. 399)에는 “강화하는(festigen)”.



56) “우리 볼쉐비끼들이 언제나 견지해왔던 점(a point that we Bolsheviks have always maintained)”는 독일어판(MEW, Bd. 25, S. 400)에는 “우리 볼쉐비끼들이 이미 언제나 입증해왔던 것(was wir Bolschewiki schon immer nachwiesen)”.



57) V. I. 레닌, 같은 책, pp. 387-88.



58) F. 엥겔스, 같은 책, MEW, Bd. 21, S, 165. (김대웅 역, pp. 191-92.; 최인호 역, 김세균 감수, p. 188.)



59) 실제로 국가가 민중적 투쟁을 기획ㆍ주도하는 활동가들을 제압하고 겁박하는, 그리고 그들에게 보복을 가하는 수법의 하나는 그들을, ‘반(反)정권’이 아니라, ‘반(反)국가’ 사범으로 모는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60)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몰계급적’이 아니라 ‘몰계급론적’이다. 그것은 철저히 부르주아지의 이해에 봉사하는 국가관, 즉 철저히 부르주아 계급적인 국가관이다.



61) [인용자주] 아직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던 부족동맹체 시대였던 삼한 사회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도(蘇塗) 얘기를 상기해보라. 그때에는 천신(天神)에 제사지내는 큰 나무 밑인 소도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범죄자를 그 안에 서 있게 하는 것으로 처벌했다지 않은가?



62) F. 엥겔스, 같은 책, MEW, Bd. 21. SS. 165-66. (김대웅 역, p. 192.; 최인호 역, 김세균 감수, pp. 188-89.)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0개의 댓글

연구소 일정

3월

4월 2024

5월
31
1
2
3
4
5
6
4월 일정

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6

일정이 없습니다
7
8
9
10
11
12
13
4월 일정

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0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3

일정이 없습니다
14
15
16
17
18
19
20
4월 일정

1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7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1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0

일정이 없습니다
21
22
23
24
25
26
27
4월 일정

21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2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3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4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5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6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7

일정이 없습니다
28
29
30
1
2
3
4
4월 일정

28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29

일정이 없습니다
4월 일정

30

일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