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자계급의 전술적, 전략적 과제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를 둘러싼 제 계급 세력들의 각축

 

세계경제 위기와 한국자본주의 위기의 전개 양상

 

현재 한국경제는 수출증가율의 지속적 저하와 물가에서 마이너스 즉, 디플레이션 국면을 보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디플레이션 현상은 일본에서 경제의 장기침체에서 나타났던 현상과 동일한데 이는 한국 경제가 일본과 같이 장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을 낳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구매력의 부족,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인데 자본가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형적인 경제공황의 전조를 가리키는데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국가의 역할로 인해 공황이 폭발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현상하는 일반적인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경제의 위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 침체와 맥을 같이 한다. 즉, 세계 경제 자체가 위기 국면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고 일정 단계에 가면 폭발적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세계 경제의 주요 세력인 중국, 유럽, 미국, 일본 등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는 듯했던 미국 경제는 금리인상을 중단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은행을 압박하여 금리를 인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 경제의 기관차라 했던 독일 경제는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어 유럽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고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더욱이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는 유럽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정치적 현상은 경제에 반작용하여 유럽 경제 전체, 그리고 영국 경제에 대해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미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인해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데 국가자본주의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버티고 있으나 생산과 투자, 소비, 수출 등에서 일정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세계 주요 국가들은 경제 침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2007년의 금융위기, 세계대공황의 발발 이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금 세계 경제 전체가 경제공황의 재격화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경제는 이러한 세계경제의 위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데 이는 경제 전체에서 무역 의존도가 100% 가까이 되어 세계 경제와의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꾸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위기는 세계 경제 전체가 위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등은 세계 전체를 시장으로 하는데 세계 시장 자체가 위축되어 수출이 침체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반도체가 침체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강한 활력을 보여 왔던 첨단산업, IT산업조차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 정도를 보여주는데 자본주의의 활력, 추동력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로 볼 때 한국경제가 단기간 내에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며 나아가 세계경제 위기의 폭발 여부에 따라 한국 경제 또한 본격적인 공황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국가의 경제개입으로 인해 공황의 폭발이 지연될 수는 있지만 양의 일정한 축적이 질적인 변화를 불러 오는 것은 필연적인 경향이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 침체가 지속된다면 공황의 폭발로 전개될 가능성은 농후한 것이다.

 

조국 정세의 계급적 의미

 

이렇게 한국 경제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사회는 조국 정세에 휩싸여 있었다. 2020년 4월의 총선에서의 승패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조국수호 검찰 개혁’의 목소리와 ‘조국 사퇴’의 목소리가 부딪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반동인가 개혁인가의 방향을 둘러싼 투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구도는 일차적으로 지배계급 내부, 자본가계급 내부의 투쟁이지만 그것은 전 사회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러한 조국 정세에 대한 계급적 분석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유한국당은 조국사퇴를 요구하면서 반동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반동세력은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추종세력인 우리공화당과 일부 교회세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파씨즘과 미제, 일제에 대한 예속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동적 세력으로서 언론과 검찰의 협력 속에서 공세를 폈다. 조국 정세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사실의 교묘한 왜곡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반동적인 정치적 목적에 따라 기사를 기획하고 편집하고 출판했다. 이러한 반동적 공세에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이 가담했다. 한국의 언론이 자본가계급 반동의 선두에 선 것이다. 검찰 또한 조국 정세의 주연 중의 하나인데 조국을 ‘낙마’시키기 위한 전면적 수사로 조국의 장관직 사퇴를 이끌어 냈다.

그런데 이러한 반동의 공세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조국 자신이다. 온갖 개혁적 목소리의 대변자인 듯 행세하면서 실은 특권층으로 살아온 조국의 모습이 대중의 실망과 반발을 야기하면서 그것이 반동적 언론과 검찰의 사냥감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조국 자신의 한계 혹은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 자체의 ‘개혁’의 한계와 그 계급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온갖 ‘개혁’의 목소리가 용두사미로 끝나고 또 줬다 뺏었다하는 조삼모사로 나타나는 양상은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민주주의의 확대,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고 단지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가계급의 기득권의 유지, 강화의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즉, 문재인 정권의 개혁은 철저히 부르주아적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개혁’은 반동적 세력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서서히 강화시켜 왔고 다시 전열을 정비한 반동세력이 지금 조국을 빌미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박근혜가 구속되고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반동의 공세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이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조국 정세는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개혁’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촛불시위로 권력을 잡았지만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일관되게 기만하면서 자본가계급, 재벌의 이익에 충실한 길을 걸어온 후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세분석에 있어서 경제주의

 

그동안 한국의 운동진영은 개량주의의 환상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세력과의 타협, 계급협조를 통한 약간의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그 활동의 대부분이었으며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사실상 계급으로서 해체되는 길을 걸어왔다. 이에 반발하여 전투성을 유지하는 일정한 세력 또한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이라는 점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과학적 전술의 부재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세분석의 차원에서 경제주의적 관점이 그에 한 몫을 해왔다. 즉,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공황이 폭발하면 대중의 투쟁이 폭발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언뜻 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철저히 비과학적인 경제주의적 관점이다.

정세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각 계급세력의 역관계의 문제이고 상호관계의 문제이다. 그것과 경제적 토대에서의 위기 문제는 연관을 가지지만 경제적 위기가 직접적으로 정세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정세를 ‘전체로서 계급들의 관계’로 파악한 바 있다. 잠시 레닌의 언급을 인용해 보자. “피억압 계급들은 언제나 억압자들에 의해 기만당해 왔다. 그러나 이 기만의 의미는 역사에서 상이한 시점마다 상이하다. 전술은 억압자들이 인민을 기만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초할 수는 없다. 전술은 전체로서 계급관계들을 분석하는 것 그리고 의회 밖의 투쟁과 의회적 투쟁 양자의 발전에 따라 형성되어야 한다.”1) 여기에 인용된 레닌의 언급은 정세와 전술의 상호연관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과학적 관점을 보여준다. 억압자의 기만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전술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아무리 강대하다 할지라도 지배계급의 의도 자체가 정세는 아니라는 것이며 정세는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각 계급들의 상호관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레닌은 ‘전체로서’의 계급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정세의 본질은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계급들의 상호관계만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급세력들의 상호관계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계급 관계의 총체성의 흐름, 이것이 곧 정세인 것이다. 이렇게 정세를 규정하고 보면 정세에 대한 경제주의적 관점과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있다. 경제적 토대, 그러한 토대의 위기 여부가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한 경제적 토대에서 위기 여부는 정세 자체가 아니며 또 정세를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아니며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경제적 토대에서의 위기 여부는 정세가 형성되어 가는 ‘조건’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세는 경제적 토대를 비롯한 여러 조건들, 예를 들면 국제관계, 한국의 경우는 남북관계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가는 계급 관계들의 총체인 것이다. 레닌은 바로 이러한 정세에 대한 과학적 관점에 기초했기 때문에 정확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고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따른 대중투쟁의 폭발을 정세의 주요 내용으로 파악하는 인식은 매우 불철저하며 비과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인식은 경제주의적 정세인식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정세분석은 경제적 위기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어우러지고 상호작용하는 계급 관계들의 현실적인 내용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조국 정세는 직접적으로는 검찰개혁과 조국사퇴를 쟁점으로 한 것이었다. 이 쟁점 자체는 경제적 위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자본가계급 내부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에 대해 반동인가 개혁인가의 흐름을 둘러싼 투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가계급의 각 분파의 전략적 구도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구도 자체가 정세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자본가계급 내부 분파간의 구체적 상호관계가 정세의 한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가계급 내부의 상호관계의 문제라면 자본과 노동의 상호관계 또한 정세분석의 주요 대상이 된다. 문재인 정권의 기만적 ‘개혁’의 흐름에 영합하는 노동운동의 일부 세력의 존재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개혁’과 사회적 합의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에 맞서는 투쟁을 주장하는 세력의 존재 등이 정세분석의 주요 축을 차지하게 된다.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전교조의 투쟁 등등 제반의 노동자 투쟁들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어떤 정세적 의미, 계급적 의미를 갖는가가 정세분석의 주요 내용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넘어서서 노동자계급 이외에 소부르주아들의 상태와 요구, 그리고 빈민, 농민들의 상태와 요구, 이들의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과의 관계 등이 정세분석의 대상이 된다. 자본과 노동 이외의 여타 계급은 현실적으로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만 이들의 상태가 정세의 추이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힘겨루기는 여타 계급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닌이 강조한 ‘전체로서’의 계급 관계라는 정세에 대한 정의는 과학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세는 경제적 위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지만 경제적 위기 자체가 정세는 아니며 경제적 위기는 정세를 규정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정세 자체는 경제적 위기를 비롯한 여러 조건들에 의해 규정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계급들의 상호관계의 총체로서 규정되게 된다. 이렇게 정세를 인식하게 되면 정세에 대한 기계적 접근, 경제주의적 접근을 넘어설 수 있고 정세에 대한 구체적 인식, 전체로서의 정세 인식에 다가설 수 있으며 결국은 과학적인 정세 분석의 획득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2. 문재인 정권의 기만적 ‘개혁’과 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문재인 정권은 촛불시위로 태어난 정권이다. 촛불이 없었다면 문재인 정권의 집권 가능성은 희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박근혜가 구속된 후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또 이북의 핵, 미사일 실험과 그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 등으로 야기됐던 전쟁위기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하였고 북-미 정상회담에 조력하면서 전쟁위기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의 파쇼적 통치와 비교해 볼 때 그람시의 표현을 빌어서 말하자면 ‘헤게모니적 지배’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즉, 폭력적 통치 일변도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동의에 기초한 지배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박근혜의 억압과 수탈에 놓였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혁’의 문제였으며 이에 있어서 문재인 정권의 ‘개혁’은 철저히 배신적인 것이었으며 기만적인 것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 결과 조국 정세에서 드러났듯이 ‘계급’의 문제는 현재 대중적인 화두가 되었으며 ‘계급’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가가 각 정치세력의 명운을 좌우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 정책의 가장 주요한 것이었던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재벌 중심 성장에 대한 대안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를 위해 최저임금의 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2019년의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 측의 반발 속에 공익위원 주도로 일방 처리되었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자영업자를 압박한다는 것이 구실이었으나 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자본 측에서 임금 인상 압박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의 기조를 철회한 것이었다. 용두사미가 바로 이러한 모습일 것이다.

사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기만적인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축적의 법칙을 고려해 볼 때 재벌 중심의 자본축적 구도를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든 부를 빨아들이는 재벌 즉, 독점자본을 타격하지 않는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올려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재벌, 독점자본은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하여 착취의 강도를 높이고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또한 중・소자본에 대해서도 하청계열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지배하면서 수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축적구조에 대해 전혀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레토릭 이상이 될 수 없다. 즉,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한국자본주의의 새로운 성장 방식 혹은 성장 전략으로서 기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촛불을 통해 드러났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 재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은 집권 초기에 인천 공항을 방문하여 공항 노동자들 중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른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제로화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까지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에 대해 도로공사는 법원의 정규직화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자회사에 고용하겠다고 하여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다. 자회사의 정규직이라는 것은 사실 비정규직을 하청회사를 통해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회피하고 노동자 투쟁을 기만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를 쪼개고 또 쪼개어 갈가리 분열시켜야만 경제적 착취가 용이해지고 또 노동자 투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자본가계급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계급적 요구인 것이다. 공기업이라 해서 이러한 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요구와 달리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더 기만적인 행태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노조아님 통보로 인해 졸지에 합법성을 잃어버린 전교조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기대를 걸었으나 이러한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기다린다는 궁색한 변명을 통해 전교조의 합법 지위의 박탈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권 또한 전교조의 이념과 활동, 즉,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에 대해 반대하고 억압하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민주당의 중진들을 구성하는 386들은 과거 전교조에 보냈던 열광과 지지를 까마득히 잊거나 배신하고 전교조에 대한 탄압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현재 반동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이 얼마나 불철저 했나를 증명하는 것이다. 촛불에서 드러났던 민중들의 열망은 소위 국정농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등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사회의 개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했고 사회의 개조가 아닌 자본주의의 개량과 착취와 억압체제에 대한 분식(粉飾)에 머물렀다. 한편으로는 촛불의 열망을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로 챙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촛불에서 드러난 민중들의 열망을 두려워하여 민중들을 기만하는 길을 태연히 걸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 조국 정세가 출현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남북 관계는 최근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하여 문재인정권의 대북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 원인은 문재인 정권이 대북 정책에 있어서 ‘한-미 동맹의 강화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강화시키는 것이며 한국사회에 대한 미국의 신식민지 지배의 기제이며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동맹이다. 이러한 한-미 동맹을 기초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미 제국주의의의 헤게모니를 이북으로까지 확장하고 이북을 자본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민중의 염원을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은 이북의 새로운 셈법 요구에 부딪히고 이북으로부터의 비난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문재인 정권의 개혁은 자본가계급의 요구와 이해라는 근본적 한계에 의해 규정되고 촛불의 열망을 배신하면서 용두사미에 그치고 결국은 반동적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촛불에서 드러났던 민중들의 사회대개조의 요구가 문재인 정권의 기만적인 ‘개혁’에 의해 사실상 좌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중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문재인 정권의 ‘개혁’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 이는 사회변혁을 기치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 해방의 정치의 결여로 인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부대가 온전했으면 조국정세에서 구도는 개혁인가 혁명인가가 되었겠지만 현실은 대중의 요구가 부르주아 정치에 의해 비틀어지면서 반동인가, 개혁인가의 구도로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조국 정세를 경과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헤게모니가 일정하게 약화되고 있다. 특히 노동정책 등에서 기만성과 반노동자성이 드러나면서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진출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결성 이후 노동운동에서는 개량주의가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투쟁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실리를 추구하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흐름은 정치의 영역에서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으로 대변되는 개량주의적 흐름에 의해 강화되었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은 흐릿해지고 투쟁 역량은 소진되었고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은 해체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노동자 투쟁은 몇몇 대공장의 투쟁을 제외한다면 고립분산적인 처절한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삼성전자 사옥 앞의 김용희 동지의 고공농성 투쟁,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식 투쟁 등이 그러하다. 그러한 이러한 투쟁은 쉽사리 승리하지 못하고 있고 자본가계급은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동안 노동자계급의 역량의 취약화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2019년 상반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가 부결된 것은 노동자계급의 향후 투쟁을 위한 하나의 전제를 마련한 것이었다. 사회적 합의주의 혹은 경사노위는 단순한 협의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타협체제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유럽에서 성립한 계급타협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양보를 의미했지만 현 시기 한국사회에서 계급타협은 노동자계급의 굴종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매우 취약해져 있음에도 김명환 집행부의 경사노위 참가안이 밑으로부터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된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전투성과 변혁성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향후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발전해 나갈 초석이 될 것이다.

 

 

3. 자유한국당 부활저지를 투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는 대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부활저지를 내걸고 당선되었다. 다음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부활 저지를 목표로 선거투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국 정세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적 구도에서 현상적으로는 심상정 대표의 주장이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앞서 보았듯이 조국 정세는 반동과 개혁의 구도인데 이는 계급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부르주아 정치가 왜곡한 결과이다. 이러한 왜곡의 직접적 원인은 문재인 정권이 말하는 ‘개혁’의 기만성이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의 부활 저지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가 대중의 분노를 왜곡하는 구도에 가담하는 것이 아닌가? 나아가 심상정의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정치를 하라는 것, 부르주아 정치 구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부르주아 정치의 졸이 되라는 이러한 주장을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재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쟁점이 되는 것, 특권층의 삶에 대한 대중의 분노, 개혁을 말하는 세력의 허구성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어떻게 표현되고 조직되어야 하는가? 계급의 문제가 한국 사회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데 억압받고 착취받는 세력 중 최대 세력인 노동자계급은 계급의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처지와 바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부르주아 정치에 의해 왜곡됨 없이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힘에 의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계급의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주된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 노동자계급은 계급 자체를 폐지함에 의해, 계급대립 구도 자체를 소멸시킴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노동자계급은 계급 대립이 없는 새로운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표방하면서 부르주아 정치에 대당하는 자신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를 개척하는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의 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척박하고 거친 길이지만 노동자계급의 해방,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스스로를 해방하고 여타의 모든 계급세력을 해방하는 정치의 길로 가야 한다. 이러한 점을 노동자계급 스스로가 깨달을 때만, 주체적으로 실현할 때만, 노동자계급은 억압과 소외, 착취와 분열, 몰락과 상실 등 자본주의 사회의 졸의 위치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심상정은 자유한국당의 부활을 두려워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누구에 의해 부활되고 있는가? 그것은 기만적인 개혁으로 대중을 기만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해 왔던 문재인 정권이 아닌가? 문재인 정권 스스로가 자유한국당을 부활시키고 있지 않은가? 적폐청산을 불철저하게 수행하여 그 범위를 최소화하고 또 박근혜 정권의 최대 악폐 중의 하나인 세월호에 대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권이 아닌가?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기보다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반동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세력이지 않는가?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파쇼적 질서,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토대에 대해 문재인 정권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는 자본가계급의 민중에 대한 억압체제를 유지하는 데 문재인 정권이 기꺼이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문재인 정권은 가장 값싼 대가, 몇 푼의 개량을 노동자와 민중에게 베푸는 외양을 띠지만 민중을 각성시키고 조직화하는 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해서는 단 한 걸음도 내딛고 있지 못하다. 전교조의 합법성 회복에 대한 거부는 민주당의 정치적 한계, 계급적 성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자유한국당 부활 저지라는 부르주아 정치 구도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을 넘어서는 구도, 부르주아 정치의 구도 자체를 타파하고 부르주아 정치가 노동자와 민중의 요구를 왜곡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정치를 하나의 구도로서 대치시켜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부활저지라는 구도는 노동자계급에게 부르주아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부르주아 정치의 졸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스스로의 정치, 노동자계급 해방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를 할 때만 허리를 펼 수 있다. 노동자계급 해방의 정치, 이것이 한국 사회의 선진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이 고민하고 빚어내야 하는 정치의 상이다.

이러한 것이 계급적 관점에서의 비판이라면 전술적 측면에서 보면 역시 자유한국당 부활저지를 투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길이 된다. 현재 누가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가? 문재인 정권이지 않는가? 그것은 현재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재인 정권은 지금 총자본가를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은 경제투쟁에 있어서도 자본가와 맞설 때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사장이 나와라’라는 요구를 한다. 하물며 정치투쟁에서야 어떻겠는가? 현재 권력의 담지자를 제외하고 자유한국당하고 싸우라는 것은 일체의 성과를 자본가계급에게 넘겨주면서 스스로는 정치적 총알받이가 되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전술이 아니라 배신의 전술이고 몰 과학의 전술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문재인 정권하고 맞설 때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고 또한 자유한국당의 부활을 저지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유한국당을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서 그 개혁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부르주아 정치의 틀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건설하는 길을 갈 때만, 반동과 개혁이라는 부르주아 정치의 구도에 대해, 변혁의 길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구도를 대치시킬 때만, 자유한국당의 부활은 저지될 수 있다.

따라서 심상정의 자유한국당 부활 저지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자계급의 주장이 될 수 없고 자유주의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소부르주아의 주장일 뿐이다. 그러나 조국 정세는 계급의 문제가 이미 사회의 전면에 대두하고 있다는 것을 제기하였으며 노동자계급은 그러한 쟁점에 대해 자기 자신의 입장,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정치를 대치시켜야 한다.

 

 

4. 사회변혁의 전망 하에 문재인 정권에 맞서는 전선을 형성해 가자!!

 

조국 정세는 대중의 계급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동이냐 개혁이냐의 문제로 비틀어버렸다. 이렇게 대중의 요구를 부르주아 정치가 비틀어버리는 것 또한 정세의 반영이다. 그만큼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처지가 열악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에서 다시금 반동적 흐름이 강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본가계급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부르주아 정치의 대중적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의 반동이냐 개혁이냐라는 구도의 종속 변수가 되면 안 된다. 자신의 해방의 정치의 구도를 부르주아 정치 구도에 대치시켜야 한다. 그것은 변혁의 길, 변혁의 전망, 변혁 전략을 대치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략의 문제, 변혁의 전망의 문제가 현 정세에 의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오랜 세월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변혁 전략의 문제가 다시금 햇빛 속으로, 세상 속으로 나와야 하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전략의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을 분명히 하는 관점,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투쟁과 전술의 실천 속에서 서서히 해결되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즉, 사회변혁의 전략은 단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투쟁 과정의 집약, 전술적 실천의 집약으로서 성립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과학적인 정세분석과 전술이 요구되며 그것은 변혁적 이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변혁적 이론 없이 변혁적 실천과 전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론의 목표와 준거는 변혁적 실천이며, 변혁 전략은 한편으로 변혁 이론의 성립과 발전을 조건으로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실의 전술적 실천을 지탱하고 방향을 잡아가는데 기여하면서 비로소 정치적 현실성을 띠는 전략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 정세는 새로운 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사회의 전망을 요구하며 이를 위한 변혁전략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촛불에서 드러난 노동자와 민중의 열망이 배신당하고 왜곡되는 지금의 상황은 부르주아 정치의 기만적인 개혁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사회변혁의 전망과 전략이 대치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운동진영은 사회대개혁의 요구를 제기해 왔다. 이것은 개량의 요구이지만 노동자계급을 결집시키고 민중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부르주아 정치에 맞서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슬로건으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민주노총 등의 사회대개혁의 요구는 문재인 정권의 기만적 개혁을 폭로하지 못하고 개량주의 진영이 문재인 정권과 협조하는 것을 가리는 가림막으로 작용해 왔다. 그런 점에서 사회대개혁이라는 개량의 요구는 변혁적 흐름을 강화시켜온 것이 아니라 대중의 변혁성을 마비시키고 전투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을 결집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개량의 요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지금의 정세는 사회 변혁의 기치를 전면에 내거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회 변혁의 기치를 내건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전략적 선택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 자본가 권력을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수립하는 길을 간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략적 선택이 정치적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은 전술로서 나타나야 한다. 정세에 조응하는 전술로서 구체화될 때, 전략은 정치적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자본과 노동의 전선에서 주요한 쟁점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에 대한 투쟁,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 최저임금 투쟁, 주 52시간제 도입을 빌미로 한 탄력근로제의 확대 도입에 맞서는 투쟁, 단체협약의 기간의 연장 문제, 노동조합의 임원과 간부에 대한 제한 문제 등등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의 대응으로서 자본의 집중과 구조조정의 문제가 주요한 하나이며 또 다른 측면은 경제위기에 대한 총자본가의 대응으로서 노동법의 개악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활동의 무력화를 기도하고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에 처하게 하여 과로사를 일상으로 만들 것이 뻔한 노동법 개악의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전선의 핵심 쟁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법, 제도의 문제는 노동자의 광범한 층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2019년 하반기를 관통하는 주요고리가 되어야 한다.

전략과의 연관에서 현재의 쟁점을 본다면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최소강령의 문제가 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합병과 구조조정, 자동차산업의 재편과 구조조정, 탄력근로제 확대,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통제 강화 등은 곧 노동자계급의 최소강령의 문제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분명히 하면서도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현재의 절박한 처지를 반영하는 최소한의 요구를 집약하는 것이 곧 최소강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자본가계급의 공세에 대응하는 전선을 형성해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물러설 수 없는 요구를 정식화하고 그러한 요구를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발전의 경로로서 배치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개량의 요구가 자본가계급과 개량주의에 종속되는 것을 배격하고 변혁의 전망 아래에서 개량투쟁을 배치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요구투쟁이 전술로서 관철되고 사회변혁의 전망의 강화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성립하고 강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문재인 정권의 ‘개혁’의 기만성에 대한 전면적 폭로와 비판, 둘째, 사회 변혁의 전망에 기초하여 노동자계급 내부, 노동운동 진영 내부의 단결의 강화, 셋째, 심상정 등 부르주아 정치 추종적인 소부르주아 세력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강화, 넷째, 빈민, 영세자영업자, 농민 등 노동자계급 이외의 민중부문과의 연대의 강화 등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형성되고 강화되어 갈 것이다.

 

 

5. 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의 문제

 

현재의 정치적 구도, 즉, 반동인가 개혁인가라는 왜곡된 구도에 대해 노동자계급 자신의 해방의 정치를 대치시키려면 그 전제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 수립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이데올로기 차원의 독자성과 정치적 독자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데올로기 차원의 독자성은 사회주의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쏘련 붕괴 후로 무너지고 꺾여진 사회주의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이다.

정치적 독자성은 사회주의의 기치를 전제로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정립과 강화 그리고 그에 기초한 전술의 구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정립되려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일시적이지 않고 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지니려면, 그것은 변혁 전략의 수립을 요청하는 것이다.

즉, 반동이냐 개혁이냐 라는 부르주아 정치 구도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정치로 대치시키는 것을 요구하는 현재의 상황은,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의 문제가 현실 정치적으로 제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 자본주의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 20세기의 사회주의 진영은 비록 그 한계와 오류가 있어서 붕괴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무계급 사회를 실현했었고 거대한 진보를 이루어냈다는 것, 21세기 자본주의는 새로운 무계급 사회 건설을 위한 물적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역사의 기관차는 혁명의 내용 등이 녹아들어 있는 변혁 전략이 제기될 때 노동자계급 해방의 정치로 실제 나아갈 것이다.

그러한 해방의 정치는 구체적으로 보면 해당 정세에 조응하는 전술을 구사해 가면서 대중에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전망을 제기하고 또 현실적인 변혁의 경로를 구체화해나갈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기치를 재정립하는 문제이며 또 변혁 경로를 과학적으로 정립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 정치,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조직적으로는 전략적인 당 건설을 요구한다.

당 건설의 문제는 주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객관 현실의 변혁의 문제인데,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제반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고 그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주체는 서서히 형성되어갈 것이다. 그러한 객관 현실의 변혁의 과정이 없이 당 건설을 사고하는 것은 그림그리기에 지나지 않으며 아무런 힘도 없는, 변혁성이 거세된, 또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속박하는 형식적 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것의 현상 형태인 조국 정세, 그리고 자본가계급의 보수화, 반동화는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으로 하여금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를 수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는 그 조건으로 전략의 문제, 변혁의 전망의 문제를 현실의 일정으로 올릴 것을, 현실에서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과연

 

 


 

1) 레닌, 한 정치평론가의 일기로부터, ≪레닌선집≫ 2권, progress판, 모스크바, p. 339.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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