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한(조선)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하여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한(조선)반도의 현 정세에서 대결과 대화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그동안 대결과 대화의 교차를 보여 왔다. 이북이 핵실험을 하고 핵무력의 완성에 다가설 때 대결이 가장 극심했다. 이후 대북제재의 강화가 이루어졌으며 그런 가운데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대화가 시도되었다. 대결과 대화라는 상반된 양상의 지속적인 교체가 현재의 한(조선)반도 정세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2019년 10월 현재 북-미 간에는 대화가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이북과 미국은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 즉, 이북에서는 자신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필요한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전략적 목표로 갖는데 반해 미국은 이북의 핵의 제거를 통한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의 유지, 강화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대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투쟁의 형식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이북에 대해 각종의 경제적 제재를 유지하고 있고 또 올해는 한-미 군사훈련을 재개했다. 이에 대해 이북은 반발하면서 미국이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셈법, 즉, 상이한 전략적 목표를 수행하는 전술의 차이로 인해 대화의 성립 자체가 녹녹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대결과 대화가 교체되는 양상은 역관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북의 핵무력 완성, 그리고 그에 따른 국제적 지위의 상승,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동맹에 가까운 연합 등이 미국이 상대해야 하는 이북의 현실적 모습이다. 그리고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결하면서 이북을 상대해야 하는 조건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북과 미국의 대결에서 역관계가 상대적으로 대등해지는 순간에 대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통해 이북이 약화되기를 의도하고 있지만 대북제재를 통해서 이북을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 입증되었다. 이북은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자력갱생하면서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일정한 경제적 협력을 획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북이 제재에 따른 어려움으로 붕괴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거나 아니면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데 군사적 공격은 이북의 핵보유로 인해 위험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은 군사력으로 이북을 직접적 침략하기 보다는 압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대화밖에 없는데 양측의 전략적 목표가 근본적 차이를 갖는다는 점에서 대화를 통한 합의의 도출은 결코 녹녹한 것이 아니다. 즉, 이북과 미국의 대화는 투쟁의 또 하나의 형식이며 철저히 힘과 힘의 대결을 통한 입장의 관철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향후에도 대결 국면과 대화의 국면은 교차할 가능성이 크며 그 과정에서 이북과 미국이 상호간에 대한 합의의 폭을 서서히 확대해 갈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미간의 대화 혹은 대결은 단순히 양자 간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이북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 이북에 대항하는 미국의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정권 출범 초기부터 한-미 동맹에 기초한 한(조선)반도 평화를 천명해 왔다. 그러나 한-미 동맹은 한국 민중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이북으로까지 확장하겠다는 공언에 다름 아니다. 또한 한-미 동맹은 중국-러시아 블록에 대항하는 기제라는 점에서 즉, 일종의 제국주의 동맹이고 또한 전쟁 수행을 내포하는 군사적 동맹, 전쟁동맹이라는 점에서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는 그 자체로 모순이며 남-북 민중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는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조선)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한-미 동맹의 분쇄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 미제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적 지배를 종식시키고 한국 사회를 자주적 사회로 만들어 낼 때 한(조선)반도의 참된 봄, 평화는 가능할 것이다.

 

 

2.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구도

 

북-미간의 대결과 대화의 과정과 그 귀결 그리고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의 전망은 양자 간의 고립적인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관계, 그 전략구도의 변경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조선)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전략구도는 무엇인가?

한(조선)반도 자체만을 놓고 보면 북-미 간의 대결이 가장 주요한 것이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을 결정하는 주요한 관계는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라는 점은 쉽사리 알 수 있다. 세계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무역관계에서 시작하여 외교적 대립, 남중국해 등에서의 군사적 대립, 홍콩과 대만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 양상은 한(조선)반도의 평화의 문제에 일정하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으로 북-미간의 대결과 대화도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전략구도는 중국과 미국의 대결을 축으로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블록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상하이 협력기구에는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과의 관계를 중시했으나 최근 중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동방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한-미-일 동맹을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호주를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나아가 중국과 대립하는 인도를 대(對) 아시아 전략의 한 축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아시아-태평양 전략으로써 중국에 대항하고 나아가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미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제국주의이기를 멈추지 않는 한 동아시아의 이러한 정치적 지형, 전략적 대결 구도는 변화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사실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회주의였던 국가, 사실상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국가로서 미국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이다. 미국이 이들 국가와 대결하는 것은 상호 협력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적 본성에 따라,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잃지 않기 위해 협력이 아니라 대결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조선)반도 평화의 획득은 열강들의 대결 구도 속에서 또한 전략적 구도의 변동, 제국주의 질서의 변동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한(조선)반도 평화는 동아시아를 둘러싼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약화의 결과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한(조선)반도 평화를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 헤게모니에 맞설 것을 요구하며 그러한 투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제국주의 질서의 변동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중국-러시아 블록과 한-미-일-호주-(인도)의 동맹의 대결구도에서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의 한-미-일-호주 동맹으로부터 이탈과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의 극복과 자주성의 회복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지금 일정하게 틀지워진 전략적 구도라면 그에 더하여 중요한 한 가지 조건은 세계경제 위기의 격화 문제이다. 세계 대공황이 재격화된다면 동아시아의 전략구도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세계의 각국들, 동아시아의 각국들은 경제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고 이때 제국주의 세력은 전쟁위기를 격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한국은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로 인해 이러한 전쟁위기에 독자적으로 맞서 대응할 가능성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제국주의의 전쟁 도발을 규탄하는 한국 민중의 반전평화 투쟁을 조직하고 그러한 투쟁을 동아시아 각국 민중의 연대로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이 성공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누가 더 많은 식민지, 세력권, 이권을 가질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육에 반대하는 투쟁이 그러한 살육을 야기하는 지배계급을 향하여 창끝을 겨누면서 짜르체제의 전복 그리고 그에 연속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의 쟁취,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지금 만약 미-일 등의 제국주의 세력과 한국의 지배계급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기를 격화시키고 전쟁을 도발하는 길로 간다면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전쟁을 도발하고 야기하는 세력, 그 근원을 타격하는 길로 나아가야 하며 광범위한 반전평화투쟁을 통해 전쟁위기를 지배계급의 위기로 전화시키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3. 전쟁위기의 근원은 무엇인가

 

레닌은 일찍이 “우리는 계급이 없어지고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않고서는 전쟁도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1)고 말한 바 있다. 레닌의 이러한 언급은 현대의 전쟁이 계급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 제국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자본의 수출, 그에 따른 이권의 확보, 종속국의 획득,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지배를 위해 수행되고 있다. 즉, 현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든 이후 제국주의 세력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닌 지배를 원하며 세계 모든 곳에 대한 지배를 위해 전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은 누가 더 많은 이권, 지배영역을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레닌이 제국주의의 소멸, 계급의 소멸을 전쟁 소멸의 조건으로 언급한 것은 타당하다.

물론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도 전쟁은 있었다. 그 당시의 전쟁은 이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씨족과 종족의 생존을 위한 조건의 확보의 성격이었다. 그런데 사적 소유가 발생한 이후부터 그리하여 사회가 노예와 노예주로 계급 분열된 이후부터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서 일상사가 되었다. 전쟁은 자본주의가 발생한 이후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번해졌고 대규모화되었다. 자본은 세계의 모든 곳을 자신의 원료공급지와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쟁의 수단을 사용하였고 20세기 제국주의 단계에서 전쟁은 세계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전쟁을 향한 열망을 제어한 것은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여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이후부터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 기도는 견제를 받게 되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외정책 중의 하나로 평화 공존을 제창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은 억제되었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민중들의 반전투쟁이 고조되기도 했다.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지금 사실 약소국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대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이라크, 시리아 등의 참상은 전쟁에 노출된 민족과 민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나라들이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것은 현대의 전쟁의 성격과 그 원인 그리고 그에 대한 올바른 대응방향에 대해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고전적 저작인 ≪전쟁론≫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계속에 지나지 않는다.”2)라고 갈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레닌 또한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파악하며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을 전쟁에 대한 과학적 입장이라고 승인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현대의 전쟁은 현대의 정치, 즉, 제국주의 정치와 그에 맞서는 저항의 정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나 시리아 등의 비극은 제국주의 정치에 맞서는 과학적인 저항의 정치를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있어서 정치는 전쟁의 전략적 목표를 결정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는 전쟁위기를 야기하고 전쟁을 도발하는 제국주의의 정치, 지배계급의 정치에 맞서는 무기로서 ‘정치의 연속으로서 전쟁’이라는 명제를 파악해야 한다. 제국주의 세력이 전쟁을 야기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신)식민지 혹은 세력권의 확보, 원료의 확보, 헤게모니의 유지, 확장 등등 제국주의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전쟁을 도발한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불만, 계급대립을 호도하고 그러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도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는 전쟁위기를 야기하는 제국주의 세력, 지배계급의 의도, 모순을 폭로하고 저항의 정치를 조직하여 광범위한 민중을 집결시키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즉, 전쟁을 야기하는 정치를 타격하여 전쟁 위기를 지배계급의 위기로 전화시켜 낼 때 전쟁 위기는 제어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의 전쟁과 정치에 있어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제국주의 정치, 지배계급의 정치를 타격하는 것을 통해 반전 투쟁을 조직해 갈 수 있다. 그런데 한(조선)반도에 있어서 전쟁과 정치의 문제는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로 인해 보다 복잡해진다. 미 제국주의의 힘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미 제국주의가 세계적으로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신식민지 혹은 종속국의 지배계급과의 동맹을 통해서이다. 한(조선)반도의 경우 미 제국주의는 한국의 지배계급인 한국의 독점자본가 계급과의 동맹을 통해서 한(조선)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나아가 그 동맹, 한-미 동맹을 통해 전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 정치와 전쟁의 기본 골간이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 전쟁위기에 반대하는 길, 전쟁의 참상을 방지하기 위한 길은 단 하나, 한-미 동맹을 타격하고 분쇄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는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라는 구호가 얼마나 헛된 것이고 기만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정치의 영역에서, 정치적 활동을 통해, 지배계급과 그 제국주의 동맹을 분쇄하는 것을 통해 전쟁에 맞설 수 있다.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는 한국에서 이미 70여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왔으며 매우 고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는 미국과 중국과의 대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힘은 유한하며 또 일정하게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 지배의 성격과 메커니즘을 정확히 인식하고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를 용인하고, 나아가 필요로 하는 한국의 지배계급과 그 국가권력에 맞서는 것을 통해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전쟁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미제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 지배의 메커니즘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러한 투쟁을 동아시아 전략구도라는 조건에서 수행해 나가는 것, 나아가 이러한 투쟁을 동아시아 각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과의 연대로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기에 맞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대공황의 재격화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첨예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그 귀결로서 한(조선)반도 전쟁위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상호간의 긴밀한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첨예화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경제위기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변동을 초래하고 있으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선제적으로 헤게모니 쟁탈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동아시아 정세를 격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아시아 정세가 격화되어 갈 때 그 끝자락에서 전쟁 위기가 폭발할 가능성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제국주의 세력의 정치와 전쟁 위기 야기에 맞서면서 전쟁 위기를 지배계급의 위기로 전화시키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4.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의 길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문제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조선)반도는 분단과 한국전쟁 이래 첨예한 대결의 장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전쟁 위기국면과 대화국면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조선)반도 평화의 문제가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의 약화, 평화세력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길은 험난하고 전망은 명확하지 못한 상태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한(조선)반도는 미 제국주의의 억압에 남-북 민중이 시달리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한(조선)반도의 남쪽은 계급의 문제가 첨예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압도적 대중이 원하고 있는 평화,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전략구도에서 논의되고 있는 평화는 계급대립의 철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평화의 문제에 포함되지 않으며 따라서 그것은 계급적 억압을 받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한(조선)반도에서의 평화,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전술적 성격을 가진 평화와 전략적 성격을 가진 평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전술적 성격의 평화는 일차적으로 전쟁위기를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화국면의 재개와 지속으로 인해 획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성격의 평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기의 근원을 없애고 남북 상호간의 적대를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 제국주의의 한(조선)반도에서의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조선)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야기하는 근원인 한-미 동맹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평화에 대한 많은 것들은 평화의 전술적 성격과 전략적 성격을 혼동하고 있으며 한(조선)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전략적 성격의 평화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전술적 성격의 평화는 이북의 핵무력의 존재에 의해, 그리고 반전평화투쟁으로 전화될 수 있는 남측 민중들의 평화의 요구에 의해 일정하게 담보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략적 성격의 평화, 체제로서 평화에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고찰해 보자.

한(조선)반도에 평화가 체제로서 구축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한(조선)반도 전쟁상태의 종식 선언, 북-미 간의 평화협정, 수교 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소위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다. 절차의 진행과 더불어 이북의 핵을 제거하는 것이 남측 정부와 미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형식적 절차들이 실질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남-북 분단체제의 제거의 전망, 미군의 철수, 한국에서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의 종식이 필요하다. 그 선결조건으로서 한-미 동맹 혹은 한-미-일 동맹으로부터 한국의 이탈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조선)반도 평화가 운위되면서도 단 하나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지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권은 한-미 동맹에 기초한 한(조선)반도 평화라는 제국주의적 정책, 기만적인 정책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 결과 평화의 문제가 전술적 성격을 넘어 전략적 성격으로까지 발전하기에는 산 넘어 산인 형국이다.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끊임없는 군사적 대치와 대결 등이 지금까지의 한(조선)반도의 역사이다. 이 대결의 가장 커다란 근원인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의 종식 문제는 실질적 평화, 평화체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바로 이 점에서 문재인정권의 기만적인 한(조선)반도 정책을 넘어서는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반전평화투쟁으로 한(조선)반도 정세에 개입하고, 나아가 전략적으로는 미군철수 등을 비롯한 미제의 신식민지 지배 종식을 위한 투쟁이 평화의 전략적 해결을 위해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의 문제가 전술적 성격을 넘어서서, 전쟁위기의 근원을 제거하는 전략적 성격의 평화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체제로서 평화가 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의 한-미 동맹에 기초한 평화라는 기만적 정책을 넘어서는 전략의 수립이 요구된다. 그것은 남-북간 대결의 종식과 분단체제의 극복의 전망, 한-미 동맹의 분쇄, 미군의 철수, 미제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 지배의 종식 등을 내용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의 자본가계급이 아닌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몫이 될 것이다.

 

 

5. 평화의 문제에 대한 계급적 태도

 

전쟁위기와 대화, 대결과 대화의 반복을 경과하고 있는 지금,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평화의 문제에 대한 전략적 관점, 계급적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 언뜻 평화의 문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당연한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상 수많은 전쟁은 결코 저절로 일어난 적이 없으며 대부분 지배계급의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조직되고 동원된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평화는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획득되고 공고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평화의 문제에 대해 그 실질, 내용의 문제에 대해 접근해 보자.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흔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이 없는 공허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 사회에서는 각 계급 세력이 생각하는 평화는 그 실질에 있어서, 내용에 있어서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먼저 제국주의 세력은 자신의 제국주의 헤게모니가 유지되고 확장되는 것을 평화라고 본다. 현재의 한(조선)반도 정세에 있어서는 이북의 핵의 제거가 곧 평화라고 보는 것이 미 제국주의의 평화에 대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는 이북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굴복에 다름 아니며 한(조선)반도 남-북 민중의 평화에 대한 염원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제국주의의 경우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논의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다. 북-미 간의 대화를 이간질하고 남-북 간의 대결을 부추기고 남측에 대해서는 최근의 무역분쟁에서 보듯이 제국주의적 억압을 가하려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있어서는 남-북간의 대결 구도, 분단체제가 공고화되는 것이 평화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지배계급, 독점 자본들에게 있어서 한(조선)반도 평화는 무엇인가? 이들의 바람은 문재인 정권에 의해 정확히 표현되고 있는데 ‘평화가 곧 경제이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즉, 미 제국주의와 연합하여 이북의 핵을 제거한 후 이북의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침식하면서 자본의 시장을 북측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이 한국의 지배계급, 독점자본들이 생각하는 한(조선)반도 평화이다.

그리고 소부르주아 평화주의는 ‘투쟁’이 빠진 평화에 대한 소망을 의미한다. 이들은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관점이 없으며 평화가 계급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한다는 생각이 없다. 경건하게 평화를 소망하고 외치면 평화가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위기에 맞서는 반전평화투쟁은 전쟁을 의도하고 기획하고 조직하는 세력들을 폭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전쟁 위기의 근원을 타격하는 투쟁! 이 바로 반전 평화투쟁의 실질적 내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부르주아 평화주의는 평화를 외치되 제국주의와 지배계급에 맞서는 것을 회피하는 것을 자신의 내용으로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한(조선)반도 평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반전평화투쟁에 있어서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의 전쟁기도를 폭로하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반대하는 실질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며 전쟁위기를 지배계급의 위기로 전화시키는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술적 평화의 문제라면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한(조선)반도에서 평화를 전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전쟁의 근원인 미제국주의의 한국에 대한 신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키고 한-미 동맹을 분쇄하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전략적 평화,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내용이다. 전략적 평화,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는 이와 같이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고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체제 극복의 전망을 수립하고 남-북 간의 적대의 종식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가 무엇인가, 한(조선)반도 평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계급 세력은 천양지차의 입장 차이가 있다. 요컨대 그것은 제국주의와 자본의 헤게모니의 확대 그리고 자본의 시장의 확대인가, 아니면 전쟁위기의 종식, 제국주의 억압의 종식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전쟁 위기는 계급적 억압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총알받이로 전쟁에 끌려가야 한다는 두려움, 전쟁분위기로 인한 자본의 압제의 증대,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공공연한 증대 등등 전쟁 위기는 노동운동이 숨 쉴 공간을 박탈한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누구보다도 먼저 평화를 원하며 기꺼이 반전평화투쟁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는 소박한, 경건한 바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듯이 평화는 정치의 산물인 것이며 어떠한 정치를 수행하는가에 따라 어떠한 평화가 주어지는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마에 총구를 겨누는 제국주의적 평화인가, 아니면 억압과 착취가 없는 진정한 민중의 봄으로서 평화인가가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어떠한 정치투쟁을 수행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정리를 하면 한(조선)반도 평화의 문제는 첫째, 미-일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둘째, 평화에 대한 계급적 태도 수립을 통해 반전평화투쟁의 실질적, 계급적 내용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의 전략구도, 국제질서의 변동을 조건으로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독립적인, 문재인 정권의 기만적인 대북 정책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한(조선)반도 정책, 전략노선을 정립해 가야 할 것이다.  노사과연

 

 


 

1)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레닌 전집 60권, 양효식 옮김, 아고라 출판사, 2017, p.29

 

2)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일조각, 1990, p. xvii.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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