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서평] ≪자본론≫ 서평 (채만수 번역 ≪자본론≫ 1-1, 1-2, 1-3 분책)

 

박문석 │ 연구위원

 

 

Ⅰ. 왜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가?

 

1. 운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맑스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계급운동의 과학성은 맑스의 이론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그러한 사람들 대부분은 20세기 사회주의혁명의 영웅들을 부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스탈린 부정과 레닌의 부정을, 더 나아가 엥엘스와 맑스를 나누고, 후기 맑스와 청년 맑스를 구분하고 대립시킨다.1) 자칭 ‘맑스주의자’라 스스로를 표방하지만 맑스주의가 무엇인지 이해를 제대로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맑스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중에 넘쳐나는 온갖 잡다한 맑스주의 해설서를 찾는 것보다는 맑스(엥엘스)가 직접 쓴 책을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맑스를 제대로 이해할 때 현실 사회주의운동의 과학성이 담보되어질 것이며,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선동술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혁운동세력의 분열이 극복되고 당건설이 현실화될 것이다.

2. 맑스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는, 법률적 그리고 정치적 상부구조가 그 위에 우뚝 서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형태들이 그것에 상응하는 바의 현실적 토대이다”라고 하였고, 또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고 하였다.2) 경제관계의 변동에 따라 정치판이 춤을 추고 국가권력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현상이나 권력관계 및 국제관계의 변화를 꿰뚫어 보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 토대 분석이 선행되어져야 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타나는 정치・사회적 현상들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정치를 공부하기 이전에 경제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맑스의 여러 정치 서적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맑스의 ≪자본론≫부터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자본론≫은 150여 년 전3), 맑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놓은 책이다. ‘케케묵은 낡은 책’이라는 비난도 있다지만 그 내용은 소름 돋을 정도로 현재를 관통한다.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책이 아니라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자본론≫의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론≫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할 사회변혁의 불씨를 획득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할 것이다.

 

 

Ⅱ. 어떻게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가?

 

3. ≪자본론≫은 혼자서 학습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당할 것이다. 그리고 생소한 개념들과 등장하는 숫자에 머리가 어지러울 것이다. 그래서 ≪자본론≫ 학습을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 몇 장 들여다보고는 책읽기를 포기한다고 한다. 맑스는 ≪자본론≫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학문에는 결코 왕도(王道)가 없으며,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오르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빛나는 정상에 다다를 가망이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본론≫ 읽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신념을 포기하는 것이다. 게으름을 자랑할 일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한번으로 이해될 수 없으니 반복해서 읽고, 혼자서는 곡해할 수 있으니 집단학습을 지향해야 한다.

 

4.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자본론≫ 학습은 우선 철저하고 끈질기고 반복적이다. 필자 또한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자본론≫ 학습에 참가하여 ≪자본론≫을 읽었다. 혼자서 읽기를 시도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학습을 지도하고 밤차로 다시 올라가시는 채만수 선생님의 헌신적인 지도가 있어 미안해서라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발제하고 질문하고, 설명과 토론으로 이어지는 세미나 과정은 학습효과를 높이기에는 좋은 방법이었다. 내용의 방대함만큼이나 세미나 기간은 격주 1회로 3년여에 걸쳐 장기간 지속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연일 바쁜 일정들이었기에 학습일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두지 않았다면 이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자본론≫ 학습을 시작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학습일정을 빠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미나 진도에 맞춰 책을 꼭 읽고서 세미나에 참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고, 발제를 자주 맡는 것 또한 학습효과를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론≫을 공부하면서 ≪노동자교양경제학≫4)을 함께 읽는 것도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자본론≫ 연구와 ≪자본론≫ 세미나를 연구소에서 진행해 오신 채만수 선생님의 강의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자본론≫의 핵심적인 내용을 강의형식을 빌어 알기 쉽게 서술해 놓은 책이기에 읽기도 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또한 현실운동에 영향력을 가진 이데올로그들의 잘못된 이론에 대해서 ≪자본론≫에 근거하여 저자에 의해 수행되는 직접적인 비판들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 대중조직의 간부들이 읽고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론≫ 학습과 병행하여 ≪노동자교양경제학≫을 함께 읽는 것은 필자의 경험상 적극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5. ≪자본론≫은 한번 읽어보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에서도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그리고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이해의 폭이 달랐다. 집중하지 못했던 문장 하나하나가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반복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점이다. 읽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우선 쉽게 이해하는 수준에서 학습하는 것,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앞서 지나쳤던 부분들과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좀 더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자본론≫은 한방에 이해되는 수준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 계속해서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쏘련 사회주의의 몰락에서 보였던, 이론의 수정(수정주의)5)으로 인해 피로써 쟁취한 혁명도 거꾸로 되돌리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대중운동의 지도자들이 학습을 게을리 하고 특히나 ≪자본론≫을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극히 위험한 현상이다.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사회변혁의 올바른 전망을 가지고 대중을 지도해야 할 사람들이 그 ‘전망’을 못 보거나 잘못 보고서 엉뚱한 길로 대중을 이끈다면 그것은 역사적 범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개량주의, 수정주의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큰 해악이었는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합주의와 경제주의 또한 다를 바가 없다.

 

6. 과학적 세계관이나 사회변혁의 무기인 맑스주의의 왜곡과 편협한 이해는 인류사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한다. 쏘련 해체와 청산주의, 기회주의 이데올로기의 근원인 몰 과학과 이론의 수정을 ‘청산’하고 다시 과학의 무기를 들어야 할 때이다. 스탈린, 마오, 트로츠키, 레닌 등에 대해서 그들의 사상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알아야 할 것이며, 그러려면 맑스의 사상에 대한 이해는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

 

7. 2007년 영국의 뱅크런6)으로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공황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자본의 체제위기와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노동자・인민들의 삶의 위기는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시대임을 ≪자본론≫에서 배우자. 맑스는 ≪자본론≫ 3권에서 “노동자의 절대수를 감소시키는 생산력의 발달은 이 생산양식 아래에서는 혁명을 유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산력의 발달은 인구의 다수를 실업자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자본론≫ 학습을 통해서 노동자계급 운동의 과학성을 회복하고 사회변혁의 전망 속에 대중을 조직하고 투쟁해 가야 하겠다.

 

 

Ⅲ. 새로운 ≪자본론≫ 번역서(채만수 역) 소개

 

8. 새로운 ≪자본론≫ 번역서가 나왔다. 채만수 선생님의 번역서7)가 그것이다. 김세균 교수는 ≪노동자교양경제학≫의 추천사에서 저자인 채만수 선생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그는 항상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서서 사회현실을 진단하고 그 현실을 변혁하는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울러 그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해방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진보진영 내부의 제반 이데올로기적-이론적 조류들과도 줄기차게 싸워왔다. 이로 인해 그는 주위로부터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이데올로기적-이론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었지 인신공격 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지금도 계급적 원칙과 대의에 충실한 진보진영 내부의 가장 준열한 논객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정치경제학 연구에 매진해 왔는데 …”

필자는 긴 세월 학습지도를 받아 오면서 채만수 선생님의 이론적 깊이와 흔들림 없는 발걸음에 깊이 감화 받아온 터였다. 그는 ≪자본론≫의 몇몇 다른 번역자들처럼 정작 맑스의 이론을 왜곡하거나, 이론과는 다른 실천 활동으로 ≪자본론≫에 대한 이해부족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계적인 언어 번역자가 아니라, 맑스의 이론을 왜곡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열한 사상투쟁의 전사로서 ≪자본론≫의 번역에서도 그의 완벽성의 추구와 치밀함이 돋보인다.

 

9. 김수행 번역본이 ≪자본론≫ 1을 상/하, ≪자본론≫ 2, ≪자본론≫ 3을 상/하로 나눈 것(총5분책)에 비해서, 채만수 번역본은 ≪자본론≫ 1~3권을 총 13분책으로 나누어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본론≫ 1권은 4분책으로 나누어 출판되며, 지금까지 1권의 1, 2, 3분책이 번역 완료되어 출판되었고 곧 4분책이 출판될 예정이다. 여러 권으로 나누어 출판되기에 책 한권의 부피와 무게가 대폭 줄어들었고, 책의 크기도 많이 작아져서 휴대하기에 수월해 졌다. 그동안 크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며 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번역과 관련해서는, “독일민주공화국(구동독)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 중앙위원회 부설,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편 Karl Marx Friendrich Engles Werke (MEW), Band 23(Dietz Verlag, Berlin, 1972)을 대본으로 하고, 프랑스어판(K. 맑스 교열판), 영어판(F.엥엘스 편집), 일본어판들(마르크스・엥엘스 전집간행위원회 역, 大月書店판; 사키사파 이츠로 역, 岩波文庫판; ≪자본론≫ 번역위원회 역, 新日本出版社판), 최영철・전석담・허동 번역판, 조선로동당사판(도서출판 백의판)등을 참고하면서 번역하였다.”라고 책의 앞부분 ‘일러두기’에서 역자는 전하고 있다.8)

독일어 특유의 표현으로 이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맑스 자신과 엥엘스가 이를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을 참조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역주’로 번역을 하였다. 다른 번역서에서는 볼 수 없는 ‘역주’의 풍부함으로 그동안 답답해했던 부분이 시원하게 해소된다. 신화나 문학작품의 내용이나 주인공들이 간혹 튀어 나올 때 마다 온라인검색의 수고를 해야만 했고, 때로는 검색에서도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이제 그러한 문제도 염려가 없다. 역자는 독자들을 위해 오류를 최소화 하고자 편집까지도 직접하는 수고를 감수하였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외국어에 문외한인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번역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채만수 선생님과 함께 김수행의 번역본으로 ≪자본론≫을 학습을 할 때는 번역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해가 쉽지 않은 복잡한 번역도 상당하여 ≪자본론≫에 통달한 사람의 학습지도가 없다면 많은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그러한 어려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본론≫ 학습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자본론≫을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필자는 혼자 학습하는 것보다 집단학습을 적극 권유한다.

 

 

Ⅳ. ≪자본론≫의 내용 소개

 

10. ≪자본론≫은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을, 2권은 유통과정을, 그리고 3권에서는 자본 운동의 총 과정을 담고 있다. 맑스는 ≪자본론≫이 1859년에 간행된 그의 저서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계속이라고 말하며, 이전 저작의 내용이 제1권 1장에 요약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자본론≫ 1권의 “1장, 특히 상품의 분석을 포함하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라고 ≪자본론≫ 제1판 서문에서 언급하였다. 또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들로부터 생기는 사회적 적대관계의 보다 높거나 보다 낮은 발전정도는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 법칙 그 자체, 철의 필연성으로 작용하며 자신을 관철하는 이 경향이 문제인 것이다”라며,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히는 것이 이 저작의 궁극적 목적이다”고 밝혔다. 그리고 “설령 한 사회가 그 운동의 자연법칙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사회는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법령에 의해 그것을 제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산고를 단축하고 완화할 수는 있다”고 하였다. 맑스는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서 파악”하며, 자본주의사회의 운동법칙을 변증법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철저하게 파헤쳤던 것이다.

 

채만수 선생님의 번역본 1권 1, 2, 3분책에서는 상품의 분석과 화폐, 잉여가치의 생산을 다룬다. ≪자본론≫을 읽다가 의지를 상실하고 책을 덮게 된다는, 맑스의 말대로 가장 어렵다는 부분이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으로 나타나고, 개개의 상품은 그 부의 요소형태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9)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즉, 상품은 쓸모가 있어야 하고,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이기에 교환(판매)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는데, 노동이 지출되는 형태를 말하는 ‘구체적인 유용노동’이 사용가치(질)를, 얼마간10)의 노동이 수행되었는가를 말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가치(량)를 형성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가치이다. 가치의 실체는 인간노동이다.11) “가치로서의 모든 상품은 단지 일정량의 응결된 노동시간일 뿐이다.”12)

상품의 가치크기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그리고 “생산력이 변동하더라도, 동일한 노동은 동일한 시간 동안에는 언제나 동일한 크기의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그 노동은 동일한 시간동안에 서로 다른 량의 사용가치들을” 즉 생산력에 비례해서 사용가치(상품)들을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공급한다.

상품은 교환을 전제로 하고, 교환은 공동체의 경계에서 이루어진다.

 

집단 학습을 하다보면 ‘상품’과 상품이 아닌 것의 구분에 대해 재미있는 토론들이 전개된다. 책으로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쉽게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예를 들면 교환을 전제로 하지 않는 가사노동이 상품인가?, 상품이 아니라면 가사노동의 가치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가사노동이 무가치한 노동이라고 할 때 가사노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주장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등.

 

가치는 인간노동의 응고물, 즉 상품생산에 소요된 노동시간이고, 그것의 형태는 등가물로서 표현된다. “한 상품의 등가형태는 따라서 그 상품의 다른 상품과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의 형태이다.”13) 그리고 등가형태를 독점적으로 장악한 상품이 ‘금’이며, 금이 곧 화폐가 된다. 금=상품=화폐.

상품의 물신적 성격에 대해서 맑스는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단지, 상품형태는 인간에게 그들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들 자체의 대상적 성격으로서, 즉 이 물건들의 사회적 자연속성들로서 반영하고, 그리하여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 역시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사회적 관계로 반영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치환에 의해서 노동생산물들은 상품들, 즉 감각적이면서 초감각적인 혹은 사회적인 물건들로 된다.”14) 고 하였다.

또, “물건의 화폐형태는 그 물건 자체에는 외적인 것이며 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관계들의 단순한 현상 형태에 불과하다” “화폐물신의 수수께끼는 따라서 단지 현저해진, 눈을 현혹시키는 상품물신의 수수께끼에 불과하다.”15) 땅속에서 나오자마자 모든 인간노동의 직접적인 화신이 되는 화폐의 마술이 다름 아닌 상품의 물신성에서 연장되는 화폐물신이라는 점을 맑스는 강조한다.

이에 더해 맑스는 “현실 세계의 종교적 반영은 무릇, 실제의 일상생활의 관계들이 인간 상호 간의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성적인 관련들을 인간들에게 나날이 투명하게 표현할 때에야 비로소 사라진다”고 하며, “사회적 생활과정의, 다시 말해서, 물질적 생산과정의 자태는, 그것이 자유롭게 사회화된 인간들의 산물로서 인간들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 하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신비한 운무를 벗는다”.16) 즉, 공산주의(사회주의)사회가 되면 그러한 물신성이나 신비성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이렇게 내용 중에 간혹 공산주의사회에 대한 상이 언급되면 살짝 가슴 떨리는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책읽기의 묘미이다.

 

제3장, 화폐 또는 상품의 유통에서는, 상품-화폐-상품(W-G-W), 즉 판매와 구매로 형태변환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형태변환이 “판매와 구매의 대립으로 분리됨으로써, 생산물교환의 시간적・장소적・개인적 한계들을 타파한다”17)고 하였다. 또 이러한 분리가 일정한 점까지 진행되면, 통일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상품변태의 대립들 속에서 맑스는 “공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폐유통에 대해서는 “지폐의 발행은 그것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금(또는 은)이 현실적으로 유통하지 않으면 안 될 량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또 “지폐가 만일 그 한도를, 즉 유통할 수 있을 같은 명칭의 금주화의 량을 초과하면 … 지폐는 상품세계의 내부에서는 다만 그 내재적인 법칙들에 의해서 규정된 금량만을, 그리하여 또한 오로지 대리할 수 있는 금량만을 표시한다.”고 하여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언급한다.18)

화폐의 기능 중 지불수단으로서의 기능은 하나의 직접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데, “지불들이 상쇄되는 한, 그것은 단지 관념적으로 계산화폐 또는 가치의 척도로서 기능할 뿐이다. 현실의 지불이 이루어져야 하는 한, 그것은 유통수단으로서, 즉 물질대사의 단지 일시적・매개적 형태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개별적 화신, 즉 교환가치의 자립적 현존재, 즉 절대적 상품으로서 등장한다. 이러한 모순은 생산・상업공황의, 화폐공황이라고 불리는 순간에 폭발한다. 이 공황은, 지불들의 연쇄와 그 지불들의 상쇄를 위한 인위적 제도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는 경우에만 발생 한다”19)며 오로지 상품으로서의 ‘금’만이 진짜 화폐이자 ‘세계화폐’임을 말하고 있다.

 

4장. 상품유통의 직접적인 형태는 W(상품)-G(화폐)-W(상품). 즉, 구매를 위한 판매이다. 그러나 자본의 일반공식은 G-W-G. 곧, 판매를 위한 구매이다. 자본으로서의 화폐의 유통은 구매로 시작되어 판매로 끝난다. 화폐는 단지 선대될 뿐이다. 양극이 화폐인 만큼 그 차이는 양적 차이이며, “최초에 선대된 화폐액에 어떤 증가분을 더한 것과 같다. 이 증가분, 즉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라 부른다. 따라서 최초에 선대된 가치는 유통에서 자신을 유지할 뿐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것은 자신의 가치크기를 바꾸어 어떤 잉여가치를 첨가한다. 즉, 자신을 가치 증식한다. 그리고 이 운동이 그것을 자본으로 전화 시킨다.”20) 맑스는 여기에서 최초로 잉여가치의 개념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등가교환을 전제로 한 자본의 일반 공식에서 단지 유통 또는 상품교환만으로는 어떤 가치도 창조할 수가 없다. 잉여가치의 형성은 유통의 배후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통영역 내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유통영역 내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문제의 조건들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21)

 

비밀은 “사용가치 자체가 가치의 원천인 독특한 속성을 가진 상품, 그리하여 그 현실적인 소비 자체가 노동의 대상화, 따라서 가치 창조인 상품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데, 그 상품이 바로 ‘노동력 상품’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따라서 또한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된다.”22) “노동력의 가치는 결국 일정량의 생활수단의 가치로 귀착된다.”,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 노동자들의 자식들의 생활수단을 포함하며 … 숙련과 재능을 획득하도록 … 이 습득비는 …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가치들의 범위에 들어간다.”23) 이러한 비용이 연초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조사 발표하는 ‘표준생계비’이다. 노동력상품의 원가가 표준생계비일진데, 매년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은 자본이 쳐놓은 프레임에 갇혀 최저임금 몇 푼을 가지고 실랑이질을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노동력의 가치의 최후의 한계, 즉 최저한계를 이루는 것은, 그것이 매일 공급되지 않으면 노동력의 담지자, 즉 인간이 자신의 생활과정을 갱신할 수 없는 어떤 상품량의 가치, 따라서 육체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생활수단들이 가치이다. 만일 노동력의 가격이 이 최소한까지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가치 이하로 떨어지는 것인바, 왜냐하면 노동력은 그렇게 되면 위축된 형태로밖에는 유지될 수도 발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24) 최저임금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올해는 민주노총에서 아예 표준생계비의 발표를 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임금정책의 과학성의 포기인 것일까? 민주노총의 정책담당자들이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 보았다면 임금정책을 둘러싼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제발 ≪자본론≫만큼은 꼭 읽어보고 노동운동에 올바로 헌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5장에서는 노동과정으로서 사용가치의 생산과 가치증식과정으로서 잉여가치의 생산을 다룬다. 맑스는 노동을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과정”으로 정의하며, 노동을 “오로지 인간에게만 속하는 형태”로 전제한다.25) 기계도 노동을 한다거나 역축도 노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본론≫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다. 노동은 오직 인간만이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음을 기억하자.

노동과정은 사용가치들을 생산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활동이다. 자본가는 자신이 구매한 노동력의 담지자인 노동자로 하여금 노동을 통해서 생산수단들을 소비하게 한다. 그렇게 생산된 생산물은 자본가의 소유물이지,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이 아니다.26)

 

“상품 그 자체가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생산과정은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며, “어느 상품이나 그 가치는 그 사용가치에 물질화 되어있는 노동의 량에 의해서, 즉 그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다.”27) 따라서 “이 생산물에 대상화된 노동을 계산해야 한다.”고 맑스는 말한다.

“가치형성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을 비교해 보면, 가치증식 과정이란 어떤 일정한 점을 넘어 연장된 가치형성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자본에 의해서 지불된 노동력의 가치가 새로운 등가물에 의해서 대체되는 점까지만 지속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가치형성과정이다. 가치형성과정이 이 점을 넘어서 지속된다면, 그것은 가치증식과정이 된다.” 자본이 원하는 것이 바로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가치증식과정이다.

 

제6장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을 다룬다. 가치가 변하지 않고 생산물에 그대로 이전되는 생산수단들의 가치를 ‘불변자본’이라 하고, 일정량의 노동을 첨가함으로써 노동대상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는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자본 부분을 ‘가변자본’이라 한다. 가변자본은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그것을 넘어서 어떤 초과분, 즉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이 개념 또한 오로지 맑스의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규정적 목적은 바로 이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7장에서는 잉여가치율을 다룬다. 가변자본이 가치증식된 비율은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m/v)에 의해서 규정되고, 가변자본의 이 비율적 가치증식, 즉 잉여가치의 비율적 크기를 잉여가치율(착취도)이라고 부른다. 잉여가치부분을 자본은 ‘이윤’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을 합한 자본의 총액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다. 따라서 이것은 가변자본(임금)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는 높은 착취도를 은폐한다.

가변자본 부분을 재생산하는 노동을 ‘필요노동’이라고 하고, 이것은 임금으로 지출되는 부분(지불노동)이다. 필요노동을 넘어서는 노동을 ‘잉여노동’이라 하고 이것은 부불노동이라고도 부른다. 맑스는 “이 잉여노동이 직접생산자, 즉 노동자로부터 착출되는 형태만이 경제적 사회구성체들을, 예컨대, 노예제 사회를 임금노동의 사회로부터 구별한다.”고 하였다.28)

 

노동자들은 하루하루의 노동력 재생산비용(임금)을 표현하는 필요노동의 제공만으로도 임금에 대한 등가를 치루는 것이기에 잉여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본가는 최대한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양측 모두가 똑같이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서 확증되는 권리 대 권리라고 하는 하나의 이율배반이 발생한다. 동등한 권리 대 권리 사이에서는 힘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는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들을 둘러싼 투쟁―총자본가, 즉 자본가계급 대 총노동자, 즉 노동자계급 간의 투쟁―으로서 나타난다.”29)

제8장에서는 노동일에 대하여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자본론≫ 서술 당시의 참혹한 노동실태의 구체적인 폭로와 더불어 공장법의 제정 등 표준노동일을 둘러싼 투쟁들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취득되는 ‘절대적 잉여가치’에는 한계가 있기에 자본은 생산력을 높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다시 말해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여서 부불노동(잉여노동)을 늘리려 한다. 맑스는 노동생산력의 증대에 대해서 “무릇 어떤 상품의 생산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그리하여 보다 소량의 노동이 보다 대량의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노동과정의 어떤 변화를 의미한다.”30)고 정의한다. 생산력 증대로 저렴해진 상품은 당연히 노동력 재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그만큼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그것은 곧 상대적 잉여가치의 확대로써 자본의 이윤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자본의 경쟁은 생산력 증대를 통한 ‘특별잉여가치’의 획득에도 집중된다. 이것은 동종의 상품을 보다 값싸게 생산해서 같은 가격에, 또는 조금 싼 가격에 판매하여 이윤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으로 협업(11장), 분업과 매뉴팩춰(12장), 기계장치와 대공업(13장)을 다루고 있다.

 

13장에서는 공장법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제한되자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착취가 집중됨을 볼 수 있다. 또한 기계제 대공업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은 “시장의 공급과잉을 야기하고, 그들 시장의 수축과 함께 마비상태가 나타난다. 산업 활동은, 중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및 침체라는 일련의 시기들로 전화된다.”31)고 산업순환을 설명한다. 이 장에서는 끔찍한 아동노동의 실태들이 구체적으로 폭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곧 발행될 ≪자본론≫ 1-4 분책에 담겨질 것이다.

 

 

Ⅴ. 당장 자본론 학습을 시작하자

 

자본론의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하다. 반드시 책을 정독하고, 가능한 집단학습을 통해서 구체적인 이해를 득하시기를 바란다. 서울32)과 대구에 이어 부산33)지역에서도 채만수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자본론≫ 세미나를 10월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는 전국 어디에서든 ≪자본론≫ 학습을 위한 모임이 구성되고 지원이 요청된다면 기꺼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도 그래왔듯이 ‘혼란과 반동의 시기에 계급적 원칙에 입각한 정세 분석과 이론의 보급을 통해 노동 운동을 한 단계 진전시키고자 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헌신적인 지원은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자본론≫ 학습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지금 과연에 문의해 보시라.                                     노사과연

 


 

1) 트로츠키주의자: 레닌까지만 인정하고 스탈린부터는 부정, 좌익공산주의자: 맑스까지는 인정하나 레닌부터 부정, 신좌파: 초기 맑스까지는 인정하나 후기 맑스를 분리하여 부정함.

 

2) 칼 맑스, ≪자본론≫ 1-1. 채만수 역. 노사과연, p.142

 

3) 1867년 ≪자본론≫ 제1판이 맑스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이후 1872년에 제2판이, 1872~1875년에는 연속된 분책들로 프랑스어 번역판이 출판되었다. 1890년 엥엘스에 의해 자본론 1권의 독일어 제4판이 맑스의 지시들에 기초해 본문과 각주들을 최종적으로 교정하여 출판하였으며, 이 독일어 제4판은 채만수 번역본 제1권의 판본의 기초가 된다.

 

4)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노사과연.

 

5) 후르시초프 수정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 폐기, 계획의 축소와 시장의 확대, 이윤체계의 도입과 확대 등.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와 관련된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다.

 

6) 2007년 9월13일 영국 노던록 은행에서의 무더기 예금인출사태. 단 이틀만에 예금 20억 파운드(약 3조7천억원)가 빠져나가면서 은행은 몰락했다.

 

7) 노사과연 출판.

 

8) 칼 맑스, ≪자본론≫ 1-1. 채만수 역. 노사과연

 

9) 칼 맑스, ≪자본론≫ 1-1.채만수 역. 노사과연. p.63

 

10) 시간을 말한다.

 

11) 인간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것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계나 소와 말에 의한 것 등.

 

12) 칼 맑스, ≪자본론≫ 1-1. 채만수 역. 노사과연, p.71

 

13) 같은 책, p.98.

14) 같은 책, p.126.

15) 같은 책, p.160.

16) 같은 책, p.139.

17) 같은 책, p.192.

18) 같은 책, p.213.

19) 같은 책, p.232.

20) 같은 책(1-2분책), p.252.

21) 같은 책, p.277.

22) 같은 책, p.284

23) 같은 책, p.287.

24) 같은 책, p.288

25) 같은 책, p.298

26) 같은 책, p.311

27) 같은 책, p.313

28) 같은 책, p.361

29) 같은 책, p.389

30) 같은 책, p.524

31) 같은 책, p.743

 

32)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서울 동작구 본동 435 진안상가 나동 2층. 전화: 02-790-1917

 

33)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부산지회: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대로 703번 라길 22-1. 전화: 010-5570-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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